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145)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145화(145/302)
145화. 그것 또한 다 지나간다(4)
‘8분?’
생각보다 무척 가까웠다.
은호는 입가를 살짝 핥았다.
할아버지가 저렇게 찾고 있는 걸 알면서도 나오지 않았다는 소리인데, 이를 달리 말하자면 할아버지를 무척 좋아한다는 소리였다.
은호는 괜히 미소가 흘러나왔다.
적어도 할아버지 산북의 말이 상처가 되었을지언정, 그 마음은 바뀌지 않았다는 걸 알려주는 흔적이었다.
정말 싫었다면 진작 이곳 C 구역을 벗어나지 않았을까.
“말썽꾸러기. 거기에 뭐가 나타나? 혹시 보는 방법이라도 있는 거야?”
“아니. 이건 내 눈에만 보이나 봐.”
은호의 대답에 가까이 다가온 윈디드의 얼굴을 흑견이 꼬리로 쳤다.
맞지 않았지만, 흑견은 몸을 돌려 윈디드를 쳐다보았다.
“물러서거라.”
“평소에도 나랑 삐약이랑 가까이 있잖아? 그때는 아무 말도 안 했잖아.”
뭔가 평소보다 더 예민한 것 같기에 은호는 흑견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윈디드는 흑견이 화가 날 행동을 하지 않았다.
“숨소리가 가깝다.”
흑견의 대답에 은호는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았고, 윈디드는 바보 같은 눈이 되었다.
“……그, 그거 정말이야, 친구?”
“주변 말이다. 다른 존재들이 오는 걸 알면서도 왜 모르는 척하는가?”
흑견은 점점 쏠리는 주변 시선에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아마도 은호의 주변에서 나는 냄새에 이끌린 게 분명했다.
빼곡하게 몰려든 냄새에 저절로 짜증이 날 것만 같았다.
“저렇게 날을 세우는데 누가 오겠어? 그렇지 않아, 친구?”
윈디드는 주변에 꾸물거리는 어둠을 보았다.
벌써 수많은 존재가 저 어둠을 경계해 다가오지 못하고 있었다.
다 알면서.
“그래도 모른다.”
흑견이 의심하는 건 다른 무엇도 아닌 바로 은호였다.
그라면 분명 바보처럼 행동할 테니까.
작지만, 주목을 이끌기에는 충분했다.
“안녕, 친구들아.”
바보 같은 미소와 함께 쏟아지는 은호의 목소리에 이미 예상했던 흑견은 한숨을 내쉬었고,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환수들은 도리어 놀라며 뒤로 움직였다.
그 움직임으로 주변 식물들도 요란하게 흔들렸다.
“……인간이 말을 해.”
“어떻게 말을 하는 거야?”
여러 환수가 속삭이는 듯한 소리가 은호의 귀에도 들려왔다.
은호는 눈동자를 잠깐 움직이다 조금 더 크게 소리쳤다.
“친구들아. 알려줄 게 있는데 혹시, 괜찮아?”
“지금 뭐 하는 건가, 인간?”
흑견이 참다못해 목소리를 냈다.
“저 커다란 친구가 피해를 준 건 사실이잖아? 적어도 저 친구들은 왜 그랬는지 알아야지.”
“이곳에 있는 존재들은 인간을 아주아주 싫어한다. 애초에 싫어서 이곳에 왔을 거다.”
“그래, 말썽꾸러기. 지금 분위기가 상당히 무거워졌어.”
윈디드는 날개를 살며시 들었다.
말이 통하는 인간이 왔다는 건 다른 의미로 표적이 되기 쉽다는 소리였다. 이게 흑견이 날이 선 이유였고.
스스스스.
무언가 풀숲에서 기어 오는 게 들렸다.
“여기에 인간이 기어 왔다고?”
나무 위로 환수가 얼굴을 드러냈다.
몸은 굉장히 길쭉해 뱀 같았고, 얼굴은 목도리도마뱀을 닮아 있었다.
벌어진 입 사이에 드러난 매서운 이빨은 상당히 굵었다.
“우리를 이곳에 가둬둔 인간이? 왜? 구경이라도 하려고? 이야, 새하얀 거 봐봐. 참 반짝거리네.”
“이렇게 만나서 반가워, 친구야.”
은호는 웃는 얼굴로 환수를 바라보았다.
지금 저 환수가 짓는 표정과 싸늘한 눈빛은 잠깐의 오해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너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지금은 급히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이만 자리를 떠날게.”
“왜 벌써 가는데? 쫄았어?”
시비를 거는 환수의 태도에 흑견의 얼굴에 어린 불쾌감이 점점 짙어졌다.
“혹시 나한테 하고 싶은 이야기라도 있어?”
은호는 흑견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그래! 이렇게 우리를 가두니, 기분 째지지? 아주 꼴좋다 싶지?”
“가둬…? 그게 무슨 말이야?”
은호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태호가 알려준 말이랑 달랐다.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다고 했는데.
“너희가 우리를 이곳에서 나가지 못하게 막고 있잖아! 저 영감탱이한테 어울리지도 않는 감시나 맡기게 하고 말이야!”
긴 꼬리 끝이 산북을 사납게 가리켰다.
―다 내 잘못이야. 내가… 저들을 감시해서, 그래서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거라네.
은호는 산북이 꺼냈던 말을 떠올렸다.
‘정말이었어.’
정말 산북은 저들을 감시하는 자였다.
하지만 원망은 느껴지지 않았다.
“웃기지 마라.”
흑견이 이빨을 내보이며 말했다.
은호하고 이 일은 아무 상관 없었다.
“힘이 없어 이곳을 나가지 못하는 주제에 말이 통하는 인간이 오니 신이라도 났는가?”
“너같이 작은 게 뭘 알겠어?”
환수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코웃음을 쳤다.
확실히 저 환수는 흑견보다 훨씬 컸다.
은호는 고개를 움직이며 주변을 바라보았다.
어느 사이에 몰려든 환수들의 덩치는 흑견과 비교하면 적게는 3배, 많게는 10배 정도 차이가 나지 않을까 싶었다.
“그만두지 그래, 친구? 큰 친구들도. 여기서 싸워봤자 해결되는 건 없어.”
윈디드는 이 흐름이 분위기를 타기 전에 이를 끊어내려고 했다.
이미 산북의 문제로 가뜩이나 혼란스러운 와중에 그 혼란이 한층 더 짙어지는 건 좋지 않았다.
“해결? 우리가 덩치가 크다는 이유로 이곳에서 나가는 걸 거부당한 사실도 모르면서 잘도 지껄이네?”
“잠깐만, 친구들아!”
은호가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것 같은 흑견을 붙잡은 채 목소리를 크게 키웠다.
“그게 무슨 소리야? 누가 너희를 거부하는데?”
“우리가 나가면 너희가 놀란다는 이유로 안 된다네? 너는 인간이니 알 거 아니야.”
환수가 은호를 향해 고개를 들이밀자 흑견의 손톱이 바짝 세워졌다.
조금 더 다가오면 후려칠 것만 같았다.
“이걸 왕께서 결정 내렸고, 저 영감한테 감시를 시켰다는데, 그거 정말이야? 인간 너는 알고 있잖아? 정말 왕께서 우리한테 그랬어? 너희가 시킨 거지? 너희가 우리 왕께 협박이라도 한 거지?”
꽉 낀 넥타이에 목이 졸린 것처럼 환수는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왕께서?’
왕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윈디드는 크게 흔들렸다.
정말 왕이 그랬단 말인가.
그럴 리가.
‘하지만 저 존재들이 거짓말을 할 이유가 어디 있어?’
윈디드는 이상하게 무언가 어긋나는 게 느껴졌다.
심지어 뭘 놓치고 있는 기분마저 들었다.
은호는 굳어진 윈디드의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아무래도 모르는 일인 듯했다.
“너희를 누군가 가두고 있다면 그건 정말 잘못된 게 맞아.”
은호는 바로 목소리를 꺼냈다.
구차한 변명이나, 얼토당토않은 소리가 나올 거라 예상했기에 그곳에 있는 환수들은 귀를 의심했다.
“하지만 너희를 보면 많은 인간이 놀랄 거라는 말은 틀리지 않았어.”
“이것 봐. 너희란 종족은 정말로…….”
“기다려줘.”
은호는 확신에 찬 얼굴로 환수들과 마주했다.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너희가 인간이 무서운 만큼 인간들도 너희가 무서워. 너희가 아무리 인간들을 헤치지 않는다고 말해도 그 말이 통하지 않으면 소용없잖아?”
무엇이든 소통의 기본은 대화에서 출발했다.
그 기본을 잃어버렸는데, 어떻게 소통이 될까.
“하지만 적어도 나는 알아. 너희가 어떤 상황인지 알아버렸어.”
저 험악함과 날이 선 반응은 결국, 답답함에서 나오는 거라는 걸.
그렇기에 은호는 자신의 말이 아주 조금이라도 숨통을 틔워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곳에 넓다고 해도 결국, 끝이 있어. 답답한 거잖아? 그냥 구름 따라, 바람 따라 이동하고 싶은 거잖아?”
얼굴을 가득 찌푸리고 있던 목도리도마뱀 얼굴을 한 환수가 숨을 조용히 내쉬었다.
은호의 곧은 시선과 흔들리지 않는 목소리에 이상할 만큼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었다.
인간은 원래 이런 존재일까.
한없이 이기적인 존재가 아니었다는 걸까.
“나도 마음 같아서는 너희가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싶어. 하지만 이건 내가 하루아침에 바꿀 수 없는 문제야. 그러니까, 기다려줘.”
“…얼마나?”
“너희가 기다린 시간보다 더 짧게.”
꽤 당돌한 은호의 대답에 환수는 코웃음을 쳤다.
눈속임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으나,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아 우스웠다.
“그리고 지금은 정말 급한 일이 있어서 그래. 아까 네가 가렸던 그 커다란 친구한테 일이 생겨버렸어.”
“영감탱이한테 일이 생겼다고?”
“손주가 사라졌…….”
“아니, 저 미련한 영감탱이! 그런 일이 있으면 말을 해야지. 난 또 갑자기 소리치길래 노망이라도 든 줄 알았잖아!”
갑자기 목도리도마뱀을 닮은 환수가 크게 소리쳤다. 워낙 목소리가 쩌렁쩌렁해 은호는 깜짝 놀랐다.
“내 말이! 내 조카가 사라졌다잖아!”
“왜 네 조카야? 내 조카지!”
“무슨 소리야! 우리 조카지. 우리!”
작은 실랑이가 벌어졌다.
“…아니, 알고 있었어?”
은호가 더듬거리며 묻자 환수들은 코웃음을 쳤다.
“당연한 거 아니야? 우리 조카라고.”
“아니, 아까 감시를 받는다고 했잖아. 화가 나는 거 아니야?”
“인간 너는 멍청이야? 이거랑 그거랑 어떻게 같아?”
산북이 자신들을 감시하는 일과 이 일은 별개였다.
―나가도 된다네. 하지만 저 너머에 자네들을 반겨줄 인간들도, 자연도 그 무엇도 없다네. 답답하겠지만, 마음이든 몸이든 상처받는 것보다 낫지 않은가. …미안하다네.
나가려는 자신들을 붙잡은 건 영감이었다.
밖에 벌어질 일을 진심으로 걱정하는데 어떻게 미워할 수가 있을까.
애초에 감시는 그 영감이 좋아서 한 일도 아니었다.
솔직히 답답함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정말 미련하다고 생각도 했지만, 영감은 자신들의 할아버지였다.
얼마나 오래 봤는데.
“우리 조카가 언제 사라졌대? 왜?”
목도리도마뱀처럼 생긴 환수가 다급히 물었다.
“지금 찾으려고 했는데, 너희가 갑자기 불러서…….”
“야! 야. 비상이다. 조카가 사라졌다.”
환수는 은호의 말이 끝나기 전에 바로 고개를 올려 등을 돌렸다.
“뭐 하고 있어? 빨리 비상이라고 알려야지!”
“가! 간다고!”
빠르게 움직이는 다른 환수를 본 뒤, 바로 옆에 있는 환수에게 지시를 내렸다.
“너는 주변에 조카 본 녀석 있는지 물어. 좋아하는 곳 알지?”
“당연하지. 계곡하고 꽃밭이잖아.”
“그래. 애들 풀어서 확인해. 그리고…….”
“고마워.”
은호가 말하자 환수는 코웃음을 쳤다.
“조카 찾은 뒤에, 그때 다시 따질 거니까 딱 기다려.”
“그래. 그 뒤에 다시 대화하자.”
은호는 잔잔하게 피어난 미소를 막지 못했다.
할아버지 산북은 혼자라고 말했지만, 아니었다.
이렇게 많은 친구가 움직여주다니.
“우리도 가자.”
은호는 흑견과 윈디드를 재촉했다.
손주 산북을 찾아야 하는 건 자신들 역시 마찬가지였으니.
* * *
‘…할아버지 미워.’
몸을 바닥에 눕힌 채, 뒷발을 움직였다. 등에는 흙을 살짝 뿌린 것 같은 흔적만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살짝 튀어나온 입이 아주 크게 나왔다.
‘나는 오래 살 거라고. 할아버지도 오래 살아야지.’
갑자기 죽니, 뭐니 하는 소리를 하니까, 너무 미웠다.
하지만 지금은 할아버지의 움직임이 멈추자 왜 그런지 궁금해졌다.
고개를 내밀려다 말고 갑자기 화가 또 올라왔다.
‘진짜 치사해. 몸이 무거워서 못 걸어 다닌다며.’
온 사방이 울리도록 아주 잘 걸어 다녔다.
이러면 지금까지 왜 같이 가주지 않았던 건지.
‘삼촌들하고 이모만 좋아!’
차마 할아버지 싫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냥 씩씩거리며 숨을 깊게 들이마시다 말고, 이상하게 좋은 냄새에 본능적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무슨 냄새…….’
“…친구야?”
은호와 시선을 마주쳤다. 환수는 그대로 굳어졌다.
‘와, 너무 작은데?’
산북의 손주를 보자마자 은호는 바로 웃었다.
추적을 사용해도 좀처럼 보이지 않아 어디에 숨어 있나 싶었는데, 바위 사이에 작은 그 틈에 있었다.
손바닥 반 정도의 크기였다.
이러니 다들 보지 못했고, 할아버지 산북마저 손주를 찾을 수 없는 게 당연했다.
이렇게 작을 줄이야.
“안녕.”
은호가 손을 흔들며 웃었다.
히끅.
그 손짓에 너무 놀란 산북이 딸꾹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