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139)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139화(139/30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 139화
139화. 널 막아줄게(2)
“해볼 수 있으면 해보든지.”
힘이 빠진 하이프의 웃음이 들려왔다.
자신은 이제 혼자가 아니었다.
저들이 다수로 온다면 자신은 더, 더 다수로 대응하면 그뿐이 아닌가.
“작은 친구야. 여기서 멈춰.”
윈디드가 하이프에게 경고했다.
하이프는 약속을 어긴 존재였다.
이미 부식의 힘을 사용해 숲을 죽여버린, 레베카를 통해 약속을 어긴 존재가 어떤지 보지 않았던가.
약속이라는 제약에서 풀려난 존재에게 적당히란 없었다.
“그건 내가 아니라 저 인간한테 말해야지. 저 인간이 나를 자극하지 않았어도 내가 이럴 일은 없잖아?”
하이프는 억울함을 드러냈다.
탈을 뒤집어쓴 듯한 얼굴에 번지는 미소는 너무도 인위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너희를 도왔을 뿐이야. 인간들의 손아귀에 무너진 우리를 보호하려고 했어. 끼어든 건 너희야. 저 인간이라고.”
“속지 마, 삐약아.”
폭시가 고개를 흔들며 윈디드에게 말했다.
“저 애에게 느껴지는 건 나쁜 감정밖에 없어. 저 말도 다 거짓이야. 내 눈에는 집착밖에 보이지 않아.”
다른 존재들을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은 존재했다.
존재했을 뿐, 지금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무얼 향한 집착인지 몰라도 모든 감정을 다 잡아먹었다.
폭시는 그 거대한 감정이 벅찰 정도였다.
윈디드는 긴 숨을 내쉬었다.
온화하던 눈빛은 차차 가라앉았고, 머리 위에 있는 링에 빛이 어렸다.
“누가 병아리 아니랄까 봐, 그렇게 빨리 내려놓는가?”
흑견이 꺼내는 말에 윈디드는 잠깐 웃었다.
“저기 오는 거 봐봐.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잖아, 친구?”
저토록 많은 존재가 온다면 누굴 공격해야 하고, 누굴 쓰러트려야 하는 건 너무도 명확해졌다.
하이프를 쓰러트려야 모든 게 끝이 났다.
가장 빠르고, 가장 쉬우며 또 가장 깔끔한 방법이었다.
“인간은 아직 아무것도 놓지 않았다.”
흑견은 은호를 보았다.
자신이 윈디드의 생각과 겹친 건 불쾌하나, 결론은 하나였다.
하이프의 죽음.
하지만 은호는 달랐다.
그 어디에도, 그 어떤 표정에서도 하이프의 죽음을 생각하지 않았다.
이런 사실이 참 웃겼다.
“위그드라실.”
은호가 부르자 위그드라실이 주머니에서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친구들의 위치를 파악해줄래?”
무슨 일이 있어도 하이프를 막아야 했다.
이 이상 피해를 키울 순 없었다.
우선 구해야 하는 건 하이프의 힘에 조종당하는 환수들이었다.
저들은 원치 않은 일에 휘말렸을 뿐이니까. 지금 이렇게 움직이는 것도 절대로 자의가 아니었다.
위그드라실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노크하듯 허공에 대고 손을 움직였다.
은호의 머릿속으로 수많은 환수의 위치가 파악됐다.
“폭시야.”
“응.”
“저 친구의 힘을 얼마나 넓게 지울 수 있어?”
“잠시만.”
폭시는 은호의 앞에서 서서 옆으로 급히 달려갔다.
거리가 꽤 멀어졌고, 폭시가 살짝 작아졌다.
폭시는 그쪽을 찍고 다시 돌아와 은호에게 말했다.
“이만큼. 이만큼 가능해. 그런데 이렇게 많이는 안 해봤어. 오늘은 내가 얼마나 가능한지 알 기회네?”
말을 하며 폭시는 웃었다.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은호의 미안함이 느껴졌다.
“폭시야. 내가 잡고 있을 테니까, 할 수 있는 만큼만 해. 절대 무리하면 안 돼.”
당부하는 은호의 말에 폭시는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웃음을 터트렸다.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안절부절못하는 은호의 표정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큰 다정함과 애정이 밀려와 어쩔 수 없었다.
“은호.”
“응?”
“은호는 내가 무섭지 않아?”
‘멍멍이 형님도 물어보던데. 폭시도 물어보네? 무슨 유행인가?’
은호는 앞을 보았다.
퍼진 자신의 피를 따라 이 땅에 있는 모든 식물이 손아귀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 선명하게 들었다.
“무섭지. 너무 무서워서 온종일 쓰다듬어주고 싶은데?”
폭시를 품에 안고 있어도 모자랄 판에 미워할 시간이 어디 있을까.
“내가 은호의 정신을 건드렸을 수 있잖아. 내가… 나를 예뻐하도록 은호한테…….”
“내가 폭시를 몰라?”
은호는 시선을 내려 폭시를 보며 웃었다.
폭시는 스스로 가지고 있는 힘을 무서워했다. 본인의 욕심으로 힘을 함부로 쓰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기껏해야 상대를 웃게 만들 뿐이었으니.
진지하게 사용한 적이 있었는데, 그건 프스테와 래빈 자매 중 동생인 래빈에게 납치당했던 라비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은호는 폭시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식물들을 깨웠다.
“식물 친구들.”
위그드라실이 팔을 붕붕 휘둘렀다.
모두가 대답하며 동시에 머리를 흔들자 거센 돌풍이라도 불어오는 것 같았다.
하이프는 이 기괴한 현상에 눈동자를 움직였다.
이건 아무리 봐도 저 인간이 식물을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럴 리가.’
이곳에 있는 자연은 그 무엇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깨우친 지식 속에 있는 자연과 달랐다.
적어도 살 수 있게 집을 제공해주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어떤 위험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지 않았다.
그런 자연이 인간에게 응답하고 있었다.
‘그럴 리가 없어.’
하이프는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부정했다.
“인간 너는 참 재주가 좋아. 하는 것마다 이렇게 감탄이 나오잖아?”
“친구야. 감탄하기엔 일러.”
“우쭐거리는 것도…….”
“다른 친구들이 다치지 않게 묶어버리자.”
은호는 하이프의 말을 자르며 지시를 내렸다.
조용했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하이프가 은호에게 비웃음을 지으려던 차, 바닥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은호는 손가락을 들어 위를 가리켰다.
하이프가 덩달아 고개를 올리자 무언가 일어났다.
사방을 울리는 거대한 소리에 하이프는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뒤쪽에서 일어나는 바람에 고개를 돌렸다.
멀쩡하던 식물이 갑자기 자라났다.
‘……뭐야.’
왼쪽에도, 오른쪽에도 식물이 거침없이 자라났다.
‘이게 뭐야?’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정말로 저 인간이 자연을 움직였다.
아니, 움직인 것도 모자라 그 끝에 환수가 걸려 있었다.
한 마리가 아니었다.
벌써 십수 마리가 보였다.
“이제 감탄했어?”
은호가 하이프를 향해 옅은 미소를 지었다.
“부, 불을 써!”
당황한 하이프가 다급히 명령을 내리자 환수 중 불과 관련된 힘을 가진 환수가 거침없이 불꽃을 토해냈다.
“친구야. 숲에서 불내면 안 되는 거 몰라?”
은호는 불이 난 그곳에서 일어난 어둠을 보았다.
단숨에 불꽃을 삼킨 어둠은 하이프를 보며 날을 세웠다.
“말썽꾸러기 말이 맞아.”
윈디드의 날개가 넓게 펼쳐졌다.
링에서 빛이 맴돌더니 중앙에 빛이 모였다. 압축된 빛을 따라 불어오는 바람은 제법 거칠었다.
윈디드가 몸을 낮추고 그대로 빛을 쏘았다.
두껍게 한 줄기로 이루어진 빛은 금세 사방으로 쪼개져서는 바람을 뚫고 환수들에게 도달했다.
은호가 붙잡은 환수들과 불을 사용한 환수 모두 빛을 맞자마자 마비가 된 듯 몸을 떨었다.
“불장난은 하면 안 되지. 자연을 지켜야 하는 거 몰라?”
윈디드는 그대로 바람을 타고 나아가 하이프를 향해 앞발을 휘둘렀다.
도망치려는 하이프를 잡자마자 푸른 불꽃이 윈디드의 팔을 잡고 올라왔다.
윈디드의 미간이 찌푸려지며 그대로 하이프를 집어던진 뒤, 몸을 비틀어 바닥으로 착지했다.
“…기분이 역한데?”
그 짧은 순간에 몸을 타고 온 푸른 불꽃은 수많은 속삭임을 퍼트렸다.
머리로 스며들어오는 속삭임이 정신을 흔들려고 했다.
온몸의 깃털이 바짝 설 만큼 아주 역했다.
이걸 흑견은 어떻게 버틴 걸까.
“……하. 하아.”
바닥으로 구른 하이프는 거친 숨을 내쉬었다.
정신을 흔들었음에도 또 통하지 않았다.
눈동자를 굴려 은호를 보았다.
몇 번을 생각해도 저 인간 때문이었다.
무언가 방법이 없을까.
하이프는 눈을 감았다.
자신과 연결된 수없는 존재가 보였다.
저들의 능력을 한 번에 쓴다면 어떻게 될까.
해볼 가치는 있었다.
어차피 이렇게 사용하라고 있는 힘이었다.
약속이 깨진 뒤로 그렇게나 머리가 맑을 수가 없었다.
그때, 이 약속만 없었어도. 족쇄와도 같은 그 힘만 없었어도.
‘…아니야. 저 존재가 눈치챌 거야.’
여우를 닮은 그 존재.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이프는 주먹을 쥐다 말고 다급히 눈을 떴다.
어느새 주변에 나비가 보였다.
머리를 건드리는 힘이 강하게 느껴졌다.
아주 살짝 하이프가 웃었다.
그 미소가 뭔지 모르겠지만, 폭시는 주변에 퍼진 푸른 불꽃의 흐름이 이상하다는 걸 알았다.
“당장.”
나비가 붉게 타오르며 색깔을 뒤바꿨다.
하이프의 눈동자가 텅 비어버리는 것처럼 변했다.
“멈춰.”
폭시의 명령을 따라 하이프의 어깨가 힘없이 내려갔다.
식물에 묶여 발버둥을 치던 환수들이 끈 떨어진 인형처럼 덩달아 행동을 멈췄다.
폭시는 하이프를 바라보았다.
분명히 제압했는데, 이 불안함을 뭘까.
‘…뭔가 이상해.’
주변 소리가 멎어가는 것만 같았다.
폭시는 고개를 돌려 은호를 보았다.
표정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상했다.
거리가 너무 멀어 보이며 다리에 감각이 사라지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은호!’
은호를 부르려고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아가야.”
그때, 하이프의 목소리와 함께 푸른 불꽃이 폭시의 눈앞에 나타났다.
‘이게 다 뭐야?’
폭시는 당황했다.
“여기는 정신 세계야. 너의 정신.”
‘그게 무슨 말이야.’
“정신은 말이야. 유리조각과 같아. 가볍게 뒤집어버려도 앞면이 어디인지, 뒷면이 어디인지 몰라. 원래부터 투명하니까.”
이어 모습을 드러낸 하이프가 입꼬리를 올렸다.
“너는 몰랐겠지만, 정신계 힘을 사용하는 우리는 주의해야 하는 게 있어.”
폭시는 꼼짝도 못 한 채 그대로 하이프가 다가오는 걸 봐야만 했다.
“정신을 건드릴 때는 주의해야 해. 너의 정신을 보호하는 힘도 가장 약해질 때니까. 그러니 이렇게 쉽게 주도권을 뺏기는 거잖아.”
하이프는 손가락을 뻗어 폭시를 건드렸다.
“…어? 뭘 걸어 잠갔네. 역시, 이거 인간이 건드린 게 맞았네.”
안 돼. 하지 마.
폭시가 소리쳤다.
그건 자신이 일부러 걸어 잠근 것들이었다.
모르는 척할 수 없고, 끌어안기에는 너무도 아파서.
아직은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
하이프가 힘이 빠진 눈을 하며 폭시를 마주했다.
“내가 널 도와줄게.”
그 말과 함께 폭시가 잠근 무언가를 풀어버렸다.
잠잠했다.
아니, 다른 힘이 자신을 방해했다.
반짝거리는 빛깔이었다.
보기만 해도 따뜻하고,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로 포근한 힘이었다.
하이프는 그 힘에 뒤로 물러섰다.
보면 볼수록 마음이 아팠고, 무언가 잘못하고 있다는 불안감이 몰려왔다.
자신의 모든 걸 부서트릴 만큼 따스했다.
저건 좋지 않았다.
저건 위험했다.
폭시의 정신을 쥐어버린 채로 의식의 세계로 나온 하이프가 마주한 건 이상한 빛을 내는 인간이었다.
정신의 세계에서 봤던 것과 똑같은 빛이었다.
하이프가 여우를 닮은 저 존재의 육체를 손에 넣었기에 무척이나 가까웠다.
짙은 걱정을 한 눈을 보자 낯선 감정이 밀려왔다.
적어도 자신이 아는 인간 중에 저런 눈을 한 존재는 없었다.
‘……저 힘이야.’
하이프는 은호와 시선을 마주쳤다.
‘그래, 저 힘이라고.’
“폭시야! 폭시야. 내 말 들려?”
은호는 폭시를 흔들며 몇 번이나 불렀다.
하이프가 축 늘어지자마자 폭시도 눈동자에 빛깔을 잃어버린 채 똑같이 그렇게 되어버렸다.
하이프 주변에 푸른 불꽃이 아직도 아른거리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지금은 폭시가 중요했다.
“…미안해. 미안해, 폭시야.”
은호는 폭시를 안은 채 밀려오는 참담함에 두 눈동자가 흔들렸다.
분명히 눈동자를 마주하고 있는데,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움직임도 없었다.
데려오지 말았어야 했다.
위험한 걸 알고 있었으면서 대체 뭘 자만했던 걸까.
“…머, 멍멍이 형님. 삐약아. 이거, 이거 어떡해?”
“말썽꾸러기…?”
윈디드가 도리어 당황했다.
은호는 처음 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늘 웃고, 밝던 그는 사라지고, 절망밖에 보이지 않았다.
뭔가 이상했다.
숲의 분위기도 묘하게 으스스해진 것만 같았다.
“지, 진정해, 말썽꾸러기. 이게 그러니까, 쟤가 정신을 건드린 모양이거나, 지금 정신세계에서 싸움이 벌어진 모양이야. 그렇지, 친구?”
윈디드의 질문에도 불구하고 흑견은 폭시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냄새 중 무언가 섞여 있었다.
‘……형! 그래, 형한테 가야 해.’
은호는 폭시를 안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로 근처에 태호가 있었다.
몇 걸음 걷다 말고 품에서 꿈틀거리는 느낌에 은호는 놀란 눈으로 시선을 내렸다.
“폭시…….”
“인간. 당장 떨어져라!”
흑견이 소리쳤다.
“늦었어!”
폭시의 몸을 빼앗은 하이프가 손톱을 세운 폭시의 발로 은호를 붙잡았다.
콱!
모든 게 치워졌다.
인간 주변에 모든 게 사라졌다.
“내가 노린 건 처음부터 너야.”
폭시의 입으로 은호에게 경고했다.
주변에 붉은 나비가 퍼졌다.
“모두 멈춰!”
폭시의 힘을 쓴 하이프는 바로 빠져나와 원래 몸으로 돌아왔다.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충분했다.
조금 전처럼 주변에 퍼진 푸른 불꽃을 타고 몸을 옮겨 은호의 뒤에 섰다.
“어차피 너만 잡으면 되는 거였어.”
하이프는 은호의 등에 앞발을 뻗었다.
저 인간은 자신의 힘을 저항할 수단이 없었다.
푸른 불꽃이 은호의 몸을 타고 흘러나왔다.
“끝이다!”
승리를 확정한 하이프가 미소를 지었고, 그 뒤를 포악한 어둠이 이를 드러냈다.
먹고 먹히는 관계가 이어지는 그 찰나 은호는 또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걸 느껴졌다.
촤르르르륵.
손목을 휘감은 사슬이 느껴졌다.
저번에 흑견과 감겼던 그 사슬이 이번에는 폭시와 이어졌다.
품에 안겼던 폭시의 눈빛에 간절함이 깃들었다.
아니, 절박함이 보였다.
‘안 돼, 안 돼. 은호한테 그러지 마!’
폭시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선명히 박혀오며 주변으로 번져가는 샛노란 나비를 보았다.
세티아의 호수에서 봤던 그 나비였다.
봄을 알리는 것처럼 따뜻했다.
그 순간, 다시 시간이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