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154)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154화(154/302)
154화. 알려줄게
“…아빠!”
라비가 아빠의 병실로 뛰어갔다.
“사고뭉치, 쉬잇.”
“아아앗. 맞느니라. 쉬잇이다.”
은호의 말에 라비는 다시 조심스럽게 걸어가 침대로 폴짝 뛰었다.
“아빠! 나 왔느니라!”
라비가 흑묘성의 품에 안겨 꼬리를 흔들었다.
“…이 아이 때문에 고생이 많다네.”
흑묘성은 은호를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자식이 얼마나 말썽꾸러기인지 알기에 묵묵히 라비를 돌봐준 은호가 고마웠다.
“나는 얌전히 있었다! 그러니 은호는 힘들지 않았…….”
콩.
흑묘성은 앞발로 라비의 머리에 꿀밤을 때렸다.
라비는 앞발로 머리를 쥐었다.
아프지도 않을 텐데 엄살을 부리는 건 여전해 흑묘성은 웃었다.
“거짓말은 안 된다고 했다.”
“…거짓말 안 했느니라.”
콩.
흑묘성은 다시금 라비의 머리에 꿀밤을 놨다.
라비는 주눅이 든 얼굴로 은호를 바라보며 앞발을 뻗었다.
은호가 라비를 안아주자 라비는 은호의 품에서 고개를 휙 돌렸다.
“흥! 아빠는 내 머리를 돌멩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돌멩이가 아니니라.”
“쟤가 아직 어려서 철이 없네. 미안하네.”
흑묘성은 은호를 애틋하게 바라보며 앞발을 뻗었다.
은호는 그 앞발을 꼬옥 쥐며 입꼬리를 올렸다.
“나는 다 컸다. 아빠는 아무것도 모르니라!”
은호와 흑묘성이 맞잡은 손을 치며 라비가 불만을 터트렸다.
은호는 그런 라비의 발길질에도 흑묘성의 앞발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전보다 근육이 빠져 있었다.
현재 라비의 아빠는 병을 낫고자 먹었던 약초가 독으로 작용해 장기 전체가 악화된 상태였다.
꽤 장기간 필요한 치료라 라비의 아빠를 대신해 자신이 어린 라비를 돌보고 있었다.
“밥 먹고, 자고, 숨 쉬는 시간만 빼면 모든 곳을 쏘아 다니는 사고뭉치이긴 한데, 참 착해.”
라비는 우주 고양이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참 귀엽게 생겼다.
이게 아주 큰 비중을 차지했다. 화가 나더라도 초롱초롱 바라보는 눈길에 금세 화가 식었으니까.
라비의 귀가 쫑긋 서서는 은호를 빤히 바라보았다.
뭔가 찔리긴 한 모양이었다.
“은호.”
흑묘성이 은호를 불렀다.
“응?”
“혹시, 나한테 사용했던 그 힘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은호는 그 물음에 잠깐 생각했다.
어떤 힘이든 갑자기 상처를 낫게 하거나, 없는 일로 만들 수는 없었다.
그때, 흑묘성의 심장이 멈추고 있었고, 자신은 잠깐이라도 좋으니 제발 다시 뛸 수 있게 도와달라고 빌었다.
북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갑자기 세상을 뒤덮을 만큼 커다랗고, 아름다운 나무를 보았다.
글자가 가려져 있어 그 힘이 무엇인지 태블릿도 알지 못했다.
그저 힘을 사용하지 말라는 태블릿의 경고문이 아직도 또렷했다.
“모르겠어. 그런데 혹시 뭘 봤어?”
“……아주 그리운 무언가를 본 기분이 들어서 물었다네.”
흑묘성의 몸에 박힌 수많은 별이 흔들리는 꼬리와 같이 움직였다.
은하수가 박힌 하늘이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꿈을 꿨는지도 모르니, 신경 쓰지 말게. 그것보다 은호. 나는 좀… 나아지고 있는가?”
“응. 상태는 호전되고 있다고 해. 하지만 오랜 시간 치료가 필요해서 아직 좀 더 참아야 해. 많이 힘들지?”
은호는 흑묘성을 쓰다듬었다.
기분이 좋은지 눈을 감았다.
“원래 지내던 곳보다 더 아늑하니 좋다네. 걱정하지 말게.”
“아, 오늘 날씨가 좋던데, 산책시켜줄까?”
은호의 물음에 흑묘성은 미안한 감정을 먼저 드러냈다.
계속 이렇게 살펴주고, 밖까지 데려다주니 몸 둘 바를 모를 정도였다.
이미 자신의 목숨도 살려줬고, 라비도 되찾아준 고마운 은인인데.
“그런 표정 짓지 않아도 돼. 산책 가면 너도 좋고, 나도 좋고, 그리고 사고뭉치도 좋고.”
“응! 이 몸은 아빠랑 또 산책 가고 싶다!”
언제 토라졌냐는 듯 라비가 꼬리를 흔들며 흑묘성을 바라보았다.
“어때, 친구야?”
은호가 묻자 흑묘성은 쭈뼛거렸다.
미안한 마음이 얼마나 큰 건지 몰랐다.
라비는 그런 마음을 조금은 가졌으면 했는데.
“친구야. 내가 너무 부담을 준 건 아니지?”
“아, 아니라네.”
흑묘성이 앞발을 크게 흔들었다.
부담이라니. 그런 종류가 아니었다.
“…으음, 그러면 내가 아니라, 사고뭉치를 위해서는 어때?”
라비 이야기가 나오자 흑묘성은 눈길을 돌려 라비를 보았다.
초롱초롱한 라비의 눈을 보자 흑묘성은 차마 거절할 수가 없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가는 걸로 하고.”
은호가 공간을 열었다.
바로 병실 근처에 있는 들판이었다.
“식물 친구야, 이쪽으로 와줄래?”
공간 사이로 줄기가 뻗어 나왔다.
“이 친구 좀 들어줬으면 좋겠어.”
식물은 익숙하게 흑묘성을 감싸며 들고는 공간 너머로 움직였다.
따사로운 햇살이 내려오자 흑묘성은 눈을 찌푸리면서 슬그머니 올라온 입꼬리를 막지 못했다.
라비가 공간 너머로 껑충 넘어 아빠 주변으로 빙글빙글 돌아다녔다.
“아빠, 아빠! 나 진짜 빠르다?”
“그래, 그래. 눈으로 좇아갈 수 없을 만큼 빠르구나.”
흑묘성이 라비를 보며 웃어주었다.
그 미소가 아직은 힘이 없었지만, 은호는 서로를 향한 깊은 애정에 바라만 보고 있어도 마음이 따뜻해졌다.
다음에는 레딩과 함께 와야겠다고 생각하며 흑묘성을 바라보았다.
흑묘성은 라비에게 시선을 살짝 떼어 다양한 색으로 피어 있는 꽃을 바라보았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자 바람을 타고 꽃향기가 가득 느껴졌다.
‘…좋구나.’
흑묘성의 커다란 꼬리가 흔들렸다.
* * *
은호는 흰 꽃과 검은 꽃이 핀, 플라빗 형제의 손길이 닿은 나무로 발길을 움직였다.
언제봐도 변하지 않는 저 아름다움에 저절로 미소가 감돌았다.
“안녕, 친구야.”
은호는 나무를 향해 손을 흔들었고, 위그드라실이 그 작은 몸으로 나무를 향해 다다다, 뛰어갔다.
“물어볼 게 있어서 이렇게 찾아왔어. 너무 오랜만이지?”
은호가 말을 마칠 때쯤, 위그드라실은 나무에 매달려 볼을 비비듯 얼굴을 움직였다.
웅웅.
뭔가 반응하듯 위그드라실의 새싹이 더 빛이 났다.
은호는 깜짝 놀라며 그대로 걸음을 멈췄다.
위그드라실은 족히 3천 년이나 된 것 같은 저 나무가 자신에게 준 씨앗이었다.
저 나무는 위그드라실을 제외하면 자신을 유일하게 좋아하는 식물이기도 했다.
―너의 뒤에 하얀 꽃과 검은 꽃을 가진 나무가 보인다. 그 존재에게 물어보거라.
왜 식물들이 자신을 싫어하는지, 세티아가 저 나무를 찾아가서 물어보라고 말했다.
아주 느리지만, 소통도 가능했기에 이렇게 늦게라도 찾아오게 됐다.
“왜 저 씨앗의 몸에 빛이 나는가?”
흑견이 물었다.
“나무에 반응하는 것 같은데?”
이에 윈디드가 대답하자 흑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 정도는 알고 있다.”
“모를까 봐, 그랬지. 모르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야, 친구.”
윈디드가 날개로 콕 찌르자 흑견이 질색했다.
그 반응을 즐기듯 윈디드가 미소를 지으며 웃었다.
“알고 있다고 했다. 저 나무에 반응하는 건 눈이 달렸다면 알 수 있다. 내가 물어본 건 대체 왜 반응하냐는 거다.”
“위그드라실이 저 나무에서 탄생해서…….”
윈디드가 말을 하다가 말고 이내 멈췄다.
생각해보니 너무도 이상했다.
“…그러게. 왜 반응하는 거지? 말썽꾸러기는 알고 있어?”
“드디어 위그드라실이 성장하는 게 아닐까?”
은호가 환호를 살짝 섞으며 대답했다.
위그드라실이 이렇게 반응을 보인 적이 없었다.
혹시 몰라 이곳에 피를 뿌린 뒤, 나무에 손을 댔다.
아닙니다.
나무가 말했다.
단호한 말보다 저번보다 더 또렷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은호는 잠깐 놀랐다.
위그드라실 때문인가.
“위그드라실이 성장하는 게 아니라고…?”
은호는 위그드라실을 바라보았다.
지금 저렇게 빛을 내는데, 아니라니.
씨앗은 땅이 있어야 성장할 수 있습니다.
“친구야. 그러면 위그드라실 주변에 왜 빛이 나는 건데?”
저와 공명하고 있습니다. 저한테서 탄생했으니까요.
“아…….”
은호는 그제야 나무가 무슨 소리를 했는지 이해했다.
식물이 자라려면 어떤 식물이든 관계없이 땅이 필요했다.
위그드라실은 그 당연한 사실을 모르고 있는지도 몰랐다.
이걸 증명하듯 나무에 기대어 있던 위그드라실이 그 말에 크게 당황했다.
나무가 웃었다.
괜찮습니다. 초조해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직 머리에 있는 싹이 꽃이 되지 않았으니까요. 시간은 많습니다.
위그드라실이 그 말에 나무를 빤히 보는 듯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싹이 꽃이 되다니?”
은호는 나무가 위그드라실에게 하는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우리는 평생 땅과 함께합니다. 이 아이도 언젠가 뿌리를 뻗을 땅을 선택하겠지요. 머리에 알린 저 싹이 꽃이 되기 전까지 선택해야 합니다.
“왜 그래야 하는데?”
어떤 씨앗도 땅에 묻히지 않고서는 성장할 수 없습니다. 성장하지 않으면 이를 다른 말로 죽었다고 말합니다.
“…….”
너무 놀라지 마십시오. 이 아이는 올바른 선택을 할 테니까요.
위그드라실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허리춤에 올렸다.
당당한 자세로 은호를 보았다.
날 믿어.
마치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지만, 그 당당함이 나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제대로 알아들은 게 맞나 의심이 될 정도였다.
“…그런데 말썽꾸러기.”
윈디드가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왜 그래, 삐약아?”
“아니, 지금… 저 나무하고 말을 나누는 거야?”
윈디드는 물어보면서도 이게 말이 되냐는 듯한 눈을 하고 있었다.
이미 은호에게 특별한 힘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무려 식물을 움직일 수 있었다.
하지만 소통하는 건 별개의 문제였다. 이건 절대로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으니.
“맞아. 다른 친구들은 머릿속으로 전달되는 그림으로 소통하는데, 이 친구는 말을 할 줄 알아. 아주 오래된 나무라 그런가 봐.”
은호가 활짝 웃자 윈디드는 긴가민가하며 물어보았다.
“…혹시, 말썽꾸러기는 자연의 대리자였어?”
자연의 대리자를 본 적 없지만, 그 존재는 자연에서부터 탄생한다고 했다.
하지만 은호는 인간이었다. 명백히 종이 존재했다.
옆에 있으면서도 자연의 대리자라고 생각해본 적 없는 이유가 바로 은호가 인간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네?”
은호의 대답에 윈디드는 날개를 살짝 내리며 침묵했다.
예상 범위를 벗었다.
“몰랐나?”
흑견이 입꼬리를 올린 채 물었다.
“…치, 친구는 알고 있었어?”
“당연하지 않은가. 우리가 그렇게 바랐지만, 움직이지도 않는 자연이 왜 인간을 위해 움직였을 거라 생각했는가?”
“그야 인간에게는 초능력이 있잖아. 그래서 그 힘인 줄 알았지.”
초능력은 자신들에게 나왔지만, 변형된 힘이었다.
“그래서 다른 인간에게 그 힘을 보았는가?”
“……아니.”
윈디드의 말이 기어들어 가자 은호는 의구심을 터트려버렸다.
“그게 그렇게 중요해?”
“중요해!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썽꾸러기!”
윈디드가 단번에 은호에게 다가가 언성을 올리자 그는 눈을 깜박거렸다.
“그게 왜 중요한데?”
“자연과 우리를 이어주는 존재가 자연의 대리자니까. 그 존재가 있어야 우리가 자연으로부터 비호를 받을 수 있어.”
“그럼, 나는 자연의 대리자가 아니네?”
은호는 깔끔하게 부정했다.
“…아니라고?”
“삐약이 말을 들어보니 내가 아닌데?”
“말썽꾸러기. 조금 더 신중히 생각해줘. 무척 중요한 문제야.”
윈디드는 초조해하며 은호를 보았다.
“그건 아는데, 식물들이 나를 싫어해. 오늘은 그 이유를 물으러 온 거고.”
애초에 자연의 대리자가 드루이드가 맞다면 윈디드가 하는 말대로 되어야 할 텐데, 일단 조건부터가 맞지 않았다.
식물들이 자신을 싫어하는데 어떻게 환수와 자연 사이를 이어줄 수 있을까. 무엇보다 자신은 그 방법을 알지도 못했다.
“…식물들이 말썽꾸러기 말이라면 다 들었는데?”
윈디드는 이상함을 드러냈다.
지금까지 은호의 힘을 봤을 때,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말이었다.
“믿기 어렵겠지만 정말이야.”
은호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알고 있지만, 믿기 어려운 문제였다.
당신은 자연의 대리자가 맞습니다.
나무가 조용히 말을 걸었다.
작은 혼란을 바로 잡을 소리에 은호는 나무를 바라보았다.
“진짜야?”
당신 이외에는 존재할 수도 없습니다. 감히 어떻게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너무도 깍듯한 말에 은호는 거짓말이라고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삐약아. 내가 맞다는대?”
은호는 다시 사실을 정정하며 윈디드에게 알렸다.
“뭘 그렇게 번잡하게 하는가? 자연을 움직이는 힘은 자연의 대리자밖에 없다.”
흑견이 끼어들어서는 중재하자 은호는 고민을 담아 말을 꺼냈다.
“그러면 왜 나를 싫어하는 걸까?”
은호의 시선이 나무를 향했다.
“너라면 알고 있다고 했어.”
항상 궁금했다.
식물들이 자신의 말을 들어주긴 했지만, 날이 선 느낌은 달라지지 않았다.
할아버지 산북의 등에 자란 식물들은 달랐다.
아직도 자신을 토닥거려주던 그 손길이 남아 있었다.
당신에게 배신당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배신? 나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들려오는 말은 너무도 당황스러운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