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147)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147화(147/302)
147화. 너희들이 행복하길 바란단다(컨셉 아트)
* * *
“…하아.”
은호는 긴 숨을 내쉬었다.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왜 그래, 말썽꾸러기?”
윈디드가 은호 옆에 웅크려 슬쩍 물었다.
뒤로 고개를 돌리자 행복해 보이는 두 산북이 보였다.
은호가 큰 산북을 돕기 위해 자신과 작은 산북을 보냈다는 건 알았지만, 대체 어떻게 커다랗던 큰 산북을 저만큼 줄일 수 있었을까.
‘말썽꾸러기… 진짜 대단하네.’
윈디드는 존경이 섞인 표정으로 은호를 보았다.
흑견은 갑자기 어둠으로 은호의 턱을 붙잡았고,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윈디드의 눈이 커졌다.
“뭐, 뭐 하는 거야, 친구?”
흑견은 윈디드의 말을 흘리며 계속 살폈다.
아까 산북의 목소리를 직접 들은 충격이 남아있을 수도 있었다.
말도 없이 일어난 일에 은호가 멍하니 바라보았지만, 흑견은 은호의 눈동자마저 지그시 살폈다.
여전히 나른해 보였지만, 생기가 넘쳤다.
“아픈 건 아니다.”
“무슨 소리야? 귀랑 머리가 아직도 아픈데?”
은호는 손가락으로 귀와 머리를 가리켰다.
오늘 의도치 않게 코피마저 흘리지 않았는가.
그를 빤히 보던 흑견은 아예 엎드려 꼬리를 흔들었다.
“아니, 멀쩡하다.”
저렇게 반응하면 누가 봐도 멀쩡한 거였다.
오히려 참으면 멀쩡하지 않았고.
“아니라니까? 멍멍이 형님, 나 봐봐.”
은호는 흑견에게 손을 뻗었다.
힘을 주어도 고개가 절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허…….”
은호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아주 독했다. 돌아가는 척이라도 해주지.
“그럼, 말썽꾸러기. 왜 갑자기 한숨을 내쉰 거야? 무슨 걱정이라도 있어? …혹시, 크기가 작아진 건 일시적인 일이라서 그런 거야?”
“그렇지 않아. 우리 태블릿 씨가 알려준 정보는 정확하니까.”
은호는 태블릿을 자랑스럽게 들었다.
《(?? ? ??)?》
우쭐거림이 담긴 이모티콘이 화면에 드러났지만, 여전히 윈디드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여기서 더 줄어드는 것도 가능해. 다만, 산북의 등에 있는 저 흙이 너무 오래됐다는 게 문제 같아 보여.”
“그게 왜 문제라는 건데?”
윈디드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은호는 흑견 대신 윈디드의 뺨을 붙잡았다.
“크기가 줄어들려면 흙이 사라져야 하는데, 흙은 식물이 붙잡고 있어. 흙하고 이미 같은 몸이나 마찬가지인데 뜯기면 얼마나 아프겠어?”
“…그러니까, 저 존재가 몸이 떨어져 나가는 고통을 참고 저토록 작아졌다는 말이지?”
“맞아. 너무 대단하다 싶고, 다행스럽기도 해서 이제야 긴장이 풀렸어.”
다시금 생각해도 마음이 떨려왔다.
자칫하면 아찔한 결말을 맞이할 수 있었기에 은호는 고마움을 담아 태블릿을 쓰다듬었다.
할아버지 산북도, 손주 산북도 둘 다 행복한 결말이 오래 이어지기를 바랐다.
‘이러려면 중간중간에 한 번 찾아가야겠지?’
산북은 언제든지 커질 테고, 그 크기를 다시 줄이려면 같은 작업을 반복해야 했다.
“…아!”
은호는 생각하다 말고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그러는가?”
흑견도 덩달아 일어나 은호를 내려다보았다.
“…또, 깜박했다. 알려줘야 했는데.”
은호는 휴대전화를 꺼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노닥거리는 게 아니었다.
떨리는 마음을 붙잡고는 바로 지혜와 연락했다.
통화음이 꽤 길어졌지만, 지혜는 통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은호는 숨을 죽인 채, 조심스럽게 지혜를 불렀다.
“해결됐는데, 많이 기다리셨나요?”
은호는 지혜의 대답에 어색하게 웃었다.
왜 자신의 귀에 날이 선 것처럼 들리는지.
“으음……. 제 해결법은 지침을 만들 때, 도움이 되지 못할 듯한데요?”
“보고 있었어요?”
“…설마, 심서율 씨가 주변에 돌아다니는 거 아니죠?”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혜가 웃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런 면에서 서율 씨의 초능력은 별로네.’
몸을 투명으로 만들 수 있다는 그 자체가, 달리 말하자면 시킬 게 너무 많은 초능력이기도 했다.
알아서 집에 갈 수 있긴 했지만, 거절할 수 없는 장소였다.
“네. 꼭 연락해 드릴게요. …아! 국장님.”
연락을 끊으려던 차 은호는 해야 할 말을 떠올렸다.
“혹시, 환수들이 환수 보호 구역을 나갈 수 없게 막아뒀나요?”
지혜가 머뭇거리며 묻자 은호는 답변이 예상됐다.
아무래도 사실인 모양이었다.
정말로 막을 줄이야.
“그렇게 알고 있더라고요.”
“충분히 이해해요. 사람과 환수 사이에 신뢰가 부족하니까요. 서로를 계속 의심하고 있어요. 이게 참 어려운 거죠.”
은호는 살짝 멀리 보았다.
대화가 되지 않기에 생긴 의심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제가 잘 설득…….”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아요. 이 마음, 반드시 전할게요.”
“아니에요.”
은호는 더 말할 수 없었다.
이건 참 어려운 문제였으니까.
연락을 끊은 은호는 태호에게 문자를 보냈다.
[형. 혹시 여기에 궁금한 거 있으면 문자로 보내줘요.]모두 다 해결이 됐다고 생각하며 한시름 놓으려던 차, 묵직한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아까 헤어졌던 목도리도마뱀을 닮은 환수를 포함해 다른 환수들이 당당하게 걸어왔다.
“어…!”
“쉬잇. 조용히 해.”
은호는 바로 손가락을 올렸다.
“우리 조카, 찾았어?”
“지금 할아버지랑 즐겁게 재회 중이니까, 조용히 이쪽으로 올래? 같이 보자.”
은호의 손짓에 환수들은 묘한 느낌을 받은 채 일단 고개를 낮춰 그에게 걸어왔다.
대체 어떻게 벌써 찾은 건지 몰랐다.
“아까는 그냥 넘어갔지만, 두 번은 넘어가지 않는다.”
흑견은 혹여 저들이 시비를 걸기 전에 먼저 경고했다.
“안 넘어가면…….”
아직 말이 다 끝나기 전이었음에도 흑견은 목도리도마뱀의 형상을 한 환수의 목 쪽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대로 앞발을 들어 아래로 내렸다.
콰앙!
밀려드는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환수는 바닥에 머리를 찧었다.
그 소리가 제법 컸다.
흙먼지가 은호를 덮치기 전에 윈디드가 그를 감쌌다.
“머, 멍멍이 형님!”
은호가 아등바등했지만, 윈디드의 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좀 거칠긴 해도 이해해줘, 말썽꾸러기.”
윈디드가 하하 웃었다.
솔직히 속이 다 후련했으니까.
“벌써 나를 잊었는가?”
흑견이 고고함을 드러낸 채 물었다.
벌써 몇 년 전 일이었지만, 이렇게 잊을 줄이야.
사실 드러낼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스쳐 갈 곳이었으니까.
하지만 먼저 이빨을 드러낸 쪽은 저쪽이었다. 그게 아주 잠깐이었다고 해도 이렇게 또 이빨을 드러내면 가만히 있을 생각은 없었다.
힘이 없으면 찌그러져 있어야 하는 게 이쪽 규칙이었으니까.
짙은 침묵이 밀려왔다.
몸집 차이가 얼마나 나는데, 단번에 쓰러트리다니.
뒤에서 코뿔소를 닮은 환수가 싸움 구경에 신난 채 뛰어오다 말고 흑견을 보자마자 그대로 경직됐다.
“왜 그래? 싸움 구경 안 해? 제일 신났던 놈이.”
“…야, 야. 쟤 모르겠어? 쟤잖아! 쟤!”
옆을 건드리는 손길에 코뿔소를 닮은 환수가 기겁했다.
영감의 조카가 사라졌다느니 뭔가 들었는데 저 존재가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아니, 누구길래…….”
말을 하다 말고 덩달아 멈췄다.
샛노란 눈동자와 마주하니, 당장 몸이 기억했다.
길어지는 흑견의 입꼬리와 함께 코뿔소를 닮은 환수와 옆에 있던 환수가 동시에 외쳤다.
“그, 피에 굶주린 미친 새끼?”
한 마리씩 알아보는 환수가 생기자 흑견은 그제야 기분이 좋아졌다.
“마, 맞아! 맞네.”
동조하는 이까지 나타나자 분위기가 다시 뒤바뀌었다.
몇 년 전에 갑자기 나타나서 이곳을 피바다로 만들고 사라진 미친 존재가 있었다고 했다.
그 기간이 너무도 짧기에 실제로 있었는지, 아닌지조차 불명확했다.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랬다.
마지막으로 남긴 소리까지 이상해서 피바다가 됐던 그 공간에 있었던 존재는 진짜라고 하고, 보지 않은 존재는 질 낮은 농담이라고 생각하곤 해서 그냥 가끔 우스운 소리로 나오지 않았던가.
“부, 분명 거대했다고 했는데?”
덩치가 가장 컸다고 알려졌는데, 생각보다 작았다.
“…뭐야, 멍멍이 형님? 엄청난 과거가 숨겨져 있었어?”
은호가 놀라며 흑견을 바라보았다.
“마음에 안 들어서 건드린 게 엄청난 과거인가?”
흑견은 발밑에 꿈틀거리는, 목도리도마뱀을 닮은 환수를 쳐다보며 비웃음을 흘렸다.
알아서 기어라.
그렇게 눈으로 말하고는 내려와 은호의 곁으로 걸어갔다.
조금 전과 같은 걸음걸이였음에도 모여들었던 환수들이 흩어졌다.
어둠으로 윈디드를 옆으로 밀고는 은호를 둥글게 감싸 주저앉았다.
“이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말하거라. 집에 가야 하니까.”
으함.
흑견은 길게 하품했다.
“……?”
옆으로 밀려난 윈디드의 시선에 흑견은 곁눈질로 바라보았다.
“왜? 할 말 있나?”
“아니, 같이 앉자고.”
윈디드는 웃는 얼굴로 다가와 흑견 옆에 앉았다.
어둠으로 윈디드를 밀었지만, 이번에는 밀리지 않았다.
“이건 포기 못 하지. 그 옆자리는 내 자리니까. 그렇지, 친구?”
“웃기지 마라. 지금 당장 바람이나 따라가거라.”
“……와.”
뒤늦게 은호가 말문을 열었다.
그 소리에 흑견과 윈디드가 작은 실랑이를 멈췄다.
“충격인데?”
뭔가 수상한 이중생활을 목격한 기분이었다.
놀란 은호의 표정에 흑견은 코웃음을 쳤다.
“내가 여기에 왔다고 말한 거 잊었는가?”
“이런 의미인지 몰랐지.”
“그런 의미다.”
흑견이 우쭐거리자 은호는 그대로 등을 기댔다.
“어떻게 과거에도 지금에도 여전히 멍멍이 형님인 건데?”
“무슨 의미인가?”
“멍멍이 형님이 지금보다 어렸을 거잖아? 나는 작은 멍멍이 형님을 생각했는데, 컸다니.”
은호는 머릿속으로 작은 흑견을 생각하다 말고 키득거렸다.
그 웃음에 흑견이 앞발을 들던 차 은호가 눈을 크게 떴다.
“아차, 이게 아니지.”
은호는 그대로 일어나 바닥에 머리를 박고 있는, 목도리도마뱀을 닮은 환수에게 다가갔다.
“괜찮아, 친구야?”
은호가 쓰다듬자 환수는 놀라듯 고개를 들었고, 그는 환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왜 그래?”
“……방금 뭐 한 거야?”
“쓰다듬었는데?”
“쓰다듬었… 다고?”
“응. 이렇게.”
은호가 손을 뻗어 환수를 쓰다듬자 환수의 눈이 가늘어지며 목둘레 있는 목도리 같은 게 우산처럼 활짝 펼쳐졌다.
“멍멍이 형님이 세게 때렸어? 많이 아파?”
“…전혀! 생채기도 나지 않았는데 무슨.”
“진짜? 땅이 이만큼이나 파였는…….”
“그나저나 조카를 네가 찾은 건가?”
“맞아. 잘 됐지?”
은호는 고개를 올렸다.
나무 사이로 두 산북이 살짝 보였다.
“그리고 우리, 이야기할 것도 있잖아?”
“해봐라.”
환수는 자비를 베푸는 것처럼 고개를 내렸다.
그 행동에 흑견이 다가왔다. 당장이라도 앞발을 들 것만 같았기에 환수는 뒤로 살짝 물러났다.
“내가 물어봤는데, 인간들이 너희를 나가지 못하게 막은 게 맞더라. 미안해. 정말 미안해.”
“…그럴 줄 알았지.”
환수는 잠깐 하늘을 바라보았다.
정말이었다니.
화가 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답답함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그럼 다른 건?”
―이걸 왕께서 결정 내렸고, 저 영감한테 감시를 시켰다는데, 그거 정말이야? 인간 너는 알고 있잖아? 정말 왕께서 우리한테 그랬어? 너희가 시킨 거지? 너희가 우리 왕께 협박이라도 한 거지?
저 환수는 그때, 왕을 언급했다.
“너희의 왕이 너희를 이곳에 가두기로 결정을 내렸다는 거 말이야?”
은호의 물음에 환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니. 이건 인간들이 일방적으로 내린 결정일 뿐이야.”
“왕께서… 개입하지 않았다는 말이지?”
“맞아. 너희가 듣기에 불편하겠지만, 너희를 보호하기 위해서 내린 결정이라는 사실도 알아줬으면 좋겠어. 이건, 너희를 담당하는 인간의 대표가 너희에게 전달해줬으면 하는 말이니까.”
은호가 전해준 그 말에 환수는 숨을 깊게 내쉬었다.
“저 영감이 그러더라. 우리가 밖으로 나가봤자, 환영해줄 인간들은 어디에도 없다고. 마음이든 몸이든 다치기 전에 나가지 말라고. …그게 정말이었네.”
누군가 자신들을 미워하는 이가 있다는 건 생각보다 씁쓸한 일이었다.
“아니야. 내가 있잖아? 그리고 그 대표라는 인간도 그래. 너희를 계속 생각하는데?”
“뭐?”
“또 있어. 연구소라는 곳에 있는 인간들도 너희가 환수 보호 구역이라고 불리는 이곳을 벗어나 자유롭게 움직이는 걸 바라고 있을 거야.”
은호가 하나씩 언급하며 실실 웃었다.
웃음이 바보 같기도 하고, 조카를 찾아주기도 했기에 환수는 아주 조금 마음을 내려놓았다.
가장 안심이 되는 건 왕이 자신들을 버리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다들, 들었지? 왕께서는 아니라네.”
환수는 주변을 돌아보며 말을 꺼내다 말고 고개를 돌렸다.
윈디드가 다가오고 있었다.
“큰 친구. 이야기를 잘 들어보니 왕을 의심하던데.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이유를 말해주겠어?”
윈디드의 목소리가 무거워졌다.
평소의 가벼움은 사라지고, 바짝 올라간 깃털과 함께 밀려드는 기백은 상당히 강대해 저절로 환수의 눈꼬리가 올라갔다.
“왕께서 우리를 위한다는 건 알지만,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잖아.”
“그래서 의심하고 그 사실을 퍼트렸다는 거야?”
“내가 그러지 않았어. 하지만 왕께서 우리에게 오지 않았어.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해도, 우리한테 이야기해주지 않으면 흔들린다고. 우리가 이곳에 얼마나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대체 그 이야기를 누구한테 들은 거지, 큰 친구?”
분위기가 바뀌었다.
날카로워진 윈디드의 표정에 주눅이 든 다른 환수들도 나왔다.
은호는 윈디드와 환수를 번갈아 보았다.
예민한 문제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윈디드가 평소랑 달라보였다.
“…새로 들어온 녀석한테.”
환수가 껄끄럽다는 듯 대답했다.
“그 존재가 누구인지 몰라도 지금, 안내를 받고 싶은데?”
윈디드의 입에서 협박 같은 권유가 흘러나왔다.
머리 위 링마저 아주 잠깐 반짝거렸다.
“그러든지.”
환수가 따라오라며 등을 돌렸다.
“그런데 혹시, 나도 가도 돼?”
은호가 슬쩍 손을 들며 물었다.
궁금한 건 참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