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130)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130화(130/302)
130화. 봐, 오해는 금방 풀렸지?(2)
“…포, 폭시야.”
“폭시얌…….”
은호는 말을 더듬었고, 레비아탐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폭시를 보았다.
“너희가 아픈 거 알아. 그런데 은호가 혼자라서 더 원망을 퍼붓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너희한테 진짜로 나쁘게 한 인간은 무섭고, 은호는 무섭지 않으니까 나쁘게 말하는 거잖아! 은호가 뭘 했는데? 은호가 왜 너희한테 원망을 들어야 하는데?”
폭시는 너무 화가 나 씩씩거렸다. 발톱이 튀어나왔음에도 집어넣지 않았다.
여기서 은호는 혼자만 인간이었다. 가장 약한 존재가 된 것과 마찬가지였다.
인간이 다 착한 건 아닌 것처럼 자신들도 그랬다.
걷지 못하게 된 분노를 왜 은호한테 푸는지 몰랐다.
그냥 나빴다.
너무 나빴다.
“어제 은호가 너흴 위해 뭘 했는지, 말했잖아. 나랑 레비아탐이랑, 단아랑 고스덕이랑 다 말해줬잖아!”
폭시는 지금 은호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지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돌 것만 같았다.
자신들을 저렇게 생각해주는 건 은호뿐인데.
“너흰 다 바보야!”
폭시가 힘껏 소리치자 폭시를 위로하려 앞발을 뻗던 레비아탐도 더듬이를 바짝 올렸다.
감정이 동화되듯 레비아탐은 그들을 보며 덩달아 목소리를 높였다.
“맞암! 다 바보얌! 은호는 너희를 괴롭히지도 않았엄! 은호는 너희를 도왔을 뿐이얌! 은호를 더는 차가운 눈으로 보지 맘!”
그 시선이 얼마나 아픈지 레비아탐 본인이 잘 알고 있었다.
갑자기 벌어진 대치에 디어네들은 앞발을 뻗어 폭시와 레비아탐 쪽으로 가리켰다.
“우린 이쪽에 설 거야. 그 존재가 너희에게 뭐라고 지껄였는지 몰라도 너흰 우릴 미워하는 인간하고 똑같은 행동을 하는 거라는 걸 알아둬.”
싸늘하게 변한 분위기에 은호에게 적대했던 환수들은 무언가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왜 자신들이 이런 시선을 받아야 하는지 몰랐다.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고, 인간들이 자꾸 들어오고, 발이 너무 아프고, 잠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모든 게 끔찍한데, 밀려오는 시선마저 아팠다.
왜 이렇게 됐을까.
왜 이렇게 자신들이 나쁜 존재가 되어버린 걸까.
환수들은 다 같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고개를 돌려 일제히 은호를 바라보았다.
은호는 웃고 있었다.
자신들은 이렇게 비참한데.
그 표정에 화가 나기 전, 은호는 무겁던 입술을 열었다.
“날 걱정해준 건 너무 고마워. 정말이야.”
은호는 진심을 털어놓았다.
잘 살았구나.
이런 느낌을 받았다.
말하지 않아도 당연하게 자신의 옆에 서줄 존재가 과연 몇이나 될까.
“그런데 지금은 아니야. 저 친구들이 지금 너무 아파서 그래. 사실 날 원망하는 것도 아니야. 그저 날 보고 다른 인간의 그림자를 느끼는 거야. 내가 인간이니까.”
정말 원망했다면 남아 있는 이빨로 깨무는 행동까지 할 정도로 달려들지 않았을까.
“그래도 은호가 원망받는 거잖아. 은호는 걱정한 것밖에 없잖아. 은호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저 애들은 모르잖아.”
폭시는 귀를 접었다.
은호가 계속 병실 앞에 서성거렸다는 걸 왜 모를까.
저들이 걱정돼 멀리서 바라보고, 또 지켜보는 그를 몇 번이고 보았다.
“폭시는 알아줬잖아.”
“나도 알고 있엄.”
레비아탐이 옷자락을 당기자 은호는 레비아탐의 옆구리를 찌르며 키득거렸다.
“봐. 레비아탐도 알아주는데? 벌써 이만큼이나 알아줬잖아. 그리고 이 친구들도 그렇고.”
은호는 마지막으로 환수들을 바라보았다.
시선을 마주하자 환수들은 흠칫 놀랐다.
뭐라고 할지 몰라 긴장했지만, 인간의 시선에서 원망 같은 건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친구들아. 너희를 이 꼴로 만든 인간들을 원망하지 말라는 게 아니야. 해도 돼. 아니, 더 해야지. 너희의 자유를 빼앗았는데.”
은호는 더 강하게 말했고, 환수들은 그가 진심이라는 걸 조금 전보다 더 많이 느꼈다.
“너흴 도와준 그 친구가 뭐라고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행동이 좀 수상해 보이긴 했지?”
“…맞아. 솔직히 그래. 수상해.”
“다른 인간들은 이러지 않았어. 너처럼 우리 말도 할 수 없었다고.”
환수들에게서 여러 말이 나왔지만, 은호는 조금 전보다 더 대화하기 편하다고 느꼈다.
이건 다 자신을 믿어준 친구들 덕이었다.
“나는 너희들에게 정말 많은 걸 받았어. 그걸 돌려주는 것뿐이야. 너희를 이용하려는 마음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어.”
“인간은… 우리를 이용하려고만 하는데?”
“그럴 리가 없어.”
“맞아. 그건 너무 이상해.”
환수들의 수군거림이 커질 때쯤에 은호는 기쁘게 웃었다.
“내가 바로 그 이상한 인간이니까.”
가슴에 손을 올린 은호는 짜증이 섞인 흑견의 한숨에 그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정말 즐거워 보이는 웃음이라 레비아탐이 덩달아 따라 웃었다.
이상한 인간.
이건 폭시도 처음 은호를 보며 생각한 거라 저절로 웃음이 나와버렸다.
“…나, 진짜 그렇게 생각했는데.”
디어네 중 누군가 말하자 옆에서 다른 디어네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다른 친구를 보았다.
“나도. 그럼, 너도?”
“어. 나도.”
모두 같은 생각을 했다는 걸 알자 웃음이 더 해졌다.
경쾌한 웃음소리가 병실을 채우자 구석에 있던 환수 중 한 마리가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
뭔가 몽글몽글한 기분이 몰려오며 은호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사실 조금 전부터 너무도 좋은 냄새가 코를 찔렀다.
“너 어디 가?”
“저 인간을 가까이 보고 싶어서.”
엉금엉금 기어 온 환수는 고슴도치를 닮아 있었는데, 등에 뾰족한 가시 대신 꼬리처럼 길고 부드러워 보이는 긴 털이 존재했다.
오는 게 힘들어 보였지만, 은호는 기다려주었다.
환수는 고개를 올려 은호를 바라보았다.
“안녕, 친구야.”
은호는 자신의 옆으로 다가온 환수에게 인사했다.
환수는 뚝 튀어나온 코를 벌름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포근한 숲의 냄새가 났다.
“나는 너 같은 인간은 처음 봐. 이상해.”
“나도 널 처음 봐서 되게 반가워.”
“넌 왜 우리를 아프게 하지 않아? 기다렸다가 좌절을 주려고 하는 거야?”
“아니. 나는 너희가 행복했으면 해. 어서 나아서 빨리 집으로 돌아갔으면 좋겠어.”
“왜? 인간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아. 우리를 죽이고 싶어 해.”
“너는 지금 날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워?”
“…….”
갑자기 훅 들어오는 물음에 환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죽이고 싶을 만큼 밉냐니.
“…아니. 그렇지 않아. 나는, 널 오늘 처음 봤는걸.”
“그렇게 너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인간도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해. 그리고 나 같은 인간도 있는 거고. 그러니까, 친구야.”
“응……?”
너무도 간절히 불렀기에 환수는 깜짝 놀랐다.
“치료받자. 지금 시간을 지체할수록 다리가 나을 시간이 길어지고, 덜 나을 수도 있어.”
환수는 그 말에 은호를 하나하나 살폈다.
그리고 그의 품에 기대어 있는 두 환수와 시선을 마주쳤다.
인간의 손길에 배시시 웃거나 너무도 편해 보이는 그 모습에 환수는 하나만 확인하고 싶었다.
“인간. 나, 쓰다듬어줘.”
“그래도 돼? 무섭지 않을까.”
“그걸 알고 싶어.”
인간의 손.
너무도 증오스러운 그 손이 정말로 다른지 알고 싶었다.
은호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환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환수는 전혀 예상도 하지 못한 따스함에 멍한 눈을 했다.
달랐다.
뭐라고 말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달랐다.
마음이 흔들리더니 갑자기 집이 생각이 났다.
수많은 별을 바라보며 포근하게 잠이 들었던 그때가 떠올랐다.
‘집에… 가고 싶다.’
환수는 그렇게 생각했다.
“왜, 왜 울엄?”
레비아탐이 놀라며 묻자 환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아래를 바라보았다.
눈물이 흘렀다.
감각이 둔해진 건지 몰라도 진짜 흐르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눈물을 알아차린 순간 얼굴을 적셔오는 감각을 알게 되었고, 이내 아무렇지도 않게 감춰뒀던 수많은 감정이 밀려왔다.
그중 가장 강렬한 건 안도감이었다.
은호는 껍질이 벗겨지듯 드러나는 환수의 표정에 토닥거렸다.
눈물이 한 방울, 두 방울, 점차 늘어나며 환수는 오열했다.
“…나, 이제 괜찮은 거야?”
“이제 괜찮아. 다 괜찮아. 여기는 안전하니까.”
은호는 환수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었다. 이제야 안도감이 밀려오는 모양이었다.
그만큼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두껍다는 걸 알려주기도 했다.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감정은 기쁨과 관련된 것 이외에는 가지고 있을수록 몸을 나쁘게 만들었다. 이렇게 터져 나와야 천천히 털어버릴 수 있을 테니까.
“……온몸이 너무 아파. 발이 말을 듣지 않아. 눈을 감으면… 무서워.”
환수는 울음 속에 감정을 쏟아내듯 말을 꺼냈다.
“이제야 긴장이 풀려서 그래. 너무 아프면 진통제 놔달라고 할게. 발이 나으면 나랑 산책 갈래? 여기 주변에 꽃이 진짜 예쁘게 폈어.”
하나씩 대답하고,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저 말에 환수는 고개를 들어 은호를 보았다.
“그리고 혹시 오늘도 너무 무섭다면 내가 옆에서 같이 자도 될까?”
만약 저 모습이 거짓이라면 믿을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을 테지.
꼭 찬란한 햇빛이 쏟아지는 것만 같았다.
“…미안해. 미안해.”
환수가 흘린 눈물은 전염되고, 울며 꺼낸 사과 역시 다른 환수들의 마음을 건드렸다.
무슨 짓을 하고 말았던 걸까.
저 인간은 조금 전하고 달라지지 않았는데, 아까부터 이렇게 자신들을 보았는데.
“나도… 미안해.”
하나씩.
“그렇게 말해서 미안해!”
하나씩.
“…너무 무서워서 그랬어. 미안해.”
사과가 번져갔다.
“아니야. 봐, 오해는 금방 풀렸지?”
은호가 활짝 웃자 환수는 고개를 파묻으며 더 서럽게 울었다.
등을 쓰다듬은 손길이 하나, 그리고 두 개 늘어났다.
“치료… 치료받을게.”
환수는 고개를 숙인 채로 대답했다.
“정말…?”
은호가 놀라며 묻자 환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진짜 고마워, 친구야!”
꼭 본인 일처럼 기뻐하는 목소리에 환수는 고개를 들었다.
은호는 뚝뚝 흐르는 환수의 눈물을 닦아주며 활짝 웃었다.
“얼마든지 울어도 괜찮으니까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나는 진짜 너한테 화나거나 그러지 않았어.”
은호는 고개를 돌려 다른 환수들도 바라보았다.
“너희도 그래. 혹시 괜찮다면 내가 먼저 가도 될까?”
손을 뻗어 그들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미 눈물이 번진 그들이 고개를 끄덕였고, 은호는 앉은 채로 다가가 이미 자신의 품속에 있던 폭시와 레비아탐을 포함해 모두를 안아주었다.
“이번 일은 결코, 너희의 잘못이 아니야. 너희는 모두 사랑스러운 친구들이니까.”
* * *
“…고마워, 멍멍이 형님.”
은호는 미소를 지으며 흑견을 보았다.
사실, 제일 고마웠다. 어쨌든, 그 상황을 잘 참아줬으니까.
옆에 걸어가던 흑견이 갑자기 치밀어 오른 화에 저 멀리 달려나갔다.
쿠우우웅.
곧 큰 소리가 들리며 거친 바람이 몰아쳤다.
은호는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바로잡은 채로 옆에서 다리를 붙잡은 폭시와 레비아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마워, 폭시야. 고마워, 레비아탐.”
“…멍멍이 형님 화났는뎀?”
“맞아. 엄청 화났어.”
레비아탐의 눈동자는 흔들렸고, 폭시는 활짝 웃었다.
“저기 연구소 너머니까 괜찮아.”
“그런 거야?”
폭시가 키득거렸다.
“엄청 화가 났을 텐데, 저걸로 끝난 게 다행 아닐까 싶은데.”
은호는 말을 하면서도 솔직히 두렵기도 했다.
원래도 예민한 편이지만, 화가 잔뜩 난 흑견은 상당히 예민했으니까.
‘오늘 멍멍이 형님 옆에서 꼭 붙어서 엄청나게 쓰다듬어줘야겠네.’
좋아하는 고기라도 대접해야 하나 생각하던 차, 저 멀리서 목소리가 들렸다.
“…은호. 은호.”
떨리는 목소리에 은호는 바로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단아였다.
너무도 멀리 있었지만, 나무 사이로 구름 같은 털이 튀어나와 있었다.
“안녕, 단아야. 무슨 일 있어?”
“그게, 있잖아. …내가 계속 재워서 은호가 곤란해졌어? 그래서 저분이 화가 난 거야?”
은호는 아주 잠깐 저분이 누구인가 생각하다가 그럴 환수가 흑견밖에 없다는 걸 떠올렸다.
“아니. 멍멍이 형님은 나 때문에 화난 거야.”
“그럼, 아까 저기에서 싸우는 것 같던데. 그건 나 때문인 거 맞지?”
단아가 나무 뒤에서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당장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처럼 눈동자가 이미 일렁거리고 있는 게 보였다.
은호는 키득거렸다.
“아니야. 엄청 열심히 해줬다는 거 들었어. 그것보다 왜 이렇게 멀리 있어?”
은호는 교감의 힘을 몸에 두르며 단아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단아의 주변에 흐르는 힘을 알기에 레비아탐과 폭시는 아주 천천히 발을 움직였다.
“나한테 닿으면 다 자버리니까. 저번에 까망이? 그 아이도 내가 재워버렸어. 사과하고 싶은데, 어디 있는지 모르겠어.”
“라비?”
은호는 눈동자를 움직였다.
“아, 지금 삐쭉이랑 있어. 전기 나무 근처에 논다고 자랑했으니까. 같이 갈래?”
“그래도 될까? 내가 은호가 바쁜데 잡고 있는 거 아닐까?”
“아니야. 그쪽으로 가려던 참이야.”
은호가 다가오면 올수록 단아의 표정이 밝아졌다.
뚝.
비가 한 방울씩 떨어지자 은호의 걸음은 빨라졌다.
은호가 단아에게 가까이 다가갈 그 잠깐 사이 빗방울이 굵어졌다.
“단아야.”
은호가 단아에게 손을 뻗으려던 차 갑자기 무언가 떨어지자 은호는 반사적으로 손을 멀리 뻗었다.
물처럼 투명한 무언가가 손바닥으로 떨어져 축 늘어졌다.
은호와 단아가 놀라던 차 ‘코오―’하며 깊은 숨소리가 들렸다.
잠을 자고 있었다.
상황을 파악한 단아는 쓰러진 누군가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미안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