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140)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140화(140/302)
140화. 널 막아줄게(3)
푸른 불꽃이 은호의 몸을 타고 넘어왔다.
그의 머릿속을 향해 수많은 속삭임이 귓가에 들렸다.
너는 잠이 든다.
나에게 모든 걸 맡긴다.
나를 받아들여.
은호는 그 소리를 들으며 하이프를 향해 눈동자를 돌렸다.
승리에 찬 하이프와 시선과 마주한 순간, 은호를 향한 소리가 달라졌다.
내 남편 살려내!
왜 너희가 내 남편이 죽인 건데?
미워! 너희가 너무도 미워!
은호는 이게 하이프가 겹겹이 쌓은 마음의 벽 너머 소리라는 걸 알았다.
눈동자를 내려 폭시를 보았다.
내가 또… 또! 이 힘으로 누군가를 공격하고 말았어!
난 구제불능이야.
은호가 날 미워할 거야. 은호가 날 싫어할 거야.
‘…그렇구나.’
은호는 자신의 주변을 맴도는 나비와 마주하며 이게 폭시가 보는 세계라는 걸 알았다.
수많은 감정이 눈에 보이고, 그 감정이 소리로 닿았다.
신기함도 잠시, 은호는 폭시를 쓰다듬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난 널 미워하지 않아, 폭시야.”
정말?
그렇게 물어보는 것만 같기에 은호는 활짝 웃었다.
“내가 널 왜 미워하겠어?”
당연하게 꺼내는 저 말에 금세 폭시의 눈동자에 눈물이 차올랐다.
아무 말 없이 자신에게 안겼다.
폭시를 토닥거린 채로 은호는 하이프를 보았다.
조금 전보다 더 싸늘해진 은호의 눈빛에 하이프는 그대로 멈췄다.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아 숨마저 멈추는 기분이었다.
분명히 푸른 불꽃에 휘감겼는데, 인간 주변에 흔들리고 있는 푸른 불꽃이 저토록 많은데, 정신에 접근도 하지 못했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압도될 것 같은 거대한 벽이 보였다.
‘……아니.’
하이프는 자신의 몸 주변에 살포시 앉은 샛노란 나비의 힘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확신했다.
조금만 건든다면 당하는 건 자신이었다.
저 인간은.
저 인간이 가진 힘은.
‘…자연이다.’
이곳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쿵.
쿵.
심장을 때리듯 수없이 경고했다.
저 인간을 건드리면, 죽여버리겠다고.
자신은 너무도 작았고, 쳐다보는 시선이, 밀려드는 압박은 산을 코앞에 보는 것처럼 너무도 거대했다.
하이프는 요동치는 눈으로 은호를 보았고, 은호는 모든 감정을 읽었음에도 하이프가 아닌 흑견을 바라보았다.
“멍멍이 형…….”
인간.
인간!
인간…!
은호는 밀려드는 흑견의 감정에 그만 웃음을 터트렸다.
어떻게 저토록 한결같은지 몰랐다.
“고마워, 멍멍이 형님. 이제 그러지 않아도 돼.”
하이프를 정말로 찢어 죽일 것처럼 일어난 어둠이 너무도 컸다.
이 크기라면 아파트 몇 채나 뒤덮지 않을까.
오죽하면 윈디드가 하이프 뒤에 섰을까.
“……하.”
덮쳐오던 어둠이 코앞에서 멈추자 윈디드가 길게 숨을 내쉬었다.
진짜 죽이는 줄 알았네.
우리 친구, 너무 화끈하네.
그런데 저 나비는 뭐야?
은호는 윈디드의 감정을 읽은 뒤, 그는 손을 뻗었다.
흑견이 윈디드를 비집고 나타나 그 손에 얼굴을 가져댔다.
“다음은 없다.”
“알아. 다음에는 이런 일이 없을 거야.”
은호는 흑견을 쓰다듬으며 그제야 하이프에게 물었다.
“이해가 가지 않지?”
“…….”
“사실 나도 그래.”
“……너 뭐야?”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그건 알겠더라.”
은호는 자신의 주변에 일어난 힘을 이해했다.
이건 폭시에게 받은 힘이었다.
이를 증명하듯 자신의 눈에 폭시의 앞발과 자신의 팔에 연결된 사슬이 보였다.
저번에 흑견에게 받은 힘은 자신이 지금보다 더 약했기에 유지가 덜 됐을 뿐이었다.
이상할 만큼 몸이 뜨거워진 그 느낌에 알아버렸다.
금방이라도 식은땀이 흐를 것만 같았다.
“폭시가 나를 지켜줬다는 거야.”
은호는 샛노란 나비를 움직였다.
그의 손가락 끝에서 나타난 나비는 주변으로 퍼졌다.
봄의 냄새를 뿌리며 식물 끝에 감긴 모든 환수에게 한 마리씩 내려앉았다.
“널 대신해 내가 풀어줄게.”
은호는 손을 튕겼다.
딱.
그 소리를 따라 환수의 몸에 붙은 나비가 꽃이 된 것처럼 꽃잎을 흘렸다.
환수마다 뿌려지는 꽃잎은 눈을 홀릴 정도로 아름다웠지만, 하이프는 자신과 연결됐던 모든 게 사라지는 걸 느꼈다.
이보다 더 잔인한 게 있을까.
“……아, 안 돼.”
하이프의 목소리가 떨렸다.
“돼.”
조금 묵직해진 은호의 음성에는 화가 깃들었다.
“이것도 일단 치울게. 네가 또 뭘 할지 모르잖아?”
은호의 손끝을 따라 샛노란 나비가 움직였다.
하이프는 멀어지는 나비를 보며 손을 뻗었다.
푸른 불꽃이 지워지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
얼마나 압도적인 힘이길래 자신의 정신을 아무렇지도 않게 건드는 건지.
“친구야.”
은호가 하이프를 조용히 불렀다.
모든 걸 잃어버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제야 너도 슬퍼?”
“…얼마나 빼앗아야 후련한 건데?”
하이프는 일그러진 얼굴로 은호를 보았다.
“대체 나한테 뭘 빼앗아…….”
“아직도 네가 뭘 했는지 모르겠어?”
은호는 손가락을 뻗었다.
하이프의 눈동자가 덩달아 움직였다.
은호는 환수를 하나씩 가리켰다.
“네가 건드린 친구들이야. 아무 이유도 없이, 너의 분노에 희생된 친구들이기도 해.”
영문도 모르는 채 어리둥절한 눈을 한 환수들이 식물들을 따라 땅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이래도 모르겠어? 빼앗은 건 너야. 슬퍼해야 하는 건 네가 아니라 저 친구라고.”
저번에 동영상을 올린 그 사람은 기억이 사라졌다고 했다.
부디 저 환수들에게도 이번 일이 어떤 식이든 상처로 남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네가 왜 이토록 분노를 쏟았는지 알아. 남편 일은 진심으로 유감이야.”
“……!”
하이프가 놀란 눈을 했다.
이걸 어떻게 알았을까.
“나는 네가 당한 일이 컸기에 복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 얼마나 인간이 증오스러웠으면 그런 단체까지 만들었을까, 너를 안타까워했어. 그래서 날 미워해도 괜찮았어.”
“거짓말… 하지 마.”
“내가 아직도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보여?”
“…….”
하이프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일그러진 얼굴 너머에 드러난 감정은 너무도 선명했다.
그건 분노였다.
“나도, 네 마음을 알아. 너의 세상이 얼마나 무너졌을지 안다고.”
“그걸… 어떻게 알아?”
“어떻게 알겠어?”
하이프는 은호의 물음에 또 답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너는 선을 너무 넘어버렸어. 내 가족을 건드리지 말아 달라고 했는데, 왜… 그랬어?”
은호는 하이프에게 손을 뻗어 망토를 쥐었다.
뜨겁지 않고, 따뜻했다.
“네가 나한테 그러는 건 이해한다고 했잖아. 네가 증오하는 건 나였잖아. 그럼, 나한테만 그랬어야지.”
흘러나오는 은호의 말이 무거웠다.
조용한 분노가 넘실거렸다.
우우우웅.
그 말에 동조하듯 숲이 울리고 있었다.
“가족을 잃은 너라면, 적어도 폭시를 건드리지 말았어야지.”
하이프가 무얼 건드렸는지 몰라도 점점 폭시의 감정이 까맣게 변해갔다.
은호는 교감의 힘을 내며 다른 손으로 폭시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나쁜 감정이 지워지길 바라면서 은호는 밀려오는 감정을 삼켰다.
“…아침에 눈을 뜨면 느껴지는 그 적막함이 얼마나 무서운지 너도 알고 있잖아. 이 세상에 혼자가 되는 그 기분이 얼마나 숨통을 쥐는지 너는 알고 있잖아.”
“그걸, 너희가… 뺏었잖아. 내 반쪽을 뜯어갔잖아. 나는 지금 아무것도 없는데, 너는… 있잖아.”
“내가 옆에 있어 달라고 부탁한 건 멍멍이 형님뿐이야!”
은호가 강하게 주장했다.
론이 자신을 떠난 뒤, 흑견마저 떠날까 무서워 건넨 마지막 용기였다.
“다른 애들은 모두 나한테 먼저 와주었어. 당연하게도 내 옆에 있어 주었어. 이게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지 너는 알잖아!”
하이프의 망토를 붙잡은 은호의 손아귀에 힘이 가득 들어갔다.
“그게 어떻게… 가능해?”
하이프는 조금도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은 혼자인데.
가슴에 남은 이 구멍 때문에 지금도 시린데.
“왜 너만 다른데? 왜 너만, 다시 가족을 손에 넣은 건데?”
치사했다.
하이프는 목까지 치밀어 오른 억울함을 담은 채 쏟아지는 시선을 느꼈다.
자신이 조종했던 환수들까지 이곳에 모여들었다.
자연도.
인간 주변에 있던 존재들도.
자신이 조종했던 환수들마저 날카롭고, 매서운 시선으로 볼뿐이었다.
왜 자신에게만 저토록 냉정한 걸까.
“네가 하려는 방향이 잘못됐으니까. 네가 중요하게 생각한 건 너 자신이니까. 지금 봐. 네가 뭘 놓쳤는지.”
“내가 뭘 놓쳐? 다른 존재들을 얼마나 구출해줬는데. 얼마나 탈출시켜줬는데!”
“그래서 너는 그 친구들에게 다가가 지금 마음이 어떤지 물어봤어?”
“뭐…?”
“네가 가진 그 힘으로 그 친구들의 마음이 얼마나 곯았는지 살펴봤어?”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구해줬으면 되잖아.”
하이프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구해줬는데, 뭘 더 바라는 건 욕심 아니겠는가.
“그게 네가 수없이 날 비방했던 내 힘의 정체니까.”
은호는 하이프의 망토를 당겼고, 이를 악물 듯 무겁게 말을 내뱉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바라보는 하이프의 표정에 은호는 손을 내렸다.
“모든 친구는 너랑 똑같아. 끔찍한 그곳에서 도망쳤지만, 이미 빠져나왔지만, 마음이 빠져나오지 못했어. 그곳에 계속 갇혀 있다고.”
자신처럼. 품에 안긴 폭시처럼. 자신의 곁을 지켜주는 흑견처럼.
다 그랬다.
은호는 긴 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가 떴다.
“…너도 그렇잖아?”
꺼낸 말과 함께 은호의 눈빛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눈만 감아도, 그때, 그 기억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서 이러는 거잖아.”
은호는 다시 하이프를 보았다.
샛노란 나비를 짊어진 하이프는 마치 모든 게 무너진 것처럼 보였다.
“날 동정하지 마. 나는 아직 아무것도…….”
“끝났어, 친구야.”
“아니야.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어. 아직 끝나지 않았어!”
“아니. 너는 당분간 이곳을 나갈 수 없을 거야. 그러니까 끝났어.”
“뭐…?”
“이 숲이, 네가 나가는 걸 허락하지 않을 테니까.”
은호의 말이 끝나자마자 식물들이 움직였다.
감시하겠다는 의지가 벌써 느껴지자 하이프는 밀려오는 답답함에 질식할 것만 같았다.
“내가 말했지? 널 막을 거라고.”
은호는 손가락을 올렸다.
아직 하이프에게 폭시의 힘을 쓰지 않았다.
“…하지 마.”
은호의 손가락과 함께 몸에 붙은 나비가 날갯짓하자 하이프는 두려워졌다.
가지고 있는 저 힘으로 금방이라도 모든 걸 빼앗을 것만 같았다.
“아니. 너도 폭시를 건드렸으니까, 내 마음대로 할 거야.”
“네 앞에서 사라질게. 정말이야! 다시는 네 앞에 나타나지 않을게!”
“복수하고 싶은 인간이 있지? 거기까지 도달하려고 레드독을 만들었잖아.”
“알고 있다면 그러지 마. 내 반쪽이… 내 영혼을 그 인간이 찢어놨어. 아직도, 내 남편은… 내 모든 건, 그 인간의 방에 박제된 채 걸려 있을 거라고!”
시체도 찾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품에 끌어안지도 못했다.
“네가 하고 싶은 일, 내가 할게.”
은호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예상하지도 못한 말에 하이프는 몸이 얼어붙은 듯 숨마저 삼켰다.
“그러니까 너는 잠깐 내려놔.”
은호는 손을 뻗어 하이프의 머리를 세게 짓눌렀다.
그 위로 노란 꽃잎이 떨어졌다.
“뭐, 뭐 하는 거야?”
하이프는 당황했다.
죽이는 것도 아니고, 힘을 빼앗는 것도 아니고, 낯선 감정을 일으켰다.
눈물이 핑 돌았다.
이건 싫었다.
이런 약한 감정은 끔찍했다.
“뭘 하긴? 너도 당해보라고.”
은호는 하이프가 폭시에게 그랬던 것처럼 멋대로 하이프가 숨긴 감정을 꺼냈다.
무너지려는 하이프를 다른 환수들처럼 쓰다듬거나 보듬어주지 않은 채 윈디드를 보았다.
“삐약아.”
“그래, 말썽꾸러기.”
“지금 왕에게 데려갈 거야?”
“네 의견을 존중할게.”
“나중에 데려가 줘. 목표가 같아서 그래.”
하이프가 노리는 놈들은 자신도 무너트려야 할 적이었다.
어차피 데려갈 거라면 모든 미련을 버릴 수 있게 적을 무너트린 뒤가 나았다.
“그럴게.”
“고마워, 삐약아.”
은호는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 폭시를 안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찾아올게.”
눈물을 흘리는 하이프를 한 번 쳐다본 뒤에 은호는 고민도 없이 흑견의 등에 올라탔다.
“가자, 멍멍이 형님. 다시 형한테 돌아가야 하니까.”
해야 할 일이 또 하나 있었다.
흑견은 말없이 달렸다.
은호가 힘없이 앞으로 쓰러질 때쯤에 속도를 늦췄다.
옆에서 같이 달려가던 윈디드가 깜짝 놀랐다.
“…마, 말썽꾸러기?”
“아까부터 이랬다.”
하.
흑견은 짜증을 꾹 눌러 담았다.
“괜찮아. 그냥 열이 좀 나는 것 같아.”
“그냥 열이 아니다. 저번과 비슷하다.”
권석현인지 뭔지 하던 인간과 싸우고 난 뒤와 증상이 상당히 비슷했다.
“나 때문에…….”
은호는 폭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꼬리를 잡았다.
폭시가 깜짝 놀라며 은호를 보았다. 그제야 그가 웃었다.
“고마워, 폭시야.”
“나는, 아무것도 못 했는데. 그냥 울기만 했는데.”
폭시가 울먹거렸다.
“무슨 소리야? 네가 해낸 거야. 그 나비, 너의 힘이었으니까.”
“내… 힘이라고?”
“나하고 폭시의 힘 말이야.”
폭시의 눈이 동그랗게 변하자 은호는 누운 채로 키득거렸다.
“나하고… 은호의 힘?”
“맞아.”
“하지만 하이프는?”
폭시는 다 물어보지 못했다.
그냥 생각만 해도 여러 감정이 밀려왔다.
도와주고 싶고, 도와주고 싶지 않았다.
“괜찮아. 하이프를 포기한 적 없어. 하지만 보듬어주지 않을 거야.”
“…왜?”
“폭시를 건드렸잖아.”
조금도 망설이지 않는 그 눈빛과 목소리에 폭시는 더 울먹거렸다.
“그러니까 폭시야. 그 무엇도 네 탓이라고 하지 말아줘. 오늘은 정말, 정말 잘했으니까.”
은호는 다시금 폭시를 소중히 안았다.
* * *
“…음.”
태호가 머리카락을 위로 올렸다.
아무리 은호를 믿고 단출하게 왔다고 해도 흑견의 등에 누워오는 모습을 보자 심장이 조여오는 것만 같았다.
“나, 왔어요. 금방 왔죠?”
환하게 웃는 저 모습에 태호는 속이 뒤틀리는 것만 같았다.
“……아니, 은호 씨.”
“이제 친구들 만나러 갈까요?”
기어코 속을 때리는 말에 태호는 얼굴을 쓸었다.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