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12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122화(122/302)
122화. 이상하다(2)
바로 뒤를 돌아보며 은호는 두 환수에게 웃어주었다.
“라흐다, 라비. 곧 올게.”
그 말을 끝으로 공간이 닫혀버렸다.
“…은호가 진짜 나를 내버려 두고 갔다.”
라비는 닫힌 공간을 보며 귀를 내렸다.
충격이었다.
“은호는 일렉트가 말한 것처럼 바보니라. 오늘 이 몸은 은호의 감시자인데.”
라비가 이불에 엎드려 훌쩍거리자 라흐다는 심각한 얼굴로 라비를 토닥거려주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예측하기가 너무도 어려웠다.
그저 아무 일도 없기를 빌어야만 했다.
* * *
“…라비가 울지도 몰라.”
폭시가 옆에서 은호의 보폭에 맞추며 입을 열었다.
“어쩔 수 없어. 나도 데려가려고 했는데 잠깐, 생각 하나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어.”
“어떤 생각을 말하는 거야?”
폭시가 묻자 은호는 머뭇거리다 잠깐 멈춰 폭시를 바라보았다.
환수 밀렵꾼이 이번 일과 관련되어 있으면 어쩌나 싶어 조심스럽게 물었다.
“…폭시도 돌아갈래?”
“안 돼. 삐약이한테 부탁받았어. 은호를 잘 보기로 했어. 그리고… 그런 일이면 더더욱 돌아가고 싶지 않아.”
폭시는 은호가 무얼 생각하는지 알아차리고 말았다.
환수를 납치하는 못된 인간들을 떠올린 게 분명했다.
이렇게 되면 라비를 두고 오는 게 맞았다.
“정말 그런 일이라면 나중에 라비가 아무리 울고, 섭섭하다고 해도 내가 따끔하게 말해줄게. 절대로 라비는 나처럼 되면 안 되니까.”
흔들리던 폭시의 꼬리가 땅으로 내려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라비는 사랑스러운 아이야. 행복하게 자라났으면 좋겠어.”
“너도 사랑스러운 아이야, 폭시야.”
은호는 입꼬리를 가득 올리며 눈웃음을 지었다.
“라비는… 나랑 달라. 나보다 더 어려. 나는 라비가 계속 웃었으면 좋겠어.”
“그렇지 않아, 폭시야. 라비도 너랑 다를 것 없어. 나도 폭시 네가 계속 웃었으면 좋겠으니까.”
은호는 쪼그려 앉아 폭시의 머리부터 꼬리까지 길게 쓰다듬어주었다.
어린아이가 빨리 어른이 되는 건 환수든, 사람이든 슬픈 일이었다.
“…은호는?”
“폭시야. 나는 지금 너의 감정을 묻고 있는 거야. 너는 괜찮아?”
폭시는 항상 감정을 읽기만 했다.
그렇다면 누가 폭시의 감정을 알까.
“나는.”
폭시는 고개를 들어 은호를 바라보았다.
햇살이 내리쬐는 것 같았다.
그대로 껑충 뛰어 품에 안겼다.
“은호가 옆에 있으면 괜찮아!”
폭시는 은호의 어깨 너머로 두 앞발을 내민 채 얼굴을 좌우로 흔들었다.
“그래? 그럼, 이대로 가지 뭐.”
은호는 폭시를 안은 채로 걸어가다 자신을 배웅하러 온 디어네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친구들아.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그 물음에 디어네들은 뒤를 가리켰고, 그대로 뛰었다.
덩달아 뛴 은호는 디어네들이 꺼낸 말에 귀를 기울였다.
“갑자기 비틀거리며 왔어.”
“맞아. 무척 지쳐 보였어. 그리고 쓰러졌어.”
아직 누구인가를 말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경계하지 않는 걸 보면 동족인 게 분명했다.
은호는 잠깐 생각하다가 물었다.
“그 친구의 털이 혹시 까만색이었어?”
“…어떻게 알았어?”
디어네들은 놀라며 은호를 바라보았다.
라흐다가 이끄는 디어네 무리는 하얀 털을 가지고 있었다.
반대로 네리온이 이끄는 디어네 무리는 검은 털을 지니고 있었다.
네리온 쪽 무리에 환수 밀렵꾼들이 나타나 그들을 납치하는 일이 발생했고, 네리온은 무리를 지키기 위해 라흐다 무리에게 터전을 두고 싸움을 건 적이 있었다.
그때, 납치당했던 검은 털 디어네가 온 게 아닐까.
은호가 디어네들이 가득 있는 곳에 도착하자 그들은 한 발짝 뒤로 물러나주었다.
“은호.”
은호를 부르며 그저 걱정스럽게 검은 털을 지닌 디어네를 바라보았다.
‘…그냥 추측이었는데, 정말일 줄이야.’
은호는 눈을 질끈 감고 싶었다.
“내가 네리온에게 데리고 갈게.”
아무리 라흐다 무리와 네리온 무리가 화해를 했다고 해도 아직 완전히 평화를 되찾은 게 아니었다.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다.
“미안해, 폭시야. 나중에 안아줄게.”
은호가 폭시를 조심스럽게 내렸다.
“아니야. 애부터 챙겨줘.”
폭시는 땅으로 성큼 내려와 앞발로 검은 털을 가진 디어네를 가리켰다.
은호가 그 디어네를 안았을 때, 주변에 있던 디어네가 쭈뼛거리며 말을 꺼냈다.
“……기절하기 전에 대장한테 데려달라고 했어.”
“알려줘서 고마워.”
은호는 디어네들을 향해 웃으며 공간을 열었다.
네리온이 사는 곳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은호.”
폭시가 말을 꺼냈다.
“응?”
“멍멍이 형님이 산책 마치고 돌아왔으면 어떡해?”
“…그건 생각 안 해봤는데.”
“내가 잘 말해줄게.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고마워, 폭시야.”
은호는 든든함을 느낀 채 공간을 넘어섰다.
* * *
“…대장. 이거 어떻게 할까요?”
검은 털을 가진 디어네의 물음에 얼굴에 문신이 있는 디어네는 잠시 고민했다.
아직도 터전 주변에 인간이 남긴 여러 덫이 있었다.
이걸 어떻게 해결하면 좋은지, 그게 최대의 고민이었다.
“일단 주변부터 지켜. 이 일대에 아무도 오지 못하게…….”
네리온은 발소리에 반응해 귀를 쫑긋 세웠다.
“네리온!”
곧이어 누군가 당당하게 이름을 부르자 네리온은 경계하다 말고 미소를 지었다.
“은호!”
네리온이 달려가다가 급히 멈췄다.
아차.
중요한 걸 잊었다.
“거기서 멈춰.”
그 말에 은호는 재빨리 멈췄다.
“주변에 인간들이 남긴 덫이 있다.”
“미안해.”
“아니. 은호가 사과…….”
네리온은 은호의 두 팔에 들린 동족을 보자마자 말을 멈추고 다급히 뛰어갔다.
덫의 위치는 이미 알고 있었기에 네리온의 행동은 굉장히 빨랐다.
숨을 채 돌리기도 전에 네리온이 은호를 향해 두 앞발을 뻗자 그는 쪼그려 앉아 기절한 디어네를 내보였다.
하나하나 살피는 네리온의 세심한 눈빛을 보자 은호는 더 가까이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으, 은호. 동족을 어디에서 구출했지?”
“내가 구출한 게 아니야. 라흐다 무리네로 와서 쓰러졌어. 혹시 네가 오해할까 봐 내가 왔고.”
“어떻게… 된 거지? 많이 다쳤는가? 왜. …왜 이렇게 말라버린 건가.”
무뚝뚝한 네리온은 당장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기절한 디어네를 쓰다듬었다.
“그래서 왔어. 내가 데리고 가서 치료받게 할게. 라흐다가 있는 곳으로 갈 거야.”
“…너는 믿을 수 있다. 은호 너는 믿을 수 있어.”
“네리온.”
은호는 놀란 네리온을 진정시킬 겸 불렀다.
하지만 네리온은 디어네에게 시선을 떼지 못했다.
당연했다.
잃어버렸던 동족인데. 무리의 대장으로서 지켜야 했던 동족이 지금 이렇게 왔으니 모든 게 혼란스러울 수 있었다.
“네리온. 걱정하지 마. 너의 용감한 가족이 이렇게 왔으니까, 다른 가족들도 찾을 수 있을 거야.”
“정말… 인가.”
“그럼. 이 친구가 깨어나면 바로 말해줄게. 아, 그리고 저 덫은 어떻게 처리하는 게 좋을지 물어볼게. 그때까지 건드리지 않았으면 좋겠어.”
모르는 덫이었다.
어떤 효과를 발휘하는지 몰라도 분명 디어네들에게 좋지 않은 결과만 가져올 게 뻔했다.
“그러니까, 네리온.”
“…그래.”
“정신 잘 붙잡아야지. 네가 저 친구들의 대장이잖아?”
똑같은 일이 벌어지면 안 될 테니까.
은호는 네리온을 향해 안심하라는 듯 웃었다.
* * *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자 아윤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쯤 되면 감이 왔다.
조금 전, 은호의 병실에 들르고 왔는데 아니나 다를까 자리를 비웠다.
이게 도대체 몇 번째인지 몰라도 이제는 느낌이 딱 온다는 게 참 우스웠다.
아윤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제법 거칠게 열었다.
칼 단발에 가까운 머리카락이 흔들리며 그녀의 미간이 아주 살짝 찌푸려졌다.
“이봐요, 서은호 씨. 지금…….”
“아윤 씨.”
은호의 표정이 달랐고, 그가 안고 있는 존재를 보자마자 아윤은 바로 뒤를 가리켰다.
“저쪽이요.”
이곳은 그냥 개인 방에 가까웠다.
진료실로 자리를 옮기자마자 아윤은 바로 환수의 크기에 맞춰 제작된 침대 중 작은 곳으로 가리켰다.
“여기 눕혀주세요.”
은호가 디어네를 눕혔고, 그의 뒤로 폭시와 라비가 따라왔다.
“어떻게 된 거죠?”
아윤은 폭시와 라비가 있는지조차 모른 채 은호에게 물었다.
“저도 모르겠어요. 갑자기 기절했대요.”
“일단, 제 방으로 돌아가 있어 줄래요? 사람들을 불러올 테니 걱정하지 말아요.”
“그럴게요.”
대답과 달리 은호의 표정은 어두웠다.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아윤은 은호를 보며 웃었다.
언제나 싱글벙글하던 은호의 얼굴에 웃음이 사라지자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었다.
“이 아이를 데려와 줘서 고마워요.”
아윤의 말을 듣고는 은호는 폭시와 라비를 데리고 진료실을 빠져나왔다.
‘…분명히 디어네를 납치한 환수 밀렵꾼도 유예림하고 연관되어 있다고 했는데.’
은호는 손톱을 물어뜯으며 생각했다.
그때 분명히 환수 밀렵꾼을 붙잡았고, 추후, 붙잡은 유예림하고 연관 관계를 지혜가 살펴보겠다고 했다.
―같은 조직으로 보입니다.
저번에 지혜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무슨 일이지?’
유예림을 붙잡고 구출한 환수들 속에 디어네는 없었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누가 붙잡고 있었고, 어떻게 혼자 걸어 나올 수 있을까.
“은호.”
폭시가 바짓자락을 흔들며 은호를 바라보았다.
“왜 그래?”
“누가 탈출시켜준 것 같아.”
폭시의 말에 은호는 쪼그려 앉아 더 자세히 들어보고자 했다.
“무슨 말인지 조금 더 자세히 말해줄 수 있어?”
“기절하기 전에 감정을 봤는데, 희망과 안도감이 컸어. 나는 그러지 않았으니까. …나는 안도하지 않았어.”
라비는 저 말에 폭시를 바라보았다.
“폭시는 탈출했는가?”
“응. 나는 도망쳤어.”
“무서웠더냐?”
“난 무서웠어. 너무 무서웠어. 은호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단 한 번도 안도한 적이 없어. 매 순간, 언제 붙잡힐까 무서워서…….”
라비가 폭시에게 달려들어 안아주었다. 라비의 몸에 있는 수많은 별이 움직였다.
폭시는 라비의 행동에 배시시 웃었다.
“지금은 엄청, 엄청 괜찮아. 잠도 푹 자는데?”
“정말이더냐?”
“그럼! 고마워, 까망아.”
폭시도 라비를 안아주었다.
“애들아. 괜찮으면 밖에 놀고 있을래?”
“은호는 어디 가더냐?”
은호의 제안에 폭시의 품에 파고들었던 라비가 눈을 깜박거렸다.
“태호 형을 만나러 가보려고.”
뭔가 이상했다.
이 흐름, 참 이상했다.
특히 폭시가 꺼내는 말을 듣고 나니 더욱 의문이 밀려왔다.
누군가 탈출시켜줬다는 건, 제3 세력이 개입했다는 건데. 이걸 환수 관리국이든 환수 연구소든 정말 모르고 있던 건지, 그게 참 의문이었다.
“같이…….”
“알았어, 은호.”
폭시가 라비의 말을 가로채며 대답했다.
라비는 놀란 눈으로 폭시를 바라보았다.
“금방이면 될 거야. 내가 찾아갈게.”
은호는 폭시와 라비를 쓰다듬어준 뒤, 걸어갔다.
“…은호 혹시 화가 났더냐?”
“어떻게 알았어?”
“은호 눈이 웃지 않았다. 은호는 웃지 않으면 다른 인간 같다.”
라비는 은호의 눈빛을 떠올리다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제 은호 그릇은 안 깨야겠다.”
라비는 이번 일을 계기로 아주 크나큰 결심을 했다.
“안녕.”
옆에서 스르르 나오는 고스덕을 보더니 라비는 용수철처럼 튕겨서는 다급히 폭시에게 다가가 등에 매달렸다.
“아!”
폭시가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
“오늘이지? 오늘 단아하고 전기 나무를 보러 간다고 했지?”
“으응! 안 와서 찾아왔어. 여기 은호 냄새가 나는데에, 은호가 없네?”
고스덕이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폭시는 앞발을 뻗었다.
“은호, 저쪽으로 갔어. 지금 단아는 어디 있어?”
“단아는 전기 나무 근처에 있어.”
“…정말로?”
폭시가 놀라며 묻자 고스덕의 고개가 살짝 삐딱해졌다.
“응. 왜 그래?”
“일렉트는 전기 나무를 건드리는 걸 제일 싫어한다!”
라비 역시 덩달아 놀라며 입을 열었다.
멋도 모르고 전기 나무에 앞발을 내미는 순간, 번개가 떨어졌다.
라비는 그때, 일렉트가 너무 무서웠다.
“정말? 정말이야아?”
고스덕이 놀라서는 당장 벽을 뚫고 움직였고, 폭시와 라비 역시 덩달아 달렸다.
* * *
똑똑.
아까 태호가 전화를 받지 않아 방향을 돌려 아윤에게 갔다.
아윤은 의사이기에 항시 자리에 있을 거라 생각했고, 그게 맞았다.
은호는 노크 후 태호의 방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뭔가 싸늘한 감각이 들었다.
안에 누군가 있을 것 같았지만, 자리가 비어 있자 그는 휴대전화를 꺼내고는 돌아섰다.
“국장님.”
바로 지혜에게 연락했다.
<네, 은호 씨.>
“제가 오늘 이상한 일을 알아버려서 그런데 혹시 몇 가지 물어봐도 될까요?”
<그거야 상관없는데, 이상한 일이라뇨?>
은호는 목소리를 낮춘 채 뒷말을 이었다.
“최근에 무슨 일 있었죠? 저한테 알려주지 않은 일 말이에요.”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보시겠습니까?>
폭시 말대로 만약에 디어네가 탈출한 게 아니라 누군가 탈출시켜줬다면 환수 관리국일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그런 정보는 건너오지 않았다.
굳이 숨길 정보도 아니기에 이를 해결한 단체가 환수 관리국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다.
그렇다면 뭐겠는가.
은호는 저번에 태호가 고민하던 무언가가 이상할 만큼 눈에 밟혔다.
“환수들의 탈출을 도운 세력이 나타나지 않았나 싶은데…….”
그저 추측이기에 은호는 뒷말을 살짝 흐리며 바로 다음 말을 꺼냈다.
“그런데 그 세력이 좀… 이상하다고 해야 할지, 어쨌든, 문제가 생겨서 말을 못 하고 있는 상황인가 해서요.”
은호의 물음에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마치 무언가 고민하는 듯하기에 은호는 조금 느긋하게 기다리기로 했다.
‘무슨 일이 있긴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