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149)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149화(149/302)
149화. 모아야 하는 건 마음이다
“…이것 봐.”
은호는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동영상 안에는 라비를 쫓아 신나게 뛰어다니는 폭시가 보였다.
혀가 나올 정도로 열정적인 뜀박질에는 어딜 봐도 즐거움밖에 보이지 않았다.
신나게 달리던 폭시는 갑자기 고개를 돌리더니 은호를 향해 활짝 웃으며 다가왔다.
폭시의 두 눈동자에 싱그러움이 가득했다.
키득거리는 자신의 목소리가 들리자 은호는 다급히 동영상을 멈췄다.
‘……깜짝 놀래라.’
동영상으로 듣는 자신의 목소리는 언제나 낯설었다.
“…갑자기 와서 이걸 왜 나한테 보여주는 건데?”
하이프가 일그러진 얼굴로 은호를 보았다.
저 검은 존재 때문에 피부가 다 쓰라렸다. 그만 좀 노려보면 좋겠는데.
“네가 걱정할까 봐. 폭시는 잘 회복되고 있다는 걸 알려주려고 왔어.”
은호의 대답에 하이프는 기가 찼다.
누가 누굴 걱정한다는 건지.
“너 지금 내가 누구인지 자각은 하는 거야?”
저 인간이 이 숲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자신을 가둬놨다.
자신이 어떤 힘을 쓰는지 알면서도 다가올 때 기가 막혔는데, 이제는 자신 따윈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았다.
날이 선 건 오로지 저 검은 존재 하나였다.
“알아. 내가 왜 모르겠어?”
“그런데 왜 찾아왔는데. 아, 내가 어떤 꼴인지 지켜보면서 비웃으러 왔나?”
따악!
은호는 하이프의 이마에 딱밤을 때렸다.
“친구야. 비꼬지 마.”
“…….”
하이프는 놀란 눈으로 은호를 보았다.
“널 비웃으려고 했다면 나는 찾아오지도 않았을 거야.”
“나한테 뭘 원하는데?”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 내가 여기에서 너한테 바라는 게 뭐가 있겠어? 널, 제압했고, 계획도 멈췄는데. 굳이 뭐가 있냐고 한다면, …음, 이제 그만 널 용서하는 거?”
은호는 말을 하며 가방에서 꺼낸 꽃을 내려놓았다.
손주 산북이 고맙다며 화관을 만들어줬다.
할아버지 산북은 대체 어디에서 가져왔는지 몰라도 보석을 내밀었다.
거절하려고 했는데, 손이 그만 먼저 나가버렸다.
몸에 길들어진 자본주의를 탈피하려면 아무래도 시간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싶었다.
“귀여운 친구가 화관을 만들어줬는데, 거기 꽃이 예쁘더라고. 꽤 먼 곳이라서 너도 보라고.”
보랏빛이 섞인 흰 꽃이었다.
은호는 그 꽃을 바닥에 내려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래갈 거야.”
“…방금 그 말, 무슨 소리야?”
“네 기분 안다고 했잖아. 나라면 내가 아주 미울 테니까. 너도 그러지 않을까 했어.”
하이프는 은호가 던진 말에 시선을 내렸다.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갈게.”
은호는 하이프가 갈 수 없는 숲 너머로 발을 움직였고, 하이프는 그가 남긴 꽃을 보았다.
‘…나보고 어쩌란 거야.’
하이프는 몸을 웅크렸다.
저 인간한테 다 빼앗겼다.
그런데 생각 이상으로 밉지 않았다.
다 잃고 나니 밀려오는 허탈함 때문에 제정신이 아닌 걸까.
* * *
“…저 존재한테 왜 아무것도 묻지 않는가?”
흑견이 묻자 은호는 공간 너머로 넘어온 뒤에야 대답했다.
“정보야 주면 좋지. 찾는 시간도 단축되니까. 하지만 우리가 정보가 없는 것도 아니고. 지금 열심히 움직여주는데, 이 잠깐 기다리는 게 뭐라고.”
“찝찝한가?”
“음.”
은호는 흑견의 물음에 잠깐 생각하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찝찝함보다는 뭐라고 해야 하나, 하이프는 그 정보를 얻으려고 긴 시간을 바쳤잖아? 뭔가 홀라당 정보만 빼먹는 것 같아서. 내가 막 착한 건 아닌데, 정보의 귀중함은 잘 알고 있어.”
“아니얌!”
레비아탐의 목소리에 은호는 고개를 돌렸다.
문틈 사이로 레비아탐의 더듬이가 보였다. 화가 났는지 몰라도 바짝 서 있었다.
“은호는 착햄!”
앞발이 문 사이로 들어오며 레비아탐이 힘껏 외쳤다.
“아니야, 레비아탐. 내가 보이는 것보다 아주 못됐어. 레비아탐도 알면 깜짝 놀랄걸?”
은호가 가방에서 보석을 꺼내 벽에 박아둔 서랍장에 하나씩 올려뒀다.
“아니얌. 은호는 아니얌!”
다리를 붙잡는 손길에 은호는 놀라며 아래를 바라보았다.
당장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처럼 레비아탐의 동그란 눈동자가 흠뻑 젖어 있었다.
은호는 한쪽 무릎을 꿇고는 레비아탐을 쓰다듬었다.
“네가 더 속상해하면 어떡해.”
진짜인데.
이걸 가짜라고 말할 수도 없고.
은호는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 고여버린 눈물을 닦았다.
“…은호가 못됐다고 하잖암. 은호는 그렇지 않은뎀.”
“그래서 눈물이 났어?”
레비아탐은 훌쩍이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잘 울지도 않는데, 이렇게 울어버리면 너무 곤란했다.
“하지만 이건 멍멍이 형님도 아는 건데? 그렇지?”
은호가 흑견에게 묻자 심드렁한 표정을 짓더니 그대로 그림자로 들어가 버렸다.
“잠깐만 멍멍이 형님! 왜 평소처럼 안 그래?”
평소에는 자랑이라도 하면 아주 남 보듯 쳐다보면서. 이럴 때는 귀신같이 빨랐다.
이히힛.
레비아탐이 크게 웃다 다급히 입을 가렸다.
“레비아탐. 그거 알아?”
“어떤 검?”
레비아탐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울다가 웃으면 더듬이가 더 자라난대.”
“…정말롬?”
레비아탐은 바로 머리를 만졌다.
앞 발가락으로 더듬이를 신중하고 건들고 있었다.
“은호! 나하고 까망이하고 준비됐어!”
폭시가 꺄르르 웃으며 다가오다 말고 그대로 멈췄다.
“맞느니라! 나도 준비가 됐…….”
폭시를 따라 덩달아 발걸음을 멈추다 말고 라비는 문에 머리를 부딪쳤다. 몸이 빙그르르 돌다 말고 다리가 머리 쪽으로 휘어지며 바닥에 누웠다.
라비가 멍한 표정을 지었고, 꼬리가 꿈틀거렸다.
“무슨 일이야, 레비아탐? 울었어?”
폭시는 레비아탐의 눈꼬리 끝에 매달린 눈물을 보았다.
“응? 레비아탐이 왜 울었더냐?”
라비는 자리에서 일어나다 말고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나, 더듬이가 세 개야?”
레비아탐이 더듬이를 붙잡은 채 폭시와 라비를 보며 물었다.
금세 폭시의 눈동자에 장난기가 어렸다.
은호가 뭘 하려는지 예상이 됐다.
라비의 눈동자가 덩달아 움직였다.
레비아탐의 왼쪽 앞발에 쥐어진 더듬이가 하나. 오른쪽 앞발에 접힌 채 쥐어진 더듬이가 둘, 셋.
“세 개니라!”
라비는 자랑스럽게 말을 내뱉었다.
“세, 세 개라곰?”
“그렇다. 나는 숫자를 알고 있느니라!”
라비가 으쓱거리며 대답하자 은호는 필사적으로 손으로 입을 막았고, 폭시는 고개를 돌렸다.
둘 다 이상하게 어깨를 흔들자 라비는 어리둥절했다.
“어, 어떡햄! 진짜, 진짜로 더듬이가 더 늘어났엄!”
레비아탐이 은호에게 다시금 매달려 눈을 질끈 감았다.
정말로 소리 내어 울어버릴 것 같기에 은호는 손을 뻗어 레비아탐이 꼭 쥔 앞발을 간질거렸다.
밀려오는 간지러움에 레비아탐은 앞발에 힘을 풀었다.
은호는 휴대전화를 들어 레비아탐을 보여줬다.
“봐, 레비아탐. 더듬이는 두 개인데?”
“정말이담.”
레비아탐은 놀란 눈으로 휴대전화에 뜬 본인을 바로 인지해서는 이리저리 살폈다.
그제야 레비아탐은 활짝 웃었다.
“자, 이제 친구들. 마트 갈 준비 됐어?”
“응! 나는 준비 됐어!”
“나돔! 나돔 준비됐엄!”
폭시와 레비아탐이 앞발을 흔들기에 은호는 라비를 마지막으로 보았다.
“나도……. 어? 일렉트는 어디로 갔더냐?”
라비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일렉트가 없는 걸 눈치챘다.
“일렉트라면.”
은호는 창문을 연 뒤, 가방에서 토템을 꺼내 들었다.
창문을 통해 바로 무언가 안으로 들어오며 은호의 손에 들린 토템 주변으로 똘똘 말려서는 활짝 웃고 있었다.
“이렇게 오게 되어 있지.”
은호가 우쭐거렸다.
어떻게 하면 일렉트를 낚을 수 있는지 이제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삐죽이도 갈 거지?”
“어딜 가?”
일렉트는 은호의 손에 쥔 토템만 바라보았다.
“마트. 애들이 마트 구경하고 싶다고 그래서. 저번에는 폭시만 데려갔거든.”
마트를 데려갈 생각은 없었지만, 폭시가 마트를 갔다 온 이야기를 들은 건지, 그때부터 라비가 노래를 부르더니, 레비아탐도 이에 동조했다.
“헤인이가 마트에는 전기를 저장한 건전지가 있다고 했는데!”
갑자기 일렉트가 은호를 바라보더니 꼬리 끝을 크게 흔들었다.
한눈에 봐도 기뻐하고 있었지만, 은호는 입이 간지러웠다.
‘그거라면 우리 집에도 있는데.’
말해야 할까 말까.
‘아니다. 그냥 데리고 가자.’
마트가 어떤 곳인가.
종류별로 건전지가 늘어진 곳이 아닌가.
‘가는 김에 잠깐 사장님하고 버니멀들을 보고 올까?’
버니멀들하고 잘 지내던 사장님은 마트를 돌아다니던 버니멀을 목격한 손님들에게 여러 번이나 신고당했다.
현행 상 환수와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은 환수 관리국 소속과 환수 연구소 소속뿐이기에 보호종인 환수를 학대했다는 오해도 받고 버니멀들과 헤어질 뻔하기도 했다.
이 일을 계기로 법이 개편되도록 지혜가 노력하고 있었다.
법이라는 게 어느 나라든 하루아침에 바뀌는 게 아니기에 조금 더 기다려야 했다.
“그럼, 삐죽아. 같이 갈래?”
은호가 제안하자 일렉트가 작은 눈을 크게 뜬 채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갈래! 갈래!”
건전지라는 걸 모르기에 환상적인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마트 가서 아주 크게 실망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지만, 은호는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이 분위기를 끌어왔다.
“좋아. 다 같이 가자!”
은호가 주먹을 앞으로 뻗자 다른 애들도 같이 앞발을 뻗었다.
웃음꽃이 가득 피어났다.
* * *
일렉트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하지만 품에 꽤 큰 건전지 하나가 소중히 들려 있었다.
“왜 그래, 삐쭉아? 잘 보고 왔잖아. 건전지가 수없이 늘어진 모습을 보고 진짜 많이 좋아했잖아.”
은호는 일렉트를 쓰다듬었다.
뭐가 또 그렇게 실망했을까.
“은호. 왜 벌써 마트 밖으로 나오는 건데?”
일렉트의 대답에 은호는 살짝 놀랐다.
일렉트가 저런 말도 하다니.
“마, 맞느니라!”
계속 멍하니 있던 라비마저 뒤늦게 입을 열었다.
“컸엄! 진짜 컸엄!”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다 말고 레비아탐이 흥분한 얼굴로 뒷말을 이었다.
세찬 콧바람이라도 나올 것만 같았다.
이미 갔다 왔던 폭시만이 꼬리를 흔든 채 같이 기뻐했다.
“헤인이가 말한 대로지?”
“맞아! 건전지가 진짜 많았어! 정말 많았어!”
일렉트가 폭시의 물음에 고개를 격렬하게 끄덕였다.
“아주 컸느니라!”
라비는 앞발을 크게 뻗다 은호가 내민 물이 담긴 그릇에 얼굴을 콕 박았다.
“뭐가 많았엄! 신기한 게 진짜 많았엄! 계속, 계속 달라졌엄!”
레비아탐은 주저앉아 두 발을 동동거렸다.
두 뺨이 점점 빨개졌다.
“멍멍이 형님도 즐거웠지?”
은호가 감자 과자를 들자 밖으로 나온 흑견이 꼬리를 흔든 채 대수롭지도 않게 말했다.
“이미 갔던 곳이다.”
말을 끝낸 뒤, 입을 벌렸다.
달라는 행동에 감자 과자를 부어 주었다.
와그작. 와그작.
“은호. 다시 돌아가자.”
일렉트가 건전지를 안지 않은 팔로 은호의 옷자락을 쥐었다.
작은 눈을 반짝반짝 뜨며 애원하니 은호는 금세 마음이 흔들렸다.
“안 돼.”
하지만 은호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어째서 안 되더냐.”
라비가 고개를 들며 물었다. 물 때문에 눈을 감고 있었다.
은호가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대답했다.
“여기 계속 있으면 너희가 힘들잖아.”
폭시가 좋아했다고 말하자마자 태호가 다시 개조해 환수용 유모차를 만들었다.
하지만 구조적으로 내부가 보이지 않게 가려져 있다 보니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한자리에 계속 있다 보면 지칠 테고.
“…….”
은호가 꺼내는 말에 다들 서로를 바라보았다.
눈빛을 교환하는 것만 같았다.
“나는 하나도 안 힘들엄.”
레비아탐이 앞발을 들었다. 원래 가만히 있는 걸 잘했다.
일렉트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일렉트 역시 가만히 있는 걸 잘했다.
폭시는 라비를 힐끔 바라보다가 활짝 웃었다.
“은호. 다 같이 가야겠는데? 혹시 어디 들릴 곳이 있어?”
“아. 여기 근처에 있는 친구 좀 보고 집에 가게. 그런데 진짜 다들 따라올 거야?”
은호의 물음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 돌아갈지 알고, 간식 챙겨놨는데.’
은호는 목덜미를 만지작거리다 가방을 뒤졌다.
‘비상용 간식이 있을 텐데…….’
가방을 뒤적거리는 소리에 라비가 군침을 흘리며 반짝거리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 * *
“아니. 쓰레기 좀 여기에 그만 모으라고.”
누군가 버럭 소리치자 길을 가던 은호가 본능적으로 귀를 기울였다.
중년 여성이었다.
“내가 안 했다니까? 나도 미칠 노릇이야. CCTV를 봐도 없다고! 어느 미친놈이 초능력으로 이곳에 쓰레기를 던져둔다고! 그걸 나보고 어쩌라는 건데?”
중년 남자가 덩달아 소리쳤다.
꽤 오래 묵은 갈등인지, 실랑이가 벌어지자 은호는 그들이 왜 싸우나 싶어 고개를 돌렸다.
가게 사이에 있는 작은 골목에 뭔가 쌓여 있었다.
잘 보니, 재활용이 필요한 물건들 같았다.
“…그거 내 건데.”
누군가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은호는 반사적으로 눈동자를 움직였다.
라쿤을 떠올릴 정도 눈가에 검은 반점이 깊었지만, 얼굴과 귀가 더 동글동글한 환수가 보였다.
등에 접힌 날개가 존재했고, 꼬리는 통통하며 풍성했다.
“내 보물을 두고 싸우지 마.”
꽈악.
환수는 화가 난 것처럼 벽을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