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114)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114화(114/302)
114화. 꿈은 꿈이다(2)
“…이, 일단 진정해.”
은호는 당황하며 환수를 진정시키려 애를 썼다.
꿈의 열매를 캘 수 있게 하면 자신이 저 친구를 잊어버리게 된다니.
다시금 생각해도 기가 찼다.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갑자기 울어서 미안해. 내가 눈물이 많아서 그래.”
환수는 눈물을 그칠 때까지 앞발로 부지런히 얼굴을 닦았다.
열심히 움직이던 앞발을 내리자 눈가가 빨개진 게 보일 정도였다.
“다시 제대로 알려줄게.”
“…어어. 나도 다시 제대로 들을게!”
은호는 안도하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래. 내 꿈의 열매를 준다고 내가 저 친구를 잊느니 뭐니 하는 소리는 잘못 들었을 거야.’
아까 분명히 저 환수가 이렇게 말하지 않았는가.
―대가가 아니라 나한테는 목숨만큼 중요한 거야.
목숨만큼 중요한 거라면 계속 꿈의 열매가 필요하다는 의미일 텐데, 그때마다 누군가의 기억에서 저 친구가 지워지는 건 이상했다.
‘그렇지. 그건 이상하지.’
“나한테 꿈의 열매를 줘도 너는 괜찮아. 어차피 나만 기억 못 하게 되니까. 다른 건 다 이상 없어!”
미안할 정도로 방긋 웃자 은호는 마른침을 삼켰다.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저기, 친구야?”
“나?”
“그게 문제 같은데?”
“맞아. 내가 문제야. 나만 문제니까, 괜찮아. 짧지만, 이렇게라도 말해줘서 고마워.”
환수는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인 채 순진한 아이처럼 밝게 웃었다.
“아니, 그 말이 아니야.”
“아프지 않아. 아까 내가 당황해서 뭘 실수했나 봐. 이번에는 제대로 행복한 꿈을 꾸게 할 자신이 있어!”
환수는 앞발에 힘을 주며 굳센 표정을 지었다.
“친구야. 내가 문제가 아니라, 네가 문제인 게 문제라고 말하고 싶은 거야.”
환수는 눈을 크게 떴다.
십자가 모양을 한 눈동자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이다가 고개를 기울였다.
폭신폭신한 털이 같이 움직였다.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내가 바보인가 봐.”
이내 환수는 살짝 울상이 되었다.
“그럼, 왜 널 잊어? 나도 널 잊어버리는 거야? 멍멍이 형님도?”
일렉트는 밀려오는 궁금증에 입을 열었다.
“맞아. 여기 있는 모두 다 나만 잊는 거라서 아무 문제 없어. 사실 아까도 네가 나를 잊었어야 했는데, 내가 꿈의 열매를 가져오지 않아서 그런가 봐. 그래도 이렇게 찾아와서 놀랐어.”
환수는 그저 신기한 일을 겪는 것처럼 반응하다가 수줍게 웃었다.
“…기뻤어. 이런 일은 처음이야.”
인간의 꿈을 보다 보면 생일을 축하받는 꿈을 정말 많이 보곤 했다.
비록 케이크라는 것도, 초도, 축하해주는 이들이 없어도 오늘은 그런 꿈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느껴졌다.
“그걸 어떻게 확신할 수 있지?”
날카롭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환수는 정신을 차렸다.
고개를 올려 흑견을 바라보았다.
샛노란 눈동자와 마주하면 이상하게 주눅이 드는 기분이었다.
저 존재한테는 꿈의 열매가 보이지 않아서 더 그럴까.
‘…그걸 말하면 기분 나빠하겠지?’
환수는 하고 싶은 말을 누른 채 입을 열었다.
“솔직히 확신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어.”
“어째서인가?”
흑견은 환수의 대답이 썩 만족스럽지 못했다.
확신도 없으면서 은호가 꿈의 열매를 준다는 말에 덥석 받는 꼴이 거슬렸다.
“그때는 네가 나를 기억하지 못할 테니까. 내가 짠하고 나타나도 너는, 어, 나를, 음,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내가 미쳤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
환수는 쭈뼛거리며 앞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누군가를 이해시키는 게 어렵다는 걸 알았다.
이해는 대부분 시간이 필요했으니까.
하지만 저들과 자신은 시간을 쌓을 수 없기에 호소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확신을 할 수 없어. 하, 하지만 정말이야. 나는 거짓말하지 않았어!”
“네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거 알아.”
부드럽게 들리는 목소리에 환수는 고개를 돌렸다.
은호가 따뜻하게 바라봐주고 있었다.
“…정말 날 믿어주는 거야?”
환수의 눈이 커졌다.
분명히 이해하기 어려울 텐데.
“당연하지.”
“왜 당연하다고 말하는지 모르겠어. 그런데 고마워.”
환수는 다시금 수줍게 웃었다.
처음 겪는 일에 아주 잠깐 망설임이 들었다.
저 인간이 가진 꿈의 열매를 가져가지 않으면 괜찮지 않을까.
‘…아니야. 그렇지 않다는 거 알고 있잖아.’
꿈의 열매를 쫓아다니는 자신은 언제든지 실수를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저토록 아름다운 꿈의 열매를 모르는 척 넘어갈 수 있을까.
지금도 바라볼 때마다 군침이 도는데.
‘나는 반드시 꿈의 열매에 손을 댈 거야. 그렇게 되면 나를 잊을 텐데.’
밀려드는 쓸쓸함을 또 감당할 수 있을까.
‘…자신 없어.’
분명 울보처럼 울어버리겠지.
울기만 할까. 주변에 맴돌겠지.
그리고 똑같은 말을 들을지도 몰랐다.
―소름 끼쳐.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자신은 아는데. 알고 있는데, 그 존재는 자신을 모른다는 건 너무나도 괴로운 일이었다.
또 눈물이 핑 돌 것만 같았다.
‘울지마, 바보야.’
“친구야.”
생각을 깨게 하는 목소리에 환수는 정신을 차렸다.
인간은 여전히 자신을 따뜻하게 보고 있었다.
“…그 말, 기분 좋아.”
친구라니.
저 인간이 자신과 관련된 기억을 잃어버린다면 또 이런 말을 꺼낼 수 없기에 환수는 솔직하게 현재 감정을 털어놓았다.
말하지 않으면 언제나 후회로 남을 뿐이니까.
“대체 왜 네가 기억에서 지워지는 거야?”
은호는 여전히 잘 이해가 가지 않는 사실을 물었다.
“내가 꿈을 꾸게 하면 꿈의 열매가 맺혀. 그러면 나는 그 꿈의 열매를 따러 모습을 드러내야 해.”
“꿈을 꾸는 존재가 널 그때 본다는 말이지?”
“맞아. 그때가 아니면 딸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어. 그때, 꿈을 꾸고 있는 존재가 나를 기억하고 있다면 내가… 무섭지 않을까?”
바다로 가는 꿈을 꾸고 있는데, 인간들이 가득한 그곳에서 자신이 모습을 드러내면 꿈의 기억은 어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지워지는 건 당연했다.
“그래서 네가 지워진다는 거야?”
“맞아. 이건, 다른 동족도 마찬가지니까, 괜찮아.”
환수가 괜찮다고 말했지만, 적어도 저 친구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정말 기억되지 않아도 괜찮아?”
은호는 혹시나 해 물었다.
자신의 눈에만 애잔하게 보일 수 있었다.
이게 저 환수의 종족 특성이라 진짜 괜찮다면 끼어드는 게 오히려 좋지 않았다.
“괜찮아. 이런 일은 정말 많았어.”
환수가 웃었다.
은호는 그 웃음을 보며 멈췄던 걸음을 다시 움직였다.
은호가 점점 환수에게 다가가자 흑견은 이를 내보였다.
‘저 인간이!’
다가가지 말라고 했을 텐데.
당장 은호의 옷자락을 쥐었고, 환수는 뒤로 물러섰다.
“더는 다가오지 않아도 돼. 나는 네가 다 알고도 나한테 꿈의 열매를 준다는 말에 정말 기뻤으니까. 그래서…….”
“내가 도와줄게, 친구야.”
은호는 흑견의 앞발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웃었다.
그 말에 환수는 멍하니 은호를 바라보았다.
뭘 도와주겠다는 건지 전혀 알아차릴 수 없었다.
이미 꿈의 열매를 준다는 사실로 충분했는데.
“그러니까, 뭐가 널 슬프게 하는지 알려줄래? 내가 들어줄게.”
다시 땅으로 내려온 은호는 짜증이 난 흑견을 쓰다듬으며 환수를 향해 더 환하게 웃었다.
“…나 이번에는 울지 않았어. 나 웃고 있는데?”
환수는 앞발로 자신의 얼굴을 만졌다.
조금 전과 달리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분명 안 울고 잘 말했는데.
잘 웃었는데.
“알고 있어.”
“…….”
그런데 어떻게 알았냐는 표정에 은호는 섣불리 말을 꺼내지 않았다.
눈물을 흘리지 않아도 환수의 눈동자와 눈빛에 어린 먹먹함을 보고 말았다.
얼마나 오래됐는지 몰라도 꾸역꾸역 눌러둔 아픔 같았다.
오늘 꿈에서 형을 봤기 때문일까.
이곳에 오기 전, 거울로 자신을 봤을 때와 비슷한 눈빛을 하고 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나도 그랬으니까.”
은호는 환수에게 더는 다가가지 않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나도 너처럼 슬픔을 꾹 참았던 적이 있어서 그래.”
“…이렇게 말해버리면 나 또 울지도 몰라.”
“울어도 괜찮아. 슬프면 우는 게 뭐가 이상해?”
“그게 아니야.”
환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뭐라고 말해야 저 인간이 상처받지 않을까.
아무리 저 인간이 자신을 잊어버리더라도 좋지 않게 끝내는 건 싫었다.
“나만.”
환수는 말을 꺼낸 뒤, 은호의 눈치를 바라보았다. 옆으로 살짝 누운 귀가 팔랑거렸다.
“괜찮아. 눈치 안 봐도 돼. 언제든지 들어줄 준비가 됐는데? 나는 너를 보러 온 거야.”
“나를…?”
“나한테 꿈을 꾸게 하고 도망간 말썽꾸러기가 누구인지 궁금했어.”
“…미안해에.”
환수의 눈망울이 일렁거렸다.
“농담이야, 친구야.”
은호가 키득거렸다.
역시 저 환수는 울보가 맞았다. 괜히 더 울리고 싶긴 했지만, 꾹 참고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너를 만나러 온 건 맞아. 그러니까 네가 하는 말을 들을 준비가 됐다는 거지.”
은호의 시선에 눈을 마주친 환수는 몸을 떨다 이내 시선을 떨구었다.
자신을 만나러 왔다니. 뭔가 기뻤다.
이런 설렘은 얼마 만일까.
“나만… 기억하는 감정과 추억이 있는 게 슬퍼서 그래. …뭔가, 한심하지?”
환수는 말을 다 끝내고는 괜히 쭈뼛거렸다.
‘……부끄러워.’
자신만 이런 것도 아니고, 동족 모두가 겪는 일이었다. 뭔가 엄살을 부리는 것 같았다.
이 감정을 동족한테 이야기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네가 이상한 거 아니야?
돌아오는 대답은 하나였다.
이상한 건 자신이었다.
―좀 예민한가 보네?
예민한 건 자신이었다.
왜 모두가 겪는 일에 자신만 틀에서 벗어났는지 몰랐다.
다시 마음이 따끔거리고 한없이 작아지는 기분을 느꼈다.
‘…저 인간도 나를 이상하다고 생각할 거야. 내가 과하게 받아들이는 거라고, 분명히 그렇게 말할 거야.’
쿵. 쿵.
심장이 빠르게 뛰며 얼굴이 뜨거워졌다.
말하지 말걸.
돌아오는 반응이 너무나도 무서웠다.
그냥 여기서 재워버리고 도망칠까.
“많이, 슬펐겠다.”
하지만 전혀 다른 소리가 흘러나오자 환수는 놀라며 고개를 올렸다.
“아, 아니야. 나만 그런 것도 아닌데.”
얼굴이 더 화끈거리며 말이 멋대로 튀어나왔다.
“모두가 겪는 일이야.”
“모두가 겪는 일이라고 해도 슬펐을 거라 생각해.”
쿵쾅쿵쾅.
이어진 은호의 말에 환수의 심장이 더 빨리 뛰었다.
“다른 동족은 다… 괜찮았어. 나만 예민하게 반응한 걸지도 몰라.”
환수는 억지로 웃었다.
이상했다. 마치 자신이 고장 난 것처럼 싫어하는 말을 꺼내고 있었으니까.
이러고 싶지 않은데, 지금까지 들어왔던 말에 제멋대로 휘둘리는 것만 같았다.
“친구야. 나는 너에게 물어본 거야. 다른 존재가 널 보고 뭐라고 하든 간에 그건 중요하지 않아.”
“그, 그렇지만 내가 이상한걸.”
환수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대답했다.
또 눈물이 나는지 시야가 일그러졌다.
왜 이렇게 울기만 하는지 몰랐다. 너무도 한심하고, 한심했다.
“다들 괜찮은데, 나만 이상하다고 느끼고 있어. 내가 이상…….”
“이상하지 않아.”
환수는 단호한 저 말에 아주 잠깐 숨을 멈췄다.
“하지만 다 내가 이상하대. 내가… 이상한 거야. 당연히 견뎌야 하는 걸 못 견디는 거야.”
“친구야. 그런 건 없어.”
은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다가오자 환수는 놀라며 소리쳤다.
“가까이 오면 잠들어! 내 주변에 오는 것만으로도 다 잠들어.”
“멍멍이 형님도 그렇게 말하긴 했는데, 왜 그런 거야?”
“저 존재 주변에 흐르는 힘 때문이다. 내가 인간을 붙잡은 것도 그 이유다.”
멍청한 인간.
흑견은 은호를 쏘아보았다.
하지만 은호는 환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안타까움을 얼굴에 그리고 있었다.
“나는 너한테 가까이 갈 수도 없어. 이렇게 태어났는데, 내가 견뎌야 하는데, 나는 괜찮아야 하는데.”
환수는 참았던 눈물을 또 흘렸다.
“나만 그렇지 않아. 나만, 달라. 나만… 바보처럼 울기만 해. 이런 내가…….”
“그런 말은 안 돼, 친구야.”
은호는 환수가 꺼낼 그다음 말을 막았다.
이 이상 꺼내는 건 또 다른 후회를 부를 테니까.
“그렇지만, 나는 바보 같은 짓만 해. 기억이 지워질 걸 알면서도 다른 애들하고 친해지고 싶고, 나도,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고 바라고 있어.”
“그건 당연한 거야. 누구든 혼자가 되길 원하지 않아.”
“날 잊을 걸 아는데도?”
“그건 너의 소망이잖아. 아무도 너의 소망을 비웃을 수 없어.”
환수는 은호를 바라보며 뒤로 물러섰다.
이만큼 자신에게 말해준 이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또, 또 멍청하게 나쁜 꿈의 열매만 모으는걸.”
동족도 자신을 비웃었다.
-또 악몽이 깃든 꿈의 열매를 수확했어? 그러다 너 꿈으로 돌아가면 어쩌려고 그래? 진짜 멍청하네. 그냥 눈 한 번 질끈 감고 악몽을 꾸게 해. 그게 뭐라고.
악몽을 꾸게 하면 행복함이 깃든 꿈의 열매를 수확할 수 있었다.
알고 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꿈은 행복한 꿈을 꿔야 했고, 자신이 악몽이 깃든 꿈의 열매를 수확한다고 해도 괜찮았다.
그러니 저 인간도 자신을 바보라고 말해줬으면 했다.
도망칠까.
그냥 꿈의 열매를 가져가지 말고 도망쳐버릴까. 계속 생각했다.
“꿈의 열매라는 게 나쁘고, 좋은 게 있었던 거야? 행복한 꿈을 꾸게 하면 뭔가 행복한 꿈의 열매를 수확할 수 있고 그래?”
“…어, 아니야.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데, 우리의 힘은 자연스러운 게 아니야.”
환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
“인위적으로 꿈을 꾸게 하는데, 수확할 수 있는 열매는 반대로 나와. 가령 악몽을 꾸게 하면 꿈은 이에 대항하려고 행복한 에너지를 내게 돼. 그래서 행복함이 깃든 꿈의 열매를 수확할 수 있어.”
“그게 너한테 어떤 영향을 미치는데?”
“꿈의 열매가 없으면… 나는 꿈의 세계로 가. 그곳에서 다시 빠져나오기 전까지 악몽에 시달려. 나는 악몽이 깃든 꿈의 열매만 먹었으니까.”
꿈의 세계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면 깨지 않는 악몽에 시달려야 했다.
사실상 죽음과 뭐가 다를까.
“그래서 나는 꿈의 열매가 꼭 필요해.”
“너한테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나한테 행복한 꿈을 꾸게 해준 거였어? …왜 그랬어?”
은호의 표정이 굳어갔다.
저 환수가 처음과 다르게 보였다.
“악몽은… 무섭잖아. 나는 계속 꿈의 열매를 모으면 되는 거니까. 꿈속에서라도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보는 게 너무 좋았어. 나는… 행복할 자신이 없으니까.”
은호는 저 말에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 그냥. 그냥 저 환수를 안아주고 싶었다.
빛이 은은하게 뿜어져 나왔다.
그 빛을 보며 환수는 입을 다물었다.
은호의 손아귀에서 나온 교감의 힘이 주변을 밝혔다.
다른 건 몰라도 자신은 저 친구와 가까이 할 수 있어야 했다.
드루이드니까.
그 어떤 환수라도 품을 수 있어야 했다.
‘…독을 내뿜는 친구들은 좀 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긴 하지.’
은호는 크라슨을 안았을 때를 잠깐 떠올리다 괜히 웃음이 나왔다.
독은 솔직히 아팠으니까.
“왜… 웃는 거야?”
“아니, 나도 가끔 바보 같은 짓을 해서. 갑자기 그게 떠올랐지, 뭐야.”
은호는 교감의 힘을 두른 손을 뻗었다.
“잘 알고 있는데 왜 손을 그쪽으로 뻗는가?”
흑견이 아니꼬운 목소리를 냈다.
“혹시나 잠들면 멍멍이 형님하고 삐죽이가 아까처럼 깨워줄 테니까. 그렇지?”
일렉트가 빛을 따라오자 은호는 손을 뻗었다.
“넌 거기에 있어, 삐죽아.”
“은호가 가는데?”
“바보 같은 짓을 하러 가는 것뿐이야. 같이 바보가 되면 어떡해.”
“나는 바보 아니니까 여기 있을래.”
일렉트는 은호의 목에서 나와 허공에 둥둥 떴다. 딱 자르는 태도에 은호는 다시 웃었다.
한 걸음.
두 걸음.
빛을 휘감으며 환수에게 걸어갔다.
“나한테 오면 잠이 들어.”
“알아. 방금 들었잖아?”
“왜 오는 거야? …나는, 나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어.”
주변에 흐르는 힘 때문에 잠들어버리겠지.
잠이 들면 자신은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 꿈을 건드려 꿈의 열매를 가질지 말지.
하지만 이 유혹을 견딜 수 있을지 몰랐다.
‘이렇게 빨리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싶지 않았는데.’
좀 더.
좀 더 저 인간하고 대화하고 싶었는데.
“나도 아직 잠이 들 생각은 없어. 밤은 기니까.”
은호는 환수의 앞에 섰다.
잠이 들지 않았다. 졸린 기분도 들지 않았다.
그러니 괜찮았다.
은호는 환수에게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또 조심스럽게 안았다.
환수는 그대로 멈췄다.
태블릿이 날아왔다.
《환수를 인식하셨습니다.》
《꿈지기(비공식 이름). 확정되면 재차 변경하겠습니다.》
저게 어떤 의미인지 몰라도 은호는 꿈지기를 안아주었다.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그릇을 알고 있었다.
토템을 이용해 일렉트의 전기 나무를 만들어주지 않았는가.
그러니 이번에도 할 수 있었다.
“친구야. 내가 널 도와줄게. 네가 누구한테 잊히지 않게 도와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