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77)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77화(77/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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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아빠 연이랑 사겨?”
“…..??????”
쟤 또 이상한 소리 한다. 애가 대체 갑자기 뭔 소리를 하는거야?? 누가 누구랑 사귄다고??
뜬금없이 갑자기 화연이랑 사귀냐고 묻는 수정이의 질문에 이한성은 너무 황당스러운 나머지 고장나버린 리액션을 내보이며 수정이를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수정이는 뭐가 잘못 됐다는 건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고, 이에 이한성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야, 너 사귄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기나 하고 묻는거지??”
“응.”
혹시나 애가 뭘 잘못 이해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서 물어본 이한성이었지만 그럼에도 수정이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알고 있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과 동시에 대답했다.
“남자랑 여자가 눈을 마주치면 사귀는거자나.”
“아니거든.”
대체 누가 그딴 말도 안되는 소리를 했대냐?? 그럼 뭐, 길거리 지나가다가 마주친 여자와 남자들이 죄다 얽히고 섞인 막장 삼각관계이게??
수정이의 논리가 맞다면 남친이 여친 이외의 여자와 눈만 마주쳐도 바람을 피워버린게 되어버린다. 그리고 당연히 연애라는 것은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너 진짜 다른 사람을 앞에서 그런 소리 하지마. 바보 취급 받아.”
잘못 알고 있어도 한참 잘못된 지식을 진짜라고 믿고 있는 수정이의 순수함에 이한성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수정이를 꾸중했다. 그러나 자신이 알고 있는 게 헛소리라는 사실을 모르는 수정이는 그 나이의 애 답게 고집을 피우며 우기기 시작했다.
“아냐! 진짜야!! 해영 언니가 그랬써! 남자랑 여자가 눈만 마주치면 딱 느낌이 온다구!!”
누가 그딴 개소리를 했나 했더니만은….
수정이에게 잘못된 상식을 심어준게 다름아닌 해영이라는 사실에 이한성은 어쩐지 그럴 것 같았다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이마를 탁 쳤다. 일반인인 척 하는 괴짜인 해영이라면 충분히 애한테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고도 남을 사람이니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야, 수정아. 잘 들어. 남녀가 사귀는 경우에는 말이야, 서로 막 손도 잡고 뽀뽀도 하거든? 넌 내가 화연 씨…. 가 아니라 화연이랑 그러는 걸 본 적 있어??”
“음…. 없써.”
“그치, 없지.”
“하지만 그건 아빠가 나 몰래 연이랑 그랬을 수도 있는거자나.”
수정이가 어디서 많이 본 어린이 탐정 흉내를 내며 의심적인 의심으로 이한성을 추궁했다. 이한성은 그런 수정이의 추궁에 제 발 저릴 것이 티끌만큼도 없었지만,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기에 달리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말도 안되는 의심이긴 한데, 저러니까 딱히 할 말이 없네.
이한성이 할 말을 잃은 채 어이가 없다는 듯이 수정이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수정이는 그런 이한성의 리액션이 궁지에 몰려서 그런 것이라고 착각했는지 쓸데없이 확신에 찬 태도로 팔짱을 낀 채 이한성을 더욱 압박했다.
“그러니까 증거를 대 바.”
“요게 진짜…. 증거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대체 뭔 증거를 어떻게 내야 납득을 할건데??”
듣자듣자 하니 왜 딸한테 이렇게 압박수사를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현 상황에 어이를 제대로 털려버린 이한성은 그렇게 속으로 한탄을 내뱉으며 수정이에게 항의했다. 그러자 이에 수정이는 다짜고짜 주머니에서 잔뜩 구겨져 있던 종이 뭉치를 꺼냈고, 짜리몽땅한 크레파스도 함께 이한성에게 건네며 말했다.
“여기에다가 [나는 연이랑 사귀는 사이가 아닙니다], 라고 쓰고 싸인하면 믿어줄께.”
“얼씨구, 너 지금 나보고 각서 쓰라는거야??”
이런건 또 어디서 배운거야?? 넌 대체 왜 맨날 이상한 것만 배워서 사람을 놀라게 만드니?? 아니, 대체 세상 어느 5살 짜리 딸내미가 아빠보고 각서를 쓰라고 종이를 내미는데?? 난 그런 걸 가르친 기억이 전혀 없는데.
종이와 크레파스를 건네받은 이한성은 어처구니가 없는 표정으로 수정이를 바라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당연하게도 그는 별 것도 아닌 것 하나 증명하자고 애한테 각서를 써줄 마음이 추호에도 없었다.
“됐네요 이것아. 각서 같은 건 함부로 쓰는 거 아니야. 보증은 더더욱 그렇고.”
“치, 그럼 연이랑 사귀는 거 맞네 뭐.”
“아니라고. 안 사귄다고. 그리고, 진짜 사귄다고 해도 왜 난리야 대체?? 난 뭐 여자친구 만들면 안되는거냐??”
슬슬 진짜로 열 받을 것 같은 기분에 이한성은 애를 상대로 진심으로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런 이한성의 항의가 담긴 물음에 수정이는 조용히 발을 베베 꼬며 뾰루퉁한 표정을 지었고, 이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치만 사귀는 사람은 반드시 헤어지게 돼 있다고 해영이 언니가 그랬단말야.”
“뭐?”
뭔데. 뭔 소리야 그게. 왜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그런 말을 하는건데.
속뜻을 이해하기가 심히 난해한 수정이의 중얼거림에 잠시 주변에 침묵이 맴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아주 잠시, 오랫동안 지속될 것만 같았던 침묵 속에서 화연은 나지막히 혼잣말을 내뱉었다.
“많이 컸네 해영이. 애한테 별 걸 다 가르치고 말이야.”
주변에 울려퍼진 그녀의 목소리는 매우 차분했지만 동시에 섬뜩하기도 했다. 그 한마디와 함께 그녀는 갑자기 어디론가 향하더니, 이내 잠시 멈춰서고는 뒤를 돌아 이한성에게 웃고 있지만 웃고 있지 않은 얼굴로 조용히 미리 인사를 건넸다.
“좀 있으면 해가 질텐데, 먼저 돌아가. 난 해영이랑 오랜만에 좀 대화란 걸 해봐야 할 것 같아서 좀 더 있으려고.”
불과 몇 분 전 까지만 했어도 말을 놓은 것을 무척이나 어색해 했던 화연이었지만 지금 그녀의 목소리에는 분자 만큼의 어색함도 담겨져 있지 않았다. 분명 어색함을 잊어버릴 정도로 해영에게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리라.
그렇게 싸늘한 오오라와 함께 해영을 찾아 먼저 자리를 비운 화연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이한성은 비록 이 모든 일의 원인이지만 곧 있으면 600살 어르신에게 된통 깨지게 될 해영에게 조용히 애도를 표하며 토라져버린 수정이를 달래기 위해 말을 걸었다.
“야 수정아. 니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랑 화연 씨는 사귀는 사이도 아니고 그냥 친구일 뿐이니까 괜한 걱정하지마.”
“…..”
수정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토라진 채 입을 꾹 다물어버린 수정이의 모습에 이한성은 피곤하다는 듯이 한숨을 내쉈고, 조용히 수정이의 은빛머리를 쓰다듬으며 나지막히 반쯤 농담인 말을 던졌다.
“왜, 내가 화연 씨랑 사귀면 너한테는 신경 안 쓸까봐 걱정이라고 했던거야?”
“….그런거 아니야.”
“그럼 왜 토라진건데?”
“….아빠가 연이랑 헤어지면 연이랑은 다시 못 만날 테니까.”
수정이가 시무룩한 목소리로 조용히 대답했다. 고작 5살인 수정이가 오해이긴 했지만 거기까지 생각했다는 사실에 이한성은 속으로 놀라며 살짝 안쓰러운 표정으로 수정이를 바라보았다.
“넌 진짜…. 생각이 깊은건지 엉뚱한건지 모르겠다니깐.”
평소에는 너무 순수해서 바보 같아 보일 정도로 엉뚱한 행동만 골라서 하는 주제에 꼭 이럴 때만 눈치가 빠르고 생각이 깊다. 저번에 엄마 얘기를 꺼냈을 때도 그렇고 꼭 이렇게 주변 사람들과 관련이 되는 일이면 애답지 않게 구는 수정이의 특이한 면모가 좋은건지 나쁜건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이한성은 말없이 쓴웃음을 지었다.
“아빠.”
잠시 동안 흐르던 정적 속에서 수정이가 이한성을 불렀다. 그러자 이한성은 잔잔한 목소리로 수정이에게 대답했다.
“왜.”
“아빠 그냥…. 연이랑 결혼하면 안돼?”
“쿨럭!!”
물을 마시고 있던 것도 아닌데 사레가 들린 이한성이 연달아 기침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 동안이나 쿨럭거리다가 겨우 진정한 이한성은 이내 입가에서 흘러내리는 침을 닦아내리며 맹한 표정으로 수정이를 바라보았다.
“뭐, 뭐라고??”
“연이랑 결혼하면 안돼? 그럼 연이랑 헤어질 일도 없자나.”
????????
“아니, 뭔 개…. 아니지 아니지, 뭔 헛소리야 대체???”
다짜고짜 과외 선생님과 결혼하라는 딸아이의 말에 이한성은 하마터면 욕할 뻔한 걸 간신히 멈춘 채 마음 속으로 미아 핑을 연달아 찍어내며 머릿속을 물음표로 가득 채웠다.
“난 연이같은 엄마가 있으면 조은데.”
“아니, 아니지. 잠깐만 기다려 봐. 너 지금 나보고 화연 씨를 엄마로 삼고 싶으니까 결혼해라, 이거야???”
“응.”
즉답이었다. 고민이라도 하고 대답했으면 좋았을 것을, 0.1초의 시간차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수정이를 본 이한성은 심히 곤란한 표정과 함께 눈을 연달아 깜빡이며 과열된 컴퓨터 마냥 버벅이기 시작했다.
“아니, 왜, 무슨 , 진짜 뭔….”
육하원칙도 아니고 Why만 반복하는 말 밖에 안나온다. 보통 한부모 가정에서 아빠가 결혼 혹은 재혼을 한다고 하면 자식은 거부감이 들어야 정상일텐데, 오히려 자식이 아빠에게 결혼하라고 추천하는 주객이 전도된 상황에 이한성은 가까스로 머리를 냉각시킨 끝에 겨우 되찾은 언어능력으로 수정이에게 물었다.
“너 화연 씨가 그렇게 좋아?? 아니, 그것보다 너 진짜 엄마가 보고 싶은거 아니었어??”
그 왜 저번에 엄마가 보고싶다고 칭얼댔었잖아. 그거 유전적인 친엄마를 말하는 거 아니었나?
“응. 진짜 엄마도 보고시퍼. 근데 보고 시퍼도 못보니까 연이가 대신 내 엄마였으면 좋겠써.”
이한성의 물음에 수정이는 그렇게 대답하며 신발 밑창으로 바닥을 쓸었다. 그러자 수정이의 반짝반짝 신발은 그대로 빛을 내기 시작했고, 이윽고 얼마 가지 않아 꺼져버리고 말았다.
“….저기 근데, 수정아. 진지한 와중에 좀 미안한데 말이야. 결혼한 사람들도 이혼이라는 걸 할 수 있다는 건 알지….?”
순간 이한성의 목소리가 무겁게 가라앉을 뻔 했던 분위기를 깨뜨리며 주변에 울려퍼졌다. 그러자 수정이는 백치미가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한성에게 물었다.
“이혼이 뭐야??”
“….그래. 모를 거라고 생각했다.”
5살 짜리 아이라면 결혼이 뭔지는 알아도 이혼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것도 이상한 건 아니다. 이한성은 그렇게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며 한숨과 함께 수정이를 바라보았고, 이내 조용히 설명해주었다.
“이혼이란 건 말이지, 결혼한 부부가 서로 완전히 헤어지는 걸 말하는 거야.”
“!!”
순간 수정이의 천진난만하던 표정이 충격으로 물들었다. 결혼만 하면 동화 속 처럼 그 관계가 오래오래 끝까지 지속되는 줄만 알았던 수정이로써 이혼이라는 개념이 존재한다는 것은 충격 그 자체였기 때문이었다.
“결혼 하면 오래오래 행복한 거 아니야….?”
“글쎄. 아마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을 것 같은데.”
“그, 그럼 결혼도 사귀는 거랑 다를 게 없자나!”
“법적인 차이가 있지. 그냥 사귀기만 하면 어느 한쪽이 바람을 펴도 당사자들 끼리의 문제지만, 결혼한 상태로 바람을 피면 법적으로 소송까지 가능하거든. 위자료는 덤이고.”
그토록 보수적이고 유교문화가 국민들의 무의식 속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조차도 부부들간의 이혼 사례는 드문 일이 아니다. 오히려 날이 가면 갈 수록 별 엽기적인 일들이 다 일어나는 요즘 세상에 잉꼬처럼 죽을 때 까지 찰떡같은 사이로 함께 하는 부부들이 더 드물 것이다.
“그럴 수가….”
수정이의 표정이 마치 산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라도 깨달은 것 마냥 어두워졌다. 그러자 이한성은 그렇게 결혼에 대한 환상이 깨져버린 수정이의 어깨를 토닥이며 나지막히 위로의 말을 건내주었다.
“그러니까 넌 나중에 결혼 할 때 남자 잘 보고 결혼해. 믿었다가 발등 찍히고 코 베이지 말고.”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 말이었다. 이한성 딴에는 충고랍시고 한 말이었지만, 누가 들어도 5살 짜리 애한테 할 만한 충고는 아니었다.
“자, 그러면 이제 슬슬 집에 돌아가자. 옷 챙겨 입어.”
아무튼 간에 화연과 사귀다던가 결혼한다던가 하는 불편한 주제에서 동심 파괴를 대가로 빠져나오는데 성공한 이한성은 혹여나 수정이가 또 엉뚱한 소리를 할까봐 서둘러 말을 돌리며 잠바를 건네주었다. 그러자 수정이는 멍한 얼굴로 말 없이 얌전하게 옷을 챙겨 입었고, 이한성은 그렇게 옷을 챙겨입은 수정이와 함께 나란히 손을 잡은 채 보육원을 나와 집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아까 전의 대화를 화연이 듣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마음 속 깊이 안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