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1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12화(12/30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 012화
12화. 숲은 돌아온다(2)
* * *
“…대장! 대장! 숲이 돌아왔어!”
대장의 등장에 포이키들이 쪼르르 달려와 주변을 맴돌았다.
“갑자기 숲이 ‘우우웅’ 하고 일어났어! 너무 좋아!”
“맞아! ‘우우웅’ 하더니 나무가 엄청 빠르게, 진짜 빠르게 자라났어!”
꺄르르.
여기저기 터져 나오는 웃음과 제자리에서 붕붕 뛰는 포이키들의 모습을 눈에 담은 채 대장은 덩달아 환하게 웃었다.
오면서 이미 봤고, 또 봤지만, 볼 때마다 가슴이 시렸던 그 공터가 싱그러운 모습을 띠자 웃음밖에 나지 않았다.
그러다 뒤에서 들리는 발소리에 포이키 대장은 웃음을 지웠다.
“…미안하다.”
짜악.
은호는 포이키 대장의 등짝을 힘차게 때렸다.
단번에 털이 올라오자 은호는 웃음을 터트렸다.
“이걸로 됐어. 이제 우리 짧은 원한 관계는 풀린 거야.”
“…….”
“속고만 살았던 것처럼 보이지만, 거기서 나는 빼줘. 나는 너희랑 친하게 지내고 싶단 말이야.”
“……왜?”
“너희가 좋으니까. 이유는 차차 찾아가야지.”
“그게… 무슨 말이지?”
“그런 거지.”
은호가 대충 말을 넘기자 포이키 대장은 여전히 영문을 모른다는 얼굴을 했다.
“일단, 봐봐. 나랑 대화가 통하니까, 앞으로 친해질 이유는 너무나도 많잖아? 왜 벌써 부정적으로 생각해?”
“……!”
포이키 대장이 뒤늦게 놀랐다.
푸하핫.
은호가 웃음을 토했다. 저럴 줄 알았다.
“몰랐지? 그렇지?”
“……정말 몰랐어. 인간과 말을 나누다니.”
동그랗게 커진 포이키 대장의 눈을 보자 다른 포이키와 그렇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포이키가 맞긴 했다.
“대장. 너의 의도는 잘못되지 않았어. 네 동족을 지키는 게 맞아. 그런데 복수 대상이 잘못됐단 말이지. 너희가 저지른 저 아파트. 그곳에 사는 사람 중 대부분은 이번 일과 전혀, 조금도 관련이 없어.”
“…몰랐다.”
“몰랐지? 그러니까, 만약에. 만약에 이런 일이 또 벌어진다면 날 찾아와.”
“널……?”
“내가 너의 목소리를 전해줄게. 그리고 아직 한 발 남았으니까, 기대해.”
은호는 씩 웃고는 포이키들에게 걸어갔다.
“그게 무슨 말이지?”
대장이 쫓아와 물었다.
“솔직히 골프장을 만들려고 여기를 밀어버렸다는 사실에 열받았거든? 그건 전혀 동의할 수 없는 일이야.”
“너는… 인간인데?”
“그게 무슨 상관이야. 아닌 건 아닌 거지. 어쨌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보려고. 그러니까 너도 너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뭐지? 할게.”
“나중에. 지금은 이 순간을 즐겨야지 않겠어?”
은호가 앞으로 나아가자 포이키 대장은 그를 붙잡았다.
포이키 대장의 힘에 뒤로 휘청거리자 흑견이 포이키 대장과 은호의 사이에 앞발을 들이밀었다.
“죽고 싶나?”
“오해야.”
포이키 대장의 해명에도 흑견은 그 앞발을 떼지 않았다.
“…네가 내게 보여준 모습이 거짓이라 생각하지 않아.”
저 검은 존재를 보면 알 수 있었다.
다시는 싸우고 싶지 않을 정도의 무력을 가졌음에도 인간 옆에 있지 않은가.
묘한 조합이었다.
“독도 들이마시고, 손바닥을 베 숲을 키운 보람이 이제야 드러나는데?”
은호는 빈정거리듯 웃었다. 그 웃음에도 포이키는 대장은 심각했다.
“하지만 인간과 잘 지내달라는 부탁만은 들어줄 수 없어. 나는… 인간이 싫으니까. 언제나 뭐든 우리에게서 많은 걸 빼앗기만 했어.”
“그런 부탁을 할까 봐, 무서웠어?”
“……그 부탁을 하려던 게 아니었나?”
포이키 대장의 얼굴에 놀람이 담겨 있었다.
앞으로 자주 볼 표정이 아닐까, 은호는 그렇게 생각했다.
“굳이 한다면 ‘나만 좋아해 줘’라고 했겠지. 나는 욕심이 많아서, 너희의 관심을 나누고 싶지 않은데?”
저 인간은 정말로 진심이었다.
포이키 대장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저런 인간은 처음이었다.
자신이 봤던 인간은 이득으로 움직이고, 이득으로 끝나는 종족이었다.
자신들의 관심을 받는 게 무슨 이득이 있을까.
이상했다.
낯설었다.
그리고 치사했다.
“……아란이다.”
그토록 인간을 원망했는데, 예외가 생겨버렸다.
이 얼마나 치사한 인간인가.
“서은호야.”
아란은 그 이름을 들으며 처음으로 웃었다.
“반갑다, 서은호.”
* * *
“……인간.”
“응?”
은호는 흑견에게 기댄 채 고개를 올렸다.
“너무 마음을 주지 마라.”
“역시 날 걱정해주는 건 우리 멍멍이 형님밖에 없다니까?”
은호는 부드럽게 웃었다.
“하지만 멍멍이 형님. 저기 봐봐.”
은호의 손가락은 산 아래, 아파트를 향했다.
포이키들이 내려와 아파트에 묻혀놓은 액체를 지우고 있었다.
“포이키들도 어려운 결정을 내렸어. 하지만 저게 맞아. 자신들이 한 건 자신들이 치워야지.”
“인간 네가 한 게 더 크다. 네 꼴을 봐라. 성한 곳이 없다.”
“그러게.”
은호는 키득거렸다.
다친 손을 뻗었다.
몇 바늘이나 꿰맸는지 몰라도 첫 임무를 시작하기에 꽤 컸다.
“영광스러운 상처지.”
이 상처로 여러 가지도 알게 되었다.
대가인 피를 자신이 조절하지 않으면 식물은 이를 무한으로 빨아들인다는 사실을.
“인간. 독도 들이마셨다는 걸 잊었는가?”
“멍멍이 형님. 내가 생각보다 독종이거든?”
흑견은 코웃음을 쳤다.
“어어? 이거 비웃는 거지?”
“그냥 웃었다.”
“아니, 멍멍이 형님. 내가 아픈 티 하나도 안 냈던 거 잊었어?”
“손바닥을 벴을 때, 너는 비명을 질렀다.”
사실을 언급하자 은호는 입이 다 간지러웠다.
“멍멍이 형님. 그것도 폭행인 거 몰라?”
“모른다. 나는 인간이 아니다.”
흑견은 꼬리를 흔들었다.
“내가 아는 건 너는 조심성이 없고, 덜떨어지고, 손이 많이 간다는 거다.”
“멍멍이 형님은 당연히, 조금도 믿지 않겠지만, 나, 꽤 능력자였다고.”
“…….”
흑견은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은호를 바라보았다.
의심이 가득한 저 샛노란 눈동자를 보자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진짜 저렇게 볼 줄이야.
은호는 조금 툴툴거리며 흑견을 불렀다.
“멍멍이 형님.”
“말해라.”
“그래도 우리 오늘 좀 잘했어.”
은호는 안경을 만지작거리며 모든 과정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나는 아무것도 안 했다.”
“그렇게 말하면 섭섭한데? 우리가 했어.”
선명한 은호의 눈빛에 흑견은 고개를 돌리며 멀리 바라보았다.
사람과 환수가 한 장소에 있다는 건 몹시 이상한 느낌이었다.
지금도 그랬다.
전혀 모르는 존재의 온기가 전혀 싫지 않았다.
“사람들이 이번 일로 화가 났어도 저 모습을 보면 마음이 돌아설 거야.”
“정말 그럴 거라고 믿나?”
“저 사람들에게 있어 이번 경험은 첫 교감이나 마찬가지니까. 아예 모르는 존재보다 하나라도 알아버리면 보는 시선이 달라지거든. 좀 더 친숙해진다고 해야 하나?”
“…그 말은 아주 조금 이해한다.”
흑견의 눈동자가 은호가 있는 쪽으로 돌아가려다 멈췄다.
바라보면 우쭐할 테지.
흑견의 귀가 쫑긋 섰다. 가벼운 발소리가 아래에서 들렸지만, 딱히 반응하지 않았다.
“서은호!”
그 소리에 은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피피!”
“대장이 나를 보냈어!”
“아란이?”
“응. 대장이 이거 주래.”
피피는 등에 숨겼던 걸 내밀었다.
흙먼지가 묻은 작은 고양이 인형이었다.
“인간은 우리가 먹는 거 싫어하고, 우리가 좋아하는 걸 싫어하니까. 이건 인간이 가지고 있는 거 많이 봤어.”
은호는 그 말이 왜 이렇게 웃긴지 몰랐다.
그래도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맴돌았다.
“서은호 말대로 인간이 우릴 공격하지 않았어. 바라보는 눈빛이 처음에는 이상했는데, 점점 달라졌어.”
피피는 신기함을 담아 입을 멈추지 않았다.
쫑알거리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은호는 슬쩍 물었다.
“너희가 좋아하는 게 뭔데?”
“반짝반짝한 거.”
은호는 적당한 게 있을까, 가방에 손을 집어넣었다.
손가락 끝에 걸리는 감각에 슬쩍 빼보자 유리구슬이 보였다.
그대로 내밀었다.
“이건 내 선물.”
“…와아아!”
피피는 유리구슬을 손에 쥐고는 활짝 웃었다.
반짝반짝했다.
홀린 듯 바라보던 피피는 고개를 올렸다.
“…서은호.”
“응.”
“나는… 줄 게 없어.”
“이미 받았잖아?”
은호는 가방에서 망글이 꽃과 포이키들이 만든 화관을 꺼내며 흔들었다.
“서은호가 내 선물을 간직해줬어.”
피피는 그 감정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는 것처럼 표정이 일그러졌다가 펴지길 변했다.
“집을 찾아준 것도, 반짝반짝한 걸 준 것도, 다 고마워. 너무 고마워.”
“이게 다 처음 본 날 피피 네가 믿어줘서 벌어진 일이었어.”
“나도 아직 대장처럼 인간을 믿을 수 없을지도 몰라. 그래도 서은호는 아주 살짝 믿을래.”
피피는 한 걸음 걸어와 은호의 무릎에 손을 얹었다.
여기까지가 피피가 내보일 수 있는 최대의 거리라는 걸 알았기에 은호 역시 더는 다가가지 않았다.
피피는 아주 힘겨운 말을 꺼내듯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다음에도 날 찾아와줄래?”
“당연히 그래야지. 아직 한 발 남았거든.”
어떤 고민도 없이 흔쾌히 이어진 은호의 말에 피피는 그제야 볼을 가득 올렸다.
* * *
차가 멈추자 은호는 스르르 눈을 떴다.
눈을 몇 번이나 감고 뜬 뒤에야 태호가 보였다.
“도착했습니다.”
가을이 말하자 은호는 창문에 매달렸다.
“……와.”
바로 잠이 깨며 감탄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진짜 3층 집이었다.
사진에서 봤던 그대로였다.
4, 50층은 될 것 같은 아파트를 보고 왔지만, 그보다 더 높게 다가왔다.
“…제가 살 집 맞죠? 갑자기 쫓겨나는 거 아니죠?”
“내가 은호 씨를 어떻게 쫓아내? 여기, 키 챙기고.”
태호는 키를 내밀며 은호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눈동자가 왠지 촉촉해 보이자 은호는 힐끔 가을을 바라보았다.
가을 역시 태호를 보다 말문을 열었다.
“박사님. 오늘 서로 피곤하니까 짧게 말씀하시죠.”
“아차, 그렇지.”
태호는 달이 뜬 하늘을 바라보다 급히 감정을 다잡았다.
“고생 많았어, 은호 씨. 어쩌면 오늘을 평생 잊을 수 없을지도 몰라. 포이키를… 그렇게 가까이 본 게 얼마만 인지도 모르겠네. 오늘 하도 포이키를 찍어서 휴대전화가 뜨겁더라.”
“…형. 환수 특별 보호 구역이 지정되어도 불법 사냥 같은 게 많다면서요?”
“그렇지. 포이키는 외형 자체가 인형 같아서 납치가 많은 편이니까.”
“그건 좀 웃긴데요?”
“그래서 연구소 근처에 땅을 사긴 했어.”
“아아, 꽤 넓은 땅이 있다고 했죠?”
“내가 샀지만, 거기 정말 넓어. 딱 넓기만 하지.”
환수는 아무도 없었다.
당연했다.
인간과 가까워지길 바라는 환수는 아무도 없을 테니까.
‘…딱 한 명만 빼면.’
태호는 흐뭇한 미소를 숨기지 못했다.
“나중에 가봐도 돼요?”
“VVIP로 모시겠습니다.”
태호의 말에 은호는 키득거렸다.
“기대할게요.”
은호가 자동차 문을 열자 가을이 묵직하게 말을 꺼냈다.
“…잠시만요, 두 분. 그래서 그 나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태호는 입을 열려다 바로 은호를 바라보았다.
시선이 두 개나 쏠리자 은호는 슬금슬금 밖으로 움직였다.
이 일을 담당하는 사람이 바로 가을이었다.
마음이 무거웠다.
“……그거, 좀 있다가 사라질 건데, 그냥 지나가는 초능력자가 했다고 하면 안 될까요?”
자신이 생각해도 좀 이상하다 싶기에 어색하게 웃었다.
“아, 아주 좋네. 초능력자가 그럴 수도 있지.”
덩달아 태호 역시 은호의 말에 거들었지만, 이게 맞나 싶었다.
차 안 분위기가 가라앉자 흑견의 하품 소리가 들려왔다.
“……나쁘지 않네요.”
가을은 덤덤히 대답하며 태블릿을 꺼냈다.
“그럼, 두 분 다 좋은 밤 보내세요.”
은호는 밖으로 나가 바로 문을 닫으려다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말문을 열었다.
“저기, 가을 씨.”
“말씀하세요.”
“거기 공사 다시 할 수 있겠죠?”
“그렇죠. 공사는 내일부터 진행될 겁니다.”
“으음…….”
“당연히 공사는 막을 겁니다. 가장 기분 나쁜 건 공사 진행 중에 막히는 거겠죠?”
가을의 말에 은호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진짜 일 잘하시는데요?”
“현재 그쪽을 살펴본 결과, 누굴 좀 고용하려고 하더라고요.”
“…누굴 고용해요?”
“초능력자요. 빠른 벌목을 위해서일 거예요.”
딱 잘라 말하는 가을의 말에 은호는 입꼬리를 올렸다.
“가을 씨. 더 좋은 방법이 있는데, 해도 되려나 모르겠네요.”
“어떤 거죠?”
“그냥 공사 정지만 되면 좀 그렇잖아요. 돈을 좀 토해내도록 하고 싶은데요.”
“하세요. 그 후에 바로 연락해주시면 됩니다.”
“고마워요.”
“그럼, 좋은 밤 보내세요.”
가을의 인사를 들으며 은호는 문을 닫았다.
‘일이 재미있게 돌아가네.’
은호는 웃는 그 얼굴로 주택을 바라보았다.
내일 일은 내일이고, 우선 이 순간을 즐겨야 하지 않겠는가.
“멍멍이 형님. 저기가 이제 우리가 살 집이래.”
“내일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나?”
흑견이 그림자에서 나오며 물었다.
“그렇지 뭐. 내일, 확 뿌리 뽑아버리자고.”
당당하게 문을 열었다.
* * *
“…온다, 온다. 진짜 와.”
피피의 목소리에 은호는 손가락을 입가에 올렸다.
“다들 쉿.”
고개를 돌리자 포이키들이 숲속에 숨어 몸을 낮추고 있었다.
다들 긴장했다고 느껴질 만큼 표정이 어두웠다.
“믿겠다.”
아란의 목소리가 떨리는 게 선명히 느껴졌다.
“칼을 뽑았으면 확실히 해야지.”
은호는 다시금 앞을 바라보았다.
공사를 위해 사람들이 올라오자 은호는 가방에서 안경을 꺼냈다.
“초능력자는 저놈이다.”
길게 하품하던 흑견이 꼬리를 흔들며 말했다.
“저놈이 누구야, 멍멍이 형님?”
“노란색.”
“다 노란 조끼 입고 있는데?”
“그냥 하고 싶은 걸 해라. 내가 저놈을 잡지.”
흑견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일어나자 포이키들이 위협을 느끼며 물러섰다.
살이 떨리는 힘이었다.
“훌륭한 파트너인데?”
은호는 맹금류의 눈을 발동하며 표적을 잡았다.
“자, 여러분들.”
은호가 손바닥으로 땅을 두드리자 바람이 몰아치는 것처럼 나무가 흔들렸다.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식물이 분노를 뿜어냈다. 이 분노가 없어도 자신 말을 들어줄까 궁금하긴 했지만, 지금이 신나니 됐다 싶었다.
“준비하시고.”
노리는 건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게 식물한테 몇 차례나 설명했다.
현대 사회에서 제일 무서운 건 바로 돈이었다.
이 공사를 위해 대여했을 여러 중장비와 장비들을 박살 내버려야 공사가 지체되고, 지체된 만큼 고용주는 상상할 수 없는 금액을 소비해야 했다.
‘때마침, 초능력자를 고용해?’
공사가 시급하기에 마지막 수를 쓴 것 같았다.
초능력자는 소수의 존재였고, 고용비가 얼마나 비쌀까.
보통 계약 내용과 다르면 위약금을 물기 마련이었다.
“갑시다! 이따위 짓을 한 고용주의 파산을 위해!”
아직 피가 저 숲에 흐르기에 은호는 신나게 소리쳤다.
흑견이 단숨에 초능력자의 그림자로 어둠을 보내며 움직이지 못하게 붙잡았다.
쿵.
쿵.
커다란 소리와 함께 숲이 움직였다.
이상한 소리에 올라왔던 사람들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누가 그랬는지 몰라도 나무가 다시 자란 상황도 귀신이 곡할 노릇인데, 나무가 하나둘 자리를 이탈하자 사람들은 눈을 의심했다.
“……으, 으아아악!”
뒤늦게 비명이 터져 나왔다.
나무가 움직이다니.
“마, 막아!”
이 벌목 작업의 소장은 다급히 초능력자를 닦달했다.
초능력자는 오히려 얼굴을 구겼다.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초능력자가 있는 건가?’
식은땀이 흘렀다.
초능력자가 있으면 상황은 달랐다. 비소속 초능력자일까.
자신은 기껏해야 물건을 옮길 수 있는 염동력 계열의 능력자일 뿐이었다.
“초능력자는 없다며? 단지, 나무만 옮기면 된다며! 이건 약속과 다르잖아?”
“없어! 없었다고! 빌어먹을 나무가 갑자기 자랐을 뿐이라고!”
“…이거 계약 위반인 거 알고 있지? 위약금 뱉을 돈은 있어야 할 거야!”
초능력자는 당장 자리를 떠나고 싶었다.
쾅!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들리자 소장이 기겁했다.
“기, 기계! 기계가 터진다! 빨리 막아!”
대여비가 얼마인지 아득했다.
하지만 아무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저 모든 장비가 가루가 될 때까지, 숲의 분노를 고스란히 맞아야 했다.
은호는 고개를 돌려 포이키를 보았다.
조용히 엄지를 올리자 포이키들 역시 엄지를 올렸다.
* * *
은호는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계단을 내려왔다.
“……?”
뭔가 본 것 같아 그대로 뒷걸음질하며 움직였다.
검은 뭔가가 보이는 것 같았다.
흑견은 절대 아니었다.
‘……뭔가 창문에 붙어 있어.’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건 바선생님뿐이었다.
아득한 공포가 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