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106)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106화(106/302)
106화. 유령과 귀여움은 한 끗 차이
“아, 해봐. 아.”
태호의 손길을 따라 레비아탐이 입을 벌렸다.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이리저리 굴렸다.
딴 건 몰라도 ‘아’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충분할 정도로 알게 되었다.
‘나중에 헤인이한테 말해봐야지.’
헤인은 인간을 궁금했으니까.
벌써 밀려오는 설렘으로 레비아탐의 통통한 꼬리가 바짝 섰고, 은호는 초조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아주 좋아. 정말 좋아.”
하지만 태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굉장히 긍정적이었기에 은호는 주먹을 쥐었다.
“진짜요? 진짜 괜찮아요?”
“그래. 경과가 아주 좋아. 레비아탐만큼 훈련을 잘 따라주는 환수들이 많으면 좋을 텐데, 그게 좀 어렵더라고.”
태호는 레비아탐을 너무도 사랑스럽게 바라보았다.
사실 레비아탐만큼 순한 환수가 없었다.
울음소리도 꾀꼬리 같았고, 지금도 이렇게 방긋 웃어주며 손길을 거부하지 않는데 어떻게 예뻐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아, 폭시도 있지.’
태호는 생각만으로 오늘 하루에 쌓였던 모든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기분을 느꼈다.
그야말로 행복했다. 이걸 다른 말로 뭐라고 할까.
태호가 생각에 빠진 사이에 은호는 얼른 레비아탐에게 알렸다.
“레비아탐. 지금 상태가 아주아주 좋대.”
“정말롬?”
“그럼!”
은호가 손을 뻗자 레비아탐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앞발을 뻗었다.
착!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 은호 씨.”
“네?”
“조금 있다가 레딩 상태 보러 갈 건데, 괜찮겠지?”
“괜찮죠. 이게 참, 분명 백수인데 묘하게 바쁜 게 신기해요.”
“은호 씨.”
“네?”
“자꾸 옆에서 부러운 소리 할래?”
태호는 은호를 가느다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은호가 제공하는 정보에 대한 대가는 주고 있었다.
전반적인 생활에 필요한 것도 지원해주고 있었다.
즉, 은호는 놀면서 돈이 들어온다는 바로 그 전설의 백수였다.
“이참에 마음을 바꿔서 우리 연구소에 들어올래?”
“그것보다 퇴사하면 다 해결되는데 어때요? 솔직히 형 정도면 꽤 많이 벌어 놨을 거잖아요. 이쪽 생활 되게 좋은데요. 같이할래요?”
은호는 우쭐거리며 입꼬리를 올렸다.
이것이 백수의 힘이다.
그렇게 당당하게 알리는 것만 같았다.
아주 얄미웠다.
“은호 씨.”
“네?”
은호는 싱글벙글 웃었다.
“내가 그만두잖아?”
“네네.”
“농담 아니라, 여기로 국가원수가 오는 광경을 볼 수 있을걸? 그것만 있을까. 연구원들이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울고 있을 거고. 수많은 관계사 사장님이 내 집하고 연구소에 찾아와 살려달라고 빌지도 몰라.”
태호가 손을 뻗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크게 휘두르자 레비아탐의 고개가 덩달아 따라갔다.
“…농담이죠?”
은호는 목덜미를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태호가 유명하다는 건 수없이 많이 들었지만, 그래도 저게 가능하다니.
“농담이면 나도 얼마나 좋을까. 귀찮지도 않고, 깐깐하지도 않으니까.”
태호가 등받이에 기댄 채 고개를 살짝 뒤로 젖혔다.
시야 안에 경악하고 있는 은호가 보여 웃음이 터졌다.
“왜? 신기해?”
“…아니, 형. 형 지금 감시받아요?”
“감시받긴 했는데, 내가 하지 말라고 딱 잘라 말했지. 그런 삶은 숨이 막히잖아?”
모든 분야를 제쳐두고 환수 연구소로 오겠다고 한 건 자신의 의지였다.
수많은 선택 중에 가장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호는 은호의 표정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딱하다는 얼굴로 안 봐도 돼. 내가 능력이 좋다고 했잖아? 다들 날 쉽게 못 건드려.”
“그게 아니라. 만약에 형이 그만둔다고 하면 제일 먼저 가을 씨가 달려와서 멱살 잡을 것만 같아서요.”
스르르륵.
그때, 문이 열리자 태호는 반사적으로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을의 매서운 눈빛에 변명부터 튀어나왔다.
그만두고 싶다는 소리를 안 한 것도 아니라 찔렸다.
“가정, 가정하고 있었어! 그렇지, 은호 씨?”
태호가 억지로 웃으며 은호의 팔을 건드렸고, 은호 역시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마, 맞아요! 만약에 형이… 어쩌고저쩌고하면서 말을 꺼내고 있었지. 형이 절대로 그만두겠다느니 뭐니 말한 게 아니에요!”
“박사님이 그만둘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건 그 누구보다 제가 잘 알고 있으니 겁먹지 않으셔도 됩니다.”
지금 태호에게 딸린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몰랐다.
태호는 아직 산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이 남았고, 일을 관둔다고 해서 정부의 주시가 끝나긴커녕 더 심해질 게 뻔한데 어떻게 그만두겠는가.
“그것보다 왜 저만 보면 두 분 다 겁을 먹으십니까?”
가을은 안경을 올린 뒤 태호와 은호를 바라보았다.
그 물음에 두 사람은 서로 눈빛을 공유하자마자 괜히 크게 웃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지금 개인정보는 물론, 가지고 있는 모든 걸 털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그냥 터는 게 아주 탈탈 털릴 가능성이 컸다.
가을은 짧게 숨을 내쉰 뒤, 레비아탐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안녕, 레비아탐.”
그 손이 뭘 의미하는지 알기에 레비아탐은 방긋 웃으며 덩달아 흔들었다.
“안녕!”
귀를 홀리는 목소리도 모자라 웃어주다니.
역시 이곳에서 가장 예쁜 건 환수였다.
레비아탐을 향해 웃어준 가을은 방금과 다른 얼굴로 은호를 바라보았다.
뭘 잘못했나 싶게 만들 정도로 차가웠다.
“은호 씨.”
“…네?”
“지금 환수 관리국에서 은호 씨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다고 하는데 시간 괜찮습니까? 급하면 언제든지 일정을 바꿔도 되니 부담가지지 않으셔도 됩니다.”
은호는 그 말에 당장 휴대전화를 꺼냈다.
아무리 봐도 지혜에게 연락 온 흔적이 없었다.
“국장님한테 연락이 안 왔는데요?”
“공식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기록에는 남지 않을 겁니다.”
“공식적인데 기록에 남지 않아요? 앞과 뒤가 맞지 않은 소리 같은데요?”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환수 연구소’와 연계했다고 공식 기록이 남을 겁니다. 하지만 누구와 연계했는지는 나오지 않습니다.”
“아아.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은호는 싱긋 웃었다.
이렇게 해야 환수 연구소에서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자신을 최대한 보호할 수 있었다.
누구와 만났는지 알리지 않는다면 나중에 누군가를 대신해서 말할 수 있을 테고, 그게 아니더라도 기밀이라고 말해버리면 그만이었다.
“아, 오늘 이렇게 만난 김에 한 가지 제안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제안이요?”
은호는 가을의 제안에 괜히 레비아탐의 꼬리를 만지작거리며 긴장감을 풀었다.
제안이라는 것치고 막 좋았던 적이 없었다.
“이 이후는 박사님께서 말씀하실 겁니다.”
가을이 자연스럽게 태호에게 말을 넘기자 그는 살짝 당황했다.
왜 벌써 그 말을 꺼내냐는 듯 가을을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불만이냐는 듯한 표정을 그리고 있었다.
“어차피 말씀하실 거잖습니까. 늦으면 뭐 하겠습니까? 제가 더 귀찮아질 뿐입니다. 아니면 박사님께서 따로 처리하시겠습니까?”
“저번 일로 내가 가을 씨랑 의논을 해봤어. 물론, 여기에 이지혜 국장도 포함되어 있고.”
태호는 냉큼 말을 꺼내며 꽤 무게감을 잡았다.
웃길 법하지만, 은호는 자신만 모르는 이 상황에 그저 의문만 생겼다.
“저번 일이라면 유예림 사건을 말하는 거예요?”
“맞아. 가을 씨하고 은호 씨가 손잡고 나와 이지혜 국장의 뒤통수를 화끈하게 쳐버린 일 말이야.”
“그때 꽤 괜찮았습니다.”
가을이 슬쩍 미소를 흘리며 꺼낸 말에 태호는 입이 간지러웠지만 아주 힘겹게 참아냈다.
“어쨌든, 그 일로 은호 씨한테 더 많은 보호가 있어야 한다고 판단을 내렸어.”
“감시자가 붙는다. 뭐 그런 거 아니겠죠?”
“절대 아니지.”
태호가 손가락을 꺼내 좌우로 흔들었다.
“그럼 어떤 식의 보호를 말하는 건데요?”
“은호 씨를 국가의 특별 보호 인물로 지정해두는 거야. 바로 나처럼. 이런 경우는 어떤 일이 터져도 정부가 나서서 도와줄 거야.”
“이걸 다르게 말하자면 정부의 손아귀에 있게 된다는 말이죠?”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 하지만 소속되는 건 절대 아니야. 네가 다른 나라로 가겠다는 서명 정도만 받으면 끝이야. 아…, 그게 소속처럼 생각이 될 순 있긴 하겠네.”
태호는 말끝을 흐리며 바로 은호를 바라보았다.
화가 났을까.
조마조마하던 마음과 달리 은호의 표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뭔가를 고민하는 눈치였다.
“날 인정해주는 거죠? 내가 뭘 하든 공신력이 생기는 거고요?”
“…그렇지. 뒤에 정부가 있을 테니까.”
“귀찮은 일은 안 시키고요.”
“귀찮은 일…?”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이런 거요.”
“아주 가끔 국가에서 요구해오긴 해. 한 1년에 두 번 정도?”
“소속은 죽어도 아니고요?”
“그렇지. 은호 씨는 초능력자도 아니고, 뭐 어디 가입한 것도 아니니까. 특별 보호 인물로 지정된다고 해도 정부에서 인재 유출을 막는 조치일 뿐이니까 괜찮아. 계약서도 쓰니까, 천천히 생각해봐도 돼.”
“그런 거라면 알겠어요. 생각해볼게요.”
은호가 웃으며 긍정적으로 바라보자 제안을 한 태호도, 이 제안에 밑바탕을 깐 가을도 살짝 놀랐다.
“그 일 이후,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예요.”
환수들을 보호하고 지키려면 힘이 있어야 했고, 자신 역시 공신력이 있다면 좋다는 걸 느꼈다.
무엇보다 소속되지 않고, 공신력을 얻을 수 있다니. 왜 생각을 안 해볼까.
“그럼, 이제 레딩한테 가볼까요?”
은호가 팔을 뻗자 레비아탐이 익숙하다는 듯 꼬리로 팔에 매달렸다.
* * *
“…혹시 들려?”
은호가 교감의 힘을 드러내지 않은 채 레딩에게 물었다.
레딩의 귀 부분은 하동윤이라는 인간에게 뽑혀버렸다.
하지만 다행히도 신경이 살아 있었기에 최근 수술을 통해 장치 하나를 이식했다.
해당 장치와 노트북을 잇는 긴 줄이 보였다.
레딩은 가만히 앉아 눈을 깜박거렸다.
“…으으음. 뭔가 더 웅웅거려.”
“더 웅웅거린대요.”
은호가 말했고, 레딩의 귀와 연결된 장치를 이리저리 살피던 태호는 바로 옆으로 가 노트북을 두드렸다.
“이젠 어때?”
“들려?”
태호의 물음을 따라 은호가 다시 입을 벙긋거렸다. 계속해서 말을 걸기에 레딩은 귀에 집중하고자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려?”
아주 잠깐이지만 뭔가 웅웅거리는 소리 대신 다른 게 들렸다.
그때, 레딩의 눈이 커졌다.
눈망울이 일렁거리자 어떤 상태인지 모두 다 알 수 있었다.
“여기네! 이거네! 잠시만, 저장 좀 해야겠어.”
태호가 이리저리 자판을 두드리는 동안 은호는 교감의 힘을 손끝에 피워내며 말했다.
“방금 들렸어?”
“…뭔가, 뭔가 들렸어.”
“이제 천천히 기다리자. 이 기쁨은 나중으로 미루는 거야. 지금은 재활 훈련에 집중하고, 또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는 거야.”
은호가 천천히 레딩을 쓰다듬자 레딩은 아직은 어색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조짐이 좋아. 신경이 죽지 않게 장치랑 연결했는데, 제대로 연결된 모양이야. 이게 현재 장치가 낼 수 있는 최대 출력인데, 이렇게 계속 압박을 가하면 신경이 죽어버릴 수 있으니까 천천히 접근해야 해. 늦더라도 2년 안에 들릴 수 있을 거야.”
“굉장히 빠르네요?”
은호는 태호가 가진 저 기술력이 슬슬 무서워지려고 했다.
대체 태호는 뭘까.
“이제 문제는 날개야. 레딩의 날개가 어떻게 생겼는지 기록에만 있을 뿐이니까. 다른 레딩의 날개를 가까이 볼 수 있으면 좋겠는데. 혹시 가능할까, 은호 씨?”
“이래서 나를 데리고 왔네요.”
“겸사겸사라고 해줄래? 이렇게 부탁해서…….”
“괜찮아요, 형. 형이 먼저 말하지 않아도 내가 물어봤을 테니까요.”
은호는 잠깐 헤드셋을 벗었다.
이제 헤드셋을 벗어도 뭔가 말이 들려오긴 했지만, 아직은 보조 장치가 필요했다.
“나도 형 못지않게 레딩이 날갯짓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신나게 하늘을 날고 손을 흔든 뒤에 원래 자리로 돌아가면 얼마나 좋겠어요?”
레딩은 회복해서 원래 자리로 돌아가야 했다.
하늘에서 살아가야 하는 환수였으니까.
“너무 좋지. 내가 살아가는 낙이나 마찬가지인데. 여기서 회복되어 나가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헤어져서 슬프지만, 그게 또 행복하더라고.”
“그러니까 다른 레딩한테 부탁해서 반드시 데려올게요.”
은호가 주먹을 쥔 손을 내밀자 태호는 흔쾌히 주먹을 쥐어 부딪쳤다.
* * *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지혜는 자판을 누르던 손을 멈추고 눈썹을 올렸다.
누군가 온다는 말은 없었다.
다만, 누군가를 부른 적은 있었다.
누군지 알자마자 지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서 오십시오.”
지혜는 문을 열며 인사했다.
은호는 머리카락까지 가린 탈을 쓴 채 손을 흔들었다.
“안녕하세요, 국장님. 여기 되게 좋아졌나 봐요.”
“좋아지다뇨?”
“이 근처에 아주 멀리 있지만, 환수 친구들이 보여서요.”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은호는 탈을 벗었다.
“…보였나요? 정말입니까?”
지혜는 상당히 기뻐했다.
“네. 보여서 깜짝 놀랐어요. 뭔가 하고 있나요?”
“소장님한테 물어서 환수들을 위해 주변 환경을 새롭게 조성하고 있었습니다. 환수 관리국 주변에도 환수 보호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는 점을 활용하기 위해서죠.”
“그건 정말 좋은 사업인데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천천히 변화를 지켜봐야겠죠.”
“그럼, 무슨 일로 절 불렀나요?”
은호는 지혜의 미소를 보며 자연스럽게 소파에 앉았다.
“서은호 씨는 유령이 있다고 믿으시나요?”
지혜 역시 자리에 앉았다.
“유령이요?”
웃어야 할까.
은호는 지혜의 표정을 살폈다.
농담이라기에는 꽤 진지했다.
“예. 최근에 아파트 단지마다 유령을 봤다는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설마, 그 유령이 환수인가요?”
은호는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