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126)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126화(126/302)
126화. 이상하다(6)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곳은 땅이었다. 식물들은 그런 땅에 뿌리를 박고 살아가는 존재들이었다.
걸레를 짜듯 정화자의 몸을 감아버리고 그대로 땅으로 파고들었다.
은호는 정화자가 내지르는 비명마저 하나씩 사라지는 걸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뒤에 어느새 모습을 드러낸 흑견을 느꼈다.
“이제 됐어.”
흑견은 앞발을 뻗어 은호의 머리 위로 올렸다.
살짝 흔들자, 은호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흑견이 얼마나 짜증이 났는지 느껴지기에 웃음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이곳을 가두던 어둠이 사라졌다.
은호는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햇살이 사르르 내려오자 탈 속에 은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두더지 게임이라도 하듯 땅에 파묻혀 머리만 내밀고 있는 꼴이 너무도 우스웠다.
이건 꼭 기념사진을 남겨야만 했다.
“자, 모두 날 봐봐.”
은호는 이미 자신들을 보고 있다는 걸 알면서 비아냥거리며 휴대전화를 들었다.
“이 미친놈 같으니라고!”
“그래? 아직 미친놈 소리 들을 행동은 안 한 것 같은데.”
은호는 대수롭지도 않게 대꾸하며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쭈욱 찍었다.
찰칵.
“와, 아주 잘 찍혔네. 어디에다 올리면 좋을까?”
“안 지워?”
“지우라고, 변절자 새끼야!”
일어나는 반항이 크기에 은호는 손가락을 다시금 올렸다.
쉿.
자신의 의지를 따라 식물들이 저들의 입을 막았다.
“읍읍!”
무어라 말하는지 몰라도 은호는 휴대전화를 보며 키득거렸다.
“너희 같은 사이비들에게는 애초에 보호되는 게 없다고 들었거든. 그러니 너무 노려보지 말라고.”
그들이 아무것도 못 한다는 걸 알기에 당당하게 걸어갔다.
“아니지. 투철한 시민으로서 이 상황을 가만히 둘 수 없지. 이럴 때는 환수 관리국에 신고해야 한다고 배웠으니까.”
은호는 휴대전화를 흔든 뒤, 전화번호를 입력했다.
연결음이 들리고 자동 녹음이니 뭐니 하는 말이 들려왔다.
“여보세요.”
<네, 환수 관리국입니다.>
모두가 들을 수 있게 작동했다.
“그게, 신고할 게 있어서 그런데, 괜찮을까요?”
은호는 일부러 겁에 질린 듯 목소리를 떨었다.
<네. 일단 진정하시고, 차분히 말씀해주세요.>
“정화자들이… 지금, 환수를 죽이고 있어요. 그런데 무서워서 뭘 어떻게 하지 못하겠어요.”
<우선, 주변에서 벗어나 주십시오.>
“네네. 지금 좀 멀리 있어요. 주소를 보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죠?”
<지금 위치가 바로 뜨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안전이 먼저입니다. 더 멀리 벗어나셔서 안전한 장소를 확보해주십시오.>
“알겠어요. 최대한 빨리 와주세요.”
은호는 말이 길어질까, 먼저 끊었다.
휴대전화를 주머니 속에 집어넣고는 키득거렸다.
환수 관리국에 신고할 거라고 생각을 못 한 건지 몰라도 더 분노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렇지. 그렇게 계속 날 노려봐야지. 우리 앞으로 못 볼 사이잖아? 난 구질구질한 건 싫은데, 너흰 딱 봐도 나한테 구질구질하게 매달릴 거 알아.”
“으으읍!”
“뭐, 어떻게든 날 찾으려고 이리저리 수소문할지도 몰라. 그러니까, 날 잘 기억해야지.”
은호는 손을 들었다.
그대로 손바닥에 자신을 보게 하며 쫙 펼쳤다.
“나중에 너희 대가리한테 전해.”
주먹을 꽉 쥔 채 가운뎃손가락을 올려버렸다.
“이거나 먹으라고.”
여기에도 이렇게 욕으로 쓰는지 모르겠지만, 뭔가 기분 나빠하면 충분했다.
* * *
은호는 태블릿을 보았다.
사실 하이프를 소환하면 되긴 한데, 그렇게 되면 시작부터 좋지 않은 관계가 형성될 것만 같았다.
지이이잉.
은호는 밀려오는 진동으로 휴대전화를 보았다.
[이지혜 국장님 : 바로 앞입니다.] [이지혜 국장님 : 솔직히 난감합니다. 이걸 다 어떻게 뚫고 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식물이.] [이지혜 국장님 : 엄청납니다. 하하하.]난감함이 문자를 통해 선명하게 보였다.
[그냥 가면 돼요. 절 믿으시죠!] [이지혜 국장님 : 알겠습니다.]단답이었지만, 어쩐지 떨떠름함이 보였다.
그럴만했다.
자신도 모르고 봤으면 식물들이 주택촌을 에워싼 모습에 난감할지도 몰랐으니까.
[아, 들어가면 제가 다 묻어놨거든요? 그냥 뽑아버리면 돼요.]은호는 갑자기 생각이 나 뒷말도 이었다.
답장은 오지 않았기에 은호는 휴대전화를 집어넣은 채 다시 태블릿을 보았다.
“거기서 왼쪽! 왼쪽으로 가야 해, 멍멍이 형님.”
“알고 있다. 냄새가 난다.”
“역시, 멍멍이 형님이야.”
은호는 탈을 벗은 채 활짝 웃었다.
‘그 친구를 만나면 뭐부터 말해야 하나.’
여러 궁금증이 맴돌았다.
왜 디어네들을 구해줬지. 왜 다른 친구들을 구해준 건지. 어떻게 그곳에 있다는 걸 알게 된 건지.
사실 하이프의 행동은 자신이 봤던 여러 환수 중 가장 알 수 없는 행동을 취하긴 했다.
흑견처럼 커다랗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윈디드처럼 어떤 역할을 맡은 것도 아니었으니까.
아.
―그러면 은홈. 그곳에 도착하면 우리를 불러야 햄.
은호는 갑자기 레비아탐과 약속한 게 떠올랐다.
이걸 잊어버릴 뻔하다니.
하지만 기억했어도 절대로 그 주택촌에서 친구들을 부르지 않을 게 분명했다.
“멍멍이 형님. 혹시 하이프가 근처에 있어?”
“그렇다.”
“…잠깐만 멈춰줄래?”
“왜 그런가?”
은호가 머뭇거리기에 흑견은 급히 걸음을 멈췄다.
고개를 돌려 은호를 바라보았다. 그가 손을 위로 들자 흑견은 바로 목소리를 냈다.
“데려오지 않아도 충분하다. 어수선해질 뿐이다.”
“하지만 약속했어. 약속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해. 그게 약속이니까.”
은호는 그대로 손을 내렸다.
연구소와 이어진 공간이 나타나자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던 레비아탐이 가장 먼저 뛰어나왔다.
“은홈!”
“레비아탐!”
은호가 흑견의 등에서 펄쩍 뛰어내리며 품으로 뛰어든 레비아탐을 잡았다.
은호의 다리가 바닥에 닿기 전에 갑자기 바람이 일어났다.
폭신한 날개가 은호를 감싸며 조심스럽게 땅으로 내려주었다.
“조심해야지, 말썽꾸러기.”
“방금… 안 보였는데?”
은호가 놀라자 윈디드는 눈웃음을 지었다.
“날아왔지. 아주 빨리.”
“엄청 빨람! 삐약이는 아까 내 뒤에 있었는뎀!”
레비아탐이 방긋 웃었다.
더듬이가 움직이는가 싶더니 레비아탐은 앞발을 크게 벌렸다.
“은호! 은호!”
나비처럼 날아온 폭시가 은호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레비아탐이 폭시를 안아주었고, 갑자기 밀려온 힘에 은호의 몸이 뒤로 휘청거렸다.
흑견이 앞발로 그를 붙잡았다.
저 조그마한 존재가 뭐가 그렇게 무겁다고 휘청거리는지.
“그런데 라비는?”
“어, 까망이는…….”
폭시는 말을 하다 말고 눈동자를 위로 살짝 올렸다.
뭔가 잘못한 눈동자가 같았다.
“일렉트하고 단아가 싸우려는 걸 말리러 당당하게 가다가 바로 잠이 들어버렸어. 그래서 단아가 울었어.”
너무도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폭시는 라비를 말리지 못해 미안했다. 단아가 울어 속상한 마음이 더 컸다.
“…잠시만, 단아하고 삐죽이가 싸웠어?”
은호가 놀라며 묻자 레비아탐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얌. 안 싸웠엄. 까망이가 오해한 거얌.”
“이것도, 저것도 다행인데?”
은호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안 싸워서 다행이고, 라비가 오지 않아서 더 다행이었다.
“그런데 말썽꾸러기. 그 인간들은 어디에 있지?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했고.”
윈디드는 주변을 바라보며 묻자 흑견이 코웃음을 쳤다.
겨우 코웃음이었지만, 윈디드가 모든 상황을 깨닫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말썽꾸러기! 이미 다 해결한 거야?”
윈디드는 놀라며 물었다.
다짜고짜 나온 질문에 은호는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됐어.”
“…정말? 벌써? 나는 은호가 부르기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폭시의 귀가 아래로 내려갔고, 레비아탐은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 멍하니 은호를 바라보았다.
마음을 찌르는 폭시와 레비아탐의 눈빛에 은호는 다급히 해명했다.
“저, 절대! 절대 너희를 믿지 못해서가 아니야! 위험해서 그랬어. 그리고 지금 아직 모든 일이 끝나지도 않았어.”
“정말롬…?”
레비아탐의 더듬이가 서로 배배 꼬인 채 맑은 눈망울로 은호를 바라보았다.
은호는 바로 새끼손가락을 올렸다.
“그럼, 약속했잖아.”
“맞암! 약속했엄!”
레비아탐 역시 앞발을 위로 들어 올렸다.
“지금 이번 일에 개입한 새로운 친구를 만나러 가는 중이야. 그런데 이 친구가 푸른 불꽃으로 상대를 조종을 할 수 있다고 하네?”
“괜찮아, 은호.”
폭시가 눈을 가느다랗게 뜨며 웃었다.
자신이 있는 한 아무도 못 건드릴 테니까.
“든든한데, 폭시야?”
은호는 실실 웃으며 레비아탐과 폭시를 안은 채로 앞으로 걸어갔다.
흑견이 앞장섰고, 윈디드가 뒤를 따라갔다.
흑견의 발걸음이 살짝 늦어지던 그때, 폭시의 귀가 꿈틀거렸다.
폭시의 귓가에 울리는 소리는 아주 거칠었다.
머릿속을 파고들려는, 나쁜 소리였다.
“내가 해, 멍멍이 형님.”
은호의 품에서 벗어난 폭시는 땅으로 착지했다.
발바닥에서부터 푸르른 나비가 튀어나왔다.
살랑살랑.
부드럽게 날갯짓하는 수많은 나비가 빠르게 주변으로 넓게 퍼져나갔다.
푸르른 바람이 넓게 퍼져나갔고, 그제야 나무 사이에 푸른 불꽃이 눈에 들어왔다.
꼭 도깨비불처럼 보였다.
은호의 눈이 커졌다.
“…저 불꽃, 언제 생긴 거야?”
은호의 물음에 폭시는 앞발을 뻗어 바닥에 선을 그었다.
“이 선 너머로 넘어오면 모두가 정신의 힘에 영향을 받도록 덫을 쳤어.”
“그러니까, 우리를 기다렸다는 거야?”
“응. 나는 그렇게 생각해.”
폭시는 은호에게 대답한 뒤, 앞으로 몇 걸음 성큼 나아가며 제자리에 섰다.
온몸에 털이 바짝 섰다.
“왜 갑자기 힘을 쓰는 거야? 정신은 소중히 토닥거려줘야 하는 거 알잖아.”
한 나무 뒤로 검은 꼬리가 튀어나와 천천히 흔들렸다.
꼬리 끝에 종으로 된 장식이 달려 있었다.
“…조종당하던 거 아니었어?”
그 물음에 몸을 낮추며 위협하려고 했던 폭시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변했다.
“우리를 도와주려고 했던 거야?”
“맞아. 인간은 사악하니까.”
힘이 빠진 목소리를 따라 하이프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이프 몸에 둘린 푸른 불꽃으로 된 망토가 화려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은호는 아니얌.”
은호의 품에 안겨 있던 레비아탐이 앞발을 좌우로 크게 벌린 채 눈꼬리를 있는 힘껏 날카롭게 뜨려고 노력했다.
“이런데도 조종이 아니야? 인간을 두둔하다니.”
하이프는 레비아탐의 말에 은호를 노려보았다.
제법 살벌했기에 흑견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윈디드는 일부러 앞으로 나서며 어른스럽게 말을 꺼냈다.
“작은 친구. 그렇게 화부터 내지 말자고.”
하이프는 윈디드의 머리 위에 있는 링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건 인간이 달았어?”
“아니. 이건 내 거야.”
“그럼, 인간이 원하겠네? 너도 저것 때문에 많이 시달렸겠네?”
목소리에 힘이 빠져 있었지만, 나른하기보다는 어딘가 살벌하게 들려왔다.
“말 돌리지 마라.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
그림자를 통과한 흑견은 하이프의 앞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샛노란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지만, 하이프는 겁에 질리지 않았다.
“재주도 좋아. 이렇게 다 조종하다니. 그렇지, 인간?”
오히려 은호를 비난했다.
“친구야.”
은호의 목소리가 정확히 들리자 하이프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를 바라보다 다시금 날을 세웠다.
“풀어줘, 인간.”
“풀어달라니? 누굴 풀어주면 돼?”
“네가 붙잡은 거잖아. 그게 네 힘인지 몰라도 말이 통하니까, 세 치 혀로 구워삶든 뭘 하든 저 애들을 붙잡았겠지.”
“아니, 이건 나의 의지다.”
흑견이 하이프에게 고개를 내밀었다.
그 순간, 하이프에게 거대한 어둠이 닥치는 것 같은 환상을 보며 다급히 뒤로 움직였다.
본능적으로 숨소리가 가빠졌다.
“나의 의지를 더럽히지 마라.”
심장을 때리는 듯한 흑견의 목소리에 하이프 주변에 망토를 닮았지만, 더 진한 푸른 불꽃이 하나씩 나타났다.
“나에게 통할 거라 생각하는가?”
흑견이 어둠으로 그 불꽃을 건드리려고 하자 은호와 폭시가 다급히 입을 열었다.
“잠깐만, 멍멍이 형님!”
“안 돼!”
둘의 만류에 흑견은 멈췄다.
이유 없이 꺼낸 말이 아니었으니까.
폭시가 다급히 뛰어와 흑견 앞에 서서 머리로 흑견을 밀었다.
“저 힘에 닿지 마. 닿으면 안 돼. 당장 뭐가 어떻게 되는 건 아닌데, 아주 작은 구멍을 낼 거야. 정신은 아주 작은 구멍 하나로 와르르 무너질 수 있을 만큼 약해.”
“…그런 거였어?”
은호는 놀라며 대답했다.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아 소리를 쳤을 뿐이었다.
“그런 거라면 상관없다.”
“잠깐만, 친구.”
흑견이 나서려고 하자 윈디드가 날개를 펼쳤다.
“그리고 작은 친구.”
윈디드는 하이프를 바라보았다.
눈빛이 조금 이상했다.
이런 눈빛은 최근에 보지 않았던가.
은호가 크라슨이라 불렀던 레베트한테서.
“차분히 이야기를 해보자고.”
“아니, 너희는 정신부터 차려야 해. 저 인간이 너희에게 무얼 했는지 몰라도 우리를 죽인 건 인간이야. 우리를 죽이려는 인간의 손에서 모두를 구출하려고 애를 쓴 건 나야!”
하이프는 입을 열며 오직 은호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시선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따끔따끔했다.
“친구야. 네가 방금 꺼낸 말은 다 맞아. 인간이 너희를 죽였어. 그런데 모든 인간이 그런 건 아니야.”
“이런 말에 속은 거야? 저 인간이 본인은 특별하다고 말해서?”
하이프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마저도 맥이 빠진 소리가 났다.
“내가 너희도 구해줄게. 너희는 지금 아플 뿐이야. 저 인간이 수없이 꺼낸 말에 속아 넘어간 것뿐이야.”
“아니얌! 은호는 내 가족이얌. 자꾸 그렇게 말하면 나는 진짜 화를 낼 거얌.”
레비아탐이 정말 화가 난 표정으로 도톰한 꼬리마저 바짝 올렸다.
은호는 절대로 그러지 않았으니까.
“너, 정신과 관련된 힘을 가지고 있잖아. 모르겠어? 은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우리가 좋아서 있는 거야.”
폭시의 눈동자에 붉은 기가 일렁거렸다.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닿지 않겠네.”
하이프는 꽉 막힌 저들의 모습에 고개를 흔들며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인간. 네가 무슨 말을 했든 간에 너희는 우리를 이용할 뿐이야. 수없이 착취하고 있다고. 우리를 돈으로 보거나, 무차별적으로 죽이는 것밖에 하지 않잖아? 저들한테도 곧 그러겠지. 그렇지? 난 너희가 얼마나 탐욕적인지 알아.”
저 말에 은호는 귀를 의심했다.
하이프의 말은 어디선가 들어봤으니까.
“너를 기억했어, 인간. 네가 움켜쥔 저들을 반드시 내가 풀어줄 테니, 기다려.”
하이프는 은호에게 선포하고는 그대로 뒤를 보고 달렸다.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은호는 이내 미간을 가득 찌푸렸다.
‘…그래. 그거잖아.’
―환수들은 이용당하고 있다. 수없이 착취되고 있다. 환수 밀렵꾼이라 주장하는 놈들은 환수를 가지고 돈 놀음이나 하고 있고, 환수 정화자라고 주장하는 놈들은 환수를 무차별적으로 죽이고 있지.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도 비슷했으니까.
이내 하나씩 머릿속에 떠올랐다.
―마치 처음으로 동영상을 올려본 것처럼 어떤 방어도 없고, 어떤 조작도 없이 그대로 올려뒀습니다.
가을이 말하지 않았던가.
너무도 허술하다고.
그 허술함이 만약에 의도된 게 아니라, 정말로 몰라서 일어난 거라면.
은호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저 친구가… 레드독인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