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121)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121화(121/302)
121화. 이상하다
“…박사님.”
가을이 태호의 책상을 두드렸다.
“박사님?”
뭘 그렇게 고민하고 있는지 몰라도 가을은 다시금 태호의 책상을 두드렸다.
그제야 태호가 놀랐고, 가을을 보자 바로 안심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십니까?”
“…혹시 저 문 너머에 은호 씨 있어?”
은호가 또 입원을 했다.
아직 미발견된, 환수를 안아주다 독에 중독된 게 그 사유였다.
환수를 품어줘서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다 알고도 저렇게 한 행동이 무모했다고 이참에 혼을 내야 하는지 갈등이 생기기 전에 다른 일이 터졌으니 왜 고민이 아닐까.
“아니요. 은호 씨, 지금 병실에 있습니다.”
“진짜 없어? 정말?”
태호가 문을 뚫어지라 바라보았다.
저 문을 겁 없이 여는 건 은호와 가을뿐이었다.
고개를 돌려 가을을 보다 말고 갑자기 무언가 내려왔다. 태호는 반사적으로 어깨를 움찔거렸다.
“안녕.”
가을은 태연하게 고스덕을 보며 인사했다.
“으으으.”
고스덕은 조용히 흐느끼는 듯한 울음과 달리 활짝 웃었다.
바로 고개를 돌려 태호를 보았다.
무언가를 기대하는 시선에 태호는 사르르 녹는 표정으로 손을 크게 흔들었다.
고스덕은 행복함이 담긴 얼굴로 다시 천장으로 올라가나 싶었는데, 앞발만 올려 무언가를 잡아 내렸다.
잘 마른 꽃송이 두 개였다.
고스덕은 다시 천장으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두 사람은 동시에 손을 흔들었고, 고스덕이 사라지자 거의 비슷하게 꽃송이로 손을 뻗었다.
“…가을 씨. 농담 아니라 매일 너무 좋아서 죽을 것만 같아.”
“그래 보이십니다.”
가을은 꽃을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 않아도 능률이 굉장히 많이 상승했습니다. 일을 열심히 하고 있으면 헤인이가 보러 온다는 소문까지 퍼졌고, 고스덕이 연구소를 여기저기 다니며 세심하게 챙겨준다고요. 다른 소문은 아마 박사님이 더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이곳은 그저 이름뿐인 환수 연구소였다.
이곳이 정말 환수 연구소가 된 건 사실상 은호가 온 뒤부터였다.
활기가 돌았다.
비로소 모든 게 정상화가 되어갔다.
“소문이야 당연히 들었지. 그중 폭시가 사람을 피해 다닌다는 사실이 제일 슬프더라고. 환수 종족의 특성만 생각하면 가장 친밀감 넘치는 환수는 폭시니까. 아직 마음이 덜 나은 거지. 아직 아이인데.”
태호는 턱을 괸 채 폭시의 보들보들한 털의 촉감과 해맑은 눈빛을 떠올렸다.
푸른빛이 도는 그 빛깔만 생각해도 왜 저렇게 예쁘게 생겼냐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은호가 있으면 괜찮지만, 은호가 없으면 폭시는 의도적으로 거리감을 뒀다.
“그것도 문제지만, 지금은 은호 씨 일도 꽤나 문제입니다.”
“…왜? 은호 씨가 또 사고 쳤어? 이번에는 내가 개입한 거 아니다? 정말이야. 나는 아무것도 몰라.”
미리 손을 딱 자르는 태도에 가을은 헛웃음이 났다.
“그게 아닙니다.”
“아니야…?”
“네. 지금 은호 씨가 주로 돌아다니는 환수 구역과 병실을 따로 분리해 관리 중인데, 은호 씨가 워낙 눈에 띄잖습니까.”
“그렇지. 딱 봐도 은호 씨인 거 알지.”
“사내에 소문이 퍼지고 있습니다.”
“…소문이라고?”
태호의 물음에 가을은 태블릿을 넘겼다.
“은호 씨와 관련된 것만 모았습니다. 나머지는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사생활을 침해하지도 않았습니다.”
“가을 씨 솜씨야 당연히 알지. 원래는 나만 담당했잖아.”
“연구소 내부에 스파이가 설쳐댔으니까요. 물론, 지금은 없지만요.”
가을의 미소에 살벌함이 드리웠다.
태호는 본인이 잘못한 게 아님에도 태블릿을 쥔 손가락이 아주 살짝 흔들렸다.
“진정하고 살펴보세요.”
가을의 말에 태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을이 요약해놓은 내용을 살폈다.
‘하얀 머리’를 가진 사람이 누구냐.
직원이긴 하냐.
어디 부서에서 일을 하냐.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어떻게 처리할까요? 가만히 내버려 두다간 쓸데없는 소문이 붙을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가을이 태연하게 물었다.
“이거 은호 씨가 알면 어떻게 반응할 것 같아?”
“글쎄요. 전혀 예측을 못 하겠습니다. 일단 재미있는 반응을 볼 수 있겠네요.”
가을이 재미있겠다는 표정을 짓자 태호는 얼른 태블릿을 그녀에게 넘겼다.
“그럼, 이건 멈춰야겠네. 은호 씨 일인데 은호 씨 없이 진행할 순 없잖아?”
“그렇습니다. 이제 뭘 고민하고 있는지 말씀해보세요.”
가을의 시선이 날카로워지자 태호는 얼른 입을 열었다.
잘못한 게 하도 많으니 몸이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환수 밀렵꾼… 이라고 해야 하나, 하여튼 세력이 나타났어.”
태호는 말을 내뱉은 뒤, 손깍지를 꼈다.
꽤나 진지해 보였지만, 가을이 꺼낼 수 있는 말은 하나였다.
“그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닙니까? 지금 당장 유예림과 관련된 정보도 나열할 수 있습니다.”
“나도 처음에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 말이 아니야, 가을 씨.”
태호의 말에 가을은 의문을 가졌다.
새롭게 나온 사람이라고는 유예림이 다였다.
“아니라뇨?”
“지금 환수를 위협하는 세력은 크게 두 개야. 환수 밀렵꾼하고 환수 정화자.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그런데 이번에는 달라.”
“어떤 의미로 다르다고 하시는 겁니까?”
“일단 이거 볼래?”
태호는 휴대전화를 조작하며 동영상을 재생했다.
까만 화면 속 빨간 개 가면을 쓴 존재가 걸어 나왔다.
<…우리는 레드독이라고 한다. 너희들은 환수가 어떤 존재인지 한 번이라도 생각해본 적 있는가. 그들은 왜 왔으며 왜 세계에서 보호종이라 지정했는지 알고 있는가.>
의자가 끌리는 소리가 나며 개 가면을 쓴 존재가 자리에 앉았다.
목소리를 변조해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었다.
<환수들은 이용당하고 있다. 수없이 착취되고 있다. 환수 밀렵꾼이라 주장하는 놈들은 환수를 가지고 돈 놀음이나 하고 있고, 환수 정화자라고 주장하는 놈들은 환수를 무차별적으로 죽이고 있지.>
그는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켰다.
<그럼, 환수 관리국은 뭘 할까. 할 줄 아는 거라고는 억압밖에 없는 멍청한 네놈들 대신에 내가.>
탁.
불이 켜졌다.
그 뒤로 우리에 갇힌 환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디어네야.”
묘하게 흐릿했지만, 태호는 고양잇과인 서벌과 닮아 있는 저 얼굴을 보며 입을 열었다.
<이 환수는 우리가 환수 밀렵꾼들의 지점을 털어 구출했지. 지점의 위치는 다음과 같다.>
빨간 개 가면을 쓴 남자는 지도에 위치를 띄웠다.
“…위치를 알린다고요?”
“맞아.”
“우리를 도와주는 겁니까?”
“그랬으면 훨씬 좋았겠지?”
<이 환수는 수없는 학대로 더는 살아갈 의지를 잃었다. 그러니 대신 도와주겠다.>
그 뒤에 어떤 일이 있는지 알기에 태호는 영상을 조금 더 넘겼다. 피가 낭자한 방안과 축 늘어진 디어네가 더 흐릿하게 나왔다.
<우리는 정화자와 다르다. 환수 밀렵꾼들과 다르다. 우리는 우리의 방법으로 환수들에게 자유를 주겠다. 그게 방금 보인 의미든, 다른 의미든.>
웃음을 터트리며 영상은 끝이 났다.
“행보가… 다르지?”
태호는 오만상을 쓰며 물었다.
“다르긴 해도 결국, 정화자와 비슷한 행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일단 영상 속에서는 환수를 죽였잖습니까.”
“맞아. 방금 결말은 정화자와 같지만, 그 목적이 달라. 정화자 놈들은 이 땅에 해충인 환수를 지운다는 확고한 목적이 있으니까.”
“정화자들이 이 영상을 보고 좋아할까요? 제 생각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좀 애매하다고 생각해. 어쩌면 레드독이라는 저 단체가 자유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환수를 죽였으니까, 정화자 그 미친놈들이 좋다고 이용할까 걱정되는데?”
쾅.
태호는 밀려드는 짜증에 책상을 치며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정화자가 저 사실을 이용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괜히 빌미를 준 셈이었다.
“이 영상은 사이트에 올라갔다가 급히 지워졌어. 누군가 이걸 공유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환수 관리국에서 조치 중이라고 하더라고.”
“협조 요청이 들어온 겁니까?”
“영상을 받았지만, 그건 아니야. 일단 진실 여부가 중요할 테니까. 이 동영상도 그렇고. 합성되었을 가능성 역시 크잖아?”
“그럼, 제가 저 동영상의 흔적을 쫓아보겠습니다.”
가을은 무얼 해야 하는지 바로 알아차렸다.
동영상의 사실 여부 확인 후 추적에 나서야 한다는 걸.
“…가을 씨. 이건 좋지 않아. 짧은 동영상 하나로 지금 두 세력을 건드렸어. 만약에 두 세력 모두 이 영상을 봤다면 골치가 아프겠네.”
“그래서 그토록 고민했던 겁니까? 은호 씨가 이번 일에 개입할까 봐요?”
“…맞아.”
“병실에 있는 거 확인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동영상이 진실이라는 걸 확인한 뒤, 환수 관리국에게 알리겠습니다. 그 후, 서은호 씨에게 알릴지 말지를 생각해보는 건 어떠십니까?”
“그게 좋겠지? 유예림 사건에 더 매달려야 하는 상황에 이런 일이 터져버리다니.”
태호는 골치가 아팠다.
저번에 은호가 꿈지기를 소개했을 때, 하마터면 말해버릴 뻔한 일이기도 했다.
* * *
병실 문이 열리자 디어네는 살짝 옆으로 벌어진 귀를 꿈틀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라흐다!”
은호가 즐겁게 외치자, 그 안으로 폭시와 라비가 같이 들어왔다.
은호가 올 때마다 맨날 이렇게 주렁주렁 달고 와 라흐다는 그저 웃겼다.
“은호 너는, 볼 때마다 뭘 달고 있는가?”
“…아, 내가 독에 중독됐거든.”
대수롭지도 않게 대답하자 라흐다는 고개를 끄덕이다 말고 눈을 크게 떴다.
“뭐라고 했는가?”
“괜찮아. 이제 다 회복되어가니까.”
“아직 아니야. 나랑 까망이는 오늘 삐약이를 대신해서 은호를 지켜보려고 온 거야.”
폭시가 꼬리를 흔들며 당당하게 말하자 방을 빙글빙글 돌아다니던 라비가 다가와 꼬리를 세운 채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맞다. 나랑 폭시는 위대한 일을 하러 온 것이니라.”
“들었지? 난 오늘도 꼼짝 못 할 거야.”
은호는 키득거렸다.
흑견이 산책을 갔고, 윈디드가 주변을 둘러볼 동안 아주 무시무시한 감시자를 붙였다.
폭시와 라비가 지켜본다면 다른 의미로도 꼼짝도 못 할 게 분명했다.
둘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정말로 미소가 멈추질 않을 테니까.
“그렇겠군.”
“친구들 얼굴 보고 싶을까 봐 이렇게 찾아왔어.”
“늘… 고맙다.”
“물론, 나도 보고 싶어서 그래.”
은호는 실실 웃으며 손을 뻗어 공간을 열었다.
디어네 무리가 있던 바로 그곳이었다.
한 2주 뒤에 라흐다도 그곳에 있을 테지. 상처는 아주 순조롭게 나아가고 있었으니까.
“은호!”
“은호다! 은호가 왔어!”
지나가던 디어네가 은호를 보자 크게 반겼다.
“안녕, 애들아.”
은호의 인산에 하나둘 모이다가 뒤늦게 라흐다를 보며 두 팔을 높이 뻗었다.
“아, 대장도 안녕!”
“대, 대장, 안녕!”
“참 일찍도 알아본다.”
라흐다는 말과 달리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웃겼다.
자신보다 은호가 얼마나 편안하면 이럴까.
“은호, 과일 좋아해?”
디어네 중 한 마리가 쭈뼛거리며 물었다.
“당연히 좋아하지.”
“그럼…….”
“안 된다. 은호는 인간이다.”
라흐다가 단호하게 말을 하며 디어네를 말렸다.
“그럼, 은호는 과일 못 먹는 거야?”
디어네의 귀가 내려갔다.
그토록 맛있는 과일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할 은호가 너무도 안타까웠다.
뭔가 오해가 생긴 것 같아 은호는 웃겼지만, 사실을 정정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니야. 은호도 과일 먹어. 은호는 과일 좋아해. 내가 먹는 거 많이 봤는데?”
폭시가 대신 입을 열었다.
은호는 이것저것 먹었지만, 특히 ‘커피’라는 걸 참 좋아했다.
“맞다. 나도 봤다. 나도 좋아하느니라.”
라비는 벌써 침이 고이는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 말이 아니라 우리가 먹는 건 다르다. 독이 들어있으니까.”
“…그, 그게 정말이야, 대장?”
라흐다의 말에 놀란 건 디어네 무리들이었다.
신나게 과일을 들고 오던 한 디어네는 놀란 눈으로 우르르 떨어트렸다.
두 발로 서서 다니기에 데구루루 굴러다니는 과일이 더 극적으로 보였다.
자두처럼 작고, 새빨간 열매였다.
“우리는 괜찮으니까, 놀라지 마라. 다들 진정해.”
라흐다는 그들을 진정시켰다.
처음 보는 종류이기에 은호는 공간 너머로 손을 뻗었다.
“나한테 한 번만 줘볼래?”
“안 돼, 은호! 독이 있어! 은호 지금 독에 중독됐잖아?”
폭시가 옷자락을 쥔 채 당기자 라비까지 합세했다.
“맞다! 그러면 안 되느니라!”
간절한 그들의 모습에 은호는 바로 손을 집어넣으며 폭시와 라비를 쓰다듬었다.
“먹으면 독에… 중독되는 거 맞지?”
은호가 혹시 몰라 라흐다에게 물었지만, 모르겠다는 고갯짓이 다였다.
“으으음, 태블릿 씨.”
모를 땐, 태블릿이었다.
은호가 태블릿을 부르자 바로 병실로 날아왔다.
탁탁.
문을 두드리듯 소리가 나자 라비의 두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내가, 내가 열어줄 것이다!”
침대에서 붕붕 뛰던 라비는 은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당장 뛰어가 문을 머리로 밀었다.
그 틈 사이로 태블릿이 날아왔고, 디어네 무리들은 낯선 존재에 우르르 물러났다.
서벌을 닮은 그들은 귀를 바짝 올린 채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잠시만 열매를 쥐고 있어 줄래?”
은호의 부탁에 디어네들을 단체로 열매를 손에 쥐었다.
태블릿으로 사진을 찰칵 찍었다.
“태블릿 씨, 저 열매가 뭔지만 알려줘요.”
《새온.》
《사과와 오렌지를 섞은 맛이 납니다. 상큼 달달하지만, 이를 맛볼 수 있는 건 환수뿐입니다. 장염을 유발하는 독성이 있으니 섭취는 삼가길 바랍니다.》
“혹시 내가 만져도 되나요?”
《됩니다.》
“친구들아. 열매를…….”
은호가 고개를 들던 차, 디어네 무리가 갑자기 어딘가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다 같이 고개를 돌려 이상하던 차, 그들은 그대로 뛰어갔다.
은호는 당장 라흐다부터 붙잡았다.
“잠시만. 내가 가볼게.”
“아니야. 나부터 갈게, 은호.”
폭시가 성큼 뛰자 라비가 덩달아 뛰려고 했지만, 은호가 라비를 붙잡았다.
“폭시는 갔다. 나는 왜 안 되는가?”
“라비의 아버지가 위험할 것 같으면 막아달라고 그랬거든.”
―…사고뭉치라, 말려줬으면 좋겠구나.
은호가 라비의 아버지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말을 꺼냈다.
라비는 다급히 앞발로 입을 가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한테 말하면 안 된다. 쉿이니라.”
“알았어.”
잠시 뒤, 라비의 귀가 꿈틀거리고, 폭시가 헐레벌떡 다시 뛰어나왔다.
“은호!”
“그래, 폭시야.”
“…어떤 애가 쓰러졌어!”
“뭐?”
은호가 놀라며 바로 건너편으로 뛰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