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83)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83화(83/245)
83
“….그래서 이게 뭐라고?”
그 크다는 타조알 보다도 큰 크기의 알. 꼭 게임에서나 나올 것만 같은 점무늬 패턴과 자연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붉은 색 빛깔의 색상.
누가 보아도 조류가 낳았을 것 같지는 않은 알을 본 화연은 호기심 반, 걱정 반이 드러난 표정을 지으며 이한성에게 그렇게 물었다.
“파프니르의 알.”
“…..”
이한성의 대답에 화연의 표정이 매우 심각하게 굳어졌다. 분명 이세계에서 온 그녀는 이 알의 정체가 무엇인지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었으리랴.
“아니, 파프니르….? 그 혼돈의 시대 때 대륙의 절반을 불태워버렸다던 악룡 파프니르….?”
“꽤나 자세하게 알고 있나보네.”
“당연하지! 내가 살던 세계에서는 거의 루시퍼 급의 존재라고!”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흔히들 알고 있는 존재. 악마중의 악마이자 천사니 뭐니 하는 이야기가 나오면 반드시 언급되는 악마들의 수장, 사탄의 또 다른 이름. 파프니르의 존재는 화연이 살던 세계에서는 딱 그런 존재였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전설과 신화 속의 이야기에 불과한 루시퍼와는 달리 파프니르의 존재는 그 세계의 역사 속에 공식적으로 기록이 되어 있었다는 것.
“당장 갖다 버려. 저게 깨어나면 북극 빙하가 다 녹기도 전에 인류 멸망이야.”
“말이야 쉽지. 그게 가능했으면 진작에 그랬어.”
화연의 충고에 이한성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파프니르의 알을 내려다 보았다. 그러자 그곳에는 고룡의 알을 무슨 제 소꿉놀이용 장난감 마냥 가지고 놀고 있는 수정이가 꺄르르 웃으며 한창 재미를 보고 있었다.
마지못해 키워도 된다고 한 이후로 매일같이 알에 딱 들러붙어서는 떨어지려고 들지를 않는다. 밥 먹을 때 식탁에 가져오는 것은 물론이요, 화장실을 갈 때나 밤에 잘 때도 꼬옥 안고 있을 정도로 수정이의 알에 대한 사랑은 중증이다.
“그리고 갖다 버린다고 해결 되는 것도 아니잖아. 파괴한다면 모를까, 괜히 버렸다가 아무도 모른 채 깨어나면 그게 더 큰일인데.”
“….그렇긴 한데, 아무리 그래도 집에서 키우는 건 좀 아니야.”
일리가 있는 이한성의 말에 화연은 어느정도 납득 하면서도 고개를 저었다. 파프니르라는 존재의 위험성을 아주 잘 알고 있는 그녀는 마음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저 알을 향해 마력을 쏟아부어 온갖 공격용 마법들을 날려서 존재 자체를 삭제시키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수정이가 저 알을 너무나도 마음에 들어하거니와 드래곤의 알이라는 것은 그리 쉽게 파괴되는 물건이 아니었다.
“애초에 저걸 대체 어디서 가지고 온거야??”
“어디서 가져오기는. 시스템이 히든 보상이랍시고 나한테 멋대로 던져놓은건데.”
“…..”
이한성이 괜히 무고한 자신에게 화내지 말라는 듯한 말투로 대답했다. 그러자 화연은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침묵했고, 이윽고 시스템의 창조자인 엘레인을 욕하기 시작했다.
“하여간에 그 영감탱이 진짜…. 왜 저런 걸 시스템에다가 넣을 생각을 해가지고는….”
비록 시스템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생존한 엘프였던 화연이었지만, 시스템의 존재에 대해서는 얼마 전에 이한성으로 부터 어느정도 들었기 때문에 그녀는 이한성과 더불어 육아 보조 시스템이라는 것의 존재를 알고 있는 이 세상의 유이한 존재다. 하지만 시스템과는 별개로 엘레인에 대한 말은 일절 하지 않았던 이한성은 꼭 엘레인이 누구인지 다 알고 있다는 듯한 그녀의 말투에 살짝 눈썹을 치켜세우며 물었다.
“영감탱이라니, 엘레인이랑 아는 사이였어?”
“당연하지. 내 친할아버지인데 어떻게 몰라.”
“???”
할아버지? 그 영감님이 화연의 할아버지였다고? 평생 결혼도 안하고 자식도 안봤던 현자 아니었어??
상상도 못한 엘레인의 정체를 알게 된 이한성의 표정이 극도의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화연이 그의 손녀였다는 사실에 놀란 것이 아니라, 일평생을 모태솔로로 살아온 것만 같은 이미지를 지녔던 그 영감님이 사실은 손녀딸까지 본 엘프였다는 사실에 놀란 것이었다.
“어렸을 때라 기억은 잘 안나지만 할아버지가 잠도 안자고 꼭두새벽까지 뭘 만들던 건 기억해. 설마 그게 시스템의 구축이랑 차원이동 마법의 연구였을줄은 몰랐지만.”
화연이 이한성의 놀란 기색을 뒤로 한 채 나지막히 말을 이었다.
그 당시의 화연은 아직 기초 원소마법 조차 익히지 못했던 어린아이였다. 그렇게 어렸던 그녀가 알 수 있었던 것이라고 해봐야 그 당시의 할아버지는 언제나 웃음기 하나 없이 늘 무언가에게 쫒기는 사람 처럼 다급해 보였었다는 것 뿐.
‘지금 생각해 보면…. 웃을 수가 없으셨던 거겠지. 일족에게 무슨 일이 닥쳐올지 이미 알고 계셨을테니까.’
불타는 숲, 사방에서 진동하는 피비린내, 하늘로 부터 떨어지는 잿가루, 벌써 600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그날의 기억만은 선명하게 간직하고 있는 화연은 잠시 쓴웃음을 지으며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무튼, 그래서. 저 알은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야?”
잠깐의 회상 끝에 화연은 다시 대화의 주제를 본론으로 돌리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 목소리로 이한성에게 물었다. 그러자 이한성은 잠시 고민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알이랑 잘만 놀고 있는 수정이를 바라보더니, 이내 한숨이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글쎄, 일단은 알이 태어날 때 까지는 지켜봐야겠지.”
“그럼 태어난 다음에는?”
“….교육을 잘 시키면 어떻게든 잘 되지 않을까.”
그 왜 맹수들도 갓 태어나자 마자 훈련시키면 순해지잖아. 드래곤이라고 해서 안될 건 없을 것 같은데.
이한성이 얼마 전에 인터넷에서 보았던 불곰과 동거하는 러시아 가족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자 화연은 너무 어이가 없던 나머지 웃으면서 그에게 대꾸했다.
“와…. 진짜, 내가 600년을 살았지만 드래곤을 교육시키겠다고 말한 건 네가 처음이야. 알고 있니?”
“내 창의력이 좀 뛰어난 편인지라.”
“…..”
“농담이야 농담.”
순식간에 싸늘하게 얼어붙으며 정색해버리는 화연의 표정에 이한성은 진정하라는 듯이 그녀를 말렸다. 그러자 이에 화연은 기운이 다 빠져버린 기색을 내비치며 한숨을 내쉬었고, 이내 마땅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한 채 두 손을 들어버렸다.
“휴우…. 뭐, 확실히 당장 어쩔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당분간은 그냥 지켜봐야겠네.”
결국에는 엘프인데다가 마법에 뛰어난 화연조차도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만큼이나, 드래곤이라는 존재는 엘프조차도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규격 외의 존재였다.
뭐, 역시나 그렇겠지.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야.
시스템의 설명에 따르면 이 알은 그냥 드래곤의 알도 아닌, 신들에게 토벌 당했다던 고룡 파프니르의 알이다. 즉,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하지만 시스템의 설명이 진실이라고 했을 때 정황상 파프니르는 신들이 직접 나서서 토벌을 강행해야 했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지닌 드래곤이었다는 뜻이 된다.
게다가 대륙 절반을 불태웠다던 화연의 말까지 더한다면 파프니르는 절대로 인간이나 엘프 같은 필멸자가 상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닐 것이다. 그 고룡이 남긴 혈육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고.
그러니 이렇게 태어나지 않은 알 상태의 드래곤 조차도 어떻게 마법으로 파괴하거나 없앨 수가 없는데, 겨우 평범한 인간에 불과한 이한성에게 주어진 선택지라고는 단 한가지 밖에 없다.
바로 이 세상을 멸망시켜버릴지도 모르는 드래곤을 제대로 키우는 것.
“x발 내가 무슨 포x몬 트레이너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닌 지구의 존망이 달리게 생긴 일이다. 순식간에 일개 평범한(?) 애 아빠에서 지구의 멸망을 막을 훈련사가 되게 생겨버린 이한성은 그저 한숨을 내쉬며 막중한 책임을 뒤로 한 채 복잡해서 돌아버릴 것만 같은 머리를 간신히 정리했다.
“….그래. 당장은 사업 준비에나 집중해야지.”
새해 날 이후부터 천천히 준비하고 있는 사업 문제. 당장 중요한 것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드래곤이 아니라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험해보는 사업 준비다.
할 일이 너무 없어서 견딜 수가 없던 결국 돈 많은 백수에서 사업하는 백수가 되기로 결정했지 않았던가. 최근 들어 건물 하나를 임대 혹은 매입하려고 이 부동산 저 부동산을 알아보며 꽤나 바쁜 나날들을 보내왔던 이한성은 그렇게 드래곤이니 뭐니 하는 문제를 잠시 접어둔 채 당장 준비하고 있던 사업 문제로 고민을 돌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퀘스트 보상 만으로도 충분히 먹고 살고도 남기 때문에 이한성으로써는 굳이 사업을 시작할 이유가 없다. 다만, 그럼에도 그가 사업을 시작하려는데에 있어서는 할 일이 없어서 불안한 것 외에도 이유가 따로 있었다.
‘솔직히…. 조용한 카페 하나 차려서 사장님 소리 좀 들어보는 게 꿈이기도 했었으니까.’
알바만 하면서 살았다 보니까 겪어본 알바생들만 알 법한 부조리를 느낄 때 마다 늘 생각하고는 했었다.
내가 사장이면 저렇게는 안했을텐데. 내가 사장이었다면 대꾸 한마디도 못하고 가만히 있지 않았을텐데, 하는 그런 현실성 없는 생각들. 그 어느 알바생들도 다들 한번 씩은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랬기에 이한성은 사업을 시작해서 가게를 하나 차려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차피 돈은 많으니까, 이왕이면 하고 싶었던 걸 해보자고.
‘인생 뭐 별거 있나.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젊을 때 미리 해봐야지. 나중에 괜히 다 늙어서 후회하지나 말고.’
이한성은 그런 생각과 함께 지난 며칠 간의 고민들을 돌이켜 보며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사업 시작하게??”
하지만 그렇게 미소짓던 이한성과는 달리, 그가 사업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조금도 알지 못했던 화연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그렇게 물었다.
“돈 많은 백수면서 왜 굳이 사서 고생을 하려고 해??”
지난 600년 동안 단 한번도 편안한 생활을 해본 적이 없는 화연으로써는 돈도 많으면서 갑자기 쓸데없이 사업을 시작하겠다는 이한성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건 분명 그녀 뿐만이 아닐 것이 분명했다.
“하루종일 일도 안하고 집에만 있다 보면 그것도 힘들어. 어차피 돈 벌려고 시작하는 사업도 아니고 그냥 취미 정도로만 할 생각이야.”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뻔히 드러나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화연의 모습에 이한성은 살짝 마음이 상한 말투로 그렇게 대꾸했다. 그러자 이에 화연은 밥맛 떨어진다는 표정과 함께 나지막히 한마디를 내뱉었다.
“배부른 소리 하네.”
“배가 부르니까 하는 소리 맞아.”
이한성이 아주 뻔뻔한 말투로 화연의 비꼼을 받아쳤다. 그러자 이에 화연은 진지하게 한대 칠까 말까 하는 고민을 잠시동안 하기 시작했지만, 이윽고 나이가 몇인데 그런 점잖지 못한 행동을 보일 수는 없다며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아무튼 그래서, 무슨 사업을 시작할 생각이야?”
“빙수 카페.”
화연의 물음에 이한성은 한치의 딜레이도 없이 대답을 내놓았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화연의 표정에는 영 못마땅한 기색이 가득했다.
“지금 한겨울인 건 알고 하는 소리지?”
“어.”
“….아, 그렇구나. 당장은 안열고 한 봄까지는 기다렸다가 열 생각이구나?”
한겨울에 당당하게 빙수 카페를 열겠다는 이한성의 발언에 분명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라고 생각했던 화연이었지만 이어지는 이한성의 대답은 그런 그녀의 생각을 갈기갈기 찢어놓아버렸다.
“아니. 2월달 안으로는 개점할 예정인데.”
“…..”
순간 화연의 눈빛이 세상 물정도 모르는 바보를 바라보는 듯한 눈빛으로 바뀌었다. 그녀는 딱히 그런 눈빛으로 이한성을 바라보았을 뿐, 다른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그런 그녀의 시선이 어지간히도 기분 나빴던 이한성은 다 생각이 있다는 듯이 설명했다.
“빙수 카페라고 해서 겨울 매출이 아예 못 벌어먹을 정도로 떨어지는 건 아니거든? 빙수가 메인이기는 하지만 일단은 카페니까 커피나 브런치를 먹으러 오는 손님들도 있을거고, 겨울에 빙수 먹으러 오는 사람들도 생각보다 많은 편이니까.”
편의점과 식당은 물론이고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빙수 카페에서 알바를 뛰었던 이한성에게는 경험을 바탕으로 습득한 지식이 있었다. 물론 그가 경영과를 나온 것도 아니고 그저 일개 파트 타임 알바생으로 뛰었던 것 뿐이기에 지식이 많지는 않았지만, 알바생만이 알 수 있는 지식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던 그는 가게를 차리는 것에 적지 않은 자신감이 있었다.
“….알았어, 그건 그렇다고 치자. 그럼 메뉴 같은 건 어떻게 할 생각이야?”
아무런 생각도 없는 줄만 알았는데 의외로 다 생각이 있어보이는 이한성의 설명에 화연은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또 한가지 걱정되는 점을 물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이한성은 전혀 걱정이 없는 듯한 목소리로 간단히 대답할 뿐이었다.
“시간은 많으니까 천천히 개발해야지 뭐. 일단 생각해 둔 건 몇개 있어.”
애초에 목적은 딱 쓰는 돈 만큼만 버는거다. 물론 장사가 잘된다면 좋지만 세상일이 그렇게 호락호락 할 리도 없거니와 장사 때문에 너무 피곤해지는 건 사양이기에.
그렇기에 이한성은 무슨 백 셰프가 극찬을 할 정도의 수준 높은 퀄리티를 지닌 빙수를 만들 필요가 없다. 딱 사람들에게 있어서 괜찮은 맛과, 괜찮은 가격만 지닌 수준이면 그걸로도 충분하다. 그리고 빙수카페에서 1년 반 동안이나 알바를 뛰면서 빙수만드는 법을 본의 아니게 몸에 익힌 이한성에게 있어서는 그정도의 자신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빙수 하면 가장 중요한 얼음 공급원이 바로 옆에 있으니까 말이야.’
순간 이한성이 음흉한 미소를 띄우며 그 어떠한 고민이나 번뇌도 없이 순수하게 웃으며 파프니르의 알을 가지고 놀고 있던 수정이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런 이한성의 음흉한 생각을 놓치지 않고 캐치한 화연은 설마설마 하는 생각과 함께 그에게 물었다.
“설마 빙수를 만드는데 쓸 얼음을…. 수정이의 얼음으로 쓸 생각은 아니지….?”
“빙고. 꽤 괜찮은 아이디어지 않아?”
“야!!”
화연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이한성을 째려보았다. 그러자 이에 화들짝 놀란 이한성은 뭐가 문제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눈치로 그녀에게 항의했다.
“왜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난리야?”
“당연히 지르지! 너 지금 장사하는데 애를 써먹겠다는 거잖아!”
“아니, 틀린 말은 아닌데 그렇게 말하면 안되지.”
누가 들으면 내가 아동 노동 착취범인 줄 오해할 거 아냐.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화연의 단어의 선택에 이한성은 그녀를 진정시키기 위해 차분하게 설명을 덧붙이기 시작했다.
“생각해봐. 수정이가 일주일에 거의 서너 번씩 마법훈련을 하면서 생기는 얼음의 양이 얼만인데. 거의 컨테이너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걸? 그걸 다 일일히 없애는 것 보다는 그냥 가게 장사하는데 쓰는 게 더 경제적이지 않아?”
수정이가 마당에서 잠깐 노는 사이에 생기는 얼음의 양만 해도 열댓 명 분의 빙수를 만들 수 있는 수준의 양이다. 게다가 당연하게도 그럴 때 마다 생기는 얼음을 치워야 하는 건 주로 화연의 몫이다. 그녀의 마법이 아니라면 달리 그 많은 양의 얼음을 치울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심지어 내가 한번 먹어봤는데, 맛있어. 달달하면서도 맛이 깔끔한게 거의 남극 눈으로 만든 빙수 저리 가라야.”
“….남극 빙수를 먹어 본 적은 있어?”
“없지. 근데 대충 느낌이 그렇다니까.”
“….”
먹어본 적도 없다면서 맛이 비슷하다고 말하는 이한성의 근거없는 의견에 화연은 그만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뭐, 나야 얼음 치우는 일이 줄어들면 편하기야 한데….”
수정이의 얼음이 무슨 남극 빙수 수준이라니 뭐라니 하는 이한성의 근거 없는 의견에는 조금도 솔깃해 하지 않았던 화연이었지만 확실히 그의 설명을 듣고보니 얼음을 일일히 치워야 하는 일이 없어진다는 메리트는 꽤나 솔깃한 편이었다.
“근데 왜 그렇게 고민을 해? 사업 시작하겠다는 건 난데.”
문득 생각해 보니까 좀 이상하다.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하는 건 자신이고, 화연은 동업자도 아닌 그저 친구 비슷한 관계일 뿐이다. 그런데도 마치 자신의 일인 마냥 당사자 보다도 더 심각하게 고민하는 화연의 모습에 이한성은 영 이해를 못하겠다는 목소리로 그렇게 그녀에게 물었다.
“…..”
이한성의 물음에 순간 화연은 고민하던 것을 멈춘 채 입을 딱 다물어버렸다. 그리고는 이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한성을 바라보았고, 곧 이어서 쌀쌀맞은 목소리와 함께 나지막히 입을 열었다.
“….그러게. 내가 왜 널 위해 이렇게 까지 고민하고 있는걸까?”
말투는 의문형이었지만 화연은 결코 그걸 몰라서 이한성에게 물어본 것이 아니었다. 딱 듣기만 해도 그녀의 물음이 반어법이라는 걸 단번에 눈치 챌 수 있었던 이한성은 그녀의 말 뒤에 숨겨진 속뜻을 어떻게든 이해하려고 했었지만, 애석하게도 남자인데다가 이성 경험이 전무한 그는 여자인 그녀의 속마음을 결코 이해 할 수가 없었다.
“….나 방금 뭐 잘못 말했나?”
결국 화연의 속마음을 깨닫는데 실패한 이한성은 그녀에게 다이렉트로 질문을 건냈다. 그러자 이에 화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잘못 말했어.”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구체적으로 전부 다. 생각해봐, 내가 왜 내 일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고민을 하겠니. 응?”
“어…. 오지랖이 넓-”
“아니야!”
대답하는 것 만도 못한 이한성의 대답에 화연은 날카로운 목소리로 그의 말을 중간에 잘라버렸다.
“휴우…. 오지랖이 넓어서가 아니라, 걱정되서 그러는거잖아. 네가 생판 남이었으면 그냥 네네 하고 고개 끄덕이고 대충 맞장구 쳐주고 말지, 왜 이렇게까지 고민을 하겠니??”
“아….”
그런거였어? 난 또 무슨 동업이라도 하고 싶은건가, 싶었지.
하도 고민을 깊게 하길래 설마 동업을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진지하게 의심을 해보았던 이한성이었지만 사실은 그런게 전혀 아니었다. 헛다리를 짚었어도 단단히 잘못 짚었다는 걸 깨달은 이한성은 살짝 무안해진 기분과 함께 미안하다는 듯이 화연을 바라보았다.
“진짜…. 꼭 이런 걸 말로 해야 알아듣는다니까….”
이한성의 시선을 느낀 화연은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빨개진 얼굴을 식혔다. 하지만 아무리 부채질을 해도 그녀의 얼굴은 쉽사리 식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 붉어질 뿐이었다.
타인에게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말한다는 것은 600년이나 산 엘프에게 있어서도 상당히 부끄러운 일이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