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97)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97화(97/245)
97
[와장창!]“…?”
저건 또 무슨 소리야.
유리창이 산산조각난 듯한 소리. 집안에서 결코 들려와서는 안될 소리가 2층으로 부터 들려오자 이한성은 반사적으로 발걸음을 멈춘 채 천장을 올려다 보았다.
유리창 비스무리한 것이 깨진 소리를 확실하게 들었던 이한성이었지만 그는 굳이 위층에 올라가 직접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확인하지 않아도 대충 또 골머리 때리는 일이 일어났다는 것 쯤은 확신할 수 있었기에.
…솔직히 확인하기 전 까지는 2층에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 아무일도 없을 수도 있고, 무슨 일이 있을 수도 있는 거니까 그냥 이대로 모른 척 하면 괜찮지 않을까?
짧은 시간 내에 일들이 너무 많이 터졌던지라 이 이상의 헤프닝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피곤한 상태였던 이한성은 그렇게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속으로 늘어놓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저 위에서 들려온 와장창 소리가 없었던 일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보나마나 뻔하지 뭐. 그 용새끼가 유리창 깨먹고 아주 그냥 난장판을 펼쳐놨겠지. 안봐도 비디오다 비디오.”
어머니도 수정이도 지금 모두 다 1층에 내려와있는 상태이니 용의자는 용용이 밖에 없다. 허구한 날 초등학생 명탐정에게 마취침이나 맞고 헤롱거리는 돌팔이 탐정도 짐작할 수 있는 걸 바로 알아낸 이한성은 벌써부터 난장판을 또 치워야 된다는 생각에 무거워진 발걸음으로 계단을 올라 2층으로 향했다.
“어디보자, 얼마나 개판을 만들어 놨…”
그리고 그렇게 2층에 도달했던 그 순간, 이한성은 메두사의 저주에 걸리기라도 한 마냥 그대로 돌처럼 얼어붙고 말았다.
왜냐하면 상상치도 못한 존재가 그의 눈에 똑똑히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뀨웅?”
그가 기억하는 것 보다 훨씬 거대해져 버린 환상종의 몸집이.
…저게 그건가? 코모도왕도마뱀 인가 뭔가하는 그거.
파충류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비늘과 세로동공을 지닌 눈. 거기에다가 거의 오토바이 한대 정도 되어보이는 크기에 익룡마냥 날개까지 지닌 생명체. 서양 쪽 판타지물에서 흔히들 나오는 드래곤의 모습 그 자체를 본 이한성은 불과 몇분 전 까지만 했어도 5살 짜리 아이인 수정이의 품에 염전히 안겨져 있던 새끼룡의 모습을 떠올리며 말없이 눈을 감았다.
…어우, 피곤해서 그런가… 헛 것이 다 보이네. 분명 내가 잘못 본 거일거야. 그렇고 말고. 쟤가 무슨 디x몬도 아니고 갑자기 저렇게 훌쩍 거대해질리가 없잖아.
갓난아기가 하루아침에 5살이 되는 건 본 적이 있어도 새끼룡이 하루아침에 오토바이 만큼 커지는 것은 여태 살면서 본 적이 없다. 그랬기에 이한성은 자신이 본 것을 부정하며 약 10초간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뭐야, 어디갔어?”
눈을 다시 떠봤지만 방금 전 까지만 해도 눈앞에 있었던 거대한 코모도왕도마뱀의 먼 친척은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 거대한 몸집을 지녔던 파충류는 안보이고 그저 베란다로 향하는 유리문 만이 처참하게 산산조각 나있는 광경을 본 이한성은 어리둥절하며 눈을 깜빡였다.
‘….내가 진짜로 헛것을 본건가?’
그냥 희망상 부정해 본 것 뿐이지, 사실 자신이 보았던게 헛것이 아니라는 사실 쯤은 이한성 또한 아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고작 10초 동안 눈을 감고 있던 사이 만에 코모도왕도마뱀 뺨치는 덩치를 지닌 드래곤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는 것은 헛것을 본 것이 아니고서야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소리였다.
혹은, 그 드래곤이 순식간에 작아지기라도 하지 않은 이상에야 말이다.
“뿌뿌빠?”
“??”
순간 이한성의 발 밑에서 영문모를 외계어가 들려왔다. 이에 이한성은 천천히 고개를 내리며 발밑을 바라보았다.
“…와, 내 인생 레전드다 진짜.”
이한성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터뜨리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날이 가면 갈 수록 익숙해지기는 커녕 나날히 기록을 갱신하는 비현실적인 경험을 다시 한번 마주하게 된 그는 자신의 발밑에서 손가락을 빨며 앉아있던 검은머리의 3살 쯤 되어보이는 옷자락 하자 걸치지 않은 아이를 바라보며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아니지 아니야, 오히려 좋은 거일 수도 있잖아.”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따지고 보면 수면마법도 안먹히고 말도 안통해서 밤마다 잠을 통 못자서 죽을 지경이였는데 갑자기 똥오줌 다 가릴 나이로 큰거니까 잘된거잖아.
이한성은 그렇게 코모도왕도마뱀의 친척에서 순식간에 머리에 작은 뿔과 등에 달린 작은 날개를 지닌 3살짜리 어린애가 되어버린 새끼용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타일렀다.
“아빠, 무슨 일 있써?”
2층에 올라간지 꽤 됐는데도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는 아빠를 직접 따라온 수정이가 계단의 중턱에서 멈춰선 채 이한성에게 말을 걸었다.
“…어 있어.”
“?”
상당히 심각해 보이는 아빠의 대답에 수정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계단을 끝까지 올라왔다.
“뿌뀨뀨?”
“우와아아!! 아빠아빠! 저거 용용이지??”
계단을 끝까지 올라와 2층 바닥에 앉아있던 반쯤 폴리모프에 성공한 새끼용의 모습을 보기 무섭게 수정이가 아주 기쁜 목소리로 외치며 검은머리의 아이를 향해 돌진했다.
그러나 검은머리의 아이는 그대로 가뿐하게 옆으로 구르며 돌진하던 수정이를 완벽하게 회피해버렸다.
“앗.”
[콰당!]폴리모프화 한 새끼용이 옆으로 피해버리자 수정이는 그대로 2층 바닥에 깔려있는 카펫 위에 다이빙을 하고 말았다. 바닥과 부딪친 소리로 봐서 꽤나 아프게 들렸었지만, 수정이는 이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벌떡 일어나며 다시 한번 아이를 향해 몸을 던졌다.
[휙-]하지만 이번에도, 검은머리의 아이는 수정이를 완벽하게 회피하며 바닥을 뒹굴었다.
“우으으으… 아빠! 용용이가 자꾸만 나 피해!”
“그야 니가 자꾸만 다짜고짜 달려드니까 그렇겠지.”
무척이나 속상해 보이는 수정이의 항의에 이한성은 당연한 걸 뭐하러 물어보냐는 듯이 그렇게 대답하며 바닥에 앉아있던 검은머리의 아이를 안아들었다.
“치이이… 그치만 나두 동생을 아나보고 싶단 말이야!”
“안아보고 싶으면 달려들지 말고 천천히 조심스럽게 다가가던가.”
뭐든지 마음이 앞선다고 해서 되는게 아니다. 이한성은 그렇게 속으로 말을 덧붙이며 2층의 화장실로 향해 그곳에 있던 타올을 급한대로 발가벗고 있는 상태인 아이에게 둘렀다.
“…그나저나 여자애일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용모습일 때는 철썩같이 남자애겠구나, 싶었는데 막상 확인해보니까 여자아이다. 타올을 몸에 둘러주기 전에 그 사실을 얼핏 확인한 이한성은 남아이든 여아이든간에 일단 고생길 2배는 확정이라고 속으로 한탄을 늘어놓으며 아이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살짝 복슬거리는 느낌이 나는 수정이의 은발과는 정반대인 직선으로 뻗어있는 흑발. 눈동자는 꼭 천체망원경으로 우주를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들고 일단은 드래곤이라 그런지 용모습일 때와 똑같이 세로동공이다.
“압빠?”
“….”
…얘 지금 나보고 아빠라고 한거야?
흑발의 아이가 혀가 짧은 목소리로 아빠 비슷한 말을 꺼내자 이한성은 순간 무의식적으로 흠칫하며 속이 간질거리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런 기분, 오랜만인데.”
벌써 오래 전의 일인 것 처럼 느껴지지만 예전에 수정이가 처음으로 자신을 아빠라고 불렀을 때도 비슷한 기분이…들지는 않았다. 그때는 워낙에 갑자기 애가 폭풍성장을 이뤄내서 정신이 없었던터라.
하지만 확실히 수정이가 아닌 다른 아이에게 아빠라고 불리니까 예전에 혼자서 수정이를 떠맡게 되었던 낡은 원룸에서의 나날들이 어째서인지 새록새록 떠오른다.
“이름을… 지어줘야겠지.”
지금까지야 용새끼라던가 용용이라던가 하는 촌스럽고 과격한 이름으로 불러왔지만 이렇게 반쯤 폴리모프까지 하며 아이의 모습으로 변한 이상 언제까지고 그런 이름으로 부를 수도 없는 법이다.
“수정아. 니 동생 이름은 뭐가 좋을까?”
자신의 작명센스가 정말로 별 볼일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았던 이한성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영희나 용순이 같은 이름밖에 떠오르지 않는 스스로의 의견을 일절 기각하며 수정이의 의견을 구했다.
“? 용용이는 용용이자나.”
“아니;; 태명도 아니고 얘가 이렇게 까지 컸는데 용용이라고 부르기는 좀 그렇지. 좀 더 제대로 된 이름이 필요할 거 아니야.”
“음… 그러며언…”
수정이가 가만히 팔짱을 낀 채로 천재적인 두뇌를 풀가동시키기 시작했다.
“빙수!”
“아니 그건 니가 먹고싶은 거겠지. 이름을 생각해 보라고 이름을.”
동생 이름이 이빙수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니? 빙수가 뭐야 빙수가. 애한테 원한이 있지 않고서야 그딴 이름을…
“…아니지 잠깐만. 나 괜찮은 거 생각났다.”
빙수 하니까 순간 어떤 삘이 이한성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빙수 하면 떠오르는게 눈이니까… 이름에 설(雪)자가 들어가면 괜찮을 것 같은데.”
이설이? 아니다. 거꾸로 읽어도 이설이가 되어버리니까 어감이 좀 이상하다.
“그러면… 이서리?”
이것도 좀 아닌 것 같다. 서리야 서리야 하고 불러야 하는데, 뭔가 입에 착 감기는 느낌은 아니다.
삘은 왔는데 끝부분에서 뭔가가 막힌 듯한 기분. 앞으로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괜찮은 이름이 떠오를 것만 같았던 이한성은 계속해서 스스로의 촌스러운 작명센스 회로를 불태웠다.
“설이, 서리, 소리, 쏘리, 설리, 셜리…”
머리를 쥐어짜면 쥐어 짤 수록 어째서인지 점점 더 동양권이 아니라 서양권의 느낌이 물씬 풍겨나는 이름이 되어갔다.
그렇게 서서히 원본이라고 할 수 있는 설이에서 멀어져가던 그 순간, 이한성의 혼잣말을 듣고 있던 수정이가 아무 생각이 없어보이는 듯한 해맑은 표정과 말투로 입을 열었다.
“세리?”
“세리… 이세리…”
어? 괜찮은데??
너무 서양같지도, 그렇다고 동양스럽지도 않게 들리는 이름. 그러면서도 입에 착착 감기는 듯한 느낌이 드는 이름이다.
“그래 이세리. 그거 괜찮네.”
“이세리??”
“어. 어때? 너도 네 동생 이름으로 썩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지?”
“음… 세리… 세리…”
이한성의 물음에 수정이는 눈을 감은 채 곰곰히 세리라는 이름을 반복하며 입에 담아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에메랄드 색 눈을 번쩍 뜨며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괜차나!”
이한성의 딸이자 이수정의 여동생 이세리. 꼭 여자이름 하면 영희부터 떠올리는 이한성과 동생 이름으로 빙수를 꺼내는 수정이가 같이 고민해서 작명한 이름 치고는 매우 훌륭한 이름이었다.
“네 이름은 오늘부터 이세리 야. 알았어?”
“?”
이한성이 안아들고 있던 흑발의 여자아이, 세리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원래 말이 없는 성격인건지, 아니면 아직 말을 할 줄 모르는건지, 세리는 그저 얼굴만 갸웃거릴 뿐, 그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상하네… 수정이 쟤는 하루아침만에 5살이 되자마자 말을 안가르쳤는데도 아주 유창하게 할 말을 다 했었는데…’
한국말을 가르친 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5살이 되자마자 햄버거니 뭐니 하는 외래어까지 포함해서 왠만한 대부분의 단어를 말할 수 있었던 수정이와는 달리 세리는 방금 전 이한성을 압빠라고 불렀던 것을 제외하면 그 어떠한 단어다운 단어도 내뱉지 않고 있다.
“스킬로 성장한게 아니라서 그런건가…?”
[성장의 축복] 스킬과 [세계수의 이슬] 아이템의 효과가 겹치는 바람에 하루아침만에 생후 2, 3개월에서 5살로 성장해버렸던 수정이와는 다르게 세리는 그 어떠한 스킬의 효과를 받지 못했음에도 이렇게 단 몇분만에 훌쩍 성장해버렸다. 분명 둘의 성장에는 갑작스러웠다는 공통점이 있었지만 원인이 다른 이상, 언어능력의 유무에 차이가 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봐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아무래도 원인이 대충 뭐 때문인지 알 것 같기는 한데.’
짐작가는 것은 있다. [성장의 축복]을 비롯한 모든 스킬들이 통하지 않았던 세리가 이렇게 단숨에 성장해버린 원인이 될 만한 물건을 이한성은 이미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세계수의 열매.”
마력을 일절 지니지 못한 인간조차 마력폭주에 빠뜨리고도 남는다는 전설템, [세계수의 열매]. 비슷한 물건인 [세계수의 이슬] 조차도 적은 양만으로 앵간한 병이나 상처들은 깔끔하게 치유할 수 있다는 사실로 보았을 때, [세계수의 열매]가 지닌 능력은 그것보다 상상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대단할 것이다.
드래곤을 이렇게 단시간만에 훌쩍 성장시키고도 남을 정도로 말이다.
‘얘가 날 아빠라고 인식해서 천만다행이지. 아까 그 코모도왕도마뱀 뺨치는 모습으로 날 아빠라고 인식하지 못했더라면…’
…상상하지 말자.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상상해봤자 뭐 도움이 된다고 상상을 하겠는가. 지금은 이렇게 귀엽고 얌전한 모습으로 있는데, 그거면 됐지.
이한성은 그렇게 쓸데없는 상상을 머릿속에서 지우며 자신의 양 팔에 얌전히 안겨있는 세리를 바라보았다.
처참하게 깨져버린 유리문 사이로 세차게 들어오는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