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15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152화(152/302)
152화. 모아야 하는 건 마음이다(4)
은호는 우쭐거리며 너쿤을 보았지만, 솔직히 놀랐다.
가방에 이것저것 쑤셔 넣기는 했어도 이 정도일 줄이야.
농담 아니라 방 하나를 메울 수 있을 정도의 양이었다.
‘저건 사놓고 왜 안 놔뒀대?’
은호는 물건들을 눈에 담다 사놓고도 방치한 물건을 보자 기겁했다.
뒤늦게 달려온 레비아탐이 기겁했다.
이게 다 은호 가방 속에 있는 거라니.
“…너무 많암.”
“그렇지? 좀 많네. 어쨌든, 친구가 탐나는 것들도 있을 테지만, 이건 줄 수 없어.”
은호는 너쿤을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달라고 하지도 않을 거야.”
“아닌데? 친구 눈은 다른데?”
은호는 물건이 바닥에 떨어질 때마다 군침을 삼키던 너쿤의 모습을 떠올렸다.
“내가 그럴 이유가 어디 있는데? 안 보여? 보물은 내가 더 많아.”
“친구야.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이 정말 여기까지라고 생각해?”
은호의 입꼬리가 가득 올라가며 가방에서 손을 댔다.
너쿤의 눈동자가 은호의 손가락을 따라갔다.
정말로 더 엄청난 무언가가 있는 것만 같았다.
은호가 가방에서 꺼낸 건 웬 쪽지였다.
‘…응?’
덩달아 은호의 눈이 커졌다.
「대체 뭐 하는 거야? 너 진짜 나 화병 걸리게 하려고 그래? 아까 고맙다는 말 취소야! 취소! 미친, 나한테 뭘 더 얼마나 시킬 셈이야? ―코코가―」
화가 난 코코의 쪽지를 받아서야 은호는 손을 내렸다. 진땀이 흐를 것만 같았다.
“에이, 그만둘래.”
은호가 표정 관리를 하고 너스레를 떨자 너쿤은 코웃음을 쳤다.
“없어서 그렇지? 그럴 줄 알았어.”
“아니. 원래 소중하고, 귀중한 건 보여주지 않는 법이잖아? 이건 정말 귀한 거라서 나만 알려고.”
은호가 쪽지를 소중히 품에 안은 채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대충 넘어갔나 싶어 너쿤을 살펴보니 갑자기 세상이 무너진다는 소리를 들은 것처럼 충격에 휩싸인 표정을 지었다.
너쿤은 그대로 뒤를 바라보았다.
―아니. 원래 소중하고, 귀중한 건 보여주지 않는 법이잖아?
방금 저 인간이 꺼내는 말이 머리를 때리는 것만 같았다.
‘…그래. 그게 맞는데.’
자신이 수없이 보물이라고 불렀지만, 아무런 보호도 없이 자연에 방치되어 있었다.
귀중하고 소중하면 보호해야 했는데.
‘……이거 보물 맞나?’
너쿤은 한순간 혼란에 휩싸였다.
왜 이걸 모았을까.
그런 생각이 갑자기 휩쓸자 기분이 이상해졌다.
조금 전까지 굉장히 빛이 났던 이 물건들이 깨지고, 부서진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너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내 보물이야. 아무도 가져가지 않잖아? 보물은 원래 그래야 해.’
“친구야, 괜찮아?”
은호가 너쿤을 불러보았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
손을 흔들다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형?”
혹시 무슨 문제가 생겼나 싶어 은호는 태호를 불렀지만, 어쩐지 화가 난 듯 보였다.
‘형도 왜 저렇게 화가 났대?’
은호는 난데없는 두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자신이 없는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정화자 제압은 레비아탐의 도움으로 무척 수월하게 흘러갔다.
누구도 갑자기 비눗방울이 나타날 거라 생각하지 못하고, 그 비눗방울이 터지면 어떤 효과가 나는지 역시 알지 못했다.
레비아탐의 공격에 정화자는 쉽게 무능력해졌다.
레비아탐이 강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화자 본인들의 방심 때문이었다.
공격하는 자가 존재할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 듯 반응이 느렸다.
경계심이 없는 사냥감을 물어뜯는 건 종이를 찢는 것만큼 쉬운 일이었다.
―서은호 씨. 혹시 문이 보이지 않는 겁니까?
정화자들을 넘겨주고 도망가려다 지혜와 딱 마주치고 말았다.
머쓱했기에 나갈 때는 당당하게 문으로 나갔다.
허탈한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온 것 같았지만, 기분 탓이라고 생각했다.
은호는 굳어있는 너쿤을 향해 다가가 손가락으로 건드렸다.
그제야 너쿤이 정신을 차려서는 꼬리를 세웠다.
“네가 이상한 소리를 해서 그런 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네가… 보물은 보여주는 게 아니라고 말을 해서 그런 거라고! 내가 이상한 게 아니야!”
너쿤 주변에 묘한 힘이 넘실거렸다.
저게 뭔지 몰라도 은호는 두 걸음 정도 뒤로 물러섰다.
“…그래. 내가 이상한 게 아니야. 네가 나를 흔든 거야. 나는 잘하고 있어. 이곳에 있는 물건은 아무도 들고 가지 않았으니까!”
너쿤은 은호를 원망했다.
이 흔들림은 저 인간이 만들었다.
정말로 자신의 물건을 빼앗지 않았지만, 저 인간을 데리고 왔다.
그게 무슨 의미겠는가.
너쿤의 눈빛이 차차 가라앉았다.
“……너 맞잖아. 내걸 빼앗으러 온 거지?”
너쿤은 바닥이 꺼지는 듯한 기분에 휩싸였다.
대체 왜 이렇게 자신을 속이는 이들이 많은 걸까.
“제발, 그만 좀 빼앗으라고! 이것도 빼앗고 싶은 거야?”
너쿤이 구석으로 내몰린 듯한 표정을 짓자 은호는 더 뒤로 물러서며 다급히 태호를 보았다.
“저 환수는 너쿤이라고 하는데, 정말로 귀한 물건을 수집하는 특성이 있어. 그래서 표적이 되곤 해.”
“귀한 물건이요?”
“맞아. 그래서 원래는 이렇게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고, 혼자 다니지도 않아. 귀한 물건을 보호하려면 무리가 있어야 하니까. 그런데 지금 고장 난 물건에 극심한 강박증을 보이고, 무리가 없는 걸 보면 아무래도 배신을… 당한 것 같아.”
태호가 설명하자 은호는 가방을 뚫고 얼굴을 내민 태블릿을 보았다.
더 자세한 설명이 궁금해 아주 잠깐 곁눈질로 살폈다.
《환수를 찔렀습니다.》
《너쿤.》
‘…어?’
은호는 떠오른 글자에 더 시선을 주었다.
늦게 봤다고 그러는 걸까.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아름다운 걸 수집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무리를 이루며 수집품을 지키거나 포획하는 등 각각 역할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집하는 물건은 무리 전체의 것이며 이는 변하지 않습니다. 본인들이 아는 장소에 수집품을 보관하며 일생을 수집품에 바칠 정도로 강한 집착을 가지고 있습니다.》
《몸 주변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충격파가 흐릅니다. 이 힘은 전자기기를 마비시키기도 합니다. 주로 애장품을 지키기 위해 사용이 됩니다. 평소 온순한 편이나, 애장품에 가까이 간다면 목숨을 바칠 만큼 격렬한 공격을 할 수 있으니 서둘러 뒤로 물러나 그 자리를 떠나는 걸 제안합니다.》
태블릿이 설명하는 것과 지금 너쿤은 전혀 다른 양상이 보였다.
‘수집하는 물건은 무리 전체의 것이라는데. 형 말대로 무리도 보이지 않고, 저건 귀한 물건도 아니야.’
그렇다면 너쿤의 강박은 어디에서 오겠는가.
태호가 꺼낸 추측인 ‘배신’이 사실일지도 모르겠다는 확신마저 들었다.
“나도 그렇게 보여요.”
은호는 동의하며 혼란스러워 보이는 너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생각했다.
“…은호 씨. 솔직히 이건 좀 어려워. 무턱대고 물건에서 떼어내면 강박이 더 심해질 거야. 이미 온종일 저 물건들을 모은다고 움직이는 것 같은데, 여기서 더 자극하면 진짜 밥도 먹지 않고, 잠도 자지 않고 계속 물건을 모으기만 할 거야.”
고민하다가 입술을 뗀 태호는 참담함을 드러냈다.
실제로 본 너쿤은 참담했다.
은호가 너쿤을 보지 못했기에 모를 수 있으나, 너쿤의 털은 저것보다 더 풍성해야 했다.
오죽하면 털을 입었다는 특징까지 있겠는가.
“원래라면 일단 장소를 바꿔주는 게 좋긴 해. 일렉트 기억하지? 은호 씨가 전기 나무를 만들어준 뒤에 안정감이 높아져서 상태가 호전되고 있잖아.”
“맞아요. 지금은 정말 많이 좋아졌어요.”
“그런 방법이 지금으로서는 제일 최고인데, 문제는 거기까지 어떻게 도달하냐는 거지.”
원래라면 진정제를 쏴 재우고 데려가는 게 정석이었다.
하지만 은호가 그걸 원할까.
태호는 은호를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여차하면 말릴 생각이었다.
“친구야. 많이 불안해? 우리가 네 물건을 가져가 버릴 것만 같아?”
은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가져갈 거잖아! 가져갈 거면서 아닌 척하지 마! 그러니까 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져!”
너쿤은 악에 받친 소리를 내며 눈앞에 보이는 물건들을 가득 껴안았다.
하지만 아무리 껴안아도 뚫려버린 이 마음은 채워지지 않았다.
갑자기, 한순간에 모든 게 사라져버렸다.
동족도, 물건도 죄다.
그토록 소중했던 것들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 절망감이 다시금 밀려올 것만 같았다.
“아무도 내 보물을 가져갈 수 없어! 가져갈 수 없다고!”
너쿤은 거친 숨을 내쉬었다.
물건을 모아야 했다.
더 많이.
더 많으면 빼앗겨도 모를 테지.
더, 더 쌓으면 감히 뺏을 생각도 못 하겠지.
“친구야.”
“말하지 마! 나는 아무것도 속지 않을 거야! 이러고 들고 갈 거잖아! 내가 방심하면 이것마저 사라지는 걸 알아!”
너쿤의 털 사이로 목에 핏대가 선 게 보였다.
털 때문에 몰랐는데, 메말라 있었다.
얼마나 굶었던 걸까.
“왜 뺏어가려는 거야? 나한테 이것밖에 없어! 이것밖에 없다고! 얼마나 더 모아야 뺏어가지 않을 건데? 이건 내 목숨이나…….”
나비가 주변에 나타나자 너쿤은 말을 멈췄다.
푸른 나비를 보자 이상하게도 들끓는 마음이 가라앉는 기분에 휩싸였다.
너쿤이 폭시를 바라보자, 폭시는 귀를 내렸다.
“…미안해. 하지만 너무 괴로워 보였어.”
은호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리듯 그 자리에 주저앉아 폭시를 쓰다듬었다.
“친구야. 무슨 일인지 나한테 말해줄래?”
“…왜 나한테 관심을 가지는 거야? 그냥 지나가면 되는 거잖아. 모르는 척 가버리면 되는 거잖아.”
너쿤은 다 쉰 목소리로 힘없이 입을 열었다.
늘 반복되던 일상에 저 인간이 멋대로 끼어들었다.
다른 인간마저 데리고 왔다.
불쾌하고, 짜증 나고, 무엇보다 자신을 자꾸 흔들어 묘한 기분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그러려고 했는데, 너랑 꽤 닮은 친구가 있어. 그래서 더 눈길을 떼기가 어려웠어.”
일렉트가 생각났다.
지금 이 모습을 보면 뭐라고 생각할까.
은호는 자신에게 살짝 기댄 레비아탐 역시 쓰다듬었다.
“……혹시, 네 보물을 뺏긴 거야?”
너쿤은 은호가 물었음에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네 보물을 찾아줄 수 있으면 정말 좋을 텐데. 그럼, 친구가 얼마나 안도할까.”
은호는 너쿤이 계속 주장하는 보물이 무엇인지 천천히 깨달았다.
누구한테도 보물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것들이 되어야 했다.
그래서 너쿤은 쓰레기를 모으고 있었다.
쓸모없어서 이미 버려졌기에 누군가 가져가는 일이 없을 테니까.
너쿤은 이걸 보물이라고 불렀다.
그제야 태호가 말했던 ‘어렵다’라는 말이 와닿았다.
참 어려웠다.
일렉트한테는 전기가 나오는 나무를 선물했지만, 너쿤한테는 뭘 줘야 할지 몰랐다.
보물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개념이었다.
“친구야. 혹시 내가 가진 물건 중에 마음에 드는 건 없어?”
“무슨 수작이야?”
“내가 가진 물건 중에 혹시나 친구가 ‘보물’이라고 생각한 게 있을까 싶어서.”
“내 보물은 저기에 있어.”
너쿤은 뒤를 가리켰다.
“아니. 저건 보물이 아니야. 내가 말한 건 친구가 잃어버린 진짜 보물 말이야. 혹시 그 비슷한 거라도 내가 가지고 있을 수 있잖아?”
아무렇지도 않게 보물을 부정하는 그 소리에 화가 나야 하지만, 너쿤은 마음이 욱신거려 물어보는 게 늦어졌다.
“내 보물을 네가 왜 부정하는 건데?”
“친구야. 보물은 이렇게 아무렇게나 두지 않아. 소중하니까, 정말 소중하니 본인만 아는 가장 깊숙한 곳에 숨기 두기 마련이잖아?”
너쿤은 또 마음이 흔들렸고,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렇게나 방치된 보물이 다시금 눈에 들어오자 이내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속으면 안 되는데, 이미 흔들리기 시작한 마음을 붙잡기가 어려웠다.
“혹시 내가 보물과 비슷한 걸 가지고 있어?”
“…없어.”
“그러면 네가 잃어버린 보물은 어떻게 생겼어?”
그 물음에 너쿤은 오랫동안 머릿속에 지워버렸던 보물을 떠올렸다.
무리만 아는 땅속에 수많은 보물을 전시해 뒀다.
이걸 발견하는 건 자신의 역할이었다.
때로는 땅속에서.
때로는 바닷속에서.
때로는 이상하게 낡은 건물 속에서.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흘러가는 시간을 따라 모아놓은 보물을 볼 때마다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내 보물은 이제 찾을 수 없어.”
“혹시 모르잖아?”
“이미… 들고 사라져버렸는걸. 흔적을 쫓을 수 없어. 모두가 나를… 배신했어.”
너쿤은 속에 눌러놨던 괴로움을 터트렸다.
그날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눈을 뜨고, 언제나 똑같이 하루를 맞이하려 밖을 나오자 무언가 달라졌다는 걸 느꼈다.
싸한 느낌이 밀려왔다.
동족이 보이지 않았다.
이유 모를 떨림과 함께 보물 창고로 갔을 때, 비어버린 방과 마주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발견했던! 내가… 그토록 애를 썼던, 내 보물이 사라졌어! 다! 죄다! 그냥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렸어!”
모두가 모았다고 해도, 보물을 발굴하고자 잠도 쪼개며 찾았던 기억마저 다 사라졌다.
그게 너무 괴로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왜 나를 배신한 거냐고 따질 수도 없어! 이미 아무도 없는걸.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는걸.”
너쿤은 앞발을 보며 덜덜 떨었다.
밀려드는 감정이 너무도 컸다.
“내 보물은… 다 사라진 거야.”
너쿤은 시선을 내렸다.
자신의 발밑에 밟힌 물건을 보았다.
태연하게 밟고 있는데, 어떻게 보물일까.
“이건… 그래, 네 말이 맞아. 보물이 아니야.”
너쿤은 힘이 빠진 소리를 냈다.
그저 마구잡이로 모은 쓰레기였다.
이렇게 모은다고 구멍이 뚫려버린 마음이 채워지지 않았는데, 무슨 짓을 한 걸까.
너쿤은 천천히 걸어갔다.
온몸이 아팠다.
목구멍까지 무언가 밀려들었지만, 너쿤은 더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저 마음이 욱신거렸다.
“……여긴, 마음대로 해.”
“친구야.”
은호가 너쿤에게 보석 하나를 내밀었다. 원석 같았다.
아직 다 집에 장식하지 못한 샛노란 보석이었다. 얼마짜리인지 모르겠지만, 햇살을 따라 빛깔이 감도는 걸 보면 상당히 진귀해 보였다.
“이건 어때?”
너쿤의 시선이 움직이는 걸 보며 은호는 미소를 지었다.
귀한 걸 좋아한다고 했다.
자신이 가진 것 중 남들 눈에도 귀해 보이는 건 이것뿐이었다.
“친구한테 받았는데, 아무래도 나보다 너한테 더 필요해 보이네.”
할아버지 산북에게 보석을 받았다.
그 따뜻한 마음도 같이 전달되면 좋겠다 싶었다.
“…그거, 그거, 보석이잖아?”
태호가 입을 떡하니 벌렸다.
딱 봐도 비싸 보였다.
“선물이야.”
너쿤의 눈이 은호를 따라 올라갔다.
선물이라니.
“잃어버린 건 되찾기가 어려울 수 있는데, 새로 시작하는 건 생각보다 괜찮더라.”
“…뭘, 새로 시작해?”
“다시 모아야지. 네가 바라는 진짜 보물을.”
“……이거, 진짜 보석이야.”
너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은호를 보았다.
그간 잠들어 있던 본능을 깨울 만큼의 보석이었다.
“그래? 꽤 진귀하면 좋겠는데?”
“이거… 진짜 보석이라니까? 엄청 희귀한 거야.”
“다행이다. 일단 첫 시작은 됐고, 이 다음부터 채워나가면 되겠는데?”
“다음…?”
“네가 앞으로 모을 보석을 도둑맞지 않을 적당한 장소는 알고 있어. 가는 건 네 자유인데, 음, 그래도 치료부터 받고 다음 보물을 찾으러 가는 건 어떨까?”
“왜 다음…이라고 말하는 거야?”
“그건 이제 네 거니까.”
은호는 너쿤에게 넘겼다.
얼떨결에 보석을 받은 너쿤은 멍한 얼굴로 은호를 보았다.
“네가 다시 모을 보물 중 제1호가 되면 영광이잖아? 어쨌든, 이러면 보물은 사라진 게 아니지?”
따스한 미소가 번져가자 너쿤은 보석을 바라보았다.
노란빛을 내며 반짝거렸다.
너쿤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보석을 품에 안았다.
“…너한테 나쁘게 말했는데. 너보고 가라고 소리쳤는데. 너한테 고맙다는 말도 못 했는데.”
쉰 소리와 함께 울음이 터졌다.
분명 이건 저 인간의 보물일 테지.
보물을 넘긴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기에 너쿤은 너무나도 고맙고, 또 부끄러웠다.
“그거야 나중이라도 하면 되는 거잖아? 하지만 친구가 이 보석 하나로 좌절을 이겨낸다면 나는 정말로 기쁠 거야.”
은호는 손을 뻗어 너쿤의 등을 토닥거렸다.
울음이 더 터져 나왔다.
그간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친구는 지금 아파. 몸도, 마음도. 치료가 필요한 상태야. 그러니까, 나랑 가자. 몸도 마음도 나은 뒤에 다시 두 번째부터 시작하는 거야.”
“응응. 은호랑 가잠. 나도 거기서 잘린 혀가 나았엄.”
레비아탐이 훌쩍이며 혀를 내밀었다.
“나도 그래. 마음이… 정말로 엄청 편해졌어.”
앞발로 가슴을 두드린 폭시가 배시시 웃었다.
“배신이 무서우면 걱정하지 마. 나는 널 배신 하지 않아. 약속할게.”
은호가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아침 햇살처럼 반짝거리는 그 눈동자를 보자 너쿤은 고개를 끄덕이려다 갑자기 축 늘어졌다.
“혀, 형!”
은호가 기겁하며 태호를 보았다.
“괜찮아. 기절한 거야. 워낙 오랫동안 잘 못 먹었으니까.”
“빨리 가요! 바로 열게요.”
“그런데 은호 씨.”
너쿤을 품에 안은 은호는 급한데 왜 부르냐는 눈을 하고 있었다.
“그 보석 진짜 줄 거야? 엄청 비쌀 텐데?”
“당연하죠. 줬다 뺏는 게 제일 치사한 거예요.”
은호는 공간을 열었다.
비싼 게 뭐라고. 한 마리의 환수를 살리는데 사용되면 그보다 더 기쁜 건 없었다.
공간 너머로 움직였다.
“빨리 와요, 형!”
망설임도 없는 그 대답에 태호는 잠깐 웃음이 터졌다.
대체 환수에게 얼마나 진심인 건지.
‘가격을 알면 후회할 텐데. 아니다, 후회하지 않겠네.’
태호는 다급한 은호의 표정을 보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