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113)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113화(113/302)
113화. 꿈은 꿈이다
“…은호야. 서은호.”
그리운 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누구지.
누굴까.
놀라 눈을 뜨자 따뜻하게 웃고 있는 소년이 있었다.
은호는 저 소년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잊을 수가 있을까.
“……형.”
목소리를 떨며 입을 열었다.
어떻게 형이 있을 수 있을까.
“잘 잤어? 좋은 꿈 꿨고?”
형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에게 손을 뻗자 이상할 정도로 자신의 손이 작았다.
“어서 일어나. 밥 먹어야지. 아빠랑 엄마랑 기다리고 있어. 아, 세수부터 해야겠네.”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자 따스한 온기가 밀려왔다.
그럴 리가 없었다.
“…형.”
은호는 믿을 수가 없어 손을 뻗고 형의 옷자락을 쥐었다.
“왜 그래, 은호야? 어디 아파?”
“형이 왜 여기 있어?”
목소리를 내자 형이 웃었다.
“아직 덜 깼어? 잠꾸러기야. 지금 일어날 시간이야.”
옆구리를 간질이는 그 손길이 너무도 진짜 같았기에 은호는 자신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이제 깼지? 자, 세수하러 가야지.”
양팔을 조심스럽게 당기자 은호는 이끌려갔다.
뒤를 바라보았다.
저 옆에 폭시도, 레비아탐도, 라비도 있어야 했다.
그게 하루의 시작이었는데.
‘…뭐가 꿈이지?’
은호는 이상한 마음을 안은 채 화장실로 걸어갔다.
세면대가 꽤 높았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까마득할 만큼 어렸다.
지금 자신은 초등학교 저학년일까.
낯설었고, 이상했다.
뭔가 불쾌한 감각마저 느꼈다.
은호는 얼굴에 물기가 뚝뚝 떨어진 채로 화장실 앞에서 기다린 형을 제대로 보았다.
이제 막 고등학생이 된 것처럼 듬직했다.
기억 속 형이 맞았다.
기억 속에 계속 머물러 있던 형이었다.
“은호야. 얼굴은 닦고 와야지.”
형이 웃으며 얼굴을 닦아주었다.
상냥하고 다정한 형이었기에 은호 역시 덩달아 크게 웃었다.
손을 잡고 걸어갔다.
집이 커봤자 얼마나 클까.
부엌까지 가는 그 길이 왜 이렇게 길어 보이는지 몰랐다.
“은호야! 일어났어?”
활짝 웃는 아빠의 미소가.
“아이고, 우리 은호! 잘 잤어?”
바로 달려와 안아주는 엄마의 품속이.
이상했다.
무엇이 꿈인지 이미 알지 않은가.
‘여기가.’
은호는 뒤로 물러났다.
‘꿈이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순간이자,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는 순간이었으니까.
“인간.”
그때, 흑견의 목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자 이상하게 몸이 흔들렸다.
파직.
은호는 갑자기 일어난 따끔한 감각에 놀라며 눈을 떴다.
당장 말랑한 무언가가 볼에 닿았다.
“은호.”
일렉트의 단춧구멍 같은 눈이 시야에 들어왔다.
“정신 차리거라.”
흑견마저 시야 안으로 들어오자 은호는 눈을 깜박거렸다.
“맞아. 정신 차려, 은호.”
은호는 두 환수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그는 놀란 눈을 할 뿐이었다.
“악몽을 꾼 모양이다.”
‘꿈…?’
흑견이 꺼낸 말에 은호는 의아함을 느꼈다.
언제 잠이 든 건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나… 언제 잔 거야? 분명히 애들하고 놀고 있었는데?”
은호는 놀라며 주변을 바라보았다.
레비아탐은 얼굴이 보이지 않게 몸에 감춰 웅크렸고, 폭시는 혀를 내민 채 몸을 둥글게 말았으며 라비는 배를 내보인 채 꼿꼿하게 눈을 감고 있었다.
은호는 흔들리는 눈으로 바로 한 마리씩 손가락을 가져댔다.
움직이는 배와 손가락으로 닿는 숨소리에 그제야 안도했다.
‘…놀래라.’
은호는 애들을 쓰다듬어준 뒤, 라비와 레비아탐 사이에 물어뜯긴 장난감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옆에는 방금까지 녹화 중이었던 휴대전화가 눈에 들어왔다.
‘…그러니까.’
은호는 기억을 더듬거렸다.
밖에서 다 같이 바비큐나 먹을까 싶어서 이래저래 준비하던 중 뭔가 요란한 소리가 들려 집으로 들어갔다.
―아무나 이겨라! 아무나 이겨!
폭시가 열심히 응원하고 있었고, 레비아탐과 라비가 뭔가를 물어뜯고 있었다.
그게 뭔가 보니 태호가 한땀 한땀 만든 장난감이었다.
애들 이빨이 가려울 수가 있어서 만든 거라고 했던 것 같기도 했다.
다 떠나서 레비아탐과 라비가 갑자기 힘을 겨루자 이게 무슨 일인가 폭시한테 물었다.
―아크가 라비한테 알려줬대. 나랑 레비아탐이랑 먼저 했는데, 레비아탐이 이겼다? 레비아탐은 진짜 힘이 좋아!
그 말을 듣자마자 아득함이 몰려왔다.
저 사고뭉치가 뭘 또 흡수했는지 몰라도 아크를 만나면 잔소리라고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만하라고 말하려다 레비아탐과 라비가 귀여워 자신도 모르게 휴대전화로 찍고 있었다.
그 뒤로 뭘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가장 중요한 게 생각이 나고 말았다.
“…불! 불! 불 피우고 들어왔는데!”
은호가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흑견이 말했다.
“이미 껐다.”
“진짜? …와, 나 진짜 놀랐네. 불낼 뻔했어. 고마워, 멍멍이 형님.”
“지금 그게 중요한가?”
“그건 중요하지. 불이 나기라도 해봐.”
은호는 밀려드는 생각에 눈을 질끈 감았다.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가을이었다.
―서은호 씨.
그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순간, 등줄기에 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
“인간. 대체 왜 이렇게 태평한 건가? 방금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잊었는가?”
“……아.”
은호가 뒤늦게 눈을 깜박거리며 흑견을 보았다.
“내가 악몽을 꿨다고 했지? …왜? 내가 왜 잠들었어?”
“인간이 잠이 든 게 아니라, 누군가 인간을 재웠다.”
“맞아. 누가 왔어.”
일렉트가 흑견의 말에 동의하며 단춧구멍 같은 눈을 가늘게 떴다.
“아, 삐죽이는 옥상 피뢰침에 매달려 있었지?”
은호는 피뢰침에 돌돌 말린 채 자신을 보고 있던 일렉트를 기억했다.
피뢰침 주변이 안락한지 거기에 돌돌 돌돌 매달려 있었다.
“삐죽아. 누가 왔는지 봤어?”
“뭔가 폭신폭신하게 생긴 애가 왔다가 휙 하고 갔어. 뭐가 이상한지도 몰랐어. …분해.”
일렉트는 입꼬리를 뒤틀었다.
어떻게 보지 못할 수 있을까.
“범인은 이 근처에 있다.”
흑견은 불쾌함을 담아 말을 꺼냈다.
그저 오랜만에 달리고 싶어 잠깐 자리를 비웠다.
그 사이에 집 근처에 자신이 놔둔 힘이 흔들리는 걸 느꼈다.
‘대체 왜 인간 주변에는 뭐가 자꾸 꼬이는가.’
이번에 또 뭔지 몰라도 만나는 즉시 물어 뜯어버리고 싶었다.
“멍멍이 형님. 지금 나쁜 표정이 됐다? 물어 뜯어버리려고 한 거 아니지?”
“…어떻게 알았는가?”
흑견이 흠칫거리자 은호는 털 같은 어둠을 당겼다.
“물어뜯으면 안 돼.”
“내 영역임을 알고도 들어왔다.”
그리고 인간을 건드렸다.
흑견의 표정이 더 일그러지자 은호가 흑견의 코를 만졌다. 흑견이 바로 고개를 좌우로 흔들자 은호는 실실 웃었다.
“그럼, 어떤 친구인지 보러 갈까?”
“좋다.”
흑견이 흔쾌히 허락하며 이를 갈자 은호는 마른침을 삼켰다.
괜히 말했을까.
뭔가 평소와 반응이 달랐다.
“나도 갈래. 누구인지 궁금해.”
일렉트가 꼬리를 흔들며 말했다.
아주 좋은 반응에 은호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전기 이외에 관심을 가지는 건 일렉트가 호전되고 있다는 증거였으니까.
“좋아. 같이 가자.”
은호는 흑견에게 손을 대자마자 가장 큰 고민거리가 밀려왔다.
“…그런데 애들은 어떻게 하지?”
나중에 깨면 걱정할 텐데.
‘내 침대로 옮긴 뒤에 그림이라도 그려놔야겠네?’
은호는 완벽하다고 생각하며 웃었다.
“인간.”
“응?”
“지금 웃을 게 아니다.”
“왜?”
“밖을 봐라.”
흑견이 창문을 가리켰고, 은호는 고개를 돌리자마자 기겁했다.
주변 나무가 갑자기 크게 흔들렸으니까.
“위그드라실!”
은호가 다급히 소리치며 밖으로 나갔다.
* * *
“…위그드라실.”
은호는 흑견을 타고 가며 손바닥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위그드라실을 불렀다.
“이렇게 막 애들한테 힘을 쓰면 어떡해?”
위그드라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네가 한 거 아니야?”
위그드라실이 고개를 끄덕이자 은호는 주변에 있는 나무를 바라보았다.
‘날 위해 그랬다고?’
이 주변에 열심히 가꾸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럴 줄이야.
‘……감동인데.’
위그드라실이 주먹을 휘두르자 은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도 동조했으니까, 나쁜 거야. 그럴 땐 애들을 말려야 해. 그렇지, 삐죽아?”
은호가 목에 휘감긴 일렉트에게 물었다.
위그드라실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던 일렉트는 앞발에 전기를 내뿜었다.
파지직.
“아니. 은호를 건드리면 누구든 구워버려야지.”
위그드라실이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반짝이는 번개를 보고 반해버린 듯 머리 위 새싹이 통통 튀었다.
“말 잘했다. 구워버리는 건 당연하고, 잘게 잘게 쪼개버려야지.”
흑견이 입을 열며 갑자기 걸음을 멈춰서는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샛노란 눈동자가 가늘어지던 그때, 어둠이 움직였다.
“그렇지 않나?”
여기에서 집 주변에 묻은 냄새가 진동했다.
숲속에 숨어 있는 환수를 향해 어둠을 움직였다.
“……!”
갑자기 끌려온 환수가 허둥지둥거렸다.
“나한테 가까이 오면 안 돼!”
“주변에 흐르는 이 가루를 말하는가.”
하.
그게 뭐라고.
어둠으로 잡아먹어 버리면 그만이었다.
흑견은 날을 세우다 말고 슬쩍 고개를 돌려 은호를 바라보았다.
어둠으로 은호를 들었다.
“……?”
저 멀리 보냈다.
“왜 인간에게 힘을 사용했지?”
“나, 나는…….”
“멍멍이 형님. 진정해. 분명히 악감정이 없었을 거야. 그렇지?”
은호가 걸어오며 웃었다.
환수는 구름 속에 파묻힌 것처럼 몽글몽글한 털을 가졌고, 얼굴은 새끼 양이었지만, 동글게 말린 뿔이 달려 있었다.
아담한 느낌에 네 다리는 곰 인형의 발처럼 평평하면서도 푹신푹신해 보였다.
다리마다 별 모양이 이어진 듯한 무늬가 존재했고, 묘한 연기가 휘날렸다.
뿔은 새하얀 색이었으며 몸통은 연한 분홍빛의 털을 띄고 있었다.
‘진짜 삐죽이 말처럼 폭신폭신해 보이네?’
뭔가 묘한 환수였다.
“인간은 다가오지 말거라. 주변에 흐르는 힘이 인간에게는 영향을 미칠 거다.”
저 힘으로 은호를 재웠을지도 몰랐다.
“다시 묻지 않겠다. 인간을…….”
“미안해!”
환수가 갑자기 엉엉 울기 시작했다.
흑견의 눈동자가 잠깐 커졌다.
“왜 우는가…?”
뭔가 껄끄러웠다.
“…내가 지나가다가 인간이 가진 꿈의 열매를 보고 그만 실수해버렸어!”
저 인간은 눈이 돌아버릴 정도로 아름다운 꿈의 열매를 만들 수 있는 존재였다.
모든 존재는 잠을 자기에 주로 그때, 꿈의 열매를 얻곤 했다.
하지만 처음으로 잠이 들지 않았음에도 재워버렸다.
그만큼 탐이 났다.
뒤늦게 정신을 차렸지만, 너무 놀라 도망치고 말았다.
“사과했어야 했는데, 너무 놀라서 도망쳤어. 미안해! 나도 처음이라서 그랬어!”
뚝뚝 떨어지는 눈물에 흑견은 환수를 땅으로 내렸다.
우는 존재에게 무어라 말을 하는 건 영 찝찝했다.
“봤나, 인간? 영역 표시가 되지 않으면 이렇게 된다. 저번에도 꼬이더니 또 꼬였다.”
그저 은호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영역 표시가 덜 되니, 다들 만만히 보고 있었다. 아니꼬웠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어. 괜찮아.”
은호가 환수를 보며 키득거렸다.
눈물이 꽤 많은 환수 같았다.
“하지만 나는… 네가 가진 꿈의 열매를 탐냈는데.”
“아까부터 꿈의 열매라는 말을 꽤 자주하는데, 그게 뭔지 알려줄 수 있어? 나는 처음 들어봤거든.”
은호는 기대에 찬 얼굴로 환수를 바라보았다.
꿈에서 나는 열매일까. 이름만으로 참 신기했다.
“…나는, 꿈을 꾸게 할 수 있어. 행복한 꿈하고 악몽하고. 꿈을 꾸게 하면 꿈의 열매가 맺히고, 내가 얻을 수 있어.”
“뭔가, 대가 같은 거야?”
환수는 훌쩍이며 은호의 물음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대가가 아니라 나한테는 목숨만큼 중요한 거야. 그래서 내 눈에는 꿈의 열매가 보이는데…….”
고개를 올려 은호를 보다 말고 십자가 모양을 닮은 환수의 눈동자가 요동쳤다.
꿈의 열매가 만들어지다 말았다.
“…호, 혹시 꿈을 자각했어?”
“맞아. 네가 왜 그런 꿈을 나한테 보여줬는지는 몰라도 솔직히 기분이 좋진 않았어.”
“미안해에. 하지만 나는 악몽을 꾸게 하지 않았어! 정말이야.”
환수는 또 울었다.
꿈을 자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힘으로 꾸는 꿈을 자각하기는 너무 어려울 텐데.
어떻게 된 건지 몰라도 미안했다.
좋은 꿈을 꾸게 해야 했는데.
“어쨌든, 친구는 내 꿈의 열매가 필요하다는 거지?”
은호는 가슴으로 손을 올리자 환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줄게.”
“정말… 꿈의 열매를 줄 거야?”
“당연하…….”
“인간!”
“은호!”
은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소리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흑견과 일렉트가 사납게 바라보았다.
“아니, 꿈만 꾸면 된다고…….”
“인간은 왜 그렇게 멍청한가? 대가 없는 건 없다.”
“맞아! 은호는 바보야! 그냥 주는 건 은호밖에 없어!”
“…아니, 그.”
은호는 말을 하다 말고 살짝 더듬었다.
이렇게 반대가 심할 줄이야.
이럴 때는 물어보는 게 최선이었다.
“친구야. 혹시 내가 꿈의 열매를 주면 뭔가 나한테 이상한 일이 일어나?”
“이상한 일은 일어나지 않아.”
“애들아, 봤지?”
“…대신, 나를 잊어.”
“어?”
방금 무슨 소리를 들었을까.
은호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만 기억하지 못하게 돼.”
환수는 다시금 말을 하며 웃으려다 그만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어……?”
덩달아 은호의 눈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