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14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142화(142/302)
142화. 그것 또한 다 지나간다
“…왜 왔는가?”
공간을 넘어오던 은호는 그 물음에 미소를 지었다.
호수 앞, 말의 형상을 한 환수가 있었다.
털 대신 몸에 자라난 푸르른 잎 사이마다 분홍 꽃이 싱그럽게 피어나 있었다.
종은 산마고, 이름은 세티아였다.
“네가 생각나서. 그리고 가끔 들린다고 했잖아? 그게 오늘인 거지.”
“울지 않았다.”
“알아. 그런데 바닥에 못 보던 꽃잎이 너무 많네.”
은호가 넌지시 건넨 말에 세티아는 앞발로 꽃잎을 치우며 호수를 바라보았다.
이래서 눈물은 참 번거로웠다.
“왜 혼자 왔는가? 어둠에서 태어난 존재는 어디로 갔는가? 다른 애들은?”
“멍멍이 형님이 없는 걸 어떻게 알았어?”
은호는 깜짝 놀랐다.
“이곳은 내 영역이다. 내가 보지 못하는 건 없지.”
“신기하네. 다른 애들은 모르던데.”
“어둠에서 태어난 존재가 너를 떠날 리가 없을 텐데.”
세티아의 물음에 은호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막지 못했다.
“사실은 멍멍이 형님이 산책을 떠날 때, 몰래 왔어. 지금 강제 휴가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그래.”
“그래서 다른 애들은 어디 갔는가?”
“친구야. 솔직히 말해 봐. 나보다 다른 애들이 더 보고 싶었던 거지?”
은호가 넌지시 묻자 세티아는 가볍게 웃었다.
사실 웃고서 살짝 놀라기도 했다.
웃음이 더는 나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신기해도 잘도 나왔다.
“너도 말해보거라. 무엇이 궁금해서 왔지?”
“궁금한 게 없는 건 아닌데, 진짜 널 보러 왔어. 그리고 드넓은 호수를 보려고.”
은호 역시 호수로 고개를 돌렸다.
“…고맙다.”
세티아가 길게 말을 내뱉었다.
그 숨소리에 많은 게 숨어 있었다.
“사실 다른 애들도 데려오려고 했는데, 네가 귀찮을까 봐 그랬어.”
“조금도 귀찮지 않다.”
“그래? 그러면 일단 이것부터 먹어.”
은호는 당근을 꺼냈다.
아주 가득.
와르르 쏟아지는 당근을 보며 산마는 고개를 살짝 내렸다.
태블릿에게 산마가 뭘 좋아하냐고 물으니 당근과 비슷한 거라고, 그냥 당근을 들고 가면 된다고 했다.
뭔가 애매모호한 대답이었고, 동시에 환수가 원래 살았던 곳에도 그런 게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 신기했다.
“네가 좋아하는 거랑 비슷한 거래. 먹는 거 보고 결정하려고.”
은호는 자리에 털썩 앉았다.
“너는 고집이 세구나.”
“그런 말을 요새 좀 듣고 있는데, 놀랍게도 고집 같은 건 없는 편이야.”
“다시 생각해봐도 나쁘지 않겠다고 충고하지.”
“알았으니까, 얼른 먹어. 원래 잘 먹어야 해. 경험담이니까.”
“…그런가. 경험담인가.”
“맞아. 경험담이야.”
은호는 덤덤하게 대답하고는 다시 당근을 내밀었다.
“먹은 게 없으니 위액이 나오더라. 속이 다 헐어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그래서 그렇게 작은가?”
허.
은호는 세티아의 말에 헛웃음을 흘렸다.
세티아가 자신보다 큰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말해버리면 자신은 뭐가 되는가.
“나도 인간 중에 큰 편이야.”
“그런가?”
“그래. 내가 너만큼 컸다면 뭔가 좀 웃기지 않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은호는 그 대답에 활짝 웃으려다 애써 정색했다.
이렇게 휘말릴 순 없었다.
“시간 벌지 말고, 얼른 먹어. 아무것도 못 먹었지?”
세티아는 은호가 내민 당근을 보다 말고 숨을 내쉰 채 자리에 앉았다.
“고집불통 친구가 가니, 또 고집불통이 찾아왔다니.”
“인생이 그렇더라고. 물이 흐르듯 또 다른 인연이 찾아오더라.”
“다 저물어간 늙은이처럼 이야기하기엔 어리다는 걸 안다.”
“내가 좀 고생해서 그래.”
“그래 보였다.”
세티아는 당근을 물어 우물거렸다.
묘하게 얄미웠다.
“그런데 내가 이름을 불러도 돼?”
“아직 덜 성장했는가?”
“그게 무슨 말이야?”
“너는 그게 가능할 텐데?”
“응…?”
“자연이 너를 반기지 않는가.”
“아니. 날 되게 싫어하는데?”
“……?”
세티아는 먹던 당근을 다 흘릴 만큼 매우 놀랐다.
이렇게까지 놀란 건 처음이라 은호는 혹여 자신이 뭐라도 실수한 게 아닌가 싶었다.
“…왜 그렇게 놀라?”
“너는 자연의 대리자이다. 자연이 너를 싫어하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아! 마침 잘 됐다. 그게 대체 뭐야? 나를 그런 식으로 꽤 많이 부르더라?”
초능력을 검사하다 말고 목소리가 굉장히 좋은 어떤 존재가 자신을 제일 처음 그렇게 불렀다.
“너는 자연과 가장 가까운 자다. 그래서 우리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거지. 지금 내 눈에 너의 뒤에 펼쳐진 수많은 자연이 보인다.”
은호는 봄 그 자체였다.
지금도 수많은 자연이 그를 보고 있었다.
왜 이걸 느끼지 못하는 건가.
‘…아, 드루이드를 말하는 거야? 왜 헷갈리게 용어가 달라?’
은호는 그 말을 듣고 바로 알아차렸다.
솔직히 여기에 대치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으니까.
이제야 속이 다 후련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진짜 나를 싫어하더라고. 좀 더 자세히 말하면 되게 다양한 반응이 나왔어. 날 엄청 싫어하는 애들도 있고, 왜 이제 왔냐고 화를 내는 애들도 있고, 내 분노를 공감해달라는 애들도 있고. 어쨌든, 나를 별로 좋아하진 않아.”
“그건 이상하다. 물어보거라.”
세티아는 다른 당근을 먹으며 말을 꺼냈다.
“누구한테 물어봐?”
“너의 뒤에 하얀 꽃과 검은 꽃을 가진 나무가 보인다. 그 존재에게 물어보거라.”
“…….”
“왜 그렇게 놀라는가?”
“…방금, 뭔가 무당 같았어.”
진짜 농담 아니라 소름이 전신을 휩쓸었다.
그 나무마저 볼 줄이야.
“그게 무엇인가?”
“영혼을 보는 인간이라고 해야 하나. 여기도 있는지는 모르겠어.”
“만약에 있다면 나도 만나보고 싶구나.”
세티아는 아주 잠깐 그리움을 눈에 담았다.
영혼이라도 보고 싶은 그 마음이 더욱 깊어졌다.
“아, 이거 이름이 뭐라고 했는가?”
“당근이라고 해.”
“다음에도 가져오거라.”
다음을 기약하는 말에 은호는 세티아를 보며 웃었다.
소중한 사람을 보내는 그 마음이 얼마나 슬픈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렇게 하나씩 무언가를 입에 넣는다는 행동이 너무도 다행이었다.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네.”
은호는 손을 뻗어 세티아를 쓰다듬었다.
잔잔하게 부는 바람을 따라 호수가 살짝 흔들렸고, 그 안으로 바닥에 뒹굴고 있던 꽃잎이 떨어졌다.
찬란하게도 아름다운 광경을 눈에 담다 말고 호수로 다다다 움직이는 형체를 보자마자 은호의 눈썹이 올라갔다.
무언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으니까.
되게 익숙하다고 생각하던 차, 주머니 속에 손을 넣었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위그드라실! 호수는 안 돼!”
은호는 곧바로 바로 튀어 나갔다.
그 모습을 보며 세티아는 당근을 씹었다.
‘뭔가 시끌벅적해지니 좋구나.’
세티아의 두 눈이 포근하게 감겨왔다.
* * *
‘…나중에 그 나무한테 가서 물어봐야겠네.’
궁금증이 턱 밑까지 밀려올 것만 같았다.
위그드라실을 손에 쥔 채로 은호는 슬쩍 방으로 돌아왔다.
왼쪽을 보고 오른쪽을 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좋았어. 아무도 내 방에 안 왔네.’
가기 전에 자신의 방을 찾아온 레비아탐에게 잔다고 말했기 때문일까.
은호는 침대에 누워서는 위그드라실을 보았다.
“위그드라실. 너, 거기 들어갔다가 빠지기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막 가?”
위그드라실은 고개를 기울였다.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다 이내 손을 휘저었다.
“아니라고?”
위그드라실이 고개를 끄덕였다.
손으로 싹을 가리켰다.
그리고 뭔가를 머리 위로 붓는 듯한 흉내를 내며 은호의 손아귀에서 빙그르르 돌았다.
“물을 붓고 싶었던 거야?”
위그드라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호수를 보았다.
다시 봐도 거대했다. 다른 물보다 특별하다는 생각에 그만 신나게 달려 나갔다.
새싹을 위로 당긴 채 동시에 붕붕 뛰었다.
뭔가 자라고 싶다는 행동처럼 보여 은호는 위그드라실을 쓰다듬었다.
“그러지 않아도 돼. 어서 빨리 자라지 않아도 돼.”
위그드라실은 고개를 왼쪽과 오른쪽으로 기울이다 은호의 손가락을 쥐었다.
무슨 마음인지 왜 모를까.
“그렇게 날 도와주고 싶었어?”
위그드라실은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 위에 새싹이 축 늘어져 뭔가 시무룩해 보였다.
사실 위그드라실에게 피를 주고, 물도 줬지만, 이 이상 자라나지 않았다.
뭔가 이유가 있을까.
‘설마, 위그드라실이 자라지 않는 이유가 나 때문인가…?’
세티아에게 자연의 대리자라는 말을 듣고 난 뒤라 그런지, 무척 신경 쓰였다.
자신이 워낙 식물들에게 냉대받는 영향이 이렇게 미치는 게 아닐까.
지이이이잉.
은호가 말을 꺼내려던 차, 갑자기 휴대전화가 울렸다.
태호였다.
이렇게 전화를 할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이 하도 태호의 집무실에 죽치고 있을 뿐, 진짜 바쁜 사람이었다.
“형. 무슨 일 있어요?”
“지금, 연구소로 가면 되나요?”
“형. 백수는 남는 게 시간이에요.”
은호는 활짝 웃었다.
* * *
“…그러니까, 환수 보호 구역으로 간다는 거죠?”
은호는 뒷자리에서 앞자리를 향해 몸을 살짝 숙이며 물었다.
핸들을 잡은 태호는 난감함을 드러냈다.
“그렇게 신나는 일은 아닐 텐데? 처음으로 벌어진 일이라 굉장히 난감하던 차인데?”
“그럴 수 있는데, 맨날 듣기만 했던 환수 보호 구역으로 간다니까 설레긴 하잖아요?”
처음부터 쭉 들었다.
환수 보호 구역.
보호종인 환수를 보호하고자 사람이 만들어 놓은 구역이었다.
철저하게 사람의 시각에서 만들어져서 인위적이며 조성된 환경에 맞지 않는 서식지를 가진 환수들이 밖으로 나가는 게 문제이긴 했다.
“처음은 아니잖아. 포이키 때, 이미 경험했는데?”
“그때는 입구만 발을 내디딘 거고, 그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진 않았잖아요? 이번에는 깊이 들어가야 한다면서요?”
“맞아. 제일 긴장되는 순간이기도 해.”
태호는 숨을 짧게 돌리며 핸들을 꽉 쥐었다.
주변이 환수 보호 구역으로 지정된 연구소와 환수 관리국하고 달랐다.
거기는 진짜 야생이었다.
“긴장까지 할 정도예요?”
“일단, 간단히 설명할게.”
태호는 자동 운전으로 바꾸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태호의 차 뒤로 연구소 차가 여러 대 줄 지어 다니는 걸 눈에 담은 뒤 입을 열었다.
“환수 보호 구역은 크게 3구역으로 이루어져 있어. 가장 안전한 A 구역. 여기가 은호 씨가 갔던 구역이야. 여기까지는 상대적으로 온순한 환수들이 있고, 가볍게 울타리 같은 걸로 막혀있어.”
“아, 그때 보긴 했어요. 생각나요.”
워낙 스쳐 가면서 봤기에 떠오르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포이키의 보금자리를 보러 가던 중 왜 이렇게 허술하나 싶은 생각을 했으니까.
“B 구역은 딱 중간 정도야. 여기부터 벽이 존재해. 좀 특별한 벽이지. 빛에 반사되어서 숲처럼 보이거든. 그래서 가까이 가지 않는 이상은 잘 몰라.”
‘벽이 있다고 해도 환수들이 나가지 않는다고?’
은호는 듣다 말고 밀려오는 이상함에 입이 간질거렸다.
“C 구역은 위험한 환수들이 존재해. 여기에서는 특별 관리가 들어가는데…….”
“잠시만요, 형.”
은호는 계속 듣다 말고 밀려오는 궁금증을 더는 이기지 못하고 잠깐 태호를 불렀다.
“환수들이 알아서 그렇게 해준다고요?”
적어도 자신이 아는 환수들은 그렇지 않았다.
빠져나오면 나왔지, 그렇게 해줄 거란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당연히 그냥이라는 건 없지. 여기가 싫어서 환수 보호 구역을 벗어난 환수도 있으니까.”
태호는 은호의 그림자를 가리켰다.
“흑견이 딱 그런 경우지.”
“혹시 그 환수 보호 구역을 지키는 환수들도 있는 거예요?
“내가 환수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지만, 존재해. 생각한 것보다 더 조직적으로 이루어져 있어. 그걸 자세히 알 기회는 거의 없어서 어디까지나 눈으로 본 결과로 추론할 뿐이야.”
“어째서요? 형이라면 A 구역이든, C 구역이든 자주 들락날락할 수 있는 거 아니에요?”
“…그곳에 있는 환수들이 우리를 거부하니까. 공격은 안 해. 하지만 시선만 봐도 알 수 있잖아?”
“아……. 그렇네요. 아주 따갑죠.”
은호는 얼마 전에 마주했던 하이프를 떠올렸다.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무거워졌다.
자신도, 하이프도 시간이 조금 필요하긴 했다.
“멍멍이 형님은 혹시 거기에 가봤어?”
“가봤다. 그곳에 아주 큰 존재가 있었다. 그리고 인간과 마주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곳에 머무는 존재들이 많았다.”
후자야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전자를 듣자 은호는 의아함을 느꼈다.
“멍멍이 형님보다 커다란 존재가 있어?”
“있다고 몇 번이나 말하지 않았나.”
멍청한 인간.
흑견은 왈칵 치솟는 짜증을 억눌렀다.
“산책할 때, 무슨 일 있었어?”
은호가 태연하게 묻자 흑견은 미간을 꿈틀거렸다.
산책하던 사이에 몰래 빠져나간 걸 자신이 정말 모른다고 생각하는 걸까.
몸에 세티아인지 뭔지 하는 존재의 냄새를 가득 베고 왔다.
“나갔다 온 걸 내가 모를 것 같나?”
푹하고 찌르는 그 소리에 은호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혹시 몰라서 섬유 탈취제도… 뿌렸는데.’
저 코가 개코가 아니라면 대체 뭘까.
“대, 대체 얼마나 큰 환수가 있는 거죠?”
은호는 말을 돌리며 태호를 보았다.
“바로 그 환수야!”
태호가 검지를 길게 뻗었다.
“…네?”
“그 환수가 지금 날뛰고 있거든. 은호 씨가 말려줘야 하는 환수야.”
쿠웅!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자동차 바닥에서 아주 큰 진동이 느껴졌다.
결코, 가벼운 진동이 아니었다.
은호는 창문에 매달려 밖을 보았다.
여기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벌써 범위 안에 들어왔네. 바로 이 소리를 내는 환수야.”
태호가 태연하게 말을 꺼내자 은호는 갑작스러운 충격에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형? 꼭 아파트가 움직이는 것 같은 흔들림인데요?”
“그것보다 좀 더 커. 조금 더.”
쿠웅!
다시금 밀려오는 진동에 은호의 눈이 가늘어졌다.
“……뭔가 사기당한 기분인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