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1)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1화(1/30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 001화
1화. 이런 거지 같은 일이!
자신의 얼굴을 때리는 업무용 종이들을 보며 남자는 갑자기 모든 게 허무하다고 느꼈다.
‘……이틀 밤을 지새우고 완성했는데.’
이런 일이 한두 번도 아니었기에 어쩌면 질렸다는 표현이 더 잘 맞을지도 몰랐다.
수없이 참았지만, 이제 참는 것조차 놔버렸다.
4시간이면 많이 잔 게 아니냐며 돌리고 있던 행복 회로도 타버렸고.
집값이 비싸 매일 출퇴근으로 왕복 4시간을 날려버리는 것 역시 이제는 아까웠다.
그 시간이라면 동물 친구들의 영상을 하나라도 더 구독할 텐데.
“…째려보면 어쩔 건데?”
이 부장이 그 종이를 밟으며 비웃었다.
“그러니까요. 뭘 하겠습니까?”
남자는 더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습관처럼 나오는 그 말 역시 내뱉지 않았다.
“야. 너 미쳤어? 지금 말대답이야?”
“대꾸한 건데요? 갱년기 왔습니까?”
“야! 서은호!”
이 부장의 목에 핏대가 섰다.
그 모습에 은호의 입꼬리가 처음으로 움직였다.
은호와 이 부장의 모습에 눈 밑이 컴컴하던 직원들이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제나 시체처럼 조용히, 빨리 일 처리 잘하던 서은호가.
부장의 말이 법인 것처럼 여겼던 그가 변하자 사람들은 경악하기 바빴다.
“너, 잘리고 싶어?”
이 부장이 은호라면 절대로 넘어갈 수 없는 그 말을 꺼냈다.
―여기보다 대우가 좋은 곳이 있는지 봐라.
―여기보다 월급 많이 주는 곳이 있나 봐라.
―나만큼 잘해주는 사람이 있나 봐라.
지난 몇 년간 은호에게 쉴 새 없이 세뇌처럼 깔아뒀던 그 말을 알기에 이 부장은 이미 승리자처럼 굴었다.
하지만 은호의 마음은 놀랍게도 어떤 흔들림이 없었다.
그깟 월급 얼마나 준다고 빌빌 기겠는가.
“말은 똑바로 하셔야죠. 3개월 전부터 말했잖아요. 우리 부장님은 왜 내가 한 말은 자주 까먹으실까?”
은호는 사회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억눌렀던 성격마저 다 내려놓았다.
“할 줄 아는 말이 그것밖에 없으시면 안 되는데요.”
이렇게 될 줄 알고, 꼬투리 잡힐 것들은 하나도 주지 않았다.
오히려 법으로 하면 걸릴 짓을 한 건 이 회사였다.
거지 같은 회사.
개 같은 회사.
애초에 이따위 블랙 기업에 들어온 게 잘못된 거였다.
참으면, 버티면 반드시 뭐가 돌아올 거라 생각했는데, 돌아오긴 개뿔.
“우리 부장님, 이제 큰일 났어요. 비품 관리도 내가 했고, 직원 관리도 내가 했고, 고객 만나서 응대하는 것도, 영업까지. 와……. 문서 작업에 홍보마저 맡았네요?”
“너 지금 유세 부리는 거야?”
“그럴 리가요. 왜 가끔 보면 그런 말 있잖습니까. 내가 없으면 회사가 돌아가지 않는다는 거요. 이게 사실일 줄이야.”
은호는 자화자찬하듯 손뼉을 마주쳤다.
짝짝짝.
“우리 부장님. 할 줄 아는 거라고는 술 먹는 것밖에 없는 애주가인 부장님.”
“무,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 부장은 놀라며 팔뚝 부분에 냄새를 맡았다.
“지금 서랍에 술병 있는 거 압니다.”
은호가 던진 말에 이 부장은 허겁지겁 본인의 자리로 뛰어갔고, 은호는 서류를 직접 주웠다.
이 종이 하나당 피와 땀이 들어갔지만, 뭐 어쩌겠는가.
“농담입니다, 부장님.”
서류들을 들고 은호는 파쇄기 앞에 걸어갔다.
“이 새끼가 진짜 장난해? 너 미쳤냐고?”
“부장님. 피와 눈물이 담긴 서류지만, 한 번쯤은 파쇄기에 넣고 돌리고 싶었거든요?”
“야, 야……!”
이 부장이 뒤늦게 다가오자 은호는 그를 비웃으며 미련도 없이 직접 파쇄기에 넣어버렸다.
“와우. 이거 생각보다 즐겁네요.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할 걸 그랬습니다. 우리 부장님이 오늘 사장님한테 전달할 서류니까요. 고생하세요.”
은호는 이 부장을 밀치고는 밖으로 나갔다.
“야! 야!”
이 부장이 따라왔지만, 은호는 거리낌 없이 사장실 문을 열었다.
회사에서 쇼핑이나 하는 그 꼴에 은호는 질렸다.
“두 번 말 안 합니다. 퇴직금 확실히 주시고요. 밀렸던 월급도 주십시오. 고용노동부에만 신고할 거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은호는 얼어붙은 사장의 표정을 위아래로 흘겨보더니 손가락으로 화면을 가리켰다.
장바구니에 담은 옷이 보였다.
“쇼핑하러 회사에 왔습니까? 그러니 회사가 이 꼴이죠.”
그대로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가방을 메고, 대충 챙겼다.
어차피 회사에 미련도 없었다.
하지만 확실히 해야지.
본체의 선을 하나씩 뺀 뒤에 이를 품에 안자 눈치만 보고 있던 직원이 기겁했다.
이내 그를 쫓아왔던 이 부장 역시 목소리를 높였다.
“지, 지금 뭐 하는 거야? 그거…….”
“이거 내가 산 건데요?”
“……뭐어?”
“그리고 대체 시대가 언제인데, 아직도 컴퓨터 운영체제를 도어 XP로 씁니까? 이러다 문서 작성도 수기로 하실 것 같으니 좋은 볼펜 선물로 드릴게요.”
은호는 볼펜 하나를 이 부장에게 던졌다.
그가 반사적으로 잡자 은호는 웃었다.
“개처럼 잘 받네요.”
아주 후련했다.
엘리베이터를 탄 은호는 꽉 막혔던 넥타이를 풀어 헤쳤다.
‘하, 속이 다 시원하다!’
남들은 멍청한 짓을 했다고 하겠지만, 비로소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 * *
3개월 전, 업무로 제주도에 내려왔을 때 우연히 봤던 말 한 마리가 퇴사를 결심하게 만들 줄은 누가 알았을까.
샷을 두 번이나 추가한 커피를 마시며 멍하니 바라보던 차, 자유롭게 달리는 그 걸음걸이가 자신의 모든 걸 흔들어놓았다.
지금 자신은 뭘 하는 걸까.
그 생각이 밀려오자 더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말이 달릴 때마다 길게 뻗어지는 다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사람들이 알아야 하는데.’
은호의 어깨가 내려가던 차, 콧속이 간지러웠다.
“……에취!”
은호는 크게 기침했다.
동물과 거리를 벌리고 마스크까지 썼지만, 이 동물 털 알레르기는 도무지 나아지지 않았다.
‘이 지긋한 알레르기 좀 사라지면 좋겠는데.’
은호는 아쉬움을 달랠 겸 가만히 서서 눈으로 동물들을 눈에 담고 있었다.
아직 오후가 되지 않았다.
평일이기에 사람도 별로 없었다.
몇 년 전, 아니, 몇 달 전부터 퇴사하면 하고 싶었던 일을 적었다.
제일 먼저 하고 싶었던 건 동물원에 가는 일이었다.
아침부터 동물원이 문을 닫을 때까지 바라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동물이 좋았다.
동물원을 운영하는 건 어릴 적 꿈이요, 시간을 따라 흔적만 남은 꿈이었다.
‘알레르기만 아니었어도…….’
에취!
은호는 다시금 재채기를 내뱉다, 마스크를 바로잡았다.
그 순간, 신나게 달리던 사막여우가 아주 한순간 행동을 멈췄다.
덩달아 은호 역시 숨을 멈췄다.
그 커다란 귀를 쫑긋 세운 사막여우와 아주 잠깐 눈을 마주쳤다.
맑고 투명한 눈을 보자 계속 이어진 야근과 수면 부족으로 계속 우중충하던 은호의 얼굴이 처음으로 밝아졌다.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번지던 차, 중얼거리는 소리가 뒤쪽에서 들렸다.
“……원했던 게 아니야. 그 힘을 원하지 않았어.”
딱. 딱.
상당히 거슬리는 소리였기에 은호는 고개를 돌렸다.
마침 남자 역시 걸음을 멈추고는 뒤를 바라보았다.
은호를 보더니 갑자기 웃었다.
굉장히 섬뜩했기에 은호는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미친놈인가?’
“혹시 동물… 좋아하세요? 좋아하시죠?”
“동물을 싫어하면 구태여 동물원에 올 이유가 없겠죠?”
“하긴. 남들이 다 출근할 시간에 이럴 이유는 없겠죠? 얼마나 동물을 좋아하는지 알겠네요.”
“안 사요. 조상님도 안 믿으니까, 헛된 노력 하지 마시죠.”
은호는 단호히 말했다.
‘도를 믿으십니까’가 이렇게 깊게 침투할 줄이야.
“그런 거 아닙니다. 불쾌하게 했다면 미안해요. 사과의 의미로 그럼 이거 가지세요.”
그는 매고 있던 가방을 내밀었다. 크로스백이었다.
“기왕이면 새거나 사주죠?”
은호가 코웃음을 쳤다.
그대로 자리를 떠나려던 순간, 갑자기 손이 멋대로 움직였다. 저 남자에게 내뻗는 손을 보며 눈이 빠르게 커졌다.
“당신한테 더 필요할 것 같네요. 얘도 좋아하고요.”
남자는 가방을 건네며 다시금 웃었다.
조금 전과 다른 후련함이 깃든 웃음이었다.
“됐다! 됐어!”
남자는 주먹을 쥔 채로 방정맞게 흔들었다.
“…뭐가 됐다는 겁니까?”
은호는 불안함을 담아 바라보았다.
“드루이드라고 압니까? 막, 동물 뒤치다꺼리하는 직업이 있는데, 전 동물이 너무 싫거든요.”
은호는 저 남자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거랑 이 가방이랑 무슨 관계인지 모르겠으니 가져가세요. 이거 제 취향 아닙니다!”
“아뇨. 저 대신 가는 겁니다. 빌어먹을 동물… 동물이 맞나? 어쨌든, 그것들이 가득한 세상으로요.”
“동물이요?”
은호가 호기심을 드러낸 순간, 남자가 그를 밀었다.
“고맙습니다.”
단번에 의식을 잃은 은호를 붙잡으며 웃었다.
* * *
부우우웅.
뭔가 움직이고 있다는 기분에 은호는 놀라며 눈을 떴다.
“이제 깼습니까? 참, 대단하네요. 우리 물건을 훔칠 생각을 하다니. 간이 큰 건지, 뭔지 모르겠네요.”
굵직한 목소리에 조금 전 남자와 다른 남자라는 걸 알았다.
주변을 바라보자 자동차 안이었다.
손이 뒤로 묶여 있었고, 뒷좌석에 누워 있었다.
‘……납치인가?’
은호는 심장이 뛰는 걸 느꼈지만, 침착하려 애를 썼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다 창밖을 보았다.
천천히 은호의 표정이 무너졌다.
‘이게… 뭐지?’
주변 풍경이 이상했다.
꼭 여러 가지 물감을 물로 떨어트린 모습 같았다.
이 갑작스러운 사태에 은호는 사고가 따라가지 못했다.
“쫓아오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어쩌겠습니까?”
“아저씨. 일단 제 말부터 들어줄래요?”
“이해합니다. 갑자기 찾아와서 다른 차원으로 가야 한다면 얼마나 당황스럽겠습니까?”
“하하하. 너무 재미있는 말인데요?”
은호는 억지로 웃다가 슬쩍 눈치를 보았다.
“…더 웃어드릴까요? 조금 약했나요?”
“상황을 피하고 싶은 마음도 이해합니다. 랜덤 뽑기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죠. 딱 한 번만 있는 뽑기인데 원하는 힘이 튀어나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도망은 진짜 아니었습니다. 저 당신 때문에 어제부터 야근했잖습니까. 이제 미안함이 듭니까, 김태을 씨?”
그제야 은호는 동물원에서 만났던 그 미친놈을 떠올렸다.
그 미친놈의 이름이 김태을이든 말든 은호는 관심 없었다.
그저 소리쳤다.
“김태을이라는 그 사람, 튀었어요!”
“…….”
남자는 그제야 뒤를 바라보았다.
분명히 자동차를 몰고 있는데, 복장은 현대식이라기보다는 이질감이 컸다.
꼭 옛날 시대 옷을 현대식으로 해석한 느낌이 강했다.
“저는 서은호입니다!”
은호는 당당히 외쳤고, 남자의 눈이 가늘어졌다.
“…아니라고요? 이미 힘이 당신을 선택했는데요?”
위이이이이잉.
그때, 어디선가 경보가 들렸다.
남자의 눈이 커졌다.
“…어, 어. 진짜 김태을… 씨 아니에요?”
“서은호라니까요?”
“……큰일 났다.”
남자는 진땀을 흘렸다.
“왜 큰일 난 겁니까? 죽어요? 우리 죽는 거예요?”
“모릅니다! 진작에 말했어야죠!”
“이봐요. 침착하게 누가 절 납치한 건지 좀 생각해 볼래요?”
은호의 핀잔에 남자는 입을 다물다 조용히 목소리를 냈다.
“……저네요.”
“맞죠? 이제 납치 때 썼던 그 머리로 방법을 생각해봐요.”
“불가능합니다.”
“아니요. 사람은 다 하더라고요. 피라미드도 만들었잖아요?”
“안 됩니다! 지금 이미 이동 중이라고요!”
“어디로요?”
“이… 세계?”
“와. 진짜 최악의 농담이네요.”
은호는 얼굴을 구기며 어깨로 상체를 일으키다 말고 갑자기 덜덜 떨리는 차와 마주했다.
“이거 왜 이러는 겁니까?”
“목적지를 잃어버렸습니다! 당신이 김태을 씨가 아니라서요!”
“그러니까 아니라고 했잖아요.”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우리 이제 큰일 났다고요! 중세 판타지로 가야 하는데, 어떤 세계로 떨어질지 몰라요! 갑자기 차가 떨어질지…….”
갑자기 몸이 위로 뜨는 느낌이 몰려왔다.
“아아아아악!”
남자의 비명과 함께 차가 추락했다.
* * *
“……으, 으.”
귀가 얼얼할 정도로 큰 소리가 들렸다.
그 뒤로 몸이 부서지는 듯한 통증이 일어났고.
정신이 혼미했지만, 은호는 눈을 떠야 한다고 생각했다.
코에서 밀려오는 냄새가 예사롭지 않았다.
‘……기름 냄새.’
은호는 눈을 떴다.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기름이 새어 나오는 게 보였다.
침착하게 다리를 바닥에 내디디고는 의자 쪽으로 힘을 줘 안전 벨트를 풀었다.
은호는 바닥으로 내려오며 앞을 보았다.
죽어버렸는지, 남자의 목이 꺾여버렸다.
‘…죽길 바라진 않았는데.’
은호는 미간을 찌푸린 채 우선 발로 유리창을 깼다.
쨍그랑!
그 사이로 기어 나오며 손으로 뭔가를 지탱하려던 차 그대로 땅으로 떨어졌다.
분명히 아플 법하나, 아무렇지도 않았다.
크르르릉.
그저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이세계니, 뭐니 그 남자가 지껄였지만, 그저 질 나쁜 농담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고개를 올려 바라본 그곳에 짐승이 존재했다.
얼굴을 올려도 얼굴이 보이지 않을 만큼 아득히 큰 짐승의 검은 털이 연기처럼 휘날리고 있었다.
그 뒤로 잔잔히 일어나는 금빛은 불꽃 같았다.
저게 뭔지.
괴물인지.
그런 생각보다 은호는 놀라움을 느꼈다.
저 짐승이 자신을 붙잡고는 천천히 내려주었다.
‘……나를 구해줬어?’
그 말도 안 되는 사실에 은호는 조심히 상체를 일으켜 그 커다란 존재를 바라보았다.
멋졌다.
검은 불꽃과 금색 불꽃을 뒤덮은 그 모습은 형용할 수 없는 감탄을 자아냈다.
우중충하고 흐리멍덩하던 은호의 밝은 갈색 눈동자에 이채가 담긴 듯 빛이 났다.
당장 일어나는 두려움보다는 짐승 같은 저 존재가 자신을 구해줬다는 사실이 더 기뻤다.
은호가 아픔마저 잊어버리며 그 존재에게 다가가 손으로 만졌다.
솜사탕 같은 느낌이 맴돌던 차 손끝에서 싱그러운 초록빛이 일어났다.
빛은 곧 은호를 잡아 삼켜버렸다.
‘……이게 뭐야?’
갑작스러운 빛에 그 존재는 도리어 놀라며 쪼그라들었다.
그 크기가 곰만큼 작아졌다.
은호의 몸에서 빛이 사라지자 가방에 있던 태블릿이 날아와 글자를 적어갔다.
《.》
《.》
《인식 완료.》
《안녕하세요, 드루이드님.》
《첫 번째, 환수를 인식하셨습니다.》
‘……환수?’
찰칵.
은호가 어리둥절한 사이, 사진이 제멋대로 찍혔다.
태블릿 화면이 바뀌더니 지금 눈앞에 있는 존재의 사진과 함께 이름이 나타났다.
《흑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