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11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112화(112/302)
112화. 시간은 모든 걸 해결한다(4)
은호는 훅 들어온 그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어떤 말을 해야 할까.
“부담스러워하지 말거라.”
산마는 앞발을 뻗어 은호의 어깨를 가볍게 건드렸다.
갑작스러운 위로에 은호는 입술을 깨물었다.
반대로 되어야 할 텐데, 섣불리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네 탓이 아니라, 원래 인간이 짧았을 뿐이란다.”
“…언제부터 알게 됐어?”
“나는 그대로인데, 인간은 하루가 지날수록 작아지고, 숨소리부터 달라졌으니 모를 수가 없지.”
“괜찮…….”
괜찮을 리가 없지.
은호는 그런 말을 꺼낸 자신이 멍청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본디 혼자였다. 혼자 피어나, 혼자 죽어가는 그런 삶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지.”
산마는 앞을 바라보았다.
떠들썩한 소리가 호수 너머를 채워 넣었다.
이제 이 소리는 낯설지 않았다.
이미 인간이 고요함을 깨우는 법을 직접 알려줬으니까.
“외로웠어…?”
은호의 물음에 산마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랬겠지. 분명히 그랬을지도 몰라.”
태어날 때부터 고요했다.
적막함과 친구가 되어야 했다.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과 빗소리가 가장 좋았다.
가슴 한편이 늘 차가웠는데, 이게 외롭다는 감정인지 몰랐다.
“하지만 그런 삶을 인간이 바꾸어줬기에 행복했단다.”
산마는 고개를 돌려 은호를 바라보았다.
본인 이야기가 아님에도, 오늘 만났음에도 울음을 꾹 참고 있었다.
왜.
인간은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아깐 공격해서 미안했다.”
산마가 사과하자 은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사과하지 않아도 괜찮아.”
“괜찮다면 그 인간이 뭐라고 말했는지 알려주겠나?”
“그분의 이름은 김대한이야.”
“…김대한.”
산마는 그 이름을 몇 번이나 중얼거리다 환하게 웃었다.
포근한 웃음이었다.
“드디어 이름을 알았구나.”
그토록 긴 시간 끝에 인간이 아닌 이름으로 부를 수 있었다.
“널 못난이라고 불렀어.”
“나도 그랬으니 손해는 아니었다.”
“정말로… 그렇게 불렀어?”
“왜 거짓말을 할까. 계속 말해주거라.”
“잠잘 때, 이 좀 그만 갈라고 했어.”
“고약하다. 코를 그렇게 골았던 건 누구였는지.”
산마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슬쩍 올린 다리에 뼈가 부러지는 줄 알았다고 하셨어.”
“…허.”
산마는 기가 찬 소리를 꺼냈다.
듣자 하니 너무도 일방적이었다.
“지금까지 내 몸 위에 얹혀서 잔 게 누구인지 아는가? 겨우 한 번 올려봤다고 그렇게 엄살이라니.”
산마의 갈기 털 같은 잎사귀가 크게 흔들렸다.
은호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산마의 다리는 길었고, 컸다.
“이건 네가 너무 했는데?”
“…뭐라고?”
“나도 깔리면 진짜 아프겠는데?”
“인간은 너무도 약해서 문제다. 힘을 가진 인간은 이러지 않았는데.”
실제로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지만, 뭔가 그럴 것만 같았다.
“계속 해보거라.”
산마는 불만을 담아 은호를 재촉했다.
뭔가 웃음이 나올 것만 같았지만, 다음에 꺼낼 말을 생각하니 저절로 마음이 무거워졌다.
은호는 차마 산마를 마주하며 이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잔잔한 호수를 눈에 담았다.
저들은 이 호수를 얼마나 많이 봤을까.
하지만 보고, 또 봐도 전혀 지겹지 않을 만큼 아름다웠다.
“만나서 반가웠고.”
“…반가운 건 알고 있네.”
“앞으로 잘 지내라.”
산마는 이번에는 투덜거리지 못했다.
끝을 알고 있었지만, 직접 듣는 건 또 달랐다.
숨을 들이마셨다.
“끝.”
말을 끝낸 은호는 산마를 바라보지 못했다.
침묵이 이어지고, 옆에 무언가 떨어지고 있었다.
꽃잎이 떨어졌다.
벚꽃을 닮은 꽃잎이었다.
놀라 고개를 돌리니 산마의 눈에 꽃잎이 맺히고 떨어졌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눈물이었다.
“그 말을 전해줘서… 고맙다.”
은호는 흘러들어오는 산마의 감정에 입술을 깨물다 말문을 열었다.
“…친구야.”
고개를 돌려 산마를 바라보았다.
“내가 얼마나 살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고요함을 깨러 자주 올게. 애들하고 함께.”
안심할 수 있게 새끼손가락을 올렸다.
“약속해.”
은호가 웃자 산마는 꽃잎을 흘리며 바라보았다.
다 내려놓을 뻔한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몰라도 이다음을 보게 해주었다.
‘인간이란 참…….’
산마는 호수를 바라보았다.
* * *
비가 내렸다.
늦가을에 내리는 비치고 매서웠다.
은호는 복도를 걷다가 밖을 바라보았다.
‘하필 병원에 있는 지금 비까지 내리다니.’
기분이 별로 좋진 않았다.
은호는 병실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린 뒤, 활짝 웃었다.
“저 왔어요, 어르신.”
“아니, 오지 않아도 된다니까.”
상체를 일으킨 대한이 입을 열자 은호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당연히 와야죠.”
은호가 말을 꺼내자 대한은 무언가 기대하는 눈을 하고 있었다.
말과 다르지 않은가. 그 모습이 왠지 친숙해 웃겼다.
“어르신.”
은호가 부르자 대한은 기대를 담았다.
“그 친구가 전해달라는 말이 있어요.”
“전해달라는 말?”
“네. 알려드릴까요?”
“뭐, 나랑 똑같은 말이겠지. 잘 지내라는지, 만나서 반가웠다든지.”
대한은 툴툴거리면서도 은근히 기대하는 감정을 내려놓지 못한 채 계속 은호를 바라보았다.
“잠시만요. 적어왔어요.”
은호는 휴대전화를 꺼내 적어 온 걸 읽었다.
“호수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걸 도와줬더니, 이렇게 불만이 많다.”
둘만 아는 이야기가 나오자 대한은 놀랐다. 진짜였다. 정말 말이 들린다는 걸 알자 집중력이 달라졌다.
“코 고는 소리에 괴로웠던 건 나다. 네가 내 위에 올라타 자는 바람에 찌뿌둥했던 것도 나다.”
전달했던 말의 대답이라는 걸 알자 대한은 웃었다.
진짜 그 환수하고 대화할 수 있다면 이러지 않을까 생각하던 그대로였다.
“먼저 가서 기다려라. 나는 오래 있다가 갈 거니까.”
“못된 것. 기다리는 사람 좀 생각해봐야지. 아주아주 길게 기다리다가 오겠네.”
대한은 말과 달리 너무나도 크게 방긋 웃었다.
다행이라는 안도감마저 역시 엿볼 수 있었다.
은호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내 이름은 ‘세티아’라고 한다.”
가진 힘이 복잡할수록 이름에는 제약이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산마는 주저 없이 그 이름을 알려주었다.
“혼자 멋진 이름 가지고 있네. 나도 저런 이름이면 좋겠는데.”
“김대한, 내 오랜 친구가 되어줘서 고맙다.”
“…….”
낄낄 웃던 대한이 갑자기 말을 잃었다.
그립고, 그리운 누군가를 떠올리듯 인상을 쓰는가 싶더니, 다시 미소를 지었다.
“당연한 소리를 하네. 그렇지?”
“그렇네요. 당연한 소리였어요.”
“학생.”
대한은 은호를 불렀다.
“네, 어르신.”
“내가 학생한테 너무 미안한 거 알고 있어?”
“저한테 미안해할 필요 없어요. 저는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어서 기쁘니까요.”
“나이가 드니까. 아니, 죽을 때가 되니까, 그냥 가끔, 다 보일 때가 있어.”
대한은 손을 뻗어 은호의 손을 쥐었다.
“아니면 좋겠는데, 내가 학생의 상처를 건드린 것 같아. 그래서 너무 미안해.”
“…아니에요. 다 지나간 일인데요.”
은호는 자신의 손을 꼭 쥔 대한의 손을 바라보았다.
앙상함이 그리운 누군가를 닮아 있었다.
“뭘 해도 해결이 나지 않을 때가 있는데, 그때는 시간이 해결해줄 거야.”
“고맙습니다. 저는 그게 무슨 말인지 알아요.”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말은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소리처럼 들릴 수 있었다.
그런데 정말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주었다.
“어르신.”
은호는 대한의 손등 위로 손을 올렸다.
대한의 마음이 편안하길.
세티아가 덜 슬퍼하길.
그 두 가지 바람을 담아 지금 대한이 듣고 싶은 말을 꺼냈다.
“저, 세티아의 친구가 됐어요.”
꿋꿋이 모든 감정을 참던 대한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자신이 가버리면 그 친구는 어떻게 되는지.
혼자 남을 세티아가 계속 걸렸다.
그렇게 헤어진 뒤, 단 한 순간도 편하지 않았는데 다행이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언제나처럼 호수를 바라볼 세티아의 옆에 누군가 있어 준다는 그 사실만으로 기뻐 대한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세티아가 흘릴 아름다운 눈물은 이제 쓸쓸하게 보이지 않을 테니까.
* * *
비가 내렸다.
날씨에 맞지 않게 굵은 빗방울이 내려왔다.
세티아는 호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마음 한편이 너무도 무거웠다.
빗소리를 그렇게도 좋아했거늘, 오늘따라 너무나도 적막했다.
갑자기 얼굴 쪽에 비가 떨어지지 않자 세티아는 뒤늦게 깜짝 놀랐다.
“친구야.”
익숙한 소리에 세티아가 고개를 돌렸다.
“왜 비를 맞고 있어?”
은호가 우산을 든 채로 활짝 웃고 있었다. 그 뒤로 흑견이 모습을 드러냈다.
“왜… 왔는가?”
세티아가 불안하게 묻자 은호는 손을 들어 세티아를 쓰다듬었다.
“네가 이럴까 봐.”
당연하게 대답하자 세티아는 숨만 내쉬었다.
뭘 말하는 걸까.
대호가 죽었을까.
벌써, 벌써 죽어버린 걸까.
“그리고 아직 헤어지기엔 이르잖아?”
뒤이어 나온 은호의 목소리에 세티아는 깊게 안도했다.
아직 아니었다.
온몸에 힘이 풀려 비틀거렸다.
“괜찮아?”
은호가 놀라며 세티아를 두 팔로 안아 일어날 수 있게 힘을 같이 줬다.
비가 은호의 얼굴로 떨어졌다.
“헤어지기에 이르다는 그 말이, 무슨 말이지?”
“내 멋대로 그러기로 했는데, 나는 너희들의 임시 보호소가 되기로 했어.”
“임시… 보호소?”
“어르신과 너의 다리가 되어주고 싶어.”
은호는 환하게 웃었다.
자신의 손을 잡은 대호의 온기가 아직도 남아 있었다.
“혹시, 자연이 그렇게 시켰는가?”
“아니야.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야. 어르신이 보고 싶잖아?”
“자연이 너에게 바라는 게 없는가?”
“자연이 나한테 뭘 바라는 게 있어도 나는 얽매일 생각은 없어. 지금 조바심으로 가득 찰 너와 어르신이 잠깐이라도 편안해졌으면 하는 바람뿐이니까.”
은호는 공간을 열려다 말고, 주변을 바라보았다.
비가 들어오지 않았겠는가.
“잠깐만.”
비에 맞지 않게 나무로 가리면 충분했다.
은호가 뛰어가자 흑견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숨을 내쉬었다.
‘나한테 부탁하면 될 것을.’
비를 가리는 게 뭐가 그렇게 어렵다고.
흑견은 은호의 행동에 시선을 빼앗겼고, 그 모습을 보던 세티아는 가볍게 웃었다.
“아이야.”
“눈마저 노쇠했는가? 내가 어떤지 제대로 보이지 않는가?”
“이제 막 성체가 됐으니 아직 어릴 수밖에.”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라. 이런 날이기에 언성을 높이고 싶은 마음 역시 없다.”
흑견은 불쾌함을 드러낼 뿐이었다.
“네가 부럽구나.”
“무슨 소리인가?”
“처음부터 마음을 나눌 수 있었으니, 부럽구나. 나는 길었단다. 무척 길었어.”
“…그건 유감이다.”
흑견은 껄끄럽다는 듯 대답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사실이었으니까.
은호가 자신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는 그 사실 하나에 모든 것들이 뒤바뀌었으니.
“인간의 시간은 짧단다.”
“안다.”
“그 찰나를, 환한 미소를 기억하거라.”
“그것도 알고 있다.”
세티아는 흑견에게 다가갔다.
비를 따라 세티아의 몸에 있는 분홍 꽃이 반짝거렸다.
“아이야. 어둠의 몸을 빌려 태어난 아이야.”
흑견은 그 말에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뭘 말하려고 하는가?”
세티아는 말 대신 그림자를 가리켰다. 그 발짓에 흑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너의 잘못이 아니란다. 그저 네가 태어난 시기가 빨랐을 뿐이니까.”
“……뭘 본 거지?”
“아이야. 너는 괜찮단다.”
“뭘 본 거냐고 물었다.”
“이곳은 내 영역이란다. 평소에 볼 수 없는 게 보이지.”
세티아는 고개를 돌려 은호를 바라보았다.
그의 뒤로 바라보고 있으면 미소가 감돌 만큼 수없이 휘날리는 꽃잎과 찬란한 햇빛이 보였다.
“너의 곁에 자연의 대리자가 있기에 괜찮단다.”
세티아의 말에 흑견은 더는 날을 세우지 않았다.
정말 저 존재는 자신을 위하고 있었으니까.
거기까지 사납게 굴 생각은 없었다.
“아껴주렴. 나처럼 너무 늦게 알아차리지 말라는 소리다.”
“안다. 나는 그러지 않을 테니까.”
흑견은 코웃음을 치며 걸음을 옮겼다.
은호에게 걸어가다 고개를 돌렸다.
“따라와라.”
세티아는 미소를 지으며 흑견의 뒤를 따랐다.
“벌써 왔어?”
은호가 뒤를 돌아보다가 활짝 웃었다.
그의 피를 먹고 자라난 나무들이 자라나 비를 막아주었다.
흑견과 세티아가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컸다.
“친구야.”
은호는 세티아를 바라보며 즐겁게 말을 꺼냈다.
“말하거라.”
“몇 번을 생각해봤지만, 역시 내가 말을 전달하는 건 아닌 것 같아.”
은호는 손을 들어 위로 올렸다.
그의 손길을 따라 공간이 열렸다.
세티아는 눈을 의심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숨을 멈췄다.
“말은 역시 직접 해야 하잖아?”
공간 너머에 대한이 있었다.
“내가 알려줄 테니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얼마든지 해. 그렇죠, 어르신?”
은호는 대한을 보며 웃었다.
대한 역시 전혀 예측하지 못했는지 세티아처럼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세티아를 보자마자 활짝 웃었다.
“세티아.”
어설프지만, 그건 자신의 이름이었기에 세티아 역시 웃었다.
“…김대한.”
대한의 이름을 불렀다.
그 짧은 순간, 그를 그리워하고, 애가 탔다.
마지막 인사를 하지 못할까 봐.
내내 가슴만 졸이다 끝이 날까 봐.
그런데 이렇게 보게 될 줄이야.
세티아는 벅찬 감정에 쏟아지는 눈물을 막지 못했다.
꽃잎이 떨어졌다.
천천히, 아름답게 떨어졌다.
찰나여도 좋았다.
잠깐이라도 괜찮았다.
인간을 만나 너무도 행복했으니까.
‘…인간은 참.’
짧기에 아름다웠다.
‘사랑스럽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