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136)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136화(136/302)
136화. 반갑지? 난 반가운데(2)
뼈를 때리는 은호의 말에 석현은 일그러지는 표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유예림이 다 털어놓았다.
레드독이 환수 밀렵꾼들의 비밀 장소를 털어놔 너는 안중에도 없다.
이 사실이 얼마나 충격일까.
석현뿐만 아니라 실제 조직원인 예림도 죽어야 하지만, 저 조직의 대장이 선뜻 자신에게 예림을 넘겼다.
어디 한 번 원하는 대로 신나게 털어보라는 소리였다.
‘그 조직에서는 절대로 예림을 죽이지 않을 거야. 아주 잘 길러온 개라고 생각할 테니까.’
석현의 정보를 잘도 나불거리던 예림은 조직과 관련된 일에는 털끝 하나도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걸 알고 던져준 미끼였다.
조직의 대장은 일부러 자신들이 움직이길 유도하고 있었다.
예림이 계속 입을 열지 않는다면 누굴 찾아가게 되겠는가.
‘…권석현이지.’
은호는 석현을 보며 입꼬리를 더 올렸다.
석현을 찾아간 흔적만 보아도, 그 흔적을 통해 쫓아올 발자취만 보아도 조직의 대장은 누굴 상대해야 하는지 멀리서 지켜볼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석현은 달랐다.
철저하게 외부인이었다.
죽이면 죽였지, 절대로 내버려 둘 수 없는 자일 테니까.
“네가 감옥에 있는 그 순간부터 넌 이미 졌어. 질 수밖에 없는 싸움으로 저울질하려고 하다니. 너도 참 대단하다.”
은호는 석현을 참 재미있게 바라보았다.
아직 감옥에 있다는 걸 이해하지 못한 걸까.
아니면 하고 싶지 않은 걸까.
“여기 있더니 물러터졌네.”
지혜는 석현을 말로 찔렀다.
너무도 한심스럽다는 눈빛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형식적이라도 환수 밀렵꾼을 쫓으며 수없이 봤을 상황이잖아? 값어치 없는 자는 죽이고, 통제되지 않은 자 역시 죽인다는 걸. 넌 둘 다 해당한다는 걸 알았어야지.”
지혜는 흔들리는 석현의 눈동자와 마주했다.
저절로 미소가 감도는 상황일 수가 없었다.
“즉, 네가 가진 정보 역시 값어치가 없다는 소리지.”
“그럴 리가 없어!”
지혜가 못을 박은 소리에 석현은 발끈했다.
자신이 얼마나 큰 정보를 손에 넣었는가.
서은호.
저 쓰레기가 초능력자 주제에 힘을 숨겼다는 걸 알고 있으며 환수를 부릴 수 있는, 말도 안 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아, 그거?”
은호는 대수롭지도 않은 듯 입에 올렸다.
상체를 살짝 앞으로 숙여 가엾다는 듯 바라보았다.
“해봐. 비웃음만 당할 텐데?”
석현이 많은 정보를 손에 넣었음에도 은호는 당당했다.
자신과 관련된 정보가 하나같이 꽤 맛이 좋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맛만 좋으면 뭘 하겠는가.
신뢰성이 없는데.
석현이 가진 그 모든 것들은 자신이 초능력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무너졌다.
이게 어떻게 탐스러운 정보가 될까.
“그럼에도 이렇게 찾아온 건, 널 거치는 게 아주 빠르기 때문이야.”
은호는 끈 하나를 석현에게 던졌다.
희망을 얻을 수 있게, 그래도 ‘내가 필요하구나’라는 걸 느끼도록.
“그리고 적은 자존심이 상당히 높은 네가 국장님에게는 정보를 털어놓지 않을 거라고 생각할 테니까.”
누구보다 환수 관리국의 국장이 되길 원했던 석현이, 국장이 되고자 별 지랄을 다 떨었던 그 권석현이 이지혜를 위해 돕는다니.
잠깐 생각해도 어울리지 않아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그렇잖아. 우리한테 정보를 털어놓는 건 죽기보다 더 싫을 테니까.”
“그걸 알면서 왜 찾아왔지?”
“이런 꼴 보려고.”
은호는 입꼬리를 올렸다.
빠드득.
석현이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한테 협력해, 권석현.”
“…이 미친 새끼. 넌 여전히 미쳤구나!”
석현이 온몸을 흔들며 은호에게 다가가려 애를 썼다.
하지만 그의 몸을 묶은 사슬이 더 빳빳하게 변할 뿐이었다.
“그냥 주요 정보만 털어놓으면 돼. 간단하잖아? 안 그러면 환수 밀렵꾼이 저질렀던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죽든지.”
“뭐?”
“놈들이 추적을 피해 익명으로 된 소포를 날리고 있어. 그 소포 안에는 네가 저질렀던 일이 하나씩 담겨 있더라고. 적은 나한테 널 죽여달라고 계속 빌고 있더라.”
지혜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짧게 숨을 내쉰 그녀는 너무 나약해진 석현에게 강하게 경고했다.
“내가 이거 터트리면 누구도 네 목숨을 구할 순 없어. 권석현, 그 목숨이라도 유지하고 싶다면 빌어야지.”
저 모든 말이 거짓이라고 주장하기에는 밀려드는 정보가 많았다.
석현은 흔들렸다.
환수 밀렵꾼들이 자신을 죽이려면 죄를 더 가중하는 일밖에 없는데, 이런 자신이라도 쓸모 있는 구석이라면 하나밖에 없었다.
이미 벌어진 모든 사건의 범인이 되는 일이었다.
‘…고작 내가 뒷정리를 당하는 게 끝이라고? 내가? 내 인생이?’
생각에 젖어가는 석현을 향해 은호가 놀란 듯 말을 꺼냈다.
“너 진짜 감이 죽었구나.”
“또… 무슨 소리야?”
“준비된 의자는 하나야.”
은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 하나를 가리켰다.
“왜 하나일까?”
얄밉게 묻는 저 물음에 석현은 일그러진 얼굴을 바로 잡지 못했다.
쏟아지는 게 많았다.
또 휘둘려지는 느낌에 꽉 깨문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의자가 하나인 이유를 떠올리니 속마저 뒤집힐 것 같았다.
“……이곳에.”
말을 꺼낼 때마다 입안이 너무도 쓰디써 석현은 괴로울 정도였다.
대체 얼마나 멀리 본 건지, 이제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서은호가 압도적으로 느껴졌다.
“…너는 안 온 거니까.”
내뱉은 말과 함께 짙은 패배감이 석현의 눈꼬리에 걸렸다.
졌다.
정말로 서은호, 저 새끼한테 지고 말았다.
“맞아. 날 말하면 넌 더욱 미친놈이 되는 거야. 아무 죄도 없는 일반 시민을 물고 늘어지는 병신까지 되는 거지. 이러면 찾아오던 사람도 도망치겠네?”
은호는 눈웃음을 지었다.
적은 자신을 몰랐다.
자신에게 흑견이 있는지 모를 테고, 그 힘으로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는 사실 역시 예측할 수 없었다.
공식적으로 유예림을 체포한 건 이지혜였다.
마찬가지로 권석현을 체포한 것도 이지혜였다.
그런 그녀가 석현을 찾아가는 건 너무도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널 누가 믿어줄까?”
다 잃어버렸고, 가진 것도 없는 석현이 미친 소리까지 하면 뭐가 되겠는가.
그냥 미친놈이었다.
“아무도 없어. 그래서 네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야.”
싹둑.
은호는 석현이 가진 희망이라는 끈을 거침없이 잘라버렸다.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은 아주 빨리 무너지게 되어 있었다.
“걱정하지 마, 권석현. 나는 네가 빨리 가는 걸 원하지 않아. 살려줄게.”
은호는 축 늘어진 석현의 어깨를 보며 다독여주었다.
희망을 잃어버린 존재는 아주 작은 말에도 움직인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니 이제 지껄여봐.”
은호는 날카로운 미소를 내보이며 석현에게 부드러이 속삭였다.
마치 악마의 속삭임 같았다.
* * *
“…서은호 씨.”
“네?”
밖으로 나와 하늘을 보며 길게 기지개를 켜던 은호는 지혜를 보았다.
“진짜 저놈을 살려둘 생각입니까?”
“제가요?”
은호가 그 말에 웃음을 흘렸다.
마치 처음 듣는 것처럼 반응했기에 지혜는 머리카락을 넘기다 말고 손이 느려졌다.
“놈한테 살려준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게는 말했지만, 사실 살리고 말고는 제가 결정하는 게 아니잖아요. 하지만 이용할 가치는 있죠?”
“이용할 가치는 확실히 존재합니다. 결국, 놈들은 저놈을 죽이려 들 테니까요.”
지혜는 은호가 원하는 방향이 궁금했다.
대외적으로 자신이 석현을 잡았다고 알려졌지만, 그를 잡은 건 은호였다.
당연히 의견이 반영되어야 했다.
“저놈한테 제 볼일은 다 끝났어요. 되도록 오래 살아줬으면 하는데, 그건 제 바람일 뿐이니까요. 국장님의 바람만이 남지 않나 싶어요.”
은호는 뒤를 돌아 지혜를 보았다.
그녀는 과거 초능력 관리국의 부국장이었다.
잘 다니고 있는 그곳을 나와 환수 관리국으로 오게 된 이유가 궁금했다.
하지만 묻지 않았다. 그건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니까.
“그렇죠?”
그냥 모든 궁금증을 눌러 간단하게 말했다.
그저 추임새 정도로만 알아줬으면 했는데, 지혜의 입꼬리가 아주 살짝 올라갔다.
“궁금하십니까?”
“그렇게 물어보면 반칙이에요. 제가 호기심이 많다는 걸 최근에 알게 돼서 곤란해요.”
“흑견이 옆에 있나요?”
지혜의 물음에 은호는 잠깐 머뭇거린 뒤 고개를 끄덕였다.
“10년 전, 흑견이 아이를 죽였다는 사실 하나로 사살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이를 시행한 건 환수 관리국이었고, 그 오해를 받게 한 놈들은 정화자들입니다.”
“…알아요.”
느닷없이 나온 저 말에 은호는 불편함을 드러냈다.
흑견의 새끼를 인질로 잡았다.
그래서 저항하지 못했다고 태호가 말하지 않았는가.
지금 멍멍이 형님이 그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라고 할 수 있었다.
“범인은 정화자들이지만, 놈들은 붙잡히지 않았습니다. 범인이라 알려진 자는, 정화자에게 돈을 받아 흑견이 아이를 죽였다고 거짓을 자백한 한 남자였습니다.”
“…네?”
은호는 귀를 의심했다.
범인이 잡혔다고 들었는데, 반쪽짜리였을 뿐이었다.
“그렇게 사건이 덮였습니다. 그래서 소장님께서 환수 관리국을 그렇게 미워하셨던 겁니다. 해결도 하지 못하고 끝났으니까요.”
“…형은, 그런 말을 해주지 않았어요.”
“말할 수 없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소장님이 아니니까요.”
지혜는 말을 아꼈다.
태호의 마음까지 자신이 어떻게 알까.
“이전에 권석현이 흑견을 보고 난 뒤, 제게 흑견과 관련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국장님은 정말 실수로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합니까?
지혜는 그때 석현이 꺼냈던 말을 떠올린 뒤 입을 열었다.
“그놈답지 않게 여러 가지를 물어보더군요. 흑견 사건의 범인이라고 확정된 자를 더 파헤쳐보고 싶은 모양이었습니다.”
“갑자기요?”
“그래서 수상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 바람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지금 놈이 감옥에 있어서요?”
“아뇨. 그 범인은 자살했으니까요.”
“…….”
은호는 답답함이 밀려왔다.
죽었다니.
아직 흑견은 무리가 살아 있는지도 몰랐는데, 거짓 주장을 한 그놈은 죽어버렸다니.
“서은호 씨. 제가 왜 이런 말을 꺼내는지 아십니까?”
“사실, 모르겠어요. 갑작스럽다는 생각이 들긴 해요.”
“이 사건의 진실을 좇던 사람 하나가 죽었습니다.”
지혜는 말을 끝낸 뒤, 숨을 천천히 들이마셨다.
늘 굳건하던 그녀의 눈빛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제게 무척 소중한 사람이었습니다.”
은호는 그 사람이 누구냐고 물을 수 없었다.
이렇게 말을 꺼내는 것만으로도 지혜가 얼마나 큰 다짐을 했는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서은호 씨가 제게 와주셨을 때, 정말 기뻤습니다.”
지혜는 울음을 참는 듯한 표정으로 애써 미소를 지었다.
“유감…입니다.”
은호는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처음 흑견을 봤을 때, 생기있고 굳건하던 그 모습은 이 이유 때문이었을까.
“서은호 씨. 저는 그 일과 관련된 모든 놈들을 끌어내릴 겁니다. 소중했던 그 사람은, 아니, 그분은 제게 환수가 얼마나 평범한 존재인지를 알려줬으니까요.”
평범함.
쉽게 나오기 어려운 말이었다.
하지만 환수는 평범했다.
그냥 사람과 생김새가 다른 또 다른 존재였으니까.
“훌륭한 분이셨네요.”
“맞습니다. 어쨌든, 저놈한테 얻은 정보로 유예림의 입을 열겠습니다.”
지혜는 다시 원래대로 냉정하면서도 굳건함이 섞인 표정을 지었다.
“그럼, 제가 레드독의 뒤를 캘게요. 환수와 관련되어 있으니까요.”
“…아차, 그 이야기를 하지 못했네요.”
은호가 내뱉은 ‘레드독’이라는 말에 지혜는 손을 머리에 얹으며 눈을 살짝 가늘게 떴다.
내 정신 좀 봐라.
중얼거리다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어떤 이야기요?”
은호는 또 무슨 일인가 싶어 살짝 긴장하며 그녀를 보았다.
“아까 서은호 씨가 놈에게 말했던 환수 밀렵꾼의 비밀 장소 말입니다.”
“아, 거기요?”
“거기 이미 털었습니다.”
너무도 상쾌한 웃음이 지혜의 말과 함께 튀어나왔다.
“형이… 말을 안 해줬는데요?”
“자세한 사항은 저한테 듣겠습니까? 소장님한테 듣겠습니까?”
지혜의 물음에 은호는 기가 찼다.
“아니, 왜 이렇게 빨라요? 너무 빠른 거 아니에요?”
“원래 이랬어야 했습니다. 이제야 제자리를 찾아갔을 뿐입니다.”
지혜는 후련하게 얼굴로 하늘을 잠깐 바라보았다.
적의 꼬리를 붙잡았다.
이제 환수 관리국은 과거와 달랐다.
환수와 사람을 위해 세워진 이 조직은 이제 더 자유롭게 나아갈 수 있었다.
그게 얼마나 기쁜지 몰랐다.
“제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지켜봐 주신다면 무척 기쁠 겁니다, 백수님.”
지혜의 입꼬리가 높이 올라갔다.
* * *
“…아까 말이야, 국장님하고 멍멍이 형님과 관련된 이야기를 했어.”
은호는 태호의 방으로 가기 위해 연구소 복도를 걷다 기어코 사실을 알렸다.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흑견의 발걸음이 아주 잠깐 느려졌다.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러니 신경 쓰지 마라.”
“거짓말하지 마, 멍멍이 형님.”
은호는 흑견을 처음 봤을 때, 자신에게 꺼낸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너희가 죽였다.
“다 기억하고 있잖아.”
화가 난 듯한 목소리에 흑견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미 지나간 일이다. 과거를 붙잡는다고 무엇이 달라지는가?”
“달라지지. 앞으로 많은 게 달라져.”
범인을 붙잡는다면, 다른 흑견의 행방을 알 수 있을지도 몰랐다.
새끼였음에도 기억할 만큼 끔찍한 그 기억에서 벗어날 수도 있었다.
왜 달라지지 않을까.
“인간이 오기 전 일이다. 신경 쓰지 마라.”
“내가 어떻게 신경을 안 써? 멍멍이 형님 일인데.”
흑견은 그 말에 은호를 빤히 보았다.
은호는 늘 직진만 아는 멍청한 인간이었다.
어떤 존재가 오든 그 직진은 똑같았다.
왜 그럴까.
새삼스럽게 그 궁금증이 갑자기 커졌다.
“인간.”
“응?”
“인간은 왜 그렇게 멍청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