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124)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124화(124/302)
124화. 이상하다(4)
은호의 물음에 태호는 잠깐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눈동자가 천천히 움직이다가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다급히 손가락을 놀렸다.
바로 모니터를 돌려 보여줬다.
“이 환수 말이야?”
사슴과 고양이가 묘하게 보이는 얼굴이었다. 둘을 조합한 것 같은데, 이상하게 얼굴 자체가 탈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디어네가 뭔가를 뒤집어썼다고 말한 건가?’
은호는 생각하며 계속 바라보았다.
왼쪽 얼굴에 별 문양이 존재했고, 디어네처럼 두 발로 서 있었는데, 망토 같은 푸른 불꽃으로 몸 대부분 감싸 그 아래에 젓가락처럼 가느다란 검은 발이 보였다.
“…솔직히 이 친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되게 비슷하네요. 그런데 사진은 어떻게 찍었어요?”
보통 환수의 사진은 거의 없다 싶었다.
예민했고, 경계심이 높다 보니 만약에 찍히더라도 멀리서 찍어 흐릿하거나 형태가 찍히는 게 고작이었다.
“자발적으로 찍혔어.”
“자발적으로요? 그게 가능해요?”
“가능하더라고. 일단, 여기 몸을 감싼 푸른 불꽃 보여?”
“보여요.”
“이 환수는 불꽃을 최면처럼 이용해 누군가를 조종할 수 있어.”
“…네? 조종이요?”
은호는 그 말이 되게 낯설게 들렸다.
어쩌면 굉장히 위험할 힘이 아닐까 싶었다.
“이름은 하이프. 자발적으로 사진을 찍은 첫 번째 환수이기도 해. 물론, 이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어.”
“왜 자발적으로 찍힌 거예요?”
“그건 아무도 몰라. 한 넉 달 전? 은호 씨를 만나기 전이지. 그때, 환수 연구소로 갑자기 걸어왔으니까. 뭘 말하려고 하는지 몰라도 가만히 있었어. 내가 사진 하나를 찍으니까, 그대로 가더라고. 진짜 묘한 경험이었어. 뭘 말하려고 했던 걸까.”
“으음, 일단 저 친구하고 지금 내가 들은 친구가 같은 환수인지는 모르겠네요.”
“그렇겠지. …아! 이 환수 사진을 다 찍고 울더라고.”
“울어요?”
“맞아. 그땐 나도 하이프한테 조종당한 게 아닐까 싶었는데, 그건 아닌 것 같더라고. 어쨌든, 대단하네. 분명히 무서웠을 텐데, 이렇게 디어네를 도와주고 말이야.”
태호는 뿌듯함을 드러내며 웃었다.
환수의 의리가 드러난 일이 아닐까.
‘아차. 이게 아니지.’
태호는 바로 가을을 호출했고, 은호는 그 잠깐 사이에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했다.
“가을 씨가 위치를 금방 찾을 줄 거야. 다만, 환수 관리국에서 좀 난감하겠네. 지금 터진 사건이 두 개니까, 인력이 쪼개지는 건 피할 수 없지.”
하나는 조금 전에 찾았던 레드독이라는 단체가 동영상을 올린 곳이었고, 다른 하나는 디어네가 탈출했다던 그곳이었다.
‘은호가 이 중 하나는 무조건 가려고 할 텐데.’
태호는 혀로 볼 안쪽을 살짝 쓸며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은호가 갈 곳은 한 곳뿐이라고 생각했다.
“디어네가 탈출한 그곳에 은호 씨도 갈 거지?”
“당연하죠. 일단, 그곳을 들린 뒤에 디어네의 대장한테 말해보려고요.”
“그러니까, 디어네들이랑… 같이 움직이겠다는 거지?”
“일단은요. 변경될 수 있죠.”
“은호 씨, 내가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네.”
태호는 욱하고 올라오는 감정을 꾹 눌렀다.
아직 그 장소에 어떤 놈들이 있는지 몰라도 탈출한 환수를 붙잡으러 사람들을 쫙 풀었을 가능성이 꽤 컸다.
그런 곳으로 지금 당당히 뛰어들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진짜 머리카락을 붙잡아 말리고 싶은 심정이 목구멍 너머까지 치밀어 올랐다.
“지금 병실에 누워있는 디어네가 그러는데, 본인만 도착했대요.”
은호는 디어네가 눈물을 꾹 참고, 친구들을 위해 다시 힘을 내던 그 모습을 떠올렸다.
“다른 친구들은 지금 어디에서 헤매거나, 도중에 쓰러졌을 수도 있어요.”
“그 가능성을 빼놓을 수 없다는 걸 이해해. 그런데 은호 씨 혼자 움직이게 둘 순 없어.”
“내가 왜 혼자 움직여요?”
은호는 입꼬리를 올렸다.
그 당당한 미소에 태호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형. 나는 혼자가 아니에요.”
“…….”
태호는 잠깐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간 의식하지 않았는데, 이제야 하나씩 눈에 들어왔다.
은호의 주변에 수많은 환수가 있다는걸.
그 환수의 힘을 생각하니 말릴 이유가 전혀 없었다.
태호는 숨을 들이마셨다.
어떻게 보면 지금 여기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은호였으니까.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은호가 웃었지만, 태호는 손을 들어 꿀밤을 먹였다.
따악!
경쾌한 느낌의 소리와 함께 윈디드의 날개가 바짝 서기도 전에 흑견의 웃음이 터졌다.
윈디드는 놀란 눈으로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저 친구 왜 저래? 말썽꾸러기가 맞았잖아.’
지금까지 흑견이 보인 반응과 전혀 달랐다.
마치 그 모든 게 거짓인 것처럼 웃음을 내뱉고 있었으니.
“걱정을 왜 안 해? 혼자가 아니든 뭐든 그게 무슨 상관이라고.”
“갑자기 왜… 때려요?”
은호는 이게 무슨 짓이냐고 바라보았다.
왜 때리는지 전혀 몰랐다.
방금 태호도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않았는가.
“은호 씨 그러는 거 아니야.”
“네…?”
“은호 씨가 어디 갔다 오면 어때?”
“엉망이 돼서 돌아옵니다.”
가을의 대답이 뒤에서 들려왔다.
윈디드가 무섭지 않은지 당당하게 제치며 안으로 들어왔다.
“늘. 언제나요.”
“…늘까지는 아닌데요? 아닌 적도 있어요.”
은호는 이마를 만지작거리며 대꾸했지만, 가을은 어깨를 으쓱거릴 뿐이었다.
“글쎄요. 생각이 잘 나지 않습니다.”
태연하게 소파에 앉은 가을은 은호에게도 자리를 권했다.
“은호 씨가 행동하려는 것처럼 걱정하는 것도 박사님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건, 그렇긴 하죠.”
은호는 뒷덜미를 만지작거리며 소파에 앉았다.
“어쨌든, 무슨 일입니까?”
“은호 씨가 디어네를 통해 탈출한 장소를 알아냈는데, 좀 포괄적이야.”
“그게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특정될 정도의 정보만 있어도 충분합니다.”
가을이 자신감 넘치는 말을 하자 태호는 얼른 입을 열었다.
“주택촌, 남색 지붕.”
“그리고 지하가 있어요.”
은호의 말이 뒤를 이었다.
“참, 수상한 조합입니다.”
태블릿을 쥔 가을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태블릿 속에 수많은 화면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속도가 굉장히 빨랐다.
가을은 마치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처럼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했다.
안경에 비치는 빛이 번뜩거리며 그녀의 눈에는 수많은 선이 보였다.
어딜 어떻게 하면 되는지 길이 나타났다.
주택촌.
남색 지붕.
그리고 지하.
이 세 가지 단서만 가지고 가을은 수많은 정보의 파도에 올라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 아래 수없는 정보가 신선한 물고기처럼 움직였다.
가을은 손아귀에 작살을 쥔 채로 반짝거리는 물고기를 놓치지 않았다.
푸욱!
정확한 정보의 핵심만 꿰뚫고는 그대로 뽑아냈다.
손아귀에 정보가 들리자 아주 잠깐 가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하나 잡았습니다.”
“……어?”
“3년 전에 다 망한 주택촌을 사들인 사람이 있었네요. 이름은 노준원. 신기하게도 이곳에 사는 사람들 모두 동시에 입주했네요?”
말이 되지 않는 소리였다.
말이 되지 않기에 은호는 제법 날카로운 미소를 지었다.
“뭔가 목적으로 만들어진 곳이네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가을의 말이 끝나고 은호와 그녀는 태호를 바라보았다.
본의 아니게 큰 게 걸렸으니.
“환수 관리국 연락은 내가 할게.”
“그럼, 가을 씨. 나한테 위치부터 알려주세요. 멍멍이 형님을 통해 먼저 잠입해볼게요.”
“…뭐?”
“환수 밀렵꾼인지, 정화자인지. 그걸 알아야 더 정확한 작전을 펼칠 수 있지 않겠어요? 그렇죠, 형?”
틀린 말이 아니었지만, 태호는 일그러지는 표정을 막지 못했다.
“형. 무엇보다 지금 이 흐름, 뭔가 얻어걸린 기분이 들거든요.”
“얻어걸리다니? 가을 씨가 고생한 거 안 봤어?”
“그런 의미로 말한 게 아니에요. 알죠?”
은호는 살짝 당황한 채 가을을 보았고,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말씀하시죠.”
오히려 말을 이어가길 권했다.
“한 환수의 호의가 이렇게 이어졌잖아요. 아마 그 환수는 생각도 못 했을 거예요. 그러니까 얻어걸린 거겠죠?”
디어네를 탈출시킨 그 환수는 지금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 * *
“…멍멍이 형님.”
“왜 그런가?”
은호는 머리카락을 건드리는 바람을 맞으며 흑견을 째려보았다.
“아까 웃는 거 다 들었어. 내가 모를 줄 알아?”
“들으라고 웃은 거다.”
저 당당한 말에 은호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그 인간이 뭐라고 말했는지 몰라도, 분명히 제대로 된 말을 했을 거라 생각한다.”
은호가 꺼낸 말 일부를 들어보면 그랬다.
“…뭐, 틀린 말은 아니었어.”
“인간. 이번에는 나서지 마라.”
“이미 나섰는데? 가면도 준비했지. 가면만 있겠어? 토템도 있고 많아.”
“구태여 인간을 드러내지 말라는 소리다.”
“왜? 이유를 잘 모르겠어.”
“그놈들이 누구인지 몰라도 인간이 표적이 될 이유가 없다. 놈들은 어차피 우리가 뭘 하든 증오하니까.”
이번 일에 자신들이 나선다면 환수의 공격이라고 생각하며 원래 있던 증오에 조금 더 얹어질 뿐이었다.
하지만 은호가 나선다면 증오가 아니라 표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은호는 흑견이 어떤 마음을 먹고 있는지 알기에 웃음을 터트렸다.
기분이 이렇게도 좋을 수가 없었다.
“뭘 걱정하는지 알아. 그런데 나는 그러고 싶은 거야.”
은호의 대답에 흑견은 급히 걸음을 멈춰 그를 바라보았다.
“방금 뭐라고 했는가?”
“그러고 싶다고 했어.”
“…어째서인가?”
“놈들이 나를 경계하면 좋겠어. 나를 의식하고, 나를 주목하게 만들고 싶어. 그렇게 되려면 나는 앞에 서야 해.”
은호는 웃었다.
사실 자신은 앞에 서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앞에 있다’라는 건 많은 걸 내포하고 있으니까.
자신은 그런 무거운 책임감을 짊어질 정도로 건실하지 않았다.
“너희의 임시 보호소인 나니까, 당연히 옆에 인간이 있다는 걸 알려야지. 나는 너희가 고립되는 걸 원치 않아.”
“우리는 고립되지 않는다. 인간이 생각한 만큼 약하지도 않다.”
“멍멍이 형님. 사람은 멍멍이 형님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영악해. 그럼, 그놈들은 얼마나 더 영악할까.”
환수라는 존재를 환수들이 잘 아는 것처럼 사람이라는 존재 역시 사람들이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놈들이 나를 무서워했으면 좋겠어. 그게 다야.”
“인간이 하지 않아도 된다. 인간은 그런 걸 원치 않을 테니까.”
저 말을 듣자마자 은호의 입가에 웃음이 맴돌았다.
흑견은 어떻게 저토록 자신을 잘 알고 있을까.
“멍멍이 형님. 멍멍이 형님도 그렇고, 다른 친구들도 내 전부야. 나를 건드리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어? 멍멍이 형님은 그럴 수 있어?”
분명 웃고 있음에도 은호의 물음이 이상하게 먹먹하게 들려왔다.
“……그럴 수 없다.”
“그러니까, 이러는 거야.”
은호는 눈웃음을 지었다.
그 표정에 흑견은 다시 달렸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하자 흑견은 더는 은호를 말릴 수가 없었다.
자신이라도 은호가 인간들에게 좋지 않은 취급을 받는다면 절대로 용서할 마음이 없으니까.
‘괜찮다. 내가 나서면 된다.’
은호는 은호대로 설치고, 자신이 뒤에서 든든한 벽이 되어주면 그만이 아닌가.
다만, 흑견은 눈웃음과 함께 드러나는 은호의 담담함이 마음에 걸렸다.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랐다.
* * *
흑견의 힘인 그림자로 침투하는 건 아주 쉬운 일이었다.
그림자까지 올 수 있는 존재가 어디 있으며 어떻게 그림자를 의심할까.
은호는 위를 바라보았다.
이미 주택촌 근처에서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 눈빛이 아주 많이 달랐다.
한눈에 봐도 눈빛이 돌아버린 게 은호는 그들이 정화자가 아닐까 추측했다.
“…대체 누가 풀어준 거야? 대체 누가!”
주변을 탐색하던 한 남자가 갑자기 치밀어 오르는 화를 이기지 못한 듯 소리쳤다.
남자는 손아귀에 들린 채찍을 손에 감았다.
‘우리 마을에… 더러운 변절자 놈이 있는 거야.’
그게 누구인지 몰라도 잡아서 죽여버려야 했다.
그 자식 때문에 환수들이 다 도망쳐버렸으니까.
몇 놈은 잡았는데, 대부분 도망치고 말았다.
‘더러운 짐승 새끼들이 이곳에 설쳐대잖아!’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죽여야 했다.
죽이고 또 죽여 박멸시켜야 평화가 찾아온다는 걸 왜 모를까.
톡톡.
누군가 어깨를 두드리는 느낌에 고개와 함께 채찍을 휘둘렀다.
채찍은 무언가에 막혔고, 네온사인으로 빛나는, 얄미운 표정의 탈을 쓴 누군가가 스프레이를 뿌렸다.
치이이이익.
“커헉.”
남자는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탈을 쓴 누군가가 있는 힘껏 주먹을 휘둘렀다.
턱을 맞고 놈이 살짝 주춤할 사이 탈을 쓴 누군가는 다시금 스프레이를 뿌렸다.
치이이이익!
액체가 남자의 얼굴에 듬뿍 뿌려졌다.
그의 눈이 구불구불 감기더니 이내 축 늘어져 땅에 쓰러졌다.
‘…겁나 아프네.’
은호는 그제야 벽을 친 것처럼 밀려오는 통증에 손을 흔들었다.
초능력을 소유하면 힘에 따라 육체가 달라진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그래도 이건 심했다.
정말 손이 부러지는 줄 알았다.
‘일단, 이놈을 환수 관리국에 던져줘야겠네.’
은호가 가방에서 피를 뽑는 도구를 꺼냈다.
이번에는 주택존 전체를 가로막아야 하기에 손등을 찌르며 피가 차기를 기다렸다.
“인간.”
“어?”
“저쪽을 봐라.”
흑견의 말과 함께 그림자가 움직였다.
그 끝을 따라가자 푸른 불꽃이 보였다.
푸른 불꽃 하면 등에 등불처럼 지고 다니는 블라스가 떠오를 수 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망토같이 길게 내려와 있었다.
‘…하이프다.’
은호는 이곳으로 오기 전 태호가 알려준 사실부터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