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15)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15화(15/30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 015화
15화. 비눗방울은 마냥 예쁘지 않다(3)
“그, 그만햄! 그만햄!”
레비아탐이 갑자기 소리쳤다.
은호는 뜻밖의 반응에 놀란 눈을 하며 레비아탐을 바라보았다.
“…내가 다 나빰. 내가 다 나쁘다곰.”
레비아탐은 혼란스러운 눈을 하며 시선을 내렸다.
구석에 내몰린 듯한 얼굴이 드러났다.
“들었지? 쟤가 다 나쁘다고 하잖아? 우리는… 잘못 없어.”
도로롱 중 한 마리가 은호를 빤히 보았다.
그 도로롱의 더듬이 일부가 잘려 나간 상태였다.
은호는 다른 이들의 표정을 살폈다.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동족을 포함한 다른 환수들은 말을 꺼낸 도로롱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은호는 그제야 천천히 그들의 관계가 눈에 들어왔다.
“내가 너희를 너무 간단하게 봤나 보다.”
은호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며 가볍게 웃었다.
그냥 다 같이 환수라고 보고 있었다. 저들 역시 지성을 가진 생물체인데.
그들에게 힘의 논리가 적응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위와 아래가 철저하게 구분된, 현실 사회의 축소판 그 자체랑 다르지 않을 테지.
여기에서 제일 위는 흑견일 테고, 제일 아래는 레비아탐이었다.
“멍멍이 형님. 내가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말해라.”
“환수들은 서로를 잡아먹어?”
흑견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냐는 눈으로 은호를 바라보았다.
“……인간은 인간끼리 서로를 잡아먹나?”
“아주 드물게 있다고는 하는데, 금지되어 있지. 너희도 그래?”
“당연하다. 그건 왕이 정한 규칙이니까.”
“…왕이 있어?”
“그렇다.”
더 파고들고 싶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역시 별로 다르지 않네.”
은호는 오히려 저 말에 마음이 가벼워졌다.
다르지 않다는 건 더 빨리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일 테니까.
“레비아탐.”
은호는 레비아탐을 부드럽게 불렀다.
“나는… 괜찮암. 정말이얌!”
입에서 거품이 나올 것만 같자 레비아탐은 다급히 은호와 멀어졌다.
“너한테도 미움받고 싶지… 않아.”
너무도 오랜만에 만난 다정한 존재였다.
입을 가리기도 전에 또 거품이 멋대로 나오자 레비아탐이 놀란 눈을 하다 이내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괜찮아.”
은호는 손을 내밀었다.
강자가 된다면 지배가 아니라, 사다리를 놓아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비현실적이라는 것 역시 알지만, 그러고 싶었다.
삐이이이익.
위에서 거품이 터졌음에도 소리가 울리며 진동이 모두의 귀를 때렸다.
차가운 시선이 쏟아지자 레비아탐은 심장이 쾅쾅 울리는 걸 느꼈다.
두려움에 떨리는 얼굴로 은호를 바라보았다.
“괜찮아, 레비아탐. 이리 와.”
은호는 활짝 웃고 있었다.
따뜻한 시선에 레비아탐은 조심스레 눈을 깜박거렸다.
혼란스러웠다.
왜 저렇게 웃는 건지 몰랐다.
레비아탐은 한 발짝, 두 발짝, 조심스레 다가갔다.
“…아프남? 다쳤남? 또 피가 나남?”
“아니. 멀쩡한데? 이번에는 진동이 별로 안 컸어.”
은호는 하늘을 가리켰다.
높은 곳에 터져서 그 영향이 별로 없었다.
“레비아탐. 나한테는 사실대로 말해줘. 그래야 너를 도울 수 있어.”
돕는다는 말이 어색하게 다가왔기에 레비아탐은 입을 살짝 벌렸다.
“정말로 네가 모든 행동을 주도해서 저들을 화나게 한 거야? 정말로?”
은호의 물음에 레비아탐은 다른 이들을 바라보았다.
무서웠다.
하지만 더 무서운 건 따로 있었다.
“…혼자가 될 거얌. 다 말해버리면 나는 진짜로 혼자가 될지도 몰람.”
턱밑까지 밀려온 듯한 두려움이 넘실거렸다.
은호는 레비아탐을 쓰다듬었다.
“이러면 섭섭한데? 아까 우리 집에 같이 살자고 말한 거 잊었어?”
레비아탐은 놀란 눈을 하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잠깐만 진정하고 있어. 도로롱 친구들한테 물어볼 테니까.”
은호의 시선을 받은 도로롱들은 긴장하며 꼬리가 딱딱해졌다.
무슨 공격이 올까.
맞으면 얼마나 아플까.
“도로롱 친구들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줘. 뭔가 단단히 꼬여버린 것 같은데, 내가 풀어줄게. 약속해.”
은호가 새끼손가락을 들며 다정한 미소를 내보이자 흑견은 콧바람을 내쉬었다.
뭐가 저렇게 맥이 빠지는지.
“…….”
도로롱은 놀란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나쁘지 않았다.
인간인데, 뭔가 달랐다.
도로롱들은 더듬이가 잘린 도로롱을 거의 동시에 주목했다.
시선을 받은 도로롱은 짧은 앞발을 꾹 쥐었다.
“말하면 나는 죽을지도 몰라.”
도로롱은 앞발을 꼭 쥐었다.
레비아탐과 시선이 마주쳤다. 이렇게 시선을 마주친 적이 얼마 만일까.
도로롱이 꼭 쥔 앞발에 힘이 들어갔다.
“그렇다면 굳이…….”
“저 산에 강한 존재가 살고 있어.”
“……어?”
은호는 많이 당황했다. 알려주면 죽는다는 말과 달리 너무도 쉽게 말을 꺼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몰라. 가만히 있었는데, 내 집을 빼앗고, 내 더듬이마저 걔가 찢어버렸어.”
도로롱은 더듬이를 만지려고 했지만, 닿지 않았다.
“그걸 본 레비아탐이 걔한테 덤벼서 날 구해줬어. 나는 너무 놀라 도망쳤는데, 도망치지 못했어. 걔가 쓰러진 레비아탐을 물고는 내 앞에 나타났어.”
쿵.
쿵.
요란하게 울리는 본인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도로롱의 털이 뻣뻣해졌다.
“레비아탐의 혀를 찢어버리며 나한테 말했어.”
그때를 떠올렸는지, 굳은 표정으로 이야기를 이어가던 도로롱의 숨소리가 빨라졌다.
“…이 녀석한테 접근한 놈은 물론, 눈에 띈다면 죽여버리겠다고.”
이야기를 듣던 은호는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더 깊은 오해가 있었음을 알았다.
“나는… 레비아탐을 쫓아내야 했어. 여기서 더 멀리 레비아탐을 보내야 했어. 레비아탐이 잘못한 건, 잘린 혀 때문에 다른 얘들을 실수로 공격한 것밖에 없어. 그것도 나 때문이지.”
도로롱은 굉장히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레비아탐은 몸을 앞으로 길게 빼 바라보았다.
“…거의 다 성공했는데. 너희가 와버렸어.”
“바바람?”
레비아탐은 더듬이가 잘린 도로롱을 조심스럽게 불렀다.
“내가… 사고뭉치라서 싫어했던 게 아니었엄?”
“아니야.”
“내가, 아빠랑 엄마도 없는데,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그런 게 아니얌?”
“아니라고, 바보야!”
바바람은 소리치다 고개를 숙였다.
“……널 죽이겠다는데 내가 그걸 어떻게 보고 있어? 내가?”
도로롱은 말을 하면 할수록 목에 물이 차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온몸이 떨려왔다.
“날…… 싫어했던 게 아니었엄?”
“…미안해 죽겠는데, 널 왜 싫어해?”
“……그럼, 그럼, 너희도 그랬엄?”
레비아탐은 믿을 수 없는 눈으로 다른 도로롱을 보았다.
그들이 고개를 끄덕여서야 레비아탐은 미끄러지듯이 등으로 누웠다.
하늘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레비아탐?”
은호가 멍하니 풀린 레비아탐을 불렀지만, 꼬리만 움직여 얼굴을 가렸다.
또 거품이 나올까, 짧은 앞발로 꼬리를 꼬옥 쥐었다.
몸이 떨리자, 은호는 토닥거렸다.
“나는… 나는 내가 너무 못나섬. 그래섬. 다들 날 싫어하는지 알았엄.”
꼬리에 묻혀 레비아탐은 울먹였다.
“그런 게 아니었네?”
“응… 응. 아니었엄! 아니었어엄! 다들 날 좋아햄!”
울음이 가득하지만, 환한 레비아탐의 목소리에 은호는 안도했다.
‘다행이다.’
생각도 잠시, 은호는 밀려오는 의문에 도로롱이 아닌 다른 환수들에게 물었다.
“너희는 레비아탐이 벌인 일이 그렇게까지 화가 나서 그랬던 거야?”
“…쟤를 안 치우면 걔가 우리를 어떻게 할지 알고 가만히 있어? 쟤도 나가는 게 좋잖아?”
“그걸 떠나 애초에 우리는 쟤한테 피해를 당했다고.”
은호가 충격을 받은 눈으로 흑견을 바라보았다.
“뭘 설명해달라는 건가?”
“원래 이런 거야?”
“뭘 말하는 건가?”
“아니…….”
머릿속에 많은 말이 맴돌았다.
힘이 센 환수한테 찍혔다는 이유로 이렇게까지 다 같이 나서야 하는 일인지.
일단, 모두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 힘을 합쳐서 강한 환수에게 대항해야 한다는 생각은 왜 하지 않는 것인지.
분명히 레비아탐이 어쩌다가 저렇게 됐는지 알고 있었음에도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 하나를 꼬집으며 계속 괴롭히지 않았던가. 갑자기 이렇게 피해자인 척하면 본인한테 부끄럽지도 않은지.
하지만 말을 삼켰다.
사실, 사람도 똑같았다.
저들에게만 이렇게 내뱉는 건 맞지 않았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얼버무리며 은호가 웃자 흑견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게 위계질서다, 인간. 싸움을 해서 바꾸거나, 싸움조차 걸어보지 못할 만큼 겁쟁이거나. 아니면 싸움을 걸었는데, 패자가 됐거나. 우리는 이 법칙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잘 모르겠어.”
“우리는 너희 인간보다 더 자연과 가까운 존재이기 때문이지.”
“…….”
“그런데 넌 다르다, 인간.”
흑견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인간은 왜 본인이 한 걸 잘 모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미 얽혔던 오해를 풀지 않았는가.
이런 해결법은 생전 처음 보았다.
“그 법칙에서 너는 자유로울 수 있다. 자연은 널 선택했으니까.”
“그렇네? 난 드루이드니까.”
은호는 흑견이 바라보는 곳을 보며 안경을 착용했다.
뭔가가 달려오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늑대 크기만큼 덩치가 제법 있었다.
하지만 머리가 아주 사납게 생긴 닭을 닮았기에 예상했던 모습이 아니었다.
커다란 날개가 아름답게 뻗어 있었다.
태블릿에 금세 글자가 떠올랐다.
《환수를 인식했습니다.》
《코카트레스.》
《.》
《.》
《성격이 포악한 편으로 부모로부터 일찍 독립합니다. 반려자가 존재하지 않을 경우, 독립적으로 생활합니다. 눈에 거슬리는 존재는 동족을 따지지 않으며 대화보다는 공격을 선호합니다.》
《두꺼운 다리로 빠르게 움직일 수 있으며 부리와 발톱은 철마저 쉽사리 절단할 수 있을 만큼 날카롭습니다. 꼬리에 달린 뱀을 닮은 존재는 살아 있으며 이빨과 함께 독을 품고 있습니다.》
《주의하십시오.》
‘……와.’
은호는 태블릿에 떠오른 환수 정보를 보며 기겁했다.
이렇게 하나같이 위험한 건 물론, 경고문까지 뜬 적은 처음이었다.
‘얼마나 포악하길래 그런 거지?’
“왔다! 왔어!”
환수들이 코카트레스를 보며 기겁했다.
진짜 등장할 줄이야.
환수들은 일제히 은호의 뒤로 물러섰다. 등에 닿는 여러 촉감에 은호가 황당함을 드러내며 물었다.
“저기요? 왜 다들… 내 뒤로 숨어? 내 덩치로도 가려지지 않을 텐데?”
“……그거야, 무서우니까.”
“맞아, 무서워!”
“나도 저 환수는 좀 무서운데? 눈빛 봐. 살벌하네.”
은호는 맹금류의 눈으로 선명히 보이는 코카트레스의 눈빛에 악몽이라도 꿀 것만 같았고, 흙먼지를 뿜으며 달려오는 모습은 흡사 달리는 차가 돌진해오는 기분이었다.
흑견은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여긴 내 영역이다. 인간의 부탁으로 줄이긴 했어도 영역을 침범했다.”
“…맞네. 그렇게 되는 거네?”
은호는 고개를 빼꼼히 든 레비아탐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조심스레 땅에 내려놓았다.
“저 환수는 우리의 영역을 침범했어. 오려면 살기 집어넣고, 천천히 걸어서 우아하게 인사한 뒤에 들어와야지.”
은호는 당당히 자리에서 일어나 흑견의 옆으로 걸어 나갔다.
“……우리?”
“그렇지, 우리.”
은호가 웃자 흑견은 앞을 바라보았다.
나쁘지 않은 울림이었으니까.
은호는 눈을 감았다.
자연과 가장 가까운 자를 드루이드라고 했다.
땅의 울림이 전해졌다.
그들의 슬픔이 마음에 다가왔다.
무엇이 슬픈 걸까.
그 이유는 모르지만, 그들의 물음이 귓가에 들려왔다.
저 존재는 자신의 적인지, 친구인지.
은호는 눈을 떴다.
‘지금은 적이지.’
코카트레스의 살벌함이 땅을 통해 느껴졌으니까.
저 환수로부터 다른 환수들을 보호해야 했다.
그게 임시 보호소가 되겠다는 자신의 바람이 아니었겠는가.
은호는 손아귀에 감긴 붕대를 풀었다.
아직 덜 아물었지만, 회복 속도가 좋았다.
‘멍멍이 형님이 뭐라고 하겠네. 그래도 해봐야지.’
은호는 가방에서 칼을 꺼냈다.
개같이 해도 남의 실적만 되던 회사와 달리 지금 하려는 일은 온전히 자신의 선택이요,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몫이 되었다.
마음에 들었다.
주저 없이 다시 손바닥을 그었다.
“……인간?”
흑견이 옆에서 밀려오는 피 냄새에 고개를 돌렸다.
“우리 친구들, 이번 일로 나하고 하나만 약속하자.”
피가 후두둑 땅으로 떨어졌다.
은호의 발밑에 있던 풀포기들이 피를 먹으며 주저 없이 자라났다.
“서로를 힘으로 괴롭히지 말고, 대화로 풀기. 어때, 간단하지?”
은호가 발을 구르자 나풀거리던 풀포기들이 뭉쳤다.
어제 돌아와서 태블릿에 있는 ‘드루이드가 어려운 당신을 위한 설명서’라는 어플을 열심히 보았다.
하지만 다 볼 수는 없었다.
처음에는 고작 두 장 정도의 내용인 줄 알았는데, 너무 많았으니까.
눈으로 읽는다고 바로 머릿속으로 와닿지도 않았고.
하지만 이것만은 기억했다.
―피를 대가로 바쳤음에도 식물을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모르겠다고요? 딱 세 가지만 기억하세요. 하나. 피를 바쳤나요? 둘. 그 뒤, 식물과 연결은 제대로 잘 됐나요?
땅 아래로 반짝이는 빛깔로 된, 수많은 실이 자신의 몸에 닿는 느낌과 함께 실제로 맹금류의 눈을 통해 보였다.
‘피도 연결도 오케이.’
은호는 다 확인한 뒤에 코카트레스를 바라보았다.
―셋. 이제 남은 건 의지입니다. 연결되었다면 이제 한 몸인데, 움직여야죠. 뭐 합니까?
단순한 게 최고라는 말에 걸맞게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은호의 주변에 뭉친 풀포기가 흡사 주먹을 닮아 있었다.
“듣고 있어, 자연아? 내 대답은 그거야. 그게 내 의지야.”
은호가 앞으로 달려 나가자 흑견의 몸이 부풀었다.
“인간! 지금 뭘 하는…….”
흑견은 은호가 달려 나가는 동안 피어난 꽃을 보며 멈칫거렸다.
뒷발을 붙잡은 건 풀포기였다.
마치 나서지 말라고 주장하는 것만 같았다.
겨울을 깨우는 봄처럼 참 요란한 은호의 걸음걸이 뒤로 자연이 움직였다.
은호가 뛸 받침대를 만들어주며 식물의 도움을 받아 그가 하늘을 날았다.
흑견의 눈동자가 덩달아 따라 움직였다.
은호의 손은 허공을 쳤지만, 그가 풀포기로 만든 주먹은 달려오던 코카트레스의 이마로 향했다.
콰아아아앙!
머리가 쪼개진 듯한 소리와 함께 바람이 불어닥쳤다.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한 코카트레스는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이…….”
말을 잇지 못한 채 휘청거리더니 땅으로 머리를 박았다.
부리 밖으로 혀가 날름 나왔다.
은호는 꽃들이 순식간에 피어난 땅으로 떨어졌다.
꽃잎이 휘날렸고, 은호는 크게 웃었다.
“친구야, 이게 사랑의 꿀밤이라는 거야.”
자리에서 일어난 은호는 쓰러진 코카트레스가 꼼짝도 하지 않자 서둘러 다가갔다.
“…숨, 쉬고 있지, 친구야? 숨 쉬는 거 맞지? 그렇… 지?”
코카트레스를 흔들려다 배가 들썩거리는 걸 보며 안도했다.
“……죽은 줄 알고, 진짜 놀랐잖아?”
괜히 괘씸해 딱밤을 때렸다.
따악.
은호는 그대로 신음을 삼키며 입술을 깨물었다.
손가락이 부러진 듯한 느낌에 진땀이 다 날 정도였다.
농담 아니라, 벽에다 대고 딱밤을 날린 느낌 그대로였다.
‘아까 그대로 코카트레스와 부딪쳤으면 지옥행 확정이네?’
은호는 어색하게 웃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싹 바뀐 환수들의 눈빛부터 보였다.
흑견을 등에 업었을 뿐, 아무것도 못 하는 인간에서 코카트레스를 쓰러트린 인간으로.
“짠.”
은호의 가벼운 말에 환수의 환호가 터져 나왔다.
“지, 진짜 해냈잖아!”
“어떻게 이게 가능한 거지? 어떻게…….”
“인간이 우릴 도왔어. 인간이, 우릴… 도왔다고.”
“바로 내가 해냈지.”
은호는 대놓고 우쭐거렸다. 자신이 한 건 확실히 말하고 싶었다.
“…진짜 해냈엄.”
레비아탐은 조심스레 걸어왔다.
“그럼. 레비아탐하고 우리 친구들한테 약속했잖아?”
“인간.”
흑견의 목소리에 은호는 콧대를 세웠다.
“얼마든지 칭찬해도 돼, 멍멍이 형님.”
“또 거대 나무를 만들 셈인가?”
은호의 시선이 피가 나는 손으로 향했다. 아직도 땅을 적시고 있었다.
“…아. 여기에 히모스 나무가 없나 보네.”
은호는 가방에서 지혈 효과가 있는 히모스 나뭇잎을 꺼내 돌돌 감았다.
갑자기 그림자가 지자, 은호는 고개를 위로 돌렸다.
뱀처럼 날이 선 검은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인간 주제에.”
코카트레스의 날카로운 발톱이 은호를 찢어버릴 기세로 허공에서 내려왔다.
은호는 웃었다.
그의 뒤로 밀려오는 검은 연기는 코카트레스의 몸을 휘감았다.
“이거… 뭐야?”
“나의 힘이다.”
연기가 걷어지자 샛노란 빛이 떠올랐다.
보고 있자니 오금이 저리는 그런 눈빛이었다.
흑견이 모습을 드러냈다.
앞발에 그려진 금빛 문양에 빛이 나더니 코카트레스의 머리를 땅으로 처박았다.
콰아앙!
“친구야.”
은호는 흙먼지를 손으로 휘저으며 코카트레스에게 걸어갔다.
“우리가 이겼어.”
코카트레스를 내려보는 은호의 미소가 길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