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131)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131화(131/302)
131화. 비는 친구를 부른다
“진정해, 단아야.”
은호는 일단 단아를 말렸다.
“내, 내가 또 잠들어버리게 했어. 미안해!”
뒤로 물러난 단아의 눈물이 진짜 빗방울처럼 뚝뚝 떨어졌다.
“아니야, 단아야. 이건 실수야.”
은호는 다시금 단아를 진정시키고 본의 아니게 자신이 손바닥으로 받아낸 존재를 바라보았다.
‘이 친구는… 뭐지?’
태블릿이 은호의 시야 안으로 떠올랐다.
‘환수였어?’
은호는 속으로 놀랐다.
손바닥이 다 보일 만큼 투명해 환수라고 보이지 않았다.
뭔가 형체를 갖추긴 했는데, 물처럼 녹아있는 상태라 무어라고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환수를 인식하셨습니다.》
태블릿은 바로 글자를 띄웠다.
《우앙.》
《비가 오면 모습을 드러내는 환수라 평소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과거에는 그 신비로운 모습 때문에 ‘정령’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비를 따라 움직이며 스케이트를 타듯 이리저리 허공을 움직이는 모습은 여전히 신비롭습니다.》
‘어…?’
은호는 글자를 읽다가 멈칫거렸다.
분명히 조금 전에 태호의 방에서 봤던 그 존재였다.
잘못 봤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물이라는 존재 자체에 가까우며 물의 힘을 사용합니다. 비를 따라 움직이면서 메마른 땅에 물을 주는 걸 좋아합니다. 느긋하고, 부드러운 성품을 지녔지만, 비를 피하는 다른 종족과 접점이 드뭅니다. 교류가 거의 없어 태생적으로 수줍음이 상당히 많습니다.》
은호는 우앙이라는 귀여운 이름을 가진 환수를 다시금 보았다.
‘깨어나면 많이… 놀라겠는데?’
위에서 그림자가 지자 은호는 고개를 돌렸다.
“또 무슨 일인가?”
흑견과 시선을 마주하자 단아는 녹아내리듯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단아를 힐끔 쳐다본 흑견은 시선을 돌려 은호의 손바닥에 있는 환수를 바라보았다.
“인간. 또 뭐가 나타났는가.”
화가 치밀어 올라 잠깐 땅을 치며 화풀이를 했을 뿐인데, 아주 짧은 시간에 또 모르는 게 나타났다.
흑견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 시선에 은호는 억울했다.
“아니야, 나는 아무것도 안 했어. 갑자기 이 친구가 위에서 내려왔어.”
“미안해에. 나 때문이야! 내가 저 애를 재워버렸어!”
단아가 울자 흑견은 눈가를 좁혔다.
단아 주변에 흐르는 저 힘은 웬만하면 저항하기 힘든 힘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새로운 존재를 불러들인 건 분명 은호일 테지.
‘인간은 진짜…….’
흑견은 생각하다 말고 밀려오는 소리에 위를 바라보며 눈가를 좁혔다.
거대한 그림자를 드러낸 채 윈디드가 내려왔다.
바람마저 조절하며 단아를 향해 다가가는 윈디드의 행동에 흑견은 조용히 지켜보았다.
“울지마, 작은 친구.”
윈디드가 웃으며 다가오자 단아가 곰 인형 같은 앞발로 눈물을 닦다 말고 깜짝 놀랐다.
“나한테 오면 안 돼!”
“아, 이거 말이야.”
윈디드는 단아 주변에 흐르는 아주 옅은 힘을 보았다. 정말 눈에 힘을 주어야 보일 만큼 아주 작은 알갱이로 이루어져 있었다.
“난 괜찮아, 작은 친구. 저기 저 친구도 기절 안 했잖아?”
윈디드의 말에 흑견의 콧방울 한쪽이 불만스럽게 올라갔다.
“…친구? 내가 괜찮은 게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인데? 아니지…?”
윈디드는 흑견의 표정을 봤기에 살짝 당황했다.
“삐약이는 무슨 힘으로 괜찮은 거야?”
문득 궁금증이 밀려와 은호가 물었다.
흑견이야 가지고 있는 어둠이 이것저것 삼키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윈디드는 흑견과 달랐다.
“나야 원래부터 꽤 튼튼하고, 이것 때문이기도 해.”
윈디드는 머리 위에 있는 링을 가리켰다. 흑견이 부수고 싶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자 윈디드가 크게 웃었다.
“이게 대부분 걸러줘서 그래. 아쉽게 됐나, 친구?”
‘아, 뭔가 공기청정기 같은 거였네?’
은호는 윈디드의 설명에 태블릿을 힐끔 바라보았다.
말도 하지 않았음에도 태블릿에서 글자가 떠올랐다.
《윈디드의 머리 위에 달린 링은 여러 해로운 것들을 걸러주는 거름망 역할과 필요하다면 조명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은호는 그 글자를 보며 솔직히 놀랐다.
“태블릿 씨. 제가 말도 안 했는데, 어떻게 알았어요?”
《보는 것보다 훨씬 눈치가 있습니다.》
은호가 엄지를 올리자 태블릿을 힐끔 본 윈디드는 의아함을 드러냈다.
태블릿에는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으니까.
“어쨌든, 말썽꾸러기. 무슨 일이 터졌어? 이야기는 안에 들어가서 하는 게 어떨까? 또 비가 내리는데.”
“여기 다른 친구가 갑자기 똑 떨어졌어.”
은호가 우앙을 윈디드에게 보여주자 윈디드는 고개를 내렸다.
지그시 바라보다 말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어떻게 말썽꾸러기 손에 있는 거야? 이 존재는 되게 부끄러움이 많던데?”
훌쩍.
단아가 코를 먹는 소리를 내자 윈디드는 무슨 일인지 알아차렸다.
단아 주변에 흐르는 힘으로 저 존재가 잠이 들어버렸다는 걸.
그렇다면 왜 저 존재가 마침 이곳을 지나고 있었겠는가.
윈디드는 은호를 바라보았다.
“말썽꾸러기는 진짜 대단한데?”
은호가 움직이기만 해도 새로운 애들이 보였다. 이건 또 다른 힘이 아닐까.
“뭔가 멍멍이 형님이랑 똑같은 생각한 것 같은데?”
“친구. 방금 말 들었어? 우리는 정말…….”
“입 다물어라!”
윈디드는 좋아했고, 흑견은 바로 털 같은 어둠을 바짝 올렸다.
은호가 낄낄 웃자 빼꼼히 바라보던 단아도 덩달아 수줍게 웃었다.
뭔지 몰라도 되게 신기한 광경이었다.
“그런데 삐악아. 혹시 뭐 먹고 왔어?”
“…티 났어?”
윈디드가 멈칫거리다 냄새를 맡았다.
킁킁.
냄새는 나지 않았다. 냄새를 빼려고 얼마나 허공에서 돌았던가.
“티가 났지. 이미 내려오기 전에 꽤 만족스러워 보였으니까.”
“내가 배가 고프면 많이 예민해져. 다들 깜짝 놀랄 수 있으니 미리 배를 살짝 채우고 왔어.”
은호는 잠깐 윈디드의 특성을 떠올리다가 멈칫거렸다.
?배고프면 예민해지니 주의하자.
그렇게 수없이 별표를 치지 않았던가.
배가 고픈 윈디드가 어떻게 얼마나 예민한지 궁금하면서도 알고 싶지 않은 기분이었다.
“조금 있다가 밥 먹을 건데, 괜찮아?”
“당연히 괜찮지!”
윈디드가 씩 웃었고, 은호는 단아를 바라보았다.
“단아도 같이 가자.”
“…나는 가면 안 돼.”
“아니야, 단아야. 이렇게 포기하면 안 돼. 친구도 만들고 싶고, 다른 애들하고 친해지고 싶잖아?”
단아는 더는 꿈의 열매를 얻기 위해 상대방의 꿈속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됐다.
더는 누군가에게 잊히지 않았다.
가장 강한 소망을 이뤘지만, 아직 다른 부분이 걸렸다.
우선 꿈의 열매가 피어난 나무는 조만간 연구소 쪽으로 옮길 생각이었다.
단아가 이곳에 머물고 있으니 여기에다 놔두는 게 맞았고.
“단아 주변에 나오는 힘이 미치는 범위를 형이 정확히 파악해준다고 했으니까, 우리 같이 차근차근 알아보자. 내가 얼마든지 도와줄게.”
“아니야. 너무 미안해. 은호는 이미 많은 걸 도와줬어.”
“내가 좋아서 하는 거니까, 미안해하지 마.”
“…하지만 은호가 힘들 거야.”
단아는 미안했다.
자신 때문에 은호가 너무 고생이었다.
“고스덕도 오기로 했는데. 단아를 되게, 되게 기다릴 텐데, 단아는 정말 안 가려나?”
은호가 넌지시 묻자 단아가 눈물을 닦으며 대답했다.
고스덕이라면 너무나도 착한 애였다.
“…정말, 날 기다려?”
“나도 단아 널 기다릴 건데?”
은호가 당당히 웃었다.
“나돔! 나도 단아가 오는 게 좋암. 단아는 친절햄.”
“나도 단아 네가 오는 게 좋아!”
조금씩 다가왔던 레비아탐은 두 발로 선 채로 앞발을 위로 크게 흔들었고, 폭시는 가볍게 방방 뛰었다.
레비아탐과 폭시를 보던 단아는 울먹이며 말을 꺼냈다.
“…갈래. 가게 해줘.”
“멍멍이 형님이랑 삐약이는 고기를 좋아하고, 폭시는 꿀을 좋아하고, 레비아탐은 나무껍질을 좋아하고, 라비는 고구마를 좋아하고, 삐죽이는 전기 좋아해. 그럼, 단아는 뭘 좋아해?”
“…달콤한 거, 좋아해.”
단아가 털에 얼굴을 묻으며 수줍게 이야기하자 은호는 밀려드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꼭 털이 복슬복슬하게 오른 새끼 양을 보는 기분이었으니까.
* * *
“…허. 허어.”
태호가 머리를 잡은 채 현기증을 느끼는 것처럼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몸을 이루는 게 물이라서 그런지 주변이 젖어 어쩔 수 없이 식당에서 작은 대야를 빌려 조심스럽게 넣어두었다.
푸우우.
우앙이 숨을 내쉬자 마치 애니메이션에서 나오는 것처럼 코에서 나온 방울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
손가락으로 누르면 터질 것 같았다.
태호 방 책상에 놔뒀기에 소파에 웅크려 앉은 폭시와 라비, 그리고 레비아탐의 시선이 덩달아 방울을 따라 움직였다.
은호가 손을 내밀자 태호가 급히 은호의 팔을 쥐었다.
“왜 그래요, 형?”
“지, 지금 뭐 하는 거야?”
태호가 음성을 낮추며 말을 꺼냈다.
덜덜 떨리는 목소리에 은호는 키득거렸다.
“뭔가 터트리고 싶잖아요.”
“이 환수가 누구인지 알고 그래?”
“엄청 대단한 환수예요?”
“물론이지. 이리 와봐.”
태호는 옆으로 은호를 데리고 갔다.
“잘 들어, 은호 씨.”
“듣고 있어요.”
“물과 관련된 환수야. 비를 몰고 온다고. 화가 나면 홍수가 날지도 몰라. 환수라는 게 밝혀지기 전까지만 해도 농부들이 신이라고 믿었단 말이야.”
“…정말요?”
“그래. 비가 오는 날에 갑자기 나타나는 것도 모자라 메마른 땅에 물도 주고 하는데, 신 같지 않겠어?”
태호의 말에 은호는 잠깐 생각했다.
사실 우앙의 모습을 보면 지금 딱히 동물과 관련된 모습은 떠오르지 않았다.
퍼져 있는 모습은 오히려 게임에서 자주 등장하는 슬라임과 꽤 닮지 않았을까.
그런 존재가 비가 오는 날에 나타나 메마른 땅을 살려주니 충분히 다른 존재같이 느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느껴질 수 있겠는데요?”
“그렇지? 그러니까, 조심해. 아직 조사가 다 이뤄지지 않아서 어떤 개체인지 잘 몰라.”
“그럼, 이참에 조사하면 되겠는데요?”
“…어?”
“내가 있잖아요.”
은호가 엄지로 당당히 본인을 가리켰다.
그 손가락을 따라가던 태호는 얼이 빠진 얼굴을 했다.
“그리고 그 친구들, 다 치료받기로 했어요.”
“……어?”
“형한테 이 친구도 보여주고 싶었고요. 나중에 애들하고 밥도 먹어요. 나는 그때 못 먹은 소고기가 당기는데요?”
“…….”
“최고죠?”
은호의 물음에 태호는 그를 왈칵 안았다.
등을 몇 번 두드려준 뒤에 뒤로 물러서 대견하다는 표정을 짙게 지어 보였다.
“당연하지! 진짜 고마워. 진짜 너무 고마워.”
그 환수들을 설득해주다니. 가슴이 너무 벅차올랐다.
이런 큰일을 겪고 난 뒤에 환수든 사람이든 누구나 마음의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설득이 얼마나 어려웠을까.
“…아뇨.”
은호는 기분이 묘했다.
무언가 일을 하고 이렇게 고마움을 받는다는 건 여전히 낯설었다.
“고마워해야 하는 건 나예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입을 움직이는 일밖에 없어요. 진짜는 이곳 연구소 사람들이 하잖아요. 형을 만난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이러면 곤란해, 은호 씨. 고마움으로 떠들면 내가 이기거든. 설비가 다 갖춰지면 뭐 해. 환수들이 오지 않는데. 그러면 죽은 거나 마찬가지야. 지금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지?”
“모두의 생각 맞죠? 가끔 보면 새벽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던데, 진짜 형만의 생각이 아니죠?”
“당연하지. 여기가 인터넷만 돌아다녀도 얼마나 환상적인 곳인지 알걸?”
“그건 가을 씨가…….”
“아차, 빨리 이 소식을 전달해야 하는데. 잠시만 여기 있어봐.”
태호는 자연스럽게 움직여 밖으로 나갔다.
은호의 눈이 살짝 가늘어질 무렵, 라비가 입을 열었다.
“방금 움직였느니라!”
라비의 표정이 밝았다. 꼬리가 흔들리며 뒷발을 동동 굴렸다.
처음 보는 존재였다. 생긴 게 너무도 신기했다.
“움직였어?”
은호는 우앙이 담긴 대야를 안아 들었다.
“은호. 왜 저 애를 데리고 가는 거야?”
폭시가 상체를 일으키며 물었다.
“보니까, 수줍음이 좀 많대. 갑자기 깨어나면 놀랄까 봐.”
“단아처럼 많암?”
레비아탐의 물음에 은호는 목소리를 냈다.
“태블릿 씨, 우앙과 관련된 정보를 한 번만 더 띄워줄래요?”
정보가 뜨고, 은호는 다시 읽었다.
“그건 단아의 성격이고, 이 친구는 종 자체가 가진 특성인가 봐. 다른 종족하고 어울린 적이 없어서…….”
“눈 떴다, 인간.”
말을 하던 은호는 흑견의 말에 시선을 내렸다.
슬라임처럼 추욱 늘어졌던 우앙은 갑자기 물을 빨아들이는 스펀지처럼 퍼진 물이 한곳으로 뭉쳤다.
새끼 펭귄 같은 형태에 사슴뿔보다 더 큰 뿔이 머리 위에 달려 있었다.
눈으로 보이는 부분이 다른 곳보다 더 반짝거려 그곳이 ‘눈이구나’하고 알아볼 수 있었다.
모든 부분이 다 불처럼 움직이고 있어 무척 신기했다.
반짝거리는 부분이 감기듯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안녕?”
은호는 우앙을 보며 평소보다 긴장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은호의 목소리를 따라 다른 환수들 역시 긴장하며 우앙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