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143)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143화(143/302)
143화. 그것 또한 다 지나간다(2)
“사기라니.”
태호가 크게 웃었다.
뭔가 은호에게 한 방 먹인 기분이라 이렇게나 속 시원할 수가 없었다.
“내가 가면서 말해준다고 했잖아?”
적어도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은호에게 처음부터 그렇게 알려줬으니까.
“형.”
“왜 그래?”
태호는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왜 여기에서 그 환수가 보이지 않는 거죠?”
창문에 붙어 있던 은호는 하늘을 보았지만, 여전히 드높게 펼쳐진 구름만 보일 뿐이었다.
“아까 말하려고 했던 C 구역에 있기 때문이야. 특별 관리가 되는 곳이라 고립된 세계 같다고 생각하면 돼.”
“거긴, 환수들의 자유 의지로 남은 거예요?”
“그렇다고 보고 있어. 나도 더 알려주고 싶은데, 유감스럽게도 내가 환수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그 이상은 몰라.”
“그럼, 그것도 내가 물어보면 되겠네요?”
“정말?”
“그렇죠. 이참에 구조도 파악해 보는 거예요.”
“…미쳤네.”
태호는 은호의 제안에 군침이 돌았다.
정말이지 연구원으로서 절대로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가슴에 불을 지피는 소리와 같았다.
“다른 것도 물어볼게요. 그런데 형.”
“그래, 은호 씨. 뭐든 말해 봐.”
“저 다른 사람들과 다른 길로 가나요? 눈에 띄는 건 자제하고 싶어서요.”
“…아차. 그렇지 않아도 은호 씨에게 물어볼 게 있었는데.”
“물어볼 거요?”
“연구소 직원들이 은호 씨를 봤나 봐.”
“저를요? 저 다른 구역에 있는데요?”
“이리저리 이동하다가 우연히든 뭐든 본 모양이야. 은호 씨는 원래부터 눈에 띄잖아?”
그 말에 은호는 괜히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역시 염색해야 하나.’
귀찮아서 내버려 뒀더니, 다른 사람 시선이나 끌고.
“어떻게 처리하길 원해?”
태호의 시선이 유독 밝았다.
겉으로라도 직원이길 바라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은호는 절대 백수를 지키고 싶었다.
“외주업체에서 온 사람이라고 해줘요.”
태호의 희망을 주저 없이 잘라버린 뒤, 개운한 표정을 했다.
“형. 이제 내가 봐야 하는 환수가 어떤 환수인지 알려줘요.”
“…그래야지.”
태호는 잔인하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랐지만, 이 이상 꺼낼 수 있는 소리는 없었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참 아까웠다.
* * *
쿵!
일정 주기마다 밀려오는 진동에 은호는 가다 말고 휘청거렸다.
덩달아 그의 그림자가 흔들렸다.
“…와. 와아.”
나오는 거라고는 감탄밖에 없었다.
도대체 얼마나 커다란 환수일까.
설렘이 밀려들었다.
“이쪽이야, 은호 씨.”
태호는 소위 말해 뒷길을 이용했다.
혹시 몰라 후드를 쓰고 얼굴도 마스크로 완전히 가린 상태였다.
“뒷길이 있었네요?”
“비상 탈출로 같은 기분이지.”
“그런데 여기도 사람이 있어요?”
지금 어딜 봐도 숲을 가로지르는 기분이라 태호가 어떻게 가고 있는지부터 신기할 정도였다.
뭔가를 보고 있는 것 같긴 한데, 봐도 알 수가 없었다.
“저기 환수 관리자가 지키고 있는 거 보여?”
태호가 왼쪽으로 손가락을 뻗고는 이내 오른쪽으로 옮겨갔다.
그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움직이던 은호는 뭔가 다른 곳보다 반짝거린다는 걸 알았다.
손전등의 불이라기엔 약했고, 은은한 반딧불 정도라 몰랐으면 몰랐는데, 이미 알아버리니 그 반짝거림이 묘하게 눈에 잘 들어왔다.
“형. 갑자기 든 생각인데요. 여기를 지키고 있는 환수 관리국 사람들이 환수 밀렵꾼과 손을 잡으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여긴 교대 시간이 그때마다 다르고, 배치되는 사람도 당일에 알게 돼서 뭐라도 해보려면 그냥 여기에 배치되는 모든 사람에게 손을 뻗어야 할걸? 그런데 이 배치도 한 달마다 바뀌어서 생각보다 까다로워.”
“그러니까 여기는 그래도 촘촘히 관리되고 있다는 거죠?”
의외였다.
여기까지 손을 뻗지 못한 건지, 뻗을 생각을 하지 않은 건지, 뻗어봤는데 실패한 건지.
무엇이 되었든 은호는 안도했다.
“일단 B 구역부터는 그래. A 구역은 상대적으로 도시랑 접점이 가까워서 수상한 움직임을 내지 못해. 은호 씨도 이제 환수 밀렵꾼이 활동하는 범위를 어느 정도 알고 있잖아?”
“주로 환수 보호 구역이 아닌 구역에서 벌어지고 있죠.”
“맞아. 그만큼 환수 보호 구역이 아닌 곳에서 꽤 많은 환수들이 존재하는 거지. 당장 은호 씨 집 근처에도 많잖아?”
“많죠. 아크가 자발적으로 돌아다니면서 관리해주고 있긴 해요.”
아크의 인상이 예전과 달리 많이 변했다.
레비아탐에게 사과한 뒤로 다른 애들한테도 직접 사과하며 돌아다녔다고 레비아탐이 말해주었다.
한 번 원수가 됐으면 사과받은 뒤에도 접점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레비아탐과 아크는 생각보다 훨씬 더 잘 지내고 있었다.
보고 있자니 참 흐뭇한 광경이었고, 아주 든든한 경비가 생겨 기분도 좋았다.
“…아크라면 그, 코카트레스 맞지?”
“맞아요.”
“코카…트레스가 뭘 한다고?”
“경비요. 인근 숲에 오는 친구들이 싸우거나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나 대신 혼내준대요.”
태호는 다시금 들려오는 은호의 말에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코카트레스는 포악하기로 소문이 나 있을 정도였다.
B와 C 구역에도 코카트레스가 있었다.
“개선이… 가능했다니.”
태호는 허탈함과 별개로 휴대전화로 메모했다.
이건 또 아주 중요한 정보였으니까.
“다음에 만나러 와요. 부를게요.”
“1:1로 보게 하는 거 아니지?”
태호는 은호를 넌지시 의심했다. 말도 안 되지만, 그럴 수 있는 사람이었다.
“개선이 됐는지 아닌지 확인하려면 1:1이 최고지 않아요?”
“내가 기절하는 꼴을 기어코…….”
“저기 뭐라고 하는데요?”
은호가 앞을 가리켰다.
반짝이는 빛이 더 강해지자 태호는 휴대전화로 뭔가를 입력했다.
“뭐 하는 거예요?”
“대화는 말로 하지 않아. 휴대전화로 연락을 주고받는데, 그 연락처는 매일 달라. 귀찮긴 한데, 이래야 맞는 거지. 그쪽에서는 내 연락처를 확인하고 대답해주거든.”
[환수 연구소 소장 설태호 및 동행 한 명입니다.]잠시 뒤, 문자가 왔다.
“여기서 기다리면 마중 와줄 거야.”
“그렇게까지 해요?”
“여긴 뒷문이라서 절차가 짧고, 동선도 짧아. 정문은 검사하고, 본인이 맞는지 확인하고 다 하거든. 그쪽으로 갈래?”
“아뇨, 어서 가요.”
은호는 태호를 재촉했다.
사실 뒷문을 당당하게 이용할 수 있는 건 태호의 이름값과 지혜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이런 훌륭한 형을 알게 되니, 왠지 자신이 더 기분이 좋았다.
* * *
문제가 생긴 C 구역까지 가는 건 금방이었다.
이미 B 구역에서 지혜와 서율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만큼 급한 상황이라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B 구역에서 지하에 숨겨진 비상 통로로 차를 타고 이동했다.
차량에서 내리자마자 지혜는 다시금 현재 상황을 언급했다.
“현재 산북은 계속 북서 방향으로 이동 중입니다. 이동하는 속도를 예상하건대, 앞으로 30분 뒤에 C 구역의 끝자락에 도달합니다. 여전히 무슨 이유로 움직이는지 파악되지 않습니다.”
“…아까보다 더 시간이 단축됐네요.”
태호가 걱정을 담아 이야기했다.
쿠웅!
그 거대한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오며 은호는 비로소 이 사태를 일으킨 산북이라는 이름을 가진 환수를 볼 수 있었다.
‘…아파트 수준이 아닌데?’
그냥 산 하나가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생김새는 거북이 같았지만, 등딱지 대신 숲이 존재했다.
움직일 때마다 흔들리는 나무를 보니 기분이 묘했다.
산북이 산 같이 느껴지는 건, 어쩌면 저 숲 때문일지도 몰랐다.
‘왜 날 부른지 알겠네.’
저만한 크기의 환수였기에 진짜 말 그대로 비상이었다.
누구든 스치기만 해도 사망이 아닐까.
“C 구역을 벗어나면 산북의 모습이 보일 겁니다. 사람들의 큰 혼란이 예상됩니다. 이미 C 구역에 있는 환수들이 탈출을 위한 움직임이 보이고, 추가로 C 구역의 벽이 무너지면 B 구역에 있는 환수들도 탈출할 가능성 역시 큽니다. 이런 식으로 일어날 연쇄적인 움직임을 막기 위해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이를 저지하기에는 산북이 너무도 큽니다.”
설명하는 지혜의 표정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차를 통해 이동할 때, 지혜는 산북이 다치지 않는 방향으로 해서 움직임을 최대한 저지하고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30분밖에 남지 않았다는 소리였다.
“서은호 씨. 이런 부탁을 드려서 죄송하다는 말씀부터 드리겠습니다.”
지혜는 은호에게 사과했다.
아무리 조금 더 편해졌다고 해도 이런 중대한 문제를 맡겼으니, 얼마나 심란할까.
무엇보다 은호는 공식적으로 일반인이었다.
“현재 이곳에는 저희뿐입니다. 그러니 자유롭게 이동하셔도 됩니다.”
은호에게 흑견이 있었다.
차로 이동하는 것보다, 자신이 데리고 이동하는 것보다 그편이 빠르고 편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제가 소장님과 서율을 데리고, 조금 천천히 따라가겠습니다.”
이어 지혜는 은호가 주변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는 걸 알렸다.
“사과하지 않아도 돼요. 저번에도 말했지만, 저는 남는 게 시간이니까요.”
은호는 장난기를 담아 웃었다.
솔직히 산북을 본 뒤로 무서움은 사라졌다.
지금은 어떤 친구인가 너무도 궁금했다. 정말로 흑견보다 훨씬 더 컸기에 신기했다.
이런 존재가 있다니. 감탄과 경악마저 흐를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이런 말은 지금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에 하지 않을 뿐이었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정말 다행입니다. 혹시 말릴 수 없어도 부담가지지 마십시오. 마지막으로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산북의 부상은 피할 수 없겠지만, 최후의 방법이라 생각하겠습니다.”
그걸 위해 모든 할 일도 제쳐놓고 이렇게 찾아왔다.
지금은 환수의 사살이 아닌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는 중이니까.
은호는 당당하게 들려온 지혜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저렇게 커다란 산북을 말릴 수 있다고? 어떻게……?’
은호의 생각이 깊어질 무렵, 지혜의 미간이 잠깐 꿈틀거렸다.
위에서 힘이 느껴졌기에 은호 쪽으로 다가갔다.
지혜가 손가락을 꿈틀거리며 위로 시선을 올렸다.
“뭔가 옵니다.”
“괜찮아요.”
은호가 웃었다.
거친 바람 소리가 가라앉으며 차분하게 윈디드가 내려왔다.
커다란 날개와 우아한 몸집을 본 서율은 혀를 내둘렀다.
‘…천사인 줄 알았네.’
머리 위에 천사 링이 달려 있어서 더 그렇게 느꼈는지도 몰랐다.
“내 친구니까요.”
은호는 윈디드를 쓰다듬었다.
“너는 올 필요 없었다.”
흑견이 바로 그림자에서 나와 윈디드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다른 존재들과 있어도 괜찮은 것을 굳이 따라오다니.
왜 자꾸 쫓아오는지 몰랐다.
“확인차 온 거야. 너무 날을 세우지 말라고, 친구. 말썽꾸러기 옆에는 항상 무슨 일이 일어나잖아?”
“아니. 그건 오해야, 삐약아. 오늘은 불려 온 거니까.”
은호가 흑견과 윈디드 사이에 서서는 둘 다 쓰다듬었다.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멍멍이 형님이랑 삐약이랑 싸우는 게 아니잖아?”
“오면서 봤어. 저 큰 친구가 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던데? 밑에서는 꽤 난리가 났더라고.”
윈디드는 날아오면서 일어난 상황을 봤다.
덩치가 큰 존재이기에 움직임 하나하나가 엄청난 폭격에 가까웠다.
“이제 무슨 일인지 알아봐야지.”
은호는 누굴 타고 가야 하나 싶어 윈디드와 흑견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인간. 왜 병아리를 보는 것인가?”
흑견이 정말로 놀란 눈을 하며 물었다.
당연히 자신이 아닌가.
“아니, 저 친구 덩치가 진짜 크잖아. 날아가서 말해 보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지.”
“그래, 친구. 말썽꾸러기 말이 옳아. 저렇게 큰 친구는 내가 데려주는 게 빠르잖아?”
윈디드가 온화하게 말했지만, 흑견은 아니꼽게 들렸다.
은호를 태우는 건 자신이었다.
갑자기 와서 낚아채려고 하는 행동이 좋아 보일 리가 없었다.
“그럼, 이렇게 하자.”
다음 말을 꺼내기 전에 은호는 잠깐 앞을 보았다.
지혜는 거의 티가 나지 않았지만, 서율은 조금 멍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거대한 환수 둘이 은호를 사이에 두고 무어라 말하는 모습은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원래라면 이렇게 가까이 갈 수도 없는 환수들이 아닌가.
저렇게 태연하게 대화까지 나누는 걸 보니 더 놀라울 따름이었다.
“멍멍이 형님이 거기까지 나를 데려다주고, 저 친구한테 말할 때, 삐약이가 날 도와주는 거야. 어때?”
은호의 제안에 흑견은 심기 불편한 얼굴로 잠깐 생각했다.
“아니, 반대로 하겠다.”
“알겠어, 친구. 난 뭐든 괜찮으니까.”
윈디드는 바로 몸을 낮췄고, 흑견이 어둠으로 은호를 들어 태워줬다.
“그럼, 갔다 올게요.”
윈디드의 등에 탄 은호는 바로 세 사람에게 손을 흔들었다.
“갔다 와. 곧 따라갈게.”
태호 역시 손을 흔들었다.
미련도 없이 은호와 두 환수가 떠나버리자 서율이 뒤늦게 헛웃음을 흘렸다.
“보고도 믿기지 않네요.”
“난 매일 봅니다.”
태호가 살짝 우쭐거리자 서율은 그를 힐끔 보았다.
“심장, 괜찮으십니까?”
“아뇨. 솔직히 죽을 것 같죠. …너무 떨려서요.”
“그렇죠? 저도 바라보는데 심장이 떨립니다.”
“너무 멋지지 않습니까?”
태호가 감탄하며 흘린 말에 서율은 살짝 이해가 가지 않는 구석이 있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무려 환수 연구소의 소장인 설태호였다.
자신의 상사인 지혜가 깍듯하게 존대할 정도의 대상이자 엄청난 유명인이었으니.
“…부럽네.”
나지막하게 들려오는 지혜의 말에 서율은 그녀를 보았다.
잘못 들었나 싶었다.
“우리도 갈 준비하자고.”
지혜가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보자 서율은 몸서리치며 뒤로 물러섰다.
“…차로 가겠습니다.”
“환수한테 밟혀 죽고 싶으면 그러든지. 그럼, 소장님.”
지혜가 살짝 웃으며 태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뒤에 선 서율이 필사적으로 고개를 흔들자 묘하게 불안함이 올라왔다.
“여기에 오래 머물러봤자 좋을 게 없습니다. 슬슬 시선이 쏠리고 있습니다.”
“차로 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소장님께서 그러시다면 차를 타시죠.”
지혜는 슬쩍 권했고, 태호는 날름 차에 올라탔다.
“너도 타야지.”
“…저도요?”
“걸어오려고? 차 탄다며?”
“아뇨. 타, 탑니다.”
서율은 밀려오는 압박을 이기지 못한 채 차로 들어갔다.
바로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벨트, 꽉 매십시오.”
지혜는 두 사람한테 말한 뒤 주저 없이 차를 들었다.
“으어어어!”
서율과 태호가 동시에 비명을 들었다.
차를 들다니.
이건 말이 되지 않았다.
“갑니다.”
지혜가 차를 내던지며 단숨에 달려가 차가 떨어지기 전에 받았다.
“이렇게 천천히 가겠습니다.”
지혜가 공을 튕기듯 차를 들어 올렸다가 내리길 반복했다.
비명조차 주변 공기를 압축해 밖으로 새어 나가지도 못하게 막아버렸다.
* * *
“…저 친구가 질투가 좀 많네?”
윈디드는 망설이다가 말을 꺼냈다. 늘 느꼈지만, 오늘은 더 그랬다.
“그렇긴 한데, 난 이해가 돼. 거꾸로라면 내가 그랬을걸?”
만약에 흑견이 다른 사람한테 머리를 쓰다듬게 해준다면 뭔가 기분이 좋진 않을 거라 생각했다.
“사실, 나도 이해가 되긴 해.”
윈디드가 키득거렸다.
은호를 태워주는 것뿐인데, 마음이 묘하게 들떴다.
그의 주변에 흐르는 편안한 냄새 때문일지도 몰랐다.
이 편안함을 독점하고 싶은 건 생물체로서 당연하지 않을까.
“그런데 진짜 크네. 나는 멍멍이 형님보다 큰 친구는 처음 봐.”
은호는 위에서 봤기에 산북의 크기가 더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나무밖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하나씩 뜯어보니 여러 생명체를 품은 군집 같았다.
“나는 여러 번 봤어. 덩치가 크지만, 온순한 존재야.”
“그렇다면 다행인데?”
나무 사이로 열심히 달려가는 검은 형체가 보였다.
어떤 순간보다 더 빠르게 산북의 머리 근처까지 도달한 채 기다리고 있었다.
은호는 흑견을 보며 키득거렸다.
윈디드가 고도를 내리며 흑견이 있는 곳으로 향했고, 산북과 가까워질 무렵, 흑견은 어둠으로 은호만 낚아채 본인의 등에 올렸다.
“……?”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바로 반응하지 못한 은호의 눈이 커졌고, 흑견은 웃음을 죽인 채로 산북의 머리 위로 달렸다.
“부르거라.”
걸음을 멈추고 이어지는 흑견의 재촉에 은호는 숨을 한 번 돌린 뒤 입을 열었다.
“친구야.”
은호가 산북을 불렀지만, 들리지 않는지 반응이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잠깐 생각하다 은호는 피를 뽑아 떨어트렸다.
‘…어? 이게 되네?’
산북의 등으로 번져가는 자신의 피를 느끼며 은호는 입을 열었다.
“잠깐만 뿌리로 산북의 등을 당겨줄래?”
산북의 등에서 자란 식물들은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멈추는가 싶더니 이내 머리를 흔들었다.
알겠다고 말하기에 은호는 기다렸고, 식물들은 동시에 뿌리로 산북의 등을 당겼다.
“친구야!”
산북이 멈추던 그때, 은호는 교감의 힘을 꺼내며 힘껏 불렀다.
반응이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야? 급한 일이 있으면 도와줄게!”
은호는 더 크게 소리쳤다.
그제야 산북이 고개를 돌려 은호를 바라보았다.
구슬픈 눈이 먼저 들어왔다.
“…혹시 내 손주를 봤는가?”
산북의 떨리는 목소리가 귀를 찌를 듯 쩌렁쩌렁 울렸지만, 은호는 도리어 당황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실이 산북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