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156)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156화(156/302)
156화. 알려줄게(3)
“대신, 나하고 하나만 약속해줘.”
“어떤 약속을 말하는 거야?”
은호가 묻자 하이프는 머뭇거리다 말을 꺼냈다.
“…내 남편의 시신을 안전하게 가지고 와줘.”
그렇게 보낼 수 없었다.
절대로 거기에 둘 수 없었다.
눈빛으로 간절히 호소하자 은호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때… 박제됐다고 그랬지?”
“맞아. 내가 봤어. 내 남편이 그 인간 손에 죽은 것도 모자라 박제된 모습을.”
벽에 전시가 된 남편을 보는 순간, 모든 이성이 사라졌다.
하이프는 망토처럼 뒤덮인 푸른 불꽃을 걷었다.
옆구리에 짙은 상처가 가득했다.
“그 인간을… 죽이고 싶었는데, 혼자는 부족했어. 왕과 한 약속 때문에 아무도 나를 도와줄 수 없는데, 내가 어떻게 해야겠어?”
하이프는 은호에게 물었다. 무거운 질문이었다.
“내 눈앞에 남편이 박제가 됐는데, 약속이 날 방해 했어. 시끄럽게 내 머릿속에서 안 된다고 울부짖었다고!”
기다란 손가락이 본인의 머리를 꽉 쥐었다.
“…오지도 않을 빌어먹을 왕은 나를 방해만 했어! 그래서 저주했어! 원망했어!”
절박함을 담아 은호를 바라보았다.
하이프를 감싼 푸른 불꽃이 눈물처럼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왕을 원망하던 레베카와 닮아 있었다.
“그 인간이 내 옆구리를 터트렸을 때 나던 소리와 피가 터지는 그 감각이 아직도 이렇게 또렷한데. 내가 어떻게… 해야 했겠어?”
하이프는 많은 걸 참고 있었다. 울음을 꾹 참는 표정과 함께 눈동자가 일렁거렸다.
이 모든 걸 어떻게 한 번에 다 놓을 수 있을까.
이미 움켜쥔 게 너무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내 남편을, 되찾고 싶어. 그러니까 너한테 내가 가진 정보를 말하는 거야.”
하이프는 다 던져두고 제일 갈망하는 딱 하나의 바람만 언급했다.
“남편을 묻어주고 싶어.”
자신의 품속에 마지막으로 남편을 한 번만 끌어안고 싶었다.
“네가 힘겹게 모은 정보야. 그걸 나한테 알려줘도 괜찮겠어?”
“나를 도와주겠다는 존재가 너밖에 없잖아.”
가장 부탁하고 싶지 않은 저 인간만이 자신을 돕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일까. 빌어먹을 왕은 결국, 자신의 앞에 나타나지 않았는데.
누구든 좋으니, 제발 자신을 도와줬으면 했다.
“…내가 여기서 나가면,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네가 겨우 억누른 내가 또 얼마나 날뛸지도 몰라. 나도 이제 그런 건… 싫어.”
“그러면 친구야. 나하고 하나만 약속해줘.”
“무슨 약속?”
“그 인간을 두드려 패기만 하자고. 죽지 않을 만큼.”
“대체 왜 죽이는 건 안 되는데? 너랑 같은 인간이니까?”
“아니, 친구가 괴롭지 말라고 하는 거야.”
“내가 왜 괴로운데? 그 인간이 아직도 살아 있는 게 더 괴로운데!”
푸른 불꽃 하나가 나타났지만, 은호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저 똑같이 말을 꺼냈다.
“원망할 대상이 사라지잖아. 복수를 했다고 후련할 것 같아? 아니. 더 큰 공허함이 널 덮칠 거야. 그거, 견딜 수 있겠어?”
“지금보다 더 큰 공허함이야……?”
“그럴지도 몰라. 그러니까 일단 감옥에 가둬놓고, 네가 원하면 언제든지 찾아가 쥐어패는 거야. 그걸 반복하면서 네 마음에 평온이 찾아온 뒤에 죽여도 늦지 않잖아? 왜 편안히 죽을 기회를 주는 거야?”
은호는 진지하게 물었다.
하이프에게 그 인간을 죽이지 말라는 말이 얼마나 잔인하게 들리는지 알고 있었다.
그러니 시간을 벌고 싶었다.
조금이라도 더 본인을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을.
하이프의 눈이 요동쳤다.
깊은 호수를 보는 것처럼 눈빛이 잠겼다.
“…약속할게.”
무얼 생각했는지 몰라도 하이프는 입꼬리를 조용히 올렸다.
* * *
은호는 숨을 길게 내쉬며 집 주변을 걸어 다녔다.
하이프를 본 뒤에 마음이 참 요동쳤다.
무엇이 옳은지, 옳지 않은지 이건 자신이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하이프가 죽지 않게 말리고 싶었다. 이 마음은 진심이었다.
“무슨 일 있었엄?”
은호의 어깨에 올라가 있던 레비아탐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 물음에 은호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디 갔는지 몰라도 흑견은 돌아온 뒤에도 보이지 않았다.
“…멍멍이 형님 몰래 하이프를 만나고 왔거든.”
은호가 작게 속삭이자 레비아탐이 깜짝 놀랐다.
“폭시를 괴롭힌 나쁜 애 말하는 거얌?”
“맞아.”
레비아탐은 그 대답에 이빨을 딱딱 부딪치며 눈을 찌푸렸다.
“나는 폭시 괴롭히는 애는 싫엄.”
“나도 그건 용서할 수 없어. 그 대상이 너였어도 똑같을 거야.”
은호가 레비아탐의 옆구리를 간질이자 꺄르르 웃었다.
하지만 손을 떼자마자 레비아탐은 다시금 화가 난 표정으로 은호에게 머리를 기댔다.
“폭시는, 아프단 말이얌.”
“…어떻게 알았어?”
은호가 놀라며 레비아탐을 보았다.
“은호하고 같이 잘 때는 괜찮은뎀. 아닐 때는 계속 악몽을 꿨엄. 내가 괜찮다, 괜찮다고 토닥거려줬엄.”
“고마워, 레비아탐.”
“은호도 내 가족이고, 폭시도 내 가족이얌. 가족한테는 당연한 거얌.”
레비아탐이 더듬이를 올리며 당당하게 배를 내밀었다.
은호가 통통한 배를 만지자 간지러운지 꼬리로 배를 가렸다.
“폭시가 엄청 운 날 있잖암.”
“응. 엄청 울었지.”
하이프를 만나고, 폭시가 아이처럼 울었던 날이 있었다.
불안함을 조금은 내려놓은 것 같아 안도하던 날이기도 했다.
“그 뒤로 폭시가 더 밝아졌엄. 엄청 좋았엄. 눈물에 나쁜 게 더더 쓸려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엄.”
레비아탐은 배시시 웃었다.
은호 역시 덩달아 미소를 지었다.
가장 여려 보이는 레비아탐은 사실 제일 강직했다. 마음씨도 따뜻했고.
“레비아탐도 많이 밝아진 거 알아?”
“내 힘이 아무도 해치지 않아서 좋암. 말을 많이 할 수 있어서 더 좋암.”
“훈련을 진짜 열심히 받았잖아. 나도 알아.”
“응! 나 진짜 힘냈엄!”
레비아탐은 은호를 안았다.
훈련할 때 늘 옆에서 봐줬으니까.
“그런데 은홈.”
“응?”
“하이프가 뭐라고 했엄?”
“아니. 평소처럼 투닥거렸지. 그거야 뭐 처음부터 어그러진 거니까, 그러려니 하는데 다른 게 마음에 걸렸어.”
“다른 검?”
“만약에 누군가를 진짜 죽이고 싶을 만큼 증오하는데, 웬 원수 같은 놈이 와서 복수는 안 된다고 하면서 다 뜯어말리면 레비아탐은 어떨 것 같아? 숨통이 막히려나?”
“나는… 모르겠엄.”
레비아탐이 주르륵 미끄러지듯 은호의 얼굴에 기댔다.
더듬이가 축 늘어져서는 앞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그럼, 레비아탐은 어떻게 아크를 용서했어?”
“진심으로 사과했으니깜. 그래서 기뻤엄.”
레비아탐은 본인의 가슴을 토닥거렸다.
손길을 멈추고는 은호를 다시 보았다.
“꼭 이렇게 해주는 것 같았엄!”
“레비아탐은 대단한 거 알아? 그게 사실 제일 어려운 일인데, 해낸 거잖아?”
“…있잖암.”
“응.”
“나는 아크 말고, 나한테 사과하는 걸 또 본 적 있엄. 그래서 그램.”
“또 봤다고?”
“응. 또 봤엄.”
레비아탐이 고개를 끄덕이자 은호는 걸음을 멈추고 나무에 기대어 앉았다.
“또 누가 널 괴롭혔어?”
레비아탐을 땅에 앉혀서는 조용히 물었다.
조바심을 품은 그 눈빛에 레비아탐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지 않암.”
“그럼, 왜 너한테 사과한 거야?”
레비아탐은 그 물음에 은호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말을 하면 이미 걱정을 한가득 담은 저 눈이 더 슬프지 않을까 생각했다.
레비아탐은 고개를 내리며 뒷발로 흙더미를 만지작거렸다.
“내가 말하면 은호가 슬퍼할 거얌.”
‘…아.’
은호는 의도치도 못하게 자신이 레비아탐의 나쁜 기억을 찌른 게 아닐까 생각했다.
은호는 레비아탐을 안고는 토닥거렸다.
가족 단위로 이루어진 도로롱이었지만, 레비아탐에게는 부모가 없었다.
다른 가족 사이에 껴 있었다.
왜 그렇게 했는지, 부모님은 어디로 갔는지 묻지 않았다.
“나보다 네가 더 슬플 테니까, 못 들은 걸로 해줘.”
은호는 겨우 아물어진 레비아탐의 상처를 건들 자신이 없었다.
수없이 떠오르는 불안한 생각을 잠재우며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나는 괜찮암. 더 어릴 때라 기억이 또렷하지도 않암.”
기억이 흐리다는 건 좋은 게 아니었다.
너무도 끔찍한 기억은 몸이 버티질 못해 멋대로 없는 기억으로 만든다고 했다.
레비아탐도 그럴까.
“뭐 하는가?”
굵직한 물음에 레비아탐의 더듬이가 올라갔다.
“아크얌!”
레비아탐이 아크를 향해 손을 흔들자 은호는 그대로 뒤를 돌아보았다.
닭 얼굴을 한 아크가 험악한 표정으로 은호를 보고 있었다.
“그 짐승은 어디 가고 멋대로 여기를 돌아다니고 있지?”
말은 험악하지만, 걱정이 담긴 소리라는 걸 알았다.
“산책 중이었어.”
“숲은 위험하다. 그걸 몰라서 이러는 건가?”
“혹시, 위험한 친구가 이곳에 왔어?”
“숲 안쪽에 뭔가 있긴 한데, 본 적은 없어. 어서 집으로 돌아가라.”
아크는 앞발을 들어 흔들었다.
이어 레비아탐을 보며 조금 더 순하게 말을 꺼냈다.
“너도 들어가.”
은호는 명확하게 느껴지는 차이에 웃음이 나올 것만 같았지만, 꾹 참고 물었다.
“아크. 내가 누구라고 생각해?”
은호가 씩 웃자 아크는 숨을 크게 내쉬며 앞장섰다.
“누구든 간에 네가 무너지면 안 되니 따라오거라.”
“응?”
“이곳의 질서를 만든 게 누구인지 잊었나 보네.”
“…나다.”
흑견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리자 아크가 깜짝 놀라며 바로 뒤를 보았다.
날을 세우자 아크 꼬리에 달린 뱀이 하악질을 했다.
“인간. 숲 안쪽에 있는 존재는 신경 쓰지 마라. 겁대가리 없는 존재였다. 까부는 일도 없을 거다.”
“…멍멍이 형님, 지금까지 숲 안쪽에 안 거야?”
“그렇다. 우리의 집 주변으로 아주 멀리까지 내 영역이다.”
흑견이 귀찮음을 드러내며 앞발을 핥았다.
“많이 때렸어…?”
“적당히 타일렀다. 나머지는 네가 해라.”
흑견은 아크를 향해 지시했다.
“내가 왜?”
“인간이 말하길, 네가 경비를 선다고 했다.”
“내가 언제 그랬지?”
“싫으면 말거라.”
흑견은 그대로 등을 돌렸다.
아크는 흑견의 뒤를 보며 발에 힘을 주었다.
날카로운 발톱이 땅을 파고들며 근처에 있는 바위마저 베어버렸다.
“누가 싫다고 했지?”
아크는 흑견을 향해 입꼬리를 올렸다.
누가 봐도 비웃음이었다.
“네가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건 네 실력이지. 나는 달라.”
아크가 당당히 말하자 흑견은 코웃음 쳤다.
“멍청한 닭대가리.”
더는 말을 나눌 가치도 없었다.
앞으로 살랑살랑 걸어가다 뒤를 돌았다.
아크의 눈꼬리가 사납게 올라갔고, 부리를 세게 부딪쳤지만, 흑견은 은호를 보았다.
“안 가나, 인간?”
“조금 더 산책하려고. 별로 못했어. 그렇지, 레비아탐?”
“응. 별로 못 했엄.”
레비아탐은 고개를 끄덕이다 아크를 보았다.
화가 많이 나 보였다.
“알겠다.”
흑견은 바로 뒤를 돌아 은호가 가려는 쪽으로 걸었다.
자신에게는 안중도 없는 그 모습에 아크는 기가 찼다.
“인간. 그래도 쓸만한 경비다.”
흑견이 던진 말에 아크는 달려들려고 하다 말고 그대로 멈췄다.
“아크. 너도…….”
은호는 아크에게 산책을 권하려다 말고 그만뒀다.
지금 저 기분을 망칠 수 없었으니까.
“…아크가 웃고 있엄.”
레비아탐이 속삭이자 은호는 키득거렸다.
어쩌면 아크는 흑견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게 아닐까.
흑견도 그렇게 생각하고 말했는지는 몰랐다.
뭐든 잘 됐으니, 은호는 좀 더 경쾌하게 발걸음을 놀렸다.
* * *
똑똑.
은호는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대답이 들리길 기다린 뒤에 신이 난 얼굴로 들어왔다.
싱글벙글 웃는 은호의 얼굴을 보자 지혜는 아주 잠깐 눈썹을 꿈틀거렸다.
“안녕하세요, 서은호 씨.”
“안녕하세요, 국장님.”
“우선, 소장님이 듣고 뒷덜미를 잡는 이야기인지 궁금한데요.”
“당연하죠. 뒷덜미만 잡았겠어요? 혼도 나고, 설득도 당하고, 한숨 소리도 듣고 왔죠.”
“이쯤 되니까, 서은호 씨가 즐기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즐기죠.”
은호는 방긋거렸다.
―알아. 알아. 그 마음 안다니까? 그런데 지금 어디 간다고? 거길 왜 은호 씨가 가냐고.
―…은호 씨 제발. 생각을 세 번만 더 해볼래? 딱 세 번만.
―하. 진짜 나 피 말리려고 말한 거 맞지? 은호야. 네 실력 아는데, 네가 거길 왜 가?
“다양한 반응을 보는 게 생각보다 참 재미있어요.”
사람 표정이 이렇게나 다양하나 싶을 정도로 태호의 표정 변화는 풍부했다.
대화가 이렇게 재미있다는 걸 알려준 사람이니, 놀리고 싶은 건 당연했다.
“제가 원래 좀 재미가 없는 사람이라서 늘 짜증밖에 못 봤거든요.”
“…서은호 씨가요?”
지혜는 놀란 표정을 하며 손가락으로 본인을 가리켰다.
“그쪽 대명사는 바로 접니다.”
“아닌데요? 국장님도 재미있어요.”
“…콜록, 콜록.”
어디선가 기침 소리가 들리자마자 지혜는 책상에 있던 볼펜을 움직여 벽에 꽂아버렸다.
“미안, 서율아. 손이 미끄러져서.”
“……허어.”
서율의 소리가 들렸지만, 그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서율 씨.”
은호가 직접 가 볼펜을 뽑아줬다.
“…오늘은, 안녕 못 하네요. 방금 봤죠? 저 죽을 뻔한 거 봤습니까?”
“국장님이 보기보다 장난기가 많아서 그렇죠.”
은호는 잠깐 웃다 지혜에게 볼펜을 내밀었다.
천천히 내미는 그 손길에 지혜가 조금 더 손을 뻗던 차 은호가 태연하게 말을 꺼냈다.
“유예림이 몸을 담았던, 환수 밀렵꾼의 단체. 그 위치가 어디인지 알게 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