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137)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137화(137/302)
137화. 반갑지? 난 반가운데(3)
“…?”
은호는 흑견의 말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다.
느닷없이 왜 멍청하냐니.
눈을 몇 번이나 깜박거렸는지 몰랐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냥 궁금해졌다.”
“내가 왜 멍청한지?”
“그렇다.”
“멍멍이 형님, 잘 들어. 나는 굉장히…….”
“처음 나를 봤을 때, 왜 무서워하지 않았는가?”
“무서워해야 해?”
“그렇다.”
지금까지 그러지 않았던 존재는 거의 드물었다.
하물며 은호는 인간이었다.
“이상하네. 나는 멍멍이 형님이 진짜 아름다웠는데? 나를 구해줬다는 것도 알았고. 그래서 만지고 싶었어.”
“…….”
흑견은 그 대답에 다른 하나를 알아차렸다.
“인간은 역시 겁대가리가 없다.”
멍청하고, 겁대가리도 없었다.
마치 뒤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무언가 생각이 이어지자 흑견의 귀가 꿈틀거렸다.
“…인간.”
“왜 또? 이번에는 뭘 말하려고?”
가늘어진 눈을 한 은호를 보자 흑견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리가 없지.
“이제 움직이거라. 그 인간한테 볼일 있는 거 아니었나.”
“멍멍이 형님, 오늘 좀 이상하네. 아니다, 그럴 수 있지.”
동족 이야기를 듣고도 제정신일 수 없었다.
어떻게 맨정신일 수 있을까.
은호는 흑견의 볼을 문질러준 뒤에야 앞으로 당당하게 나아갔다.
그의 뒷모습을 빤히 보던 흑견은 기가 찬웃음을 흘렸다.
이해심이 깊다는 것처럼 행동하는 모습이 참 아니꼬웠다.
따악.
어둠으로 뒤통수를 때려줬다.
“악!”
아프지도 않을 텐데 기어코 비명을 지르며 뒤를 쳐다보는 은호의 시선을 슬그머니 피한 채 흑견은 꼬리를 흔들었다.
이게 인간이었다.
* * *
“형.”
은호는 태호를 찾아왔다.
“네가 올 줄 알았지. 그럴 줄 알았어.”
막 나가려던 참인지 가운을 벗고 외투를 입고 있었다.
“형, 어디 나가요?”
“이지혜 국장한테 다 들은 거 아니야?”
흘러나온 태호의 말에 은호는 가볍게 헛웃음을 내뱉었다.
역시 다 알고 있었다.
“형 좀 치사한데요? 다 알고 왜 모르는 척했어요?”
“모르는 척이 아니라 그때, 은호 씨가 없었는데?”
“그때가 언제인데요?”
“어제 새벽…이었나. 그랬을 거야.”
“아, 새벽이요?”
“어제 우리가 골머리가 아팠을 때, 은호 씨는 꿈나라 갔을 테고, 오늘 전해주려고 하니까, 뭐더라.”
태호가 휴대전화를 꺼내자 은호는 금세 바보처럼 웃었다.
하하하.
어색한 웃음마저 흘러나왔다.
“‘형, 나 감옥 가요’하고 참 짧게도 보냈지? 그래서 내가 놀라서 전화를 무려 8번이나 했는데, 받지도 않았어. 그렇지, 은호 씨?”
살짝 매서워진 태호의 눈꼬리에 은호는 눈치를 한 번 살폈다.
“…급하게 쳤어요. 안에는 그, 데이터는 물론 통화도 안 켜진다고 하더라고요.”
“됐어. 내가 그렇게 쪼잔한 사람도 아니고.”
“충분히 쪼잔한 것 같기도 하고.”
웅얼거리는 은호의 말에 태호는 그를 바라보았다. 바로 웅얼거림이 멈췄다.
진짜 막냇동생이 있으면 딱 저러지 않을까 싶었다.
하는 말마다 심기를 참 잘도 건드렸다.
“그래서 은호 씨도 같이 갈 거야?”
“구출된 환수들을 인도받으러 가는 길이에요?”
“맞아. 지금 그쪽으로 갈 거거든. 빠르면 빠를수록 좋으니까.”
“그런 일이라면 당연히 가야죠.”
은호는 고민 없이 대답했다.
“그럼, 그 존재 일은 뒤로 미루는 건가?”
흑견이 모습을 드러내며 묻자 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살짝만 미루는 거지, 그 친구를 만나러 가는 건 변하지 않아.”
오늘, 하이프를 만나기로 결심했다.
지금 하이프가 무슨 일을 꾸미는지 모르는 이상, 이 역시 빠르면 빠를수록 좋았으니까.
다만, 급한 일이 생겨버렸으니 살짝 둘러 갈 뿐이었다.
“많은 친구를 옮길 때 진정제를 써야 한대. 저항이 심해 멀리서밖에 맞출 수 없을 텐데, 이게 공격처럼 느껴질 수 있잖아? 이런 사실을 들었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겠어?”
이세계로 오면서 가장 변한 거라고 한다면 바로 자신 그 자체였다.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어 작은 일조차 수없이 외면해왔다.
지나가다가 아이가 웃으며 ‘안녕하세요’하고 인사했을 때,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바로 앞에서 누군가 카드를 흘렸음에도 모르는 척했다.
귀찮았고, 목소리를 낼 의지조차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었다.
다른 삶을 살고 싶었고, 여유가 생기자 작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급하지 않고 천천히 걸어가고 싶었다.
그래서 더 환수들이 눈에 밟히는 걸지도 몰랐다.
지금도 그랬다. 연구소로 그냥 오는 것과 마취총을 맞고 오는 건 시작이 다르다고 생각하니 주저 없이 목소리가 나와버렸다.
“잠시만, 은호 씨. 그 친구라니?”
태호가 묻자 은호는 잠깐 망설이다가 웃음기를 살짝 지웠다.
“하이프를 만나려고요.”
“…그게 무슨 말이야?”
“차에 탄 뒤에 이야기할까요?”
* * *
“…그러니까, 은호 씨 혼자 가서, 아니다, 다 같이 가서 하이프를 말려본다는 거지?”
여기서 다 같이는 환수를 말한다는 걸 알기에 태호는 룸미러로 시선을 살짝 움직였다.
“맞아요. 혼자가 아니라 같이죠.”
은호가 아주 좋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태호 상당히 긍정적인 방향으로 입을 열었다.
“괜찮은…….”
“아뇨. 무모합니다.”
가을이 딱 잘라 이야기했다.
안경 너머로 드러난 감정은 탄식에 가까웠다.
“그렇게 보일 수 있는데, 사실 이게 달라요.”
“그래, 가을 씨. 이게 좀 달라.”
자동 운전으로 바뀐 뒤, 태호는 운전대에서 살짝 손을 떼어냈다.
“뭐가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무모합니다.”
가을은 한 번 숨을 내쉰 뒤에 다시 말을 꺼냈다.
“은호 씨가 어떤 힘을 가졌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그래서야. 이건 우리가 죽어라 해도 할 수 없는 부분이잖아. 게다가 하이프를 진정시켜야 할 이유가 명백히 존재해.”
“맞아요. 존재하죠.”
은호는 태호가 아주 잘 말할 수 있게 맞장구치며 레드카펫을 깔았다.
“환수가 약자라는 이미지를 가졌던 건 지금까지 늘 피해자였기 때문이야. 그런데 하이프의 행동으로 그 이미지가 깨져버린다면 가장 큰 피해를 당하는 건 애석하게도 환수들이야.”
“하지만 하이프라는 환수는 정신을 조종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말하기는 했지.”
태호는 압박감을 느끼며 애써 웃었다.
“만약에 은호 씨가 조종당한다면 어떻게 할 겁니까?”
“……!”
허를 찌른 듯한 가을의 물음에 태호의 눈이 커졌다.
솔직히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야 은호가 워낙 철부지 같아서 그렇지 강했다.
얼마 전에 정화자들을 잡았을 때, 은호가 놈들을 수확해야 하는 무처럼 땅에다가 묻지 않았는가.
그럼 다른 일은 어떤가.
유예림 사건도 은호가 개입해 싹 쓸어버렸다. 기어코 그녀를 잡아 오기까지 했다.
“와…….”
태호가 놀라며 은호를 보았다.
만약에 은호가 조종당한다면 그보다 더 끔찍한 일이 어디에 있을까.
“아니 형. 그렇게 보면 안 되는 거죠.”
아까 합의했잖아요.
은호가 눈빛을 줬지만, 태호는 시선을 흘리며 애써 헛기침을 내뱉었다.
“형. 가을 씨. 제가 생각 없이 행동하는 것처럼 보여도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거 이제 알고 있잖아요. 당연히 해결책이 있죠. 늘 염두에 둬요.”
“아뇨. 생각 없이 행동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가을이 딱 잘라 말하자 은호는 아주 살짝 주춤거렸다.
“아, 아니, 가을 씨. 진짜 그렇게 절 보고 있었어요? 저를요?”
“그렇습니다. 짧은 기간치고 상당히 많은 입원한 횟수를 보면 그런 통계가 내려져도 할 말이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에이, 그 정도는 고려해야죠. 환수들에게 전 여전히 사람1일 테니까요. 아, 갑자기 끼어든 이상한 인간일 수도 있고요.”
느닷없이 환수들의 삶에 끼어든 건 자신이었다. 그러니 이 역시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그 거리가 너무 가깝습니다. 주의하는 게 좋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은호 씨는 사람이니까요.”
가을의 충고에 은호는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시기와 질투 같은 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물론, 비꼬는 것 역시 없었다.
은호는 가을이 뭘 걱정하는지 알았다.
동물도 위험한데, 환수는 그보다 더 큰 힘을 가지고 있는 존재였다.
“전 그래도 가까워질래요. 그러고 싶어요.”
“부럽다.”
태호가 툭 하고 던진 말에 가을이 쳐다보자 그는 당연하다는 듯 말을 꺼냈다.
“아니, 아무나 못 하는 거잖아?”
“맞습니다. 아무나 못 하는 겁니다. 아무나 못 하기에 은호 씨는 본인을 더 아껴줘야 합니다. 연구소를 위해, 그리고 은호 씨 본인을 위해서요. 본인을 아끼는 게 그렇게 힘이 듭니까?”
가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똑똑한 사람은 대부분 미쳐있다는 말이 맞다고 증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연구소에는 워낙 미친놈들이 많았다.
당장 옆에 있는 태호도 정상으로 보이나 웬만큼 돌아 있었다.
은호가 그 부분을 보지 못한 거지, 이곳에 있는 환수들의 상태를 하루마다 모두 다 파악할 만큼 미쳐있었다.
은호는 다른 줄 알았는데, 똑같았다.
아니, 저건 더했다.
“솔직히 챙긴 적이 없는 것 같아서 힘들긴 해요.”
은호는 대답하며 낯선 느낌에 괜히 멋쩍었다.
몇 번을 생각해도 자신은 꽤 유능했다고 생각했다.
이세계에 오고 대부분 내려놔서 그렇지, 이런 사람은 아니었다.
‘아니지. 원래 이랬는데 이러지 않으려고 그렇게 나를 억눌렀던 거겠지.’
원래 세계에서 자신을 이용하려는 사람이 참 많았다.
태호와 가을도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달랐다.
뭐가 다른 건지 몰라도 기분이 좋았다.
“…뭐야, 진짜야? 그랬던 거야?”
태호가 본인의 머리카락을 살짝 쥐었다.
눈꼬리가 위로 올라가자 은호는 키득거렸다.
“어떻게 챙기는지 몰라서 그랬어요. 진짜요. 좀 더 신경 쓸게요.”
“신뢰가 가지 않는 말이라는 건 아십니까?”
가을은 미간을 꾹 눌렀다.
이렇게 본인 관리가 안 되는 사람일 줄이야.
“은호 씨. 아니, 은호야.”
태호는 조금 더 은호를 편안하게 불렀다.
“네, 형.”
“한 대만 콱 때려도 될까?”
“그러면 아프잖아요.”
“정신 차리라고 하는 거지.”
“이번에는 걱정하지 말아요. 폭시가 함께 가거든요. 폭시가 어떤 힘을 가졌는지 알잖아요.”
은호는 뒷자리에서 등받이에 깊게 기대어 우쭐거렸다.
“알아도 안심이 안 되네. 가을 씨 안 되겠다. 이번 일 끝나면 특별 과외라도 해야겠어.”
“솔직히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어떻게 살아오신 겁니까.”
“…모르겠네요. 어떻게 살아왔는지, 진짜 모르겠어요.”
은호의 눈빛이 깊어졌다.
태호와 가을은 서로를 슬쩍 바라보았다.
기억, 잃었잖아요.
맞네.
깜박하고 있었다.
“아, 이제 다 와 가죠?”
은호는 두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채로 태블릿을 꺼냈다.
도착하기 전까지 하이프가 어디에 있는지 추적해둬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한 10분 남았나. 그럴걸?”
“정확히 8분 23초 남았습니다.”
태호와 가을의 대답을 들으며 태블릿의 결과를 기다리다 말고 눈을 의심했다.
《추적에 소요되는 시간은 10분입니다.》
“……?”
이 근방에 하이프가 있었다.
왜.
은호는 그 말도 안 되는 사실을 생각해야만 했다.
“형.”
“왜?”
“환수 관리국에서 밀렵꾼들의 지점 여러 개를 털었잖아요. 지금 가는 곳은 그 지점 중 하나에요?”
“아니. 납치된 환수들을 따로 두는 것보다 같이 모여 있으면 더 진정된다고 국장한테 말해뒀어. 그래서 지금 한 번에 인도받으려고 가는 길이야. 그래야 스트레스가 덜해.”
“접선 장소는 다른 곳하고 공유한 적 있나요?”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은호의 물음을 듣던 가을은 이상함을 눈치챘다.
“하이프가 근처에 있어요.”
그 대답에 가을은 곰곰이 생각했고, 다시 자동차 핸들을 잡으려던 태호는 놀람을 금치 못했다.
“하이프가 이 근처에 있다고?”
“형. 저번에 대답을 못 들었는데. 하이프한테 조종당해서 동영상을 올린 사람 말이에요. 초능력에 당했는지 검사한다고 했는데, 혹시 환수한테 당해도 같은 결과가 나오나요?”
“아니. 초능력이 환수 때문에 발현됐지만, 다른 힘이야. 달라. 다르게 확인해야 해.”
“…미끼였네요.”
은호는 말을 던졌다.
입안에 쓴맛이 맴도는 것 같았다.
“하이프가 동영상을 올린 건, 우리의 움직임을 예상했다는 거예요. 환수 관리국이 움직일 걸 알았고, 연구소가 어떻게 나올 거라는 걸 파악한 모양이죠.”
“충분히 가능해.”
태호는 은호의 가정을 긍정했다.
환수는 지능이 상당히 높았다. 레드독의 주인이 환수라는 걸 알게 된 뒤로 더 넓게 볼 수 있었기에 당황하지 않고 차분히 주장을 펼쳤다.
“하이프가 가진 힘을 통해 접선 장소를 알아낸 모양이야. 지금 흐름을 보면 환수 관리국 쪽 사람 중 일부를 조종한 걸로 보여.”
“원하는 건 역시 환수들이겠네요.”
가을은 흘러내린 안경을 올리며 상황을 꿰뚫었다.
“그렇지. 달리 볼 건 없으니까.”
“덤으로 얹자면 환수 관리국과 연구소의 관계를 흔들 목적도 있어 보이지 않아요?”
은호의 물음에 가을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이프가 환수 관리국과 연구소를 믿지 못한다는 걸 알려주기도 합니다.”
“동시에 환수 연구소에 제가 있다는 걸 모른다는 뜻이고요.”
은호는 입꼬리를 올렸다.
이렇게 놀라게 했다면 자신도 그러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형. 가을 씨. 잠깐 갔다 올게요.”
“뭐?”
“뭘 원하는지 알았으니까, 그건 막아야죠. 잠깐만 부탁해요. 멍멍이 형님. 가자.”
은호는 흑견을 재촉했고, 곧바로 그림자로 빨려들어갔다.
* * *
눈을 감고, 수없이 얽힌 인간을 하나씩 마주했다.
그들이 해야 할 일을 알리고, 조종할 때마다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이미 헛구역질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몰랐다.
하지만 이건 무조건 해야만 했다.
그래야 원하던 모든 걸 이룰 수 있었다.
환수 밀렵꾼과 정화자. 이들은 서로 싸워야 했고, 여기에서 낀 환수 관리국과 자신들을 위한다고 존재하는 연구소라는 곳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나같이 역겹고, 역겨운 곳이었다.
“안녕, 친구야.”
불쑥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자 환수는 급히 눈을 떴다.
“반갑지?”
은호가 흔들리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하이프를 향해 씩 웃고 있었다.
“난 반가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