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79)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79화(79/245)
79
“…..저기요. 지금 이게 다 뭡니까?”
크리스마스 당일날의 보육원 안에서 이한성의 목소리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울려퍼졌다.
빨간색이 주색상이고 하얀색이 보조색상인 모자와 코스튬. 저기 북유럽에 위치한 노르웨이에서나 자주 입을 법한 두터운 옷감, 거기에다가 간dal프와도 같은 하얀 가짜 수염까지, 21세기의 현대인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복장을 눈앞에 둔 이한성은 저 코스튬의 용도를 보자마자 깨달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옆에 있던 최민석 상담사를 추궁하였다.
“산타 복장입니다만?”
“아니, 그건 저도 아는데 왜 이것들을 죄다 저한테 주시는거냐고요.”
“그야 오늘 크리스마스 파티의 산타 역을 이한성 씨가 맡아 주셨으면 해서 말입니다. 아이들의 선물을 준비하신 것도 다 이한성 씨니까 직접 하시는 게 보람차고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최민석 상담사는 알고 있으면서 왜 굳이 물어보냐는 듯한 말투와 함께 대형 카트 위에 잔뜩 실어진 선물 상자들을 바라보며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자 이에 이한성은 단칼에 정중하게 최민석 상담사의 부탁을 거절했다.
“싫습니다. 저 말고 최 상담사 님이 더 어울리실 것 같은데, 산타는 최 상담사 님이 맡으시죠.”
나이를 보아하나 인품을 보아하나 산타에 더 어울리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최민석 상담사다. 괜히 귀찮게 산타를 자처해서 고생하고 싶지도, 보람을 느끼고 싶지도 않았던 이한성은 그렇게 생각하며 곧장 방을 나서려고 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타이밍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덜컥-]이한성이 문고리에 손을 대기도 전에 방 문이 열리며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수정이와 어머니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이한성의 앞에 놓여져 있던 산타 코스튬은 들어오기 무섭게 수정이의 시선을 끌기 딱 좋은 물건이었다.
“우와! 싼타 할아버지 옷이다! 아빠꺼야??”
“아니, 내꺼 아닌-”
“애들한테 가서 자랑해야지~!”
뭐라 해명하기도 전에 수정이는 그대로 방을 뛰쳐나가 옆방에서 파티가 시작하기를 기다리고 있던 보육원 아이들에게로 달려가버렸다. 그렇게 사람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고대로 쌩 떠나버린 딸아이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이한성은 이내 이마를 탁 치며 나지막히 한탄을 늘어놓았다.
“진짜 왜 맨날 타이밍이 이러냐고….”
화장실이 급해서 달려가면 꼭 항상 누가 쓰고있고, 소파에 앉아서 TV 좀 보려고 하면 꼭 무슨 일이 터져서 일어나야 하고, 일기예보를 믿고 따숩게 입고 나가면 꼭 날이 덥고, 항상 왜 일이 다 이 모양인지 모르겠다.
만약 스테이터스 창에 행운 스탯도 있었다면 분명 내 행운 스탯은 F-겠지. 아니면 혹시나 몰라. 원래 행운 스탯도 있는데 내가 워낙 불행해서 행운 스탯 자체가 표기되지 않는 걸지도.
그렇게 타고난 자신의 불운에 불평을 늘어놓으며, 이한성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그런 아들내미의 모습을 본 어머니는 나지막히 입을 열어 부모다운 충고를 그에게 건네주었다.
“한번 해보지 그러니?. 분명 애들도 좋아할 것 같은데….”
“….진심이세요?”
“그래.”
이한성의 어머니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듯이 주저없이 고개를 끄덕이셨다. 어머니가 그렇게 까지 말하시자 꺼려하던 이한성의 생각도 어느정도 기울어졌고, 이윽고 반쯤 중심을 잃은 채 꺾이고 말았다.
뭐, 저렇게 까지 말하신다면 안 하기도 좀 그러니까….
사실 산타 코스튬을 한 채 가게 손님들에게 전단지나 물건을 나눠주는 알바는 여러본 해본 적이 있으니 어려울 건 없다. 다만 선물에 굶주린 아이들을 상대해야 한다는 것이 관건일 뿐.
“….알았어요. 까짓거 한번 하죠, 산타.”
어머니의 설득에 단번에 넘어가버린 이한성이 졌다는 듯이 두 손을 들며 부탁을 받아들였다. 그러자 최민석 상담사와 이한성의 어머니는 매우 흡족한 표정을 지으셨고, 이윽고 코스튬으로 옷을 갈아입어야 할 이한성을 위해 자리를 비워주셨다.
“그럼 부탁 드리겠습니다 이한성 씨. 그냥 아이들한테 웃으면서 선물만 나눠주시면 되니까 너무 부담가질 필요 없습니다.”
“난 옆방에서 수정이 데리고 기다리마. 괜히 긴장해서 실수하지 말고 잘해.”
격려인지 경고인지 모를 말과 함께 어머니와 최민석 상담사는 그렇게 방을 나가셨다. 그러자 방 안에 홀로 남게된 이한성은 곧장 한숨을 내쉬며 겉옷을 벗었고, 티셔츠와 바지 위에다가 산타 코스튬을 착용하기 시작했다.
“…..이게 맞는건가?”
1분도 걸리지 않아 어렵지 않게 코스튬을 착용한 이한성이 방 안에 있던 거울 속에 비춰진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렇게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보통 산타 분장을 한다면 솜 같은 걸 옷 안에다가 잔뜩 넣어서 덩치가 좀 있어보이게 분장을 해야하는 법인데, 주어진 것은 싸구려 천조각으로 만들어진 산타 복장 뿐이었기에 옷 위로 드러난 것은 순전히 이한성 본인의 체격이었다.
세상에 이런 말라깽이 산타가 대체 어딨다고….
이한성의 체구가 평균보다 왜소한 것은 전혀 아니다. 키가 179에 잔근육이 탄탄하게 붙어있는 이한성의 몸은 평균보다 좋으면 좋았지, 결코 뒤쳐지는 편은 아니었다. 단지 그의 체격이 전형적인 덩치가 크고 배가 나온 서양 할아버지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았을 뿐이다.
“뭐, 돈 받고 하는 것도 아니니까 그냥 대충 해도 되겠지.”
어차피 요즘 애들은 하나같이 다 눈치가 빨라서 산타를 믿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게 이한성은 그저 귀찮다는 이유를 변명으로 얼버무리며 하얀색 가짜 수염을 착용했다.
[똑똑-]갑자기 정중한 노크 소리가 문 바깥에서 들려왔다. 이한성은 그런 노크 소리에 방 안에 자신이 있는 건 또 어떻게 알고 노크를 하는 걸까, 갸우뚱하며 문 너머로 외쳤다.
“들어오시죠.”
[끼익-]들어오라는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문의 경첩소리가 울려퍼지며 익숙한 얼굴을 지닌 두 여성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나름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옷을 차려입은 화연과 해영이었다.
“어…. 방금 전에 최 상담님한테 얘기를 들어서 다 입으셨나 확인하러 왔는데….”
화연이 산타 이미지와는 전혀 비율이 맞지 않는 이한성의 체격에 저도 모르게 시선을 두며 말끝을 흐렸다. 한눈에 봐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의 모습에 그녀는 갈 곳을 잃어버린 목소리와 함께 할 말을 잃어버렸고, 해영은 그저 배를 붙잡은 채 벽을 두드리며 폭소를 터뜨릴 뿐이었다.
“아하하핰!! 산타 할아버지가 살이 많이 빠지셨넼ㅋㅋㅋ!!”
“안 어울리는 건 나도 아니까 작작 좀 웃지?”
“아하하핳!! 아, 배아파.”
이한성의 항의에 해영은 그제서야 간신히 진정하며 안면근육을 통제하려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 그녀의 안면근육은 계속해서 수축 운동을 반복했고, 이에 해영은 너무 웃어서 숨 쉬기가 힘들다는 듯이 호흡을 가까스로 가다듬으며 이한성에게 별로 도움되지 않는 충고를 건넸다.
“오빠, 가짜 수염은 그냥 떼는 게 어때? 그러면 그나마 좀 나아 보일 것 같은데.”
“아니;; 명색이 산타인데 수염은 달아야지.”
“아 괜찮아. 어차피 이미 수정이가 밖에서 애들한테 오빠가 산타라고 스포를 쫙~ 해놨으니까 수염은 그냥 빼자. 그러고 나갔다간 백퍼 애들이 놀리고 난리도 아닐거야.”
해영이 그렇게 충고하자 이한성은 그녀의 말에 반신반의 하며 잠깐 가짜 수염을 떼어냈다. 그러자 해영은 그냥 복장만 산타 클로스가 되어버린 이한성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를 척 들어올렸다.
“그래. 차라리 젊은 산타 컨셉이 훨 낫네. 원본이 괜찮으니까 그 단색 폴란드식 코트도 생각보다 어울리잖아. 그치 화연 언니?”
옆에 있던 화연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맞장구 치기를 기다리는 해영이었지만, 어째서인지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이에 해영은 멍하니 이한성을 쳐다보고 있던 화연의 눈 앞에다가 손을 이리저리 흔들며 대답이 없는 그녀를 불렀다.
“언니~!”
“….응? 뭐, 왜?”
정신을 차린 화연이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해영의 부름에 그제서야 대답했다. 그러자 해영은 의심스런 눈초리로 그녀를 바라보며 혹시나 하는 말투로 그녀에게 물었다.
“언니, 혹시 버스남 오빠의 저 복장이 어울린다고 생각한 건 아니지?”
“뭐? 아, 아니거든? 얘가 갑자기 무슨 소리야…. 저게 어울리기는 뭐가 어울려. 그냥 어울리지는 않고 뭐랄까, 살짝….”
화연의 말끝이 갈 곳을 잃은 채 주위에 맴돌았다. 이에 해영은 답답하다는 듯이 그녀를 참새처럼 쪼아대며 나머지 뒷마디를 재촉했다.
“살짝 뭐. 뭔데.”
“…..아니야. 아무것도.”
“아 뭔데~! 그렇게 얘기하다 말면 궁금하잖아!”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아무것도 아닌 것 치고 아무것도 아닌게 어딨어~! 빨리 그냥 말해봐. 응?”
“아 진짜….”
알려주기 싫다는데 자꾸만 들러 붙으며 꼬치꼬치 캐물으면서 얼굴을 코앞까지 들이대는 해영을 떨쳐내며, 화연은 급기야 참다 못해 그녀를 염동력으로 공중으로 띄워버렸다. 그러자 해영은 그대로 꼼짝없이 천장에 매달린 굴비 신세가 되어버렸고, 이내 온 힘을 다해 바둥거리며 급하게 사과하기 시작했다.
“미안미안미안!! 알았으니까 좀 내려줘 언니!! 나 고소공포증 있는 거 알잔핰!!”
“그러게 그만 하라고 했을 때 그만 했어야지. 꼭 매를 벌어요.”
이제와서 미안하다고 하는 해영의 다급한 사과에, 화연은 이미 늦었다는 듯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녀를 그렇게 공중에 방치해 둔 채 이한성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 슬슬 가서 애들한테 선물 나눠주시죠? 다들 기다리고 있을텐데.”
“아, 네.”
어느샌가 시간이 다 됐다. 잠시 화연과 해영의 아옹다옹에 정신을 팔고 있던 이한성은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고는 곧바로 선물들이 가득 실린 카트를 끌며 방을 나서려고 했다.
“아, 맞다.”
하지만 그렇게 방을 나서려던 순간, 그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며 깜빡 잊은 게 있다는 듯이 뒤를 돌아 화연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존댓말과 반말이 반반 섞인 요상한 화법과 함께 그녀에게 물었다.
“그런데 우리 서로 말 놓기로 한 거 아니었나? 요?”
“…..아.”
역시 까먹고 있었구만.
어째 그럴 것 같았다. 이런 상황이 올거라는 걸 어렵지 않게 예상하고 있던 이한성은 혹시나가 역시나라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까먹었을 만도 하다. 이제껏 서로 존댓말을 사용해왔었는데 하루 아침에 말을 놓는다고 해서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니, 아직까지는 서로가 존댓말이 더 편한게 당연하다. 이한성 본인 역시 여전히 화연에게 말을 놓기에는 꺼리낌이 적지 않게 남아있는 편이었으니.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계속해서 까먹고 서로에게 존댓말을 사용했다가는 이쪽이 관 속에 누울 때 까지 말을 놓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어색하더라도 서로 말을 놓는 걸 노력해야 한다.
“미, 미안. 깜빡 잊고 있었어요…. 가, 아니라 잊고 있었네.”
“잊어버릴 수도 있지. 괜찮아.”
“그, 그래…. 그럼 일단 어서 갈까….? 요?”
어색하기는 해도 겉으로는 별로 티를 내지 않은 채 말을 놓은 이한성과는 달리, 화연은 자꾸만 경어와 반말을 혼동하며 말을 더듬었다. 그러자 이한성은 그런 그녀를 참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가자.”
나이는 저쪽이 더 많은 데 말 놓는 걸 저렇게 까지 어려워 하네. 보통은 내쪽이 더 어려워 해야 정상 아닌가?
주객이 전도되어버린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그런 실없는 생각을 머릿속으로 되뇌이며 이한성은 어색함과 함께 화연과 같이 방을 나와 선물에 굶주린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을 옆방으로 향했다.
“저기요들….? 나는….?”
해영이 아직도 공중에서 바둥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린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