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133)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133화(133/302)
133화. 비는 친구를 부른다(3)
“괜찮아, 친구야?”
은호는 우앙부터 챙겼다.
어깨만 드넓은 채로 다리와 팔이 원래 크기만큼 작게 줄어있었다.
시선을 받은 우앙의 몸이 부글부글 끓었다. 부끄러워서 금방이라도 머리가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비와 함께 늘 따라오는 게 천둥이고, 번개인데. 무서워하다니.
“아, 안 놀랐어. 저, 정말이야.”
“알아. 넌 안 놀란 거야.”
은호가 긍정해주자 우앙은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굉장히 낯설어서 가슴 주변의 물이 쿵쿵 뛰었다.
“친구야.”
“으, 응?”
“미안한데, 조금 뒤에 네 이야기를 들어도 될까?”
“기, 기다릴 수 있어. 저, 정말이야.”
우앙이 더듬거리며 중간중간 은호를 바라보았지만, 그는 시선을 피하지 않고 차분히 기다려주었다.
말이 다 끝나지 않았다는 걸 어떻게 알까. 자신은 말도 더듬고, 느렸는데.
무척이나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우앙은 이상하게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이게 들어주고 있다는 걸까.
낯선 감정이었지만, 좋았다.
우앙은 처음으로 망설이지 않고 뒷말을 꺼낼 수 있었다.
“…왜냐하면 내, 내 말을 들어준다고 마, 말해준 건 처음이니까.”
그 말에 화답하듯 은호가 활짝 웃자 우앙의 가슴 부근이 쿵쿵 뛰었다.
색다른 느낌이었다.
* * *
은호는 안경을 올린 채 주변을 바라보았다.
전기 나무는 밖에서 보이지 않게 나무들로 가려버렸다. 안전을 위해 선택한 사실에 이렇게 답답함을 느낄 줄이야.
“…작은 친구, 진정해봐.”
귀를 기울이니 윈디드의 소리가 들렸다.
“가! 내 집에서 물러나. 안 그러면 널 공격할 거야. 이번에는 절대 비껴가지 않아.”
이어 날이 선 일렉트의 목소리가 들리자 은호는 조급해졌다.
저 상황이 됐음에도 지금 일렉트가 정신을 잡고 있었다.
과연 얼마나 잡을 수 있을까.
벼락이 치기 전 전조증상처럼 은호의 머리카락이 허공으로 떠오르자 그는 말부터 꺼냈다.
“삐죽아!”
그제야 다시 은호의 머리카락이 내려앉았다.
이미 이곳에 있는 환수들 모두 일렉트가 얼마나 전기 나무에 예민한지 알고 있었다.
즉, 이번 사태는 외부에서 온 환수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말이기도 했다.
윈디드가 무어라 말했지만, 은호는 일렉트만 바라보았다.
가방에서 토템을 꺼낸 뒤, 우앙을 안고 바로 흑견의 등에서 내려왔다.
땅으로 조심스럽게 우앙을 내려놓았다.
“잠시만.”
은호는 우앙을 쓰다듬고는 바로 일렉트에게 뛰어갔다.
우앙은 멍하니 은호를 바라보았고, 윈디드가 다급히 은호를 향해 앞발을 뻗었다.
“말썽꾸러기, 지금 그 작은 친구는…….”
“그만둬라.”
흑견이 어둠으로 윈디드의 앞발을 붙잡았다.
“친구, 너 왜 이래?”
윈디드가 놀란 눈을 하자 흑견은 짜증이 담긴 목소리를 내뱉었다.
“말려도 했을 거다. 인간과 척을 질 생각으로 떼어내지 않는 이상 저 마음을 꺾지 못할 테니까. 넌, 할 수 있는가?”
“…아니.”
“그런 거다.”
흑견은 은호를 바라보았다.
특히 이번 일은 더더욱 어려웠다. 하필 그 대상이 일렉트였으니까.
그렇다면 다치지 않게 막는 게 차라리 나았다.
“삐죽아. 괜찮아?”
은호는 주저 없이 일렉트를 안았다.
“…은호. 은호, 내가, …내가 또 전기를 써버렸어.”
은호의 품에 안긴 일렉트의 숨소리가 빨라졌다.
“알아. 그럴 수 있어. 괜찮아, 삐죽아.”
“내가 일부러 하려던 게 아니야. 먼저 내 전기를 빼앗으러 왔어. 나는 오지 말라고 말했어. 그런데도 왔어. 내 전기를 뺏으러 온 거야. 내 걸!”
품에 안긴 일렉트의 몸이 떨렸다.
얼마나 흥분했고, 또 밀려드는 감정을 얼마나 힘겹게 참는지 알 수 있었다.
몸을 똬리 틀어야만 있을 수 있는 좁은 세계에서 일렉트는 전기만 만드는 도구로서 이용당했다.
그때, 수없이 전기를 빼앗겼던 기억이 전기를 좋아하고, 먹고 살아가야 하는 일렉트에게 엄청난 독이 되고 말았다.
아주 짙은 집착이 피어났으니까.
“이건 내 거야! 은호가 준 내 집이야! 더는 빼앗기지 않아.”
파직.
일렉트의 몸에서 전기가 피어오르던 그때, 은호는 손아귀에 있는 토템을 발동하며 전기를 흡수했다.
타이밍이 좋았기에 기뻐하던 은호는 곧이어 자연이 자신에게 알려주는 경고에 위를 바라보았다.
사아아아.
하늘에서 갑자기 물 폭탄 같은 비가 내려왔다.
은호는 일렉트를 감쌌고, 그에게 닿으려던 순간 비가 급히 멈췄다.
그제야 은호는 앞을 보았다.
나무 뒤로 우앙이 또 있었다. 한 마리가 아니었다.
‘이 비는 저 친구들이 한 거야?’
이어 은호는 고개를 돌렸다.
자신과 함께 왔던 우앙이 비를 멈췄다.
손가락을 따라 비가 거꾸로 움직이더니 사라졌다.
“……사라졌다.”
나무 뒤에 숨은 우앙이 놀라며 목소리를 냈다.
말을 더듬는 우앙과 달리 평범하고 말하고 있었다.
저들이 어떻게 왔는지 몰라도 은호는 그들에게 진지하게 경고했다.
“물러서 친구들아. 진짜 다칠 거야.”
“…우리는 그냥, 구경하려고 했어. 그런데 갑자기 먼저 공격했다고.”
우앙들은 나무 뒤에 숨은 채로 말을 꺼냈다.
“맞아. 비가 여기에 신기한 나무가 있다고 알려줬어. 비가 말할 정도니까, 얼마나 예쁜지 보고 싶었을 뿐이야.”
“우리도 공격할 줄 안다고. 방금 비 맛, 봤지?”
위협적으로 느껴져야 하는데, 그렇진 않았다.
“친구들아. 여긴 이 친구의 집이야.”
은호는 일렉트의 눈을 살짝 가린 채 강하게 말했다.
그의 시선은 금방이라도 비를 쏟아부을 듯 흐려진 하늘로 향했다.
저 친구들한테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는.
“……어?”
우앙들은 당황했다.
나무 너머로 뿔이 하나씩 늘어났다.
“이 친구의 집이야. 오직 하나밖에 없는 집. 허락도 받지 않고 집에 오는데 누가 좋아하겠어?”
“정말… 이야?”
“…응. 여긴 내 집이야.”
우앙들의 물음에 일렉트가 대답했다.
“내가 제일, 제일 좋아하는 집.”
다시금 꺼낸 일렉트의 대답에 잠깐 침묵이 몰려왔다.
“…미안해.”
사과가 흘러나왔다.
“나도… 미안해. 정말 몰랐어.”
하나씩 늘어나는 사과에 일렉트의 꼬리를 끝이 흔들렸다.
진정이 됐다는 걸 알자 은호는 시선을 가린 손을 떼었다.
‘사과했어. …나한테 사과했어.’
일렉트는 입을 살짝 벌렸다.
오직 공격으로만 전기를 빼앗기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지켜냈다.
전기를 지켜내고 말았다.
일렉트의 작은 눈동자에 경쾌한 빛깔이 감돌았다.
“내 집과 내 전기를 빼앗지 않으면 돼. 그러면 충분해.”
일렉트가 사과를 받아주자 은호는 안도했다.
대체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기 전에 은호는 같이 온 우앙부터 바라보았다. 도와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다.
“친구야.”
하지만 우앙이 보이지 않았다.
“…친구야?”
은호가 고개를 움직이자 흑견이 목소리를 냈다.
“도망갔다.”
“뭐?”
은호는 깜짝 놀랐다.
“…어, 언제? 언제 도망간 거야?”
“저 존재들을 본 뒤에 움직였다.”
은호는 흑견이 말하는 존재가 우앙들이라는 걸 알았다.
‘……동족인데. 왜 도망간 거지?’
“말썽꾸러기.”
윈디드는 은호를 불렀다.
“응?”
“어서 가 봐. 이쪽 마무리는 내가 할게.”
윈디드의 말에 은호의 미소가 길어졌다.
“고마워, 삐약아.”
“아니야.”
윈디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솔직히 놀랐다.
사태가 이렇게 깔끔하게 해결될 줄이야.
왜 흑견이 자신을 말렸는지 그 이유를 바로 알아버렸다.
하지만 위험한 건 위험한 거였다. 갔다 오면 뭐라도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삐죽이는 나랑 갈래? 아니면 여기 있을래?”
은호가 묻자 일렉트는 아주 잠깐 생각한 뒤에 대답했다.
“여기 있을래.”
“그래. 여기 있자.”
은호가 일렉트를 조심스럽게 내렸다.
손바닥으로 머리부터 몸까지 길게 쓰다듬어주었다.
일렉트의 두 눈이 포근하게 감겼다.
“아, 친구들도 가지 말고 잠시만 있어 줘.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왜에?”
“혼내려고…?”
나무 뒤에 뿔이 크게 흔들렸다.
“너희한테 뭐라고 하려는 게 아니야. 화내지도 않을 거고.”
“그러면 왜 그래?”
“너희의 도움이 필요해서. 날 좀 도와줄 수 있어?”
“도와달라고?”
우앙들은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눈 부분의 반짝거림이 더 짙어진 것처럼 보였다.
뿔 부분이 흐느적거리며 배시시 웃었다.
“나 도와주는 거 좋아해.”
“나도 좋아해.”
말과 달리 우앙들은 나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고마워, 친구들아.”
은호가 웃자 누가 짜고 친 것처럼 우앙들의 머리가 하나씩 펑 하고 터져버렸다.
이 모습을 처음 본 일렉트가 앞발로 눈을 가린 채 기겁했다.
“……머리가, 터졌어!”
그것도 은호가 터트려버렸다.
정신이 혼미해졌다.
* * *
은호는 흑견을 타고 도망간 우앙을 쫓았다.
커다란 덩치로 몸집을 불렸기에 나무 너머로 아주 많이 삐져나왔다.
“친구야.”
“……!”
우앙은 비명도 지르지 않고 달아나려다 은호라는 걸 알자마자 다시 커다란 덩치로 무릎을 붙인 채 쪼그려앉았다.
“아까 그 친구는 삐죽이라고 하는데, 일부러 번개를 내리친 건 절대로 아니야.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은호가 말을 꺼낸 뒤 우앙의 반응을 봤지만, 미동도 없었다.
‘역시, 이쪽이 아니네.’
은호는 나무를 잡은 채 고개를 살짝 내렸다.
“아까 보니까, 같은 동족이 있…….”
으헝.
갑자기 우앙의 울음이 터지자 은호는 굉장히 놀랐다.
우앙의 눈 주변으로 무지개가 번져가듯 사방으로 물이 곱게 뻗어나갔다.
은호는 물을 맞으며 우앙에게 손을 뻗으며 물었다.
“혹시 동족이 싫은 거야?”
우앙은 그 물음에 주저하고, 주저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봤던 그 친구도 알고 있는 친구야?”
우앙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제 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저쪽은 잘 해결이 됐으니까.”
은호는 물웅덩이가 가득한 우앙 옆에 앉아 손을 뻗었다.
토닥토닥.
우앙의 등을 두드려주며 은호는 가만히 기다렸다.
흑견은 몸을 바닥에 뉘다 길게 하품했다.
침묵이 꽤 길게 이어졌음에도 은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우앙은 눈물을 멈춘 채 그를 바라보았다.
시선을 마주치자 은호는 웃어주었다.
“아까 도와줘서 고마워.”
“…걔, 걔들이 잘못한 거야. 비, 비도 세게 맞으면 아프니까.”
“너도 나를 걱정해줬네?”
은호의 말에 우앙은 놀라다가 이내 웃었다.
“마, 맞네. 걱정하는 건 이상한 게 아, 아니었어.”
조금 전, 저 인간에게 걱정하는 건 이상하다고 말했는데, 아니었다.
자연스러운 감정이었다.
마치 비처럼 무언가 스며드는 기분을 느꼈다.
“…나, 나는 있잖아. 말을 더, 더듬어.”
“응.”
“그런데 무, 무리에서는 나를 마, 말더듬이라고 놀리면서 싫어했어. 그러다가 나를 가, 가뒀어. 내가 눈 떴을 때 봐, 봤던 그 동그란 거랑 비슷한 곳에 가, 갇혔어.”
우앙은 말을 하며 힐끔힐끔 은호를 보았다.
은호의 눈빛이 깊어졌다.
하지만 이야기를 들어주겠다는 말을 지키겠다는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앙은 이 침묵에 마음이 편해졌다.
누구한테도 꺼내지 못하고,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던 이야기였으니까.
“내, 내보내 달라고 했는데, 보내 주지 아, 않았어. 말을 또, 똑바로 해야 보내 준다고 했는데. 며, 몇 번을 해봐도 그게 아, 안 됐어.”
우앙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괜히 웃었다.
선천적으로 말을 더듬었다.
“…나, 오, 오래 갇혀 있었어. 내, 내가 있는 곳에 물이 불어나서 나, 나갈 수 있게 됐는데, 나가니 아, 아무도 없었어.”
비가 내렸다.
솔직히 눈물인지 잘 몰랐다.
무리는 이미 다 떠나고 없었으니까.
“호, 혼자 다녔어. 비가 좋았어. 내, 내가 뭐라고 떠들어도 다 가, 가려주니까.”
비가 내리면 사방이 빗소리로 가득했다.
모든 소리를 비가 가려주기에 노래를 불렀다.
“혼자 계속 새, 생각했어. 내가 버, 버려진 건, 단지 말을 더, 더듬기 때문이 아니라고.”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그날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게 참 어려워 계속 생각이 났다.
“내가 그때 저, 저항을 못 했어. 나는 야, 약했어. 그래서 가, 갇힌 거야.”
“…그렇게 생각해서 몸집을 키우는 거야?”
은호가 묻자 우앙은 고개를 끄덕였다.
“크면 무, 무서워. 덩치가 크, 큰 채로 험악한 표정을 지, 지으면 대부분 다 도망쳤어.”
온갖 용기를 끌어모아서 몸집을 키워보았다.
어차피 혼자니까.
잃은 게 없었으니까.
그런데 자신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말을 하지 않아도 물러났다.
“……그, 그런데 나는 아직도 겁쟁이야.”
우앙은 더는 웃을 수가 없었다.
동족을 보고, 무서워서 도망쳤다. 그렇게 달라지려고 했는데, 덩치를 크게 키우지도 못했다.
“아니야.”
은호가 단호히 말하자 우앙은 마음이 간질거렸다.
“너는 무척 용감해.”
“도, 도망쳤어. 무서워서 도, 도망쳤어. 커지지도 모, 못했어.”
“그렇게 무서운데도 날 도와줬잖아?”
“…….”
“용기는 마음이지, 덩치가 아니야. 넌 지금도 충분히 용감해.”
다시금 들려오는 말이 좋았지만, 우앙은 쉽사리 인정하기가 어려웠다.
“…그 애들이 아, 아닌데도, 동족만 보면 도망쳤어. 가, 같이 갈래라는 간단한 말도 하, 하지 못했어.”
“그런 마음을 이미 품고 있다는 것 자체가 네가 용감하다는 증거야. 그때의 너를 네가 잘 보듬어주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니까.”
몸에 새겨질 정도로 아득한 공포를 한 번에 잊는 건 불가능했다.
우앙이 혼자 비를 따라 여행을 가며 보았던 수많은 것이 다시 우앙이 일어설 수 있게 도와줬다.
포기하지 않는 건 용기였다.
“친구야. 네가 조금 전 그 친구들한테 말하고 싶다면, 이번에는 내가 같이 있어 줄게.”
우앙은 잔잔히 퍼지는 은호의 말에 눈가가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정말 가, 같이 있어 줄 거야?”
“맞아. 네가 더 큰 용기를 낼 수 있게 같이 있어 줄게.”
은호는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물끄러미 보던 우앙의 주변에 물이 일어났다.
감정의 소용돌이를 보는 듯 둥글게 휘몰아쳤다.
“나, 나는…….”
우앙은 말을 꺼내다 말고 주저했다.
하지만 이내 은호를 바라보며 내내 품었던 그 마음을 털어놓았다.
“나, 나도 같이 다니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