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115)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115화(115/302)
115화. 꿈은 꿈이다(3)
꿈지기는 입술을 파르르 떨다 앞발을 뻗어 은호를 안았다.
도와주겠다니.
처음 들어본 말이었다.
그냥 그 말만이라도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들어 꿈지기는 배시시 웃었다.
“…고마워.”
웃고 있었지만, 눈꼬리 아래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렇게 따뜻한 말과 따스한 온기는 절대로 잊지 못할 것 같았다.
아마 자신이 사라질 때까지 잊을 수가 없겠지.
그저 스쳐 갈 인연이었다.
별거 아닌 일이었을지도 모르는데, 그 짧은 인연을 붙잡고 자신을 찾아와 준 건 저 인간이었다.
“나는 단아야. …네 이름을 알려줘.”
저 인간을 기억하려면 이름이 필요했다.
알고 싶었다.
“나는 서은호야. 참 예쁜 이름이네.”
은호는 단아를 토닥거렸다.
“슬플 때마다 네 이름을 생각하면 나는 버틸 수 있어.”
단아는 눈물을 닦으며 더 크게 웃으려고 애를 썼다.
세상에 누군가 자신을 생각해준 이가 존재했다고.
그 흔적만 남아도 충분했다.
아주 좋은 이름이었으니까.
“버티지 마. 이제 버티지 않아도 돼.”
은호는 뒤로 조금 물러나 단아와 눈을 마주했다.
단아는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버티지 않으면, 그러면, 어, 나는 너무, 괴로워서 다음을 생각할 수 없을지도 몰라.”
“그게 아니야. 지금처럼 누군가의 기억 속에 사라질까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었어.”
“그건… 부, 불가능해.”
태어났을 때부터 당연한 일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자신도 몇 번이나, 정말 몇 번이나 방법을 찾았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나는 꿈의 열매가 계속 필요하고, 꿈의 열매를 얻으려면 누군가에게 꿈을 꾸게 해야 해. 존재마다 꿈의 열매 크기가 달라서 어떤 날에는 여러 존재에게 꿈을 꾸게 해도 부족할 수 있어. 동족이… 이미 꿈을 꾸게 한 존재는 안 돼.”
“만약에 네가 꿈의 열매를 계속 얻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거야?”
“꿈이 되어버려. 우리는 누군가의 아주 행복한 꿈에서 태어났으니까. 사라지는 거야.”
죽는다는 소리였다.
은호는 손을 뻗어 단아를 쓰다듬었다.
꿈을 꾸게 하는 대상이 겹치면 안 되고, 각자가 가진 꿈의 열매 크기도 다르니 무작정 모을 수밖에 없는 게 당연했다.
왜 자신을 재웠는지도 모두 다 이해했다.
“그럼, 내가 가진 꿈의 열매는 얼마나 커다랬어?”
“많이. 정말 많이.”
단아의 대답에 은호는 조금 더 이해하고자 태블릿을 바라보았다.
《타인의 행복한 꿈에서 태어난 환수입니다. 타인에게 행복한 꿈과 끔찍한 악몽을 꾸게 할 수 있는 힘이 존재합니다. 타인을 재우는 힘 역시 가지고 있으며 주변에서 잠이 오게 하는 힘이 흘러 가까이 가지 않아야 합니다. 타인의 정신에 크게 개입할 수 있는 만큼 존재 자체가 불안합니다.》
《꿈의 열매는 꿈지기가 타인에게 꿈을 꾸게 하는 와중에 수확할 수 있는 것으로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타인에게 악몽을 심으면 반대로 행복이 깃든 꿈의 열매를, 행복한 꿈을 심으면 악몽이 깃든 꿈의 열매를 얻습니다. 꿈의 열매는 꿈지기가 꿈으로 가지 않게 막아줍니다. 꿈에 오래 머물면 꿈지기는 꿈이 되어 사라집니다. 더 효율적으로 꿈의 열매를 획득하기 위해 수확한 뒤, 본인의 기억이 지워지도록 진화됐습니다.》
‘…정말이었어.’
은호는 오늘따라 글자가 참 씁쓸하게 느껴졌다.
진화를 위한 과정이었다고 해도 누군가에게 지워지는 힘이라니.
안타깝지만, 이건 꿈지기라는 종족의 특성이었다.
자신이 건드려서도 안 되는 특성.
그러니 단아까지였다.
일렉트처럼 단아만을 위한 식물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걸 위해서 꼭 필요한 게 있었다.
“단아야.”
“…응.”
“나는 이제부터 널 위한 나무 하나를 만들 거야.”
“내 전기 나무처럼?”
일렉트가 눈을 깜박거리며 물었다.
“맞아. 삐죽이가 가진 전기 나무처럼. 아마도 화려하진 않을 수 있어. 솔직히 내 생각대로 될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해봐야지. 그렇지, 단아야?”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
“날 믿어주면 돼. 그거면 충분해.”
“믿어. 널 믿어.”
단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단아야. 이제 내 꿈의 열매가 필요해. 만약에 네가 내 꿈의 열매를 얻는 즉시, 나는 너를 잊어버릴까?”
“그럴 거야. 나를 잊어버릴 거야.”
단아의 불안함이 목소리를 통해 전해졌다.
“단아야. 나를 믿지?”
“…믿어. 믿는데, 무서워. 네가 나를 잊는 게 무서워.”
“괜찮아. 내가 있고, 여기 이 친구들도 있으니까.”
은호는 고개를 돌려 흑견과 일렉트를 바라보았다.
화가 난 표정을 보니 정말 든든했다.
은호는 휴대전화를 꺼내 빠르게 현재 상황을 기록한 뒤, 흑견에게 넘겼다.
“멍멍이 형님. 나중에 이걸 나한테 보여줘.”
“꼭 이래야 하는가?”
“꼭 이래야 해. 그리고 단아야.”
“…응.”
“저 친구들한테 너의 힘이 미치지 않는 범위를 알려줘. 그래야 휴대전화가 나한테 올 수 있을 테니까.”
은호가 웃자 단아는 조바심을 꽉 누른 채 입을 열었다.
“내가 더, 더 빨리 꿈의 열매를 가져올 수 있어. 그러면, 그러면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
“그럼, 열매를 손에 넣은 즉시 네가 나를 데리러 와줄래?”
은호의 제안에 단아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꿈에서 갑자기 깨면 너에게 좋지 않아.”
“…뭐라고?”
흑견이 발끈하며 은호를 쳐다보았다.
“좋지 않겠지. 꿈을 더 오래 기억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아, 악몽이구나’ 하면서 넘어갈 수 있는데, 너는 아니잖아? 절대로 가볍게 넘길 수 없어. 그러니까 괜찮아.”
“그게 무슨 소리인가?”
흑견은 은호가 내뱉은 말에 기가 찼다.
고통은 상대적이었다. 뭐가 더 아프고 덜 아픈 게 없었다.
“악몽이라면 익숙해. 그러니까 화내지 마, 멍멍이 형님.”
“고통에 익숙한 건 없다. 왜 그 속에 인간만 생각하지 않은가.”
“나라면 충분히 생각하고 있는데?”
“아닌데? 은호는 은호를 생각하지 않는데?”
일렉트가 깃털을 부풀리며 화가 났음을 알렸다.
“아니야. 오해야. 이만큼 기쁜 순간이 없으니까. 나는 정말로 나를 생각하고 있어.”
“뭐가 기쁜 거야?”
일렉트의 물음에 단아는 곰 인형 같은 앞발로 눈물을 닦으며 귀를 팔랑거렸다.
“너희의 환한 미소를 볼 수 있으니까. 나는 그게 기뻐. 정말로, 기뻐.”
은호가 활짝 웃자 흑견은 발톱으로 바닥을 긁었다.
인간은 참 치사했다.
가장 가까이서 봤기에 저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인간.”
흑견의 눈동자에 날이 서자 은호는 얼른 입을 열었다.
정말로 화가 난 증거였으니까.
“오늘 바비큐 먹을 거야! 어때? 좀 마음이 풀리지?”
흑견은 그 말에 더 열받아 은호의 머리카락을 헝클어트렸다.
점점 기술이 좋아지고 있었다.
아주 한 가닥, 한 가닥 섬세하게 흐르는 게 느껴졌으니까.
“거기.”
흑견은 단아를 노려보았다.
단아는 바로 눈을 내린 채 식은땀을 흘렸다.
그저 쳐다보는 것 자체가 크나큰 압박이기에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인간을 꿈에서 데려올 수 있다면 확실히 데려오거라. 그게 아니라면…….”
“멀쩡히 돌아올게. 약속해.”
은호가 바로 새끼손가락을 올리자 긴 숨이 흑견에게 들려왔다.
인간은 진짜 얄미웠다.
솔직히 돌아오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는 그다음이었으니까.
저번에 일렉트에게 나무를 만들어줬을 때 어떻게 됐는가.
그건 쏙 빼먹고, 아주 절묘하게 말을 돌리니 얄미울 수밖에.
“인간, 내가 모를 거라 생각하는가?”
“당연히 알지. 내가 멍멍이 형님이 눈치가 빠른 거 내가 왜 몰라?”
“나만 모르는 거야?”
일렉트는 은호와 흑견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다. 입이 살짝 튀어나왔다.
“괜찮아, 삐죽아. 무사히 올 테니까.”
은호는 흑견과 일렉트를 안아주며 실실 웃었다. 쓰다듬어주는 것까지 마친 뒤에야 단아를 바라보았다.
“아까랑 말이 달라져서 미안해. 하지만 이 일이 끝나면 너도 바비큐 같이 먹자.”
“…그래도 돼?”
“왜 안 돼? 그러니까, 잘 부탁해, 단아야.”
“반드시 너를 데리러 갈게.”
“아, 위그드라실. 이번에는 날 깨워야 해.”
은호는 위그드라실이 고개를 끄덕이자 주저 없이 교감의 힘을 지워버렸다.
단아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힘이 스며들자마자 은호의 고개부터 힘없이 쓰러졌다.
흑견이 혀를 차며 은호를 붙잡고는 땅에 눕혔다.
단아는 당장 모래시계를 만들었다.
“…꾸, 꿈에서 흘러가는 시간이 표시될 거야. 다 흐르면 나를 잊어버릴 거고.”
“멋대로 불안해하지 마라. 보다시피 인간은 널 위해 다 던졌다. 그러니 집중해라.”
조금 전과 달리 누그러진 흑견의 말에 단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집중할게. 꼭.”
* * *
띠띠띠.
귀를 때리는 소리에 은호는 뭔가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뭐더라. 뭘 하고 있었는데.’
그게 뭔지 모르겠지만, 은호는 무거운 몸을 끌고 밖으로 나왔다.
익숙하게 펼쳐지는 회사의 모습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왔다.
회사에서 먹고 잠이 든 것도 이제는 일상이었다.
화장실로 가 거울을 보았다.
날이 선 눈동자부터 들어오자 잠깐 흠칫거렸다.
끈 떨어진 인형처럼 표정도, 생기 없는 눈빛도 낯설었다.
왜 그럴까.
잠깐 생각하다 은호는 그만뒀다.
생각하는 것도 사치였다.
그냥 몸을 움직였다.
일하고, 또 일을 하며 어서 목구멍으로 치솟는 이 감정을 떨쳐내야만 했다.
‘…그 감정이 뭐였더라.’
기억이 나지 않았다.
싸아아아.
은호는 세수했다.
시간이 흘러갔다. 회사에서 사람이 오고, 이 부장 역시 왔다.
촤악.
며칠이나 철야 하며 완성했던 서류들이 허공을 날고 떨어졌다.
“이따위로 할 거면 때려 쳐!”
이 부장의 윽박지름에 나오는 말은 하나였다.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한지, 뭘 잘못했는지, 그런 이유를 찾는 건 이제 관뒀다.
그냥 지껄이면 다 고개를 숙였다.
이곳으로 오겠다고 한 건 자신이었으니까.
떨어진 서류나 주웠다.
“너만 보면 진짜 소름이 돋는다. 표정이 없어. 너 인형이야?”
“죄송합니다.”
“됐고, 다시 해와. 반드시 오늘 안에 해야 해.”
“알겠습니다.”
은호는 대답한 뒤, 서류를 다 챙겨 자리에 앉았다.
“봤지? 그냥 인형이라니까? 죄송합니다. 알겠습니다. 이것밖에 몰라.”
주변에 속삭이는 소리에도 은호는 그저 서류를 바라보았다.
툭.
서류로 피가 떨어졌지만, 붉지 않았다.
회색이었다.
자신의 눈에는 이 세상이 다 회색으로 보였으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코를 막았다.
아침에서 점심으로, 점심에서 저녁으로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은호는 가장 먼저 회사에 있었고, 가장 늦게 회사에서 떠났다.
겨울에 맞지 않은 코트를 입었음에도 은호는 춥다는 생각하지 못했다.
빛을 따라 검게 물든 세상을 걸어갔다.
어떻게 왔는지 몰라도 정신을 차리니 현관에 서 있었다.
신발장 조명이 켜졌고, 그대로 은호는 우두커니 집을 바라보았다.
인기척도 없으며 까만 세상만 펼쳐질 뿐이었다.
추웠다.
싸늘했다.
그제야 은호는 온몸을 떨었다.
이런 광경을 볼 때마다 숨이 막히는 기분에 당장 빠르게 걸어 불을 켰다.
그제야 스르르 미끄러져 벽에 기댔다.
소리가 없었다.
회사 숙직실에는 누군가의 코를 고는 소리라도 들렸는데.
은호는 휴대전화를 꺼내 동영상을 재생했다.
늑대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은호는 그 소리를 들으며 멍하니 앞을 바라보았다.
천천히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따라 얼굴을 감쌌다.
‘…왜 나만 살아 있는 거야?’
그 사실이 너무도 화가 났다.
그렇게 몸을 혹사했는데, 왜 죽지 않을까.
얼굴을 가렸던 손으로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집이라는 공간 자체가 너무도 괴로워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악에 들린 소리 같았다.
“…은호.”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은호는 놀라며 시선을 올렸다.
새끼 양을 닮은 이상한 존재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회색으로 물들었던 세상이 바뀌었다.
“……내가 드디어 미쳤네!”
은호는 기뻐했다.
표정이, 눈빛이 달라 단아는 놀랐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온몸이 시릴 정도였다.
은호는 어쩌면 짙은 겨울에 갇혀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파고들었다.
“은호. 여기 봐봐.”
단아는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꿈의 열매를 꺼냈다.
단아의 앞발 위로 반짝이는 빛이 둥둥 떠 있었다.
은호의 미소처럼 찬란한 빛이 쏟아졌다.
“네가 가진 꿈의 열매야. 정말 예쁘지?”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되는 거야. 정신이 무너져야 몸이 무너진다고 했으니까. 그래. 이제 됐어.”
“은호…?”
단아는 은호를 불렀다.
뭔가 이상했다.
“고마워. 내가 미쳤다는 걸 알려줘서.”
은호가 웃었지만, 너무도 달랐다.
비가 오지 않아 바짝 마른 땅과 시들어버린 꽃이 생각이 날 정도로 깊은 절망이 보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