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108)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108화(108/302)
108화. 유령과 귀여움은 한 끗 차이(3)
그냥 이상한 게 아니라 상당히 이상했다.
지금 누가 누굴 쫓아내고, 누가 누구에게 괜찮다고 말한다는 건지.
은호는 강한 의욕을 드러내는 고스덕의 표정에 일단 미소를 지었다.
‘어디부터 알려 줘야 하지?’
사실을 알려주기에는 미안할 정도로 고스덕이 너무나도 밝았다.
은호는 우선, 본인을 가리켰다.
“친구야. 왜 날 보고 도망치지 않아?”
“어, 어.”
고스덕은 부리를 열며 곰곰이 생각했다. 눈을 깜박거리다 앞발을 좌우로 흔들었다.
“날 불러줬잖아! 비명도 안 질렀어! 웃고 있었어어!”
그게 기쁜지 고스덕이 웃자 은호의 입가에 달아 놨던 미소가 부드럽게 퍼졌다.
“그렇게 봐주니 기쁜데?”
“그런데 나를 왜 찾아왔어? 전에 날 본 적 있어?”
“아니. 오늘 처음 봐.”
“와아아. 인간은 내가 여기 있는 걸 바로 알아버렸어. 대단해!”
고스덕은 앞발로 양 볼을 쥔 채 몸을 좌우로 흔들었다.
부끄러워하는 걸까.
“친구야.”
은호는 쪼그려 앉아 고스덕을 손가락으로 살짝 찔렀다.
바로 태블릿이 떠올랐지만, 은호는 옆으로 살펴보지 않았다.
우선 이 말이 먼저였으니까.
“네가 잘못 알고 있는 게 있어서 알려주려고 왔어.”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게 있다고?”
“우선 그것부터 짚어줄게. 대신, 다 들을 때까지 자리에 떠나면 안 돼. 약속하면 말해줄게.”
“약속할게!”
고스덕은 고개를 몇 번이고 끄덕이며 밝게 이야기했다.
뭐가 잘못됐는지 몰라도 인간과의 대화가 너무 즐거웠다.
이렇게 인간하고 얼굴을 마주하며 말을 나누고 싶었으니까.
“우선, 나는 밖에 있는 인간들의 부탁을 받고 왔어.”
“…뭐, 뭐, 뭐어, 뭐어어?”
고스덕은 점차 목소리를 올리며 기겁했다.
착한 인간이 아니었다니.
밀려온 실망감에 눈꼬리가 내려갔다.
“그리고 밖에 있는 인간들은 여기 있는 인간들을 내쫓지 않았어.”
“하, 하, 하지만 저 인간들이 오고 이곳에 살던 인간들이 나가버렸어!”
얼마나 억울한지, 고스덕은 당장이라도 은호를 끌고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곳을 떠나라는 대피 명령이 떨어져서 그래.”
“여기에… 뭐가 있어?”
고스덕은 느린 말과 달리 빠르게 주변을 휙휙 돌아보았다.
몸에 덮은 천이 덩달아 움직였다.
“그 원인은 바로 친구야.”
은호는 손바닥으로 고스덕을 가리켰다.
그 손짓을 받은 고스덕의 얼굴이 살짝 기울었다.
“나아?”
“그래, 친구.”
“나 때문에 나갔다고?”
“지금 너무 당황스럽겠지만, 맞아.”
“바, 밖에 있는 인간이 쫓아낸 게 아니라 내가 쫓아낸 거야?”
고스덕의 부리가 떨리고 내려간 눈꼬리 밑으로 눈물이 맺혔다.
“…하지만 나는 아니야!”
고스덕이 당장이라도 도망칠 것처럼 움직이자, 은호는 목소리를 냈다.
“친구야. 아까 다 들을 때까지 나가지 않기로 우리 약속했지?”
“하지만… 하지만.”
눈물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만 같았다.
억울했다.
자신은 아닌데.
도움을 줬을 뿐인데.
“괜찮아, 친구야. 내가 이 모든 오해를 바로잡으러 왔으니까. 내가 인간하고 너를 이어주는 다리가 될 테니까.”
“다리가 되어준다고오?”
고스덕은 멍한 눈이 되어 은호를 바라보았다.
“네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모르겠어. 하지만 너는 인간을 해치려고 이곳에 있는 게 아니야. 그렇지?”
―나는 저기 인간들을 쫓아내고, 다시 이곳에 살던 인간들에게 괜찮다고 말해줄 거야!
비록 현재 상황에 본인이 원인을 제공했다는 걸 몰랐지만, 힘껏 내뱉은 그 말은 진심이었다.
“맞아! 나는 인간을 돕고 싶어!”
고스덕은 앞발로 눈물을 닦은 뒤 은호를 바라보았다.
부리가 살짝 벌려 있었다.
은호는 아직 고인 고스덕의 눈물을 닦아주며 눈웃음을 지었다.
“지금부터 내가 네 목소리가 되어줄게.”
그 어떤 순간보다 가장 자신의 목소리가 필요해 보였으니까.
* * *
서율의 지시로 이곳에 있는 환수 관리자들이 물러갔다.
모두가 사라진 걸 알고는 고스덕과 함께 아파트 옥상으로 같이 갔다.
고스덕은 신이 난 채로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원래 이런 건 하면 안 되지만, 은호는 난간 사이에 다리를 뻗어 앉았다.
슬쩍 은호를 보던 고스덕은 다시 달려와 똑같이 난간 사이에 오리발을 내밀어 앉았다.
발은 주황색이었지만, 천 너머로 아주 살짝 드러난 다리는 뭔가 투명했다.
‘진짜 투명하네? 천은 이걸 가리려고 덮어쓴 걸까?’
이러다 또 삐질까 싶어 은호는 잠깐 태블릿을 꺼내 읽었다.
《환수를 인식하셨습니다.》
《고스덕.》
《.》
《본래 몸이 투명합니다. 연약한 몸을 보호하고자 오리를 닮은 천이 덮여 있는데, 실제로 천이 아니라 겉껍질에 가깝습니다. 억지로 벗기면 다칩니다. 말이 굉장히 느리며 멍하고, 생각이 단순합니다.》
《살아있는 생명체와 땅을 제외하고는 어디든지 통과해서 다닐 수 있습니다. 어떻게 날개도 없이 허공에 날 수 있는지는 아직도 원인불명입니다. 통과하는 힘을 이용해 남의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합니다.》
‘아, 원래 뭔가 다른 존재에 관심이 있는 편이네?’
은호는 태블릿을 내리며 고스덕을 보고는 씨익 웃었다.
“서은…….”
서율이 옥상 문을 열고 들어오다 말고 멈칫거렸다.
흑견이 웅크려 앉아 있었다.
따사롭게 내리쬔 햇살을 맞다가 서율을 곁눈질로 보았다.
거대하다는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컸다.
까맣고, 금빛으로 뿌려진 그 모습은 당장 감탄이 나올 정도로 대단히 아름다웠다.
‘이게 흑견이라니.’
흑견을 본 건 이번이 처음이기에 서율은 놀란 표정을 숨기질 못했다.
“고생 많았어요.”
은호는 서율을 보며 웃었다. 은호의 고갯짓을 따라 고스덕 역시 고개를 돌렸다.
서율은 은호 옆에 있는 새로운 환수를 바라보았다.
뭔가 멍해 보이는 환수였다.
“고스덕입니까?”
“네. 고스덕이에요. 혹시, 무서워 보이나요?”
“아뇨, 전혀요. 이 환수가 아파트 주민들을 괴롭혔다는 게 솔직히 믿기지 않을 정도인데요?”
방석 크기 정도가 아닐까. 품에 안으면 어떤 느낌인지 알고 싶게 생겼다.
“이제 이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볼까 해요. 여기 옆에 앉아도 돼요.”
은호는 비어 있는 왼쪽을 가리켰다.
서율은 다가가려다 멈췄다.
그쪽으로 가려면 흑견을 넘거나, 아예 둘러야 하는데 뭔가 불쾌한 기색이 가득 흘러넘쳐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뭔가 본능이 거부했다.
자신도 이 일을 제법 많이 했지만, 상당히 위험하다는 걸 알리고 있었으니까.
‘저기서 대체 어떻게 태연하게 앉아 있는 거지?’
서율은 속으로 몇 번이나 감탄했다.
은호가 가진 힘은 환수에게 환영받는 힘일까.
“여기 서 있겠습니다. 주변도 살필 테니, 편안하게 하십시오. 상황이 이상해지면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서율은 웃으며 말한 뒤, 그대로 모습을 감췄다.
다시 고개를 돌린 은호는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친구야. 혹시 인간한테 도움을 받은 적이 있어? 그래서 고마워서 여기 머무는 거야?”
“아니. 내가 늙은 인간을 도와줬어.”
“친구가?”
“으응. 가던 길에 보니까아, 집에 불이 막 일어나더라고. 내가 꺼줬어.”
고스덕은 목소리에 맞추듯 천천히 다리를 흔들었다.
까만 눈을 깜빡거리다 이내 웃었다.
“환하게 웃으며 나한테 말을 했어. 무슨 말인지 몰라도 분명히 ‘고마워’라고 생각해.”
늙은 인간의 그 미소와 따뜻한 목소리가 아직도 기억났다.
그때, 머릿속에 빛이 켜지는 기분을 느꼈다.
그저 떠돌아다니던 자신의 인생에서 전환점이 되던 순간이었다.
“나는 다시 또 그 말을 듣고 싶었어. 그래서 생각했어.”
“어떤 생각을 했는데?”
은호는 웃고 있었고, 고스덕은 그 미소에 말을 섞는 게 너무도 즐거웠다.
“인간들이 많으면 나는 또 그 말을 들을 수 있다고! 그래서 여기로 왔어!”
고스덕이 흔드는 발이 빨라졌다.
이토록 순수한 바람에 은호는 그만 실실 웃음이 났다.
어딜 봐도 인간을 해치려는 모습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그저 사람한테 고맙다는 말을 듣기 위해서 아파트에 온 거라니.
사람과 환수의 소통이 되지 않아 이렇게 왜곡되는 일을 볼 때마다 마음이 좋지 않았다.
은호는 잠깐 헤드셋을 벗어 입을 열었다.
“말해줘서 고마워.”
그 말에 발을 흔들던 고스덕이 멈췄고, 부리가 벌어졌다.
눈이 점점 커지다 덥석, 은호의 옷자락을 쥐었다.
수많은 기쁨으로 가득 찬 저 표정에 당장 어떤 말이라도 쏟아낼 것만 같았기에 은호는 다시 헤드셋을 썼다.
“저 말이야아! 저 말이었어! 어떤 말이야? 어떤 말인 거야?”
지금까지 꺼냈던 말 중 가장 빨랐다.
“고마워, 라고 말했어.”
“끼야아아!”
고스덕은 저 말에 바닥을 통과해 아래로 내려가더니 다시 위로 떠올랐다.
허공을 헤엄치듯 앞발을 빙글빙글 돌리더니 다시 은호에게 다가갔다.
기쁨이 가득 보였다.
“내가 계속, 계속 듣고 싶은 말이었어!”
원하는 게 단 하나인 듯 고스덕은 그 기쁨을 간직한 채 앞발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그래서 인간들을 도와줬어.”
“많이 도와줬어?”
“으응. 많이 도와줬어.”
고스덕은 머릿속으로 본인이 했던 일을 떠올렸다.
“불도 꺼줬어. 흘린 물건도 줬어. 쓰레기도 버려줬어. 놔두고 간 물건도 돌려줬어. 늙은 인간이 넘어질 뻔한 것도 잡아줬어.”
하나씩, 하나씩 말을 할 때마다 고스덕의 눈망울에 슬픔이 쌓여갔다.
“…그런데 인간들은 좋아해 주지 않아.”
이러면 고맙다는 말을 듣지 않을까.
저렇게 하면 고맙다고 말해주지 않을까.
뭘 해도, 무얼 해도 반응은 하나였다.
“나만 보면 도망가. 비명을 질러.”
고스덕은 다시 은호 옆에 앉아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축 늘어진 고개 아래로 그림자가 길게 졌다.
“나는 괴물이 아닌데에. 갑자기 이곳에 살지 않은 인간들도 늘어났어. 그 인간들은 나를 쫓으려고 해.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인간들이 놀라는 게 잠깐뿐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더 시간이 지난다면 분명히 자신의 진심을 알아줄 거라고 믿었다.
“은호는 나한테 웃어줬어.”
기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고스덕은 현실을 마주했다.
“이곳에 사는 인간들이 나 때문에 밖에 인간을 불러왔어. 내가 인간들을 쫓아버린 거야. 나는 도움도 주지 못했어.”
자신은 계속, 계속 민폐 투성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희망으로 부풀어 올랐다.
“은호. 나 이제 네가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왔는지 알았어.”
고스덕은 눈가에 눈물을 달았다.
자신을 설득하러 왔다. 더는 인간을 괴롭히지 말라고.
바보 같았다.
고스덕은 팔로 눈물을 닦고는 다시 웃었다.
“내가 떠날게. 그러면 다들 이곳으로 돌아올 거야아.”
“친구야.”
“…응.”
“너는 괴물이 아니야.”
은호가 꺼내는 말에 고스덕은 가슴이 간질거렸다. 밀려오는 감정을 느끼며 고개를 올렸다.
“네가 뭘 하고자 했는지 나는 알아. 너는 인간을 돕고 싶고, 고맙다는 말을 듣고 싶은 거야.”
“…응.”
“무엇보다 네가 이곳에 사는 인간들을 쫓아낸 게 아니야. 그저 소통이 되지 않아 너의 진심이 왜곡되어 전달되었을 뿐이니까.”
우선, 고스덕의 등장 자체가 공포를 유발할 수 있었다. 갑자기 벽을 통과해서 오면 얼마나 무서울까.
고스덕이 도왔다고 하는데, 그 방향이 오히려 사람들의 짜증을 불러오는 방향일 수도 있었다.
그렇게 하나, 둘, 점점 쌓이는 오해가 왜곡되었겠지.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이 모든 오해를 알고도 고스덕에게 고맙다고 할까.
은호는 그 사실이 참 어려웠다.
“친구야. 나는 네가 어떤 마음인지, 뭘 하고 싶은지 알아.”
“…너라도 날 알아줘서 고마워.”
고스덕은 먹먹함을 담은 채 여전히 웃었다.
만약에 저 인간마저 자신의 행동과 마음을 몰랐다면 계속 슬픈 일만 벌어졌겠지.
이렇게 말하러 와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랐다.
“네가 보고 싶어서 왔는데?”
“진심…이었어?”
“그럼. 그래서 내가 너한테 두 가지 제안을 주고 싶어.”
“제안?”
고스덕은 두 개를 펼친 은호의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덩달아 높이 올라간 그의 입꼬리도 보였다.
“우선, 네가 원하는 걸 다 이룰 수 있는 곳이 있어.”
“정말…? 그런 곳이 있어?”
“여기에 사는 인간들은 너희가 어색하고, 낯설어서 경계할 수 있어. 그러니까, 너희가 익숙하고 너희를 좋아하는 인간들이 많은 곳을 추천할 거야.”
“거기가 어디야?”
“환수 연구소라는 곳이야. 다른 친구도 많아.”
환수 연구소.
고스덕은 그 말을 중얼거리며 배시시 웃었다. 다시 고개를 들어 물었다.
“그럼, 또 하나는 뭔데에?”
“내가 저 인간을 통해 네가 사실은 이곳에 사는 인간들을 도와주려고 했다는 걸 알리는 거야.”
“인간이?”
“내가 네 목소리가 되어주기로 했잖아? 지금 하고 싶은 말을 다 꺼내는 거야.”
이곳에 환수가 사람들을 도왔다는 걸 안다면 적어도 지금보다 나을 테니까.
무엇보다 꼭 그래 줬으면 했다.
환수가 사람들을 도와줄 수도 있는 생명체라는 걸 사람들은 알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신선한 충격이 되지 않을까.
“이렇게 되면 네가 해줘야 할 게 있어. 인간들은 증거가 없으면 쉽사리 믿지 않으니까. 물론, 이건 친구의 자유야. 하지 않아도 돼.”
“아니야. 알릴래!”
고스덕은 다시 다리를 흔들었다.
씩씩하게 웃었다.
“나는 인간들한테 나쁘게 기억되고 싶지 않아. 비록 내가 인간들을 무섭게 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라는 걸 알릴래.”
앞발로 난간을 붙잡은 채 고스덕은 뭔가 후련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내 마음을 꼭 이곳에 남길래.”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고, 바닥을 만지작거리는 손길에 그리움이 묻어났다.
하지만 씩씩해지려고 표정을 유지했다.
은호는 손을 뻗어 고스덕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처음 맛보는 손길에 고스덕의 천이 파르르 떨렸다.
“이, 이, 이거 뭐야아? 기분 좋아.”
“친구야.”
“으응?”
“인간들을 도와줘서 정말 고마워.”
진심이 묻어난 그 목소리에 고스덕은 활짝 웃다 말고 이내 밀려드는 서러움을 이기지 못했다.
이렇게 빨리 들을 수 있는 말이었는데.
저 말만 기다렸는데.
고스덕은 앞발을 크게 벌려 은호에게 다가갔다.
폭.
품에 안겨 뒷다리를 흔들며 그간 꾹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나아, 나 진짜 여기 사는 인간들한테 그 말을 듣고 싶었는데에! 나는 그 말을 들을 수 없어어!”
“그래, 그래. 네 마음 알아. 얼마나 속상하겠어?”
“나는 진짜 열심히 했어어!”
“그럼, 넌 열심히 했어.”
어떻게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걸까.
고스덕은 은호를 더 꽉 안았다.
“나한테 와줘서 고마워어. 으헝헝.”
은호는 고스덕이 울음을 그칠 때까지 다독여줬다.
* * *
가을은 휴대전화를 보다 한 동영상을 재생했다.
영상에서 집주인이 외출했는지 아무도 없는 아파트 내부 모습이 나왔고, 불이 켜져 냄비에 물이 보글보글 끓는 장면이 나왔다.
그때, 벽을 통과하며 고스덕이 나왔다.
보글보글 끓는 냄비를 보고 당황하는 듯 팔을 허우적거리다 불을 껐다.
뿌듯한 표정까지 드러냈다.
‘사람을 돕는 환수’라는 이름의 1분짜리 영상은 그게 전부였지만, 인기 급상승 동영상 1위의 자리에 당당히 올라와 있었다.
영상 내내 ‘*환수를 납치 및 감금, 사육 등 모든 부분은 강한 중범죄입니다*’라는 문구가 아래에 보였다.
가을은 동영상을 바라보던 중 갑자기 시야에 보이는 믹스 커피에 시선을 위로 올렸다.
천장에서 고스덕이 나와 앞발을 뻗고 있었다.
살짝 긴장하는 게 묻어났다.
“고마워.”
가을이 꺼내는 저 말과 미소에 고스덕은 허공에서 앞발을 흔들며 웃었다.
환수 연구소에 있는 인간들은 아파트에 있던 인간들과 달랐다.
비명을 지르거나, 험악하게 짓는 표정과 달랐다.
“뭘! 나는 더 도와줄 수 있어!”
고스덕은 부리를 만지작거리며 으쓱거리다 다시 벽을 타고 통과했다.
‘서은호 씨, 아주 큰 사고를 쳤네.’
가을은 줄줄이 달리는 댓글을 보며 가볍게 웃었다.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댓글은 이거였다.
[sjhdq231 : ㅈㄴ 귀엽다!!!] ♡3352은호가 바라는 현상일 테니까.
동영상을 올린 건 자신이었다.
‘그 누구도 이 계정을 추적할 수 없지.’
가을은 자신만만해하며 믹스 커피 봉투를 뜯어 커피 가루를 컵에 넣었다.
가까운 탕비실로 가 뜨거운 물을 부었다.
모락모락 김이 올라왔고, 가을은 한 모금 마셨다.
‘귀여운 환수가 줘서 그런가, 어떤 커피보다 맛있는데?’
가을은 주변을 살피다 이내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