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119)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119화(119/302)
119화. 돌아왔다(3)
“내가 지금 장난을 친다고 생각하나?”
흑견의 눈이 가늘어진 그때, 숲에 어둠이 드리웠다.
상당히 이질적인 고요함이 찾아오자 덩달아 윈디드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이건 좀 위험했으니까.
“그럴 리가. 지금 화가 났다는 건 누가 봐도 알겠지.”
덩달아 윈디드의 깃털이 바짝 올라가며 머리맡에서 빛이 맴돌았다.
“하지만 친구. 너도 그렇잖아?”
바람처럼 맴돌던 자신이 왕을 만난 뒤로 처음으로 머물고 싶다고 느꼈고, 그 두 번째가 은호였다.
윈디드의 머리맡에서 뿜어나온 빛이 흑견에게 향한 순간, 어둠이 흑견을 감쌌다.
그 잠깐 사이 윈디드가 날개를 휘젓자 거친 바람이 일어났다. 크게 일어난 흙먼지에 몸을 숨기듯 뒤로 물러났다.
윈디드는 땅에 서서는 흑견을 바라보았다.
커다란 입처럼 일어난 어둠은 흙먼지를 먹어버리며 흑견이 그 사이로 걸어 나왔다.
“나와 함부로 비교하지 마라.”
“기분 나빴다면 미안한데. 나는 정말로 말썽꾸러기를 보러 왔어. 만나게 해줄 존재도 있고. 그러니까, 여기서 멈추는 게 어때, 친구?”
“설마 그때 그 존재인가?”
땅을 황폐화한 존재.
“말썽꾸러기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어.”
“그 존재 때문에 인간이 어떻게 됐는지 알고 데려왔단 말인가?”
흑견의 언성이 더 날카로워지자 윈디드는 살짝 당황했다.
“잠깐만, 친구!”
윈디드는 뒤로 물러서며 날개를 앞으로 뻗었다.
“그렇게 계속 화내면 내가 해줄 말이 없잖아. 그냥 나를 싫어한다고 하는 거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아서 솔직히 진짜 섭섭하다고.”
“정확하다. 아직 그 눈만큼은 희미해지지 않은 모양이지?”
“아니, 친구. 그러면 진짜 섭섭하다니까?”
윈디드는 억울함을 가득 드러냈다.
이렇게 체급이 맞는 존재를 어디에서 찾을 것이며 또 저렇게 마음이 맞는 존재도 어디 있을 것이고, 무엇보다 찌르면 반응이 파르르 오는 이 맛을 어디에서 찾을까.
“그저 이곳에 온 목적을 말하면 되는 거다.”
“친구. 진짜 순수한 마음으로 왔다니까?”
“네가?”
“그럼. 내 머리 위에 안 보여?”
윈디드는 앞발로 머리 위에 있는 빛으로 된 링을 가리켰다.
“이걸 인간들은 ‘천사’라는 걸 나타내는 증거라고 부른다고.”
“그거 무엇인가?”
“…어, 좋은 거? 나중에 말썽꾸러기한테 물어보면 되지 않…….”
갑자기 땅에서 어둠이 일어나자 윈디드는 바로 하늘로 날았다.
“묻지 말고, 꺼져라.”
“친구! 애초에 내가 말썽꾸러기를 왕의 명령으로 감시하러 왔다고 쳐. 그런데 그게 무슨 이득이 있어서 그렇다는 거지?”
“이득이 없어도 필요하다면 하겠지.”
“…친구. 왕께 불경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거 아니지?”
윈디드의 표정이 살짝 구겨졌다.
자신의 임무는 ‘약속’을 저버린 이를 처벌하는 거니까.
“갓 태어났던 내가 자연에 버려졌을 때, 왕은 무얼 했지?”
“……하.”
윈디드는 몸에 힘을 빼며 땅으로 내려왔다.
“좋아! 말할게.”
“지껄여라.”
“나는 ‘약속’을 깨는 존재를 찾으러 왔어.”
“그게 인간하고 무슨 상관이지?”
“말썽꾸러기가… 뭔가, 잘 꼬인다고 해야 하나. 내가 약속을 깬 존재를 찾으러 진짜 열심히 움직였는데, 말썽꾸러기는 바로 딱 마주하고 말았잖아.”
흑견은 그 대답에 짜증이 확 치솟았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인간 주변에 뭔가 잘 꼬인다는 건 이미 알아버렸으니까.
“그거 이외에는 없어. 정말이야, 친구. 약속할 수 있어.”
윈디드는 은호가 알려준 대로 새끼손가락을 들었다.
그 행동에 흑견은 어둠을 거뒀다.
그제야 윈디드는 깊은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싸우고 싶지 않았다. 저 어둠은 몹시 까다로울 테니까.
“이제 이해해 준 거야, 친구?”
“아니. 인간 주변에 약속을 깬 존재가 꼬이는 건 나 역시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만약에 나타난다면 네가 처리자로 제격이다.”
은호는 자신들을 좋아했다.
그 사실은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하다는 소리였다.
흑견은 윈디드의 쓰임을 발견하고는 그제야 마음을 누그러트렸다.
“…어, 뭔가 기분이 이상한데?”
“왕과 적대할 마음은 없다.”
“그래?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이 친구, 현명한데?”
“하지만 인간을 이용한다면 멍청하게 당할 생각은 없다.”
“아니, 그럴 생각은 없다니까? 나도 말썽꾸러기를 좋아해. 고마운 것도 얼마나 큰데? 그러니까…….”
윈디드는 흑견이 갑자기 달려 나가자 덩달아 고개를 돌렸다.
뭔가 오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무언가 날아왔다.
윈디드가 그게 무엇인지 알자마자 이내 다급히 날아올랐다.
“…말썽꾸러기?”
날아오고 있는 건 은호였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몰랐지만, 당장 그를 안전하게 데리고 와야 했다.
“내가 할게.”
“됐다.”
흑견이 앞으로 달리자 주변에 어둠이 일어났다. 어둠이 장막처럼 일어난 그곳으로 은호가 들어왔고, 잘 감싼 뒤 잠자리채를 휘두르듯 앞으로 살포시 내렸다.
“지금 뭐 하는 건가, 인간?”
흑견은 은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어떻게 여기까지 올까 생각하다가 날아왔지. 나무한테 날 좀 날려달라고 부탁했어.”
은호는 이불을 걷듯 어둠을 내리며 대답했다.
“지금 농담할 기분이 아니다, 인간.”
“농담 아닌데? 진짜 날려달라고 했다니까? 솔직히 한 번은 해보고 싶었는데, 옆에 보니까 멍멍이 형님이 없잖아?”
은호가 장난기를 담아 실실 웃었다.
진짜인지 아닌지 헷갈릴 정도였다.
“…….”
흑견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나저나 둘이 싸웠어?”
“안 싸웠어. 그냥 대화 좀 했을 뿐이야.”
윈디드가 땅으로 내려오며 웃었다.
“나 방금 여기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는데?”
은호의 눈매가 가늘어지자 윈디드는 말을 바꿨다.
“살짝 거친, 대화? 그렇지, 친구?”
윈디드가 날개로 흑견을 슬쩍 건드리려고 하자 당장 뒤로 물러나서는 이빨을 드러냈다.
“……이 친구 참, 협조를 모르네.”
윈디드는 흑견의 태도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기 봐봐.”
은호는 뒤를 가리켰다.
윈디드와 흑견이 거의 동시에 고개를 뒤로 움직였다.
나무가 부서지고, 땅이 갈려 있었다.
“이런데 나보고 믿으라고?”
은호는 윈디드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와 시선을 마주하던 윈디드는 마음이 콕콕 쑤시자 눈을 살짝 피하며 말했다.
“…음, 그런데 말썽꾸러기, 저 정도면 진짜 대화야. 살짝 거칠 뿐이지.”
나무와 땅이 저렇게 되어도 꽤 온건한 마무리라고 생각했다.
은호는 고개를 돌려 흑견을 바라보았다.
뭐가 불만인가.
딱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기에 은호는 어깨를 내리며 숨을 내쉬었다.
원래 그렇진 않았지만, 크라슨 사건 이후로 흑견이 윈디드에게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건 알았다.
윈디드가 왕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일까.
자신이 말릴 걸 알고, 여기까지 온 사실이 좀 얄밉기도 하고, 진짜 싸운 건 아니라 다행이기도 해서 은호는 말을 던졌다.
“둘이 진짜 닮았어.”
“그 소리는 집어치워라!”
“닮았어, 정말?”
거의 동시에 말이 튀어나왔지만, 흑견과 윈디드의 반응은 달랐다.
윈디드는 너무도 좋아했고, 흑견은 몸서리까지 치자 은호는 키득거렸다.
“웃지 마라, 인간.”
“친구. 우린 진짜 인연인가 보다. 원래 닮았…….”
흑견이 윈디드에게 앞발을 휘두르자 윈디드는 그대로 위로 날아 흑견의 등 쪽으로 빙글빙글 돌아 뒤로 착지했다.
땅에 발이 닿자마자 당장 은호 쪽으로 달려 그의 뒤로 숨었다.
“오해하지 말아, 친구. 이건 말썽꾸러기가 말했으니까.”
“맞아. 내가 말했어.”
은호는 키득거리며 약이 바짝 오른 흑견을 토닥거렸다.
“일단 진정해, 멍멍이 형님.”
흑견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이게 다 누구 때문인가.
은호는 흑견이 이를 악무는 걸 보며 힘껏 안고는 작게 속삭였다.
“멍멍이 형님이 날 걱정해서 삐약이를 만나러 온 거 알아. 고마워.”
흑견이 눈을 뜨며 은호를 바라보았다.
눈치 하나는 참 빨랐다.
그 일로 싸움이 벌어질 거라 예상하고 이렇게 온 모양이었다.
기분이 썩 나쁘진 않았다.
“그럼, 방금 그 말 취소하거라.”
은호는 흑견의 말에 당장 윈디드에게 달려가 안아주었다.
“…인간?”
“돌아와서 반가워, 삐약아!”
은호는 모르는 척 윈디드를 반겼다.
“말썽꾸러기 보려고 진짜 빨리 왔는데. 아까 날 지나치더라고. 바람인 줄 알았어.”
“이러려고 아껴둔 거지.”
은호가 너스레를 떨자 윈디드는 크게 웃었다.
“삐약아, 그 친구하고 같이 왔지? 어디 있어?”
“말썽꾸러기는 화가 안 나?”
“너희가 싸웠다면 화가 났겠지. 숲이 엉망진창이 되었을 테니까. 그런데 아니잖아.”
은호는 뒤로 물러서 가방을 뒤졌다.
일단 숲을 복구해놔야 했다. 이미 말하지 않아도 자연이 자신의 옷자락을 붙잡고 있는 게 느껴졌으니까.
“그게 아니라, 그 애가 말썽꾸러기한테 좀 잘못했잖아?”
“어? 나한테 잘못한 거 없는데? 다른 친구들한테 잘못한 거지.”
크라슨을 언급하는 말에 은호는 그게 무슨 일이냐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피를 뽑는 도구로 손등을 찔렀다.
“그 존재 때문에 인간이 독에 중독됐다. 잊었는가?”
“그건… 내가 잘못한 거잖아. 멍멍이 형님하고 삐약이가 하지 말라고 했는데, 내가 멋대로 만졌어.”
은호는 어깨에 얼굴을 살짝 묻으며 피를 땅에 뿌렸다.
곁눈질로 흑견을 바라보았다.
그때, 흑견에게 얼마나 많은 잔소리를 들었던가.
“하지만 말썽꾸러기를 공격했잖아. 밉지 않아?”
“그 친구를 미워해야 하는 친구들은 엄청 많아. 나까지 그러고 싶진 않아.”
은호는 자라나는 풀포기와 나무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전에 이미 포이키한테 독으로 당해봤고, 레비아탐의 비눗방울로 코하고 귀에서 피도 났고, 삐죽이한테 눈부심도 당해봤고, 그리고 음, 최근에 라비의 아버지한테 팔도 왕창 물렸는데? 아마, 생각하면 또 있을 거야.”
“……친구. 너 뭐 하는 거야?”
윈디드는 줄줄 나오는 말에 흑견을 사납게 바라보았다.
옆에 있었으면서 뭐했냐는 눈빛에 흑견은 입을 다물었다.
맞는 소리라 할 말이 사라져버렸다.
“솔직히 공격당한 건 더 많아. 그런데 이걸 일일이 미워하면 나는 너희들 옆에 있을 수 없어.”
“말썽꾸러기. 내가… 봤을 때, 화를 내도 된다고 생각하거든? 그 정도면 솔직히 그래도 충분해. 내가 대신 때려줄까?”
윈디드는 앞발 하나를 들며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아니. 진짜 괜찮아. 상처야 금방 회복하니까. 내가 아니더라도 화낼 친구들은 많아.”
일단 흑견부터 시원하게 해주니 뭐라고 할까.
그냥 뒷짐을 진 채 지켜보는 게 최고였다.
“이제 그 친구한테 가볼까?”
“그전에 너한테 말할 게 있어.”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한 윈디드가 꽤 진지하게 은호를 바라보았다.
“말할 거? 뭐든 도와줄게.”
은호가 바로 웃으며 대답하자 윈디드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어떻게 생각이 그렇게 이어질까.
이러면 어떤 말을 내뱉어도 후회는 없으리라 생각했다.
“나는 왕의 수호자야.”
“어…?”
“왕의 명령을 직접 받는 존재라고 생각하면 편해. 나는 왕께 약속을 어긴 존재들을 처벌하라는 명령을 받고 움직이고 있어.”
“처벌이라면.”
은호는 잠깐 몇 박자 쉬었다. 뒷말이 좀처럼 잘 나오지 않았다.
“……죽이는 건 아니지?”
“필요하다면, 나는 그렇게 할 거야.”
“어째서…?”
“약속을 어긴 이들이 어떤 일을 저지를지 모르니까. 말썽꾸러기, 네가 우리를 어떻게 보든 우리는 네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해.”
은호의 표정이 굳어지자 윈디드는 앞발을 내밀려다 날카롭기만 한 발톱을 보며 날개로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미리 말하지 못해서 미안해.”
“그건 괜찮아. 언제가 됐든 너는 나한테 말해줬을 테니까. 하지만 너는…….”
수많은 말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어떤 말도 꺼내지 못하고 윈디드를 안아주었다.
그 약속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와닿기 전에 자신을 쓰다듬는 윈디드의 날갯짓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윈디드는 환수들을 좋아했다. 그 마음은 종을 따지지 않았다.
책임감에 얼마나 많은 걸 짓눌렸을까.
부디, 최악의 선택을 하는 일이 없었으면 했다.
“…내가 널 도와줄 수 있으면 좋겠어.”
은호가 건네는 위로에 윈디드는 그를 안아주며 포근한 미소를 지었다.
수많은 말보다 이 온기가 가장 깊이 마음에 와닿았다.
이러니 은호의 곁에 있고 싶어질 수밖에 없었다.
* * *
윈디드가 착륙했고, 흑견이 한 걸음 늦게 도착했다.
그곳은 연구소에서 꽤 떨어진 곳이었다.
두 개의 뿔만 남은 채, 뼈가 도드라진 곰같이 거대한 몸을 한 환수가 앉아 있었다.
한눈에 봐도 크라슨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기척에 고개를 돌리자 밖으로 드러난 이빨이 가장 눈에 띄었다.
다만 그때와 달리 땅을 녹이지도 않았고, 어디에 굴렀는지 몰라도 머리와 몸에 흙먼지 자국과 나뭇잎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살짝 늦어진 건 그 애가 본인이 저지른 일을 사과하면서 와서 그래. 내가 강요한 건 아니야. 물론, 왕께서도 그렇게 명령하지 않았어. 그저 스스로 생각한 결과야.
이곳에 오면서 윈디드에게 크라슨의 이야기를 가볍게 들었다.
정말로 피해를 받은 환수들에게 가서 사과했고, 또 사과했다고 했다.
부식의 힘으로 피부에 독이 있어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기에 수많은 흙먼지가 크라슨에게 뿌려진 게 아닐까.
얼마나 원망을 들었는지 몰라도 은호는 자신마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은호는 크라슨을 바라보며 웃었다.
그때, 마지막으로 크라슨과 헤어지기 전에 꺼낸 말을 지킬 수 있어서 정말로 다행이었다.
“안녕, 친구야.”
날을 세우지 않고, 이렇게 인사하고 싶었으니까.
“…햇살이 따갑군.”
여전히 공룡을 닮을 만큼 포악한 그 얼굴과 달리 나온 말투는 꽤나 누그러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