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11)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11화(11/30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 011화
11화. 숲은 돌아온다
아무리 열받았다고 해도 다짜고짜 독을 뿌리는 건 어느 집 예절인지 몰랐다.
독 때문에 머리가 어지러우니, 좋은 말이 나올 수조차 없었다.
“너, 내가… 내가 그냥 보통 사람이었어 봐. 벌써 죽었어. 알아?”
병원에 입원하고 나니, 회복 속도가 남들보다 좀 빠르다는 걸 알았다.
이게 다 드루이드가 됐기 때문이 아닐까.
은호는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다 손바닥을 보았다.
‘맛있게도 먹네.’
손바닥에 묻은 피가 싹 사라졌기에 은호는 나무에 또 피를 주려다 밀려오는 현기증에 바닥을 짚었다.
풀포기가 순식간에 자라났다.
“……너, 포이키야? 아니다, 포이키는 사람이 붙인 이름이지?”
은호는 잠깐 얼굴을 찌푸렸다.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자신을 찌르는 느낌이었다.
은호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미끄러졌다.
“인간. 일어나지 마라, 독이 퍼진다.”
흑견이 강하게 제재하자 은호는 눈을 질끈 감았다.
“…괜찮아, 멍멍이 형님. 아니, 좀 안 괜찮으려나.”
은호는 오락가락하는 자신의 말에 피식 웃으며 나무에 기댔다.
몇 주간 야근하다 쓰러지기 전에 느꼈던 감각과 비슷했다.
“인간. 눈 감거라.”
“안 돼, 멍멍이 형님. 죽이지 마.”
“너를 죽이려 했다.”
“솔직히 화가 나는데, 내 속에 있는 사회성이 그걸 허락하지 않네. 그리고 때려도 내가 할래.”
은호가 손을 휘적휘적 젓자 환수를 뒤덮고 있던 가지와 줄기가 그대로 움직였다.
저 나무와 연결된 느낌이 생생하게 들어 한 번 시도 해봤는데, 성공했다.
‘…진짜 되긴 하네.’
지금 움직이는 건 겨우 나무 한 그루였다.
언젠가는 숲 전체를 움직이는 것도 가능할까.
“친구야.”
은호는 환수를 바라보았다.
나무의 뿌리와 가지로 만들어진 그 좁은 곳에서 벗어나려고 발악하지만, 그럴수록 나무는 더 많은 가지를 뻗으며 환수를 짓눌렀다.
“…아무리 분노에 두 눈이 뒤집혀도 그렇지. 이건 너무 야만적이잖아? 계속 수틀리면 다 죽일 거야?”
길게 빠진 팔과 다리부터 시작해 날카로운 인상마저 달라 포이키와 다른 인상을 주었다.
전혀 다른 종 같았지만, 은호는 저 환수를 포이키라고 봤다.
독을 뿜는 모습이나 이 주변에서 인간에게 원한을 품은 존재는 자신이 알기로 포이키뿐이었다.
“…네가 피피의 대장이지?”
피피의 이름에 포이키가 반응했다.
“네놈이 피피를 어떻게 알지? 피피를 죽였나? 네놈이! 네놈이 피피를 죽였어?”
진짜 포이키였다.
멈췄던 분노를 불태우듯 목을 긁는 듯한 울음을 내며 처절하게 발버둥 쳤다.
증오.
오직 그 감정밖에 보이지 않자 은호의 미간 사이가 좁혀졌다.
“인간.”
잠깐 물러섰던 흑견이 은호를 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죽여버리겠어! 인간을 편드는 네놈도 죽여버리겠어!”
포이키가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독을 뿜어냈다.
다 미웠다.
터전을 이유도 모른 채로 하루아침에 잃어버렸다.
그리고 오늘, 가족이 죽었다.
모든 게 원망스러웠다.
“다 죽이겠다고!”
“감히!”
흑견은 독과 포이키의 분노마저 검은 바람으로 휘날려버렸다.
나뒹구는 포이키를 뒤로한 채 흑견은 은호를 바라보았다.
“…이 분노를 이해할 수 있겠나?”
마치 선을 긋는 듯한 말에 은호는 활짝 웃었다.
“이해할 수 없어. 방금 공격도 당했잖아?”
“그래. 그게 맞다. 이해할 수 없겠지.”
“그런데 살펴는 보려고.”
“…인간, 너는 진짜 멍청한가?”
“멍멍이 형님, 잊었어? 내가 환수들의 임시 보호소가 되겠다고… 했잖아.”
“잊지 않았다.”
흑견은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를 빽 지르는 포이키를 바라보았다.
전혀 진정될 것 같지 않았다.
“잊으면 안 돼. 내가 멍멍이 형님하고 약속한 거니까.”
은호는 콜록거리다 또 흘러내린 피를 손으로 닦았다.
“……이봐, 대장. 피피는 안 죽었고, 방금까지 있었는데… 갑자기 숲 쪽으로 사라졌어.”
“하! 내가! 내가 그 말에 속을 것 같아?”
“피피하고 내가 약속했는데, 사라져서 곤란하네. 대신, 내가 얼마나 약속을 잘 지키는지 대장이 봐줘.”
믿음은 말로 하는 게 아니었다.
은호는 가방으로 손을 뻗었다.
미리 진통 효과가 있는 타이레 꽃을 꺼내 씹었다.
“…칼 줘봐, 칼.”
이 가방이 이상한 가방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무한 아이템창 같은 느낌이랄까.
하지만 원하는 걸 언제든지 꺼낼 수 있는 그런 가방은 아니었다.
이를 확인하려면 좀 더 시간이 걸릴 듯했다.
은호는 가방에서 칼을 꺼냈다. 베기 좋을 만큼 날이 세워져 있었다.
“……인간.”
칼을 보자마자 흑견이 반응했다.
저게 뭔지 알고 있었다.
인간이 사용하는 무기 중 하나였다.
“지금 뭐 하는 건가? 그거 내려놔라.”
“약속을 지켜야 하거든.”
“인간… 지금, 네 상태가 어떤지 알고 있나?”
“알지. 아주아주 아픈데?”
은호가 해맑게 웃자 흑견이 다가왔다.
몸에 두른 어둠으로 은호의 팔을 붙잡았다.
“멍멍이 형님. 자연은 다 빌려주지 않아. 자연을 빌리려면 대가가 있어야 하잖아? 믿음도 그래. 받으려면 아주 큰 대가가 들어가더라고.”
센 척하며 말했지만, 사실 은호도 무서웠다.
자신의 몸에 칼을 대는 일이 쉬울까.
하지만 그게 대가였다. 식물의 성장을 촉진할 수 있는 대가.
흑견을 처음 만났을 때도, 타이레 나무를 만들었을 때도 똑같았다.
타이레 꽃의 진통 효과가 어느 정도 통한 건지 몰라도 정신이 조금 전보다 맑아졌다.
“태블릿 씨. 단순한 성장 말고, 영구적인 성장은 있을까요?”
지금 성장에는 시간제한이 존재했다.
대가로 바친 피가 사라지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다고 했다.
자신의 목표는 그게 아니었다.
《해당 내용을 검색합니다.》
《직접적인 내용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러 가지 내용을 종합한 결과 해당 내용과 관련된 사실을 도출했습니다.》
《식물을 성장시키는 힘, 과성장(임시 명칭)은 대가인 피의 양과 비례해 유지가 된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식물의 일반 성장 역시 과성장과 마찬가지로 피의 양에 비례한다는 내용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일반 성장은 영구적이라는 내용을 도출했습니다.》
“고마워요, 태블릿 씨.”
요컨대, 식물의 기본 성장은 영구.
그 이상의 성장과 다른 부분은 영구가 아니란 소리였다.
자신이 신경 쓸 부분은 없으며 하려는 대로 해도 된다는 말이기도 했다.
‘숲을 살리려면 어느 정도의 피가 필요하려나.’
감이 오지 않았기에 은호는 망설임 없이 손바닥을 그었다.
“으읍! 더럽게 아프네!”
이미 독 때문에 아파서 고통을 못 느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베인 손이 덜덜 떨려왔다.
은호가 고개를 들자 누워 있는 포이키와 눈이 마주쳤다.
미친놈을 보는 듯한 눈빛에 괜히 웃음이 났다.
“그래. 그렇게 날 보고 있어.”
피가 뚝뚝 흐르는 손으로 땅을 짚은 은호는 잠깐 숨을 참고 눈을 감았다.
땅을 통해 손끝으로 밀려오는 감각을 느꼈다.
바람을 따라 흔들리는 풀포기,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이 땅을 기어 다니는 모든 것들이 손아귀에 들어온 것만 같았다.
그들에게서 강한 시선이 한 번에 쏠려왔다.
자신이 뭘 하려는지.
뭘 원하는지.
이 모든 걸 지켜보려는 듯 이 땅이 자신에게 무수히 많은 손아귀를 뻗었다. 그 손길이 피부에 닿자, 오직 자신만이 자연과 연결된 기분이 들었다.
드루이드.
가장 자연과 가까운 자라는 그 이름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자연은 자신의 행동에 기뻐하듯 방향을 알려주었다.
인간이 돈에 눈이 멀어 숲을 지워버린 그곳.
바로 그곳에 은호는 땅에 아직 남아 있는 수많은 생명을 깨웠다.
“한 번 더 너의 가지를 뻗어라.”
그 명령을 따라 은호의 손아귀에서 일어난 녹색 빛이 사방으로 퍼졌다.
쿠구구구궁.
온 땅이 흔들리며 새로운 생명을 축복하는 노래를 부르듯 숲이 공명했다.
우우우우.
짐승과 다른 소리였다.
그 소리를 따라 굶주린 짐승마냥 수많은 생명은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텅 비어버린 곳이 단숨에 푸르른 색으로 물들며 싱그러움을 드러냈다.
흑견은 말도 안 되는 그 광경을 눈에 담으며 어느새 주저앉아 있었다.
숲이 되살아나 버렸다.
말도 안 되는 속도였고, 눈으로 봐도 믿기 힘든 힘이었다.
‘저 인간은 어떻게 자연을… 움직인 거지?’
흑견은 고개를 움직여 은호를 바라보았다.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웃고 있었다.
그러다 눈이 마주쳤다.
“숲이…….”
“…숲이 돌아왔다.”
은호의 말을 가로채며 포이키가 말했다.
땅에 축 늘어진 채로 푸르른 숲을 눈에 담았다.
“숲이… 돌아왔어!”
금세 뜨거운 눈물이 차올랐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그저 기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숲이…….”
거센 해일처럼 밀려오는 감정에 말문이 막혔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조용히 흐느끼는 그 모습을 보며 은호는 포이키를 묶었던 나무를 원래대로 되돌리고 싶었다.
‘그런데 이거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나무하고 연결되어 있기에 피가 떨어져 가는 게 느껴졌지만, 연결 해제 방법을 알지 못했다.
똑같이 손을 휘휘 저어봐도 평범한 나무처럼 돌아가지 않았다.
“태블…….”
“서은호!”
그때, 피피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급히 달려오는 모습에 포이키는 피피를 바라보았다.
고였던 눈물이 주르륵 떨어졌다.
“서은호! 갑자기 숲이 되돌아왔어! 어머니가! 어머니가 돌아 왔…….”
달려오던 피피가 갑자기 행동을 멈췄다.
특정 한 그루의 나무가 비정상적으로 커지자 고개가 점점 올라갔다.
당장 은호에게 뛰어가 그를 꽉 잡았다.
“저, 나무 너무… 너무 커.”
숲이 정상화되는 과정을 흐뭇하게 보고 있던 흑견 마저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인간……. 실수했나?”
“그런… 것 같네. 대가가 너무 많았나 봐.’
은호는 어색하게 웃었다.
자라고, 또 자라던 나무는 하늘을 향해 굵직한 가지를 드러냈다.
꼭 신화 속에 나왔던 세계수를 보는 기분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걸 알지만, 살짝 두려워졌다.
“……우리 도망갈까?”
은호는 진지하게 흑견에게 제안했다.
이거 걸리면 어떻게 될지 몰랐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갑자기 밀려드는 현기증에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그대로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땅으로 박나 싶던 차 몸이 멈추는 느낌이 들었다.
은호는 감았던 눈을 뜨며 깜박거렸다.
나뭇가지가 자신을 조심스럽게 붙잡고 있었다.
마치 갓난아기를 어루만지듯 천천히 땅으로 눕혔다.
다급히 달려온 흑견 역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태… 블릿 씨. 이거 왜 이런 거예요? 아무것도 안 했는데, 왜 식물들이 이러는 거죠?”
은호는 이 낯설고도 이상한 현상에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몰랐다.
식물이 멋대로 움직여 이런 일을 벌였다.
무섭다기보다는 얼떨떨함이 컸다.
《해당 내용을 검색합니다.》
《대가를 흡수한 식물들은 대가의 양에 따라 이를 당신과의 계약의 조건으로 생각할 겁니다. 대가가 살아 있는 한, 당신의 든든한 아군이 되어준다는 말이죠.》
《현재 대가로 식물들이 당신의 아군이 됐다고 판단합니다.》
태블릿에 뜬 글자를 보더니 그제야 은호는 긴장을 풀었다.
‘…아, 내 아군이 된 거구나.’
폭신한 촉감에 옆을 보자 이름도 모르는 식물이 솜털처럼 자라나 있었다.
은호의 손끝에 닿자 태블릿이 바쁘게 움직였다.
《망글이 꽃을 인식했습니다.》
《푹신푹신함으로 안정감을 주며 해독 효과가 존재합니다.》
‘…살았다.’
은호는 그제야 더 활짝 웃었다.
해독이라니.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자 흑견이 시야 안으로 들어왔다.
“멍멍이 형님. 이거 해독 효과가 있대. 나, 살았대.”
“…이제 자라. 피를 너무 많이 흘렀다.”
흑견은 한심함을 담아 바라보았다.
“피……?”
의아함을 담아 은호는 칼로 손바닥을 그은 손 쪽을 바라보았다.
피가 조금 전보다 더 많이 흘러내리는 게 이상했다.
설마 땅이 계속 피를 흡수하고 있었던 걸까.
‘……어쩐지 나무가 세계수만큼 자랐더라니.’
어떻게 된 건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지혈을 위해 옷으로 손바닥을 감싼 채로 꾹 눌렀다.
금세 옷이 피로 물들자 은호는 웃음이 났다.
“지금 웃을 때인가, 인간?”
흑견이 날을 세우자 은호는 여전히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냥, 뿌듯해서 웃음이 나네.”
피를 바쳐 저 숲을 살렸다는 게 참 신기했고, 특별한 존재가 된 것 같아서 묘했다.
‘나, 진짜 힘을 가지긴 했네.’
이제야 실감한다는 것도 뭔가 웃겼다.
갑자기 손아귀로 무언가 기어 오는 느낌에 고개를 돌리자 풀포기가 옷자락을 당기고 있었다.
치우라고 하는 것 같아 옷을 치우자 풀포기가 붕대처럼 손바닥을 감쌌다.
태블릿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히모스 나무를 인식했습니다.》
《지혈 효과가 있습니다.》
‘…지혈까지 해준다고?’
은호는 감동하며 손바닥과 바닥에 깔린 망글이 꽃을 바라보았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피피가 뛰어오는 게 보였다.
망글이 꽃을 보던 피피의 꼬리가 축 늘어지며 두 손에 쥔 꽃을 뒤로 숨겼다.
“……그거 내가 먼저 주려고 했는데.”
“…피피. 나, 주려고 꺾어 온 거야?”
그 꽃을 보며 은호는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을 수가 없었다.
처음 보는 자신을 위해 이렇게 해주다니.
“……응. 독을 없애려면 이거 필요해.”
역시나 망글이 꽃이었다.
“고마워, 피피. 먹으면 될까?”
“안 돼! 먹는 게 아니라 문질러야 해. 꽃가루가 나오는데 코로 들이마셔.”
《망글이 꽃과 관련된 추가 사항을 입력합니다.》
태블릿에 글씨가 떠올랐다.
‘…타인의 지식도 기록이 되네?’
꽤 쏠쏠하다고 생각하며 눈으로 피피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하면…….”
망글이 꽃을 문지르던 피피가 잠깐 코를 킁킁거렸다.
익숙한 냄새에 고개를 돌리다 포이키를 발견했다.
손에 든 망글이 꽃을 떨어트리며 충격에 빠진 표정을 했다.
“대장이… 대장이, 서은호를 공격한 거야? 그래, 서은호?”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지?”
은호가 머쓱한 얼굴을 하자 피피는 은호의 옷자락을 꽈악 쥐었다.
“내가, 내가 사과할게. 대장은 우리를 지켜야 해서, 얼마 전에 가족이 죽어서, 그래서 그랬어! 대장이 나빠! 나쁜 걸 아는데, 아는데…….”
피피의 앞발이 주르륵 미끄러지더니 당장 망글이 꽃으로 뛰어가 앞발로 문질렀다.
“……미안해. 미안해, 서은호. 나도 나빠. 서은호는 약속을 지켰는데, 나는 너를 믿지 않았어.”
하얀 꽃가루가 피어올랐다.
꼭 피피의 눈물을 숨겨주는 것만 같았다.
“서은호가 약속을… 지켜줬는데, 우리가 서은호를 아프게 했어.”
은호는 손을 들어 피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떨림이 느껴졌다.
피피는 은호의 손가락을 붙잡았다.
또르르 흘러내리는 피피의 눈물을 닦으며 은호는 활짝 웃었다.
“나 이제 안 아픈데? 피피 네가 날 위해 이 꽃을 가져와 줬잖아?”
은호는 하얀 망글이 꽃을 잡고 흔들었다.
한 송이였지만, 피피가 이만큼이나 내어준 그 마음으로 충분했다.
“아! 계속 미안하면 너희 집에 나를 초대해줘.”
그냥 활짝 웃는 포이키들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이 정도는 욕심이 아니지 않을까.
“대장. 이거 거절하면 양심 없는 거다. 아주, 치사한 거라고.”
은호는 힘겹게 상체를 일으켜 고개를 숙이고 있는 포이키 대장을 바라보았다.
포이키 대장은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가자, 멍멍이 형님!”
은호의 힘찬 소리에 흑견은 발가락으로 은호의 얼굴을 살짝 눌렀다.
“인간, 치료가 먼저다. 누워라.”
“치사하네.”
“본인 상태를 모르는 멍청이한테 치사해도 된다. 그 뒤에 출발하지.”
진짜, 손이 많이 가는 인간이었다.
흑견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