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100)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100화(100/30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 100화
100화. 그래서 너희가 싫다니까(3)
예림의 표정이 바로 일그러졌다.
그 웃음소리가 그렇게 거슬릴 수가 없었다.
비웃는 것 같았다.
자신을 업신여기는 것 같았다.
예림이 손가락을 겨누자 그녀의 주변으로 은빛을 띤 물체가 나타나더니 화살촉의 형태로 바꿔나갔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쏘아냈다.
쉬이이익!
거친 바람 소리를 따라 예림은 은호를 싸늘하게 바라보았다.
“내가 왜?”
나뭇가지들이 은호의 앞으로 빠르게 뻗어왔다.
마치 팔로 막듯 은호를 감싸며 예림이 뿌린 화살촉이 한꺼번에 박혔다. 마치 고슴도치가 된 것만 같았다.
저건 그저 막으면 된다. 이렇게 오해하는 이들이 참 많았다.
‘저건 터진다고.’
예림은 비웃음을 삼킨 채 화살촉을 터트려버렸다.
콰아앙!
주인보다 훨씬 덜떨어지는 능력이었지만, 그래도 쓸만하다 인정해주지 않았는가.
자욱한 연기가 꺼지기 전에 예림은 한 번 더 던졌다.
초능력자의 목숨은 질겼다.
목을 끊어버리는 것조차 어려웠으니까.
‘…주인님.’
예림은 입꼬리를 올리며 힘을 터트려버렸다.
콰앙!
‘내가 해냈어요. 보이나요?’
폭발음을 듣자 웃음이 몰려올 것만 같았다.
자욱한 연기는 물론,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지만, 예림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즐겁게 앞으로 다가갔다.
어떤 표정이려나.
‘아.’
예림은 잠깐 주저했다.
저 안에 환수가 있었다.
‘손해가 얼마지?’
저놈이 손해를 메울 만큼 값어치가 있을까.
예림의 생각이 걸음에 맞춰 커졌다.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알고도 찾아온 저 멍청한 놈 때문에 왜 자신이 죽어야 할까.
이렇게 자신의 시야 안에 알짱거리며 귀찮게 구는 저놈 때문에 자신은 왜 곤욕을 치렀고, 그토록 소중했던 머리카락을 잃어버린 걸까.
이 모든 게 부조리했다.
예림은 화가 났다.
속에서 짜증이 들끓었다.
그녀가 손가락을 겨누자 주변에 다시금 화살촉으로 된 형태가 늘어났다.
연기가 채 가라앉기 전에 목소리가 들렸다.
“유예림.”
뒤였다.
다급히 고개를 돌린 쪽에는 은호가 태연히 서 있었다.
“그럼 다른 걸 물어볼게. 이건 내가 진짜 궁금한 거라서.”
예림이 화살촉을 움직이기 전에 조용히 다가온 뿌리가 그녀의 발목을 휘감았다.
뿌리가 그대로 예림을 뒤로 잡아당기자 은호를 향하던 화살촉이 바닥에 꽂혔다.
‘역시나, 시선에 맞춰서 움직이네.’
은호는 예림이 초능력을 쓸 때마다 잠깐 관찰했다.
초능력도 조건이나 한계가 명확한 듯했으니까.
가령, 가을의 초능력은 전자기기에만 한정되어 사람은 건드릴 수 없었다.
선천적인 부분이 가장 크게 작용하기에 더 그럴지도 몰랐다.
예림 같은 경우는 바라보는 방향에 맞춰 화살촉으로 변한 저 형태를 쏠 수가 있었다.
콰아아앙!
예림은 넘어졌음에도 주저하지 않고 바닥에 박힌 화살촉을 터트렸다.
폭발과 함께 피어난 연기와 먼지가 꽤 자욱했다.
그것들이 은호의 시야를 가리는가 싶더니, 바람 소리가 들렸다.
연기를 뚫고 예림이 손이 뻗어 나왔다.
정확히 은호의 얼굴을 갈기려던 그때, 어둠이 일어나 그녀의 손목을 낚아채고 아래로 내리찍었다.
쿠웅!
건물 전체가 흔들리는 것만 같았다.
“으윽!”
예림은 갑작스럽게 일어난 충격에 신음을 터트렸다.
힘 자체가 달랐다.
‘……뭐지?’
두 가지의 초능력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면 이게 대체 뭘까.
예림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은호는 그 표정을 보았지만, 대답해야 할 이유를 조금도 느끼지 못했다.
그저 궁금한 걸 물었다.
“왜 비소속 초능력자가 되길 원하는 거야?”
그 물음이 예림에게는 너무도 오만하게 들렸다.
이미 비소속 초능력자인 자신이 틀렸다고 비난하는 것 같았으니까.
“너 같은 병신이 있으니까.”
예림은 고개를 올렸다. 눈꼬리가 가득 올라가 있었다.
다시금 화살촉이 땅에 박혔다.
콰아앙!
의도적으로 연기를 일으키며 그 속에 숨어 형태를 새롭게 만들었다.
“주제도 모르고 설치니까, 개같잖아.”
살벌한 소리를 입에 담으며 예림은 웃었다.
힘을 끌어모아 은호 주변의 땅과 벽에 바늘을 닮은 형태로 바꿔 한 번에 박아넣었다.
예림은 어질거리는 머리를 느꼈다.
하지만 미소가 감돌았다.
어차피 죽이면 그뿐이었다.
뭐 하러 살려 보낼까. 그 생각 자체가 잘못된 거였다.
벽이고 바닥이고 수백 개 넘게 박힌 저 힘이라면 충분했다.
잘 보이지도 않을 테니까.
“그러니까 너는 고통스럽게 죽어야지.”
예림은 키득거리며 힘을 터트렸다.
격렬한 폭발음과 함께 건물의 한쪽 벽이 날아가고, 천과 바닥까지 무너졌다.
밖에서부터 불어오는 맹렬한 바람에도 예림은 터져나가는 그 광경을 황홀하게 바라보았다.
언제봐도 눈이 부실 수가 없었다.
너덜거리는 건물 잔해, 자욱하게 퍼지는 폭발 냄새, 터져 죽은 시체의 흔적.
이 모든 게 도파민을 자극했다.
예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기가 걷어갈수록 두 눈이 휘었다.
어떻게 죽었을까. 어떤 꼴을 하고 있을까.
한 걸음 내디딘 그때, 감각이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이어 어디선가 섬뜩함이 밀려왔다.
뒤.
또 뒤였다.
또.
또!
아주 짧은 시간에 예림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식물이 움직인다고 생각하며 손가락을 올린 채 바로 뒤를 돌아보았다.
자신이 잘 쓰던 화살촉의 형태로 빠르게 날렸지만, 그곳에는 빛을 내는 나무 이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예림의 눈이 살짝 커지던 그때, 그녀는 온몸을 떨었다.
파지지직!
“…아아악!”
비명을 터트렸다.
고전류에 감전되었음에도 그녀는 버티며 시선을 내렸다.
발아래에도 아무도 없었다.
‘……초능력이 또 있다고?’
쿵.
묵직한 소리가 앞에서 들렸다.
예림은 고통을 참으며 눈동자를 올렸다. 나무가 움직이고 있었다.
거대하게 움직이는 괴물 같았다.
‘내가 당할 것 같아?’
예림은 방금 저 나무를 향해 뿌려놓았던 자신의 힘을 터트렸다.
그 충격으로 뒤로 밀렸지만, 온몸이 저릿하고 머리가 울리는 것 이외에는 괜찮았다.
예림은 오른쪽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공격으로 벽이 사라져 거친 바람이 몰려오며 드높은 아파트들이 가득 보였다.
24층이지만, 뛰어내려봤자 죽지 않았다.
예림은 머리를 굴렸다.
뛰어내리면 필시 쫓아올 테지.
하지만 허공에서는 누가 더 강한가.
‘바로 나야.’
예림은 확실을 담으며 주저 없이 몸을 날리려 움직였다.
두 다리가 땅에서 떨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그녀의 눈이 커졌다.
떨어지지 않았다.
시선을 내리자 까만 어둠이 몸을 휘어잡고 있었다.
뒤로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허공에서는 누가 더 강할까? 그렇게 생각했어?”
은호가 물으며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의 손가락을 따라 가지들이 손을 뻗어 예림을 묶었다.
“진작 도망쳤어야지.”
은호는 일렉트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내가 도망친다고?”
예림은 입을 열었지만, 고개를 뒤로 돌릴 수 없었다.
온몸을 휘감는 나뭇가지가 이를 방해했다.
“그럼. 이렇게 될 줄 몰랐어? 내가 널 불렀을 때 함정이라는 걸 예상했어야지.”
이어진 은호의 말에 예림은 입술을 깨물었다. 허를 찔린 기분 같았다.
조금 전 전기 충격 때문으로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손마저 묶였다.
‘하지만 그게 뭐라고.’
예림이 생각하고 행동하기에 앞서 그녀의 시야가 가려졌다.
“잠깐만!”
너무도 다급해 예림이 입을 열었지만, 이미 어둠이 밀려왔다.
목을 슬금슬금 조여오는 감각이 더욱 선명해졌다.
“이제 현실이 눈에 들어와?”
은호는 말을 꺼내며 손바닥을 내밀었다. 방금 충격으로 나뒹굴고 있는 휴대전화를 나뭇가지가 가져다줬다.
누군가의 명의를 도용했음이 분명했지만,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잘 설치고 다녔지? 환수를 수집하고 싶은 쓰레기같은 호구들을 물어서 신이 났을 거야. 아무리 해도 너희를 붙잡지도 못하니, 정부는 멍청하다는 생각마저 했을지도 몰라.”
저들 눈에는 정부와 환수 관리국이 그렇게 보일 수 있었다.
그들은 못 해서가 아니었다. 이 건물로 들어서기까지 거쳐야 하는 절차는 얼마나 복잡할까.
지금 자신처럼 했다가는 엄청난 징계가 따를지도 몰랐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말이야.”
자신은 이제 저들이 비웃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일을 막는 1차 선이 될 생각이었다.
그게 곧 환수를 위한 일이었으니까.
환수 연구소의 소장인 태호와 환수 관리국의 국장인 지혜를 등에 업었는데 이 정도도 못 하는 건 우스운 일이었다.
알아서 잘 막아주리라 믿었다.
“내가 너희를 치워 버릴 거거든. 그러니까, 너희는 나를 무서워하기만 하면 돼.”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고, 자유롭다는 사실이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했다.
잃을 게 없는 자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가만히, 그저 가만히 지켜보면 그뿐이었다.
푸하하핫.
예림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 잘난 정의심으로 이렇게 한다고? 돈도 안 되는 같잖은 걸 위해서 이렇게 했다고?”
아무리 들어봐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게 뭐라고.
그따위 게 무얼 해준다고.
“…진짜 유치하네.”
예림은 비웃음을 그려나갔다.
“괜찮아.”
“네가 이런다고 뭘 얻는데? 뭐가 돌아오는데? 그냥 눈 한 번만 딱 감으면 손에 쥐어질 게 너무 많은데. 이걸, 버린다고?”
“너, 많이 가져. 그렇게 원하는 돈을 끌어안고 추락하면 되는 거니까.”
은호는 손을 뻗어 예림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섬뜩함이 밀어닥쳤다.
예림은 속으로 ‘설마’를 떠올렸다.
“그동안 얼마나 행복한지 지켜볼게.”
은호는 주저 없이 예림을 밀었다.
몸이 기울고, 아래로 떨어지는 감각이 선명히 느껴졌다.
비명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다시 땅에 다리가 붙는 기분을 느꼈다.
‘……뭐지?’
은호는 다시금 예림의 어깨에 손을 올려 밀었다.
예림은 몸이 기울고 떨어진 느낌에 휩싸였지만, 또다시 제자리에 서자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시간이…… 반복되는 거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떨어지고, 다시 제자리에 서기를 반복했다.
몇 번을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그 감각에 돌아버릴 것 같았다.
“그만!”
기어코 예림이 소리를 질렀지만, 은호는 멈추지 않았다.
왜 그렇게 해야 할까.
흑견의 그림자를 통해 다른 그림자와 연결해 무한으로 돌리고, 또 돌렸다.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는 시간의 지옥 속에 갇힌 것처럼 느끼도록.
사람은 눈을 가리면 제멋대로 상상하곤 했다.
그 상상력에 본인을 갉아먹는 줄도 모르고 생각까지 잠식되어가겠지.
얼마나 반복했을까.
손에 쥔 예림의 휴대전화에서 전화가 울렸다.
모르는 전화번호였다.
하지만 예감이 좋았다.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그렇기에 은호는 더 자신감 있게 말을 꺼냈다.
“안녕하세요.”
<예의가 바르시네요.>
여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래야죠. 당신이, 진짜잖아요.”
은호는 웃으며 예림을 보았고, 그녀를 밀지 않았다.
“잠시만. 잠시만…!”
은호는 한순간에 표정이 무너진 예림을 보자 그녀도 들을 수 있게 바꿨다.
<그 멍청이는 당신이 가지세요.>
그 말에 예림은 바로 눈물을 흘렸다.
“그래도 되나요?”
<네. 그래도 돼요. 이미 쓸모는 다했거든요.>
“……주, 주인님.”
예림이 목소리를 냈지만, 통화 너머로 들리는 그 목소리는 반응하지 않았다.
“아, 이 건물 수리비. 그쪽에서 감당하는 거죠?”
아주 잠깐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재미있는 사람이네요. 어떻게 생겼는지 벌써 기대가 돼요.>
“내가 찾아갈게요.”
<진심으로 기다리고 있을게요. 수리비는 이쪽에서 지급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요. 늘 건강히 있어 줘요.>
“그럴게요.”
다정함을 품은 살벌함에도 은호는 대수롭지도 않게 대꾸하며 연락을 끊었다.
휴대전화를 흔들며 예림에게 말을 꺼냈다.
“너 해고됐어. 축하해.”
은호의 목소리에는 진심이 가득 묻어났다.
“웃…기지 마.”
예림이 이를 부정했고, 은호는 슬쩍 아래를 바라보았다.
그림자가 꿈틀거렸다.
뭔가 온다는 건데, 이제 와서 다잡은 예림일 리가 없으니 은호는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아주 좋네.’
“……웃기지 마!”
예림의 머리카락이 나풀거릴 무렵, 사선으로 강한 힘이 밀려들었다.
그녀의 머리를 잡고 땅에 박듯 그대로 벽에 쑤셔 넣었다.
콰아아아앙!
격렬한 소리를 뒤로하며 은호는 고개를 돌렸다. 공간을 밟고 서 있는 것처럼 허공에 떠 있는 지혜가 보였다.
“……허.”
은호는 본능적으로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얼마 전에 지혜를 놀라게 해주려고 그냥 방을 찾아간 적이 있는데, 흑견이 없었다면 벽에 박힌 건 자신이었을지도 몰랐다.
“같은 편 아니에요. 진짜 아니에요.”
은호가 두 손을 뻗어 항복하듯 올렸지만, 지혜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걸어갔다.
평소 보았던 모습과 전혀 달랐다.
“유예림.”
그저 무겁게 예림을 불렀다.
톡톡.
누가 어깨를 두드리자 은호는 흠칫거리며 주변을 보았다.
옷을 잡아당기자 은호는 그제야 서율이 있다는 걸 알았다.
투명이 그의 힘이었으니까.
잡아당기는 힘을 따라 은호가 뒤로 빠졌고, 그제야 손을 놓았다.
“당신, 거기 서 있으십시오. 조사를 자세히 받아야 하니까요.”
지혜는 이미 예림의 머리를 움켜쥔 채로 살벌하게 은호를 가리켰다.
“……네.”
은호는 진짜로 움츠러들었다. 갑자기 왜 가을이 생각나는지 몰랐다.
잠깐 지혜가 피식 웃는 듯했지만, 은호는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
지혜는 그대로 주먹을 내리꽂았다.
쿠우우우웅.
건물 자체가 크게 요동쳤다.
극적인 상황.
그게 서로 생각이 달랐다는 걸 은호는 알아버렸다.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 * *
“…괜찮으세요?”
서율이 음료수를 넘기며 물었다.
“서율 씨.”
은호는 서율을 따라 다른 장소로 이동한 뒤였다.
당연히 탈도 벗은 채 그냥 모자만 눌러썼다.
“네?”
“…국장님 되게 무서운데요? 평소 어떻게 대드는 거예요?”
“죽음을 각오하고 하는 거죠.”
하하하.
서율이 웃었다.
눈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았다.
“국장님이 환수 밀렵꾼하고 정화자가 환수 관리국하고 초능력 관리국을 건들지 못한 이유가 본인 때문이라고 말했는데, 사실이었네요?”
“사실입니다. 국장님은 걸어 다니는…….”
“걸어 다니는? 그 뒤에 뭘 말하려고 했지?”
서율은 그 말에 굳어졌다. 숨도 못 쉬는 것만 같았다.
“…서서 죽은 것 같은데요?”
은호가 서율을 가리키며 웃자 지혜는 은호를 불렀다.
“서은호 씨.”
“미안해요.”
“덕분에 빠르게 체포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지혜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고마움을 표현하자 은호는 입을 벌렸다.
하지만 고개를 들자마자 날카로워진 시선에 은호는 입을 다물었다.
“다음번에는 부디, 언질을 주십시오.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서은호 씨는 다릅니다.”
훨씬 더.
더 많이 너그러워질 수 있었다.
“그럴게요.”
전혀 그렇게 할 얼굴이 아니었다.
지혜는 숨을 길게 내쉰 채 서율의 어깨를 꽈악 쥐었다.
“저, 저는 왜……? 아악.”
“유예림이 실토할 때까지 시간이 걸릴 겁니다. 그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려주십시오.”
“또 놓칠 일은 없을 거예요. 그쪽 대장이 유예림을 넘겼으니까요. 그래서 참 싫네요. 사람을 뭘로 보는지.”
은호는 음료수를 홀짝거렸다.
꼭 물건 취급하는 것 같았다.
“어쨌든, 다른 놈들도 넘길게요. 초능력 관리국한테 이번에는 놓치지 말라고 말해줘요.”
“당연합니다. 그곳에서 저지른 아주 큰 실수니까요. 뭘 더 받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든든한데요? 그럼, 저 먼저 갈게요. 뒤를 부탁드려요.”
은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요……?”
서율이 물었다.
“다른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거든요.”
은호는 조금 전과 달리 미소를 짓고 있었다.
뭔가 부러울 정도로 환한 미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