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rince Makes Friends RAW novel - Chapter (324)
왕자가 친구를 사귀는 방법-324화(324/324)
뜨겁다. 차갑다. 뜨겁나……?
청년은 의아해졌다. 제 정신까지 집어삼킬 듯, 전신을 휘감아 오던 작열감이 일순 사라진 탓이다.
그러나 의아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고통이 사라진 이유가 제 통각이 전부 불살라진 탓인지, 이미 죽어버린 탓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아프지 않다는 게 중요한 거였다. 아픈 건 질색이니까.
‘…났다!’
‘……?’
그러나 흐릿하게 들려오는 소란에, 청년은 다시금 의아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건 영혼의 울음소리 같은 건가, 그런 엉뚱한 생각이 들 즈음, 이번엔 조금 더 뚜렷한 음성이 들려왔다.
‘진짜 마녀야!’
‘……!?’
청년은 반사적으로 눈을 떴다. 아니, 떴다고 생각했지만, 감각이 모호해 알 수 없었다.
앞은 보이지 않았다. 오직 어둠뿐이었다.
청년은 생각했다. 어쩌면 뜨거운 열기에 각막이 손상되어 버린 걸지도 모르겠다고. 아니면 눈꺼풀이 녹아 눌어붙어 버렸다거나.
청년은 조금 불안해졌다. 어쩐지 주위가 소란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에 빠진 듯 귀가 먹먹해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리안.’
다른 사람의 외침보다 더 고요할 것이 분명한 마녀의 음성은, 기이하게도 마치 신의 계시처럼 그 어떤 것보다 또렷하게 들렸다.
왜 왔어. 여긴 위험한데. 얼른 도망가. 청년은 그리 말하려다가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나 사실 네가 마녀라고 생각해서 접근한 거야.’
‘…….’
‘나, 쫓기고 있었거든. 마녀의 자식이라고 해서…….’
‘…….’
‘널 팔아넘기면 내가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
‘…….’
‘그러니까…….’
죄책감 갖지 마, 그리 말하려는데 짭조름한 맛이 느껴졌다. 청년은 이런 와중에도 제 미각이 살아있다는 게 무척 놀라웠다.
마녀도 우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도 자신이 그에게 특별한 사람이었다는 게 이리도 기꺼울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와의 이별을 이렇게 눅눅하게 맞이하고 싶진 않았기에, 청년은 다시금 힘겹게 입을 열었다.
‘레키, 내가 앞이 안 보여서 그러는데…, 이거 콧물 같은 거 아니지?’
‘…….’
‘농담이야. 나중에 디아 놀릴 때 써먹어.’
‘…….’
마녀는 답하지 않았다. 어쩌면 제 농담이 너무 썰렁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아버지!’
그때, 고슴도치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쩌다 녀석까지 이곳으로 돌아오게 된 걸까.
청년은 가슴이 쓰려왔다. 이번 일로 너는 더 뾰족해지겠구나. 타인에게 상처받고 더욱 움츠러들겠구나.
‘…리안이야?’
녀석의 잘잘 떨리는 물음이 들려왔다. 그저 잔잔한 마녀와의 목소리와는 다른, 무척 인간적인 목소리였다.
‘이게 대체 무슨 짓이야!’
이어서 들려오는 분노와 슬픔에 가득 찬 외침. 주위에 사람이 더 있긴 했던 모양이었지만, 대꾸는 없었다.
‘똑같은 사람이잖아! 왜 이런 건데!’
‘디아.’
청년은 점점 흐려지는 정신을 겨우 붙잡아 소년을 불렀다. 제 존재가 소년에게 끔찍한 기억으로 남는 건 싫었다.
‘디아, 그놈들 말고 나랑 놀아줘.’
‘노, 놀긴 뭘 놀아! 너, 네 꼴이 지금 어떤지는 알아? 대체 왜…! …아니, 대답하지 마. 아버지가 다 고쳐주실 거야.’
‘…….’
‘나, 나도 죽을 뻔했는데, 아버지가…….’
‘있지, 디아.’
청년은 소년의 말을 끊었다. 제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직감했으니까.
‘난 너희를 만나기 전에 조금 외로웠던 것 같아.’
‘…….’
‘마녀라면 마녀의 자식인 나도 받아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걸까.’
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거짓된 세상에서 진실을 나눌 제 편이 단 한 명만 있어도 어찌저찌 버틸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디아, 약속해.’
‘…….’
‘너만은 레키를 부정하지 않겠다고.’
그렇다면 마녀는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이곳이 설령 그를 위한 세상이 아니라 하더라도.
‘당연한 사실을 충고하듯이 말하지 마.’
툭 쏘아지는 대꾸에 청년은 실없이 웃었다.
‘나랑 친구 해줘서 고마워.’
청년은 그리 말하며 생각했다. 이제 누가 네 친구냐며 따지려나.
‘…….’
그러나 기대와는 다르게, 대답은 한참 동안이나 들려오지 않았다.
질려서 가버렸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마워…, 형.’
‘……!’
‘먼저…, 다가와 줘서.’
‘응!’
청년은 활짝 웃었다. 어머니께 말씀드리고 싶다. 적어도 내 죽음은 하나도 외롭지 않았다고, 심지어 꽤 낭만적이었노라고.
‘다음 생이 있다면…, 그렇게 또 만난다면…….’
‘…….’
‘그때도 내가 먼저 다가갈게.’
어쩐지 먼저 말 걸어 줄 것 같지도 않고.
‘그러니 날 알아보더라도 먼저 말을 걸어야 할 것 같은 부담 같은 건 가지지 않아도 돼.’
‘…말…, 안 걸 거야.’
‘그리고 말이야, 이왕이면 다음엔 조금 더…….’
북적북적한 게 좋겠어.
* * *
잘칵.
“…! 대, 대공.”
저를 안 놔주려는 작은 렉스들을 겨우 뿌리치고 돌아오자, 지친 기색이 역력한 늑대 새끼가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것도 이곳에 있어선 안 되는 놈과 함께.
“아, 아기님…, 아니, 대공…, 안녕하십니까……?”
“…….”
“죄, 죄송합니다. 제가 뭔가 캐보려고 여길 온 게 아니고 제 비밀 친구가 어디서 휴가를 보내나 궁금해서 실피한테 에반을 찾도록 부탁했는데…….”
“…….”
“제 비밀 친구가 위험에 처했다지 뭡니까? 그래서 급히 달려왔는데…, 아무래도 실피가 깜빡 잠든 에반을 보고 오해했나 봅니다. 제가 아직 실피와 의사소통하는 게 서툴러서…….”
“…….”
디오스는 안절부절못하며 변명해대는 반쪽짜리 정령사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늑대 새끼에게로 눈을 돌렸다.
“…죄송합니다.”
에반은 면목이 없어 고개를 푹 숙였다. 설마 자신이 깜빡 잠들 줄은 몰랐다. 카루스가 와서 망정이었지, 그 사이에 살쾡이 녀석에게 해코지할 만한 다른 녀석이 왔다면 정말 큰 일 날 뻔했다.
“잠든 게 아니다.”
“…예?”
“무리해서 쓰러진 거지.”
디오스는 에반을 살피곤 혀를 쯧 찼다. 마나를 뺏기지 않기 위해 종일 신경을 곤두세웠을 테니 정신적으로 무척 피로했을 거다.
“미련한 놈.”
그깟 눈물이 뭐라고 그리도 열심히 닦은 건지. 디오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카루스에게 제 나름의 고마움을 표했다.
“네놈이 안 왔다면 시체 하나 치웠을지도 모르겠군.”
사람이 의식을 잃으면 당연히 마나 통제도 느슨해진다. 정말로 시체를 치웠을 일은 없었겠지만, 젊은 후작이 오지 않았더라면 늑대 새끼의 마나 하트가 부서지는 일이 발생했을지도 모른다.
“둘 다 이리 와라. 기억을 깔끔히 도려내 주지.”
“예?!”
카루스가 기겁하든가 말든가, 디오스는 손끝에 마력을 모았다. 아무래도 이 이상 늑대 새끼에게 아버지를 맡기는 건 무리가 있을 것 같다. 심지어 마나 그릇이 작은 젊은 후작은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벌써 마나가 텅텅 비어있었다.
“부작용은 없을 테니 걱정 마라.”
이전에 늑대 새끼에겐 서툴다고 했으나, 사실 자신이 제일 자신 있는 마법은 다름 아닌 정신 조작계 마법이었다. 애초에 자신이 마법을 배우기로 결심한 이유기도 했으니 서투를 수가 없었다.
물론 아버지께서 아시면 좋아하지 않으실 거다. 저를 만나기 전까지 계속 기억을 뺏겨온 탓인지, 유독 정신계 마법에 예민하게 구셨으니까.
그런 아버지를 위해 자신도 나름 사용을 자제하긴 했으나, 그럼에도 정신 조작계 마법을 쓸 일은 늘어만 갔고, 원치 않게 숙련도 또한 높아졌다.
‘그러고 보니 전에 마녀로 몰리는 정령사 녀석도 보호한 적이 있던 거 같은데…….’
디오스는 카루스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혹시 이놈도…, 하는 생각이 꾸역꾸역 머리를 들이밀었다.
아버지는 ‘그 녀석’이 죽은 뒤로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직접적으로 이유를 말씀하시진 않으셨지만, 아마 마녀로 몰리는 게 목적이었을 것이다.
…당신께서 마녀로 몰리면, 다른 마녀들은 안전했으니까.
“…! 자자자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대공!”
그때, 젊은 후작이 기겁하며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제 기억을 지우시는 건 잠시만 미뤄주십시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뭐냐.”
“그러니까…….”
젊은 후작은 눈을 데굴데굴 굴리더니 침대를 힐끔거렸다. 디오스의 시선도 저절로 침대로 옮겨졌다. 눈물자국이 그대로 남은 창백한 얼굴이 보였다.
“…친우님께서 악몽을 꾸시는 것 같아서…….”
“그게 네놈과 무슨 상관이지.”
“가, 강제로 깨우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못 깨우는 거다.”
“…예?”
“아버지께서는 한 번 깊이 잠드시면 외부의 간섭을 잘 인지하지 못하신다. 자각몽을 꾸는 경우도 극히 드물지. 그러니 깨어나는 게 늦으시는 거다.”
“아…….”
카루스는 동공을 잘게 떨었다. 그러고 보니 이전부터 친우님은 한 번 잠들면 아무리 흔들어도 깨어나지 않으셨다.
“…그럼 그…, 마법 같은 걸로 꿈속에 들어가서 꿈이라는 것을 알려드리는 건 어떻습니까?”
“아버지께는 마법이 걸리지 않는다. 더군다나 너무 긴밀히 접촉하면…….”
디오스는 설명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잠든 아버지는 동화하는 능력을 조절하지 못하신다. 마족인 자신이 굳이 가까이 접촉하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혹시 마법이 아니라면…, 괜찮습니까?”
“무슨 소리지?”
“제 가문의 기사 중 고양이 수인족이 있습니다만…….”
“…아버지한테 고양이 귀를 만들었다던 그 수인족 말인가.”
“그극, 그걸 어떻게……!”
카루스는 깜짝 놀라 제 비밀 친구를 돌아보았다. 어색하게 웃는 것을 보아하니 범인이 분명했다.
디오스는 그런 카루스를 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서 그 수인족이 어쨌다는 거지.”
“그럼, 고양이 수인족의 고유 능력에 대해 아십니까?”
“안다. 그 고유 능력 때문에 고양이 수인족이 마녀의 사역마로 자주 몰렸…….”
디오스는 말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옛일을 떠올렸더니 자꾸 이상하게 엮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
“벨라가…, 아, 고양이 수인족 기사를 말하는 겁니다. 아무튼 벨라가 능력을 제대로 각성…, 한 건지, 본인의 능력을 이제야 제대로 깨우친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
“얼마 전부터 카라의 꿈에 벨라가 나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꿈에?”
“예. 그런데 벨라에게 따로 물어보니 자신도 카라와 같은 꿈을 꿨다고 하더군요. 저는 이게…, 벨라의 진짜 능력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습니다.”
“각성 전에 능력이 뭐였지?”
“자신과 접촉한 사람에게 수면향을 퍼트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강력하진 않았고…, 어린아이들에게만 조금 유효한 수준이었습니다.”
“…관련이 없진 않군.”
“그렇지요? 물론 꿈으로 침입…, 하는 능력이 쓸모 있는 능력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 말에 디오스는 비죽 입꼬리를 올렸다.
“뭘 모르는군. 꿈은 생각보다 강한 힘을 가진다. 누군가를 세뇌하기에 딱 좋은 능력이라 할 수 있지.”
“세, 세뇌라뇨! 우리 벨라가 좀 철딱서니 없긴 하지만 그렇게 나쁜 애는 아닙니다.”
“데려와라.”
“…! 정말이십니까?”
“그래. 한 번 확인해 봐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