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138)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138화(138/302)
138화. 널 막아줄게
하이프는 급히 뒤로 물러났다.
대체 언제, 어떻게 온 건지 몰랐다.
온몸이 경직되는 기분에 휩싸이자 하이프의 몸을 두른, 망토 같던 푸른 불꽃이 바짝 일어났다.
“많이 놀랐어?”
은호는 그 자리에서 서서 하이프에게 물었다.
“사실 나도 많이 놀랐어.”
고민은 끝이 났고, 하이프의 복수가 정당하다고 해도 일단 멈춰 세워야 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폭주가 이렇게 흘러오니 어쩌겠는가.
더더욱 말릴 수밖에 없었다.
“네가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으니까.”
“…여길 어떻게 알았어?”
힘이 빠진 목소리가 하이프를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하이프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들킬 리가 없을 텐데.’
지금 환수 관리국과 연구소의 만남에 이상한 점은 전혀 없었다.
환수 관리국에서 환수 밀렵꾼과 정화자를 처단하고, 그놈들에게 피해를 당한 자신들은 연구소로 옮겨져 치료를 거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 과정을 이용하기로 했다.
연구소로 들어간 자신들이 어떻게 되는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곳으로 들어가는 것만큼은 막아야 했다.
“너를 만나고 싶어서 찾아왔어. 너하고 대화도 하고 싶고.”
“……그 새야?”
하이프는 갑자기 윈디드를 떠올렸다.
최근에 만났던 수상한 존재는 그뿐이었으니.
―작은 친구. 내가 물어볼 게 있는데 대답 하나만 해줄래?
“그 새마저 조종한 거야?”
하이프는 은호를 경멸했다.
분명 거대한 존재였다.
아주 맑은 눈을 가진 존재이기도 했다.
그런 존재까지 대체 어떻게 손을 뻗었을까.
이래서 인간은 역겨웠다. 원하는 건 죄다 손에 넣으려고 하는 역겨운 존재들이었다.
머리 위에 달린 링이 그렇게도 탐이 났던 걸까.
“아니. 나는 누구도 조종하지 못해. 그럴 힘도 없는걸.”
“거짓말.”
하이프는 입꼬리를 천천히 올렸다.
“친구는 정신을 건드릴 수 있잖아. 내가 그런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건 아마 나보다 친구가 더 잘 알지 않을까?”
“이미 너한테 홀린 애들을 내가 봤어. 그 목소리와 그 눈빛에 속아 너의 곁에 있었잖아?”
“친구야. 다른 건 몰라도 내 곁에 있어 주는 내 가족은 건드리지 마. 나한테 무척이나 소중한 이들이니까.”
아주 살짝 날이 선 은호의 반응에 하이프는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이내 눈을 가늘게 떴다.
저 인간의 약점은 인간이 조종하는 존재들이었다.
“그 소중하다는 존재들이나 껴안고 있지 왜 내 앞에 나타난 건데?”
“널 말리러 왔어.”
“이제는 내가 목표야? 그래, 그렇겠네.”
하이프가 고개를 올리며 은호를 빤히 보았고, 하이프 주변으로 푸른 불꽃 하나가 나타났다.
“내가 네 일에 방해되는 거지? 네 계획을 간파했으니까. 지금까지 계속 나를 쫓아다녔던 거야? 그날 이후로 계속 날 감시했던 거야?”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저 인간이 수많은 존재를 조종해 자신을 감시하지 않고서는 이렇게 자신의 앞에 올 수 없었다.
“친구야. 믿고 싶은 부분만 보고 싶은 건 알아. 하지만 널 만난 뒤로 내가 한 건 수없는 고민이었어. 네가 걱정됐으니까.”
“네가? 날?”
업신여김이 가득 담겨 있었지만, 은호는 차분했다.
“맞아. 나는 널 걱정했어. 요즘 비가 많이 내렸잖아? 비를 맞고 돌아다니지 않을지, 네가 자극한 환수 밀렵꾼과 정화자가 널 알아버린 건 아닐까. 여러 생각이 맴돌았어. 그리고 오늘, 나는 널 멈추기로 다짐했어.”
그 대답에 하이프는 웃었다.
저 인간의 자아가 너무도 거대해 보였다.
본인이 뭐라도 되는 것처럼 구는 꼴이 한없이 우스웠다.
“날 멈추고 싶다고? 그래서 내가 너한테 부탁이라도 했어?”
“부탁한 적 없어.”
“그럼, 네가 뭔데?”
하이프는 은호 주변에 꿈틀거리는 어둠을 경계하며 물었다.
힘이 빠진 그 목소리에 날카로움이 묻어났다.
대놓고 방해하겠다는 소리를 애초에 왜 들어줘야 하는지.
“지금은 너희의 임시 보호소가 되길 자청한 이상한 인간이라고 하자. 그리고 나중에는 너의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어. 나는 널 돕고 싶어.”
진심이 묻어났다.
하이프는 저 말에 흔들리는 걸 느꼈다.
하지만 강하게 저항했다.
“나를 네 멋대로 휘두르지 마!”
하이프의 주변에 푸른 불꽃이 더 모습을 드러냈다.
화르륵.
동시에 흑견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번 꺼낸 울부짖음으로 숲에 어둠이 내려왔다.
“친구야.”
은호는 하이프에게 걸어갔다.
그의 걸음을 따라 어둠이 밀려왔다.
“내가 무슨 말을 해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저토록 벽을 두르고, 그 벽 위에 날을 세우고, 오지 말라고 소리치는 하이프에게 어떻게 해야 자신의 말이 닿을지 몰랐다.
얼마나 사람이 증오스러웠으면 이런 선택을 했을까.
은호는 참 어렵다고 생각했다.
“말하지 마. 나한테 아무 말도 하지 마.”
“친구야. 인간이 그렇게 증오스러워?”
“맞아. 너무나도 증오스러워.”
하이프가 처음으로 활짝 웃었다.
탈을 뒤집어쓴 듯한 얼굴이었지만, 그 딱딱함은 인형의 웃음과 닮아 있었다.
“그럼, 처음으로 부탁할게.”
하이프는 방향을 바꿨다.
위선일지라도 저 인간은 자신들을 위한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그럼 해줘야지.
응당 자신의 부탁을 들어줘야지.
하이프 주변에 나타난 푸른 불꽃이 일정한 방향으로 조용히 흔들렸다.
“그 이상 지껄이지 마라.”
사방에서 들려오는 미묘한 소리에 흑견이 하이프를 노려보았다.
은호에게 휘두르지 말라느니 뭐니 했지만, 정작 저 말을 통해 그를 흔들려고 했다.
“넌 조용히 하고 있어!”
하이프가 흑견을 향해 힘껏 소리쳤다.
몸을 휘감고 있던 푸른 불꽃이 금방이라도 모든 걸 태울 것처럼 일어났다.
하지만 그 모든 걸 삼키며 거대한 검은 불꽃이 하이프의 앞에서 갑자기 타올랐다.
흑견의 앞발이 검은 불꽃을 뚫고 하이프의 가슴팍을 짓눌렀다.
콱!
거대한 어둠이 밀어닥치며 하이프를 향해 매서운 이빨을 드러냈다.
전신을 타고 흐르는 소름에 하이프는 숨이 막혔지만, 억지로 손을 뻗어 흑견을 붙잡았다.
“조용히 해야 하는 건 너다. 인간이 아니었다면 나는 널 찢어 죽였을 테니까.”
“…너, 인간한테 조종당한다는 걸 모르겠어?”
“헛소리는 작작 지껄이거라. 나한테 네놈의 힘조차 통하지 않을 테니.”
“…….”
거짓말이 아니었다.
하이프는 이상한 상황에 혼란스러웠다.
자신의 손아귀를 타고 흐르는 푸른 불꽃이 저 존재를 잡아먹어야 하지만, 잡아 먹힌 건 오히려 자신이었다.
위험했다.
진짜로 차원이 다른 존재였다.
하이프는 온몸을 푸른 불꽃으로 휘감았다.
머리끝에서 발끝에서 퍼진 불꽃이 힘껏 타오르다가 사라졌다.
흑견은 앞을 보았고, 은호가 손을 뻗었다.
멈추라는 말에 흑견은 근질거리는 앞 발가락을 우둑거리며 소리를 냈다.
하이프는 사방에 뿌린 푸른 불꽃 중 하나의 불꽃을 뒤집어쓴 채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조금 전보다 더 거리가 벌려진 상태였고, 하이프는 흑견을 크게 경계했다.
“물러나달라는 부탁은 안 들어줄 거야.”
은호가 먼저 선수 치며 말했다.
여기서 하이프가 자신에게 할 부탁이라고는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면 널 이렇게 찾아오지 않았을 테니까.”
“내가 부탁하는데도? 부탁이라니까?”
하이프는 살짝 기울어진 얼굴로 은호를 바라보았다.
저 존재야 특별하다고 치지만, 인간한테도 변화가 없었다.
‘왜?’
그 마음까지 거짓이었을까.
속이 조여오는 느낌이 들던 차, 은호의 어깨에 앉아 있는 나비 한 마리를 보았다.
‘저건…….’
하이프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고, 폭시가 그림자에서 걸어 나왔다.
가득 찌푸린 얼굴로 하이프를 보았다.
“너무해. 정신을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되는 걸 알잖아. 알고 있으면서 마음대로 안 된다는 이유로 은호를 조종하려는 건 못된 짓이야.”
폭시의 말에 은호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솔직히 하이프가 자신을 공격하는 일이 없길 바랐다.
“너도 날 방해하지 마. 나는 너희 편이라니까?”
하이프가 폭시를 쳐다보았다.
저번과 마찬가지로 저 존재가 자신을 방해했다.
자신과 똑같은 정신계 힘을 가진 존재기에 까다로웠다.
“아니. 넌 은호를 공격했어. 은호를 조종하려고 했다고. 넌 아주아주 못됐어!”
폭시의 꼬리에 털이 바짝 섰다.
은호를 건드린 이상, 이제 주저할 건 아무것도 없었다.
“고마워, 폭시야.”
은호는 폭시를 향해 웃었다.
그리고 하이프를 보며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가 손에 쥐려는 하이프의 행동을 모르지 않았다.
다 알고 있었다.
그저 예상이 빗나가길 바랐을 뿐이었다.
하지만 빗나가지 않았다.
“친구야. 네가 저 친구들을 구하려고 이러는 거 알아. 하지만 지금 네가 하려는 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 도움이 되지 않아. 이제, 그만하자.”
은호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하이프가 친구들을 구하려는 의도를 가졌어도 타인이 보는 시선은 다를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는 구해도 구하는 게 되지 않았다.
“그럼 네 행동은? 갑자기 들이닥쳐서 내 앞길을 막는 너는? 왜 나를 잘못됐다고 보고 있는 건데?”
힘이 빠진 하이프의 목소리는 마치 거친 파도에 잠겨가는 듯했다.
억울함이 가장 크게 엿보였다.
갑자기 폭시가 주변으로 생겨난 나비가 주변으로 번져갔다.
“넌 진짜 치사해. 이런 와중에도 또 은호를 건드리려고? 못된 너는 아무것도 하지 마. 내가 허락하지 않을 거야.”
폭시가 앞으로 나아가며 하이프가 만든 힘을 지워버렸다.
까드득.
계획이 엉켜가자 하이프가 이를 악무는 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잘못된 게 아니야. 그저 친구가 판을 너무 키웠을 뿐이야. 친구가 의도했든 아니든 지금 너의 행동 하나가 너무도 큰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는 상황이야.”
“시끄러.”
“내 뒤에 있는 환수 관리국과 연구소 사람을 건드린다면 더 그래. 저 사람들은 너희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니까.”
“…우리를 위한다고?”
하이프의 표정이 싹 변했다.
누가.
인간이?
머릿속이 새카맣게 변하는 것 같았다.
“인간. 너 뭔가 착각하고 있다는 거 알고 있어?”
“그럼, 그 동영상. 대체 왜 만든 거야?”
은호는 하이프에게 말의 주도권을 주지 않았다.
디어네를 죽이려고 했던 그 동영상.
몇 번을 생각해봐도 굳이 하지 않아도 될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조용히 행동했다면 원하는 대로 이룰 확률이 더 높았을 테니까.
컴퓨터에 숨어든 바이러스처럼 모든 환수 밀렵꾼과 정화자의 정신을 사로잡았을 때, 모습을 드러낸다면 이보다 더 통쾌한 복수는 없었을 텐데.
“실상을 알려주려고 한 거야. 아무것도 모르고 행복에 취해있는 인간들에게 본인들이 얼마나 잔인한지 말이야. 왜? 내가 죽였을 거라 생각해?”
“그렇지 않아. 넌 그러지 않았을 거야. 그렇지?”
은호는 점점 늘어나는 푸른 불꽃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멍청하긴.”
하이프는 올렸던 입꼬리를 내렸다.
저 멀리서 숲이 움직이듯 새가 날아갔다.
무언가 움직이고 있었다.
혼자는 불리하다고 생각한 그때부터 주변에 있는 다른 존재들을 끌어왔다.
“그 동영상에 나온 인간은 너희가 정화자라고 부르는 놈이야. 너와 내가 만났던 그곳에 있던 놈 중 하나야.”
하이프는 한층 더 여유로움을 드러낸 채 뒤로 움직였다.
“인간. 왜 우리를 그곳에 모았는지, 무슨 일이 벌어지려고 했는지 알아?”
“아직 물어보지 못했어.”
“뭔가를 실험하고 있었어. 우리를 그냥 죽이는 것도 이제 싫증이 났나 봐. 어차피 죽일 거면서 별짓을 다 하고 있잖아?”
“…그게 무슨 말이야?”
실험이라니.
은호는 마음이 조여왔다.
“이게 너희야.”
“그만.”
위에서 윈디드가 내려오며 중재하려고 했다.
“여기서 멈춰, 작은 친구.”
“그만해야 하는 건 너희야. 저 인간의 말에 현혹되어 언제까지 이럴래?”
하이프는 뒤로 움직이고, 움직이다 멈췄다.
망토 속에 손이 나왔다.
“아니, 잘됐어. 네가 움켜쥔 저들을 내가 반드시 풀어주겠다고 말했지?”
하이프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나른한 표정 너머로 웃음이 감돌았다.
“그게 바로 오늘이야. 내가 구해줄 테니까.”
“…역시, 약속이 깨졌구나.”
윈디드는 하이프 뒤에서 오고 있는 수많은 존재를 느꼈다.
암담함이 밀려올 것만 같았다.
또 약속이 깨진 존재와 마주하고 말았으니까.
‘……왕이시여.’
이 사실을 알 왕이 걱정됐다.
“친구야.”
은호는 피를 뽑는 도구를 꺼내며 하이프를 불렀다.
“이제 보여?”
“무슨 수작이야?”
“다른 친구를 조종하는 건 내가 아니야.”
은호의 얼굴에 드리웠던 웃음기가 지워졌다.
그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지만, 은호는 숲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눈치챘다.
“너야.”
손등에 찌르며 피를 뽑았다.
점점 피가 차올랐지만, 은호는 멈추지 않았다.
“날 조종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 이미 예상한 일이기도 했어. 그런데 다른 친구만큼은 그러지 말았어야지. 네가 하는 말에는 수많은 모순만 남잖아.”
다른 환수들마저 거리낌 없이 조종하는 행동은 그 무엇으로도 뒤덮을 수 없었다.
귀만 닫은 게 아니라 눈마저 멀었다.
“너는 친구들을 구하려는 게 아니야. 그저 네 개인 욕심만 채우고 싶은 것뿐이니까.”
은호는 이 땅에 피를 뿌렸다.
숲의 분위기가 다시금 뒤바뀌었다.
“친구야. 내가 꼭 널 막아줄게.”
은호는 눈에 힘을 주며 강하게 하이프를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