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144)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144화(144/302)
144화. 그것 또한 다 지나간다(3)
산북이 왜 움직였는가.
여기에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은호 자신 역시 꽤 깊이 생각했다.
태호는 환경의 변화가 일어나 자리를 옮기는 거라고 주장했다.
지혜는 C 구역 내부에 환수끼리 벌어진 싸움으로 산북의 터전에 문제가 생겼다고 의심했다.
서율은 산북에게 뭔가 불편한 일이 생긴 게 아닐까 머쓱해하며 말했다.
자신은 혹여나 산북이 약속을 어긴 존재가 아닐까 싶어 긴장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이유는 서율이 꺼낸 것처럼 지극히 개인적이었다.
이 역시 무척 중대한 이유였지만, 거창하게 뻗은 생각에 비해 너무도 단출하기 그지없었다.
‘이래서… 소통이 중요한 거구나.’
산북이 아무리 떠들어대도 그 말이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게 뻔했다.
사람들 역시 산북이 움직여 비상이 났다는 사실만 기억하지, 산북의 손주가 사라졌다는 사실조차 짐작하지 못하겠지.
아마 산북을 멈출 때까지, 멈춘 뒤에도 영원히 알지 못할 사실이 아닐까 생각하니 그렇게 안쓰러울 수가 없었다.
은호는 흑견의 등에서 내려와 산북을 조심스럽게 만졌다.
“손주가 갑자기 사라져서 지금 진정하기 어렵다는 걸 알아. 그래도 잠깐만 숨 좀 돌릴래? 이러다 큰일나겠어.”
손주를 찾는 중이라고 알게 되니, 그저 앞으로 움직이는 행동 자체가 꼭 혼이 나간 것처럼 보였다.
얼마나 혼란스러울까.
“나, 나하고, 나처럼 똑같이 생겼다네. 제발, 봤다고… 말해주게.”
산북은 미칠 것만 같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주가 사라졌다.
“미안해. 오면서 보지 못했어.”
은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산북이 거대하기에, 그 눈동자도 무척 커다랬다.
다른 환수보다 감정이 더 잘 보였다.
커다란 눈동자가 금세 젖어 들어갔다.
“하지만 도와줄게.”
은호가 부드럽게 웃었다.
이 문제라면 자신의 전문 분야라고 할 수 있었다.
“내가 찾을 수 있어. 그러니까, 여기서 기다려줄래?”
“정말인가? 정말… 정말 도와줄 텐가?”
산북이 조금 전보다 더 목소리를 줄였다. 날뛰는 감정을 애써 누르고 있다는 게 선명하게 느껴졌다.
“정말이야. 네가 곤란한 상황인 걸 알았는데, 도와줘야지.”
일단 산북의 손주니까, 덩치도 크지 않을까 싶었다.
“…고맙네. 도와달라고 했는데,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네.”
산북의 눈동자에 절망과 슬픔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다 내 잘못이야. 내가… 저들을 감시해서, 그래서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거라네.”
“그건 아니다.”
흑견이 입을 열었다.
평소와 달리 귀를 살짝 접고 있었다.
감시니, 뭐니,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그 이유는 아니었다.
“너의 목소리가 너무 크다. 이는 다른 존재에게 아주 큰 공격처럼 들려온다.”
“…공격이라니?”
산북은 잠깐 당황했다.
“그렇지 않나, 병아리?”
흑견은 아직도 내려오지 못하고 있는 윈디드를 불렀다.
윈디드는 하늘에서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뭐라고 했어, 친구? 방금 소리 때문에 못 들었어.”
“잠깐, 떠들지 마라.”
흑견은 앞발로 산북의 머리를 세게 건드렸다.
조용해지자 윈디드가 하늘에서 내려왔다.
고개를 좌우로 크게 흔들었다.
“시끄러워서 머리가 흔들리는 줄 알았네. 괜찮아, 말썽꾸러기?”
“나…?”
은호는 흑견과 윈디드의 시선을 받자 도리어 깜짝 놀랐다.
흑견도 귀를 접었고, 윈디드도 저러니 자신은 더했으면 더했을 텐데, 시끄러운 것 말고는 괜찮았다.
‘어라? 나는 왜 괜찮지? 헤드셋 때문인가? …아. 이것 때문이네.’
은호는 손바닥을 흔들었다.
교감의 힘이 발동 중이었다.
단아 주변에 흐르는 힘에도 멀쩡하게 해주는 아주 좋은 힘이 아닌가.
‘그런데 진짜 이것 때문인지 알려면 힘을 풀어봐야 하는데.’
“그 힘 풀지 마라, 인간.”
흑견은 은호의 눈동자 움직임을 읽고는 세게 경고했다.
“…어떻게 알았어?”
“딱 보면 안다. 이건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소리가 아니다.”
“그 정도야?”
“그렇다. 당장 병원에 가고 싶지 않으면 그만둬라. 저 존재 주변에 다른 존재들이 보이지도 않는 걸 보면 모르겠는가? 다 저 소리 때문이다.”
흑견은 날을 세웠다.
지금 은호가 저 소리를 온전히 다 듣는다면 농담 아니라 귀가 터져나갈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건 나도 동의해. 이건 나도 진짜 머리가 다 아플 정도인데?”
윈디드마저 살짝 눈가를 찌푸린 채 말을 꺼내자 은호는 밀려드는 호기심을 삼켰다.
얼마나 아프길래.
은호는 더 날카롭게 째려보는 흑견의 시선을 느끼며 말을 꺼냈다.
“이 힘, 안 풀어. 안 풀 테니까, 그 나쁜 눈 좀 바로 잡을래, 멍멍이 형님?”
흑견이 눈빛을 접자, 은호는 그제야 방긋 웃었다.
다 떠나서 산북을 진정시키는 게 먼저이지 않을까 싶어 교감의 힘을 더 넓게 펼쳤다.
잔잔한 빛이 내려왔고, 은호는 산북이 진정될 때까지 조금 기다렸다.
산북의 커다란 눈이 덜 흔들리자, 그제야 은호는 산북을 달래며 제안을 건넸다.
“친구야. 이제부터 아주 살살 말해 볼래?”
손주가 사라졌으니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고, 당황함은 또 얼마나 클까.
당연히 목소리가 크게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 감정이 도리어 사태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면 멈춰야 하지 않겠는가.
산북이 숨을 내쉰 뒤, 목소리를 내뱉었다.
“이 정도면 되겠는가?”
“아니. 조금 더 낮춰줄래?”
“이 정도? 이게 손주하고 대화할 때 내는 소리라네.”
“더더, 훨씬 더.”
“이건 어떤가?”
혼잣말을 하며 거의 속삭이는 정도였다.
“더 낮추면 고마운데, 그 이상은 힘들 것 같으니까, 이 정도로 말해도 괜찮아.”
이제야 귀가 좀 편안해 은호는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정말, 몰랐다네. 정말… 몰랐어.”
환해진 은호의 표정에 도리어 산북은 절망감을 드러냈다.
제발, 손주 좀 찾아달라고. 제발, 도와달라고 소리쳤는데.
전부 헛고생인 것도 모자라, 방해만 되었다는 사실이 그토록 암담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렇게 멍청할 수가 있을까.
“그럴 수 있어. 지금 가장 당황스러운 건 친구잖아? 원래 놀란 만큼 목소리가 크게 나오는 건 당연한 반응이야. 이건, 친구 잘못이 아니라는 거지.”
간절할수록 목소리가 더 커지는 법이었다.
이제 다른 걸 다 떠나 가장 중요한 걸 알아봐야 했다.
“친구야. 혹시 손주가 언제 사라졌는지 알고 있어?”
“정확한 시간은 모른다네. 요새 부쩍 잠이 많아져서 깨어나 보니…….”
산북은 뒷말을 잇지 못하고 그만 눈을 감아버렸다.
손주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다시금 떠올리니 끔찍했다.
차라리 꿈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날 닮았지만, 아직 어려. 너무도 작다네.”
작다는 소리에 은호는 산북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작다는 소리가 귀에 쉽사리 닿지 않았다.
“정확한 시간은 모른다는 거지? 그럼, 왜 사라졌는지는 알고 있어?”
“어제, …싸웠다네.”
“싸웠어…?”
“내가 그 아이한테… 모진 말을 해버렸다네. 하지만 꼭 해야만 하는 이야기였네.”
‘…슬픈 소리는 아니면 좋겠는데.’
은호는 그게 어떤 소리인지 물어보지 못했다.
괜스레 오늘 만난 세티아가 생각이 났다.
“이 할아비는 언젠가 흙이 되고, 그 아이도 흙이 된다고. 그 전에 좋은 땅을 보고, 느껴야 하니까 몸이 더 커지기 전에 여길 벗어나서 많은 걸 봐야 한다고.”
산북이 꺼낸 말에 은호는 가슴을 살짝 쓸었다.
예상과 달리 그런 슬픈 소리는 아니었다.
세상을 좀 넓게 보라는 말이 아닐까.
“음, 그 애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이른 말이 아니었을까?”
윈디드가 생각하다 말을 꺼냈다.
“하지만 나는 그 아이가 앞으로 떠날 여행에 함께하기에는 너무 크다네.”
“그건 맞다. 지금도 보거라.”
흑견은 뒤를 가리켰다.
산북이 지나온 흔적은 작은 호수가 담길 듯 깊게 파여 있었다.
그것뿐일까.
움푹 팬 그 공간으로 으깨져 버린 식물들이 바닥에 나뒹굴자 상당히 처참한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잠깐이지만, 피해가 크다. 몸을 줄일 수 없다면 덩치를 생각해야 했다.”
“이건 내가… 수습하겠네. 아니, 내가 해야지.”
산북이 여러 감정을 끌어안은 채로 대답했다.
아무 생각도 없이 움직인 대가였다.
더는 자유로울 수 있는 덩치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 신중하지 못하다니.
도중에 누가 죽었는지 모르는 일이었다.
‘…아니.’
산북은 문득 무서운 생각이 밀려왔다.
혹시나 자신의 이 발에 손주가 깔린 건 아닐까.
“아니야. 아무도 없었어.”
속마음을 읽었는지 몰라도 은호의 입에서 나온 그 말에 산북은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숲은 내가 다시 돌려놓을 테니까, 자책하지 말고, 지금은 그 아이만 생각하자. 분명히 널 기다리고 있을 거야.”
은호는 산북을 쓰다듬었다.
모기가 물어버리는 정도 느낌밖에 들지 않을까 싶어 두 손으로 쓰다듬어주었다.
“…제발, 도와주게.”
산북은 당장 눈물을 흘릴 것처럼 간절히 부탁했다.
자신이 움직여봤자, 방해만 될 뿐이고, 손주를 찾는 건 고사하고 주변 터전만 더 엉망으로 만들었다.
빌 수밖에 없었다.
이 커다란 몸뚱어리가 너무도 원망스러웠다.
“물론이야. 그러니까, 친구야. 내가 잘 찾아올 수 있게 여기 있어 줄래?”
은호의 부탁에 산북은 그대로 주저앉았다.
정말로 말을 들어줄지 몰랐기에 은호는 감동했다.
“갑자기 내가 나타나서 당황스러울 수도 있는데, 이렇게 나를 믿어줘서 진짜 고마워!”
활짝 웃는 은호의 표정에 산북은 고개를 아주 살짝 좌우로 흔들었다.
흑견이 몸을 낮춘 채, 은호의 옷자락을 살며시 물고 흔들림을 버텼다.
작은 행동 하나도 파급력이 무척이나 컸다.
“꼭 찾아줄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은호는 다시 흑견의 등에 올라탔다.
산북은 단숨에 자신의 몸에서 사라지는 은호를 눈으로 좇았다.
그가 사라지자 코끝에 맴돌던 냄새 역시 지워졌다.
밀려오는 아쉬움이 너무도 커 산북은 기억을 더듬거렸다.
‘…그 냄새다.’
그리운 고향의 냄새.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걸까.
영원히 다시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했기에 놀라면서도 반갑고, 또 신기해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다.
인간이 왜 이런 냄새를 가지고 있는 걸까.
‘…왕이시여.’
산북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당신 역시 그리워할 냄새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쩌면 이미 저 인간의 정체를 알아차렸을지도 몰랐다.
산북은 이내 눈을 떠서 사라져버린 손주를 눈에 담았다.
‘너는 어디로 간 것이냐. …제발, 돌아오거라.’
* * *
“…아. 네네. 눈으로 직접 확인을 했겠지만, 산북은 현재 움직임을 멈췄어요.”
지혜가 크게 안도하는 소리가 휴대전화 너머로 들려왔다.
“갑자기 산북의 손주가 사라졌대요.”
“네네. 당황스럽죠? 저도 그랬어요.”
“어제 싸웠나 봐요. 그 일로 토라졌는지, 욱했는지 몰라도 손주 쪽이 도망간 것 같아요. 지금 찾는 중이에요.”
안 찾아도 된다고 말하려다 은호는 그만뒀다.
남들 눈에 고장 난 태블릿으로 보이기에 여기에 추적 기능이 있다고 떠들어댈 수도 없고.
“저도 그럴게요.”
대충 마무리하며 은호가 연락을 끊으려던 차, 지혜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들려왔다.
“아니에요. 그럼, 나중에 연락드릴게요.”
은호는 연락을 끊었다.
사실 자신도 지혜가 품은 마음과 다르지 않았다.
덩치가 크고 작건 간에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이렇게 움직일 수도 있었는데, 크기에 너무 매몰되지 않았나 싶었다.
‘나라도 더 넓게 봤어야 했는데.’
평소에 산북이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 얼마나 무서웠을까.
본인의 발아래에 수없이 많은 생명체가 죽을 수도 있을 테니까.
그럼에도 산북이 손주를 위해 이토록 다급히 움직였다.
산북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일까.
은호는 태블릿을 꺼내며 산북을 보았다. 그 뒷모습이 무척 씁쓸해 보였다.
“집중해라, 인간.”
흑견이 입을 열자 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사용해야 하는 건 하나였다.
추적 기능.
“그런데 말썽꾸러기. 진짜 위에서 살펴보지 않아도 되겠어?”
윈디드가 옆에서 묻자 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괜찮아.”
추적을 사용하기 전에 뜬 산북의 정보에 눈을 움직였다.
《환수를 인식하셨습니다.》
《산북.》
《.》
《땅에서 태어난 환수입니다. 태어나서부터 터를 잡을 때까지 혼자 혹은 여럿이서 계속 걸어 다닙니다. 움직이면서 발에 닿은 땅이 등껍질을 이루며 땅을 밟을수록 자라나는 등껍질에 맞춰 덩치가 자랍니다. 크기에는 제한이 없으며 원하는 땅을 발견할 때까지 계속 자라나곤 합니다. 산북이 지나간 땅은 매우 윤택해집니다.》
《등껍질처럼 보이는 곳은 땅으로 수많은 생명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계속 덩치가 자라나기에 움직이기 어려워지기 전에 터를 잡습니다. 터를 잡았다는 건 다시 흙으로 돌아갈 준비한다는 뜻으로 서서히 부서져 땅이 됩니다. 땅이 된 산북은 또 다른 산북을 낳으며 주변 땅을 정화합니다.》
‘…어?’
은호는 설명을 읽다가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
―이 할아비는 언젠가 흙이 되고, 그 아이도 흙이 된다고. 그 전에 좋은 땅을 보고, 느껴야 하니까 몸이 더 커지기 전에 여길 벗어나서 많은 걸 봐야 한다고.
‘……그게 이런 뜻이었어?’
은호는 이제야 손주의 마음을 이해했다.
너도 죽고, 나도 죽으니, 어서 더 넓은 세상을 봐라.
딱 이 말이었다.
이해하기엔 어렵고, 받아들이기에도 어려운 소리였다.
이유를 떠나 갑자기 죽는소리하면 누가 좋아할까.
‘그래서 할아버지한테 화가 났구나.’
은호는 손주의 감정을 이해하며 태블릿을 조작했다.
대상을 산북으로 정한 뒤, 주변으로 추적했다.
싸웠으면 화해해야지.
《추적에 소요되는 시간은 8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