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141)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141화(141/302)
141화. 폭시는 행복하다
“…뭘 그렇게 고민하십니까?”
가을이 태호를 슬쩍 보았다.
조금 전부터 굉장히 저기압 상태였다.
이번에 환수 관리국에서 인도받은 환수들까지 해서 연구소 주변에 있는 환수들이 꽤 늘어났기에 신경 쓸 게 더 많아졌다.
연구소가 설립된 이후로 이만큼 환수들이 많았던 적이 있을까.
“환수들의 환경 조정 때문이십니까? 그거라면 거뜬합니다. 박사님께서 열심히 사들인 땅이 아직 많습니다. 예전에 이걸로 뭐라고 말씀드렸던 사실이 미안해질 정도입니다.”
연구소로 처음 왔을 때 만해도 돈이 복사되는 사람처럼 마구잡이로 땅을 사들였던 태호의 행동에 기가 막혔다.
저 사람은 미친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역시 보안 문제겠죠?”
가을은 태블릿을 조작하며 연구소 주변에 달린 초소형 카메라를 이리저리 살폈다.
은호한테 줬다는 그런 카메라와 비슷하긴 하지만, 달랐다.
초능력을 감지하는 센서까지 달려 있어 곧바로 경고 시스템이 켜졌다.
저기에 국가에서 지원받은 돈의 절반을 투자했다고 해도 틀리지 않았다.
현재 기업이나 여러 곳에도 쓰이긴 했지만, 연구소에서 쓰는 것만큼은 아니었다.
태호가 의도적으로 기술에 제한을 걸곤 했으니까.
바쁘게 손가락을 움직이던 가을이 아주 잠깐 웃었다.
초능력을 파악할 수 있는 물건. 이렇게 말하는 건 참 쉬운데, 그걸 실현할 수 있게 하는 건 너무도 어려웠다.
세상에 여러 초능력이 존재하고, 사소한 것부터 큰 것까지 너무도 많아도 보지 않은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초능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초능력자가 아님에도 말하는 대로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박사님이지.’
생각하면 태호와 참 오래됐다 싶었다.
자신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준 사람이 태호였고, 자신 역시 이를 받았다.
가치를 아는 사람이기에 자신의 가치 역시 알아줄 거라 생각했다.
‘어쨌든, 이참에 연구소를 다시 한번 살펴봐야 하나.’
과거에 딱 한 번, 연구소가 털린 적이 있었다.
미숙했던 자신의 실수였다.
모두가 환수를 좋아해서 이곳에 왔다고 믿었던 멍청함이기도 했다.
계속 태호의 대답이 없자 가을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아니면… 하이프 때문입니까?”
연구소가 털렸을 때, 수십 마리의 환수가 납치가 된 적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하이프였을까.
“듣고 있습니까?”
“…아아, 그것도 있긴 하지만, 은호 씨 말이야. 지금 자고 있겠지? 때리려면 지금 맞지?”
“…….”
가을은 침묵했고, 천천히 미간이 찌푸려졌다.
“지금.”
꽤 화가 난 목소리에 태호가 깜짝 놀라며 가을을 바라보았다.
“가을 씨가 왜… 화가 났을까?”
“장난하십니까?”
가을은 그대로 일어나 태호에게 다가왔다.
그 걸음이 너무도 무서웠다.
“…가, 가을 씨? 말로 할래? 말로.”
“오늘 직접 검토하셔야 할 것들을 바로 보내겠습니다.”
“어……?”
“제가 오늘 너무 바쁠 예정이라서요.”
그대로 등을 돌리고 나가는 가을을 보며 입이 벌어졌고, 이어 세게 닫힌 문소리에 태호는 눈을 살짝 감았다.
“……하.”
태호는 등받이에 기대며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러지 않으면 가을은 분명 끊임없이 생각할 게 뻔했다.
어쩌면 생각이 지하를 파고 들어갈지도 몰랐다.
‘연구소가 털린 그때, 납치당했던 환수 중 하나가 하이프였다니.’
몇 년 전, 연구소가 털린 적이 있었다.
아직 이지혜가 국장이 되기 전 환수 관리국 국장에게 인도받은 환수들이었다.
엄연히 절차대로 인도받아야 하지만, 과거에 벌어진 흑견 사태를 공론화했다는 이유로 환수 관리국에서는 내부 치료 설비로도 충분하다는 이유로 이를 들어주지 않았다.
정부의 힘을 빌려 환수 관리국을 압박해 몇 번 정도 양도받았을 때, 누군가에게 연구소가 털렸다.
그 뒤로 환수 관리국은 연구소의 보안 문제를 거론하며 양도조차 거부했다.
‘그때, 난리도 아니었지.’
가을이 초능력을 사용해 모든 연구소 직원의 정보를 털어버렸고, 스파이가 있다는 걸 알아내지 않았는가.
―제가… 좀 더 빨리 확인했어야 했습니다. 여기는 모두가 환수를 아낄 거라 생각했던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그 당시, 가을이 얼마나 상처받았는지 왜 모를까.
환수 관리국도 털어버리겠다는 걸 겨우 말렸다.
지혜가 국장으로 오기 전까지 환수를 양도받지 못하고, 연구소로 오는 환수들도 없고, 자체적으로 환수를 구출해 병상만은 지켰다.
그런 일이 벌써 옛날처럼 느껴졌다.
은호 덕에 연구소로 왔던 환수가 있었다는 걸 알았고.
환수 관리국과 사이도 괜찮아졌고.
아픈 환수들을 위해 더 많은 것들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라는 걸 생각하고 있었다고 말해야겠지?’
태호는 가을이 양도한 온갖 자료를 보며 기겁했다.
이 정도 양이라면 오늘도 집에 갈 수 없었다.
바로 휴대전화를 걸어 전화했지만, 받지 않았다.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가을 씨!”
태호는 애절하게 가을을 불렀다.
* * *
“…폭시야?”
은호는 침대 밑을 바라보았다.
라비가 눈을 뜨자 은하수를 닮은 눈동자가 보였다.
“내가 있는지 어떻게 알았더냐?”
라비가 즐겁게 꼬리를 흔들며 배시시 웃었다.
“몰랐는데?”
은호가 내뱉은 말에 라비의 귀가 머리에 착하고 붙었다.
“왜 몰랐더냐?”
라비의 눈이 살짝 날카로워졌다.
“그거야 여긴 다른 병실이니까.”
은호는 손을 뻗어 라비를 붙잡았다.
라비의 눈이 커졌다.
아차.
가장 중요한 걸 잊어버렸다.
병실은 노는 곳이 아니라고 은호가 몇 번이나 말했는데.
어깨가 쪼그라든 채 은호를 위로 올려다보았다.
“왜 다른 애들 병실에 있는 건데, 사고뭉치야?”
“……숨기 놀이 중이다.”
“그럼, 폭시도 같이하는 중이야?”
“아니. 폭시는 같이 안 한다고 했다. 폭시는 나갔느니라.”
“혹시, 어디로 갔는지 알아?”
“그건 모른다. 아! 오늘 뭔가 폭시가 폭시답지 않…….”
위에서 천 같은 게 스르르 내려오자 라비는 말을 멈췄고, 침대 밑을 보려고 웅크려 있던 은호마저 숨을 참았다.
“찾았다, 까망이!”
고스덕이 침대에 통과해서는 빙그르르 돌았다.
“아아앗! 아니니라! 은호가 말을 걸었다!”
라비가 억울한 표정으로 고스덕에게 매달렸다.
“헤인이가 그러는데, 술래가 찾으면 되는 거래.”
“은호가 나한테 말을 걸지 않았다면 나는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니라.”
“그건 맞긴 한데, 사고뭉치가 말했으니까, 땡!”
은호는 손가락으로 라비의 코를 살짝 건드렸다.
“그건 치사하다! 지금 헤인이한테 물어보겠다.”
“헤인이한테 숨바꼭질을 알려준 건 난데? 그 규칙도 내가 다 꿰고 있지.”
은호가 크게 웃었다.
꼬리가 바짝 서며 라비의 입이 오므라졌다.
“은호는 치사하다!”
“그래? 지금부터 더 재미있을 텐데?”
라비의 귀가 꿈틀거리며 침대 밑에서 나왔다.
금세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군침마저 살폈다.
“뭐가 더 재미있어지더냐?”
“한자리에 있는 거 지겨웠지?”
“그렇진 않았다. 뭔가 가슴이 콩닥거렸다. 하지만 가만히 있는 건 싫다!”
“이제 고스덕을 따라다니면서 숨어 있는 친구들을 지켜보면 돼. 대신, 다른 친구가 어디에 숨어 있다는 건 알리면 안 되는 거야.”
“지켜볼 수 있더냐? 그건 신난다!”
이히힛.
라비가 앞발을 동동거렸다.
“그럼 갈까, 까망아?”
고스덕이 앞발을 내밀자 라비가 꼬리를 내밀었다.
“응!”
“둘 다, 재미있게 놀아.”
은호는 손을 흔들었다.
“알겠느니라.”
“다 잡고 신나게 자랑하고 올게.”
라비와 고스덕의 대답을 들은 뒤, 그들이 떠나자 은호는 잠깐 빈 침대에 걸터앉았다.
“왜 바보처럼 찾아다니는가? 인간한테 그게 있지 않은가.”
흑견이 밖으로 나와 얼굴로 은호의 머리를 건드렸다.
“태블릿 씨로 쫓으면 되는 거 알고 있어. 그런데 음, 뭔가 자연스럽게 만나고 싶었어.”
하이프를 만난 뒤로 폭시의 기분이 급격하게 가라앉았다.
뭘 생각하고 있는 걸까.
“인간.”
“응?”
“지금 인간이 누굴 걱정하는지 모르겠다.”
“폭시를 걱정하지? 뭐야, 그것도 몰랐어?”
“말 돌리지 마라.”
흑견의 앞 발가락이 꼼지락거렸다.
다 알면서 저러니 머리카락을 헝클어주고 싶었다.
“열이야 내리는 거고, 나는 진짜 괜찮아.”
“그 존재의 뼈라도 분질러주고 싶었다.”
“나는 뼈까진 아니고, 한 대 때려주고 싶었어.”
“그러지 그랬는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그러려고 했는데, 그냥 생각이 나더라.”
“누가 생각이 났는가?”
“내가.”
은호는 짧게 대답한 뒤, 입꼬리를 올렸다.
“태블릿 씨.”
태블릿이 가방에서 나왔다. 손에 쥔 채로 말을 이어 나갔다.
“멍멍이 형님도 뭔가 복잡할 거고.”
“나는 복잡한 건 없다.”
그저 은호가 꺼냈던 말이 신경 쓰일 뿐이었다.
저 인간도 자신하고 똑같았으니까.
“우리 멍멍이 형님은 거짓말쟁이네. 눈에 다 보이는데?”
“시답잖은 생각이다.”
“그럼, 삐약이랑 폭시만 복잡한 걸로 하지 뭐.”
“병아리를 거기다가 꼭 넣어야 하는가?”
“당연하지. 아! 마침, 삐약이하고 같이 있네?”
은호는 태블릿을 가방에다가 넣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앞으로 몇 걸음 가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내 슬픔은 멍멍이 형님을 만난 뒤로 다 털어냈어. 그러니까 괜찮아.”
씩 웃고는 병실을 빠져나갔다.
그 해맑은 걸음걸이에 고개를 저으려던 흑견은 잠깐 멈칫거렸다.
―멍멍이 형님. 전에도 말했는데, 나를 구한 건 멍멍이 형님이야.
흑견은 문득 그 말이 떠올랐다.
뭘 구했다는 걸까.
“안 가? 안 가면 나 혼자 간다?”
묘하게 뭔가 찝찝했지만, 은호의 재촉에 흑견은 뒤를 터덜터덜 따랐다.
* * *
“…왜 여기에 있어, 작은 친구?”
윈디드가 폭시 옆에 착지하며 물었다.
늘 다른 존재들에게 둘러싸였던 폭시이기에 무척 낯설었다.
어딜 봐도 주변에 그냥 꽃이 핀 나무밖에 보이지 않았다.
“……은호가 나를 싫어할까 봐.”
“말썽꾸러기가? …말썽꾸러기를 말하는 거 맞아?”
“…응.”
폭시가 고개를 끄덕이자 윈디드는 눈을 크게 떴다.
은호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설령 그럴 이유가 있어도 작은 친구한테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을 텐데?”
“정신의 힘이 얼마나 위험한지 봤잖아. …은호가 진짜로 보고 말았어.”
폭시는 웅크린 채로 꼬리에 얼굴을 묻었다.
어떤 얼굴로 은호를 보면 좋을지 몰랐다.
정신을 건드리는 힘은 너무도 위험했다. 아주 쉽게 타인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런 적 없어. 마음을 얻으려 힘을 쓴 적이 없다고.’
은호라면 무조건 믿어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만약에 아니라면.
폭시는 그 ‘만약’이 너무나도 무서웠다.
“그런 거였어?”
갑자기 들려오는 은호의 목소리에 폭시는 깜짝 놀랐지만,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은호는 그림자에서 나와 자연스럽게 폭시의 옆에 앉았다.
“…일부러 말 안 한 거 아니야, 작은 친구.”
윈디드가 어색하게 웃음을 흘렸다.
온다는 걸 알았는데, 이걸 어떻게 전해야 할지 몰랐다.
“확실히 폭시가 걱정할 만큼 정신의 힘은 아주 무서웠어.”
나른하게 들려오는 은호의 말에 폭시는 더 몸을 웅크린 것도 모자라 귀를 닫아버렸다.
꼭꼭 숨겨둔 기억을 하이프가 열어버렸다.
‘나보고 끔찍하다고 말할 거야.’
감정을 읽는다는 이유로, 정신의 힘을 가졌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무언가를 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그저 슬퍼 보이는 친구를 돕고 싶었다.
이 작은 바람이 잘못됐을까.
―…뭐야 너, 지금까지 우리를 조종한 거야?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그 슬픔을 가라앉힐 수 있다고 말했을 뿐이었다.
―그게 정말이야? 어쩐지, 다들 널 좋아할 때부터 알아봤어. 진짜 소름 끼친다.
걱정은 왜곡되어 다른 말로 수없이 퍼졌다.
자신이 다른 애들의 정신을 조종했다고.
소문이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을 때, 자신은 혼자가 되어 있었다.
이번에는 아니겠지.
다음번에는 아니겠지.
그렇게 믿으며 다른 종족과 친해지고, 무리에 들어가고, 또 이 힘 때문에 쫓겨났다.
자신의 친구들을 만나기 전까지 늘 그랬다.
자신과 친구들이 인간들에게 붙잡히고, 자신만 탈출했고.
그리고 은호를 만나고, 다른 애들을 만났다.
‘……제발. 제발 나를 쫓아내지 말아줘!’
폭시는 간절히 빌며 몸을 떨었다.
이곳은 달랐다. 힘을 써도 한 번도 자신을 미워한 적 없는, 늘 그리던 그런 곳이었다.
“그런데 폭시가 있으면 든든하지.”
귀를 간질이는 은호의 말은 꼭 모든 걸 깨부수는 소리처럼 들려왔다.
폭시는 귀를 열고, 고개를 살며시 들었다.
“그렇지, 폭시야?”
“…….”
“나는 폭시가 내 감정을 알아줘서 너무 고마운데?”
‘…정말?’
폭시는 그 말조차 물어보지 못했다.
“호수에 놀러 갔을 때, 폭시가 내 손을 잡고 나한테 꿈이 아니라고 말해준 거 기억해?”
폭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
“고마웠어…? 정말?”
폭시의 눈동자에 눈물이 차올랐다.
“당연하지. 폭시는 무조건 알고 있겠지만, 내가 감정을 잘 숨기는 편이야.”
“맞다.”
흑견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크게 끄덕이기에 은호는 낄낄 웃었다.
“봤지? 멍멍이 형님도 인증했잖아.”
“그… 말썽꾸러기? 그건 별로 즐겁게 이야기할 거리가 아닌 것 같은데?”
윈디드는 은호의 말이 살짝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자 애써 웃었다.
“혹시 들어봤는지 모르겠는데, 감정을 숨기면 여기가 곪아.”
은호는 손가락으로 가슴을 가리켰다.
폭시의 눈이 커지자 은호는 바로 작게 속삭였다.
“곪으면 사람은 큰일이 나.”
차마 죽는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은호가, 큰일이 나……?”
폭시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지만, 은호는 이미 내뱉은 말을 주워 담지 않았다.
“조금, 그렇겠지?”
다만, 혹시 몰라 약하게 줄일 뿐이었다.
하지만 폭시가 은호에게 급히 매달리며 울었다.
엉엉 소리까지 내자 은호는 당황했다.
이게 이렇게까지 울 일이라니.
‘…말실수했다.’
식은땀이 흐를 것만 같았다.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흑견의 앞 발가락이 은호를 흔들었다.
“정말인가? 그게 정말인가? 대답하거라, 인간!”
“자, 잠깐만, 멍멍이 형님!”
폭시는 울고, 흑견이 몸을 흔들며 재촉하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은호는 도와달라는 눈으로 윈디드를 봤지만, 뭔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삐약아, 도와줘! 이건 고민할 거리도 아니야! 그건 너희도 똑같잖아?’
“…그렇다는 건 누가 말썽꾸러기의 감정을 봐줘야 한다는 건데.”
자신의 마음을 읽었는지 아닌지 몰라도 윈디드가 슬쩍 흘린 말을 은호는 날름 주워 먹었다.
“그럼, 내 옆에 누가 있어야 할까?”
“…나!”
폭시가 울며 외쳤다.
“내가 봐줄 거야! 내가 은호 감정을 봐줄 거야!”
“봐, 폭시야? 넌 내게 엄청난 고마움이라니까. 네가 날 살린 거야.”
“…….”
그 말에 폭시는 고개를 올렸다.
은호와 눈이 마주치자 감정이 피어올랐다.
즐거움.
신남.
고마움.
그리고 사랑스러움.
어딜 봐도 나쁜 감정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널 싫어하거나, 미워하는 일은 절대로 없어. 약속해.”
은호가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그게 인간끼리 하는 약속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정말…? 정말로 나, 싫어하지 않아? 정신을 조종할 수 있는데. 내가 못된 마음을 먹어서… 은호한테 나쁜 감정을 심을 수도 있는데?”
“그렇다면, 네가 아니라 내가 나쁜 짓을 한 게 아닐까?”
“은호는 그렇지 않아! 은호는 절대 그런 짓 안 해!”
폭시가 고개를 크게 흔들며 부정하자 은호는 웃음을 터트렸다.
“네가 날 믿는 것보다 나는 널 더 믿을 거야. 그러니까, 내 옆에서는 울어도 돼. 투정도 부려도 되고.”
좀 더 아이답게.
그렇게 자라났으면 좋겠다 싶었다.
은호가 폭시를 쓰다듬자 폭시는 너무도 오랜만에 더는 밀려드는 감정을 억누르지 않았다.
기뻤다.
너무 기뻐서 폭시는 아이처럼 서럽게 울었다.
토닥토닥.
포근하게 밀려드는 손길에 폭시는 알아버렸다.
그저 잠깐 머물 거라 생각했던 은호는 어느새 자신의 집이 되어버렸다는 걸.
아주 크고, 따뜻한 보금자리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