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16)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16화(16/302)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 016화
16화. 위기는 간식으로
코카트레스의 눈동자에 날이 섰지만, 흑견의 앞발이 그를 짓누를 뿐이었다.
“친구야.”
코카트레스를 부르는 은호의 목소리가 조금은 낮아졌다.
“…인간이 우리 말을 하다고? 인간이?”
중저음의 목소리에 터무니없는 감정이 뒤섞였다.
“내가 좀 특별해서.”
은호가 코카트레스에게 손을 뻗었다.
그가 발악하듯 소리쳤다.
“나를 만지지 마라! 나를 만지지 말라고!”
명백한 적대에 은호는 가슴이 좀 아팠지만, 다가가지 않았다.
“미안해. 놀라게 할 생각은 없었는데.”
“하! 네놈 인간들은 밥을 처먹는 것만큼 거짓말을 한다는 걸 내가 모를 줄 알아?”
“어떻게 생각하든 좋아. 지금 내가 열심히 떠들어봤자, 네 귀에는 하나도 닿지 않을 테니까. 내가 바라는 건…….”
“네가 이겼다. 인정하지.”
은호의 말을 끊어내며 코카트레스의 부리가 벌어졌다.
마치 비웃음을 그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건 내가 먼저 말했는데?”
“저놈들이 그렇게 가지고 싶었나? 가져. 어차피 쓸모도 없으니까. 내가 내 발로 직접 떠날 테니 이거 놓지?”
“잠깐만. 사람이… 아니지, 왜 이렇게 성격이 급해?”
은호는 코카트레스 앞에 앉았다.
그 이상한 행동에 코카트레스는 시선을 내렸다.
“네가 떠나긴 왜 떠나?”
“잡소리 하지 마라. 나를 기만하는 거냐? 꼴값 떨지 마.”
“그 주둥이, 무사하길 바란다면 더 지껄이지 마라.”
흑견은 앞발에 힘을 강하게 주었다. 밀려오는 고통에 코카트레스는 아주 잠깐 비명을 터트렸다.
“…너 같은 존재가 인간 편에 서다니. 왜? 먹이라도 준다고 하니 개처럼 꼬리라도 흔들려고?”
코카트레스는 의도적으로 흑견을 도발했다.
“그런 수작질은 안 돼.”
은호가 딱 잘라 말하며 코카트레스의 날개에 손을 올렸다.
더럽고, 역겨운 감각이 밀려올 걸 각오했지만, 전혀 다른 온기에 코카트레스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상하게도 햇살 같았다.
“우리 멍멍이 형님이 누군가를 다치게 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도 않고, 그렇게 유도하는 것도 나는 못 봐.”
은호가 웃음을 지우자 나른함 위로 발톱이 드러난 것처럼 묘하게 서늘한 인상이 드러났다.
딱히 서늘할 요소는 얼굴 어디에도 없었는데.
“잘 들어, 친구야. 내가 바라는 건 하나야. 힘으로 누굴 괴롭히지 말고, 대화로 해결하자는 거야. 그럼에도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날 불러. 같이 고민해 보자.”
“뭐……?”
“쉽게 말하자면 서로 사이좋게 지내자는 말과 비슷한 소리야.”
“지금 말이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네놈이 무슨 소리를 지껄였는지 이해는 해?”
“이해하니까 말한 거겠지?”
“지랄하지 마! 사이좋게? 웃기고 있네! 내가 왜 저것들이랑 그렇게 지내야 하지? 차라리 죽여! 죽이라고! 아니면 그 나약한 손으로 누굴 죽이는 게 두렵나?”
코카트레스의 도발에도 은호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 행동이 코카트레스의 성질을 더 건드렸다.
“친구야. 서로 대화하는 게 누군가를 해치고 위협하는 것보다 더 쉬운데 왜 미리 겁을 먹을까?”
“그건 인간의 해결 방법이겠지!”
코카트레스는 부리를 딱딱 부딪치며 발끈하자 은호는 자연스럽게 대화의 주도권을 손에 쥐었다.
원래 대화란, 먼저 흥분한 쪽이 논리도, 논점도 잃기 마련이었다.
“인간의 생각을 나한테 주입하지 마! 약한 놈은 강한 놈한테 복종만 하면 돼! 그거 하나만 하면 되는 거라고!”
은호는 나른한 미소를 다시 입가에 그렸다.
조금만 건드렸음에도 이렇게 쉽게 무너져내렸다.
“그럼, 왜 안 해?”
“……뭐?”
“복종해야 한다며. 나하고 멍멍이 형님이 널 이겼는데? 뭘 시켜도 해야지.”
은호의 손가락이 가까워지자, 코카트레스는 놀란 눈을 하며 잠깐 숨을 참았다.
“말은 그렇게 번지르르하면서 결국, 싫잖아. 변화가 무서운 거잖아.”
저들은 동물과 달리 서로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동물과 유사한 방법을 따르고 있었다.
억압으로 시작된 관계가 뒤바뀌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걸 모르기에 예민하게 구는 것 같았다.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라 무섭고, 어렵겠지.
“알았어, 친구야.”
은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코카트레스를 내려다보았다.
“우리 친구는 일단, 공격만 멈춰. 다른 친구들하고 사이좋게 지내란 말은 안 할게. 다른 친구들한테 네 주변에 얼씬도 하지 말라고 부탁할게. 그러니까, 떠나지 않아도 돼.”
“…거짓말하지 마.”
“거짓말 아닌데?”
“내가 떠나길 바란 게 아니라면 대체 왜 이렇게 하는 건데? 왜 멀쩡히 돌아가는 이 규칙을 뒤틀어버리는 건데?”
코카트레스는 숨이 막힌 듯 목소리를 냈다.
생전 처음 겪는 일이었다.
이 짧은 순간 당연히 알고 있던 모든 게 박살이 나는 것 같았다.
“…어렵네. 그렇지?”
은호는 가볍게 웃었다.
울고 있는 레비아탐의 눈물을 닦아줬더니, 이제는 다른 한 마리가 우는 것 같았다.
이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생각과 현실로 펼쳐진 상황이 너무도 달랐다.
여기가 인간 사회였다면 코카트레스는 맞아 죽어도 싼 못된 놈이 되겠지만, 환수의 세계에서는 그게 또 당연해 나쁘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어려웠다.
“다시 나랑 고민해 보자. 약속해.”
코카트레스는 은호의 말에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은호는 고개를 들어 흑견을 바라보았다.
“이제 놔 줘, 멍멍이 형님.”
흑견은 고개를 숙여 코카트레스에게 작게 속삭였다.
“저 인간의 털끝 하나라도 손대면 뼈마저 씹어주지.”
온몸을 찌르는 말처럼 날카로웠기에 코카트레스는 잠깐 눈을 감았다 떴다.
흑견이 발을 치웠고, 그제야 코카트레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흑견을 시작으로 은호를 보고 다른 환수들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이 무겁게 느껴졌다.
코카트레스는 뒤로 움직이다, 바로 왔던 곳으로 움직였다.
도망치듯 달리는 그 뒷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던 은호는 몸을 돌렸다.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미소를 짓고는 말문을 열었다.
“저 친구가 약속을 지켜줄 테니까, 너희도 지켜줘. 이번 기회에 당했던 걸 돌려줄 셈으로 자극하지 말라는 말이야. 그렇게 해줄 수 있지?”
“걔가 정말 약속을 지켜줄까?”
“…무서워. 나도 더듬이가 잘리면 어떡해?”
“인간, 네가 없을 때, 우리를 공격하면 어떻게 되는 거야?”
한 마리로부터 시작한 불신이 금세 퍼져나갔다.
억압되었던 그 시간이 바로 뒤집힐 순 없었지만, 삐꺽거리는 게 느껴졌다.
“난… 믿엄.”
그때, 레비아탐이 목소리를 냈다.
“내 혀를 뜯어갔지만, 거짓말할 존재가 아니라는 건 알암.”
혹시 거품이 나올까, 레비아탐은 천천히 뒤로 움직였다.
“인간이 나를 위해섬, 너희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했는데, 믿지 않는 건… 치사햄.”
점점 목소리에 힘이 빠졌다.
사실 레비아탐도 무서웠다. 모든 게 오해였다고 하지만, 저들로 괴로웠던 시간은 기억에서 지워지질 않았다.
“…있잖암.”
레비아탐은 은호를 조심스럽게 바라보았다.
“서은호야.”
대뜸 이름을 알려주자 흑견은 눈을 질끈 감았다.
‘또 이름을 알려주다니.’
진짜 말을 안 듣는다 싶었다.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인간이 바라는 흐름은 공포로 지배되는 게 아니었다.
자신의 말은 저들에게 공포로 다가갈 뿐이었으니까.
“서은호는 처음 본 날 왜 도와준 거얌?”
레비아탐의 물음에 은호는 대수롭지도 않게 대답했다.
“그냥. 거창한 이유는 없어. 너의 이야기가 궁금했거든.”
쪼그려 앉아 레비아탐과 시선을 마주했다.
“꼭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네 이야기를 들어줬을 거야. 그냥 어쩌다 보니, 내가 됐을 뿐이지.”
“나는 인간이 아닌뎀……?”
“그게 무슨 상관이야? 우린 이렇게 말이 통하는데.”
은호는 주먹을 내밀었다.
레비아탐이 멀뚱히 바라보다 앞발을 내밀었다.
은호가 웃자 레비아탐은 앞발을 주먹에 부딪쳤다.
이상하게 따뜻함이 밀려오는 것 같았다.
레비아탐의 입가가 길어지던 차, 눈물이 주르륵 떨어졌다.
“…레, 레비아탐? 이거 눈물 버튼이야? 울라는 신호야?”
은호가 당황하자 레비아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혼자가 되는 게 무서워 저들의 싸늘한 시선과 차가운 말에도 참았다.
자신을 봐달라 더 매달리다 보니 본의 아니게 제어하지 못하는 힘으로 사고만 쳤다.
그런데 이제 괜찮았다.
“…너무 기뻠.”
“나도 네가 기쁘니, 좋네.”
포근한 은호의 미소에 레비아탐은 두 눈을 살포시 감았다.
눈물이 떨어졌지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지금 얼마나 기쁜지.
얼마나 행복한지 잘 표현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나는 더, 더 기뻠! 정말 기뻠!”
뽀글.
거품이 레비아탐의 입에서 나왔다.
“…어, 어!”
은호가 기겁했다.
덩달아 레비아탐과 환수들마저 긴장했다.
“…하.”
흑견이 한숨을 내쉬며 앞발로 거품을 내리찍었다.
콱!
삐이이.
바람 빠진 풍선 소리가 흑견의 발밑에 울렸다.
“너는 그 힘부터 다시 조절해라.”
레비아탐이 고개를 끄덕였고, 은호는 엄지를 말없이 올렸다.
* * *
“…여기는 RB―21입니다. 비정상 반응을 감지해 해당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그녀는 보고하며 함께 온 동료를 바라보았다.
고개를 가로젓는 모습을 보며 보고를 계속했다.
“현재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수색 후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연락을 끊은 뒤에 동료에게 다가갔다.
“정말 아무것도 없어?”
“여기 허허벌판이야. 아무리 숨어봤자 다 보인다고. 애초에 정말 환수 반응이 일어난 거 맞아?”
그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도리어 그녀를 의심했다.
“맞다니까. 내가 오류인지 알고 몇 번이나 다시 살폈는데.”
그들의 왼쪽 어깨에 환수 관리인임을 증명하는 사자 얼굴 문양이 박혀 있었다.
“여기, 도시랑 멀어서 괜찮지 않아?”
그가 묻자 그녀는 인상을 썼다.
바로 한숨을 내쉬다 그녀는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너 미쳤어? 환수가 사람들을 공격하면 어쩌려고 그래? 그 책임 네가 다 질래?”
“…하. 환수 놈들, 진짜 더럽게 말 안 듣네. 좀, 환수 보호 지역에 있으라니까.”
“걔들이 사람이야? 말을 듣게?”
“우리 집 개도 가만히 있으란 말은 알아듣는단 말이지. 대체 언제까지 이래야 해? 환수 놈들 뒤나 닦아 주려고 내가 여기 들어왔는지 알아?”
그는 지겹다는 표정을 지었다.
매번 그랬다.
말도 안 통하는 짐승 주제에 콧대만 높아서는 쓸데없이 환수 보호 구역을 빠져나와 돌아다녔다.
“그거 아니면 왜 들어왔는데?”
그녀는 오히려 기가 찬 듯 물었다.
“일단, 돈을 많이 주니까. 그리고 대충 양치기처럼 하는 줄 알았지. 돈만 아니었어도 때려치우는 건데.”
“하긴 그래. 아. 아까 보니까 저기에 집이 있던데? 확인해봤어?”
“비었더라고. 내일 다시 찾아가 봐야지. 밤에 찾아갔다가 민원이라도 넣어봐라. 연봉 삭감이라고.”
“야! 잘 살펴본 거 맞지?”
그녀는 놀라며 소리쳤다.
“아니, 왜 소리를 질러?”
“환수가 사람을 습격한 거면 어쩌려고! 핏자국 봤냐고?”
“…그건 못 봤는데.”
“뒤져! 바로!”
그녀가 불안함을 드러내며 먼저 앞으로 달리자 그는 귀찮은 얼굴로 덩달아 따라갔다.
‘진짜 피 냄새는 안 났는데.’
냄새를 구분할 수 있는 초능력이 있었다.
이 주변에 여러 환수와 이상한 체취가 코를 찔렀다.
난생처음 느껴볼 정도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달달한 냄새였다.
‘누가 꿀이라도 뿌렸나?’
* * *
은호는 조용히 눈을 떠 고개를 돌렸다.
레비아탐이 옷걸이 봉에 꼬리를 말고는 만세 하는 자세로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창문으로 걸어가 문을 열자 서늘한 바람이 몰려왔다.
창문틀에 잠깐 웅크렸다. 머리카락이 살짝살짝 흔들렸다.
도시에서 떨어져서 그런지, 다른 세계라서 그런지 몰라도 하늘에 별이 선명히 보였다.
원래 세계와 다른 모습 하나가 눈을 사로잡았다.
“뭐 하는가?”
목소리와 함께 거대한 그림자가 보였다.
은호는 피식 웃었다.
“쉬잇. 레비아탐이 자고 있어.”
은호는 창문으로 올라갔다.
그림자는 흑견으로 바뀌어 다급히 창문 가까이 몸을 댔다.
은호가 흑견의 몸으로 뛰어들자 털이 바짝 올라온 게 얼굴로 느껴졌다.
“뭐 하는 건가, 인간?”
“안 해봤던 짓을 해보는 중이라고 해야 하나? 나는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되어보려고 다짐했거든.”
“언제 그랬는가?”
“오늘부터?”
“…자라.”
흑견이 콧바람을 세게 내쉬었다.
“멍멍이 형님은 이 밤 중에 뭐 하는 건데?”
“나는 원래 이랬다. 밤이 좋으니까.”
“많이 안 자면 키 안 크는데. 아직 10살이잖아.”
“다 자랐다. 너나 많이 자라라, 인간.”
“나도 다 자랐지. 조금만 더 컸으면 좋았겠는데. 한 멍멍이 형님만큼?”
흑견은 은호가 쫑알거리는 말을 흘려들으며 천천히 집 주변을 돌았다.
“인간.”
“응?”
“혼란스럽나?”
은호는 그 물음에 살짝 놀랐다. 흑견이 이런 소리를 할 줄은 조금도 예상하지 못한 탓이 컸다.
“…좀? 이게 맞나 싶은 거지. 내가 뭐라고 환수들의 행동을 제한했나 싶기도 하고.”
“그럼, 후회하나?”
“걸리는 게 딱 하나가 있지만, 후회는 없어.”
은호는 흑견의 몸에 누워 흐뭇하게 웃었다.
―집이담! 집이다암!
그렇게 기뻐하는 레비아탐의 모습을 봤는데, 뭘 후회할까.
“그렇다면 왜 고민하는가?”
“멍멍이 형님은 내가 이상하지 않아?”
“이미 이상했다. 지금도 이상하고.”
환수들마저 두려워하는 자신을 보며 노란 꽃을 내밀고 같이 가자고 말하는 인간이 어디 있을까.
“너무하네. 이럴 때는 아니라고 해줘야지.”
은호가 투덜거리자 흑견은 앞을 보며 말했다.
“이만 자라.”
* * *
딩동. 딩동.
아침부터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은호는 잠이 덜 깬 얼굴로 계단을 내려왔다.
‘…아침부터 누구야?’
은호는 말을 꺼내기 전에 목을 가다듬고는 인터폰에 버튼을 눌렀다.
남녀 둘이 왔는데, 얼굴이 영 낯설었다.
‘택배… 안 시켰는데?’
은호는 어깨를 긁적이며 물었다.
“누구세요?”
“환수 관리국에서 나왔습니다.”
“…….”
은호는 잠이 확 달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