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101)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101화(101/30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 101화
101화. 싸움은 무의미했다
은호는 부스스한 눈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람 없이 일어나는 맛이 제법 좋았다.
이렇게 상쾌할 줄이야.
은호는 힘껏 기지개를 켜다 옆에 뚱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흑견에게 슬슬 다가가 몸을 기댔다.
“멍멍이 형님이 오늘따라 왜 그렇게 보실까.”
삐진 걸까.
뭔가 토라진 걸까.
그럴 리가.
‘어제 아무 일도 없었는데?’
밥도 잘 먹었고, 잠도 잘 잤다.
‘아. 산책도 했잖아?’
흑견은 산책을 좋아했다.
자신의 보폭에 맞춘다고 거의 기다시피하는 게 문제였지만.
“…아무것도 아니다.”
흑견은 고개를 돌렸다.
인간 주변에 왜 이렇게 뭐가 많은지 생각하고 있다는 말만큼은 절대 하고 싶지 않았다.
분명 은호는 의기양양해질 테니까.
흑견은 그 사실을 생각하니 아니꼬웠다. 발바닥이나 핥았다.
“뭐야? 혹시, 멍멍이 형님 사춘기야?”
“그게 뭔가?”
인간의 용어에 흑견은 발바닥을 핥다 말고 귀 한쪽을 올렸다.
“나 자신이 누구인지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해야 하나? 뭔가 좀 이유 없이 불안해진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 하여튼, 그런 과정이야.”
“…….”
흑견이 귀를 쫑긋거리기만 했다.
아무 말이 없자 은호는 흑견을 빼꼼히 바라보았다.
‘…진짜 사춘기일 리가 없는데.’
흑견은 성체였다.
‘아닌가. 성체가… 아닌, 아니지. 환수는 사춘기가 원래 늦게 오는 건가?’
이럴 때 필요한 건 태호였다.
은호는 다급히 일어나 휴대전화를 쥐었다.
[형. 형. 진ㅉ ㅏ 급해요.] [혹시 환수도 사춘기를 겪나요?] [지금 뭔가 멍멍이 형님이 이상한데, 진짜 그런가요?]그 뒤로 물음표를 품은 이모티콘을 와르르 보냈다.
휴대전화를 쥔 채 은호가 심각한 표정이 될 때쯤, 흑견도 깊은 고민을 했다.
생각해보면 대체 왜 화가 날까.
인간 주변에 다른 존재들이 많았던 적이 한두 번이겠는가.
‘…아니다. 처음에는 없었다.’
꽈악.
흑견은 앞발에 힘을 주었다.
처음에는 자신만 있었다.
이 집에 자신과 인간만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었다.
들락날락하는 이들이 늘어나고야 말았다.
폭시, 레비아탐, 일렉트, 흑묘성 등.
왜 점점 늘어나는지 몰라 흑견은 눈을 찌푸렸다.
며칠 전만 해도 은호는 유예림이라는 이름을 가진 인간하고 얽혀 웬 커다란 건물로 갔다.
거기서 구해온 다른 존재를 살핀다고 이리저리 움직였다.
은호는 어김없이 모두에게 웃어주었다.
그때, 가슴이 뭔가 답답했다.
다시금 생각해도 참 아니꼬울 수가 없었다.
‘……이게 사춘기인가?’
흑견은 의문에 빠졌다.
갑자기 온기가 밀려오자 흑견은 흠칫 놀라며 은호를 보았다.
처음으로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내가?’
자신이?
흑견은 놀란 눈을 했다.
대체 얼마나 풀어진 걸까.
은호의 방에는 그의 냄새가 가득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누가 오는 걸 눈치채지 못한다는 건, 달리 말하자면 죽음을 의미했다.
이건 존재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위험했다.
“멍멍이 형님?”
은호는 갑자기 커진 흑견의 눈을 빤히 보았다.
그럴 리가 없겠지만, 이상하게 뭔가를 두려워하는 것만 같았다.
“어디 아파?”
은호의 표정이 덩달아 굳어졌다.
“태호 형한테 갈까?”
“…아무것도 아니다.”
흑견은 시선을 돌렸다.
이상했다. 자신이 그럴 리가 없는데.
‘그래. 그때부터다.’
은호가 권석현인가 뭔가 하는 인간한테 죽을 뻔한 그때부터, 이상해졌다.
―아니, 아까 멍멍이 형님이 망토 같은 걸로 나를 덮어서 저놈의 공격을 막았잖아.
은호가 이상한 소리를 하기도 했다.
망토로 그놈의 공격을 막았느니, 뭐니.
자신은 그런 적이 없었는데.
“멍멍이 형님. 나 봐봐.”
은호의 손길을 따라 흑견의 고개가 움직였다.
주황색을 닮은 갈색 눈동자와 샛노란 눈동자가 마주한 그때, 흑견은 어떤 소리를 들었다.
찰그락.
뭔가 사슬이 끌리는 소리 같았다.
사슬이라고 하면 좋지 않은 기억뿐이지만, 이건 달랐다.
이상하게 은호의 심장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의 감정마저 쏟아져 내렸다.
멍멍이 형님이 아프면 안 되는데.
은호의 표정과 달리 격한 감정이 일렁거렸다.
걱정을 넘어 절박함에 가까웠다.
그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이상하게 마음이 평온해질 정도였다.
이게 대체 무엇인지 몰라도 흑견은 은호의 걱정을 덜어주고 싶었다.
“나는 아프지 않다.”
“그러면 왜 그래? 나 진짜, 너무 걱정된단 말이야.”
은호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게 단단하던 그가 흔들리자 흑견은 덩달아 마음이 움직였다.
“…인간 주변에.”
흑견은 말을 하다 말고 머뭇거렸다.
진짜 이 말을 꺼내야 할까.
귀를 쫑긋 세우며 흑견의 고개가 돌아갔다.
탁탁탁.
그 뒤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긁는 듯한 소리도 들려왔다.
은호는 뒷말이 궁금했지만, 흑견을 쓰다듬은 뒤 문을 열었다.
“은호! 은호!”
폭시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무슨 일이야?”
“저기서 애들끼리 싸워.”
폭시가 앞발을 뻗었다.
밖을 가리키자 은호는 대충 걸칠 걸 챙긴 뒤 폭시의 뒤를 따랐다.
집 앞에 싸울 존재가 누가 있을까.
“흑묘성하고, 모르는 애들하고 싸워.”
그 말에 은호는 잠이 확 깨버렸다.
폭시도 아직 성체가 아니긴 한데, 흑묘성은 진짜 새끼였다.
아빠 흑묘성의 보살핌이 필요한 나이인데 이게 어렵다 보니 허락을 맡고 집에 데리고 왔다.
지켜본 결과 고상한 말투와 달리 호기심도 많고, 감정도 잘 제어가 되지 않았다.
벌써 깨트린 접시가 몇 개인지, 망가트린 물건이 몇 개인지 몰랐다.
사고뭉치 그 자체였다.
이런 사고뭉치가 열받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궁금한데?’
은호는 흑묘성이 작은 발을 휘두르며 ‘하악’할 모습을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인간. 하늘에서 뭐가 떨어질지 모르는가?”
“……아.”
은호는 흑견이 던진 말로 상념에서 깨어났다.
흑묘성은 운석 같은 힘을 낼 수 있었다.
“그건 안 되지.”
여기에 환수들이 있다고 알릴 것도 아니고.
은호는 계단을 내려가며 폭시를 바라보았다.
최근 구출한 환수 중 폭시의 친구는 없었지만, 폭시는 환수들에게 묻어난 냄새를 맡았다.
―친구 냄새가 나!
폭시는 그 사실만으로 기뻐했다. 자신 역시 기뻤다.
드디어 한 걸음 다가갔으니까.
유예림 사건에 명백한 수확이 있었다.
―친구가… 살아 있어.
폭시는 그 말을 꺼내며 눈망울이 촉촉이 젖어갔다.
세 번의 봄이 지났기에 왜 무섭지 않았을까.
혹여 친구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함이 왜 없었을까.
사실 은호는 아직도 이 사건을 완전히 해결하지 못 해서 미안했다.
폭시는 앞으로 가다 말고 뒤를 보았다.
“은호, 슬퍼?”
감정이 선명하게 흘러나왔다.
물음과 동시에 폭시의 고개가 살짝 기울어졌다.
“아니. 그냥 여러 가지 생각이 들어서.”
폭시는 눈동자를 굴리다 은호를 빤히 보았다.
붉은 기가 도는 눈동자는 반짝거렸다.
앞발로 은호의 다리를 찔렀다.
“은호는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감정을 알 수 있어서 그럴까. 폭시는 배시시 웃다 앞으로 성큼성큼 뛰어갔다.
뒷모습만 봐도 신나 보였다.
뒤에서 등을 찌르는 손길에 은호는 고개를 돌렸다.
“괜찮다고 하니, 다 떠안지 마라.”
흑견이 콕 잡은 그 말에 은호는 웃음이 났다.
다 왜 이렇게 눈치가 빠른지 몰랐다.
은호는 폭시를 힐끔 바라본 뒤에 흑견을 양팔로 안으며 얼굴이 비볐다.
오늘은 흑견이 좀 이상했으니까.
“고마워.”
장난 말고 담백하게 인사했다.
뒤늦게 폭시를 따라가는 은호의 뒷모습을 보며 흑견은 밀려오는 감정에 혼란을 느꼈다.
기쁨과 동시에 그 기쁨에 대한 큰 의문이 밀려왔으니까.
‘진짜 사춘기… 라는 건가.’
* * *
“…여긴 은호의 집이니라! 허락을 맡아야 한다.”
흑묘성의 말이 들려왔다.
집에서 꽤 멀기에 은호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숲 쪽이었다.
“너 바보야? 집은 저기에 있잖아.”
한 환수가 떽떽하며 말하자 흑묘성은 충격을 받은 얼굴로 뒤로 물러났다.
“나, 나는 바보가 아니다! 나는 위대하다!”
뭔가 울먹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은호는 속으로 키득거리며 흑묘성하고 환수에게 다가갔다.
환수는 흑묘성보다 훨씬 더 컸다.
어딘가 모르게 스라소니를 닮은 기분이 들었는데, 귀 끝에 더듬이 같은 털이 길게 자라나 있었고, 날렵하며 탄탄한 몸은 하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다리는 길며 목에는 뾰족하고 두꺼운 가시가 둘려 있었고, 발톱과 몸에 초승달 같은 문양은 새카맣게 그려진 상태였다.
상당히 신비하기도 했는데, 집 근처에 이런 환수는 처음 보았다.
분명히 아크가 있을 텐데.
“…하, 아가야. 부모한테 가서 징징거리렴.”
환수는 앞발로 귀찮다는 듯 휘휘 저었다.
“아빠는 아파!”
흑묘성이 잔뜩 화가 난 얼굴로 소리치자 환수는 난감하다는 표정을 그렸다.
“그럼, 길을 잃어버린 거야? 아까 저기가 네 집이라며. 은호 어쩌고 했잖아.”
환수는 슬쩍 집을 보려 고개를 돌리다 말고 그대로 굳어졌다.
인간이 서 있었다.
환수는 다급히 흑묘성에게 다가가 뒷덜미를 물고는 달렸다.
“잠…….”
은호는 목소리를 내기도 전에 일어난 일에 허망한 눈을 했다.
너무도 순식간에 벌어졌다.
“멍멍이 형님!”
은호는 흑견을 불렀다.
흑묘성을 데려와야 했다.
“타라.”
흑견은 바로 몸을 낮췄고, 은호와 더불어 폭시가 올라탔다.
“어떻게……. 내가, 내가 그냥 말렸으면 되는데.”
폭시의 귀가 뒤로 접히며 초조함에 몸을 덜덜 떨었다.
“괜찮아. 네 탓이 아니야, 폭시야. 저 친구가 뭔가 오해했나 보다.”
“그래도… 지금, 엄청 무서울 거야.”
폭시는 눈앞에 흑묘성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자꾸 반복되는 것만 같았다.
흑묘성은 어렸다.
은호를 부를 게 아니라, 자신이 잘 대처했어야 했는데.
“괜찮아. 다치게 할 생각은 없어 보였어.”
은호는 폭시를 다독거렸다.
얼마나 놀랐을까.
친구를 눈앞에 잃은 기억 때문에 더 크게 반응했을지도 몰랐다.
“너라면 감정을 보았으리라 생각한다.”
흑견까지 이어진 말에 폭시는 고개를 올렸다.
흑견이 저런 말도 해주다니.
왠지 기뻐서 폭시는 앞발로 흑견을 쓰다듬었다.
“맞아. 멍멍이 형님 말이 맞아!”
폭시는 그 환수에게 읽었던 감정을 떠올려보았다.
그냥 조금 짜증이 날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낙담하는 건 일렀다.
다시 가슴 속에 희망이 가득 차차 폭시의 꼬리가 크게 흔들렸다.
“멀리 못 갔어. 나도 냄새를 맡을 정도로 아주 선명한데?”
폭시는 냄새를 킁킁 맡았고, 흑견은 자연스럽게 나무를 피해 달렸다.
그대로 앞으로 나아가나 싶던 차, 흑견은 왼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살기였다.
아직 옅지만, 자신에게는 선명히 느껴졌기에 흑견은 곁눈질로 살펴보았다.
그쪽에 다른 존재가 있었다. 이쪽을 보며 굉장히 날을 세우고 있었다.
잠깐 고개를 돌리며 폭시를 보았다. 시선이 마주쳤다.
“왜에?”
전혀 눈치채지 못한 모양인지 폭시는 두 눈을 깜박거렸다.
‘그래. 내가 놓친 건 인간뿐이다.’
자연에서 잠깐의 실수는 곧 죽음이 되기에 흑견은 만족스러웠다.
시선을 올리자 은호는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그 시선 끝에 자신이 방금 보았던 환수가 존재했다.
무언가를 느낀 건지, 본 건지 모르겠지만, 안경을 썼다.
깜짝 놀라 더듬거리는 듯한 행동에 흑견은 속으로 웃었다.
“…멍멍이 형님.”
은호는 고개를 돌려 흑견을 보다 눈이 마주쳤다.
활짝 웃어주며 말을 꺼냈다.
“멍멍이 형님도 봤어?”
“봤다. 저쪽에서 이쪽을 노려보고 있다.”
“진짜? 어디, 어디에서 보고 있어?”
폭시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던 차, 무언가를 발견했다.
부메랑 같은 빛으로 된 원반이 날아왔다.
폭시가 발톱을 꺼내며 휘두르려던 차, 어둠이 올라와 원반을 막았다.
발가락보다 조금 더 긴 발톱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폭시는 이내 발톱을 집어넣고는 귀를 살짝 내렸다.
은호는 폭시의 행동을 물끄러미 보다 말고 빨리 시선을 돌렸다.
뒤늦게 폭시가 고개를 올렸다. 왠지 은호에게 행복함이 가득 보이기에 꼬리를 크게 흔들었다.
“온다.”
흑견이 어둠을 지우며 말한 그때, 떨어진 원반에서 무언가 튀어나왔다.
폭시와 은호의 눈이 커졌다.
“나왔어!”
“나왔어…….”
폭시는 밀려드는 호기심으로 어깨에 힘을 주며 몸을 부풀렸고, 은호는 폭시를 붙잡은 채 입을 벌렸다.
원반 너머로 튀어나온 건 깃털 같은 기다란 털을 가진 꼬리였다.
흔들리고, 요동치는 그 꼬리를 보자 그제야 은호는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설렘이 묻어난 미소가 입가에 가득 걸려서는 시선을 떼지 못했다.
‘어떤 친구인 거지?’
꼬리 다음으로 나온 건 몸이었다.
풍성한 털은 진한 남색이었고, 털 중간중간에 하얀색 파도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3초 골든레트리버를 닮은 얼굴이지만, 얼굴 크기는 주먹 두 개를 합친 것처럼 작았으며 꽤 도도해 보였다.
귀는 얼굴보다 더 큰 채 동그란 모양으로 위로 올라왔고, 귓구멍에 문양이 가득했다.
무척 가볍고 쭉 뻗은 다리부터 바닥으로 떨어졌다.
다시금 바라보니 꼬리는 몸을 가리고도 남을 만큼 굉장히 길고 컸다. 머리 쪽으로 살짝 구부러진 상태였다.
환수는 몸을 드러내자마자 날을 세웠다.
“방금 그 애, 건들지 마라.”
“…그 애?”
은호는 어떤 애인지 몰랐다.
흑묘성을 말하는 걸까.
“…내 동생 말이야.”
환수는 조금 주저하듯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