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135)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135화(135/30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 135화
135화. 반갑지? 난 반가운데
띵띵띵. 띵띵띵.
오랜만에 들려오는 알람에 은호는 반사적으로 눈을 떠 알람을 멈췄다.
‘…오랜만에 일찍 일어나려니 죽을 맛이네. 내가 방탕한 생활을 하긴 했지.’
매일 아침 10시에 일어나고 있었다.
딱 그때가 되면 눈이 떠지니 어쩌겠는가.
‘이야, 10시라니. 나는 진짜 백수가 된 거야.’
은호는 속마음과 달리 흐리멍덩한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주변에 모인 뜨끈뜨끈한 온도에 시선을 내렸다.
레비아탐과 라비가 약속한 것처럼 정자세로 자고 있었고, 폭시는 앞으로 엎드려 혀를 내밀고 있었다.
자는 모습이 다 천사 같아서 은호는 마음껏 안아주고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어떻게 일어나지?’
은호가 고민하고 있던 사이, 폭시가 눈을 떠 슬쩍 비켜주었다.
“…나 때문에 깼어?”
은호가 목소리를 낮춘 채 묻자 폭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냥 곤란한 감정이 느껴졌어.”
“잠을 자는데도? 그러면 잠은 제대로 잘 잘 수 있는 거야?”
“아니야. 은호라서 그래. 나는 은호한테만 그렇게 느껴져.”
“조심해야겠네. 어서 다시 자.”
은호가 폭시의 등을 쓰다듬어주었다. 잘 자야 쑥쑥 자라날 수 있었다.
으함.
폭시가 크게 하품하자 제법 날카로운 이빨이 보였다.
“그런데 은호. 어디가? 뭔가 즐거워 보여.”
“아, 골려줄 놈이 있어. 솔직히 오늘을 기다려왔다고 해도 틀린 소리가 아닐지도 몰라.”
“그럼, 나도 갈래.”
폭시가 바로 은호의 팔에 매달리며 꼬리를 흔들었다.
“미안해. 오늘은 같이 못 가겠어. 다른 애들도 그렇고.”
“그럼, 멍멍이 형님만 돼?”
섭섭함이 담긴 폭시의 물음에 은호는 폭시를 안아주었다.
금세 웃음이 퍼졌다.
이게 폭시의 나이에 딱 어울리는 모습이라 은호는 반가웠다.
“멍멍이 형님도 놔두고 갈까?”
“그러면 뭔가 재미있겠다.”
은호를 따라 폭시가 키득거렸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
흑견이 말을 꺼내자 은호와 폭시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바로 반응할 줄이야.
“…아차차, 애들 먹을 수 있게 밥해놓고 가야지.”
“나, 나는 옆에서 은호 구경해야지.”
은호가 슬쩍 침대에서 일어났고, 폭시가 사뿐히 땅으로 내려왔다.
귀가 제일 밝은 흑견을 어떻게 떨어트릴 수 있을까.
은호와 폭시는 입을 다문 채 계단을 내려갔다.
뒤통수를 찌르는 듯한 흑견의 시선이 너무도 매서웠다.
* * *
“…멍멍이 형님.”
은호가 지혜를 기다리다 말고 슬쩍 흑견을 불렀다.
“여긴 밖이다.”
“알지. 그런데 이렇게 대답하는 걸 보면 아무도 없잖아.”
“맞다.”
“몇 번을 생각했는데, 역시 막는 게 좋겠어.”
“푸른 불꽃을 써서 정신을 조종하던 그 존재 말인가?”
“맞아. 하이프 말이야.”
은호는 손깍지를 낀 채 앞으로 길게 손을 뻗었다.
“멍멍이 형님한테 먼저 말해주는 거야.”
“고민이 왜 그렇게 길었는가?”
“내가 끼어들어도 될지 고민했어.”
은호의 얼굴에 어린 나른함이 천천히 걷어졌다.
하이프는 레드독이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레드독은 환수 밀렵꾼과 정화자들을 공격하기 위해 세워진 곳이라 판단했다.
환수가 사람처럼 행동하면서까지 저 두 곳을 무너트리고 싶은 이유라고 한다면 자신이 알기로는 딱 하나였다.
―이 불꽃은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지는 영혼의 단짝을 알아보기 위한 표식입니다. 한쪽이 죽어버리면 더할 나위 없는 상실감에 시달려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집니다.
‘영혼의 단짝이… 죽어버린 거야.’
은호는 그 이외에는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만약에 이게 맞다면 하이프의 복수는 정당했다.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에 자신이 끼어도 될지 망설여졌다.
그렇게 고민이 길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몇 번을 생각해도 이건 아니었다.
이미 개인적인 복수라기에는 너무도 많은 걸 건드리고 말았다.
달리 말하자면 이건 폭주였다.
“새삼스럽게 고민했는가? 인간은 뭐든 잘 끼어들었다.”
흑견이 던진 그 말에 은호는 가볍게 웃었다.
“그렇지? 진짜 새삼스럽게 고민이 길어졌네.”
“인간은 우리의 임시 보호소라고 했다.”
무심하게 이어진 흑견의 말에 은호는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흑견은 정말 왜 이럴까.
“말을 내뱉은 이상 지키거라.”
속마음을 읽는 것처럼 자신의 나약한 부분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좋아서 시작한 일이었고, 지금도 좋고, 다 좋은데, 사실은 흔들리고 있었다.
은호는 손을 바라보았다.
흉터가 많고, 거친 이 손에 웃어준 환수들이 얼마나 많은지, 자신도 무척 행복했다.
어제 티티가 이 손을 잡고 용기를 냈을 때, 자신 역시 여러 감정이 차올랐다.
“그래야지.”
은호는 씩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세계에 자신이 온 건 필연적인 건지, 우연인 건지 몰라도 더는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 다짐하지 않았는가.
멍청함은 과거로 족했다.
지켜야 할 게 늘어났고, 가족도 생겼다.
은호는 열린 문 안으로 들어오는 지혜를 보며 웃었다.
적의 모가지를 비틀려면 적을 만나야지.
“허락이 좀처럼 나지 않았나 봐요.”
“그 새끼가 가진 초능력이 워낙 까다로워서 그랬습니다. 겪어보셨잖습니까?”
“겪어봤죠. 목이 날아갈 뻔했으니까요.”
흑견은 아니라고 하지만, 분명히 권석현의 힘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준 건 흑견의 힘이었다.
“원래도 정신 나간 놈이었는데, 얼마나 더 정신이 나갔을까요? 기대되지 않아요?”
은호는 즐거움을 드러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면목이 없습니다. 면회까지 준비가 좀 걸렸습니다.”
“괜찮아요. 이번 일 말고도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아는데요. 충격적인 일이 좀 많잖아요.”
지혜는 은호가 얼마 전에 태호로부터 들은 환수, ‘하이프’를 언급한다는 걸 눈치챘다.
태호가 꺼낸 건, 충격 이외에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를 만큼 머리가 얼얼해지는 소리였다.
지혜는 아주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잠깐 흔들렸지만, 괜찮습니다.”
“그 일은 저한테 맡겨줘요. 대신 다른 일을 더 바쁘게 움직여 주시면 되겠죠?”
장난기가 은호의 목소리에 섞여 있었다.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말에 지혜는 가볍게 웃었다.
“제가 처리해야 하는 일이 더 많아서 뭔가 손해 보는 기분이긴 합니다.”
“국장님. 전 백수예요. 이 이상 바라는 건 욕심 아니에요?”
“제가 이토록 훌륭한 백수님을 알고 있어 무척 영광입니다.”
지혜 역시 맞장구쳐줬다.
은호는 저 말에 키득거리며 물었다.
“다른 건 잘 되어가나요?”
“물론입니다. 백수님 덕에 막혔던 부분이 아주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 정도예요?”
지혜는 그 물음에 뒤를 가리켰다.
“가면서 이야기할까요? 주변에 아무도 없습니다. 흑견한테 물어봐도 됩니다.”
“그렇게까지 안 해도 돼요. 믿으니까요.”
은호가 엄지를 올리자 지혜는 입꼬리를 올릴 뿐, 애써 웃음을 꾹 눌렸다.
속으로 본인이 국장이라는 말을 얼마나 반복했는지 몰랐다.
“백수님.”
“네, 국장님.”
“대체 왜 이렇게 환수 밀렵꾼과 정화자들이 잡히지 않는 건지, 한 번쯤 생각해 본 적 없습니까?”
“생각이야 많이 해봤죠.”
“어떤 걸 추측했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권력자랑 아주 끈끈히 연결되어 있겠죠.”
“맞습니다. 백수님 덕에 비로소 환수 관리국이 자유로워졌습니다. 아주 깊게 박혀 있던 썩은 뿌리가 뽑혔으니까.”
‘…환수 관리국이?’
마치 환수 관리국만 콕 집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다른 곳은 아닌 것처럼 이야기하시는데요?”
“네. 아닙니다.”
지혜는 너무도 단호히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올라오는 분노를 짓누르려 애써 입가에 미소를 그리는 것처럼 보였다.
“이 세상에서 돈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지혜는 안으로 들어가는 다른 문을 앞에 둔 채 은호를 지그시 쳐다보았다.
“없죠.”
은호는 대답하며 지혜의 행동을 바라보았다.
짧은 말이었지만, 그녀가 뭘 걱정하는지 알아차렸다.
이제부터 그 돈에 환장하는 놈들을 상대해야 하니, 각오는 됐냐.
그렇게 물어보고 있었으니까.
“국장님.”
은호는 말을 꺼내며 씩 웃었다.
“백수한테 남은 게 시간이에요.”
은호다운 소리에 지혜는 미리 받은 키를 이용해 문을 열었다.
삑.
문이 열리고 지혜는 안으로 손짓했다.
“들어가시죠.”
* * *
가지고 있는 초능력과 그 힘의 차이에 따라 머무르는 교도소가 다르다고 했다.
권석현은 그 중 독방으로 관리되고 있는 특별 교도소에 복역 중이며 지혜도 태호도 알려주지 않아 어떤 형벌을 받았는지 몰랐다.
은호는 석현을 마주하자마자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자신이 그 A라는 걸 정체를 알았을 때, 싸웠을 때, 쳐다보던 눈깔이 아니었다.
이빨 빠진 호랑이가 딱 이럴까.
“너, 사형선고 받았구나.”
은호가 가림막을 하나 두고 첫 마디를 내뱉었다.
이곳 법은 무척이나 강했고, 특히 초능력자한테 굉장히 엄격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저 한 나라가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모든 종이 보호종으로 지정된 환수를 건드린 것도 모자라 환수 관리국의 부국장 신분으로 범죄자와 잘도 놀아났고, 사람마저 죽이지 않았는가.
권석현과 손잡고 있던 녀석 중에 꽤 주요 직책으로 보이던 유예림을 손에 넣었으니 앞으로 죄가 늘어나면 늘어났지 빠져날 구멍은 존재하지 않았다.
“남은 쉽게 죽이고, 넌 죽기 싫고. 진짜 웃기다. 그렇지 않아?”
은호는 면회를 위해 마련된, 딱 하나만 있는 의자에 앉아 석현을 한껏 비웃었다.
늘 볼 때마다 잘 정돈됐던 그의 헝클어진 꼴이 너무도 잘 어울려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이 자리에 있어 보면 지금 이 엿같은 기분을 알 수 있을 텐데. 어때?”
“싫은데.”
은호는 턱을 괴며 석현의 몸에 주렁주렁 달린 구속구를 눈에 담았다.
두 손을 뒤로 해서 천장과 바닥과 얽힌 사슬이 꽤 빳빳하게 당겨진 상태였다.
“아니다, 내 예상보다 너무 잘 어울려서 뺏으면 미안하잖아. 마치 널 위한 자리 같은데. 처음부터 여기에 있지 그랬어. 네가 늦게 와서 너무 섭섭했겠다.”
한껏 비아냥거리는 그 소리에 이빨이 빠진 줄 알았던 석현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이 새끼가 진짜…….”
“권석현.”
하지만 지혜의 부름에 석현은 바로 꼬리를 말았다.
그녀는 손바닥으로 가림막에 손을 올렸다.
“무슨 말을 듣든, 넌 가만히 있어야지. 지금 네 목숨, 누가 쥐었는지 아직도 몰라? 넌 지금 여기서 내 손아귀에 죽어도 상관없다는 거 잊었나?”
단순한 협박이라 아니라는 건 지혜 주변에 풍겨오는 힘과 그녀를 바라보는 석현의 표정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정말로 지혜가 석현의 목숨줄을 잡고 있다는 사실을.
“그래. 잘해야지. 네 목숨이 지금 위에 간당간당하게 걸려서 언제 떨어질지 모르잖아?”
은호는 손가락을 위로 올려 아래로 툭 떨어트렸다.
석현의 표정이 일그러지든 말든 은호는 즐거움을 담아 입을 놀렸다.
“솔직히 너무 신기한 거 있잖아. 그 입이 간지러워서 어떻게 참았을까. 날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밤에 잠이 왔으려나 모르겠네.”
“…네 정체 말인가?”
“맞아. 네가 여기 있다는 소문이 쫙 퍼졌으니, 누구든 왔을 거잖아. 너랑 엮인 놈들이 초조해서 어떻게 가만히 있었겠어?”
“그래서 내가 알려주면? 그게 무슨 이득이 있지? 뭐든 내뱉으면 끝이라는 걸 내가 몰라?”
석현은 구속구로 구부러진 허리를 바로 펴지 못했기에 고개만 올렸다.
놈의 짙어진 미소를 보자 은호는 저 맛이 참 반가웠다.
이제야 석현답게 느껴졌다.
“그렇지. 너한테 돌아오는 이득은 없어. 오히려 네가 입을 다물어야 몸값이 커지겠지. 적어도 지금은 말이야.”
이제는 아니었다.
“세 치 혀로 날 구슬리려고 왔나 본데, 내가 원하는 건 하나야.”
석현은 지혜를 바라보았다.
원하는 건 모두 지혜가 쥐고 있는 걸 모르겠는가.
“이지혜. 너라면 내 사형을 막을 수 있잖아? 저 새끼가 나불거리는 게 아니라, 네가 나와 협상해야지.”
지혜는 우쭐거리는 석현의 말에 걸어와 입꼬리를 올렸다.
“권석현. 입 닥치고 들어. 건방 떨지 말고.”
“네가 저놈한테 양보했다는 건가? 그렇게 저놈이 가진 게 많아서 나와 협상에서 저놈을 올리는 걸까? 아니면 날 피하는…….”
“그놈들이 널 죽일 거야.”
은호가 입을 열었다.
갑작스럽게 던진 말치고 너무도 기가 막혀 석현은 웃었다.
이내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입꼬리를 올렸다.
“네놈이 방금 내뱉은 소리를 까먹을 만큼 꽤 급한 모양이야. 여기가 어디인지 몰라? 왜? 아무리 생각해도 네 정체가 탄로 날까 봐 두려워? 걱정하지 마. 내가 아주 잘 숨기고 있으니까.”
“유예림이 잡혔으니까.”
은호는 이름을 꺼내며 석현의 표정을 살폈다.
이름을 듣자마자 눈빛이 아주 살짝 변했다.
아는 사이라는 걸 확인한 뒤에야 은호는 다시 말을 꺼냈다.
“놈들이 유예림을 살리려고 호송 중에 습격해서 데려갔어. 환수 관리국이 아니라, 초능력 관리국이 데려가는 중에 말이야.”
“뭘 말하고 싶은 거지?”
“왜 머리 안 돌아가는 척을 할까? 환수 관리국에 네가 사람을 열심히 심었으니까 빤히 알고 있을 거고, 초능력 관리국에도 누군가 심은 사람이 있다는 소리잖아.”
“그래서?”
“여기를 초능력 관리국에서 꽤 자주 드나든다고 들었어. 그리고 처음에 내가 뭐라고 말했는지 기억해?”
기억력을 시험하는 듯한 태도에 석현은 불쾌함을 드러냈지만,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생글생글 웃고 있는 저놈은 처음 이렇게 말했다.
유예림이 잡혔다고.
그걸 떠올리자마자 석현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래, 권석현. 넌 유예림과 아주 긴밀한 사이였을 거고, 유예림이 다시 잡힌 이상 놈들은 내 정체를 알아내는 것보다 본인들에 대해 알고 있는 널 먼저 입막음하려고 하겠지. 그놈들도 유예림과 비교한다면 상대적으로 네 입이 가벼울 걸 알고 있으니까.”
이곳에서 제아무리 정보를 얻는다고 해도 시시각각 변하는 밖의 상황을 어떻게 알까.
“솔직히 고민 좀 했어. 너는 죽어 마땅하고, 적이 널 죽이면 그때, 적의 뒤통수를 치는 게 빠르잖아. 거꾸로 말하자면 네가 이곳에서 죽어야 적이 얼마만큼 손을 뻗었는지 알 수 있는 지표로 작용한다는 거야.”
은호의 말을 듣다 말고 석현은 비웃음을 터트렸다.
“그 연극, 재미있나?”
“연극이라니?”
“정말 그랬다면, 날 놈들 손에 죽도록 내버려 두는 걸 선택했을 텐데. 아니, 진작 놈들이 날 죽였겠지. 사형을 피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확실한 계약서가 없다면 내 입은 열리지 않아. 알아들었으면 얌전히 기어서 가져와.”
석현은 은호와 지혜를 가소롭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이곳에 있더니 농담이 늘었네? 서은호 씨, 저놈한테 현실을 보여주시죠.”
지혜의 재촉에 은호는 휴대전화를 가방에서 꺼냈다.
유예림의 얼굴이 찍힌 동영상이었다.
<…뭐? 누구? 아, 권석현?>
얼굴과 목소리를 듣자마자 석현의 미간에 힘이 들어갔다.
<친밀한 관계였지. 돈을 꽤 잘 퍼줬거든. 얼마나 많은 환수를 팔아치웠는지 다 말해줄 수 있는데.>
예림은 그 뒤로 환수의 종류를 하나씩 말을 꺼냈다.
환수가 그녀의 입에서 나오면 나올수록 석현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은호는 예림이 지쳐서 짜증을 부리는 곳에서 동영상을 멈췄다.
“봤지? 유예림이 다 말했어. 왜겠어? 환수 관리국 내부에 조직원이 있다고 확신했고, 널 빨리 치울 수 있게 도와줬으니 이걸 보고 자신 좀 살려달라고 비는 거잖아. 망설임도 없이 널 팔아치운 거야.”
말과 함께 은호는 휴대전화를 흔들었다.
아무리 부정하려고 해도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머리 굴리지 마, 권석현. 네가 심은 새끼들은 내가 다 뽑아버렸으니까.”
지혜는 석현의 눈빛을 보고 알아차렸다.
그래도 몇 년간 보고 지냈는데 표정에서 드러나는 감정 하나도 모르겠는가.
“들었지? 유예림도 멍청한 선택을 한 거야. 국장님이 얼마나 유능하신 분인지 몰랐던 거지. 어쨌든, 원래라면 네가 생각한 것처럼 깔끔하게 죽는 게 맞는데, 한 단체가 널 살렸네?”
은호는 레드독과 관련된 영상을 보여주었다.
“애들이 환수 밀렵꾼들의 비밀 장소를 터트려버렸어. 그래서 지금 좀 바빠. 너 하나 죽이는 건 일도 아니니, 비밀 장소가 털리는 일을 수습하는 게 먼저잖아?”
은호는 휴대전화를 엎고는 활짝 웃었다.
“이제 네 처지가 이해돼, 권석현? 환수 관리국의 부국장도 아닌 넌 이제 아무것도 아니란 소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