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10)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10화(10/30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 010화
10화. 대화하자고!(3)
‘……친밀감이 높다더니. 이런 말이었어?’
은호는 포이키의 인사에 덩달아 웃음이 났다.
생김새가 꼭 인형 같았다. 크기가 1M가 되지 않아 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렇게 상냥하게 말을 먼저 걸어온 환수는 처음이라 입꼬리가 내려오지 않았다.
“안녕. 갑자기 불러서 많이 놀랐어?”
덩달아 은호가 인사를 받아주자 포이키의 눈이 커졌다.
“와아! 와아! 나 말이 통하는 인간은 처음이야!”
포이키는 왼쪽으로 갔다가 오른쪽으로 움직이며 제자리에 두 발로 팔짝팔짝 뛰었다.
그러다 포이키는 은호에게 다가가 냄새를 맡았다.
킁킁.
꼬리가 헤엄을 치듯 움직이다 포이키는 은호의 팔에 매달렸다.
“너는 아니야. 그렇지?”
“저기 아파트 쪽을 말하는 거야?”
“아파트……?”
포이키의 눈이 은호가 가리키는 곳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저기라면…….”
“이제 그만 비켜라.”
흑견은 허락도 없이 등 위에 올라간 포이키의 행동을 더는 참지 않았다.
폭풍우처럼 몰아치는 소리에 포이키가 털을 바짝 세우며 몸을 덜덜 떨자 은호가 혹시나 싶어 물었다.
“살살 말하는 거 잊은 거 아니지, 멍멍이 형님?”
“주제를 모르는 것에게 내가 왜 맞춰야 하는가?”
또 이어진 흑견의 말에 포이키는 얌전히 땅으로 내려왔다.
명백한 경고가 무서웠지만, 억울함이 컸다.
위를 바라보며 포이키가 물었다.
“나는 왜 안 돼? 저 인간은 탔잖아.”
키잉.
포이키가 시무룩하며 울었다.
3살짜리 아이가 삐진 것 같아 은호는 입술을 꽉 다물었다.
‘위로해주면 우리 멍멍이 형님이 삐지려나?’
그 생각도 웃겨 은호는 속으로 키득거렸다.
“묻지 마라. 대답하고 싶지 않다.”
“왜? 말해줄 수 있잖아. 말 안 해주면 치사해. 너는 아주, 아주 치사하다고.”
“……날.”
흑견은 포이키에게 이빨을 살짝 내보이며 사나운 인상을 확 드러냈다. 밀려드는 두려움에 포이키의 귀가 빠르게 아래로 내려왔다.
“자극하지 마라.”
오로지 포악함만이 가득한 그 모습에 겁을 먹은 포이키는 울먹였다.
“자, 잠시만, 멍멍이 형님.”
은호가 놀라며 손바닥으로 흑견을 두드리자 바로 고개를 휙 돌렸다.
“나는 나를 함부로 하는 것들이 싫다. 인간 너는 더 뭐라고 말하지 마라.”
‘……화해는 물 건너갔나?’
어린아이들을 돌본 경험은 없었기에 살짝 곤란했다.
무엇보다 진짜 어린아이들도 아닌 환수라 위와 아래가 나눠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은호는 땅으로 내려와 흑견을 쓰다듬으며 포이키에게 넌지시 말을 걸었다.
“오해가 있나 봐. 우리 멍멍이 형님이 원래 나 말고 누가 만지거나 타는 걸 싫어하더라고. 날 너무 좋아하거든.”
“……인간!”
흑견이 깜짝 놀라며 용수철처럼 뒤로 물러섰다.
은호는 웃음을 터트리다 옷자락을 붙잡은 손길에 아래로 시선을 뒀다.
포이키가 기대를 담아 물었다.
“……정말? 나 싫어하는 거 아니야?”
“우리 만난 지 아직 5분도 안 지났어. 뭘 판단하기에 아직 이르지 않나 싶은데.”
“5분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너를 보자마자 되게 친근해서 좋았어.”
은호는 똘망똘망한 눈을 마주하자 심장이 쿵쿵 뛰는 걸 느꼈다.
“이건 비밀인데, 사실 나도 마찬가지거든.”
은호는 고개를 숙여 포이키에게 속삭인 뒤, 슬쩍 흑견을 바라보았다.
이상하게 심기 불편한 표정으로 흑견이 물었다.
“왜 그렇게 보는 건가? 또 그 가벼운 입으로 나를 곤란하게 할 셈인가?”
“에이, 그럴 리가.”
여전히 새초롬한 흑견의 눈빛에 은호와 포이키는 같이 키득거렸다.
“우리 친구는 이름이 뭐야? 아, 알려주는 게 안 되면 말하지 않아도 돼.”
“난 피피! 피피야!”
언제 울었냐는 듯 피피는 제자리에서 뛰어다녔다.
이름을 알려줬기에 은호는 역시 작게 속삭이며 말해주었다.
“나는 서은호라고 해.”
“……멋있다.”
거짓이라고는 없는 저 눈동자에 은호는 정말 기분 좋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름을 두고 이런 순수한 칭찬은 얼마 만인가.
마음이 너무도 포근해졌다.
‘그래도 피피를 부른 이유를 까먹으면 안 되겠지.’
은호는 어느새 자신의 팔을 타고 올라오려는 피피를 바라보았다.
시선이 마주치자 피피는 잠깐 행동을 멈췄다.
“피피. 내가 물어볼 게 있어서 너를 불렀어. 대답해줄 수 있어?”
“대답해줄 수 있어.”
“아까 아파트 말이야. 거기에 진득한 액체가 뒤덮여 있는데, 혹시 너희가 벌인 일이야?”
피피는 가볍게 땅으로 떨어져서는 꼬리를 천천히 흔들었다.
조금 전 다른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마냥 동그랬던 눈동자마저 서늘함이 감돌았다.
“너희라고… 한다면?”
피피의 목소리에 묻은 장난기마저 사라졌다.
적이라 인식하려는 듯 경계심을 드러내자 웅크려 있던 흑견마저 몸을 일으켰다. 은호는 급히 흑견을 말렸다.
“아니야. 괜찮아, 멍멍이 형님.”
은호는 피피의 종인 포이키의 특징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장난기가 많고, 활동량 많고, 경계심은 적은데 친밀감은 높았어. …그리고 허락받지 않고 영역에 침입한 이들을 집요하게 공격할 만큼 예민하다고 했어.’
영역이라는 게 단순히 땅을 말하는 게 아닌 걸까. 그래서 이렇게 돌변하는 걸까.
“피피. 나는 그 이유를 알려고 왔어.”
“…우리를 죽이려고?”
피피는 뒤로 물러서며 꼬리를 손아귀에 쥐었다.
독이 든 액체를 내뿜을 수 있는 꼬리라는 걸 앎에도 은호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아니. 너희를 도우려고.”
“인간은 우리를 돕지 않아.”
단호했다.
어떤 망설임도 없이 꺼낸 말에 은호는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말이 다르기에,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기에 얼마나 많이 오해가 생겼을까.
“지금까지는 그랬을 거야. 그런데 나는 정말로 너희를 도우러 왔거든.”
자신감 넘치는 그 대답에 피피는 놀란 눈을 하며 더 뒤로 물러섰지만, 은호는 그 자리에서 가만히 기다렸다.
“나하고는 신경전을… 아니지, 경계하는 건 네 자유니까. 어쨌든,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굳이 안 할 이유는 없다고 봐. 우린 말이 통하잖아?”
그 어떤 말보다 깊게 들어왔기에 피피는 행동마저 멈췄다.
인간과 말이 통한다.
평생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나, 너희가 아파트에 칠해놓은 액체를 보며 바로 알아챘어.”
“……뭘?”
“그게 마지막 경고라는 걸. 그 뒤에 뭘 하려고 했어? 진짜 죽이려고 했어?”
“어떤 마음으로 우리가 그랬는지 넌 몰라!”
“모르지. 모르니까 알려고 물었어. 하지만 객관적으로 본다면 너희도 잘한 건 아니야. 그 액체에 독 성분이 없다고 해도 결국, 사람들은 그 두려움에 떠났어. 이걸 바랐던 거야?”
인간이 살던 그곳을 왜 그렇게 했는지 의도를 이해해버리자 피피는 한 걸음 은호에게 다가갔다.
“너희는 영역을 철저하게 잘 지키는 존재야. 굳이 너희가 먼저 사람들의 영역을 건드릴 이유가 없단 말이지. 아마도 공격은 사람이 먼저 한 것 같은데, 맞아?”
이 인간은 사실 인간이 아니라 동족이 아닐까?
그런 의심이 들만한 소리에 피피의 걸음이 조금 더 빨라졌다.
이게 대화가 통하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감정일까.
“공격이라고 말했지만, 너희에게 직접 해를 입혔다면 이 정도 경고로 끝내진 않았을 테니, 아마 인간이 너희의 영역을 침범하거나 뺏어버린 거겠지.”
“맞아!”
가슴이 뻥 뚫리는 감각을 느끼며 피피는 은호의 다리를 붙잡았다.
대화를 하고 있기 때문일까.
피피는 눈앞에 있는 존재 인간임을 알면서도 밀려오는 감정에 그의 바지를 꼭 붙잡았다.
억울하고 분했다.
이 감정을 알아줬으면 했다.
“인간이 우리 숲을 무너트렸어! 숲은… 숲은 우리한테 많은 걸 줬는데, 어머니인데, 인간이 부서트렸어!”
‘……아이고.’
은호는 눈썹을 긁적였다.
하루아침에 집이 무너졌으니 분노하는 건 당연했다.
아무 이유 없이 남의 집을 건들면 자신의 집도 무너질 각오를 해야 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그럼 대체 왜 사람들은 숲을 무너트린 걸까.
“…숲은 재생하니까. 그래서 독을 퍼트리지 않았어. 우리는 인간한테 화가 났지만, 정말로 죽일 생각은 없었어. 그냥, 이 고통을 똑같이 느끼길 바랐어.”
피피는 힘없이 떨어지는 얼굴을 막지 못했다.
어떤 대답이 들리지 않자 실망감이 몰아쳤다.
아무리 대화가 통해도 인간은 인간이었다. 아마 이해할 수 없겠지.
“나는 이 보복의 이유가…….”
지이이잉.
휴대전화가 울리자 은호는 화면을 확인했다.
설태호 형.
“대화 도중에 미안해. 잠깐만.”
은호는 피피에게 사과하며 전화를 받았다.
“네, 형.”
<골프장이었어.>
“…네?”
<겨우 골프장을 지으려고 포이키가 있는 숲을 싹 밀어버렸다고.>
“포이키가 여기 있는 거 보면, 환수 보호 구역 아니에요?”
<맞는데, 그게 좀 애매하게 걸쳤대. 잠깐만. 가을 씨가 바꿔 달라고 하네.>
은호는 잠깐 기다렸다.
<가을입니다. 그곳에 있는 환수 보호 구역과 실제 포이키가 거주하는 곳이 다릅니다. 대략 60% 정도 환수 보호 구역을 벗어난 상태죠.>
“많이… 벗어났는데요?”
<현재 그곳에 세워질 골프장의 위치와 크기를 비교한다면 포이키가 거주하고 있는 지역의 약 90% 정도를 밀어버려야 합니다. 즉, 환수 보호 구역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말이죠. 명백한 불법입니다. 포이키는 현재 예고 없이, 철거를 당한 꼴입니다.>
이야기가 점점 진행되는 동안 은호의 웃음이 조금씩 지워졌다.
“그런데 건축 허가가 떨어졌다는 말이네요?”
<공무원을 꼬드겼든 뭘 했든, 허락을 받아냈네요?>
가을의 비웃음이 살짝 들려왔다.
<바로 놈들을 보내버리면 좋겠지만, 재검토가 들어간다고 해도 이를 빌미로 포이키가 떠날 때까지 시간을 끌 겁니다.>
“이 나라는 법이 약해요?”
<환수는 사람 위에 설 수 없어요. 그게 이 나라 법이죠.>
뭘 해도 사람과 동등한 보호는 받을 수 없다는 소리였다.
부당하다고 생각해도 저게 현실이었다.
“알겠어요. 알려줘서 고마워요.”
<그 땅, 건드려도 됩니다, 서은호 씨. 그럼.>
가을은 연락을 끊었다.
은호는 휴대전화를 집어넣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주 좋은 생각이 났다.
“가자, 피피. 멍멍이 형님도.”
“……어딜 가?”
피피가 우물쭈물한 채로 물었다.
“너희 집. 내가 되돌려 줄게. 대신 너희도 사람들을 위해 해줘야 할 게 있어.”
원인 제공자는 누가 뭐라고 해도 사람이었다.
골프장을 짓기 위해 포이키들의 터전을 공격하지 않았는가.
원인 제공자가 이토록 명확히 존재했지만, 이걸 몰랐던 포이키는 엉뚱한 사람들을 공격했다.
서로 잘못한 상황이 벌어졌다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해줘야 하는 일이라고……?”
피피가 조심스레 바라보았다.
“너희는 분노로 엉뚱한 사람을 공격했어. 당연히 너희도 책임을 져야지. 하지만 우선 너희 집부터 가자.”
원인 제공자가 명확하지만, 이들을 이유 없이 공격하는 건 현대 사회인으로서 말이 되지 않는 행동이었다.
그러니 다른 방법을 써야지.
기업들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워하는 건 고지를 앞둔 결과물이 무너지는 일이 아니었다. 그 결과로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막강한 손해가 나는 걸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했다.
은호는 흑견을 보며 활짝 웃었다.
“타라.”
흑견은 고개를 숙이자 은호는 신이 난 채로 달려갔다.
* * *
“……하.”
은호는 탄식을 내뱉었다.
눈앞에 펼쳐진 상황으로 가슴이 콱 막혀왔다.
숲이 민머리를 내놓은 상태였다.
이 광경과 비교하자면 포이키들이 아파트에 퍼트린 그 액체가 오히려 예술 작품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그래. 말도 통하지 않는 이웃하고 산다는 건 어렵지.’
은호는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한 채 피피를 바라보았다.
이 장면을 얼마나 봤을까.
피피는 손가락으로 왼쪽부터 오른쪽을 가리켰다.
“저기부터 저기까지가 우리 영역이야. 영역은 대장이 정해. 대장은 영역을 위해 다른 이들하고 열심히 협상했어.”
이 땅을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는 말이었다.
“인간. 분노하지 마라. 냉정해져라.”
흑견이 조용히 목소리를 꺼냈다.
“나 화가 난 거 티가 좀 안 나는 편인데, 그게 보여?”
은호는 웃었다.
사회에서 화를 내는 건 위험한 일이었다. 하도 화를 참다 보니, 대부분 그러려니 하고 넘기기 마련이었다.
그러다 보니 화를 내는 것 자체가 오히려 힘겨워졌다.
“널 따라 자연이 움직이는 것도 느껴진다.”
“그런 것도 느껴져?”
이것도 드루이드의 힘일까.
은호는 신기해하며 먼 곳에 시선을 뒀다.
“사실, 제일 화가 난 건 내가 아니야.”
“그럼, 누가 제일 화가 났어?”
피피가 묻자 은호는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켰다.
저 아래에서부터 묵직함이 느껴졌다. 몸을 짓누르는 힘 같았는데, 실제로 몸이 무거운 건 아니었다.
대체 뭔가 싶던 차, 여기에 오자마자 알아버렸다.
자연이 분노하고 있다는걸.
은호는 땅으로 내려와 손바닥으로 바닥을 만졌다.
눈을 감자 그들의 숨소리가 들렸다.
몹시 날카로운 가시로 찔리는 듯한 감각마저 느껴졌다.
‘…이야, 자연님의 분노 게이지가 너무 꽉 찼는데?’
게이지가 높아 이토록 선명히 느껴지는 걸지도 몰랐다.
은호는 속삭임이 뒤에서 들리자 잠깐 고개를 돌아보았다.
이 아래에 아파트가 보였다.
‘진짜 멍청한 선택을 사람이 해버렸네.’
숲이 화가 난 이유를 알아버렸다.
이 아래 많은 생명체가 존재했고, 포이키가 있는 그 지점은 산사태를 막는 데 꼭 필요한 곳이었다.
그걸 인간이 부서트렸다. 겨우 골프장 때문에.
산사태가 일어난다면 수많은 생명이 죽을 테니 화가 나는 건 당연했다.
“일단 가장 시급한 것부터 해결해야겠지?”
은호는 사진과 동영상을 찍은 뒤, 태호에게 보냈다.
[여기 바로 복구할게요.]지이잉.
곧바로 진동이 울렸기에 은호는 웃으며 휴대전화를 받았다.
“네, 형.”
<그게 무슨 말이야, 은호 씨? 복구라니? 그 산을……. 산을 어떻게 복구한다는 건데?>
놀라면서도 동시에 화를 참는 등 복잡한 감정이 느껴졌다.
“말 그대로예요. 파트너 잘 만났다고 나중에…….”
사아아아.
갑자기 그림자가 지는 상황에 고개를 돌렸다.
흑견이 자신의 앞에 서 있었다.
몸을 낮춘 그 모습에 앞에 누군가가 있다는 걸 알았다.
“……나중에 말할게요.”
은호는 휴대전화를 끊었다.
분위기가 갑자기 이상하게 변했다.
“물러나라, 인간.”
흑견의 몸 주변에 검은 연기가 피어나자 은호는 뒷걸음을 치려다 앞으로 걸어갔다.
“멍멍이 형님, 나는 뒤가 아니라 옆에 서고 싶어.”
“…인간 너는 정말 손이 많이 간다.”
흑견이 옆으로 두 걸음 비키자 은호의 눈이 커졌다.
‘……?’
뭐가 있다는 걸까. 그냥 빼곡하게 늘어져 있는 나무만 보였다.
은호는 안경을 착용하고 맹금류의 눈을 발동했다.
“당신의 것을 빌립니다.”
왼쪽 눈을 감으며 몇 번이고 확대하자 비로소 흑견이 보는 존재가 눈에 들어왔다.
포이키와 닮은 털 색을 띤 환수가 나무를 타며 빠르게 다가왔다.
포이키보다 훨씬 큰 몸집이라 같은 종족이 맞는지 의심마저 들었다.
환수가 나무를 타서 그 반동으로 허공에 떠오르자 꼬리를 쥐며 무언가를 쏘았다.
흑견의 몸에 피어난 어둠이 이를 막았지만, 지독한 냄새가 퍼졌다.
“……웁.”
냄새만으로 은호가 속이 울렁거렸다. 갑자기 밀려오는 현기증에 몸이 저절로 앞으로 기울었다.
두 손으로 바닥을 짚자 피피가 놀랐다.
“서은호, 괜찮아?”
“인간! 숨 쉬지 마라, 독이다!”
흑견이 이를 드러내며 분노를 드러냈다.
‘……독?’
은호는 숨을 헐떡거리다 손으로 입을 막았다. 주르륵 피가 흘렀다.
지금 독을 내뿜을 수 있는 존재는 포이키밖에 없었다.
‘포이키야? 포이키?’
“자, 잠깐만 기다려! 서은호, 죽으면 안 돼!”
피피가 다급히 어딘가로 움직였다.
“……죽여버리겠다.”
흑견은 그대로 앞으로 튀어 나갔다.
바로 환수와 거리를 좁히며 앞발을 휘둘렀다.
부웅.
매서운 바람 소리를 따라 수많은 나무가 쪼개지거나 우르르 무너지자 흙먼지가 일어났다.
당황할 법하나, 환수는 오히려 나무를 타며 흑견과 거리를 넓히고, 목표를 향해 단숨에 다가갔다.
인간.
증오스러운 인간.
“인간! 이젠 우리를 죽이러 왔나?”
환수가 절규하듯 소리치며 은호를 향해 매서운 꼬리를 휘둘렀다.
하지만 그 위로 검은 바람이 등장하자 환수는 놀라며 위를 바라보았다.
거대한 앞발이 환수의 머리 위에 나타나 내리찍었다.
콰아아아앙!
귀를 울리는 소리를 삼키듯 땅이 울렸다. 환수를 땅에 처박은 흑견이 은호를 바라보았다.
“인간……?”
“……우리 친구는 좀 거치네?”
은호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웃었다.
“난 대화를 원하는데.”
피가 묻은 손이 바로 옆에 있던 나무에 닿았다.
대가를 바쳤다.
피를 먹은 나무가 자라나더니 환수를 향해 굵직한 가지를 뻗었다.
나무의 뿌리가 땅에서 일어나 환수를 휘감고, 가지가 위에서 환수를 짓눌렀다.
“…대화하자, 이 썩을 놈아.”
은호는 색색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