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ruids Live with the Beast RAW novel - Chapter (161)
드루이드가 환수와 살아가는 법-161화(161/302)
161화. 안아줬다
이게 지금 무슨 소리인지.
흑견은 앞발로 은호의 얼굴을 눌렀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가?”
“…아야야! 나 진짜 아프다고! 정신 놓을 것 같단 말이야, 멍멍이 형님!”
“미쳤는가, 인간?”
흑견은 저절로 내질러지는 소리를 막을 수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은호가 조금도 고민 없이 뛰어내릴 줄은 몰랐다.
생각이 멈췄다.
행동마저 멈추고, 어떤 반응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늦어졌다.
은호가 제 목숨이 귀한 줄 몰랐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나한테 맡겼어야지! 나를 불렀어야지!”
은호가 말했다면 바로 뛰어내렸을 텐데.
“……위험하잖아.”
은호의 대답에 흑견은 다시금 멍한 눈이 되었다.
위험하다니.
자신이?
왜?
흑견은 댐이 터지듯 밀려오는 감정에 언성이 올라갔다.
“누가 봐도 위험한 건 인간이다!”
“…나는 멍멍이 형님이 위험한 거 싫어. 나는 금방…….”
“그럼 나는?”
“……?”
“나는 인간이 위험한 게 좋다고 생각하는가?”
“……아니.”
은호는 시선을 올리려고 했는데, 그게 힘들었다.
흑견의 발만 보였다.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내가 갔으면, 멈췄을 것이다. 내가 갔다면 그 인간이…….”
은호는 팔을 뻗어 흑견의 발을 만졌다.
“그런 거 싫어. 멍멍이 형님은… 어엿한 한 존재야. 멍멍이 형님을 보고 공격을 멈췄으면, 당장은 다행이겠지만, 분명 마음이 아플 테니까.”
인간이 환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다시금 느끼지 않겠는가.
그 선명한 시선을 보고도 상처받지 않는 건 어려웠다.
몸에 커다란 상처가 나면 흉터가 생기지만, 마음은 그저 덮는 것뿐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 약을 발라줄 수도 없었다.
“…미안해, 멍멍이 형님.”
은호는 다시 바보같이 웃었다.
“콜록, 콜록!”
크게 기침하던 차, 지혜가 걸어왔다.
“지금 당장 병원으로 옮기겠습니다.”
“괜찮아요. 형한테…….”
“너, 대체 뭐 하는 거야!”
갑자기 누군가 소리쳤다.
은호는 말을 멈춘 채 겨우 고개를 돌렸다.
하이프가 울고 있었다.
“왜 마음대로 나를 막냐고! 내가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잖아!”
하이프는 은호에게 다가갔고, 은호는 꿈틀거리며 팔에 힘을 주었다.
“콜록! 콜록!”
크게 내뱉은 기침에 폐가 아팠다.
등이 화끈거리고, 바닥에 피가 떨어졌다.
그럼에도 은호는 상체를 일으켰다.
“왜 이번에도 멋대로 나를…….”
은호는 하이프의 말이 끝나기 전에 안아주었다.
폭시에게 안아주지 않겠다고 했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누구라도 그럴 수밖에 없을 테지.
“……!”
하이프는 그대로 멈췄다.
“…살아.”
은호는 하이프를 꽉 안으며 토닥거려주었다.
혼자가 되어 가장 그리웠을 건 누군가의 온기였을 테니까.
“꼭… 살아.”
은호는 다시금 당부했지만, 더는 의식을 붙잡지 못했다.
은호의 팔이 축 늘어지자 흑견은 이빨을 빠드득 갈았고, 지혜는 다가가지도 못하고 안절부절못했다.
하이프는 여전히 멍한 눈으로 늘어진 자신의 손을 올리며 은호를 안았다.
따뜻했다.
온 마음을 안아주는 포근한 냄새가 났다.
“…그렇게 말해버리면.”
하이프는 일그러진 얼굴을 하며 은호의 품에 파고들었다.
어깨가 떨리고 울음이 터져 나왔다.
“네가 그렇게 말해버리면…….”
가장 싫었던 인간인데, 이미 자신 역시 자신을 포기했는데, 저 인간만은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을 더 깊게 붙잡았다.
대체 왜.
하이프는 은호를 꽉 안은 채 고개를 들었다.
물방울이 떨어졌다.
붉게 물든 하늘을 시선에 담았다.
눈물로 일그러졌지만, 참 아름다웠다.
“……진짜로 살아가고 싶잖아.”
이 인간은 참, 치사했다.
* * *
지혜는 나율의 병실로 들어갔다.
나율의 부상은 예상보다 심해 당분간 치료를 받아야 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죽지 않았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겠는가.
“그래도 버틸 줄 알았는데, 당신을 아주 쉽게 버리더군요.”
지혜는 온갖 신문을 하나, 하나 정성스럽게 펼치며 나율에게 보여줬다.
「환수 밀렵꾼의 우두머리, 사실은 모 기업의 과장이었다?」
「충격 이중생활. 낮에는 모 기업의 과장. 밤에는 환수 밀렵꾼의 우두머리.」
「대반전. 환수 밀렵꾼의 우두머리는 사실 비소속 초능력자!」
「환수 밀렵꾼의 우두머리는 전 환수 관리국 부국장, 권석현과 뜨거운 사이였다.」
“아주 뜨겁지 않습니까? 가볍게 흘렸는데, 이렇게 난리가 날 줄이야.”
지혜가 웃었다.
환수 밀렵꾼은 그토록 뽑히지 않았던 악의 축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렇게 우두머리까지 잡힐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으니 아주 신이 난 모양이었다.
“초능력 관리국에서 당신을 넘기라고 했지만, 거부했습니다. 이참에 환수 밀렵꾼과 정화자는 명확히 우리 쪽 소관이라고 확실히 밝혔습니다.”
초능력자가 얽히긴 했어도 과거처럼 넘기지 않았다.
유예림을 놓칠 때부터 환수 밀렵꾼과의 연결이 보였으니까.
“아쉽겠습니까. 초능력 관리국으로 가야 당신이 심어둔 사람의 덕을 볼 수 있는데 말입니다.”
“내가 이런다고 나올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해?”
“네. 나올 수 없습니다.”
지혜는 태블릿을 가져와 이래저래 조작했다.
“당신이 숨겼던 수많은 정보 말입니다. 이미 털렸고, 우리 쪽으로 넘어왔습니다.”
나율 쪽으로 태블릿을 보여줬다.
하나씩 넘길 때마다 나율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걸 보았다.
“그러게 왜 밉보였습니까? 나도 굉장히 무서운 존재인데요.”
오가을.
그녀는 무력이 없지만, 그 이상의 무서움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 역시 그녀에게 밉보인다면 뭘 털릴지 몰랐다.
“……누가 불었어?”
“당신의 부하들이 불기 전에 이미 털린 겁니다. 왜요? 허탈합니까?”
지혜는 태연하게 물었고, 대답하려다 말고 나율은 기억을 더듬어갔다.
누군가 새카맣게 만들어버린 것처럼 기억이 나지 않았다.
누구한테 맞은 것 같긴 한데, 자신이 왜 이 꼴이 됐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율은 갑자기 초조해졌다.
“…누가 내 정신을 만진 거야. 그렇지?”
중요한 정보를 털어버린 건 아닐까.
방금 신문에서 본 정보를 꺼낸 건 자신이 아닐까.
식은땀이 흘렀다.
“중요한 건 하나죠. 당신은 끝났습니다.”
지혜는 나율에게 확실하고, 똑똑히 말했다.
“이제 감옥에서 어떻게 성실히 생활해야 하나, 그것만 생각해두십시오.”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율을 향해 확실히 비웃었다.
“잠깐만!”
나율은 자리를 떠나는 지혜를 붙잡으려고 했지만, 그녀는 나율이 무슨 말을 할지 예상하며 먼저 선수 쳤다.
“돈, 많습니다. 명색에 국장인데, 돈이 없는 게 우습잖습니까? 권력? 국장 정도면 꽤 높지 않습니까? 당신이 나하고 거래할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제부터 살려면 뭐든 털어놔야 하는 건 당신입니다.”
지혜는 그 말을 남기며 병실을 떠났다.
비명을 지르는 소리에 지혜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 * *
“…은호, 그때, 많이 아팠엄?”
레비아탐이 흑견 옆에 기대어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저번과 달리 은호 옆에 모르는 기계가 붙었다.
인간들이 뭐라고 말하는지 알아듣지 못했다.
어제 들어가지 못했고, 오늘에서야 들어올 수 있었다.
“곧 눈을 뜰 거다.”
“…정말인가?”
힘이 없던 라비가 흑견의 말에 귀를 쫑긋 세웠다. 은호를 바라보며 꼬리마저 흔들자 흑견은 대답했다.
“그렇다.”
“맞아. 은호는 금방 깨어날 거야.”
폭시가 은호의 손을 잡으며 방긋 웃었다.
평소보다 꽤 힘겨워 보이는 미소였다.
“정말…?”
은호 머리맡에 돌돌 말려 있던 일렉트 역시 고개를 들었다.
“인간이 지금까지 깨어나지 않았던 적이 있던가?”
흑견의 물음에 일렉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왠지 웃음이 나서 꼬리로 입가를 가렸다.
흑견은 잠깐 시선을 올렸다.
창문에 옹기종기 모인 환수들이 보였다.
고스덕도 있었고, 최근에 이곳으로 온 너쿤도 눈에 띄었다.
저 멀리 단아가 눈에 들어왔고, 그 거리랑 비슷하게 윈디드가 있었다.
‘저 병아리는 뭐 하는 건가?’
흑견은 기가 찼다.
애초에 이번 일에 윈디드가 올 수 없다고 은호가 확실히 말하지 않았는가.
눈에 띄지 않기로 한 작전인데 윈디드가 날아서 온다면 뭘 한다고 알리는 셈일 테니까.
그렇다고 좁은 그 공간에 윈디드까지 부를 수도 없었다.
흑견은 순간 짜증이 났지만, 뭐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그저 은호가 서둘러 눈을 떠줬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흑견은 마지막으로 하이프를 보았다.
시선이 마주쳤다고 생각하는 그때, 하이프는 숲으로 달려 나갔다.
저 존재 때문에 은호가 이렇게 됐지만, 원망할 생각은 없었다.
은호의 선택이었고, 그 결과를 존중했다.
‘하지만 이렇게 병원에 들어앉는 건 존중하지 않는다.’
흑견은 괜히 열받자 어둠을 움직여 은호의 볼을 꾸욱 눌렀다.
지금 주변에 모인 존재들이 저번보다 더 많이 늘어났다는 걸 은호만 모르고 있었다.
“멍멍이 형님. 은호를 괴롭히면 안 ??”
레비아탐이 두 앞발로 흑견의 몸을 흔들었다.
끄떡도 하지 않았지만, 흑견은 레비아탐을 바라보았다.
쪼그만 주제에 눈길 하나 피하지 않는 게 보면 볼수록 참 마음에 들었다.
“괴롭히는 게 아니다. 갑자기 얄미워서 그랬다.”
“은호는 아무것도 안 했다!”
라비가 깜짝 놀라며 꼬리를 잡은 채 소리쳤다.
고개는 흑견 쪽으로 가지 않았다.
“지금 보거라. 주변에 몰린 존재들이 보이지 않은가. 혼자 편하게 자고 있으니 얄미운 거다.”
흑견의 말에 라비는 귀를 머리에 딱 붙였다.
천둥이 치는 것만 같았다.
“나도 그래.”
폭시는 은호에게 걸어가 앞발로 볼을 만졌다.
“불안함은 다 날려버리라고 해놓고, 이렇게 해버리면 어떡해. 뭔가 얄미워! 그런데 너무 좋아!”
감정이 복잡해졌다.
폭시는 조금 화난 얼굴을 했지만, 꼬리가 크게 흔들렸다.
“맞아! 은호는 맨날 조심하라고 하는데, 은호는 하나도 조심하지 않아!”
일렉트 역시 반대편에서 은호의 볼을 눌렀다.
“아! 그건 맞느니라! 은호도 잔소리를 들어야 한다.”
라비가 일렉트 쪽으로 뛰어가 앞발로 볼을 누르자 레비아탐은 배시시 웃었다.
하지 않으려 했지만, 뭔가 재밌어 보였다.
레비아탐은 침대로 올라와 폭시를 건너뛰고 은호의 머리맡으로 갔다.
싱글벙글 웃으며 이마에 앞발을 뻗던 차, 은호와 시선을 마주쳤다.
레비아탐이 그대로 멈췄다.
은호는 눈을 깜박거리다 이내 피식 웃었다.
뚝.
눈물이 떨어지자 은호의 눈이 커졌다.
두 앞발이 은호의 머리를 감쌌다.
“은홈!”
레비아탐은 참았던 두려움을 터트렸다.
은호는 놀라며 허둥지둥거렸다.
잘 자고 있는데 볼에 말랑한 감촉이 너무 많이 느껴져 웃음이 났는데, 현실일 줄이야.
하지만 울음은 거기서 멈추질 않았다.
라비까지 옮겼다.
“…아프지 않더냐? 나, 말 잘 듣고 있었다! 정말이니라!”
라비는 서럽게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은호에게 얼굴을 묻었다.
으헝헝.
울음이 가장 크게 들렸다.
은호는 손을 뻗어 레비아탐과 라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웠다는 듯 은호의 손바닥에 들어갈 듯 내밀었다.
폭시는 말없이 은호를 바라보다 앞발로 그의 볼을 쓰다듬었다.
“깨어나길 기다렸어. 모두가 은호를 기다렸어. 우리 다 안 울고 있었다? 진짜 얌전히 있었어.”
점점 폭시의 목소리가 잠겼다.
다친 게 한두 번도 아닌데, 왜 이럴까 싶었는데 이질적인 게 느껴졌다.
못 보던 기계가 늘어났고, 코에 씌워 놓은 산소호흡기를 뒤늦게 알았다.
‘……어.’
은호는 말문이 막혔다.
이게 뭔지 모르는 저들은 겁을 먹을 만한 일이었다.
자신이라도 그랬을 테니까.
“이제 안 아파. 저 기계가 낯설어 너무 놀랬나 보다.”
은호는 손을 움직여 폭시를 쓰다듬었고, 왼쪽에서 느꼈던 또 하나의 앞발 주인을 찾으러 눈동자를 돌렸다.
일렉트가 울고 있었다.
은호는 손을 뻗다 말고 눈물을 닦았다.
“미안해. 걱정만 끼쳤네.”
목이 잠겨 원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지만, 은호는 레비아탐을 가슴팍에 올려두었다.
레비아탐과 라비 역시 눈물을 닦아준 뒤, 두 팔로 모두를 안았다.
울지 않았던 폭시마저 울음을 터트렸다.
너무 미안했다.
동시에 기뻤다.
자꾸만 웃음이 났다.
“두 발로 걸어오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어. 나는 진짜 괜찮으니까, 울지 마. 금방 나아서 같이 산책 가자. 세티아가 있는 호수에도 놀러 가고.”
은호는 눈을 감아 그들을 안아준 뒤, 천천히 눈 떠 고개를 돌렸다.
흑견이 자신을 보고 있었다.
어쩐지 평소보다 더 털 같은 어둠이 푸석해 보였다.
걱정을 많이 했을까.
왜 이렇게 기분이 좋은지.
“멍멍이 형님. 나 좀 일으켜줄래?”
“누워있거라.”
“멍멍이 형님만 빠지면 안 되지.”
“더 있다.”
“어?”
“저쪽을 보거라.”
흑견이 반대편을 가리키자 은호는 창문을 바라보았다.
그제야 창문에 매달린 환수들을 보았다.
누군가 이렇게 자신을 반겨주겠는가.
가슴에 떨림이 일어났다.
잠깐 바라만 보던 은호는 이내 미소를 품고는 크게 손을 들어 흔들었다.
“나는 괜찮아! 정말 괜찮아!”
더 크게, 더 환하게 웃었다.
일어나지 말라고 했지만, 은호는 무리하게 일어나 또 손을 들었다.
“인간! 일어나지…….”
은호는 그대로 흑견에게 몸을 날리듯 손을 뻗었고, 흑견은 다급히 앞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은호는 두 팔로 흑견을 안았다.
“좋은 아침이야.”
아침이 맞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다들 좋은 아침이야!”
자신을 기다렸던 이들 모두에게 그 말을 꼭 하고 싶었다.
* * *
“…안녕.”
달빛을 등지고, 그림자가 길어졌다.
하이프는 고개를 돌렸다.
은호는 또 무언가를 많이 끌고 와서는 자신의 옆으로 걸어왔다.
“왜 여기에 있어?”
다시금 말을 걸자 하이프는 황당한 표정을 했다.
몇 번이나 쫓아왔는지 몰랐다.
지금쯤 잘 거라고 생각했는데.
하이프가 무슨 생각을 하든 말든 은호는 드디어 붙잡은 하이프를 다시금 안아주었다.
“고마워. 살아줘서.”
눈을 뜨고 하이프를 보면 제일 먼저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
분명 별거 아닌 말인데, 하이프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일렁거렸다.