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117)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117화(117/302)
117화. 돌아왔다
여자는 손끝으로 턱을 받친 뒤, 무심하게 태블릿을 살폈다.
검은 머리카락이 살짝 내려왔다.
귀 너머로 머리카락을 넘긴 채 콧노래를 불렀다.
계속 이어진 침묵 속에 퍼져나가는 콧노래는 꽤 살벌하게 들려왔다.
그녀가 태블릿을 조작할 때마다 주변 분위기가 점점 얼어 붙어갔다.
여자는 고개를 들었고, 환한 미소가 얼굴에 걸렸다.
“모르는구나.”
태블릿에 수많은 자료가 존재했고, 내용은 상당히 많았지만, 결국은 하나였다.
모른다.
“모른다는 말을 왜 이렇게 길게 썼을까? 설명해봐.”
여자는 손가락으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씩, 하나씩 가리켰다.
그 손가락이 마치 심장에 겨눠진 칼처럼 느껴지자 사람들은 당장 울부짖으며 목숨을 구걸했다.
“…잘못했습니다!”
“살려주십시오!”
소리가 시끄럽게 퍼져나가자 여자는 손가락을 입가에 올렸다.
“쉿.”
그 한마디에 모든 게 조용해졌다.
“이번 일로는 안 죽여. 하지만 다음에는 모른다는 소리를 이렇게 길게 쓰면 안 될 거야. 죽여버리고 싶잖아.”
여자는 빨간 립스틱이 발린 입술을 올리며 활짝 웃었다.
―아, 이 건물 수리비. 그쪽에서 감당하는 거죠?
참 재미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즐겁기에 저들을 죽일 마음은 들지 않았다.
‘권석현을 끌어내린 게 이지혜가 아니라, 이쪽인 건가?’
아주 짧지만, 기사가 나긴 했다.
권석현이 죽이려는 A.
물론 지금은 내려졌다.
그 A가 자신에게 전화한 당돌한 남자일까.
―내가 찾아갈게요.
그 무례함 역시 무척이나 기대됐기에 요새 기분이 너무 좋았다.
뭐 하는 사람일까.
‘내가 목을 쥐면 어떤 표정일까.’
여자는 손톱을 물어뜯었다.
‘그 머리를 터트리면 얼마나 예쁜 피를 뿌릴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설??다.
온다고 했으니 더는 찾지 않았다.
정체도 모르는 존재를 찾는 건 시간 낭비이자, 오히려 어수선함이 꼬리를 밟힐 수 있었다.
이를 이용하고자 멍청한 유예림도 넘겨주지 않았는가.
‘꼭 와야 하는데.’
여기까지 올라오면서 자신은 참 많은 과정을 겪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건 조용히 와서 목을 쥐는 놈이었지, 요란하게 오는 놈은 전혀 무섭지 않았다.
모든 과정을 생각했을 때, 넘겨주는 게 맞았다.
‘유예림은 어차피 아무것도 말하지 않을 거니까.’
그렇게 길들였다.
자신의 손아귀에서 잘 짓는 개가 되도록.
무엇보다 손에 쥔 걸 잃을 걸 두려워해서는 이 자리를 유지할 수가 없었다.
내어주되, 적의 얼굴을 봐야 했다.
어디까지 이어져 있으며 어디까지 연결되어 있는지.
이 모든 걸 파악했으면 다시는 기어오르지 못하게 죽여야 했다.
‘그래. 우리를 무서워해야지.’
공포는 많은 걸 편안하게 만들었다.
지금도 그랬다.
사람들이 비소속 초능력자라고 불리는 자신들을 무서워해야 돌아다니기가 너무 편했다.
알아서 움츠러들 테니까.
지금 아쉬운 건 권석현이 무너지면서 발생한 현상들이었다.
잘 다져놨던 균형이 흔들리고 있었다.
여자는 손가락을 흔들었다.
“이제 질문 하나가 남았지.”
그녀를 향해 누군가 담배가 내밀었다.
그녀가 담배를 물자 불마저 붙여주었다.
후.
연기가 길게 새어 나갔다.
“내 영역에 겁대가리 없이 발을 내민 세력이 있더라고. 무릎을 꿇고, 질질 우는 너희들은 이걸 어떻게 생각해.”
“지금… 파악 중입니다.”
“나는 다른 누군가와 내 영역을 나누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그녀는 목소리를 낸 남자를 향해 손짓했다.
당장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무릎으로 걸어 나왔다.
“저런, 너는 내 말도 아직 파악 중인가 봐.”
새하얀 연기가 그녀의 입 밖으로 흘러나오며 눈꼬리를 아주 살짝 올렸다.
손을 들어 남자의 볼을 만졌다.
“그럼 죽어야지.”
파앙!
머리가 터졌다.
새빨간 피가 여자에게 쏟아졌고, 그녀는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무릎 꿇은 이들을 바라보았다.
“두 번 말하지 않아. 나는 내 영역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지 않단다.”
“반드시 죽이겠습니다!”
“목숨을 바쳐 무조건 쓸어버리겠습니다.”
강렬한 대답에 여자는 웃었다.
“이제 좀 쓸만한 대답이 나오네.”
여자의 손짓에 재떨이를 내밀었다.
담배를 꺼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야 안에 사슴과 고양이를 교묘하게 조합한, 탈 같은 얼굴이 박제되어 있었다. 왼쪽 얼굴에 별 문양이 존재했다.
“지워.”
그녀의 발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아무도 움직이지 못했다.
그저 새롭게 나타난 세력을 지워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 * *
“……허어.”
태호는 미끄러지듯 의자에서 내려왔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지금 꿈일까.
은호 옆에 있는 환수가 ‘꿈지기’라니. 은호 몸에서 왜 빛이 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애초에 꿈지기라는 이름은 비공식 이름이며 존재 여부조차 불명확했다.
따라서 공식 자료는 없고, 비공식 자료 하나만 존재했다.
거기에 적힌 건 말도 안 되는 소설이라고 수많은 비난을 받지 않았는가.
하지만 그 비공식 자료에 적힌 외형과 너무도 흡사했다.
‘꿈인가. 꿈인 건가?’
태호는 볼을 꼬집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꿈지기를 다시 바라보았다.
새끼 양을 닮은 얼굴에, 풍성한 털에, 동그랗게 말린 뿔, 날아다닐 때마다 발에 연기가 나고, 토끼를 닮은 꼬리마저 가졌으면 완벽하게 일치했다.
태호가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갈 때,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
위에서 불쑥 들어온 고스덕의 모습에 은호는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났고, 고스덕도 단아를 보자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아!”
“…아아아아.”
단아가 눈치를 슬쩍 보며 뒷말을 따라 하더니 눈을 예쁘게 깜박거렸다.
“누, 누구야아.”
고스덕이 천천히 꺼내는 말에 단아는 은호의 뒤로 숨었다.
“…….”
은호는 이 상황에 뭔가 실없이 웃음이 났다.
왜 갑자기 고스덕이 놀란 건지 몰랐지만, 웃겼다.
“은호는 계속 데려오네.”
태호의 책상에서 책을 바라보던 헤인이 두툼한 꼬리를 흔들며 입을 열었다.
“아아아악!”
고스덕이 또 소리치자 헤인은 한쪽 눈을 살짝 감았다.
“왜 갑자기 놀라. 우리 처음 본 거 아니잖아.”
“…아니, 갑자기 말을 걸어서.”
고스덕이 벙어리 장갑 같은 손을 꼼지락거렸다.
“너도 참 희한하네. 여기 있는 존재들은 죄다 희한해. 그래서 재밌어.”
헤인은 혀로 입가를 핥은 뒤, 뒷다리를 흔들며 책을 보았다.
농담 아니라 태호 옆에만 있어도 뭔가 다양한 일이 벌어졌다.
그 흐름을 만드는 건 바로 은호였고.
“아.”
헤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찹찹’거리는 소리와 함께 걸어왔다.
“안녕.”
“안녕! 안녀엉!”
고스덕은 헤인의 인사에 행복한 미소를 흘리며 주변을 빙그르르 날아다녔다.
“안녕, 은호.”
헤인은 손을 흔들었다. 은호 역시 반갑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인사법을 배운 뒤로 헤인은 누군가를 만나면 늘 저렇게 인사했다.
“안녕, 헤인아.”
“그리고 처음 봤지만, 너도 안녕.”
“……나한테 인사했어. 나한테.”
단아는 더 은호에게 매달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어제 잠에서 깬 다른 애들이 단아를 환영할 때도 이런 식으로 어딘가에 숨었다고 했기에 미리 교감의 힘을 두르는 걸 잊지 않았다.
“헤인아. 이 친구가, 보기보다 수줍음이 많아서 그래.”
은호는 키득거렸다.
“나한테 찾아오면 계속 인사해줄게.”
그게 뭐라고.
헤인은 시원시원하게 대답했다. 은호의 등에서 고개를 빼꼼 내민 단아의 눈이 커졌다.
“나는 여기 있거나, 인간들을 구경하고 있어. 나중에 내 전용 자리를 보여줄게.”
“고마워.”
단아는 헤인의 말에 수줍게 대답했다.
“그럼 나도 계속, 계속 인사할래.”
고스덕이 앞발로 양 볼을 붙잡은 채 단아에게 다가갔다.
단아는 지금 흘러가는 상황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살짝 벌렸다.
고스덕은 단아에게 앞발을 내밀었다.
“나도 여기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어. 그런데 여긴 정말 좋아. 인간들도 우리한테 계속 웃어줘.”
‘솔직히 그건 또 다른 복지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데.’
은호는 속으로 생각했다.
슬쩍 본 태호는 조용히 이 상황을 영상으로 남기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감격의 눈물을 흘릴 것만 같은 표정이라 모르는 척 넘어갔다.
이 연구소의 소장부터 저러니 연구원들은 오죽할까.
“…나는 은호가 여길 알려줬어.”
띄엄띄엄 목소리를 내는 단아의 말에 고스덕이 허공에서 뒷발을 파닥파닥 흔들었다.
“나도 그래에. 은호가 알려줬어. 나는 오늘도 행복해.”
“나도 그렇고 여기에 있는 애들 대부분은 다 은호 때문에 온 거야. 그러니 경계하지 않아도 돼. 마음껏 둘러보고, 싫으면 다른 곳에 가도 되고. 널 붙잡은 건 여기에 아무것도 없어.”
헤인이 똑 부러지게 말하자 은호는 입을 살짝 벌린 채 감동의 물결을 흐르는 눈길로 헤인을 바라보았다.
누구 닮아서 저렇게 똑똑한지 몰랐다.
착.
헤인은 책을 닫고는 책상에 미끄러지듯이 내려왔다.
“어디 가?”
“인간이 뭘 하는지 구경 갈 시간이야.”
찹찹.
헤인의 걸음을 따라 소리가 났다.
“아, 은호.”
“응.”
“나중에 글 알려줘.”
“글?”
“응. 책을 보다 보니까, 나 글을 알고 싶어. 좀 더 잘 읽고 싶어.”
은호는 저 말에 쪼그려 앉아 헤인을 쓰다듬었다.
“헤인이는 대단하네. 헤인이가 원하면 당연히 알려줘야지.”
글을 배운다는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이미 인간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부터 대견한데, 생각이 그 이상으로 갈 줄이야.
태호가 헤인이는 환수와 인간을 이어줄 다리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자신이 보기에도 그랬다.
이 작은 흐름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모르겠지만, 은호는 헤인의 열정을 꺼트리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헤인이 주먹을 쥔 앞발을 내밀자 은호 역시 살짝 부딪쳤다.
만족한 헤인은 입꼬리를 올리며 문으로 걸어갔다. 바로 문에 착하고 매달리기에 고스덕이 날아갔다.
너무 힘껏 날아가 문을 그대로 통과했다.
“아아앗!”
고스덕이 놀라는 사이 문이 열렸다.
“문을 열어주려고 해서 고마워.”
고맙다는 헤인의 인사에 고스덕은 기쁨을 드러냈다.
“나중에 구경 갈게에.”
“그래. 같이 와.”
헤인이 도도하게 걸어가자 고스덕은 다시 문에서 빠져나와 단아를 바라보았다.
아까 하지 못한 말을 꺼내고자 앞발을 내밀었다.
“나랑 구경 가자.”
뭔가 저 존재는 자신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자신도 쭈뼛쭈뼛했으니까.
하지만 폭시가 여기저기 알려줬고, 다른 애들이 적응할 수 있게 엄청 많이 도와줬다.
그러니 이제 자신의 차례였다.
고스덕이 가까이 다가오자 단아는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닿지 못한 앞발을 보던 고스덕의 눈망울이 천천히 일렁거리자 단아는 다급히 앞발을 흔들었다.
“아, 아니야. 아니야.”
“이 친구한테 닿으면 잠이 쏟아져. 그래서 뒤로 물러난 거지, 네가 싫어서가 아니야.”
은호가 대신 말해주자 고스덕은 앞발로 눈을 비볐다.
“그런 거라면 나는 괜찮아. 나는 다 통과할 수 있어.”
고스덕은 배시시 웃으며 단아에게 앞발을 뻗었다.
푹신한 털을 만지자마자 고스덕의 눈동자가 더 커졌다.
하지만 이내 고스덕의 눈이 감기며 머리가 뒤로 넘어갔다.
단아와 은호, 그리고 영상을 찍던 태호마저 일어나던 그때 고스덕은 바닥을 통과해 수면으로 날아오르는 활어처럼 위를 향했다.
“짠!”
고스덕은 단아의 주변을 핑그르르 돌았다. 단아의 눈이 커졌다.
“봐봐. 나 진짜 괜찮지이?”
“어떻게… 이게 가능한 거야.”
“난 살아있는 생물체 말고 다 통과할 수 있어서 그래. 넌 진짜, 폭신폭신해.”
고스덕은 단아를 포옥 안아주었다. 단아의 두 볼이 살짝 상기됐다.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환영해주고, 자신을 만져도 되는 존재가 또 있다니.
“이제 같이 가자아.”
고스덕의 제안에 단아는 당황한 얼굴로 은호를 바라보았다.
“갔다 와.”
은호가 단아의 등을 두드리자 활짝 웃으며 말을 꺼냈다.
“갔다 올게!”
고스덕이 내민 앞발을 쥐고는 단아는 따라갔다.
쿵!
그대로 문을 통과한 고스덕과 달리 단아는 머리를 부딪쳤다.
“괘, 괜찮아?”
고스덕이 머리를 내민 채 허둥지둥거리자 단아는 배시시 웃었다.
“난 괜찮아.”
전혀 아프지 않았다.
정말이었다.
“문은 열면 돼.”
단아가 문을 열었고, 자리에서 일어난 은호는 다시 소파에 앉아 손을 흔들어줬다.
그들이 모두 나가자 흑견이 나타났다.
“참 요란스럽다.”
‘혹여나 둘이 놀라지 않을까, 이렇게 늦게 모습을 드러낸 거면서.’
은호는 저 말에 모르는 척 실실거리다 시선이 느껴져 앞을 바라보았다.
휴대전화를 내린 태호가 진지한 눈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은호 씨. 대체 무슨 말을 나눈 거야.”
“우선, 꿈지기 주변에 잠이 오게 하는 힘이 흘러요.”
“자, 잠시만.”
태호는 바로 노트북을 들고 내려왔다.
손가락이 다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친 뒤에 다음 말을 재촉했다.
“꿈지기 주변에 흐르는 힘이 고스덕한테는 통하지 않았어요.”
“…고스덕이 꿈지기의 힘마저 통과한다는 거야.”
“그 힘은 생명체가 아니기 때문이 아닐까요?”
“와… 와아. 와아아.”
태호는 감격을 금치 못했다.
지금 몇 개의 발견이 이어졌을까.
“그리고 헤인이가 글을 배운대요.”
“뭐…….”
“대견하죠.”
“대견한 정도가 아니라 이건… 이건 혁명에 가깝잖아!”
태호가 기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인간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환수가 누구냐고 한다면 당연코 헤인이를 꼽을 정도였다.
헤인은 키키란이란 종으로 호기심과 탐구열이 강했다. 그래도 그렇지, 혼자 특별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인간을 향한 열정도 높았다.
여기서 글을 배운다면 어떻게 될까.
인간과 환수.
그 해결책이 열릴 수 있었다.
“진짜 돌아버리겠네!”
태호는 웃음을 터트렸다.
귀를 꿈틀거리던 흑견이 갑자기 덩달아 일어나자 태호는 입을 막고는 바로 자리에 앉았다.
“내가 일어나서… 불편했니? 좀 조용히 웃을 걸 그랬네.”
태호의 물음에 흑견은 그를 한 번 바라봐준 뒤, 은호에게 방금 들었던 소리의 정체를 알렸다.
“인간.”
“왜 그래.”
“병아리가 돌아왔다.”
“삐약이가?”
윈디드가 돌아왔다는 소리에 은호가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