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111)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111화(111/302)
111화. 시간은 모든 걸 해결한다(3) (컨셉 아트)
이렇게 갑자기 커다란 소리를 들을 줄은 몰랐다.
은호의 눈이 빠르게 감겼다.
“…그래도 가요.”
은호는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마치 떼를 쓰는 듯했기에 노인은 손을 뻗어 은호의 손을 쥐었다.
“학생.”
“…….”
“그럼, 병원에 갈 테니까, 지금 말 좀 전달해줘.”
“말하세요.”
“이 못난아.”
노인은 말을 꺼내며 뭔가 후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김대한이다. 잠잘 때, 이 좀 그만 갈고. 네가 슬쩍 올린 다리에 뼈가 부러지는 줄 알았다.”
뒤이어 던진 그 말에 은호가 놀라자 대한은 크게 웃었다.
“만나서 반가웠고, 앞으로 잘 지내라! 끝!”
깔끔히 말을 꺼낸 뒤, 대한은 태호를 바라보았다.
“총각, 병원에 갈 테니까, 날 좀 일으켜줘.”
“혹시 어지럽지 않으십니까?”
“괜찮아. 정말이야.”
“어지러우면 말씀해주세요.”
태호가 대한을 부축하며 천천히 일어났다. 그 모습에 산마는 안절부절못하지 못했다.
“아, 학생.”
“네, 어르신.”
은호의 대답에 대한은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은호의 팔을 조심스레 쥐었다.
“너무, 고맙다.”
“아니에요. 제가 저 친구한테 잘 말해줄게요.”
“그러지 않아도 돼. 그냥 내 말을 전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테니까. 학생이 다 떠안지 않아도 돼.”
“떠안은 게 아니에요. 할 수 있으니까 하는 거예요.”
“…몇 번이나 말했는데, 전달이 되지 않았어. 오직 그 말만 전달이 되지 않아. 오늘도 말하려고 했는데, 젊은 사람들만 신경 쓰게 해버렸어. 다들 미안해.”
대한은 먹먹함을 담아 말을 이어가다 이내 사과했다.
이건 민폐였으니까.
“아니에요. 건강부터 챙기세요, 어르신.”
은호는 대한을 향해 웃어준 뒤, 태호를 보았다.
“먼저 갈게.”
“나는 걱정하지 말아요, 형. 도착하면 연락해주고요.”
“다시 올게.”
태호는 그대로 대한을 부축하며 멀어졌다.
은호는 시선을 돌려 산마와 다른 애들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이야기를 전달해야 할까.
그게 고민이었다.
“…호수를 보러 왔나?”
산마가 조용히 물었다.
무얼 생각하고 있을까.
하지만 은호는 그저 웃으며 대답했다.
“맞아. 호수를 보러 왔어.”
* * *
호수는 정말 거대했다.
비록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그 호수는 아니었지만, 가만히 보고 있으면 바닥이 다 보일 정도로 투명했다.
수많은 나무를 방패처럼 에워싼 빼곡한 숲을 지나야만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은호는 호수로 걸어가며 감탄을 내뱉었다.
“……와. 이게 호수야? 물이 너무 투명하고, 진짜 커. 멍멍이 형님보다 더 커.”
“인간은 대체 나를 뭘로 보고 있는 건가.”
흑견이 기가 찬 소리를 내뱉었다.
“내가 본 생명체 중에서 멍멍이 형님이 제일 크다니까?”
은호가 실실 웃자 흑견은 고개를 좌우로 가볍게 흔들었다.
“바다는 알고 있나?”
“당연히 알지.”
그 말에 흑견은 뿌듯함을 드러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
저 반응은 대체 뭔지.
“멍멍이 형님. 도대체 날 어떻게 보는 거야?”
“인간은 모르는 게 많다.”
흑견은 앞질러 걸어가며 꼬리로 은호의 얼굴을 쳤다. 꽤 즐거워 보이는 얼굴을 하다 앞으로 성큼 나아갔다.
“나도 같이 가! 나 먼저 간다, 은호?”
그 뒤를 따라 폭시가 신나게 달렸다.
“…은호.”
은호가 걸음을 떼기 전에 바람과 함께 일렉트가 천천히 날아왔다.
“엄청 커. 은호가 보던 텔레비전 속 호수보다 더 커.”
일렉트는 단춧구멍 같은 눈을 최대한 크게 뜨며 호수를 다 담아보고자 애를 쓰는 것 같았다.
“맞아. 진짜 커. 내가 봤던 호수 중에 제일 아름답지 않을까 싶네.”
은호는 숨을 들이마셨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만으로 행복해지는 기분이었다.
은호는 일렉트를 바라보았다.
“삐죽아. 여기 마음에 들어?”
“나는 큰 걸 좋아했어. 넓은 게 좋아.”
일렉트의 꼬리 끝이 은호의 어깨에 살포시 얹어졌다.
그 말을 끝으로 입을 열지 않은 채 일렉트는 호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렇게 기뻐할 줄이야. 마음에 따스함이 가득 차올랐다.
“은호, 은호!”
라비가 달려가다 말고 방향을 바꿔 은호에게 다가갔다.
뒷발을 동동거렸다.
“옷 벗겨주거라! 여기에 인간은 없다!”
“사고뭉치가 그걸 어떻게 알까?”
“멍멍이 형님이 그렇게 말해주었다.”
“…멍멍이 형님이?”
“그리고 너.”
라비는 대뜸 산마를 바라보며 눈을 좁혔다.
“은호를 괴롭히는 건 안 된다. 내가 혼내줄 거다!”
꽤 당돌했기에 은호는 손으로 입을 막았다.
뭔가 호랑이 앞에서 하악질하는 새끼 고양이 같았다.
“내가 말이다. 하늘에서…….”
레비아탐이 다급히 달려와 양팔을 옆으로 휘휘 저었다.
“까망암. 까망암. 아까 은호한테 사과했엄.”
“…진짜더냐?”
라비가 깜짝 놀랐다.
“응. 아니었으면 나도 까망이처럼 똑같이 노려보려고 했엄. 은호는 내 가족이얌.”
레비아탐이 이빨을 드러냈다. 윗니와 아랫니가 앙증맞게 딱딱거리자 은호가 웃음을 터트렸다.
“이제 그럴 일은 없으니 저기에 놀거라. 내가 아무도 들이지 않을 테니.”
“정말이야?”
은호는 산마의 말에 의외다 싶었다.
“아이는 누구든 행복해야 한단다.”
따뜻하게 던져지는 저 말에 은호는 산마에게 손을 뻗었다.
뭔가 칭찬하고 싶었다.
산마는 은호의 손을 보더니 얼굴을 들이밀었다.
킁킁.
냄새를 맡고, 갑자기 살짝 핥았다.
은호의 표정이 잠깐 멍해졌다.
“나무를 핥는 맛은 나지 않는다.”
“나는 인간이니까.”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구나.”
산마가 꺼내는 말에 레비아탐이 반박했다.
“은호는 인간이얌.”
살짝 화가 난 표정을 하자 산마는 호수를 가리켰다.
“저긴 깊구나. 얕은 물에서만 놀거라.”
“안에 들어가도 ??”
물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에 레비아탐의 표정이 풀어졌다.
“들어가도 된다. 허락하지.”
“은홈, 은홈!”
레비아탐이 앞발을 위로 올리며 만세 자세를 취했다.
옷을 입을 때와 같은 자세였다.
제자리에서 붕붕 뛰자 은호는 옷을 벗겨주었다.
라비가 바로 앞발을 위로 올려 똑같이 뛰었다.
“나도 해주거라! 나도!”
라비의 조바심에 은호는 일부러 더 해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맴돌았다.
‘레비아탐도 천천히 벗겨줄 걸 그랬다.’
그럼 어떤 반응을 내보일까. 통통한 볼을 부풀어 올릴까.
“아, 폭시야!”
은호는 라비의 옷을 벗겨주면서 다른 손을 뻗어 흔들었다.
호수에 발을 담그려다 말고 폭시가 빨리 달려왔다.
“왜에?”
폭시는 배시시 웃으며 물었다.
“폭시도 옷 벗자.”
“이러면 은호가 좋아해 주는데.”
폭시는 한 바퀴 돌고는 은호를 빤히 바라보았다. 등에 매달린 꿀벌의 날개가 살짝 흔들렸다.
“너무 좋긴 한데 옷이 젖으면 축축하잖아? 이 친구가 아무도 못 들어오게 막아준다니까 옷은 벗어도 괜찮겠다 싶더라고. 그런데 털은 젖어도 괜찮으려나?”
“멍멍이 형님은 벌써 뛰어들었는데? 저기 보여, 은호?”
폭시가 앞발을 뻗자 은호는 앞 발가락을 따라갔다.
호수에 몸을 담근 채 헤엄치고 있었다. 뭔가 개헤엄 같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 않고 그저 웃었다.
‘멍멍이 형님도 저렇게 좋아할 줄이야.’
티를 내지 않았을 뿐, 흑견도 행복해하는 게 보이자 은호는 가슴이 벅찼다.
이렇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따뜻해지고, 포근해지는 건 얼마 만일까.
‘…이 모든 건 꿈이 아니겠지?’
은호는 자신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른이 되기 전부터 일해야 했기에 거칠고, 잔 흉터가 많았다.
손을 바라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지금 순간이 현실일까 싶어, 한번 확인하고 싶었다.
폭시가 은호를 보더니 손을 꼭 쥐었다.
“은호, 꿈이 아니야.”
“…그렇지?”
“응. 진짜야. 따뜻하지 않아? 나 진짜 따뜻해.”
“맞아. 따뜻하네.”
“있잖아, 은호. 나도 가끔 그래. 눈을 뜨고 주변을 바라봐. 혹시, 또 나 혼자가 아닐까. 이 모든 게 꿈은 아닐까.”
폭시는 은호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불안을 보며 더 다가와 그를 안아주었다.
“그런데 눈을 뜨면 은호가 있어. 숨소리가 들려. 이불은 포근해. 그래서 매일 안심해. 은호도 지금 그러면 좋겠어.”
“고마워.”
간질간질하게 들려오는 은호의 목소리에 폭시는 고개를 올렸다.
너무 기뻐서, 울어버릴 것처럼 활짝 미소를 짓고 있었다.
평소보다 더 크게 은호의 감정이 밀려왔다.
폭시의 눈이 커졌다.
은호 주변에 그의 샛노란 나비가 날아다녔으니까.
다시 눈을 감았다가 떴을 때는 아무것도 없었다.
‘…어어?’
방금 그건 뭘까.
“…왜 그래? 뭐 있어?”
은호는 커진 폭시의 눈에 몸이 굳어지는 걸 느꼈다.
“아무것도 아니야!”
폭시가 갑자기 배시시 웃자 은호는 뒤를 빠르게 보고는 이내 안심했다.
‘장난기가 많단 말이야.’
은호는 폭시의 볼을 만지작거린 뒤에 옷을 벗겨주었다.
“폭시야, 이제 가도 돼.”
“은호도 빨리 와야 해!”
“당연하지. 먼저 가서 놀아. 나는 잠깐 저 친구하고 이야기 좀 한 뒤에 갈게.”
은호는 폭시의 엉덩이를 토닥거렸다. 마치 신호처럼 신나게 출발한 모습에 만족하며 웃다 일렉트를 바라보았다.
일렉트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삐죽아. 혹시 물 싫어해?”
“…나도 은호한테 꿈인지 아닌지 알려줄 수 있어.”
“어?”
일렉트가 조금 더 다가가 앞발로 은호의 볼을 만졌다.
파직.
전기가 일어났지만, 아프지 않았다. 잠깐, 따끔거렸다.
“봤지? 나도 할 수 있어.”
“…….”
“나한테 물어봐도 돼.”
푸핫.
은호는 웃음이 터졌다.
“왜, 왜 웃는 거야?”
“고마워서. 이렇게 날 생각해준 게 너무 고마워서.”
“은호는 날 맨날 생각하면서.”
“…알아준 거야?”
“나도 그 정도는 알아!”
일렉트의 입이 삐죽 튀어나왔다.
흥.
은호는 바보였다. 왜 그걸 모를까. 은호는 꼭 거울을 봐야 했다.
갑자기 일렉트가 날자 은호가 물었다.
“어디 가려고 그래?”
“잠깐 돌다 올 거야. 호수가 얼마나 큰지 돌아보고 싶어.”
일렉트는 말을 끝내자마자 도망가듯 움직이다 말고 갑자기 돌아와 은호의 이마에 박치기했다.
“……?”
은호는 그대로 도망가버린 일렉트를 보며 이마를 만지작거렸다.
이제 무슨 의미인지 몰라 멍하니 쳐다보았다.
‘너무… 놀렸나?’
계속 이마를 만지작거리며 산마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가는 동안 잠깐 태블릿으로 정보를 보았다.
《환수를 인식하셨습니다.》
《산마.》
《.》
《몸에서 식물이 자라나는 생물체입니다. 이 식물은 기존의 식물과 별개로 인식되는 생명체입니다. 몸에서 자라나는 식물은 정화의 힘을 가졌으며 이런 힘을 토대로 산과 숲 혹은 호수 근처에 자리를 잡아 자신의 영역을 펼쳐나갑니다.》
《영역에 다른 환수도 함부로 허락하지 않기에 포악하다고 볼 수 있지만, 태어나면서부터 누군가와 함께한 경험이 없어 일어나는 거부 반응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합니다. 산마는 몸에 핀 꽃 중 하나에서 태어납니다. 새로운 산마가 탄생 되면 기존 산마는 새로 태어난 산마의 영양분이 되어 사라집니다. 자가 분열에 가깝습니다.》
‘……정말 이렇다고?’
은호는 태블릿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처음부터 혼자라는 소리와 뭐가 다를까.
“너는 왜 가지 않지?”
산마의 목소리가 들리자 은호는 태블릿을 집어넣고는 산마를 바라보았다.
“우린 해야 할 이야기가 있잖아.”
“해야 할… 이야기라면 됐다. 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산마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숨을 짧게 내쉬었다.
그 숨소리에 수많은 감정이 휘감겼다는 걸 알았다.
“인간의 시간은 우리보다 짧다.”
짧게 흘러오는 말에 은호는 입을 여는 게 너무도 무거웠다.
이미 자신이 무슨 말을 할지 짐작했을까.
“멍청하게 저 호수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걸 내가 구해줬다.”
산마는 고개를 내려 호수를 바라보았다.
아직도 엊그제 일어난 일처럼 선명했다.
살려달라는 말도 하지 못한 채 호수에 허우적거렸으니까.
“어떻게 내가 쳐놓은 결계를 뚫고 왔는지, 왜 내 호수를 더럽히는 건지 모든 게 짜증이 났지.”
“진짜 우연으로 시작됐네? 나도 그렇거든.”
은호는 즐겁게 들었다.
자신과 흑견 역시 비슷했으니까.
우연히 만나버렸다.
“괜찮은 걸 확인하고 쫓아냈더니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또 계속 찾아왔단다. 어찌나 귀찮던지 한 번은 들어오게 허락했지.”
산마는 코웃음을 쳤다.
인간의 끈질김이 마음을 한 번 움직였을 뿐이었다.
딱 한 번이었다.
어차피 인간은 이기적이고, 잔인해 정을 붙일 수도 없는 생물체였으니까.
인간이 웃으며 무어라 말하는데, 알아듣질 못했다.
“그때, 인간이 무언가를 가져왔다. 물론, 먹지 않았다. 거기에 뭐가 들어갔는지 모르는데 왜 먹을까.”
“그럴 수 있지. 원래 모르는 사람이 주는 건 먹으면 안 돼. 그건 잘한 거야.”
은호가 본인을 옹호하자 산마는 웃겼다.
잘한 거라니.
“그 한 번이 이렇게까지 이어질 줄은 누가 알았을까.”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두 번이 네 번이 되며 그렇게 인간과의 인연이 이어졌다.
“나도 그랬어. 그 마음 알아.”
은호는 손을 뻗어 산마를 쓰다듬었다.
은호의 손길은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자신을 길들이겠다는 오만함은 전혀 느껴지질 않았으니까.
“인간은 여렸다. 이상했다. 그리고 인간은…….”
산마는 말을 꺼내다 말고 숨을 삼켰다.
잔잔하게 미소부터 퍼졌다.
“참, 사랑스럽더구나.”
짧은 인연이라, 그저 잠깐의 흥미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옆에 있는 게 너무도 당연해졌다.
없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산마는 밀려드는 여러 감정을 억누르며 물었다.
“그 인간이 곧 죽는다고 너한테 말을 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