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110)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110화(110/302)
110화. 시간은 모든 걸 해결한다(2)
“으아아악.”
태호가 비명을 지르자 은호는 그를 토닥거렸다.
“괜찮아요.”
어둠이 일어나고 태호가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려왔다.
흑견이 모습을 드러냈다.
“고마워, 멍멍이 형님.”
은호는 웃으며 가방에서 태호가 만든 수리검을 닮은 물건을 꺼냈다.
저번에 태호가 만들어준 바로 피를 뽑아주는 장치였다.
이런 순간이기에 사용해봐야 하는 게 아니겠는가.
레이저가 바로 혈관이 어디 있는지 찾더니 점을 만들었다.
그대로 손등을 찔렀다.
살짝 따끔하고 말았다.
피가 생각보다 빠르게 가득 차자 은호는 마음에 들었다.
흑견이 있기에 급하게 굴지 않았다. 다이얼로 방금 뽑은 피의 양을 최대로 조종해 바로 근처에 있는 나무를 향해 가볍게 던졌다.
착 달라붙었다.
피가 주입되는지 나무가 성장하기 시작했다.
“형, 진짜 좋은데요?”
“…어? 어?”
태호는 가슴을 붙잡은 채 눈을 크게 떴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지.
“아, 안 놀랐어?”
“놀랐죠. 형도 상당히 상당히 침착한데요?”
“내가? 내가……?”
“그럼요.”
은호는 씩 웃어주며 주머니에 뒹굴뒹굴하던 위그드라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위그드라실은 손바닥으로 껑충 뛰어서는 주변 상황을 쫙 살폈다.
“위그드라실.”
은호의 부름에 위그드라실이 고개를 올렸다. 머리 위에 자란 새싹이 흔들렸다.
“내가 느끼기에 저거 식물이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위그드라실은 고개를 몇 번이고 끄덕였다.
“그렇지?”
설령 식물을 조종할 수 있는 환수가 존재할 수도 있지만, 식물은 자신을 공격하지 않았다.
이미 몇 번이나 시도해봤다.
분명히 피를 주어 부탁했음에도 식물은 자신을 상처입히는 걸 꺼렸다.
자신이 드루이드이기 때문에 거절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자신의 추측이 틀렸을 수도 있었지만, 위그드라실이 방금 증명해주지 않았는가.
“…식물이 아니라고?”
태호가 놀라며 묻자 은호는 잠깐 망설였다.
“추측이죠.”
“잠깐만…….”
태호는 손바닥을 뻗어서는 잠깐 생각했다.
그사이 은호는 나무로 뛰어가 손을 올렸다.
“아프지 않게 저 친구를 잡아줘.”
작게 속삭였다.
나무가 긍정을 띄듯 흔들렸고, 옆으로 가지를 수없이 키워 은호와 태호를 감쌌다.
“멍멍이 형님, 아까 쓰러진 사람부터 데려와 줄 수 있어?”
은호가 부탁하자 흑견은 귀찮음을 드러냈다.
제압이 아니라 데려오는 게 먼저라니.
“공격한 존재가 어디에 있는지 안다.”
“나도 멍멍이 형님이 대단하다는 거 알아. 그런데 쓰러진 사람을 내버려 두면 진짜 큰일 나서 그래.”
“알았다.”
흑견이 그림자로 파고들 때, 태호가 입을 열었다.
“아! 그 환수다!”
“어떤 친구인데요? 좀 난폭한 친구인가요?”
은호는 아크와 공룡을 닮았던 크라슨을 떠올리며 물었다.
둘 다 포악했으니까.
“아니, 전혀. 혹시 산신이라고 알아?”
“산에 산다는 신이요?”
“진짜 신은 아니고, 그런 느낌으로 불리는 환수가 있어. 이름은 산마야.”
“진짜 산신 같은 그런 존재예요?”
“비슷해.”
“왜 우리를 공격하는 거죠?”
“…영역을 침범했나?”
태호의 말에 은호는 곤란함을 드러냈다.
일단 어떤 환수인지 모르겠지만, 진정시키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다.
영역을 의도적으로 침범한 건 아니었으니까.
“형. 멍멍이 형님이 쓰러진 사람을 데리고 올 거예요. 혹시 모르니까, 연구소와 공간을 열어둘게요.”
은호는 공간을 연 뒤에 자리를 옮겼다.
“잠깐만, 은호 씨!”
태호가 은호의 발걸음을 멈춰 세웠지만, 은호는 웃으며 앞을 가리켰다.
은호의 발걸음을 따라 가려졌던 나뭇가지들이 길을 터주었고, 흑견이 보였다.
“멍멍이 형님.”
흑견은 은호를 보자 당장 한숨을 내쉬었다.
“왜 거길 빠져나왔냐는 표정인데? 맞아?”
“들어가 있거라. 나 혼자서도 충분하다.”
“우리가 영역을 침범한 거면 어떡해.”
“여긴 인간이 지내는 곳하고 가깝다. 영역이 될 수 없다.”
“뭐?”
은호가 묻던 사이 오싹함이 밀려왔다. 자연에서 보내는 경고였다.
위에서 느껴졌기에 고개를 올렸다.
굵직한 줄기가 하늘에서부터 내려왔다.
흑견이 어둠을 일으켜 머리 위를 감쌌다.
쿠우웅!
거대한 게 쏟아지는 듯한 소리에 은호는 귀를 막았다.
“하.”
가소로움을 깊게 담은 웃음이 흑견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샛노란 눈동자에 아주 잠깐 빛이순간, 저 멀리 그림자가 깔린 그곳에서 어둠과 함께 흙더미가 튀어 올랐다.
땅속에 숨어 있던 산마가 튀어나왔다.
은호의 눈이 커졌다. 뭔가 말을 닮았고, 흑견보다 살짝 작은 정도였다.
“내가 너를 느끼지 못했을 것 같나?”
짜증이 섞인 흑견의 말에 공명하듯 은호의 피를 머금은 나무가 크게 자라나며 거침없이 나뭇가지를 앞으로 뻗었다.
촤악!
수십 개의 굵직한 줄기가 어디선가 튀어나왔지만, 땅을 통해 이동한 나무의 굵은 뿌리가 위로 힘차게 뻗어 올렸다.
단숨에 줄기를 휘감아버리며 아래로 끌어당겼다.
그때, 싹 하나가 나무뿌리 위로 자라났다.
이를 느낀 은호가 입을 열었다.
“자라나자.”
단숨에 나무로 자라버리며 아예 굵직한 줄기를 짓눌러버렸다.
“잘했다.”
흑견은 그림자로 파고들었고, 은호는 앞으로 달렸다.
산마가 있는 곳으로 빠르게 이동한 흑견은 그림자에서 나오자마자 앞발을 거세게 휘둘렀다.
산마가 이를 피하며 앞으로 달려갔다.
바람을 몸에 둘러싼 것처럼 가볍고, 신속했다.
다시금 그림자로 파고든 흑견은 평소보다 더 속도를 올리며 산마를 단숨에 따라잡았다.
그림자에서 튀어나오자마자 산마의 꼬리를 입에 물었다.
“뭐?”
경악한 산마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언제 이렇게 빨리 도착한 건지.
흑견은 산마의 꼬리를 문 채로 허공까지 끌어 올리며 몸을 틀어 바닥으로 내리쳤다.
파악!
밀려오는 통증에 산마의 등이 휘어졌다.
“크헉!”
흑견은 땅에 발을 내디디자마자 발톱을 드러냈다. 한 걸음 성큼 다가가 앞발로 산마의 머리를 거세게 짓눌렸다.
꽈악.
“왜 공격했는가?”
흑견이 싸늘하게 물었다.
“이거… 치워라.”
“말하거라.”
“그 오만함이 얼마나 갈 것 같은가. 여기는 내 영역이다. 그리고 나는 이곳의 주인이다.”
산마의 입꼬리가 올라가며 주변이 요동치던 그때, 그리운 냄새가 밀려왔다.
‘…어디지?’
자신도 모르게 찾을 수밖에 없는 그런 냄새였다.
저쪽 너머, 인간으로 보이는 자가 뛰어오고 있었다.
그의 걸음걸이를 따라 갑자기 땅의 흐름이 달라졌다.
‘인간이? 인간에게 그런 냄새가 나는 거라고?’
산마는 믿을 수가 없었다.
왜 인간한테 자연의 냄새가 나는 것인가.
그야말로 작은 자연 그 자체였다.
“친구야!”
은호는 숨을 고르기도 전에 입을 열었다. 땅의 흐름이 이상해 피를 뿌렸는데, 이게 정답인 듯했다.
조금 전 요동치던 흐름이 잦아들었다.
“혹시 아까 인간 때문에 이러는 거야?”
달리면서 생각했는데, 타이밍이 너무도 절묘했다.
사람이 쓰러졌고, 그 사람을 구하러 도착한 자신들을 크게 경계하듯 공격했으니까.
이게 사람의 시선으로 보면 마치 쓰러진 사람을 구하지 못하게 막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닐 가능성이 컸다.
오히려 자신들이 쓰러진 사람을 해치거나, 구하려는 걸 방해하려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
“……?”
자신의 말이 정답이었는지 아주 잠깐 산마가 멈칫거렸다.
은호는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우린 그 인간을 구하려고 했어!”
크게 말하자 산마의 발악이 멈췄다.
그사이에 더 가까이 다가가 산마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였다.
“날 봐. 내가 인간이잖아?”
산마의 눈은 달랐다.
새하얀 얼굴에 눈동자 없이 그저 마름모 모양의 형태가 스티커처럼 붙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자신을 보는 게 선명하게 느껴졌다.
말의 형태를 띠고 있었고, 몸에는 털 대신 수많은 잎사귀에 붙어 있었다.
분홍색을 띤 꽃이 여기저기 달려 있었는데 굉장히 아름다웠다.
“…네가 인간이라고?”
산마는 목소리를 냈다.
“네가 어떻게 인간이지?”
이곳에 수없는 교감으로 뿌리를 박은 자신을 가볍게 차내고 자연을 움직이는, 저 힘을 가진 존재가 인간이라니.
저건 인간이 아니었다.
인간은 그런 존재가 아니었다.
자신들에게 흘러나온 힘에 취해 오만하며 동시에 나약하고, 보잘것없는 이들을 말했다.
“뭐가 됐든 괜찮아. 네가 보호하려는 그 사람을 구하러 달려온 거야. 그러니까, 친구야. 이 이상 날을 세우지 말아줘.”
산마는 저 인간의 부탁을 따라 자연이 움직이는 걸 느꼈다.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자신을 외면하겠다는 거센 압박이 밀려왔다.
그중 가장 강한 목소리가 들렸다.
저 인간의 품속.
그곳에서 고개를 내민 존재가 있었다.
겨우 씨앗일 뿐임에도 가장 선명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자연의 대리자가 돌아왔으니, 고개를 숙이라.】
‘……자연의 대리자라고?’
여긴 다른 세계였다.
그런데 어떻게 자연의 대리자가 있을까.
산마는 점차 목을 뒤틀 듯 밀려드는 압박을 이겨내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자신은 저 이상한 존재로부터 그 인간을 구해야 했다.
자신을 억누르는 어둠의 존재에게까지 밀릴 수 없었다.
‘그러니까….’
산마는 갑자기 생각을 멈췄다.
밀려드는 포근한 냄새와 따스함에 고개를 돌려 그제야 은호를 제대로 바라보았다.
“친구야, 진정해. 정말 우리는 그 사람을 해칠 생각이 없어.”
은호의 목소리를 홀린 듯 산마는 그를 위에서부터 차근차근 살폈다.
정말로 자신이 아는 인간의 외형이었다.
하지만 주변에 풍기는 힘은 아니었다. 그의 주변으로 생명이 꿈틀거렸다.
‘이곳의 자연은 우리를 버렸는데.’
자연은 자신들을 도와주지 않았다. 이곳은 자연의 대리자가 없는 세상이었으니까.
그럼에도 자신들은 왕과 한 ‘약속’을 지켜 자연을 존중했다.
“…너는 정말로 자연의 대리자인가?”
산마의 물음에 은호는 도리어 당황했다.
‘이걸 또 들을 줄은 몰랐는데?’
첫 번째는 환각이라고 생각했던 어떤 존재로부터.
두 번째는 플라빗 형제가 흰 꽃과 검은 꽃을 피운 그 나무로부터.
그리고 지금 산마에게까지 그 말을 들었다.
세 번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아니, 인간이다.”
흑견이 칼같이 대답했다.
“어둠의 몸을 빌려 태어난 존재가 무얼 알까. 옆에 두고서도 저 존재를 못 알아보다니. 덩치만 큰 아이답네.”
산마는 흑견을 비웃었다.
흑견은 그 비웃음을 가소롭게 바라보며 앞발에 힘을 주었다.
“이곳의 주인이라는 존재가 상황 파악도 제대로 못 하다니. 그만큼 노쇠했나?”
‘…업.’
은호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막았다.
저런 말을 거침없이 내뱉어도 되는 걸까.
“아이야. 너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인간에게 마음을 홀렸나?”
하지만 치고 들어오는 산마의 말 역시 만만치 않았다.
“저어, 친구들아?”
은호가 입을 열었지만, 산마와 흑견은 서로를 맹렬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방금 산마가 흘린 말에 흑견은 미간을 찌푸렸다. 상당히 기분이 나쁜 말이었다.
“다 보인단다, 아이야. 이제 날뛰지 않을 테니 이만 놓거라.”
“내가 뭘 믿고 놓아줄 것 같은가?”
“더 작은 아이들 앞에서 추태를 보이고 싶지 않다.”
산마가 던지는 말에 흑견은 뒤를 돌아보았다.
애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아주아주 화가 나 보였다.
‘…말을 듣지 않는 게 다 저 인간 같다.’
흑견은 앞발을 치웠고, 산마는 땅에서 일어났던 굵은 줄기를 모두 거두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호!”
애들 목소리가 들리자 그제야 은호는 반응했다.
“잠깐만, 애들아!”
“두거라.”
산마가 몸을 묻은 흙먼지를 털며 말했다.
“아이는 다치게 하지 않는단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그 인간은 어디로 갔지?”
“잠깐만.”
은호는 다시 돌아갔고, 산마가 뒤를 따랐다.
은호의 손짓에 태호를 감싸던 나무가 사라지고, 누워있는 할아버지가 보였다.
“괜…….”
“괜찮은가?”
산마가 빠르게 달려가 노인의 앞에 섰다.
“…아이고, 걱정은. 내가 너보다 더 오래 산다.”
노인이 웃자 산마 역시 웃었다.
“거, 고집도 참 세다. 내 이러니까, 그냥 집에 가서 쉬라고 그렇게 말하지 않았나.”
“하여튼, 걱정도 진짜 많아. 괜찮다. 괜찮아.”
노인은 계속 웃으며 산마를 다독였고, 산마는 불만을 드러냈다.
말하는 것만 본다면 진짜 서로 소통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서로 지금 말이 들리지 않는 중이었고, 그저 오래된 친구처럼 눈빛으로, 목소리에 묻어난 감정으로 무슨 말인지 느끼고 있었다.
은호는 산마와 노인의 관계에 저절로 미소가 감돌았다.
얼마나 오래됐을지 몰랐다.
그저 따뜻한 관계라는 건 분명했다.
“아, 형. 어르신 상태는 어떠신가요?”
은호는 태호에게 물었다.
“일시적인 실신이야. 쉬시면 괜찮아질 거야. 그런데 더 자세한 검진을 위해 병원에 가야겠어.”
“아이고, 됐다. 한두 번 일도 아니고.”
“어르신. 한두 번 일도 아니라면 검사가 꼭 필요하겠는데요?”
태호가 권하자 노인은 손을 저었다.
“됐다.”
“어르신. 지금 이 친구가 어르신을 걱정하고 있어요.”
은호는 노인에게 부드럽게 말을 꺼내자 노인은 산마를 바라보았다.
“예전부터 저렇게 걱정이 많았다.”
“저 친구가 방금 ‘고집도 참 세다. 이러니까, 집에 가서 쉬라고 말했는데’라고 했거든요.”
은호의 말에 노인은 놀란 시선으로 은호를 바라보았다.
“학생.”
“네.”
“…들려?”
마치 희망을 마주한 것처럼 노인의 눈동자에 빛이 어렸다.
“들려요.”
“그럼, 내 말 좀 전달해줘. 말만 전달하면 돼.”
“그런데 그냥은 안 되겠어요. 어서 병원부터 가세요.”
“병원은 이미 갔어.”
노인은 가볍게 웃었고, 은호는 웃지 못했다.
많은 걸 알려주는 말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