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103)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103화(103/302)
103화. 싸움은 무의미했다(3)
제법 매서운 놀림이었지만, 프스테는 가묘보다 더 큰 몸집으로 다가온 앞발마저 눌러버렸다.
“네가 아니라 언니라고 해야지.”
프스테는 그 모든 게 익숙한 것처럼 평온하게 말을 꺼냈고, 가묘는 으르렁거리며 입을 열었다.
“또 가족 놀이야? 가족 놀이가 그렇게 하고 싶으면 다른 데 가서 찾아보라고!”
“너를 계속 찾아다녔어, 래빈아.”
프스테의 말에 래빈이라는 이름을 가진 가묘는 코를 벌름거렸다.
하지만 이내 다시 날카롭게 반응하며 목에 둘린 가시를 빙글빙글 움직이다 프스테에게 겨눴다.
“이젠 제발 가! 도대체 언제까지 날 따라올 건데? 징그럽다고!”
“……래빈아. 나한테 너밖에 없다는 거 알잖아.”
“그게 문제라고! 바로 그게 문제야! 너의 그 집착이 날 숨이 막히게 하는지 모르겠어?”
집착이라는 말에 가묘를 짓누르던 프스테의 앞발에 힘이 빠졌다.
그 잠깐의 틈을 타고 래빈은 빠르게 도망쳤다.
조금 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의 속도에 은호는 눈으로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묘한 적막감이 감돌았고, 흑견은 이상하게도 이 상황이 불편했다.
“인간. 이제 저 꼬맹이도 되찾았으니 여기에 더는 볼일이 없다. 그렇지 않은가.”
“…볼일이 생겨버렸는데?”
은호는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거절당한 프스테의 표정을 보자 당장 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처량했다.
“어째서인가?”
“음. 일단, 우리 때문에 싸운 거니까?”
은호는 품에 안은 흑묘성의 볼을 찔렀다. 안으로 들어가다 탱글탱글하게 다시 원래 돌아갔다.
흑묘성의 눈이 가늘어졌다.
“나는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다.”
“정말로 그래?”
은호가 흑묘성을 빤히 보자 흠칫거리다 눈동자를 급히 돌렸다.
이내 꼬리를 붙잡아서는 작게 속삭였다.
“…잠깐 뛰다 보니, 거기였느니라.”
“내가 분명히 마당에서 벗어나지 말라고 그랬지? 폭시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미안하다.”
흑묘성은 고개를 숙인 채로 사과했다. 목소리가 점점 기어들어 갔지만, 사과했기에 은호는 머리를 쓰다듬었고, 폭시는 그제야 미소를 띠었다.
“무사하니까, 나는 이제 괜찮아!”
“그럼, 일단 집에 갈까?”
은호는 다른 애들을 재촉하다가 우두커니 서 있는 프스테에게 걸어갔다.
“친구야. 너도 같이 갈래? 무슨 일인지 들어줄게. 지금 네 말을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하잖아?”
프스테는 좌절한 표정으로 은호를 바라보았다.
* * *
은호는 프스테에게 물을 건넸다.
프스테는 여전히 멍한 표정을 하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동생은 나와 다른 종이야.”
“일단, 물부터 먹을래? 너무 놀란 것처럼 보였어.”
조용히 건네는 위로에 프스테는 눈을 한 번 깜박거렸다.
“내가 이상하지 않아? 다른 종인데, 피도 안 섞였는데, 가족이라고 말하잖아.”
처음 봤기에.
어쩌면 이 집으로 들어올 때부터 이상하게 편안한 냄새와 온기가 가득했기에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꾹 감춰뒀던 말이 잘도 흘러나왔다.
“그게 왜 이상해?”
은호의 물음에 프스테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정말로 이상하게 보고 있지 않았다.
은호는 프스테에게 조금 더 다가가 목소리를 낮췄다.
“나도, 여기 있는 모두를 내 가족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내가 이상해 보여?”
프스테는 그 말에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은호의 근처를 바라보았다.
인간 바로 뒤에 커다란 검은 존재가 배를 바닥에 붙인 채 자신을 보고 있었고, 은호의 두 무릎에 여우를 닮은 존재와 고양이를 닮은 존재가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이미 은호가 흘린 이야기를 들었는지, 모두 표정이 부드럽게 변했다.
특히 커다란 존재는 잠깐 눈이 커지더니 이내 너무도 마음에 드는 소리를 들은 것처럼 눈웃음을 지었다.
프스테는 이 분위기에 굳어졌던 표정이 빠르게 풀렸다.
‘……가족이구나.’
정말 그런 분위기가 흘렀다.
이런 분위기가 어떻게 날 수 있을까.
어떻게 가족이 될 수 있었을까.
자신은 이렇게도 애가 타는데.
프스테는 밀려드는 감정을 숨긴 채 입을 열었다.
“…이상하지 않아. 전혀. 조금도.”
“그렇지? 너도 이상하지 않아. 그냥 걱정 많은 언니와 사춘기인 동생 같던데?”
은호의 입에서 또 ‘사춘기’가 나오자 흑견의 귀가 쫑긋거렸다.
“…사춘기? 그게 뭐야?”
프스테가 기다란 꼬리로 바닥을 쓸 듯 흔들었다.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그래. 이때 약간 말도 안 들어.”
“……동생은 사춘기구나.”
프스테는 바로 납득했다. 그런 과정이라고 생각하니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인간.”
프스테는 곧 수줍게 입을 열었다.
“응?”
“그런데 정말, 정말… 내가 언니 같아 보여?”
“아까 누가 봐도 그렇게 보이던데? 철부지 동생의 잘못을 대신해 사과하는 언니 말이야.”
은호가 씩 웃자 프스테는 따뜻한 눈을 하며 그제야 혀로 그릇에 담긴 물로 입을 축였다.
“……그런 말 처음이야.”
“진짜? 내 눈에는 그냥 평범해 보였어. 원래 자매든 형제든 틱틱거린다고 하잖아? 물론, 계속 사이좋을 수는 있는데, 어떻게 계속 그렇게 하겠어? 안 그래?”
은호는 말을 꺼내며 아주 잠깐 그리움을 드러냈다.
“그건 맞아.”
프스테는 키득거렸다.
눈동자를 굴려 은호의 무릎에 옹기종기 모인 두 존재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잠이 든, 고양이를 닮은 존재의 머리맡을 여우를 닮은 존재가 핥아주고 있었다.
“…내 동생은 말이야. 내가 발견했어. 아주, 아주 어린 새끼 때부터.”
지금 고양이를 닮은 존재보다 더 어렸을지도 몰랐다.
“엄마하고 같이 살았어. 동생 이름도 내가 붙였어. 우리는 아주 행복했어. 아주 많이.”
프스테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그때를 떠올리며 그리움에 묻어난 얼굴을 했다.
“동생은 어릴 적부터 호기심이 많고, 말썽꾸러기였어. 뭔가를 수집하는 걸 참 좋아했고. 그 마음은 잘 모르겠지만, 같이 뛰어놀았어.”
“즐거웠겠다.”
은호가 대꾸하자 프스테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때만큼 행복한 적이 없었어.”
프스테는 은호를 바라보았다.
미안함이 섞여 있었다.
넋이 나가 따라오긴 했지만, 은호가 혹시나 다른 마음을 먹을까 경계했는데, 그것도 다 착각이었다.
이런 인간도 있다는 걸 오늘 처음 알게 됐다.
“동생이 어릴 적에 인간의 물건에 관심을 가진 적이 있어. 아직도 그게 뭔지 모르겠는데, 그 물건 때문에 마을로 인간이 왔어.”
인간이라는 말이 나오자 은호는 미간을 좁혔다.
그 후는 제발 예상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길 빌어보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이 책임을 물어 우리는 무리에서 쫓겨났어.”
은호는 저 말에 레비아탐이 떠올랐다.
지금은 화해했다고 해도 무리에서 쫓겨났으니까.
여기에 레비아탐이 있었다면 아마도 눈물을 흘렸을지도 몰랐다.
“나도, 동생도 너한테 예민했던 건… 밥을 구하러 나간 엄마가 돌아오지 않게 된 일 이후부터였어. 아직도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어.”
은호는 저 말에 당장 ‘납치’부터 떠올렸다.
그렇게 사라지는 건 사실 그 일밖에 없었으니까.
“반드시 찾을 수 있어!”
폭시가 목소리를 올렸다.
간절함을 담아 입을 열었다.
“내 친구는 인간한테 붙잡혀서 세 번의 봄이나 지났는데, 얼마 전에 살아 있다는 걸 알게 됐어. 너도 그럴 거야. 꼭!”
본인의 일인 것처럼 반응하는 모습에 프스테는 미소가 저절로 나왔다.
“고마워. 나도 아직 믿고 있어.”
“그럼, 네 동생은 그 일에 죄책감을 가져서 널 밀어내는 거야?”
은호의 물음에 프스테는 고개를 살짝 올렸다. 동그랗고 큰 귀가 아래로 살며시 내려갔다.
“그렇게… 생각해. 그 일 이후, 나는 하나밖에 없는 가족을 지키려고 좀 더 엄해졌고, 동생은 계속 혼란스러워했어. 그러다가 싸웠어. 좀 크게.”
―…네가 왜 내 언니인데? 우린 다른 종족이야! 왜 그걸 몰라?
아직도 그 말이 가슴 속에 남아 있었다.
아팠다.
지금도 피가 흐르는 것만 같았다.
“동생은 도망쳤어. 나는 그런 동생을 쫓아갔고. 그럴 때마다 동생은 누군가와 싸웠는지 상처가 있었어. 나는 더더욱 동생을 놓을 수가 없었어. 뒤를 쫓고, 또 쫓았는데, 내가 지긋지긋하대. 나는 동생밖에 없는데.”
프스테는 여러 표정 속에 가려졌던 진짜 표정을 드러냈다.
처음 은호가 보았던 지친 기색이 가득 묻어났다.
“…너도 내가 징그럽다고 생각해?”
프스테는 자포자기하듯 물었다.
정말로 징그러운 일을 자신이 하고 있는 거라면 그만둬야 할 테니까.
이 행동이 동생을 더욱 괴롭게 했다면, 사과해야 했다. 그건 정말로 집착일지도 몰랐다.
“……그게 무슨 소리야?”
은호는 정색했다.
“언니가 동생을 걱정하는 게 왜 징그러운 일인데? 그건 당연한 거야.”
“당연한… 일이야?”
“당연하지! 동생이 아무 말도 없이 집을 나갔는데, 이걸 어떻게 걱정하지 않을 수가 있어?”
“정말……?”
“너의 유일한 가족이잖아?”
은호는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가족이었다.
남은 한 명마저 사라진다면 그 막막함과 두려움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거대했다.
은호는 손을 뻗어 프스테의 앞발을 만졌다.
이 발로 동생을 얼마나 쫓았던 걸까.
“그럼, 하루하루마다 숨이 막힐 텐데. 밥은 잘 먹고 있는 거야? 잠은 언제 잔 거야?”
“왜… 나를 걱정하는 거야?”
프스테는 걱정이 담긴 저 말에 이상하게 눈시울이 뜨거워질 것만 같았다.
인간인데.
오늘 처음 봤는데.
어떻게 저만큼 깊이 걱정해줄 수 있을까.
은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웃으며 프스테를 쓰다듬었다.
프스테의 입가가 파르르 떨릴 무렵, 은호는 입을 열었다.
“밥 잘 먹어야 해. 잠도 잘 자야 하고. 그러지 않으면 모든 걸 버틸 수 없어. 네가 원하지 않았는데, 감정이 격해질 수도 있고, 하면 안 될 말을 해버릴 수도 있어.”
프스테가 부모를 잃은 시기가 너무 빠르지 않았나 싶었다.
프스테는 어릴 때,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것 같았으니까.
“…이미 해버렸어. 동생이 나보고 언니가 아니라고 해서, 나는 너 때문에 엄마가 사라진 거라고 말해버렸어.”
프스테는 은호를 보며 원래 나이로 돌아간 것처럼 말했다.
그때의 슬픔이 얼굴에 선명히 보였다. 눈물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괜찮아. 사과하면 돼. 동생한테 달려가서 그때, 그 말을 해서 정말 미안하다고 말하면 돼.”
“……그러면 될까? 너무 늦지 않았을까?”
은호는 프스테의 대답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늦었어. 아직 그 말을 꺼낼 수 있잖아?”
흘러오는 감정에 폭시가 은호를 바라보았고, 묘한 말에 흑견이 시선을 움직여 은호에게 향했다.
“친구야, 혼자 갈 수 없으면 같이 가자. 내가 같이 가줄게.”
은호는 손을 뻗으며 웃었다.
* * *
래빈은 머리를 나무에 박았다.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다고 생각했다.
머릿속으로 지워버리려고 그렇게 애를 쓰지 않았던가.
나무를 붙잡은 래빈의 발톱은 뾰족했고, 그대로 밀려오는 여러 감정에 나무를 할퀴었다.
‘왜.’
래빈이 나무를 할퀴면 할퀼수록 나무에 깊은 자상이 늘어났다.
‘대체 왜 오냐고!’
그저 혼란만 남았다.
마지막으로 힘껏 치자 나무가 우지끈 소리와 함께 부러지고 말았다.
래빈은 뒤를 바라보았다.
또 쫓아올까.
또 쫓아왔을까.
다음번에 얼굴을 보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야.”
그때, 살벌한 목소리가 쫙 깔렸다.
래빈은 털을 바짝 올리며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다.
덩치가 굉장히 큰 존재가 있었다.
머리는 닭을 닮았는데, 꼬리 쪽에 뱀 같은 꼬리가 사납게 움직이고 있었다.
살벌한 눈빛에 래빈의 목 주변에 있던 가시가 빙글빙글 움직였다.
“나무, 조심해. 또 부서트리는 일은 없어야 할 거야.”
그 존재는 그저 경고한 뒤, 가던 길을 걸어갔다.
“……하.”
래빈은 그 말이 우스웠다.
머릿속이 복잡하니 괜히 모든 게 짜증이 섞였다.
“네가 뭔데?”
래빈이 입을 열었고, 걸어가던 환수는 우뚝 서 래빈을 바라보았다.
“시비 걸고 싶다면 딴 애들 알아봐. 나는 기어오르는 놈들한테 자비롭지 않으니까.”
환수는 오만함을 드러내듯 코웃음을 쳤다.
그때, 어디선가 달려오는 소리에 래빈은 뒤로 물러났다.
“형님이 봐준다고 하잖아? 그럼 냉큼 물러가야지.”
순둥순둥한 멧돼지를 닮은 존재는 아주 긴 팔을 움직여 커다란 손으로 래빈을 겨눴다.
“됐어.”
“알겠습니다, 형님.”
멧돼지를 닮은 존재는 냉큼 고개를 숙이며 래빈에게서 시선을 뗐다.
“…봐준다고? 날?”
래빈은 화가 났다.
자신의 잘못으로 무리에서 쫓겨난 그 후로 늘 짙은 무력감에 휩싸였다.
쫓겨난 이후에 어리다는 이유로, 힘이 없다는 이유로 무시당하고, 핍박받았다.
‘무엇보다…….’
까드득.
래빈은 생각을 멈췄다.
자신은 이제 아무도, 누구에게도 무시당하고 싶지 않았다.
꼭 그때로 돌아간 것만 같았으니까.
래빈이 빠르게 닭을 닮은 환수에게 돌진하던 그때, 화려하고 새하얀 날개가 펼쳐지며 강한 풍압이 밀려왔다.
뒤로 밀리고 곧바로 묵직한 앞발이 목을 짓눌렀다.
“너, 주제를 알고 설쳐. 예전의 나라면 당장 죽였을 테니까.”
차갑고, 싸늘한 시선에 래빈은 당장이라도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처음 본 존재한테 당해버렸다.
또 무력해졌다.
‘이게 다…….’
“아크! 멧복서!”
은호의 목소리가 들리자 아크는 화들짝 놀라며 발을 치웠다.
“내가 괴롭힌 게 아니다.”
아크가 딱 잘라 말했고, 아크를 지나 프스테가 래빈에게 다가갔다.
래빈이 프스테를 본 순간, 인상을 가득 구겼다.
“…날 비웃으러 왔어?”
다 봤겠지.
저 닭같은 존재한테 너무도 쉽게 당하는 걸 봤겠지.
“아직도 내가 그때의 어린아이 같으니까, 꼴 좋다 싶지? 비웃어. 실컷 웃으라고.”
분했다.
분통해서 하고 싶지 않은 말이 자꾸만 입에서 흘렀다.
이게 아닌데.
이 말을 하려던 게 아닌데.
프스테는 래빈을 힘껏 안았다.
“…네가 무사해서 다행이야.”
떨림 속에 묻어난 걱정스러운 말과 꽉 끌어안은 저 온기에 래빈의 표정이 빠르게 무너져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