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158)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158화(158/302)
158화. 내가 찾아온다고 했지?(2)
은호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올라온 어둠 너머의 광경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지혜의 등장 하나에 유리 너머로 튀는 벽 잔해가 너무도 우스웠다.
최고급 아파트라는 명성에 맞게 초능력을 대비한 여러 기능이 있다고 했다.
그게 무엇인지 보지 못했지만, 아마 앞으로도 이 아파트에 있다는 그 기능은 보지 못할 게 분명했다.
‘가을 씨가 다 차단했을 테니까.’
자신한테 문도 열어주고 다 해줬는데, 그게 뭐라고.
은호는 문 앞에 섰다.
자신이 우선 해야 하는 건 하나였다.
하이프의 남편 시신을 찾아주는 일이었다. 지혜도 최대한 협력해주기로 했다.
문이 자동으로 열리자 안으로 들어왔다.
거친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넓기도, 넓었고 그만큼 방음이 잘되는 집 같았다.
이름만 최고급이 붙는 아파트들이 참 많았는데, 여긴 아무래도 진짜 말 그대로 최고급인 모양이었다.
‘참 즐거웠겠다. 이런 곳에서 지내서.’
은호는 문이 보이는 대로 다 열었다.
어떤 용도인지도 모를 방이 계속 나왔다.
―정확한 건 아니지만, 그 아파트에 사는 사람 중 30% 정도가 환수 밀렵꾼일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보통 어떤 식으로든 무리를 이루는 게 이득일 테니까요.
여기 오기 전에 지혜가 언급한 말이 있었다.
환수 밀렵꾼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고 했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몰래 숨어 있는 경우.
오히려 더 고급스러운 곳에 사는 경우.
이번에는 후자였다.
고급스러움은 곧 돈과 이어져 있고, 돈이 많다는 건 달리 말하자면 권력을 가졌다는 뜻이었다.
무엇보다 귀찮은 일을 대비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그래, 귀찮은 일을 대비하기 위해서지.’
은호는 탈 너머로 밀려오는 피비린내에 우뚝 섰다.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이야.
길게 내쉬는 숨을 따라 두 어깨가 아래로 내려왔다.
아직 다 치우지 못한 건지, 치우다가 누군가 어디로 간 건지 몰라도 시체가 있었다.
은호는 눈앞에 그려지는 기억에 손끝이 다 떨렸다.
숨이 빨라질 것만 같았다.
혹시 몰라 덜덜 떨리는 손으로 카메라를 작동시켰다.
팔에 식물이 감겼다.
그만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뭐 하는 건가, 인간?”
흑견이 그림자에서 나와 은호의 눈을 가렸다.
떨림이 앞발을 통해 느껴졌다.
“정신 차리거라.”
흑견은 은호의 몸을 돌리며 문 쪽으로 데려왔다.
콰아앙!
무언가 터지는 요란한 소리에 은호는 숨을 내쉬며 정신을 차렸다.
어서 하이프의 시신을 찾고 지혜를 지원해야 했다.
“…괜찮아.”
그림자가 움직이지 않자 은호는 더 씩씩하게 말을 꺼냈다.
“괜찮아. 진짜 괜찮아. 잠깐 놀랐을 뿐이야. 시체가… 있을 줄은 몰랐거든.”
머리가 터져 있었다.
누가 봐도 놀라지 않는 게 이상했다.
오늘 죽었을까.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미쳤네.’
지금까지 환수 밀렵꾼이 저지른 일을 보면 영혼까지 돈에 팔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짓이었다.
미쳤다는 말도 아까운 것 같았다.
대체 무슨 짓거리를 하는지 몰랐다.
은호는 방을 벗어나 몇 번이나 다른 방문을 열었다.
“…….”
몇 개 안 남은 방의 문을 열자마자 그대로 굳어졌다.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벽에 붙은 박제품과 땅에 박제품은 어딜 봐도 환수였다.
헤인이와 같은 키키란.
라비와 같은 흑묘성.
자신이 알고 있는 환수들과 본 적 없는 환수들이 있었다.
누가 봐도 가짜가 아닌 진짜였다.
혈관을 타고 흐르는 날카로운 감각을 느끼며 은호는 다른 공간을 열었다.
“…무슨 일이야?”
공간 너머에 있던 태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형. 이런 일 겪게 해서 미안해요. 그런데 어디에 둬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어요.”
태호가 공간 너머를 보더니 태연하게 말을 꺼냈다.
“…데려와. 묻어줄 환수들이 많네.”
“미안해요.”
“내가 얼마나 많이 봤겠어? 괜찮아. 옮기는 거 도와줄게.”
태호가 손을 뻗자 은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거기 있어요. 여기…….”
콰앙!
또 무언가 터지는 소리에 은호는 뒷말을 들었다.
“위험해요.”
은호는 뒤에 있는 식물들을 움직여 빠르게 옮겼다.
마지막으로 박제된 환수를 옮길 때, 태호가 웃으며 말했다.
“또 흑견 등에 타고 오지 말고, 걸어서 와.”
“그럴게요. 미안해요, 형.”
은호는 마지막까지 사과하며 공간을 닫았다.
여기에 하이프는 없었다.
왜 없는 걸까.
체감상 100평이 넘는 넓이라 뒤지는 것만으로도 일이었다.
은호는 그 뒤로 몇 번이나 방을 뒤지다 말고 갑자기 밀려오는 묘한 느낌에 그대로 있었다.
콰앙!
벽이 부서졌다.
흑견이 뒤로 당겼지만, 은호는 버텼다. 와르르 무너지는 벽 사이로 별 문양이 본 것 같았으니까.
은호는 다시금 벽 사이를 바라보았다.
벽에 걸린 건 사슴과 고양이를 조합한 탈을 쓴 듯한 얼굴에 별 문양이 박혀 있는 환수였다.
누가 봐도 하이프였다.
인위적인 푸른 망토를 쓴 채 젓가락처럼 앙상한 팔과 다리가 축 늘어져 있었다.
‘…진짜였어.’
은호는 속에서 밀려오는 답답함에 마른침을 삼켰다.
하이프가 저 모습을 본 걸까.
은호는 벽을 향해 손을 뻗었다.
식물들이 벽 사이에 달라붙어 옆으로 벌였다.
자신이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넓어지자 은호는 그곳으로 걸어갔다.
그제야 묻혔던 대화가 왼쪽에서 들렸다.
“…이렇게 힘으로 밀어붙일 게 아니라 좀, 진정하고 말을 들어보세요.”
그 목소리였다.
―진심으로 기다리고 있을게요. 수리비는 이쪽에서 지급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요. 늘 건강히 있어 줘요.
유예림을 붙잡을 때, 통화한 목소리의 주인.
“당신이 환수 밀렵꾼의 단체 중 가장 크며 자잘한 단체 대부분을 흡수시킨 ‘SA’의 우두머리라는 걸 확인하고 온 길입니다. 저는 환수 관리국 소속으로 정당한 공무 중입니다.”
지혜가 굳은 얼굴로 또박또박 주장했다.
“선생님. 오해라고 몇 번을 말씀드려야 할까요? 저는요…….”
그녀는 말을 하며 지혜에게 가다 말고 멈췄다.
웬 이상한 가면을 쓴 남자가 태연하게 걸어왔다.
시선이 움직였지만, 지혜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지 않았다.
“역시 그렇게 발뺌할 줄 알았습니다. SA의 우두머리라고 하니까 실감이 나지 않는 모양입니다. ‘HWM’의 기업에서 일하는 과장 하나율 씨. 이러면 감이 좀 오십니까?”
이름이 불리자 나율은 그대로 숨을 짧게 내쉬었다.
“뒷조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셨네요? 그거 범죄인 거 아시나요? 그리고 당신, 뭐 하는 거죠?”
나율은 지혜에게 따지다 말고 은호에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은호는 대꾸하지 않았다.
하이프 앞에 섰다.
손을 뻗자 나율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지금…….”
“이렇게 환수를 박제해두고, 본인은 범죄자가 아닌 것처럼 떳떳하니 기가 차네요.”
“그거 가짜예요. 진짜 환수를 집에 박제할 리가 없잖아요? 법에 어긋나는 짓이니까요.”
태연한 거짓말에 은호는 속이 다 뒤집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감정을 죽였다. 그런 건 꽤 잘하는 편이었다.
“이 환수의 이름은 하이프에요. 알고 있었나요?”
“그랬나요? 인터넷을 뒤지다가 예뻐서, 가질 수는 없으니 비슷하게 만든 거예요.”
나율은 조곤조곤 말을 꺼내다 말고 이내 짜증이 살짝 섞인 표정을 지었다.
“그게 그렇게 죽을죄인가요? 제집을 다 부술 만큼요? 이 집이 얼마짜리인지는 알고 있나요?”
“알죠.”
은호는 대꾸하며 박제된 하이프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몇 년간 이렇게 구경거리로 전락했다.
얼마나 억울했을까.
은호는 밀려드는 감정을 삼키며 뒷말을 꺼냈다.
“최고급 아파트잖아요?”
“배상할 각오를 하고 이렇게 온 거 맞겠죠?”
“아, 수리비요?”
“오해라고 분명히 말씀드렸고, 그럼에도 환수 관리국이라는 그 이름을 들먹이며 강압적으로 군 것도 모자라 집을 다 부서트렸잖아요.”
“왜 이번에는 저번처럼 말을 하지 않아요?”
은호는 하이프를 내려놓았고, 나율을 보았다.
검은 머리카락에 빨간 립스틱이 발려 있었다.
상당히 도도해 보이는 그 얼굴 너머로 귀찮음이라는 감정이 뒤섞였다.
“저, 본 적 있어요?”
“그럼요.”
은호가 긍정하자 나율의 표정이 굳어졌다.
하이프가 그림자로 스며들었고, 나율은 눈썹이 살며시 올라갔다.
“나는 당신 같은 사람 모르는데? 환수 관리국에서 요새 재미있는 걸 하나 봐요.”
슬금슬금 달라지는 나율의 눈빛에 지혜는 입꼬리를 올렸다.
“지금 참 재미있지 않습니까?”
“뭐가 재미있는지 모르겠지만, 당신도 환수 관리국 소속이 맞는지 확인을 해봐야겠는데요?”
나율은 손을 뻗으며 은호에게 다가갔다.
은호의 뒤에는 뚫린 외벽이 보였고, 그 너머에는 하늘이 드넓게 펼쳐진 것도 모자라 거친 바람이 불어왔다.
은호와 나율의 거리가 주저 없이 가까워졌다.
나율이 자신을 표적으로 삼는다는 건 확실했다.
어쩌면 불확실한 존재인 자신부터 제거하고 싶은 걸지도 몰랐다.
“이 정도는 확인할 수 있죠?”
은호는 나긋나긋한 나율의 말과 함께 뻗어오는 손길을 보았다.
딱 한 걸음 차이였다.
사아아아.
전신을 감싸는 싸한 느낌에 은호는 뒤로 물러났다.
표적을 잃은 나율의 손가락이 허공에 맴돌았다.
예측하지 못한 건지 몰라도 잠깐 머뭇거리던 그녀의 눈빛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저게 진짜 나율의 눈빛일지도 몰랐다.
“왜 물러서시죠?”
태연하게 말을 하며 은호에게 손을 뻗었다. 어디 해보라는 듯 은호는 이번에 물러서지 않았다.
어깨에 손이 닿는 순간, 나율의 미소가 길어졌다.
쿠웅!
갑자기 쏟아지는 강한 압박에 나율은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눈동자가 흔들렸다.
중력이 밀어닥치는 것만 같았다.
이건 저 남자의 힘이 아니었다.
이 초능력을 쓸 수 있는 존재는 지금으로서는 한 명이었다.
“국장님. 정말로 손이 닿아야 초능력이 발동하는 모양이네요.”
은호의 질문에 나율의 눈동자가 움직였다.
‘…국장님?’
“이미 여러 번 확인했습니다.”
지혜는 혹시 몰라 나율의 힘을 확인하고자 주먹으로 벽을 부서트려보았다.
파편이 나율에게 튈 때마다 손바닥에서 터지는 걸 목격했다.
초능력의 조건이 극단적인 만큼 위력은 강해졌다.
튀는 파편을 볼 정도로 동체 시력 역시 좋았다.
“아, 소개가 늦어졌습니다. 저는 환수 관리국의 국장, 이지혜라고 합니다.”
지혜의 소개에 나율은 손을 바닥에 짚으며 웃었다.
국장이 왔다.
“미리 말씀하시지. 그랬다면, 이런 유치한 짓은 하지 않았을 텐데요.”
“알 거라 생각했습니다.”
“뉴스에 뜨는 사진과 동영상으로 본 게 다였는데, 실물과 다르네요.”
나율은 지혜의 얼굴을 탐스럽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 어떤 얼굴보다 더 터트리고 싶었다.
콰앙!
나율의 초능력과 함께 바닥이 꺼졌다.
와르르 무너지는 와중에 나율은 바닥 잔해를 밟고 올라왔다.
가뿐히 착지해서는 은호에게 달려왔다.
굉장히 빨랐다.
은호에게 손을 뻗으려던 그때, 지혜가 다가와 나율의 뒷덜미를 잡고는 바닥으로 내리찍었다.
이어 손가락을 뻗었다.
콰아아앙!
중력의 힘을 따라 다시금 바닥이 꺼졌고, 그 소리가 몇 번이고 일어났다.
이어 짙은 먼지가 위로 뻗어나갔다.
초능력자의 신체 능력이 좋다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내가 뭘 본 거야?’
은호가 경악했다.
초능력자가 이토록 무서웠던가.
신체 능력은 따라잡을 수 없었다.
“괜찮습니까?”
지혜의 물음에 은호는 가슴을 몇 번 두드린 뒤에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주변을 바라보았다.
‘역시. 식물은 모두 다 키운단 말이야.’
실제로 기르든, 장식용이든 식물은 빠지지 않고 있었다.
은호는 잠깐을 이용해 자신의 아군을 늘려나갔다.
화분마다 피를 뿌렸다.
지혜의 시선이 은호에게 쏠리던 그때,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올라오는 거예요?”
“그렇습니다.”
지혜의 대답에 은호는 혀를 내둘렀다.
이게 가능하다니.
쿵!
마지막 묵직한 소리와 함께 나율이 등장했다.
“여기 아파트라는 거 잊었어?”
머리카락과 옷에 잔해가 묻은 것 이외에는 멀쩡해 보였다.
나율은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바로잡았다.
“괜찮아. 다 대피시켰고, 무너진 건 전부 다 네가 모은 돈으로 수리할 거니까.”
은호는 말을 하며 손가락을 뻗었다.
“가자, 친구들.”
은호의 지시에 사방에서 식물들이 줄기를 뻗어왔다.
그 속도가 굉장히 빨랐다.
벽을 타고 자라는 모습은 상당히 이질적이라 나율의 시선이 움직였다.
이 이상 바닥을 뚫을 수 없었고, 나율이 도망치기라도 하면 곤란했다.
무엇보다 자신에게 가장 좋을 환경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은가.
“내 방을 장식이라도 해주려고 그랬어?”
나율은 은호를 기특하게 바라보았다.
이렇게 발판까지 마련해주니 얼마나 예쁜지 몰랐다.
나율은 더는 바닥 따윈 신경 쓰지 않고, 발에 힘을 주며 나아갔다.
손가락이 은호의 이마에 닿으려던 차, 무언가에 붙잡혔다.
더는 나아가지 못했다.
수없이 엉키고, 얽힌 식물들이 그녀를 쥐어서는 손을 뒤로 꺾었다.
콰득!
소리가 들렸지만, 나율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그저 싱긋 웃었다.
쿠웅!
그때, 위에서 밀어닥치는 중력의 힘에 나율은 아주 살짝 일그러졌다.
조금 전보다 짓누르는 힘이 더 강해졌다.
“아니.”
은호는 나율의 말을 부정하며 내려다보았다.
시선이 마주쳤고, 날이 선 나율의 시선에 즐겁게 말했다.
“내가 찾아온다고 했지?”
“…대체 누굴까?”
“너랑 통화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