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96)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96화(96/245)
96
1월 중순의 날씨는 아직도 한파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영하의 기온을 유지하고 있었다. 크리스마스도 이미 지나갔고 새해도 지나갔지만 아직 한국의 겨울이 끝나기 까지는 여전히 한두 달 정도의 시간이 남아있었고, 아직 날이 풀리기에는 설날도 오지 않은 시기였다.
“어우 추워라… 좀 더 껴입고 나올 걸 그랬나…”
금방 나갔다가 돌아올 예정이였기에 얇은 외투 하나만 걸치고 편의점에 들렀다가 나온 이한성이 온몸을 떨며 후회스러운 혼잣말을 내뱉었다. 아무리 편의점이 코앞이라고는 하나, 추운 건 역시 추운거였다.
‘겨울은 점점 더 추워지고, 여름은 점점 더 더워지고… 이러다간 아예 봄이랑 가을은 없고 겨울이랑 여름만 남겠구만.’
날이 가면 갈 수록 중간은 없고 극과 극만 더해져가는 듯 느껴지는 날씨에 이한성은 그런 불평과 함께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방금 막 편의점에서 산 연유를 품에 안고는 집을 향해 달렸다.
집과 편의점까지의 거리는 고작 걸어서 5분거리. 달리면은 한 2분에서 3분 정도. 하지만 -13도의 추위 때문인지 그 짧은 거리는 이한성에게 있어서 건 12분 13분과도 같이 느껴졌다.
“다녀왔습니다.”
짧지만 길게 느껴지는 시간 동안 추위에 쫓기며 달린 끝에 집에 도착한 이한성은 거의 집에 쳐들어오듯이 급하게 들어오며 달리느라 살짝 가빠진 호흡을 가다듬었다.
“어디 갔다 왔어?”
“잠깐 연유가 떨어져서 사러 갔다왔어요.”
인기척을 들으시고 현관에 마중나오신 어머니의 물음에 이한성은 품에 안고 있던 연유 3병을 보여드리면서 신발을 벗었다. 이에 이한성의 어머니는 고작 얇은 외투 한벌에다가 츄리닝 바지 하나 걸치고 이 추운 날씨에 외출을 하고 돌아온 아들내미를 무모하다는 듯이 바라보시며 혀를 차셨다.
“쯧쯧… 날도 추운데 옷 좀 더 껴입고 갔다오지.”
“안그래도 그 생각 했어요. 다음부터는 그럴려고요.”
이한성이 바짓자락 끝에 묻은 눈을 현관 바닥에다가 털며 어머니의 잔소리에 수긍했다. 그리고 그는 살짝 젖은 느낌이 없잖아 느껴지는 양말을 신은 채 집 안에 다시 발을 들였고, 바로 부엌으로 향해 연유 부족 때문에 중단되었던 레시피 연구를 계속하려고 했다.
“좋아, 일단은 연유도 다시 사왔으니까 하던 걸 마저 해야지.”
밖에 꺼내놓아도 반나절은 거뜬히 녹지 않은 채 버티는 수정이의 얼음과 방금 막 편의점에서 갓 사온 유통기한이 2년 쯤 남은 연유, 거기에다가 단맛과 비주얼을 살리기 위한 각종 시럽과 토핑,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구상에서는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첨가물, 세계수의 이슬과 열매까지, 재료는 전부 다 준비-
“…뭐야. 어디갔어?”
식탁 위에 다 준비되어 있을 재료들을 하나씩 살펴보니, 뭐가 많이 없어진게 눈에 좀 보인다.
일단은 불과 편의점에 갔다오기 전만 했어도 한가득 남아 있었던 시럽의 양이 대략 2/3 정도 밖에 남아있지 않았고, 봉지 안에 가지런히 담겨져 있던 아이싱 슈거는 어째서인지 누가 건들이기라도 한 마냥 사방팔방 흩어져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열매가 없어졌잖아.”
다른 재료들은 좀 없어지거나 어질러져도 큰 문제가 없는 것들이었지만, 그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위험하다고 할 수도 있는 세계수의 열매가 흔적도 남지 않은 채 식탁 위에서 사라져있었다.
“엄마, 혹시 식탁 위에 있던 특이하게 생긴 과일 못보셨어요?”
혹시나 어머니가 치우신 건 아닐까, 의심하며 이한성이 어머니께 물었다.
“아니? 난 안건드렸는데. 수정이가 건든 거 아니야?”
“수, 수정이가요??”
큰일이다. 그거 수정이가 먹으면 안되는건데.
전설급 아이템인 [세계수의 열매]는 [세계수의 이슬]과는 차원이 다른 농도의 마력을 품고 있다. 아이템 설명창에서 조차도 희석해서 사용해야만 엘릭서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할 정도로 방대한 마력을 머금고 있는 세계수의 열매를 가뜩이나 마력폭주에 취약한 하프엘프인 수정이가 섭취했다가는 목숨이 위험해질 것이다.
‘야 이한성 이 정신나간 새끼야…! 깜빡할게 따로 있지, 그런 위험천만한 걸 집에 놔두고 외출을 하냐 이 대가리에 우동사리만 가득찬 새끼야?’
원래는 물에 희석해서 사용해볼 예정이었던 세계수의 열매를 수정이가 먹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한성은 무지했던 스스로에게 온갖 쌍욕을 퍼부으며 급하게 집 안 어딘가에서 놀고 있을 수정이를 목청이 터져라 부르기 시작했다.
“수정아!! 수정아!!! 너 어딨어?!!”
제발 제발 또 방 안을 냉동고로 만들어도 뭐라고 안할테니까 무사만 해라.
“아니, 무슨 큰일이라도 있니? 갑자기 왜 그래?”
상황이 어떤지 전혀 모르시는 이한성의 어머니는 갑자기 다짜고짜 수정이를 불러대는 아들의 모습을 보시고는 당황스러운 기색을 내비치셨다. 하지만 지금 어머니의 반응이 중요한게 아니였던 이한성은 설명을 뒤로한 채 방안 곳곳을 뒤져보며 수정이를 찾을 뿐이였다.
“수정아!!!”
마음이 어지간히도 급했던 이한성은 대답도 없고 1층에는 보이지도 않는 수정이의 모습에 더욱 초조해진 이한성은 곧장 2층을 수색하기 위해 계단을 오르려고 했다. 하지만 그러려던 순간, 갑자기 근처에서 들려온 익숙하고도 시원한 소리가 이한성을 멈춰세웠다.
[쏴아아아-]“….?”
화장실 변기 물 내리는 소리. 1층의 방은 죄다 뒤져보았지만 현관 바로 옆에 위치한 화장실은 미쳐 확인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자각한 이한성은 2층으로 올라가려다가 말고 조용히 화장실 앞으로 향했다.
[덜컥-]“으으… 아빠가 또 화낼거가튼데…”
아니나 다를까, 이한성이 화장실 앞에 서기 무섭게 화장실 문이 열리며 안에 들어가 있던 수정이가 나지막한 한숨과 함께 멀쩡하게 밖으로 나왔다.
“수정아!! 너 괜찮아?!”
“으아아?! 어?? 아, 아무일도 없었써!”
화장실에서 나오자 마자 아빠와 마주쳐버린 수정이는 당황하며 동문서답을 내놓았다. 무언가 또 사고를 쳐서 숨기려고 하는 티가 팍팍 묻어나고 있었지만, 수정이가 무사하다는 사실에 안도하던 이한성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어휴… 십년감수했네. 난 또 네가 열매 먹고 탈나서 쓰러진 줄 알았잖아…”
“열매??”
방금 전 까지만 했어도 말을 더듬으며 당황하던 수정이의 얼굴이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건지 전혀 모르겠다는 듯이 변했다. 그러자 이에 이한성은 모르면 그걸로 됐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멀쩡하면 됐지 뭐.”
열매를 먹은게 아니라면 열매가 사라졌든 어찌되었든 일단은 안심이다. 그렇게 이한성은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잠시 숨을 돌리려고 했다.
화장실 안쪽에서 무슨 이한상 소리가 들려오기 전까지는.
[덜컥-덜컥-]“?”
뭔가가 달그락 거리는 소리에 이한성은 반사적으로 화장실 안쪽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가 바라본 화장실의 안쪽에는 닫혀있는 변기커버가 지 혼자서 들썩거리고 있었다.
커버 틈새로 넘쳐 흐르고 있는 물과 함께.
“….”
“아, 아빠… 그, 그게 내가 일부러 그런게 아니라아…”
딱 봐도 변기가 막혀서 물이 넘쳐 흐르고 있는 숨기지 못할 정도로 커져버린 사태에 수정이는 바로 자백을 내놓았다. 하지만 그렇게 벌써부터 혼날 걱정을 하며 안절부절 못하는 수정이의 모습을 본 이한성은 그저 피식 웃으며 수정이의 머리를 조용히 쓰다듬었고, 화내는 것 대신 가벼운 딱밤으로 수정이를 진정시켰다.
“걱정 마. 변기 막힌 거 가지고는 화 안내.”
거 쓰다보면 막힐 수도 있는거지 뭐.
평상시였더라면 불평에 잔소리를 늘어놓았을 이한성이였지만 방금 전 까지만 했어도 수정이가 위험하다고 걱정을 하고 있었던 탓인지 그의 반응은 평소와는 달리 무척이나 관대했다.
“변기를 아빠가 뚫어 놓을테니까 다음부터는 그냥 조심해서 쓰면 되지.”
이한성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막혀버린 변기에 다가가 그 옆에 놓여져 있는 뚫어뻥을 손에 쥔 채 들썩이는 커버를 열었다.
그러자 열린 변기 커버 안쪽으로 물 내려가는 구멍이 완벽하게 얼어버린 광경이 곧바로 이한성의 눈가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이한성의 얼굴에 피어있던 부드러운 미소는 순식간에 가시고 말았다.
“….이수정.”
“ㅇ, 응?”
“이게 왜 얼어있을까…?”
“어, 어어… 배가 아파서 그만…”
“….왜 배가 아팠는데?”
“그, 그건…”
이한성의 압박질문에 수정이는 우물쭈물 거리며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결국 수정이는 사실대로 진실을 털어놓았다.
“아이스크림을 너무 마니 먹어서…”
“그래서 설사를 했다?”
[끄덕-]“…아빠가 아이스크림은 하루에 몇개라고 했었지?”
“하, 한개요…”
“그런데 수정이는 몇 개를 먹었을까?”
“하, 한 개…”
“….”
“하, 한 통이요…”
어쩐지 아까 아이스크림도 안보인다 했다.
얼음 타입인 주제에 배가 아플 때 까지 아이스크림을 몽땅 흡입했으니 이렇게 변기가 꽁꽁 얼어버릴 만도 하다. 그렇게 사용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버린 냉동 변기와 그 범인인 수정이를 번갈아 보던 이한성은 한숨을 내쉬며 올라오는 열을 가라앉힌 채 예전보다 향상된 성질머리로 수정이를 타일렀다.
“수정아. 아빠가 아이스크림을 하루에 하나만 먹으라고 하는 이유가 뭘까?”
“마니 먹으면 배가 아프니까…?”
“그래 맞아. 그리고 배가 아프면 어떻게 되지?”
“변기가 얼어버려…”
“그렇지. 그리고 그렇게 변기가 얼어버리면 그걸 뚫어야 하는 건 아빠나 할머니야. 그리고 얼어버린 변기를 뚫는 건 엄청 힘든 일이거든?”
“…마니 힘들어?”
“응. 많이 힘들어. 그리고 무엇보다도 화장실이 급한 다른 사람들이 변기를 못 쓰게 되니까 피해를 주게 되지.”
“그치만 일부러 그런게 아닌데…”
“그래, 일부러 그런게 아니라는 건 아빠도 알아. 그래도 그 일부러 그런게 아닌 일이 남들한테 피해를 줄 수도 있다는 건 알았으면 해서 이 말을 하는거야. 알았어?”
고압적으로 화를 내지 않고 말로 타이른다. 이한성의 성격과는 전혀 맞지 않는 방식이였지만 그가 한 아이의 아빠인 이상에는 성격과 맞지 않더라도 아이를 위해서 어울리지 않는 방식을 취해야만 할 때도 있는 법 이었다.
“응…아라써. 앞으로 아이스크림은 하루에 한 개만 머글래.”
“정말이지? 그러고서 또 몰래 한통 다 먹기 없기다?”
이한성이 확인차를 위해 수정이에게 물었다. 그러자 이에 수정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확실하게 약속했다는 듯이 새끼 손가락을 내밀었고, 이한성은 그런 수정이의 새끼 손가락을 걸며 손도장을 찍었다.
…말로 타이르니까 또 얌전히 알아듣네. 확실히 화만 내는 것 보다는 이게 더 효과가 좋은 것 같다.
무조건 혼을 내고 화를 내는 것 만이 잘못을 저지른 아이를 깨우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어렸을 때는 그렇게 말로 타일러주는 사람 없이 폭력으로만 잘못을 깨우쳐야 했던 이한성이었기에 여태껏 그걸 알지 못했던 그는 이제서야 어떻게 하면 아이의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잘 컸구나.”
딸아이를 타이르는 이한성의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고 계시던 어머니가 그 누구도 듣지 못할 작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하셨다. 자신이 아들에게 해주지 못했던 것을, 아들이 제 딸에게 해주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죄책감도 들고, 마음이 쓰라리면서도 대견했던 어머니는 그렇게 두 부녀를 뒤로 한 채 쓴웃음을 지으시며 조용히 자리를 비우셨다.
“아, 그런데 수정아.”
“응?”
자연스레 화장실 앞에서 수정이와 단 둘만 남게 된 이한성이 문득 잠깐 잊고 있었다는 듯이 수정이에게 말을 걸었다.
“그 용새끼… 가 아니라 용용이는 어디갔냐? 아까부터 안보이던데.”
아까 수정이를 찾느라고 1층을 뒤져보았을 때도 그렇고, 편의점에서 돌아온 이후로 수정이와 딱 달라붙어 다니던 용용이의 모습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
“계속 화장실에 있써서 모르게써.”
이한성의 물음에 수정이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근데 용용이는 왜?”
“아니, 그냥… 열매를 몰래 먹은게 걔 인가 싶어서.”
“열매?? 무슨 열매??”
“있어. 네가 먹으면 안되는 그런거.”
어머니가 건드리신 것도 아니고, 수정이가 건드린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이라고는 그 새끼용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식탁 위에 무방비하게 놓여져 있던 열매를 쏙 빼먹은 가능성 밖에는 남지 않는다.
‘다른 것도 아니고 세계수의 열매지만… 그래도 드래곤이니까 먹어도 별 문제는 없겠지…?’
담겨진 마력이 워낙에 방대한 탓에 사람에게나 하프엘프에게나 날 것 그대로는 유해한 식품이지만 태어나기 전의 알 상태로도 SS+라는 랭크의 마력을 지니고 있던 드래곤이라면 아마도 열매를 통째로 삼켰다고 해서 목숨에 지장이 간다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뭐니뭐니 해도 이세계 테라리움에서는 사탄 급의 명성과 신과 맞설 정도로 강력한 힘을 지녔다던 고룡 파프니르의 알에서 태어난 드래곤이니까…
정말로 세계수의 열매를 꿀꺽한게 그 새끼용이 맞다면 좀 아깝기는 하지만 그래도 인명피해가 나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이한성은 어찌되었든 간에 열매를 먹은게 수정이가 아니여서 천만 다행이였다고 다시 한번 진심으로 안도하며 잠시 중단되었던 빙수 연구를 계속하기 위해 다시 부엌으로 향했다.
[와장창!]하지만 그렇게 부엌으로 향한 그 순간, 위층에서 들려온 듯한 무언가가 깨져버린 듯한 소리가 천장을 타고 이한성의 귓가에 들려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